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곧 바로 진정되었다.나태웅은 진짜로 그녀가 자신을 팔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수법은 더 이상 그녀에게 먹히지 않았다.“사적인 시간을 제가 어떻게 보내든 나 대표님께서 관여하실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안지영!” 나태웅이 이를 가는 소리가 전화에서 그대로 전달 되었다. “나 대표님께서 주말에 휴식을 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직원도 똑같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다가 직원들이 전부 퇴사할 수도 있어요..!”어쩌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장시간 일만 하면 그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대는데, 저도 화낼 줄 압니다. 아시겠어요?‘ “어디 있는지 어서 얘기하는게 좋을 거야!”그의 목소리에서 점점 위압감이 느껴졌다.하지만 안지영은 굴복하지 않았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회사를 안 가도 되는 날이니 제가 어디 있든 상관하실 바가 아닙니다.”“하! 이미 강을 건넜으니 다리를 부숴 버리겠다, 이건가?”“……” 부숴 버리면 또 어떠한가? 치명적인 다리를 남겨둘 수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곧이어 전화에서 들려오는 위압적인 목소리에 안지영은 감히 더 이상 뭐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오늘 중요한 고객이 방문한다는 것을 잊었어?”“알아요, 황 부장님께서 접대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황 부장님은 다이아보다 더 믿음이 갈 것이다. 한편 나태웅은, 그녀에게 야근을 많이 시켰지만 결국 그녀가 장선명과 만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여자로군!‘“좋아, 안지영 네 마음대로 해!” 나태웅은 화가 나서 바로 안지영의 전화를 끊고, 황민호에게 전화 걸었다.안지영은 영문도 모른 채 나태웅에게 욕만 먹은 셈이였다.마음대로 하라고?당연히 내 마음대로 할거야! 장선명은 안지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웅인가요?”이 질문을 하는 장선명의 말투는 어딘가 이상했다.안지영은 지금 화가 난 상태이기에 그의 말뜻을 눈치채지 못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주
다년간 그는 분명 돈 때문에 그에게 접근했지만, 겉으론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여자들을 많이 봐 왔었다.하지만 사실 그녀들이 돈 때문에 접근한 것이 확연하게 티가 났고, 그저 말로만 아니라고 했을 뿐이었다.……안지영은 곧장 안씨 가문으로 돌아갔다.동영그룹에서 퇴사한 후, 그녀는 집에 자주 가게 되었다.안지섭 역시 오전에 나갔고, 안지영이 돌아올 때 그도 마침 집에 도착했다.안지영을 보자 그는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집이 있는 줄은 알긴 아니?”안지영은 난감한 듯 머리를 만졌다: “저기, 그래도 집인데 와야 하지 않겠어요?”차에서 장선명이 저녁에 웨딩드레스 맞추러 가자고 했었다!곧 그들의 약혼식이 다가오고 있었다.안지영의 모습을 본 안지섭은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제가 꼭 와야만 해서요!”안지섭의 안색은 더욱 안 좋아졌다.집에 들어올 때, 집사는 이미 차를 준비해 두었다.안지섭은 찻잔을 들고 차 한 모금 마셨고, 그제야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 풀렸다.안지영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물었다: “아빠 어떤 예물을 받고 싶어요?”찻잔을 들고 있던 안지섭의 손은 순간 굳었다!그는 화를 겨우 참으면서 안지영을 보았다: “너 진짜로 그놈이랑 결혼 할 거야?”“아빠, 그놈이 뭐예요.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장선명이에요!”“너 장선명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어?”“알아요!” 안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머리는 시원시원하게 끄덕였지만, 안지섭은 그녀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딸의 이러한 성격을 생각하니, 안지섭은 더욱 머리가 아팠다.안지섭이 아무 말도 없자, 안지영은 또 물었다: “도대체 어떤 예물을 원하시냐고요? 장선명은 강성의 풍속을 잘 모르니 우리더러 원하는 예물을 적어서 달라고 했어요.”“너……”안지섭은 가슴이 답답했다!그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뜬다면, 그것은 아마 딸 때문에 화가 나서 세상을 뜬 것이 분명하다.그는 똑똑하지 못한 안지영을 안타깝게 보면서 얘기했다: “너 생각이
