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모두 강성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평소에 서로가 관련되는 일은 아예 없었다. 이 통화는 아마 처음으로 어르신과 접선한 것일거다. 배준우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피운 뒤 말했다."너 나랑 가보자"나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고은영은 이미 설림에 도착했고, 진 씨 아주머니는 집사가 차를 마시러 데려갔다.오늘 햇빛이 아주 좋았다. 대나무 숲을 뚫고 돌 탁자의 바둑판 위에 뿌려져 따뜻했다.고은영은 손에 사포를 들고 공작 부조 공예를 다듬고 있었다.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숨이 가빠질 정도로 조여왔다…….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1인 대국 영감 때문에 분위기는 너무 삭막했다.……!그녀가 노인에 대해 아는 바로는, 이렇게 조용할 때 일수록 큰일이 일어난 거이다. 예전에 그녀가 매번 부조 공예를 하면서 변형할 때마다, 영감은 바로 지금처럼 평온했고, 그리고는……."탁!"바둑알이 바둑판 위에 세게 내동댕이쳐졌다.고은영은 깜짝 놀라 몸이 얼어붙었고, 손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빠각~!’ 소리가 들리더니, 공작 머리의 볏 한쪽이 닳아 떨어졌다!고은영은 차가운 숨을 들이켰고, 머릿속에는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망했어, 영감은 연마하는 순서가 틀리는 걸 제일 싫어하시는데!’그녀는 호되게 혼낼 줄 알았다!하지만 영감님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차를 들고는 급히 한 모금 마셨다.고은영이 무의식적으로 손에 사포를 움켜쥐고 두 눈을 꼭 감고 빌었다. "영감님 제가 잘못했어요!"배준우를 화나게 한 경험으로 볼 때, 그녀는 역시 서둘러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알맞았다.영감님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뭘 잘못했어?"‘잘못..? 내가 잘못한거..?’사실은 모두 배준우의 잘못이다. 자기가 분명히 비밀 결혼이라 말했으면서, 고은영 몰래 세상에 퍼뜨리고, 지금 온 세상이 다 알게 되었다. 은영은 단지 그 속에 연루되었다. 고은영이 입술을 떨었다."저, 저, 저는 자신을 이렇게 헛되
아무리 봐도 아무 배경도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강성에서 내로라하는 정 어르신과 관계가 있는 거지?생각하는 사이, 집사가 이미 그들 앞에 와서 공손하게 말했다."배 도련님, 어르신이 들어라고 하십니다."배준우는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고은영의 머리는 이미 백지상태 였고, 그녀는 그냥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싶었다.선생님이 그녀를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배준우까지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영감님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가서 비둘기 삶아, 육질은 좀 흐물흐물하게."“네, 네."고은영은 얼른 일어나서 손에 들고 있던 사포를 던져버리고, 배준우의 어두운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뛰어갔다.두 걸음 뛰자, 그녀는 발등에 통증이 느껴져, 바로 냉기를 들이켰다!영감님의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계집애가 조심성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다쳤으면 천천히 가!”"네, 알겠어요!"고은영은 억울하게 대답했다.그리고 가능한 한 빠른 걸음으로 대나무 숲을 빠져나왔다.배준우는 그녀가 감히 마주할 수 없어 도망치는 모습을 보니, 눈동자가 조금 더 어두워졌다.‘돌아가서 다시 결판을 낼 거야…….’고은영은 절뚝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대나무 숲을 빠져나왔고, 심장이 아직도 쿵쾅쿵쾅 뛰었다.대나무 숲 뒤, 숨어 조심스럽게 멀지 않은 곳의 돌 탁자 밑을 보았다.배준우는 이미 그녀가 방금 앉았던 돌의자에 앉아 있었다.고은영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준수하고 매서운 모습에서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영감님은 그를 보며 눈을 부릅뜨고 성을 냈다!그녀는, 자신이 오늘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다!‘돌아가면 무조건 직장을 잃게 될 거야…….’"작은 아가씨, 작은 아가씨?"어느새 그녀 뒤에 서 있었는지, 고은영은 집사가 여러 번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강 아저씨 저를 부르셨나요?""어르신이 아가씨에게 비둘기를 삶으라고 하십니다.""난 할 줄 모르는데!"이때 고은영은 방금 영감님이
