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무슨 국수야?”“야채 국수예요.”고은영이 진지하게 말했다.배준우도 야채 국수인 걸 눈치챘다. 면과 녹색 잎 야채가 모두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름도 없는 것 같았다. 예상이 맞다면 물국수인 것 같은데?배준우는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뒤적거렸으나, 역시 다진 고기조차 없는 간단한 물국수였다.한 입 맛본 배준우는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고은영은 그의 표정을 보고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맛, 맛이 없나요?”“소금 말고는 아무맛도 안 나네. ”배준우는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아침에 그녀는 여러 가지 면을 만들 줄 안다고 해서 한 번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배준우는 앞으로 고은영의 일에 대해 너무 궁금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저희는 예전에 모두 이렇게 만들었어요!”그녀가 밥을 짓는 것을 접하는 유일한 시간, 즉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였다. 할머니는 이렇게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줄곧 말하셨다. 그래서 면을 만들 때마다 소금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그녀는 요 몇 년 동안 모두 이렇게 먹어와서 이 맛에 익숙해졌지만, 배준우는 처음이었다.이 맛은 그에게 있어서 보통 맛없는 것이 아니었다.“휴…….”결국 한숨을 쉬며 일어나 국수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고은영은 따라가야 할지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그녀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았지만, 어떻게 해야 맞을지 몰랐다.곧 주방에서 '타닥타닥’ 기름이 튀는 소리가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가 퍼졌다.배준우가 다시 나왔을 때, 그 하얀 국수에 토마토 계란 볶음이 추가되었었고, 다진 고기도 볶았져 있었다. 고은영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배준우가 낮게 말했다.“네 건 주방에 있어.”그녀 것도 있다고?그녀는 아까 자신이 먹을 것을 만들지 않았다. 오늘 아침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 대표와 함께 식사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언니가 싸준 음
이전에 고은영은 점심에 안지영과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두 사람을 보지 못했다.다른 부서는 별거 아니지만, 프런트나 비서실 모두 좀 쉬쉬했고, 특히 비서실은 더 그랬다.지금 메인 비서의 자리를 다들 비집어 들어오려고 하는 상황에, 고은영이 오늘 점심에 배 대표님 사무실에서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이게 무슨 뜻이지?암묵적 관행을 논다고?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자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동영 전체, 심지어 해성까지도 배준우가 미색에 매혹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지금 전체 비서실에서 고은영이 어떻게 죽을지 보고 있었다…….이 순간 휴게실에서 고은영이 밥을 먹고 졸린 표정을 짓자, 배준우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빨리 설거지해!”“알, 알았어요!"고은영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설거지는 마땅히 해야 한다. 이것은 그녀가 아무런 실수 없이 할 수 있었다.배준우는 점심에 자는 습관 있었다.고은영이 작은 주방을 정리하고 나오자 배준우가 이미 홈웨어로 갈아입고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두 눈동자를 꼭 감고 있어 평상시 일 할 때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조용한 가운데 특유의 온순함이 묻어났다.고은영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담요를 집어 들고 그에게 덮어주었다.그러나 일어나면서 긴 머리카락이 어디에 걸렸는지 모르게 당겨지자 그녀는 '스읍…….'하고 차가운 숨을 한 번 들이마시더니, 발 밑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배준우의 몸 위로 넘어졌다.고은영. “…….”머리가 '윙'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망했다!'라는 세 글자만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번에 정말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몸 아래 있는 남자는 숨이 조금 답답했다고 느끼자 움찔거렸다. 고은영은 그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눈을 감고 얼른 배준우의 몸 위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머리카락은 여전히 걸려 있어, 그녀는 아픈 느낌에 다시 배준우의 품속으로 넘어졌다.고은영의 세계는 이미 완전히 공백과 혼란으로 가득 찼고, 산소 부족으로 인해 숨이 막
