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육 대표님, 제가 대신 마실게요.”고은영은 재빨리 배준우의 술잔을 집어 들었다.그 말을 들은 육명호는 멈칫하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은영을 쳐다보고는 또 배준우를 쳐다봤다.“배 대표?”“네. 나 술 못 마셔요.”배준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육명호는 눈치를 살피더니 배준우의 말에 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고은영에게 말했다.“그럼, 고 비서가?”다소 애매한 말투로 말이다.고은영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면 그를 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중한 자리이니 꾹꾹 참고 있었다.육명호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배준우의 심기도 불편해졌다.육명호는 아마 자신의 계획이 있는 모양이다. 방금 자기 파트너에게 술을 따르게 한 걸 보면 그래 보였다. 다만 배준우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을 줄은 몰랐다. 아마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심지어 소주이다!고은영은 술을 들이키자마자 목구멍이 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 비서 주량이 끝내주네.”그녀의 원샷하는 모습에 육명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은영은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급하게 한마디 했다.“죄송합니다.”말하고는 룸 밖으로 급하게 나갔다.이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임신한 탓인지 술 냄새에 그녀는 구역질이 났다.방금 마신 술을 바로 화장실에 가서 깨끗이 토해냈다.“너 정말 얌전하지 못하구나.”고은영은 아랫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그녀가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육명호가 보였다.‘설마? 이 사람이......!’고은영은 소름이 끼쳐 그를 피해서 돌아서 가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곁을 지나가는 순간 그에게 손목을 잡혔다.“은영 씨?”은영 씨라는 말에 고은영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고은영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육 대표님, 자중하시고 손 놓으세요!”육명호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살짝 당황했다. 이전에 회
역시 북성의 제일가는 재벌이다. 육명호는 북성에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하다.소문에 의하면 그는 수단이 악랄하고, 심지어는 굽힐 줄 아는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오늘 그녀는 그 진면모를 보게 되었다.알랑거릴 때는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가 되었다가, 뒤돌아서면 마치 제왕처럼 카리스마가 넘친다.그런데 이런 사람이 배준우 앞에서 두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는 건, 배준우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설명한다.고은영의 첫 반응은 바로 이 사람과의 협력은 위험하다는 생각이었다.“같이 놀러 갈래?”고은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육명호는 그녀의 말랑말랑한 볼을 꼬집었다.그의 몸에서 보였던 날카로움이 마치 착각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부드럽게 변했다.고은영은 그제야 대답했다.“아니요. 저 대표님한테 가야해요.”하지만 순식간에 육명호는 그녀를 확 낚아채며 말했다.“대표님은 무슨, 오늘 밤 배 대표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있어.”고은영은 바로 육명호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반박했다.“우리 대표님 그런 분 아니세요.”“뭐가 그런 분이 아니야. 은영씨는 남자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육명호는 그녀의 끌고 호텔 밖으로 향했다.“이거 놔요!”고은영은 육명호와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만약 지금 그녀가 육명호를 따라간다면, 배준우의 성격에 가만있을리가 없다.전에도 바이어가 이런 행동을 했는데, 그 결과는 아주 심각했다.육명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배불리 못 먹었지? 북성에 왔으니 은영 씨를 굶게 할 수는 없어.”고은영은 손을 빼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육명호는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호텔 입구까지 다다랐고 육명호는 그녀를 자기 차에 태우려고 했다.이때 뒤에서 배준우의 화가 잔뜩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영!”두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뒤를 돌아보니 배준우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고, 그 뒤에는 놀란 이소원이 보였다.고은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육 대표
“손 안 더러워요. 아까도 씻었어요.”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배준우는 그녀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그 눈빛에 고은영은 깜짝 놀라 바로 말했다.“닦을게요, 지금 닦는다고요.”‘이러면 됐지?’고은영은 조금 억울했지만 바로 물티슈를 꺼냈다.그녀는 배준우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전혀 그게 아닌 것 같다.적어도 이 순간, 그는 그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를 노려보았다.고은영이 고분고분 손을 닦자 그제야 배준우의 화도 많이 내려간 듯 보였다.배준우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회사 접대 규정 외워봐!”“네?”‘이건 또 뭐야?’배준우가 큰 소리로 말했다.“외워!”두 글자는 차갑고 위험하게 들려왔다.그제야 고은영은 배준우가 정말 화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술도 안 마셨는데 이렇게 버럭버럭하는 걸 보면 정말 화가 난 게 틀림없다.고은영은 숨을 들이쉬고 마른침을 삼키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고객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고, 스킨십과 사사로운 만남을 금지하며 사적의 거래를 할 수 없다..”