안지영이 잘못을 인정하자, 안지섭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럼, 어디 한번 얘기해 봐, 뭘 아는지?”뭘 알다니? 안지영: “……”그녀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듯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의 뜻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말라는 얘기시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단지 약혼식을 올리는 것이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이 말에 안지섭은 더 이상 낼 화도 없었다.그는 한 마디 얘기도 하지 못하고 그를 째려보았다.그의 눈빛을 본 안지영은 또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약혼식도 하면 안 되요?”만약 약혼식도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아예 장선명에게 약혼식도 취소하자고 해야 하는가?진짜로 그렇게 한다면, 단물만 빼 먹고 나 몰라라 하는 격이 아닌가?그날 밤 장선명이 그녀의 앞에서 배준우에게 전화한 것이 생각났고, 그는 실제로 그녀에게 도움을 줬었다.휴……!역시 사람은 신세 지면 안 되는 거였다.이번 신세는 그야말로……!안지영은 머리를 저었다: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제가 오늘 장씨 가문에 갔었는데, 그 댁 식구들 모두 저를 아주 예뻐해 주셨어요!”“너 그 집에도 갔었어!” 안지섭은 목소리를 높였다.이번엔 화나서 기절할뻔했다.이것 참 무뇌아를 지금까지 키우다니, 생각이 없는 건 제 어미와 똑같네.이런 애를, 도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안지섭은 지금 안지영을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넌 정말,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안지섭은 화가 나서 거실에서 몇 바퀴 맴돌았다.안지영: “어쨌든 지금은 약혼을 취소할 수 없어요!”약혼식을 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몹시 복잡해질 것이다.안지섭은 이마를 탁 짚으면 물었다: “약혼식이 언제인데?”“3일 후!” 전에 약혼식 날짜를 정할 때 일주일 뒤로 했었고, 그야말로 시간이 촉박했다.안지섭: “안지영, 난 너 같은 딸을 둔 적 없어!”무뇌아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렇다면 기사는 사실이고, 그녀는 진짜로 3일
안지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지영아.”“내려와.”“알았어, 지금 내려갈게.” 고은영은 뜨개질하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안지영이 천락그룹에 간 후, 두 사람은 자주 만나지 못했다.안지영이 간만에 그녀를 찾아왔고, 그녀 역시 안지영을 보고 싶었다.휴게실에서 나오니, 배준우는 보이지 않았다!아마 또 회의에 들어갔을 것이다.최근에 동영그룹에서 해외에 지사를 세웠고, 이와 관련하여 준비할 일들이 많다고 들었다.사무실에서 나오자,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던 정유비가 보였고, 그녀는 진청아와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고은지와 고은영은 무슨 사이이죠?” 정유비는 슬쩍 떠보았다.정유비가 도대체 고은지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진청아가 고은지에 관하여 조사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고은지와 고은영이 성씨가 같기에 분명 관계가 있을 거로 짐작했다.진청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진청아가 입을 열기 전에 정유비는 이어서 얘기했다: “당신이 고은지에 관하여 조사하는 것을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누가 알아요!”“정유비!”고은영은 얘기하면서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최근 비서실에서 정유비가 보이지 않기에, 그녀가 해고당한 줄 알았다.하지만 유니폼 차림을 한 그녀를 보니, 아직 해고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유니폼을 보니, 상무 부서에서 근무하는 모양이다.하지만 그녀가 고은지의 일은 왜 캐묻는 것이지?현재 고은지의 일이라면 유난히 민감했고, 배준우에게 부탁할 때도 조용히 알아봐 달라고 고은영은 부탁했었다.하지만 정유비가 지금 이 일을 입에 담고 있었고, 진청아에게 이와 관련하여 캐묻고 있다니.정유비의 됨됨이를 생각하니, 고은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정유비 앞에 다가간 그녀는 썩 좋지 않은 말투로 얘기했다: “지금은 근무 시간인데, 당신은 왜 여기서 수다를 떨고 있는 거죠?”그녀의 엄숙한 표정에 정유비는 잠시 멈칫했다.그리고 그녀는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시골에서 온 주제에, 진짜로 사모님이라