고은영은 온몸이 굳은 채 배준우의 곁에 앉아, 마음속으로 영감님이 자신을 용서해 주기를 기도했다.아까 주방에서 불빛 때문인지 몰랐는데, 왜 지금 보니까 털이 이렇게 많아?배준우는 앞의 그릇에 담긴 국물을 봤다. 국이라고 하지만 만약 파만 없었다면, 그냥 끓인 물인 줄 알았을 것이다.그리고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한 비둘기 다리는 더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국을 한 숟가락을 떠서 맛을 보았다!"어때?"정 영감님은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배준우는 눈썹을 찌푸리고, 곁에 앉아 억울해하는 마누라를 보았다.고은영이 지금 머리를 거의 가슴까지 박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인의 요리 솜씨를 알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정 영감이 입을 열었다.“맛없지?"배 도련님은 이 계집애에 대해 잘 모르나 봐. 얘는 너와 어울리지 않아!"고은영."......"원래 목적이 이거였어?주변의 한기를 느끼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영감님을 바라보았다.오후 동안 침묵의 대국, 지금의 화기…… 여전히 꺼지지 않은 듯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배준우는 고은영 몸에서 눈을 돌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은영이는 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얘가 못하는 것은 밥만이 아니야!"영감님의 말투가 좀 더 날카로워졌다.고은영은 숨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불쌍하게 영감님을 한 번 쳐다보고, 눈빛으로 그만하라고 빌었다.그런데 고은영이 잘 못하는 것을 말하자, 배준우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확실히 모든 것을 잘 못하긴 하죠."고은영이 이 말을 듣자, 전에 배준우의 곁에서 일어났던 상황들이 마치 번개처럼 뇌리에 계속 떠올랐다. 배준우가 그녀에 대한 평가가 안 좋은 것은 뭐라 할 게 아니다.오히려 그녀가 긴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잘할 수 없었다."그래서 너희는 어울리지 않다는거야!"영감님이 다시 강조했다.배준우."은영이가 원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고은영은 숨이 멎으며, 놀라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영감님의 표정
자리에 다시 앉은 정 씨 어르신의 얼굴에는 방금 전의 엄숙함이 사라졌다. "자네 은영이 요리 실력은 본 적 있는가?"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정 씨 어르신이 다시 말했다."은영이가 덤벙거리는 아이라 아무것도 잘 못해서 나는 자네가 이해 못 해 줄 줄 알았는데.""선생님~!"정설호의 말을 들은 고은영이 얼른 그의 말을 막았다.덤벙거린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자신이 다른 이에게 걱정만 끼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정 씨 어르신은 배준우에게 앉으라고 한 뒤, 아주머니에게 밥을 준비하라고 했다."너희 결혼 배항준 그놈이 허락 안 할 것 같은데?"배항준 그놈?강성에서 배항준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정설호밖에 없었다.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배준우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정설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배준우를 보며 배 씨 집안의 내부 갈등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자네가 정말 굳이 은영이랑 살겠다고 한다면, 그 놈한테서 잘 보호해 줘야 해.""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그래, 그럼 우리 은영이를 자네한테 주겠네. 하지만 자네가 은영이한테 잘 대해주지 않는다면, 나도 은영이 할머니 부탁을 저버릴 순 있다는 거 알아두게."정설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고은영의 할머니는 정설호의 절친이었기에 어르신도 고은영을 자신의 손주로 생각하며 정성스레 키우셨다. 고은영은 할머니 생각을 하니 눈물이 고였다. 배준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설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배준우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두 사람은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설림에서 나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떠나기 전, 어르신이 배준우를 보며 경고했다. "은영이가 비록 내 손주는 아니지만, 내가 키운 손녀나 마찬가지니 누구도 괴롭혀서는 안 돼!"정설호라는 든든한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고은영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배준우의 뒤를 따라갔다.다리가 제법 긴 그녀였지만 고은영은 다친 덕분에 걷는 것이 아직은 불편했다.배준우는 절뚝거리는 고은영을