“근데 너 아까 뭐했어?”‘아까? 육 대표님이 나 끌어당긴 거? 그래서 내가 지금 스킨십했다는 거야?’고은영은 순간 억울해졌다.“그게 내가 당긴거에요?!”“당긴다고 그대로 끌려가는 건 또 뭐야?”고은영은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다.비록 그녀의 잘못으로 배준우에게 혼난 건 아니지만 고은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고은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니 배준우가 버럭 화를 내며 물었다.“그래서, 나중에 또 그럴거야?”“아니요, 잘못했어요!”고은영은 전에 육명호의 인품에 문제가 있다고 배준우에게 알려주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를 탓하다니.배준우는 그녀의 공손한 태도에 더는 따지지 않았다.그 뒤로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배준우는 여전히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때 배준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아까는 어떻게 된 거야?”그녀가 술 한 잔 마신 후를 말한다.그녀가 룸에서
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진승연과 함께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배준우가 그녀를 방으로 밀며 말했다.“씻으러 가. 땀 냄새나.”그의 태도에 배준우를 제외한 세 여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진승연과 이미월은 배준우가 고은영에 대한 태도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특히 이미월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진승연은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 두 사람에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주려고 했지만, 배준우의 한 마디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그녀는 이미월의 새하얗게 질린 표정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준우 오빠.”배준우는 진승연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고은영을 노려보았다.“그래요, 씻을게요.”‘땀 냄새가 그렇게 심해? 난 모르겠는데? 내 몸에서 나는 거 아닌 것 같은데!’하지만 배준우의 위압적인 눈빛에 고은영은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이미월은 가련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향해 고통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준우야.”진승연도 말했다.“준우 오빠, 언니한테 그러지 마세요. 언니 많이 힘들어요.”두 사람이 나간 뒤 진승연은 힘들게 그녀를 위로했다. 그런데 배준우가 돌아오자마자 또 이런 상황으로 돌아가다니.진승연도 머리가 아팠다.고은영은 들어간 지 몇 분도 안 되어 다급히 뛰쳐나왔다.배준우는 그녀의 경망스러운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캐리어가 사라졌어요.”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더니 시선을 진승연과 이미월에게 돌렸다.그녀는 캐리어를 방에 두고 배준우와 외출했으며 호텔에는 진승연과 이미월이 남아있었다.그 말에 진승연과 이미월은 놀라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배준우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이미월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질문의 눈빛이다.이미월은 가슴이 떨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배준우의 눈빛을 살피던 진승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내가 던져버렸어요.”그녀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배준우의 질책이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아무래
“준우야......”그녀는 또 한 번 배준우에게 아련한 눈빛을 보냈다.그녀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마치 고은영이 대역무도한 말을 한 것처럼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진승연은 고은영이 이미월의 남자를 빼앗았다고 생각해 그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다.게다가 이미월은 고은영의 말 때문에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화가 제대로 치밀어 오른 진승연은 손을 휘둘러 고은영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다.“이 파렴치한 내연녀, 네가 뭔데 감히 자격을 논해!”하지만 그녀의 손바닥이 고은영의 뺨에 닿기도 전에, 배준우가 먼저 낚아챘다.손목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준우를 바라봤다.“준우 오빠.”배준우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그만해!”“오빠나 그만 하세요! 언니가 사과도 했는데 어떻게 계속 이래요?”배준우의 안색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다.배준우는 더는 불필요한 말을 하기 싫어 나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나태웅이 이내 전화를 받았다.“준우야.”배준우가 말했다.“진영 그룹과의 모든 협력 다 종결시켜!”“갑자기 왜? 대체 무슨 일인데?”그 말에 나태웅은 어리둥절했다.동영그룹과 진영그룹은 이미 여러 해 동안 협력해 온 사이다.게다가 배준우와 이미월의 동창 관계 때문에 두 기업의 협력은 비교적 긴밀했다.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관계를 청산한다고? 게다가 협력을 전부 종결한다고?배준우는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당장 진영그룹에 계약 해지 통보해!”쌀쌀한 배준우의 목소리를 들으니 전혀 전환의 여지가 없었다.나태웅은 배준우의 확고한 말투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얼른 대답했다.“그래, 당장 통보할게.”진미월은 배준우의 차갑고 위협적인 말투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배준우가 드디어 전화를 끊었다.진승연은 굳은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준우 오빠, 오빠가 어떻게.”“준우야, 너가 어떻게 우리 외삼촌한테!”이미월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배준우를 쳐다보았다.