그렇지 않아도 화났던 그녀는 이미지고 뭐고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천하다고? 넌 이미월을 절친이라고 하면서 한편으로 절친의 남자에게 불순한 마음을 먹지 않았어? 우리 두 사람 누가 더 천한 것 같아? !”고은영은 홧김에 말을 가리지 않고 얘기했다.예전에 정유비는 배준우 사무실 업무 담당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불순한 마음으로 계속 그에게 접근했다.그때 고은영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몰랐지만, 지금 많은 일을 겪고 나니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정유비는 자신의 속셈을 들키자,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녀는 이를 갈면서 고은영을 잡으려고 했다: “너, 천한 년, 당장 너의 그 입을 찢어 놓겠어!”“내 입은 됐고, 너의 그 시커멓게 변한 속을 한번 찢어서 봐, 양심이 아직 남아 있는지.”“……”“절친도 서슴없이 해치는 너 같은 년이 더 역겹고, 악독한 거야!”전에 이미월이 여기서 소란을 피울 때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겠지만, 사실은 정유비가 다 도와준 덕분이 아니겠는가?정유비가 이미월을 부추겨서 소란을 피우게 한 건, 그녀를 쫓으려는 의도였다.결국 배준우가 이미월을 쫓아냈고, 이로 인해 이미월은 많이 화냈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목적을 이루지 않았던가?“너, 네가 더 역겨워. 네 가족도, 네가 자란 곳도 다 역겨워!”정유비는 욕을 먹으니, 이성을 잃었다. 또한 자신이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녀한테 속셈을 들키니 더욱 화가 났다.량천옥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올 때, 정유비가 고은영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듣게 되었고,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고은영: “그래, 내가 역겨워도 너보다는 나아! 배준우는 눈이 멀지 않았을뿐더러, 눈이 멀었다고 해도 절대 너 같은 애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아.”두 사람은 서로 한마디씩 욕설을 퍼부었다.정유비는 속셈이 들키자, 화가 나서 자신을 잡고 있던 두 비서의 손을 뿌리치고 고은영을 잡으려고 했다.“천한 년, 당장 그 입 닥쳐!” 그녀는 손을 들어 고은영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진청아는 그것을 눈치
동영그룹은 배준우의 것이고, 모든 의사 결정은 그가 혼자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순간, 량천옥이 사람을 해고하려고 하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진청아는 난감했다.물론, 오늘 정유비가 자칫 고은영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배 대표님께 말씀드리면, 그 역시 해고할 것이 분명하다.량천옥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고은영을 보았고, 그녀의 창백해진 작은 얼굴을 보자 그녀는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어서 짐을 싸고 나가!” 정유비가 움직이지 않자, 량천옥의 말투는 더욱 차가웠다.그렇지 않아도 멍하니 있던 정유비는, 량천옥의 얘기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특히 짐을 싸고 나가라는 얘기에 그녀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절대로 더 이상 동영그룹에 남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화가 나지만 감히 뭐라고 얘기하지 못했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갈 수밖에 없었다.정유비가 가는 것을 본 진청아의 안색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고, 그녀는 공손하게 량천옥을 보면서 얘기했다: “사모님께서 대표님 뵈러 오신 겁니까?”“그래요.”“배 대표님께서 지금 미팅 중이시라, 응접실에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청아가 얘기했다.배준우가 자리에 없기에, 주인 없는 방에 그녀를 들어가게 할 수는 없었다.지금 그녀의 앞에 서 있는 분은 배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지만, 배준우의 생모가 아닌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만약 예전이었으면, 량천옥 더러 응접실에 가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을 그녀지만,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흔쾌히 응접실에 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은영을 한번 보았고, 뭐라고 얘기하려고 했지만……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영은 아직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량천옥이 정유비를 해고한 사실을 그녀는 믿기지 않았고, 더더욱 이번엔 그녀에게 트집을 잡지 않았다.이것 참, 이상한 일이네……!예전에 량천옥은 그녀를 볼 때마다 늘 괴롭혔고, 그녀를 갈기갈기 찢을 기세였다.특히 그 사