“스읍”하고 고은영은 찬 공기를 들이마셨고, 머리카락도 순간 성공적으로 풀렸다.걸렸던 한 줄은 선명하게 짧아졌는데, 분명히 배준우에 의해 끊겨졌을 것이다.고은영이 반응도 하기 전에 배준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방에서 나가!”고은영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크게 숨도 못 쉬고 재빨리 뛰쳐나갔다.대표 사무실 문을 나서고, 그녀는 자신의 등과 이마가 온통 식은땀으로 뒤범벅된 것을 발견했다.민초희, 정유비 그리고 김연화 모두 돌아온 그녀를 보는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특히 김연화와 정유비 두 사람이 고은영을 보는 눈빛은 더욱 하찮았다!그녀의 창백한 낯빛을 보면, 그녀가 배 대표를 꼬시는데 실패하고 곧 동영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은영 자신도 오늘 틀림없이 쫓겨날 것이라고 생각했다."은영 씨 괜찮아요?"민초희는 그녀 옆에 와서 물 한 잔을 건넸다.그녀는 회의실에서 배준우의 그 통화내용을 직접 들었고, 고은영과 배준우의 관계가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놀란 심장이 아직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한 채, 민초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는 괜찮아요, 고마워요!"말하면서 서둘러 회사를 뛰쳐나갔다.고은영이 회사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안지영이다.얼른 휴대폰을 꺼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지영은 지금 기숙사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녀의 번호를 보고 심장이 움츠러들었다."너 또 무슨 일이야?"분명히 안지영이 보기에, 고은영이 지금 그녀에게 전화하면 틀림없이 사정이 있는 것이다.고은영은 울음을 터뜨릴 듯한 말투로 말했다.“지영아, 내 높은 연봉이 없어질 것 같아!""아니, 너 이거……."안지영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은영은 언제 어디서나 이런저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을까?특히 그녀에게 그런 엄마가 있다니, 정말 쉽지 않아!"기다려!"고은영이 우물쭈물하며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안지영은 조급하게 한마디 하
배준우와 고은영이 한 지붕 아래 머무르지 않는 한, 그렇게 많은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지영의 말이 옳다고 느꼈다!당시 배준우가 그녀를 보는 눈빛은 그의 침대에 기어든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아주 흉악하고 위험했다!“그럼 나는 동영에서 쫓겨나지 않을까?”이 일을 생각하니, 고은영은 또 가슴이 두근거려 안지영을 애타게 쳐다보았다.안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지금 그는 너라는 아내가 필요하니 감히 너를 회사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야."배준우가 왜 그녀와 결혼했겠어, 분명 배씨 가문을 상대해야 하기 위함이다.그러니 그녀를 해고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곁에 머물러 있긴 하겠지만, 절대 그녀가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주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고은영에겐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두 사람을 이렇게 분석하자 고은영 역시 기분이 많이 좋아졌고, 아까와 같은 두려움은 없었다."하지만 너 앞으로 꼭 조심해야 해. 배 대표가 널 가까이하게 하진 않겠지만, 너 오늘 이 일은 너무 심했어."고은영은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응, 그럴게.”그녀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안지영은 오히려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 데면데면한 성격은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날것만 같았다. .그녀가 고쳐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다.점심에 휴게실에 있었던 일 때문에 고은영은 오후에 출근할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김연화와 정유비는 이때 배준우의 눈앞에 끼어들려고 애썼다.물론 그녀들은 다른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닌 오직 메인 비서 자리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도중에 배준우가 회의실에 가는 길에 고은영의 작업대를 지나갈 때, 고은영은 머리를 낮게 파묻고 책상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까지 있었다.“똑똑!”남자의 관절이 뚜렷한 손가락 뼈가 나무 작업대 위를 두드렸다.배준우의 뒤를 따르던 김연화와 정유비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고은영은 놀라움에 심장이 떨려,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
배준우는 말을 듣고 그녀를 쳐다보았다!고은영은 작은 손을 함께 잡고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네. 너한테 잘 어울려."그녀는 눈대중으로 대략 168센치 정도 되는 큰 키를 가지고 있고, 가냘픈 몸매에 골격미가 있었다.배준우는 일어나서 소파로 향하며 약간 권위적인 말투로 명령했다."이리 와."고은영이 고분고분 걸어가자 배준우는 그녀를 소파에 눌러 앉혔다.남자의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의 어깨에 닿는 순간, 고은영의 마음은 긴장감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그녀는 배준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몰라 전혀 말할 엄두가 안 났다.다음 순간, 남자의 길쭉한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자 고은영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휴가 후에 바로 머리를 자르러 갈게요!"이 말을 할 때, 그녀는 가슴이 좀 아팠다.그녀가 이 긴 머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늘도 알 것이다. 할머니도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은 목숨으로 기른 것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배준우."왜 잘라?"“저……!"점심에 있은 민망한 장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고, 고은영의 작은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점심에 있었던 일.. 전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요!"배준우의 손이 멈칫하더니 숨결도 약간 무거워졌다.손에 힘도 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더 세졌다. 고은영이 아픔에 '스읍…….'하고 소리를 냈다.배준우."아파?"한 단어, 여전히 차갑다!고은영.“안 아파요!”그녀는 배준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보이지 않아, 그의 앞에서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배준우는 차갑게 웃었다."아프면 말해.""진짜 안 아파요!"그가 화만 안 낸다면, 이 정도의 고통은 그녀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배준우는 곧 끝냈다."일어나."고은영이 고분고분 몸을 일으켰다. 다음 순간 배준우에 의해 몸이 돌려졌고 그의 눈 밑에는 약간의 웃음기가 감돌았다.그의 성격이 너무 차가워서 그런지 이 웃음은 선명하지 않았다.배준우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올리