설마 고은영을 위해서?고은영도 배준우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진승연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이 말을 내뱉었다.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회사에 누가 될까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일어서는 그때, 배준우가 차갑게 말했다.“필요 없어.”“준우야..!“배준우의 필요 없다는 말에 이미월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배준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배준우가 필요 없다고 말하면 후과는 심각하다.배준우가 쌀쌀하게 계속 말했다.“난 아무에게나 기회를 주지 않아.”이미월과 진승연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두 여자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배준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무나? 우리가 아무나야?’이미월은 멍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고 눈가에는 고통이 역력했다.“준우야, 너.”진승연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지금 타협하고 고은영 그년의 캐리어를 도로 찾아와도 필요 없다는 뜻인가?’“오빠 정말 너무해!”진승연은 화가 난 듯 고함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눈물을 머금고 배준우를 바라보자 이미월은 고통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준우야, 날 봐서라도 나 실장한테 전화 좀 해줘. 우리 외삼촌은 건드리지 말아줘.”이미월은 풀이 죽어 말했다.하지만 배준우는 그저 소파에 앉아 담배만 피울 뿐이다.이 상황을 지켜보는 고은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난감했다.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마침 배준우는 오늘 밤 기분이 나빴고, 진승연은 하필 지금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배준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이미월은 또 한 번 그를 불렀다.“준우야......”하지만 배준우는 그저 쌀쌀맞게 담배만 피울 뿐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 쌀쌀한 모습에 이미월은 눈물이 차올랐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고은영을 향해 말했다.“고은영 씨, 정말 미안해요. 승연이가 성격이 워낙 날카로우니 마음에 두지 않길 바라요.”아까만 해도 진승연과 입씨름을 벌이던 고은영은 이미월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어이가 없었다
비록 배준우 앞에라서 참고 있지만 그녀도 많이 화가 난 상태였다.그녀는 긴 숨을 내쉬며 물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만족하시겠어요?”‘어떻게 하면 만족하냐고? 지금 폭탄을 나한테 넘긴 거야? 내가 억지 부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고은영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이미월씨, 그렇게 말씀하면 안 되죠. 진승연 씨한테 사과받겠다는 데 억지인가요?”‘지금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뭐야? 대표님은 어쩜 안목이 저렇게 없으셨대?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이런 여자를. 분명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내가 억지 부리는 것처럼 구네?’아쉽게도 고은영은 이런 누명을 쓰고도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다.이미월은 전에 병원에서 고은영의 매운맛을 한 번 본 적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고은영이 배준우 앞에서도 똑같이 행동할 줄 상상도 못했다.이미월은 열불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하는 수 없이 그녀는 화를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 씨 말이 맞아요. 승연이가 직접 사과하는 게 좋겠어요.”“됐거든요? 필요 없어요. 저 아주 잡아먹을 기세던데요?”고은영이 핀잔을 주었다.고은영은 이미월의 가식적인 얼굴에 구역질이 나서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더는 이미월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이미월의 눈에 비친 고은영은 오만하고 거만했다.당장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했다.고은영이 방에 들어가자 이미월은 배준우 맞은편에 앉았다.“준우야!”“나 실장이 문 열어줬어?”배준우는 손님을 쫓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얘기 좀 하자, 응?”“이미월, 나 너랑 할 말 없어.”‘이미월’이라는 호칭은 두 사람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았다.배준우는 차갑고 낯선 말투로 말했다.그 말투에 이미월의 얼굴도 함께 굳어졌다.이 순간, 방에 들어간 고은영은 여전히 화가 내려가지 않았다.‘너무하네, 진짜! 어떻게 캐리어를 버릴 수 있지?’그녀는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그러니 나가서 잠옷
고은영이 거절하자 배준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춥긴 왜 추워. 씻고 바로 침대로 올라가!”‘아무튼 이 여자. 절대 혼자 내보내면 안돼!’고은영은 서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녀는 정말 면으로 된 잠옷을 입고 편하게 자고 싶었다.하지만 배준우는 전혀 그녀를 내보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은영은 배준우를 억울하게 쳐다보았다.이미월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이 상황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배준우는 손목시계를 힐끔 보더니 짜증 섞인 얼굴로 소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가자!”고은영은 어리둥절했다.“네?”“잠옷 사겠다며? 더 늦으면 백화점 문 닫아.”“가.. 같이 가시게요?”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이미월을 힐끔 쳐다봤다.배준우는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고은영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럼 지금 가요..”