목 말랐던 고은영은 레모네이드를 한 잔 크게 마신 뒤 방금 정유비와 있었던 일을 안지영에게 그대로 전달했다.정유비가 고은영을 때리려는 순간 량천옥이 나서서 막았다는 사실을 들은 안지영은 크다큰 충격을 받았다."량천옥이 너를 구하려고 정유비를 막았다고? 그리고 해고까지 했다고?"대체 왜 고은영을 도와주려는거지? 고은영이랑 량천옥은 절대 그럴 사이가 아닐텐데 말이다. 천의가 곧 배준우의 손에 들어오게 된 이상, 량천옥이 그녀를 가만 둘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 왜 직접 나서서 도와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은영도 믿기진 않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응. 직접 청아한테 시켜서 인사부더러 정유비를 해고시키라고 명령을 내린걸 내가 직접 목격했어!"정유비가 여태 어떻게 줄곧 배씨 가문에 남아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엔 단단히 량천옥을 화나게 하였기에, 아마 무사히 남아있기는 어려울 듯 했다.안지영은 크게 놀랐다. "정말 믿겨지지가 않아. 왜 너를 도와주려는거야? 설마 배준우를 이젠 받아들이기라도 한거야? 너도 마찬가지고?""..."우릴 받아줬다고?아니, 그럴리는 없어!"하지만 량천옥이 여태 배준우를 죽도록 원망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하겠어?"그러자 안지영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고은영을 바라보았다."왜 그렇게 쳐다봐?""배준우라니! 대표님이라고 불러야지!""..."이 와중에도 이런걸 따져야 돼?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해? 량천옥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잖아.""솔직하게 말해. 너 대표님이랑 도대체 어떤 사이야?"그러자 고은영의 머릿속에는 순간 그동안 배준우와의 모든 과거들이 스쳐 지나갔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심하게 빨개졌다.홍당무가 된 고은영을 본 안지영은 다가가 살며시 물었다."설마 둘이 사귀기라도 한거야?""그게 뭔 소리야?""같이 살고, 같이 자고 그러냐고!"그러자 고은영의 얼굴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사실 그녀 자신도 배준우와의 관계에 대해서 아직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법적으로 증명된 부부 사이
"솔직히 나도 아직 우리 관계에 대해서 잘은 모르겠어!"그러자 안지영은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다. 당사자조차도 모르면 어떡해?한편으론 고은영이 걱정되기도 했다."그럼 네가 제대로 물어봤어야지. 정략 결혼으로 지낼건지, 아니면 진짜 부부 사이로 살건지. 만약 여전히 정략 결혼한 사이로 지내고 싶다면 너도 조심해야 하는거 아니야? 근데 그걸 내가 어떻게 직접적으로 물어봐?""못 물어볼게 뭐가 있어? 아직까지 계약이 유효한 이상, 배준우는 언제든지 널 버릴수도 있어. 그러니까 네가 반드시 똑똑히 알아내야 해. 굳이 계속 이렇게 애매한 사이로 지낼 필요는 없잖아.”안지영의 설득에 넘어간 고은영은 조만간 틈 타 배준우에게 똑똑히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말 그대로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됐어. 이 얘기는 그만 해. 그나저나 량천옥은 대체 왜 나를 도와준걸까?”심지어 무려 정유비를 해고까지 하다니!"천의가 곧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어서 계속 배씨 가문에 남으려고 그런거 아닐까?”“......”"그러니까 이 기회에 배준우랑 잘 지내보는건 어때?" 안지영이 제안을 해주었고, 당장은 이 방법 말고는 더 좋은 대책이 없는 것 같았다."그게 말이 돼?""말이 안 될게 대체 뭐가 있어? 그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너도 잘 알잖아. 배 회장이랑 량천옥이 나이 차이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알고도 결혼까지 골인한 여자야.”“......”"량천옥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내는 여자야. 이제 천의는 무너질테고, 배씨 가문에서 나오기까지 하면 거지랑 다를게 없잖아.”이미 배씨 가문의 생활이 익숙해진 량천옥은 여전히 자신이 이 집안의 유일한 사모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배씨 가문을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게 뻔했다. 이 말을 들은 고은영은 그제서야 량천옥이 자신을 돕는 이유를 깨달았다. "됐어. 아무튼 그 여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넌 언제나 조심해서 다녀."또 언제 다시 미
