배준우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이 일에 있어서 진정훈은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배준우는 5분이 거의 지나서야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고서는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이 일은 내가 먼저 은영이하고 상의해 볼게.”“상의? 이 일을 상의할 필요가 있어요?”진정훈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진윤은 그에게 눈빛을 보냈다.배준우는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는 타입이었기에 이런 답을 내렸을 때는 분명 그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진윤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았는데도 진정훈은 포기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진정훈이 말을 멈추는 것을 본 진윤은 배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걱정되는 부분이라도 있어?”그는 배준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걱정이 없었다면 지금 그가 부탁하는데 배준우가 대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배준우가 입을 열었다.“너희는 은영이가 여동생이라고 생각되면 분명 은영이를 위해 다 해주고 싶을 거야. 은영이를 곤란하지 않게 하고 싶으면 너희도 이 기간은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무슨 뜻이에요?”진정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경솔하게 행동한다는 게 도대체 뭐지? 그냥 친자 검사를 할 뿐인데 설마 고은영에게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건가?’배준우는 진정훈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량천옥이 배씨 가문을 왜 떠났는지 이유를 알고 있어?”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지? 몇 가지 소문을 듣긴 했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데.’그 일에 관해서는 그의 여동생인 배지영의 능력이 정말 대단했다고 들었다.량천옥처럼 영리한 사람이 배지영의 수에 넘어갔으니 말이다.배준우는 리드미컬하게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량천옥이 배씨 가문을 떠나기 전에 천의를 본인의 명의로 이전했어.”그런 일이 있었다니.이 일은 강성에서 아무도 몰랐다. 모두 량천옥이
“아무튼 이런 시기에 량천옥이 만약 고은영이 자기 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량천옥은 고은영에게 더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안겨줄 거야.”“우리가 그 여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어?”진정훈은 더욱 화를 내며 말했다. 그는 량천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진윤은 진정훈의 말에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만 량천옥은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는 여자야. 그런 여자가 또 비밀리에 어떤 수를 쓸지 알 수 없잖아.”그렇기에 생각해 보면 당분간은 이 문제에 대해 경솔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진윤의 말을 들은 진정훈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다. 공개적으로 공격해 오는 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지만 등 뒤에 칼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웠다.“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아빠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 남은 시간 동안 여동생을 꼭 찾고 싶으시다고 하셨는데.”“무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야?”진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고 이에 진정훈이 대답했다.“몰랐어? 아빠 3개월 전에 요독증 진단 받으셨어.”진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이 순간 사실을 들었을 때 그는 심지어 가슴에 큰 동요도 느끼지 못했다.그저 충격이 조금 컸을 뿐이었다.진정훈은 진윤이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 말했다.“형은 도대체 왜 아빠를 미워하는 거야? 유경이를 입양해서?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유인 거 알지?”진유경을 입양했어도 여동생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깊은 증오가 있는 걸까?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어머니가 그동안 진유경에게 마음을 의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진윤은 너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진정훈은 진윤이 또 말이 없자 깊은 한숨을 쉬었다.“할머니 생신에 올 거지?”“안 가.”진윤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한 마디를 뱉어냈다.진정훈은 가지 않겠다는 진윤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빠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형
아기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배준우가 아기를 데리고 나가기 전에 고은영은 이미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는 졸린 듯 눈을 뜨며 말했다.“왜? 왜 그래? 또 배고파?”“계속 자. 내가 도우미한테 데려다주고 올게.”“아니에요. 다시 나한테 줘요.”고은영이 중얼거렸다.아마도 모성애 때문인지 아기가 울면 엄마는 매우 수용적으로 변했다.아니면 오늘이 첫날이라 고은영에게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배준우는 그녀를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그냥 누워있어. 움직이지 말고.’‘이 자식이. 산후 조리하는 동안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해?’배준우는 아기를 데리고 방문을 나섰다.예정일에 가까워졌을 때 라 집사가 4명의 산후 도우미를 구했기에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산우 도우미들의 방은 바로 침실 맞은편에 있었기에 아기를 돌보기에 아주 편리했다.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고 산후 도우미는 바로 방을 나왔다.배준우는 아기를 건네주며 말했다.“앞으로 저녁에는 은영이를 깨우게 하지 마세요.”그가 서재에 갔을 때 아기는 산후 도우미가 안고 있었다.산우 도우미는 배준우의 싸늘한 말투에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방금 사모님께서 아기를 안으시겠다고 하셔서 저희가.”“앞으로 내가 없을 때 다들 은영이 옆에 계세요. 