옷을 사도 된다는 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배준우와의 이 그림이 이미월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이미월은 급히 몸을 일으켜 배준우를 불러 세우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우가 먼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다시 돌아왔을 땐 널 안 봤으면 좋겠다.”이미월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자기의 안색을 볼 수 없다. 볼 수만 있다면 자기의 안색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그녀의 눈가에는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찼다.배준우는 그 한마디만 내뱉고 이내 시선을 거두더니 고은영의 손목을 잡고 스위트룸을 떠났다.이미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도무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스위트룸에서 나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반나절이나 배준우를 기다렸건만, 결국 이런 결말이라니?어떻게 이럴 수가?3년 전 두 사람은 그렇게 좋았었는데, 배준우가 어떻게......머릿속에는 배준우가 고은영에 대한 다정함이 떠올라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결국 그녀는 진승연에게 전화를 걸었고 진승연은 나태웅이 잡아 준 방에 있
전화를 끊은 진윤이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지금은 좀 속이 풀렸어?”“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렇게 한 거예요?”“응.”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약간 감동하긴 했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예전 같았으면 고은영의 곁에 무조건적인 자기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일이었다면 도움을 거절할 것이었지만 이번 일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지금 해외에서 난리가 났어. 이 시점에 나태현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도 좋지.”량천옥도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량천옥이 나태현과 싸우고 있는 건 고은지 때문이었다.그러니 지금 진윤이나 배준우가 나태현의 시선을 자꾸만 국내로 돌리게 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건 량천옥에게 좋은 일이다.“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진윤이 고은영에게 얘기해 주었다.고은영은 진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해외에 있고, 나태웅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이제는 나태범이 움직일 것이다. 나태범 세대가 싸운다면 젊은 세대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고은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씨 가문보다 더욱 위태로운 건 우리 언니니까요.”희주가 죽었다.그걸 떠올리면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은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나씨 가문 사람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갈라내고 싶었다.진윤은 고은영 눈에 비친 슬픔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희주가 정말 죽었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눈으로 본 것도 거짓일 수 있는데, 귀로 들은 것은 오죽하겠냐는 말이었다.진윤은 제삼자로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딱 짚어 말할 수 없었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그 소식이 가짜였으면 좋겠어요.”고은영은 고희주를 불쌍하게 여겼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희주가 조영수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아까 왜 돈이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진윤은 고은영의 손을 잡고 쇼핑을 계속했다.점심쯤이 되자 진윤은 지친 고은영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테이블 앞에 놓인 갖가지 음식을 보면서 고은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지 않아요?”“안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진윤이 대답했다.진윤은 진정훈이 왜 그때 그렇게 심하게 날뛰었는지 이해가 갔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먼저 조사한 사람이다.그래서 고은영의 아픔을 알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온 세상의 좋은 것들을 고은영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그러니 고은영의 몫이 진유경에게로 넘어간 걸 알고 미쳐버린 것이다.지금의 진윤도 마찬가지였다.“이거 먹어.”진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어서 고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고마워요, 오빠도 얼른 먹어요.”“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우리 아내가 또 요리를 잘하거든.”“그런데 지금 임신한 거 아니에요? 저까지 가면 민폐죠.”“그래도 요즘 매일 요리하고 있어.”“네?”고은영이 깜짝 놀랐다.“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은영은 임신했을 때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원하는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하긴.게다가 임산부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잘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윤설이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쁜 건 아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럼 최대한 덜 힘들게 옆에서 보살펴줘요.”진윤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그건 나태현이 건 전화였다.“나태현이야.”“계약 해지 때문에 전화한 거겠죠?”고은영이 물었다.아까 차에서 진윤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나씨 가문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배준우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니 나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진윤이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 지금