“내가 대신 가서 혼내줄게. 너는 여자니까 이미지 신경 써야지. 착하지?”“싫어요!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바로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서 그녀 앞에 내밀었다.안지영은 핸드폰 속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와 마치 미친 여자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녀가 조용해지자 현장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그 남자 때문에 이런 모습 하려고?”안지영은 말문이 막혔다.‘젠장, 언제 이런 모습이 된 거지?’특히나 더 참을 수 없는 건, 나태웅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사실이었다.‘그놈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거지?’“집에 가자. 착하지?”장선명은 부드럽게 안지영을 달랬다.옆에 있던 구이준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어떤 사람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했다.그가 소유한 유흥 장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미녀들이 넘쳐났다.여린 타입, 매혹적인 타입, 요염한 타입. 남자들이 환장하는 스타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또한 유흥가에 들어오는 여자 중 장선명을 유혹하여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많았다.당시 구이준과 안열은 장선명 주위를 얼씬거리는 여자들을 수없이 많이 처리했지만 장선명이 여자들에게 시선을 두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구이준과 안열은 당시 장선명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었다.예쁜 여자들이 들끓는 곳에서 어떠한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타입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구이준은 안지영을 유심히 보며 생각했다.‘다른 여자들이랑 비교해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도련님께서 왜 이 여자를 좋아하시는 거지? 화끈한 성격? 아니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호쾌한 모습?’머리를 정리하던 안지영은 헝클어진 머리로 인해 손가락이 끼여버렸고 그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그로 인해 나태웅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
고은영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게를 나왔다.배준우가 간 줄 알았던 그녀는 가게에서 나와 배준우의 차가 원래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통화를 하고 있던 배준우는 그녀를 보자마자 통화를 마무리했다.“그래. 그렇게 처리하고 끊어.”그는 곧바로 고은영의 부풀어 오른 볼을 살짝 꼬집으며 물었다.“화났어?”고은영이 말하지 않아도 배준우는 알 수 있었다.진성택이 분명히 또 진유경과 관련된 이야기로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이다.“계속 곧 죽을 거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어요.”“도덕적 협박이구나?”배준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진성택이 진유경을 편애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양녀를 선택하고 친딸을 외면한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 세심하지 않은 배준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은영에 대한 연민이 짙어졌다.고은영은 더 이상 진성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매번 만나면 진유경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화내지 마. 어차피 너한테 중요한 사람도 아니잖아.”“그래도 엄마가 너무 불쌍해요.”그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네 명이 자식이나 낳았으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엄마가 나한테 남긴 마지막 사랑마저도 첫사랑의 딸에게 나누려고 하다니...’“저녁에 네 큰오빠네에 가서 밥 먹을까?”“오빠한테 전화 왔었어요?”말 돌리는 데 성공한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응. 아까 너 봤다면서 저녁에 밥 먹자고 하더라고.”“좋아요!”고은영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정훈과 진윤과 가까워진 후, 고은영은 두 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진성택은 정말 무정했다.아니, 애정은 있었지만 그 대상이 아내와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언제 태현 오빠한테 물어볼 거예요?”“조금 있다 시간 내서 만나러 가려고.”“좋아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은지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