사무실 밖의 사람들.정유비와 김연화는 자기도 모르게 배준우의 사무실 앞을 지나다녔다.고은영이 사무실에 들어가면, 배준우에게 크게 꾸지람을 듣고 회사에서 쫓겨날 줄 알았다.그런데 그녀들은 지금 모두 여러 차례나 지나갔는데도 조금의 인기척도 듣지 못했다!두 사람은 무의식 중에 서로 눈이 마주쳤고, 그녀들이 고은영이 쫓겨날지 말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배준우가 단정하게 차려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손에…… 고은영의 손을 잡았다고?!김연화와 정유비 두 사람은 고은영이 오늘 쫓겨날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가, 순간 얼어붙었다!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 맞잡은 두 손에 닿아 있었고 반응하는 걸 전혀 잊고 있었다.고은영 또한 지금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웠다!배준우에게 붙잡힌 손은 마치 끓는 물에 데인 것 같았고, 그녀들의 따가운 눈빛을 느끼니 놀라 움찔거렸다. 배준우는 그녀를 돌아봤다."왜?"고은영은 작은 얼굴을 찌푸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정유비와 김연화는 오히려 숨을 들이쉬었다. 특히 고은영 몸에 있는 한정판 오트쿠튀르가 그들의 눈에 띄었다. 이게 지금?유혹에 성공했어?설마……!다른 사람이라면 그렇다 쳐도, 그녀들은 배 대표가 여자들이 이런 짓을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걸 아는데, 지금 어떻게?두 사람의 머리는 완전히 혼란스러웠다!나태웅이 나와 물었다. "나가시는 건가요?"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게 말했다."오후 회의는 전부 미뤄."나태웅은 두 사람이 함께 잡은 손을 보고는 바로 알아차렸다."알았어요."배준우는 바로 고은영을 끌고 나갔다.그러나 사무실은 이미 어수선 해졌다. 그들이 떠난 후 나태웅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여 배준우가 고은영을 끌고 나갔다는 소식은 곧 회사에 퍼졌다……!모든 사람들은 배준우가 그 시골 처녀가 맘에 든 것이라고 추측했다.그녀에게 유혹 당한걸까!"쯧쯧, 정말 생각지도 못 했어. 시골 처녀가 이런 재주를 가지고 있다니, 네 눈이 나쁜 걸 탓할
하지만 그의 손에 이끌려 나왔으니…….배준우는 아무런 온도도 없는 눈빛으로 차갑게 그녀를 흘겨봤다.“나태웅이 아직 너한테 말 안 했어?""뭐요?”"우리의 합의는 비밀이야!""네, 나 실장님이 그렇게 말했어요."이게 결혼을 비밀로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배준우."남태웅이 또 누가 남성에서의 그날 밤 일에 대해 물어보면, 너는 모두 너라고 말하라고 한거 알고있지?""네."고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정말 그랬다.그날 밤을 꺼내지 않으면 괜찮은데, 말이 나오니 그녀는 지금 심장이 조여왔다.배준우."그래서 넌 아직도 우리의 결혼이 비밀이라고 생각해?"고은영은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배준우를 멍하니 쳐다봤다.그녀의 이 바보 같은 모습을 보고, 배준우는 그녀에게 꿀밤을 한 대 먹였다!고은영은 순간 정신을 차렸다."배 대표님 죄송합니다. 저는 전 과정을 비밀로 하는 줄 알았어요.""허! 내가 결혼을 비밀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배준우는 차갑게 웃었다.볼썽사나운 것도 아닌데 이렇게 숨길 필요가 있어?고은영은 끝까지 결혼을 비밀로 하고, 이번 결혼은 배씨 가문에만 공개하는 줄 알았다.지금은 오히려 이 일을 회사 전체가 다 알게 되었다!곧 배씨 가문에 도착했다.고택의 사람들은 모두 배준우가 오늘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집사는 이미 하인을 데리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배준우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공손히 다가갔다."큰 도련님, 오셨습니다."배준우는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뒤돌아 차 안의 고은영에게 손을 내밀었고, 차갑고 진귀한 기운이 한껏 신사의 품격을 드러냈다.고은영은 자신의 차가운 손을 그의 넓은 손바닥에 얹었다.배준우는 가볍게 힘을 써서 고은영을 차에서 끌어냈다.집사와 사람들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여자를 보고 모두 어리둥절했다.집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큰 도련님, 이분은?""작은 사모님이라고 불러!"집사."……."하인들."……."그 말을 듣고 모두 숨을 들이마셨다!작, 작은
배준우는 고은영을 배지영에게 밀면서 말했다."네 형수 좀 데리고 여기 돌아보면서 익숙해지게 해줘.""생각은 끝났어? 돌아와서 산다고?”배지영은 눈썹을 치켜들었다.배준우는 대답을 하지 않고, 미간의 음울함은 더욱 사람을 간과할 수 없을 정도의 독함을 발산하고 있었다!배준우가 말을 하지 않자 배지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은영의 손을 잡았다."이 분은 나에게 맡겨. 오빠는 이만 가봐."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고은영을 보며 말했다."30분만 기다려, 응?"“알겠어요!”고은영은 몹시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비록 지금은 아무런 마찰도 없었지만, 이곳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자 그녀는 무한한 압박감을 느꼈다.배준우는 발을 움직여 걸어 들어가려는데, 배지영이 그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오빠!"그녀의 말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배준우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배지영은 무거운 목소리로 귀띔했다."아빠를 화나게 하지 마. 