진호영이 사람들 앞에서 진유경, 김영희와 싸울 줄은 전혀 몰랐다.진유경과 김영희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고 있었다.그 시각.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하러 다니고 있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과 진윤이 장례식 준비도 돕지 않고 서로 재산을 빼앗느라 바쁘다고 했지만 사실 진윤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진성택이 진유경에게 남겨준 물건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진윤이 지금 고은영에게 쓰는 돈이 더욱 많을 것이다.“오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명품을 너무 많이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기다란 영수증 위의 숫자를 본 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배준우와 결혼한 후 돈이 모자랐던 적은 없지만 돈을 이렇게 많이 쓴 적도 거의 없었다.진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왔다. 네 명의 경호원 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부는 란완 리조트로 배송시켰다.“괜찮아. 많이 사. 우리 아내 것도 골라줘야지.”진윤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오빠는 정말 좋은 남자 같아요.”자세히 생각해보니 배준우는 직접 무언가를 사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란완 리조트로 가져오게 했던 것 같다.그리고 고은영은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니 직접 사는 편이 많았다.하지만 진윤은 쇼핑하면서도 자기 아내를 생각한다.진윤이 웃으면서 얘기했다.“배준우도 좋은 남자야.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거야.”“그 사람이 전에 얼마나 나빴는지 몰라서 그래요.”진윤이 배준우를 좋은 남자라고 얘기하자 고은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대답했다.배준우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좋은 남자라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그때의 배준우는 정말... 악랄한...고은영은 그때 유산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다 고은영은 또 나태웅을 떠올렸다.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태웅과 배준우가 같이 고은영을 위협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은 나태웅이 안지영을
결국 진호영이 다가가서 말했다.“할머니, 지금 이 장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윤과 진정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도 명백했다.진성택이 두 사람을 너무 크게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진유경은 진호영이 진윤과 진정훈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호영 오빠, 진윤 오빠랑 정훈 오빠한테 연락해주면 안 돼요? 적어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은영이도요... 아버지는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잖아요.”“그만 떠들어.”진유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호영이 싸늘하게 얘기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고은영의 얘기를 꺼내다니.진호영은 진유경에게서 이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진유경은 진호영의 반응에 멍해졌다.하지만 사람들의 화제는 이미 고은영으로 넘어가 버렸다.다들 고은영을 불효녀라고,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자라고 욕했다.진호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진유경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때문에 은영이는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다고?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눈은 장식이야?”예뻐한 적이 있었나?한 번도 없었다.진성택이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고은영이 진씨 가문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라...”“아버지는 남은 주식을 모두 너한테 남겨줬어. 하지만 친딸인 은영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그런데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하셨다고?”진호영이 모든 것을 까밝히자 진유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호영 오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진유경은 더욱 크게 울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유경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호영은 진유경의 편이었는데 지금은 왜...‘이게 다 고은영 때문이야! 대체 무슨 수로 꼬드겼기에 오빠들이 다 고은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냐고!’“왜 이러냐고? 우리 어머니가 은영이에게 남겨준