고은영이 배준우의 다리 위에 앉은 순간, 숨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배, 배 대표님…""너 원래 이렇게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어?"빠르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는 고은영의 말을 들은 배준우가 물었다."네, 그럼요. 저 원래 말 잘 들어요."고은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 대답을 들은 배준우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만졌다."방금 어르신이 뭐라고 했는지 다 들었지?"배준우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어르신이 한 말이 너무 많아 고은영은 순간 배준우가 무슨 말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어르신께서 너를 나한테 주겠다고 했잖아. 그러니 앞으로 네 보호자는 나야.""저 이제 보호자.. 필요 없..는데요."고은영은 배준우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기에 버벅거리며 말했다."그 머리를 하고도 보호자가 필요 없다고?"고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 머리라니, 자신이 정말 그렇게 멍청하다는 말인가?하지만 웃을 듯 말 듯 한 배준우의 눈을 마주하니 고은영은 말대꾸를 하지 못했다."그러니까 앞으로 내 말 잘 들어. 뭐가 됐든 나한테 숨기지 말고, 알겠지? 이제 내가 네 보호자니까."배준우가 보호자라는 말을 강조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고은영은 부정하지도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지도 않았다.그녀는 왜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가짜 결혼을 약속했었던 두 사람이 대체 왜. 앞에서 운전하던 나태웅은 뒷좌석의 두 사람의 말에 집중하느라 몇 번이나 신호등도 못 보고 직진할 뻔했다.왜 예전에는 배준우가 이렇게 여자를 홀릴 줄 아는 줄 몰랐는지.고은영이 입술을 물고 강한 척하는 모습을 보던 배준우가 웃었다."그 집 열쇠는 받은 거야?"배준우가 집 얘기를 꺼내자 고은영이 몸을 떨었다."아, 네!""그 집 계속 가지고 싶어?""원래 제 집이에요!"정 씨 어르신은 고은영 할머니의 부탁을 받아 고은영을 3년이나 돌봐줬기에 그녀는 더 이상 그를 걱정시키
배준우는 그런 고은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진 씨 아주머니께서는 전화를 받고 고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님, 오셨어요."아주머니께서 공경하게 고은영에게 인사를 건넸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배준우의 시선에서 벗어났다."어디로 갈까요?"나태웅이 배준우에게 물었다.배준우는 고은영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태웅은 그 눈빛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가 웃음을 터뜨렸다."고 비서는 겁이 많아서 이런 거 감당못할 텐데요."고은영이 겁이 얼마나 많은지는 동영 그룹 전체가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배준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겁이 많다고? 전혀 안 그런 것 같은데."나태웅은 의아하게 배준우를 바라보다 그가 왜 갑자기 결혼 소식을 선포했는지 기억이 났다.어제 량천옥이 하원으로 와 고은영을 괴롭히려고 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고은영이 당하기는커녕 량천옥만 잔뜩 화가 나서 별장에서 쫓겨나왔다고 들었다.나태웅은 량천옥 같은 사람을 고은영이 어떻게 처리했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동영상도 보신 건가요?"나태웅이 다시 배준우에게 물었다.동영상 얘기가 나오자 배준우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나태웅은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그가 동영상을 이미 확인했음을 알아차렸다."설마 정말 고 비서가 그런 겁니까? 고 비서한테 그런 담량이 있다고요?"두 사람은 2시간 동안 동영상을 봤지만 고은영이 배준우를 데리고 룸으로 들어가는 모습 외에는 복도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안지영은 뭐래?"배준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돌아갔다고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몇 시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때 시계를 보지 않았지만 꽤 늦은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하!"나태웅의 말을 들은 배준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꽤 늦은 시간? "정말 고 비서라면 일이 조금은 수월해지겠는데요. 그 여자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들은 이미 원하던 결과를 얻은 거잖아요."어느덧 시간도 한 달 반이나 지나갔다.