걸리지 말아야 함정에 걸리지도 말고!"이 귀띔을 들은 고은영은 더욱 무서웠다. 여기가 도대체 집이야 호랑이 굴이야?이전에 언니 고은지가 조 씨 가문으로 시집갈 때도 난리가 아니었지만, 왜 배씨 가문은 항상 지옥같이 보이지?배준우는 대답하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배지영은 얼굴색이 약간 하얗게 질린 고은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우리 오빠가 새언니를 데리고 돌아왔다는 건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겠죠."고은영은 정신을 차리고 배지영을 바라봤다!이 순간 그녀가 내 쉰 숨마저 모두 차가운 것 같았다.“제가 집 좀 안내해 드릴까요?""괜찮아요. 전 여기서 그를 기다릴게요!"고은영은 머리를 저었다.그녀는 배씨 가문과 친해질 이유가 없으니 그 자리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배지영이 그녀의 말을 듣고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하게 적대감을 느꼈다.안에서는
결국 진호영이 다가가서 말했다.“할머니, 지금 이 장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윤과 진정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도 명백했다.진성택이 두 사람을 너무 크게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진유경은 진호영이 진윤과 진정훈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호영 오빠, 진윤 오빠랑 정훈 오빠한테 연락해주면 안 돼요? 적어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은영이도요... 아버지는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잖아요.”“그만 떠들어.”진유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호영이 싸늘하게 얘기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고은영의 얘기를 꺼내다니.진호영은 진유경에게서 이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진유경은 진호영의 반응에 멍해졌다.하지만 사람들의 화제는 이미 고은영으로 넘어가 버렸다.다들 고은영을 불효녀라고,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자라고 욕했다.진호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진유경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때문에 은영이는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다고?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눈은 장식이야?”예뻐한 적이 있었나?한 번도 없었다.진성택이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고은영이 진씨 가문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라...”“아버지는 남은 주식을 모두 너한테 남겨줬어. 하지만 친딸인 은영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그런데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하셨다고?”진호영이 모든 것을 까밝히자 진유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호영 오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진유경은 더욱 크게 울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유경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호영은 진유경의 편이었는데 지금은 왜...‘이게 다 고은영 때문이야! 대체 무슨 수로 꼬드겼기에 오빠들이 다 고은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냐고!’“왜 이러냐고? 우리 어머니가 은영이에게 남겨준
이윽고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호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이 진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진호영과 고은영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진호영은 보통 직접 찾아와서 문제를 얘기하는 편이기에 전화를 잘 걸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진호영이 전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진윤에게 전화하자마자 또 고은영에게 전화하다니.고은영이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진윤이 고은영의 전화를 빼앗아갔다.“오빠...”진윤은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꺼버리면 어떡해요. 혹시 언니가 전화라도 하면...”“걱정하지 마. 네 언니는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버리는 건 좀...게다가 고은지가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고은영을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진윤은 자연스럽게 고은영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돌려주지 않았다.“오빠.”“오늘은 나한테 집중해.”그 말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마치 그동안 진윤에게 신경 써주지 않아 삐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영도 어쩔 수 없었다.고희주와 고은지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사실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고희주의 일 때문에 고은지는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었다.“그래요.”“...”“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너한테 뭘 좀 사주려고.”“...”사준다고?고은영은 진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진성택이 죽었다.장례식에 안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굳이 고은영을 데리고 나와 쇼핑을 하는 목적은 뭘까.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윤설의 전화가 걸려왔다.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그런 진윤을 보면서 고은영은 진윤이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진윤과 비교하면 나태현은 정신병이 틀림없었다....진성택은 오늘 화장하게 된다.김영희, 진유경과 진호영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진윤과 진정훈은 결국
