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물었다.“제가 이렇게 일도 잘 못하고 하는데 왜 저를 계속 대표님 곁에 남겨두시는 거예요?”고은영 이전의 비서들은 배준우 곁에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다. 제일 길어봤자 3개월이었다. 배준우에게 어떻게든 수작을 걸어보려고 하는 바람에 다들 잘렸다.하지만 그들과 비교했을 때 고은영의 업무 능력은 정말 평범했다. 업무를 질서정연하게 처리하긴 하지만 뛰어나게 잘하는 데 속하진 않는다. 심지어 조금 뒤떨어진다.겉으로는 노련해 보이지만 실수가 잦은 편이라 안심할 수가 없다.배준우는 그녀의 질문에 생각에 빠졌다.배준우가 아무 대답이 없자 고은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제가 술을 잘 마셔서요?”그녀의 말에 배준우는 잠깐 멈칫하며 고민이 섞인 표정을 한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생각해 보면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했다.“응, 그렇지.”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억울한 마음이 몰아쳤다. ‘걱정했던 일이 진짜 사실이었다니.’진짜 그녀가 술을 잘 마시기 때문이었다.배준우가 물었다.“왜? 뭐 다른 능력이라도 있어?”“아니요!”고은영은 더욱더 억울한 말투로 대답했다.다른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자기를 곁에 두고 있다니 고은영은 매우 서운했다.배준우가 말했다.“그래, 자기 인식이 정확하네.”고은영은 할 말이 없었다.“......”자기 인식이라고?사실 그녀는 자기가 동영그룹 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이미 동영그룹을 떠나면 어떤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동영그룹을 떠나서는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룸서비스가 도착했다. 배준우는 먹을 생각이 없었고 계속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다이어트를 한다던 고은영은 디저트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30분 동안 먹는 그녀의 모습에 배준우가 물었다.“안 느끼해?”고은영이 대답했다.“아니요. 너무 배
어쨌든 조보은은 아직 안에 있고, 고은지 쪽에서도 그러고 있으니,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지금 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건 고은영뿐이었다. 돈을 좀 아껴 써야 해야 했는데,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서 어떻게 할지 몰랐다. 고은영이 차갑게 말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네가 어떻게 하는지 나랑 상관있어?”“아니, 누나는 내 친누나잖아. 나한테 이러면 안 돼!”서정우는 더욱 다급해졌다.만약 고은영이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이 번화한 강성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친누나라는 말에 고은영은 더욱더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네가 날 친누나 취급해?”“무슨 말이야, 내 친누나잖아.”서정우는 점점 더 다급했다.고은영이 대답했다.“아쉽네. 난 널 동생으로 생각한 적이 없는데.”“뭐, 야 고은영...”고은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어이가 없었다.하긴 고은영은 정말로 조보은과 서정우를 친엄마, 친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전화를 끊자마자 서정우가 또다시 전화를 걸어왔지만, 고은영은 무시하고 받지 않았다.서정우도 열 몇 번을 걸고서야 포기했다.고은영은 안지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서정우가 회사에 가서 소란을 피우지 않게 주시하라고 말이다.안지영이 물었다.“감히 회사에 와서 소란을 피운다고? 그럼 그 대가가 뭔지 똑똑히 알려줄 거야.”‘조보은의 그 소란을 피우는 방식을 여기에도 써먹는다고? 후회하게 할 거야!’안지영의 반응에 고은영도 마음이 놓였다.“그래. 그럼, 너한테 맡길게.”“걔한테 차릴 예의 따위 없어.”안지영이 또 한마디 거들었다.고은영이 대답했다.“그래! 절대!”서정우에게 예의 따윈 사치다.안지영이 그를 때려서 병원에 입원시킨다 해도 고은영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고은영의 태도에 안지영은 안심했다. 왜냐면 고은영도 저번 고은지처럼 상황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신을 갉아먹는 가족에게 매번 타협하며 그들에게 휘둘리는 것이다.지금은 그 가족이 완전히 흩어졌다.세상에서 제일 하지 말아
고은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 귀여워.” 배준우가 대답했다.‘귀, 귀엽다고?’배준우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고은영은 자신이 환청이 생겼다고 느꼈다. 그처럼 무심한 사람의 입에서 귀엽다는 소리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는 다른 여자에 대해 평가는 커녕 말도 별로 하지 않았다.‘근데 지금은...?’고은영을 반복해서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있다.‘정말 그 정도로 별로인 사람인가?’고은영은 억울한 얼굴로 배준우를 쳐다봤다.“그럼, 저 밥 먹어요? 안 먹어요?”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밥을 먹을지 말지 혼란스러웠다.배준우는 그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그래서 언제 일어날 거야?”“무슨 일 있어요?”고은영은 아직 잠에서 덜 깨서 정신이 없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배준우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곧 6시야, 지금 출발해야 해.”고은영은 멍했다.“...... ‘‘출, 출발이라니!’저녁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근데, 지금 술을 못 마시는데.’배준우의 차가운 눈빛에 고은영은 꾀병을 부리기에 아직 늦지 않았는지 생각했다.“밖에서 기다릴게.”고은영이 대답도 하기 전에 배준우는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고은영은 당황스러웠다.“......”