혼자 아기를 안게 하지 말고요.”그는 책에서 여자가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에는 많은 힘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아기는 갓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4킬로가 넘었다. 그래서 고은영의 배가 그렇게 컸던 것이다.“네 알겠습니다. 대표님.”도우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들은 이곳에 온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배준우가 얼마나 고은영을 신경 쓰는지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더욱 일에 소홀할 수가 없었다.배준우가 몸을 돌렸을 때 고은영이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고은영을 그대로 안고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넌 왜 나왔어? 지금은 잘 쉬어야 해.”“나 안 힘들어요.”고은영이 중얼거렸다.그녀는 아기를 낳은
고은영은 입술을 오므리며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아기가 아주 많이 보고 싶었다.아기의 생각을 하던 그녀는 호흡이 점점 평온해졌다.하지만 그녀를 안고 눈을 감고 있던 배준우는 갑자기 눈을 떴다.어둠 속에서도 배준우의 눈빛은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고은영의 목덜미를 손으로 만져봤고 예전부터 느꼈던 울퉁불퉁한 흉터가 만져졌다.처음에 이 흉터를 발견했을 때 그는 어떤 독한 사람이 그녀에게 이런 화상을 입혔는지 생각했다.배준우는 조보은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지금은 량천옥이든 조씨 가문이든 모두 이 흉터 때문에 고은영을 그들의 혈육이라고 생각했다.그럼 고은영은 도대체 량천옥의 딸인 것일까? 아니면 진윤의 여동생인 것일까?솔직히 말해서 그는 량천옥이든 진씨 가문이든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다.진윤이 본인의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에도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고은영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배준우는 배항준과 유청에게 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3일 뒤에 모두 알게 되었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란완리조트에 찾아오진 않았다.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은 배항준이었다. 그는 전화로 얘기를 꺼냈다.“아기 데리고 본가에 좀 오너라.”그리고 고민하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그 아이도 데리고 와.”여기서 말하는 그 아이는 고은영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핸드폰으로도 배준우는 배항준이 얼마나 그녀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은영이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배항준은 여전히 그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물론 배준우는 그 누구도 고은영을 받아줄 필요가 없었다. 그가 받아들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말했다.“안 가요.”“배준우.”“은영이는 지금 산후조리하고 있어요. 제가 그런 사람을 데려가길 바라세요?”“그럼 아기만 데리고 와.”“아기도 마음대로 밖에 데려갈 수 없어요.”배준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배항준은 바로 화를 냈다.‘이 자식이.’“내가 그 아이의 신분
배항준은 배준우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아 바로 량천옥에게 전화를 걸었다.량천옥이 R국에서 돌아온 뒤로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배지영이 이 소식을 배항준에게 전했을 때 그가 얼마나 크게 분노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배항준은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이 순간 전화로 모두 뿜어냈다“량천옥.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했어. 너 얌전한 아가씨인 척하면서 심지어 아이까지 낳았었어? 넌 정말 날 바보로 생각한 거야?”그는 너무 격렬하게 말했고 핸드폰 반대편에서는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잠시 뒤 량천옥이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래요. 당신은 바보죠. 이렇게 오랫동안 바보처럼 살아왔잖아요?”예전에 량천옥은 배항준이 그녀의 비밀을 아는 것이 가장 두려웠지만 지금은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사람은 절박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비로소 이 세상에 잃으면 안 되는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배항준은 원래 모든 화를 량천옥에게 퍼부으려고 했지만 지금 량천옥의 한마디에 그는 더욱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하지만 배항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량천옥이 이어서 말했다.“지금 화내면 안 돼요. 만약 너무 화를 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곧 태어날 아이는 어떻게 해요?”그녀는 예전에 배항준을 설득하던 말투로 말했지만 가장 조롱의 뜻이 섞인 말을 살짝 농담처럼 얘기했다.배항준이 입을 열었다.“량천옥 너.”“맞다. 세상에 그 아이의 신분은 어떻게 밝힐 거예요? 당신을 아이의 아빠라고 소개할 거예요? 아니면 할아버지라고 할 거예요?”“너.”“근데 아빠라고 하는 건 좀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당신은 늦둥이를 봐서 기쁠지 몰라도 아이가 앞으로 친구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아빠가 있는데.”“너 당장 그 입 닫아.”“할아버지라고 하는 것도 더 이상하겠네요.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면 어떻게 말하려고요?”배항준은 모든 화를 량천옥에게 풀려고 했지만 지금 오히려 량천옥에게 당하고 있었다.그는 한참을 참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량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람은 말이야 나이 때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추구해.”만약 옳고 그름을 따져 지금까지 자기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 시절 했던 짓들은 정말 우스꽝스러웠다.량천옥은 대답하지 않고 대신 주제를 바꿔 말했다.“난 지금 다른 사람들이 은영이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량천옥은 이미 그동안 왜 다들 그렇게 조용했는지 예측했다. 아마도 그들은 고은영이 임신한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기가 태어났으니 그들도 움직일 때가 되었다.