숨을 깊게 내쉰 나태현이 얘기했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배준우가 나태현의 말을 끊었다.그때 나씨 가문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게다가 량천옥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나태현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고 나태현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돌아갔다.그 모든 모순의 시작은 량천옥이었다.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씨 가문은 여전히 량천옥과 원한이 있었다.다들 그저 그 원함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고은지가 나타났다.량천옥의 딸이면서 나태현의 딸 엄마인 고은지 때문에 나씨 가문과 량천옥의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요.”우정과 사랑 중에서 배준우는 당연히 사랑이었다.게다가 이번 일에는 나씨 가문에서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또 나태현이 회사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가 위험했다.나태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소리를 들은 배준우는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졌다....다른 한편.고은영과 진윤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진윤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씨 가문과 엮인 프로젝트를 모두 엎어버리라고 명령했다.옆에 있는 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했다. 진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고은영이 진윤의 손을 잡았다.“오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씨 가문이 밉긴 하지만 진윤의 일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진윤이 계약을 많이 해지할수록 진윤에게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진윤은 본인을 걱정해주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부드러운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윤이 얘기했다.“다 필요 없는 것들이야. 나태현은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릿속에는 병원에 있는 고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지는 나태현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눈치채고 얘기했다.“지금 나태현과 량천옥이 해외에서 서로 죽이고 난리가 났어. 만
화가 난 나태범을 보면서 집사는 안절부절못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생각하던 집사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쪽도 걱정해야 합니다.”“진씨 가문? 거기는 왜.”나태현과 량천옥이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태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게다가 배씨 가문에서 계약까지 해지했지...이러다가는 그룹이 파산될지도 몰랐다.“배준우 씨 아내가 진윤 씨와 진정훈 씨의 친여동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 다 그 고은지 씨의 동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나태범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택이 친딸보다 양딸을 더욱 아낀다는 것까지 말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할 때 강성의 사람들은 배준우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신분으로는 배준우의 옆에 설 수 없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은영이 진짜 진씨 가문의 친딸이었다.나태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튿날 아침.고은영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진윤이 도착했다.그리고 조카를 위한 선물도 가득 가져왔다.고용인들이 진윤이 가져온 물건을 보관해주었다.약간 붉어진 고은영의 눈가를 보면서, 진윤이 배준우한테 물었다.“어젯밤 계속 운 거예요?”배준우도 머리가 약간 아팠다.“제대로 자지 못했어요.”진윤이 다가가서 고은영을 마주 보더니 고은영이 입고 있는 귀여운 잠옷으로 눈을 돌렸다.배준우는 정말 딸을 키우는 것처럼 고은영을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원래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작아보였다.“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정말 나가야 해요?”고은영이 올망졸망한 눈으로 진윤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은 병원에 가서 고은지를 보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듯이 얘기했다.“병원 쪽에는 내가 사람들을 깔아놨어. 무슨 일 없을 거야. 가자.”진윤의 말을 들은