배준우는 자기 세상에 외부인이 있는 것을 싫어했기에 이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고은영은 화장실에서 긴장감에 잘못 깨물어 피를 봐버린 입술을 살피고 있었다. 손이 닿자마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해져왔지만, 정작 당시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많이 아파?"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배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은영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당황해 손을 떨었고 면봉이 상처 위를 스쳤다. 따끔거리는 고통에 그녀가 반사적으로 면봉을 놓쳤다.그리곤 고개를 돌려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배준우를 바라봤다.배준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긴 다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고은영에게 다가갔다.고은영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지만, 그녀의 등 뒤에는 바로 세면대가 있어 그녀는 피할 곳이 없었다.고은영은 어쩔 수 없이 두 손으로 세면대 부근을 꽉 잡았다.배준우는 이미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의 거리가 그녀는 그의 뜨거운 온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덥고 습한 숨이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고 고은영은 더욱 긴장했다.배준우는 고은영의 턱을 잡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두 눈이 마주친 순간, 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그 눈을 피하려고 했다."배, 배 대표님…"조금은 거친 손가락이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말해, 아파, 안 아파?""안 아파요."고은영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아프지 않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그녀는 사실 ㅅ무척 아팠다.다음 순간, 배준우가 힘을 줘 고은영의 입술을 문질렀고 그녀가 신음을 내뱉었다."아, 아파요…"억지로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하는 고은영을 보며 배준우가 다시 물었다."다음에도 거짓말할 거야?"그 말을 듣는 순간, 고은영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CCTV 영상 때문에 배준우가 무슨 말을 하든 그녀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이런 느낌은 정말이지 너무 괴로웠다.배준우가 다시 고개를 숙여 상처 난 고은영의 발등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반응하기
고은영은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짧은 그 몇 마디 말로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된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배준우의 표정이 조금 복잡해졌다.배준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은영이 긴장감에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배 대표님은 배고픈적 적 없으시죠?"면봉을 들고 있던 배준우의 손이 멈칫했다.그리고 그의 눈 밑으로 차가움이 스쳐 지나갔다."없어."차가워진 분위기에 고은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약을 바꾸고 나니 고은영의 발등도 훨씬 좋아졌다."오늘은 샤워하지 마."배준우가 약상자를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그래도 세수는 해야죠."샤워를 하지 않는 건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뜨거운 물이 데인 상처에 닿는 그 느낌을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결벽증이야?""심하지는 않아요."결벽증을 가진 아이가 물이 그렇게 모자라는 곳에서 자랐으니 참 힘들었겠다고 배준우는 다시 생각했다.화장실로 들어간 배준우는 머지않아 뜨거운 수건 하나를 들고나와 고은영에게 건네줬다."오늘은 이걸로 대충 씻어."고은영은 순간 멍청해져 배준우가 든 수건도 가져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내가 대신 닦아줘?""아, 아닙니다. 저 혼자 할 수 있어요."고은영이 얼른 수건을 가져오며 말했다.얼굴을 가린 손바닥으로 뜨거워진 볼의 온도가 느껴졌다.그녀는 이는 자신을 탓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항상 차갑기만 한 배준우 대표에게도 다정한 모습이 있다니.얼굴을 가린 수건이 차가워질 때쯤, 배준우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언제까지 씻을 예정이야?""아, 이제 다 됐어요."그녀는 배준우가 방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감사합니다, 대표님."고은영이 난감한 얼굴로 수건을 배준우에게 건네줬다.하지만 대표님이라는 말을 들은 배준우의 표정이 다시 차가워졌다.순간 내려앉은 분위기에 고은영은 다시 반성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배준우가 화장실로 들어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