이런 상황에서 량천옥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어떻게 하려고?”량일의 질문에 량천옥이 대답했다.“어떻게 하긴? 부숴버려야 할 인간들은 이제부터 전부 부숴버릴 거야.”방금 배항준의 전화는 오히려 량천옥을 상기시켜 주었다.배준우가 전화를 끊자 배지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배지영이 전화로 말했다.“엄마가 손주 보고 싶으시대. 오늘 오빠한테 아기 데리고 가든 하우스로 오라고 하시네.”배항준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도 전에 지금 배준우는 또다시 이런 전화를 받았다.배준우는 바로 분노하며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넌 아이를 안 낳아봤다고 해도 그 여자도 아이를 안 낳아 봤어?”“오빠 무슨 뜻이야?”배지영은 배준우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랐다.배준우가 말했다.“무슨 뜻이냐고? 그 여자한테 물어봐. 그 여자는 산후조리 할 때 아이 데리고 밖에 나갔었는지.”“왜 밖에 못 나와? 지금은 좋은 차 타고 다니잖아. 그게 집에 있는 거 하고 뭐가 다른 데? 오빠 아이는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면 안 돼.”배지영은 못마땅해하며 말했다.배준우는 배지영이 말을 들으며 유청이 돌아온 이후로 배지영이 점점 더 막무가내로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그는 더 대꾸하기도 귀찮아 바로 전화를 끊었다.배지영은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뚜뚜 하는 소리에 화를 참다가 결국 욕설을 뱉어냈다.유청은 그녀의 화가 난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네 오
입사 2년 차 고은영은 동영그룹 비서실 직원으로서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하게 일해왔다.그런데 어젯밤, 그녀는 거대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고은영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잡고 살짝 뒤집었다. 알몸 상태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남자의 넥타이를 잡고 방탕한 여자처럼 유혹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직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헉!”얕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 장면이 꿈이 아니라니! 어떻게 직속 상사를 상대로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거지?배준우, 동영그룹 대표이자 그녀의 직속 상사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너무도 큰 충격에 고은영은 자신도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재빨리 일어나서 옷부터 입었다.그리고 배준우가 깨기 전에 이 끔찍한 범죄현장에서 도망쳤다.떨리는 다리로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애써 어젯밤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그런데 화장 중이던 안지영이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어제 대표님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전화해도 안 받던데 어떻게 된 거야?”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나? 바람 좀 쐬고 좀 늦게 돌아왔는데 너 자고 있길래 조용히 들어왔어. 아침에 대표님 호출이 있어서 나갔다 이제 들어온 거야!”조금 긴장했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대답이었다.대표실 직속 비서로서 수시로 호출을 받는 일도 잦았고 지금은 출장 중이라 밤에 바람 좀 쐰다고 나갔다 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안지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장에 집중했다.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로 가서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두 사람은 식당으로 가서 대충 아침을 먹고 회의실로 바로 직행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고은영은 평소의 진지하고 성실한 직원으로 돌아왔다.가방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들리고 발신자에 찍힌 “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지금 당
고은영은 어떤 마음으로 휴게실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전시회장으로 돌아왔다.그녀를 본 안지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파?”고은영은 중학교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친구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그 모습을 본 안지영은 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그녀를 끌고 화장실로 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한테 혼났어?”안에서 문을 잠그자 고은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안지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 너 이런 모습 보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동영그룹 배준우 대표는 매사에 철저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다.아무리 예쁜 여직원이라도 일하는 시간에 울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과거에 어떤 여직원이 실연 당하고 회사에 와서 몰래 눈물을 흘린 적 있었는데 배 대표는 대차게 그 부서 전체에 징계를 내렸다.여자라서 절대 봐주는 법이 없는 배준우였다.고은영은 숨 넘어갈 듯이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영아, 나 이대로 퇴사할지도 몰라! 하지만 난 강성을 떠나기 싫어!”“아니,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안지영은 앞뒤 잘라먹은 그녀의 말에 조바심이 났다.“내가… 어젯밤에 대표님을… 추행했어!”안지영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공기마저 무거워지고 화장실 안에는 고은영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안지영은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도저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어제 대표님 방에 밤새 있었다고!”고은영이 말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안지영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러니까 네가, 대표님이랑 억지로 잠자리를 가졌다는 거야?”이게 사실이라면 커다란 재앙이었다.과거 배준우 한번 꼬셔보겠다고 그의 방에 숨어들었던 여자들은 그 결과가 전부 좋지 못했다.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