하지만 진윤이 내일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의 목적을 떠올리면 고은영은 어쩔 수 없었다.“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윤이 당당하게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배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이미 다 들었지?”“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성택은 사망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장례식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윤은 장례식에 가지 말고 나가서 쇼핑하자고 했다.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넌 어떻게 하고 싶어?”“안 가도 돼요?”고은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웃으면서 쇼핑해야 한다니. 고은영에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배준우도 짐작하고 있었다.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준우가 얘기했다.“아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쇼핑이 최종 목적이 아닐 거야.”“위로하는 거예요?”진윤은 배준우더러 고은영을 잘 위로해주라고 했다.“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네 큰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단순하게 쇼핑하는 게 목적일 리 없어.”배준우가 확신하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준우는 허락하는 고은영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 다 지나갈 거야.”“나씨 가문 쪽은...”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고희주의 일로 마음 아팠지만 배준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은영에게 짧게 키스한 배준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두 개가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해지했어.”“주주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고은영이 걱정하면서 물었다.“그 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다들 발을 빼는 분위기야. 아마도 량천옥 씨가 한 일 같은데.”그래서 배준우도 큰 문제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지나간 일에 대해 배준우는 뭐라고 할 수 없
진정훈이 전화를 건 것은 진정훈에게도 계획이 있어서였다.“진유경을 조심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유경에게 남긴 주식이 있는데 꼭 되찾아올 겁니다.”진유경이라...진정훈은 진유경이 왜 계속 고은영을 끌어내리려는지 깨달았다.그건 바로 진유경이 아직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줘야 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말을 알아듣고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장례식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괜찮다고 전해줘요.”“네.”진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의 뜻을 존중해주었다.하지만 장례식에 고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장례식은 언제입니까.”“이틀 뒤입니다.”“알겠습니다.”이틀 뒤라니. 생각보다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에 배준우는 약간 의아했다.진정훈은 그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래서 그동안 배준우가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도록 전화를 건 것이다....진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배준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진정훈이 아닌 진윤이 걸어온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영원히 고은영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고은영을 꼭 안고 있었다.“여보세요.”배준우는 진윤을 존경하는 편이었다.진윤은 정말 가문의 도움 없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은영이는요? 연락이 안 돼서.”“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왜 기분이 안 좋은 거죠?”“고은지 씨한테 일이 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고은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윤은 머리가 아팠다.지금 고은영에게는 모든 일이 설상가상이었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내가 데리러 간다고 전해줘요.”“내일이요?”“네.”진윤이 대답했다.배준우는 진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진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씨 가문이 얼마나 엉망인지 광고할 셈이었다.진윤이 진성택의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고 친여동생인 고은영을 데리고 밖에서 돌아다닌다면...“어디로 갈 겁
그 처참한 울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진호영과 진정훈은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았다.두 사람이 달려가 보니 병실의 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김영희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성택을 껴안고 있었고 진유경도 진성택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침대 위의 진성택은 이미 눈을 감았다.의사와 간호사들도 두 사람의 소리를 듣고 얼른 달려왔다.5분 후. 의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안타깝게도 환자분은 이미 숨을 거두셨습니다.”“아버지... 제발 눈 좀 떠봐요! 이대로 가지 마요! 안 돼요!”진유경이 눈물범벅으로 얘기했다.김영희도 눈물을 훔치면서 얘기했다.“성택아, 이렇게 우리를 두고 가면 어떡하니! 나와 유경이는 어떻게 해...”“그러게요, 아버지. 