이윽고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호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이 진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진호영과 고은영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진호영은 보통 직접 찾아와서 문제를 얘기하는 편이기에 전화를 잘 걸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진호영이 전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진윤에게 전화하자마자 또 고은영에게 전화하다니.고은영이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진윤이 고은영의 전화를 빼앗아갔다.“오빠...”진윤은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꺼버리면 어떡해요. 혹시 언니가 전화라도 하면...”“걱정하지 마. 네 언니는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버리는 건 좀...게다가 고은지가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고은영을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진윤은 자연스럽게 고은영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돌려주지 않았다.“오빠.”“오늘은 나한테 집중해.”그 말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마치 그동안 진윤에게 신경 써주지 않아 삐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영도 어쩔 수 없었다.고희주와 고은지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사실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고희주의 일 때문에 고은지는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었다.“그래요.”“...”“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너한테 뭘 좀 사주려고.”“...”사준다고?고은영은 진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진성택이 죽었다.장례식에 안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굳이 고은영을 데리고 나와 쇼핑을 하는 목적은 뭘까.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윤설의 전화가 걸려왔다.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그런 진윤을 보면서 고은영은 진윤이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진윤과 비교하면 나태현은 정신병이 틀림없었다....진성택은 오늘 화장하게 된다.김영희, 진유경과 진호영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진윤과 진정훈은 결국
숨을 깊게 내쉰 나태현이 얘기했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배준우가 나태현의 말을 끊었다.그때 나씨 가문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게다가 량천옥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나태현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고 나태현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돌아갔다.그 모든 모순의 시작은 량천옥이었다.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씨 가문은 여전히 량천옥과 원한이 있었다.다들 그저 그 원함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고은지가 나타났다.량천옥의 딸이면서 나태현의 딸 엄마인 고은지 때문에 나씨 가문과 량천옥의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요.”우정과 사랑 중에서 배준우는 당연히 사랑이었다.게다가 이번 일에는 나씨 가문에서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또 나태현이 회사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가 위험했다.나태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소리를 들은 배준우는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졌다....다른 한편.고은영과 진윤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진윤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씨 가문과 엮인 프로젝트를 모두 엎어버리라고 명령했다.옆에 있는 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했다. 진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고은영이 진윤의 손을 잡았다.“오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씨 가문이 밉긴 하지만 진윤의 일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진윤이 계약을 많이 해지할수록 진윤에게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진윤은 본인을 걱정해주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부드러운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윤이 얘기했다.“다 필요 없는 것들이야. 나태현은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릿속에는 병원에 있는 고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지는 나태현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눈치채고 얘기했다.“지금 나태현과 량천옥이 해외에서 서로 죽이고 난리가 났어. 만
화가 난 나태범을 보면서 집사는 안절부절못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생각하던 집사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쪽도 걱정해야 합니다.”“진씨 가문? 거기는 왜.”나태현과 량천옥이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태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게다가 배씨 가문에서 계약까지 해지했지...이러다가는 그룹이 파산될지도 몰랐다.“배준우 씨 아내가 진윤 씨와 진정훈 씨의 친여동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 다 그 고은지 씨의 동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나태범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택이 친딸보다 양딸을 더욱 아낀다는 것까지 말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할 때 강성의 사람들은 배준우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신분으로는 배준우의 옆에 설 수 없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은영이 진짜 진씨 가문의 친딸이었다.나태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튿날 아침.고은영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진윤이 도착했다.그리고 조카를 위한 선물도 가득 가져왔다.고용인들이 진윤이 가져온 물건을 보관해주었다.약간 붉어진 고은영의 눈가를 보면서, 진윤이 배준우한테 물었다.“어젯밤 계속 운 거예요?”배준우도 머리가 약간 아팠다.“제대로 자지 못했어요.”진윤이 다가가서 고은영을 마주 보더니 고은영이 입고 있는 귀여운 잠옷으로 눈을 돌렸다.배준우는 정말 딸을 키우는 것처럼 고은영을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원래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작아보였다.“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정말 나가야 해요?”고은영이 올망졸망한 눈으로 진윤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은 병원에 가서 고은지를 보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듯이 얘기했다.“병원 쪽에는 내가 사람들을 깔아놨어. 무슨 일 없을 거야. 가자.”진윤의 말을 들은