멍하니 침대에 앉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은영이 옷을 차려입고 화장하고 나오자,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배준우가 보였다.이미 깔끔한 차림새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은영이 그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초인종이 울렸다.“띵동 띵동”고은영은 배준우를 쳐다보았다.“또 뭐 주문하셨어요?”“아니, 가 봐.:“네.” 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바로 문을 열지 않고 보안경으로 내다보았다. 밖을 확인하자마자 깜짝 놀라 목을 뒤로 젖혔다.그녀의 순간적인 긴장감에 배준우도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이, 이, 이미월 씨에요.”고은영은 놀란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봤다.지금 그들 방문
하지만 여전히 오만했고 고은영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이미월은 고은영의 옆을 지나갈 때 그녀를 세게 밀쳐버렸다.고은영의 등은 어쩔 새도 없이 차가운 벽 쪽에 부딪혔다.진승연도 눈을 부릅뜨고 고은영을 노려보고는 이미월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준우야,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아?”이미월은 배준우의 맞은편에 앉으며 다소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배준우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는 손에 든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는 이미월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진 않고 낮은 소리로 되물었다.“여기는 왜 왔어?”이미월이 대답했다.“너 만나러 왔지.”조금 화가 난 듯한 말투였다.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진승연은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고은영을 보고 얄미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언니한테 마실 거 한 잔 갖다 줘요. 레몬네이드로요.”진승연의 말에 고은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레몬네이드?’방에는 없고 룸서비스를 불러야 했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방에는 없고 룸서비스 불러 드릴게요.”“룸서비는 맛없어요. 가서 직접 사와요.”진승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진승연의 말에 고은영은 곤란한 듯 배준우를 쳐다보았다.이런 고급 호텔 근처에 레몬네이드를 파는 가게를 찾기도 어려웠다.게다가 저녁 약속 시각이 다가오고 있는데 레몬네이드를 사러 가야 한다.고은영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배준우를 쳐다보는 모습에 진승연은 짜증 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얼른 갔다 와요.”그녀는 배준우가 나서주길 바랐다.레몬네이드를 사 오라고 한 것뿐인데, 서운했다.고은영이 배준우를 멍하니 쳐다보는 모습에 진승연은 더 화가 났다.‘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합의된 관계인 주제에 자신을 진짜 사모님 취급하는 건가?’진승연의 마음속에서 배씨가문 사모님 자리에 어울리는 건 이미월뿐이었다.이미월도 고은영이 배준우를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은영 씨, 가기 싫으면 가지 마요.”이를 악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은영
이미월은 조심스레 말했다.배준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이미월은 이토록 차갑고 냉담한 눈빛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만 그랬던 그의 얼음장 같은 냉정함이 정확히 언제부터 그녀에게도 향하기 시작했는지.이미월은 서러웠다. 하지만 배준우의 눈빛이 하도 냉담해서 감히 뭐라고 하지 못했다.“미안해. 얼른 가!”“나 실장한테 방 예약하라고 할게.”배준우는 차갑게 한마디만 하고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려 했다.배준우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여기서 기다리면 안 돼?”이미월은 벌떡 일어서서 배준우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불편해.”그의 말투는 아무런 온기 없이 냉담했고 그를 따라가던 고은영마저 긴장하게 했다.이미월도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불편하다고?’그가 그녀에게 불편하다고 말했다.‘도대체 그들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이미월은 가슴이 아팠다.배준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은영을 데리고 나갔다.방에는 이미월과 진승연 둘이 남았다. 진승연의 오만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이미월은 걱정스럽게 이미월을 쳐다보았다.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언니, 준우오빠랑 그 여자 진지한 사이가 아닐 거야. 언니 화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진승연을 쳐다보는 순간 이미월은 눈물이 흘렀다. 그러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나한테 화가 많이 났어. 3년 전에 내가 말도 없이 떠나서 그러는 걸까?”3년 전 얘기를 꺼내니 이미월은 더 억울했다.3년 전 량천옥과 배준우의 상속권에 대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실 일을 이렇게 만든 건 다 량천옥이었다.이미월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는데 그가 지금 그녀를 원망하고 있다.생각할수록 이미월은 마음이 아팠다.“근데 언니 3년 전에 왜 떠났어?”이미월의 씁쓸한 말투에 진승연이 물었다.당시 이미월과 배준우가 사귀고 있을 때 다들 그들을 완벽한 한 쌍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둘이 당연히 끝까지 가리라 생각했다.