저랑 할머니는 아버지뿐이에요. 제발 가지 마요. 눈 좀 떠보세요.”두 사람은 그렇게 울면서 밖을 흘깃거렸다.진호영이 다가가려고 할 때 진정훈이 진호영의 손목을 잡았다.진호영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진정훈을 쳐다보았다.진성택의 사망에 진호영도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하지만 진정훈의 얼굴에는 슬픔보다도 짜증이 더욱 많았다.진성택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하지만 김영희와 진유경의 뻔한 연기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혔다.진성택은 진유경을 평생 아껴왔지만 진정훈에게 있어서 진유경은 아무것도 아니다.진호영은 그런 진정훈을 보고 약간 정신을 차렸다. 진호영은 증오심이 가득 묻은 두 눈으로 진유경을 쳐다보았다.진유경이 눈물을 흘리는 건 진성택의 죽음 때문이 아니다.진성택의 죽음으로 인해 전에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진성택은 죽기 직전까지도 진유경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있었다. 진유경이 남은 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하지만 결국 아무도 진유경을 받아주지 않았다.진유경은 양딸인 데다가 진윤과 진정훈에게서 호감을 사지 못했기에 다른 가문에서는 진유경과 혼사를 맺고 싶지 않아 했다.유일하게 진유경을 받아들이는 허씨 가문은 진유경이 싫어했다.이젠 진
고은영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을 때 진정훈과 진호영이 돌아왔다.두 사람은 고은영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은영아, 뭐라고 하셨어?”진정훈이 먼저 물었다. 진호영은 어두워진 고은영의 표정을 보면서 감히 물을 수 없었다.고은영은 진정훈을 보고 또다시 진호영을 쳐다보았다.지금 고은영의 표정은 진호영이 고은영을 끌고 올 때보다 더욱 어두웠다.“나한테 진유경을 부탁한다고 하셨어.”“...”“...”두 사람은 고은영의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어버렸다. 진정훈은 싸늘한 눈으로 진호영을 쳐다보았다.“중요한 얘기라는 게, 저런 거였어?”고은영에게 진유경을 맡기는 것. 그게 죽기 직전에 하고 싶은 말이었다니.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지? 진호영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진호영은 고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미안해. 난 아버지가 그런 일로 널 부를 줄 몰랐어.”고은영은 진호영의 사과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진정훈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진유경에게 주식을 남겨주었으니 진유경의 주식을 정훈 오빠한테 빼앗기지 않게 챙겨주라고 했어.”“...”“...”두 사람은 또 그대로 얼어붙었다.정말 진유경 때문에 고은영을 부른 것이었다니.도대체 얼마나 진유경을 아끼기에 죽기 직전에도 친딸을 불러 양딸을 맡기려 하는 것인지, 두 사람은 알 수가 없었다.고은영은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먼저 갈게.”“그래. 잘 가.”진정훈이 고개를 저으면서 얘기했다.고은영은 그대로 떠났다.진씨 가문에 아무 기대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공허하고 적적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진호영은 떠나는 고은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다.진정훈이 진호영을 보면서 말했다.“이제야 안 거야?”“난 전혀 몰랐어... 아버지가 진유경의 일로 은영이를 부른 걸 알았다면 은영이를 불러오지 않았을 거야.”진호영은 정말 후회했다.진호영은 그저 고은영이 진성택의 친딸이니까... 친딸에게 해줄 말이 있을 줄 알고 데려온 것인데.결국 진성택은 모든 것을 진유경에게
거기까지 들은 고은영의 표정은 잿빛이 되었다.진성택도 그걸 알아차리고 잠시 말을 끊었다.그리고 어두워진 고은영의 눈을 보면서 이어서 얘기했다.“나도 일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다만. 하지만 은영아, 난 정말 유경이가 걱정돼. 그러니 네가 유경이를 잘 챙겨줘. 그럴 수 있지?”진성택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은영을 되찾아온 다음부터 진성택은 고은영 앞에서 진유경을 잘 챙겨주라는 말을 했다.죽기 전까지도 말이다.“나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준우 씨한테 부탁하는 거예요?”그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전에 김영희가 진유경을 데리고 배준우를 찾아왔을 때도 고은영은 그저 묵묵히 참았다.하지만 진성택이 또 이런 말을 꺼내다니.뭘 어떻게 챙겨주라는 건지.고은영이 무슨 능력으로 챙겨주라는 건지.“은영아, 그게 아니라...”진성택이 말을 더듬었다.고은영은 손을 빼내고 얘기했다.“뭐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진유경이 걱정되면 데려가면 되잖아요. 죽어서도 계속 돌봐주면 되겠네요.”“...”고은영의 말을 들은 진성택은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내 말을 오해한 것 같은데... 배준우한테 도움을 청하는 건 아니야.”“...”“전에 정훈이 뭐라고 해서 네 엄마가 남겨준 주식을 너와 유경이한테 나눠줬잖아. 정훈이가 유경이 몫을 빼앗아가지 않게 잘 좀 챙겨줘.”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화가 끓어올랐다.죽기 직전까지도, 진성택은 진유경을 걱정하고 있었다.하지만 고은영은 그 정도로 마음 약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아무리 고은영이 나약해 보이고 연약해 보여도 마음만은 단단한 사람이었다.“제가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리고 정훈 오빠가 진유경의 주식을 빼앗을까 봐 걱정하시는데... 그건 원래 진유경 몫이 아니었어요. 결국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진성택이 진유경에게 주식을 남겨뒀을 줄은 몰랐다.진정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고은영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은영아, 잠깐만...”진성택은 밖으로 나가려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