하지만 진윤이 내일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의 목적을 떠올리면 고은영은 어쩔 수 없었다.“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윤이 당당하게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배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이미 다 들었지?”“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성택은 사망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장례식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윤은 장례식에 가지 말고 나가서 쇼핑하자고 했다.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넌 어떻게 하고 싶어?”“안 가도 돼요?”고은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웃으면서 쇼핑해야 한다니. 고은영에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배준우도 짐작하고 있었다.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준우가 얘기했다.“아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쇼핑이 최종 목적이 아닐 거야.”“위로하는 거예요?”진윤은 배준우더러 고은영을 잘 위로해주라고 했다.“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네 큰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단순하게 쇼핑하는 게 목적일 리 없어.”배준우가 확신하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준우는 허락하는 고은영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 다 지나갈 거야.”“나씨 가문 쪽은...”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고희주의 일로 마음 아팠지만 배준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은영에게 짧게 키스한 배준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두 개가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해지했어.”“주주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고은영이 걱정하면서 물었다.“그 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다들 발을 빼는 분위기야. 아마도 량천옥 씨가 한 일 같은데.”그래서 배준우도 큰 문제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지나간 일에 대해 배준우는 뭐라고 할 수 없
진정훈이 전화를 건 것은 진정훈에게도 계획이 있어서였다.“진유경을 조심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유경에게 남긴 주식이 있는데 꼭 되찾아올 겁니다.”진유경이라...진정훈은 진유경이 왜 계속 고은영을 끌어내리려는지 깨달았다.그건 바로 진유경이 아직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줘야 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말을 알아듣고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장례식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괜찮다고 전해줘요.”“네.”진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의 뜻을 존중해주었다.하지만 장례식에 고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장례식은 언제입니까.”“이틀 뒤입니다.”“알겠습니다.”이틀 뒤라니. 생각보다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에 배준우는 약간 의아했다.진정훈은 그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래서 그동안 배준우가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도록 전화를 건 것이다....진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배준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진정훈이 아닌 진윤이 걸어온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영원히 고은영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고은영을 꼭 안고 있었다.“여보세요.”배준우는 진윤을 존경하는 편이었다.진윤은 정말 가문의 도움 없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은영이는요? 연락이 안 돼서.”“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왜 기분이 안 좋은 거죠?”“고은지 씨한테 일이 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고은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윤은 머리가 아팠다.지금 고은영에게는 모든 일이 설상가상이었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내가 데리러 간다고 전해줘요.”“내일이요?”“네.”진윤이 대답했다.배준우는 진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진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씨 가문이 얼마나 엉망인지 광고할 셈이었다.진윤이 진성택의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고 친여동생인 고은영을 데리고 밖에서 돌아다닌다면...“어디로 갈 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