배준우가 이미월을 대하는 태도만 생각하면 진승연은 분노가 치밀었다. 배준우에 대한 이미월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현재 진승연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배준우가 말없이 떠난 사람인 것 같았다.“그러지 마. 준우가 화낼 거야,”이미월은 흥분한 진승연을 말리며 말했다. 고은영의 물건을 던지지 못하게 그녀를 끌어당겼다.배준우와 고은영이 계약된 사이든 뭐든, 지금 그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고은영이고 배준우는 그런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 절대 자기 아내가 괴롭힘을 당하도록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었다.이미월은 배준우의 성격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었다.비록 그녀도 고은영의 물건을 다 내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배준우가 분노하면 그 대가가 뭔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진승연이 그러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승연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화를 내야 할 사람은 언니라고!”“겨우 3년밖에 안 됐는데 다른 여자랑 결혼했어. 언니에 대한 마음이 부족했던 거라고!”진승연은 말할수록 화가 났다.이미월의 손을 뿌리치고 방에 있는 고은영의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이미월은 겁에 질렸다. 그녀가 말리기도 전에 진승연은 이미 고은영의 물건을 찾아 호텔 복도에 던져 버렸다.이미월은 고은영의 물건이 버려지는 걸 보고, 자신도 모르게 후련한 감정이 스쳤다.배준우는 자신의 거라고...이번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로는 진승연을 말렸다.“승연아, 괜한 소란 피우지 마. 얼른 물건들 다 가지고 들어와.”“가지고 들어오라고? 밖에 내다 버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해.”진승연은 행동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이미월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일어서서 고은영의 물건을 주우려 했다. 그녀는 일어서자마자 진승연이 막았다.“언니는 너무 착한 게 문제야. 그래서 그 여자가 감히 언니 자리를 넘볼 수 있는 거라고.”진승연은 이미월이 고은영의 물건을 주우려 하는 걸 완강하게 막았다.얼마 지나지
아마 호텔 직원의 말을 들은 모양이다.“언니.”“날 정말 이 방에서 쫓아내네.” 이미월은 씁쓸하게 말했다.그를 찾아오면 그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자신을 피할 줄 몰랐다.어제 진승연이 배준우에게 자신이 취했다고 전화를 걸어 그가 자신을 데리러 올 거로 생각했었는데. 결국 그는 오지 않았고 진승연이 다시 전화했을 때는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보아하니, 그는 정말 아무런 감정이 남지 않았나 보다.씁쓸해하는 이미월의 모습에 진승연도 속상했다.“분명히 그 여자가 꾸민 수작이야. 생각 이상으로 추잡한 여자야.”고은영 얘기만 나오면 진승연은 분노가 치밀었다.이미월의 안색도 더 창백해졌다.지금 아무리 그녀에게 불만이 많아도 그녀가 현재 배준우의 아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게다가 곧 그들의 결혼식이다.결혼식에 대해 생각하니 이미월은 더욱더 질투 났다. 정말 웅장하고 굉장한 결혼식이 될 예정이니 말이다.한 편 차 안에서는.고은영은 조심스럽게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그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괜찮아 보였다.고은영의 그 감정변화 요인에 대한 파악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그녀의 시선에 배준우는 그녀의 작은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왜 쳐다봐?”고은영은 재빨리 대답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호텔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배준우는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은영은 순간 멍했다.“대, 대표님?”“안 내려?”“내려요.”고은영은 재빨리 자기 손을 그의 손바닥에 살며시 얹었다.그녀의 소심한 모습에 배준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그녀가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도 배준우 뿐일 것이다.그가 없을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녀가 배준우에게 물었다.“오늘 만날 고객은 누구예요?”그녀는 일에 조금 서툴지 몰라도 회사 고객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꿰고 있었다.어느 도시에서 그가 꼭 만나야 할 고객이 누군지 다 알고 있었다.“유가그룹 대표.”유가그룹이요?순간 고은영은 긴장했다.
배준우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지만, 고은영은 육명호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배준우는 그런 고은영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너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그분 인성이 별로라고 생각해요.”고은영은 솔직히 털어놨다.배준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그의 눈빛에 고은영은 감정을 숨기며 재빨리 말했다.“잘못했어요.”“그 사람 인성이 어떻든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우리한테 쓸모 있냐 없냐가 중요한 거지.”“네, 명심할게요!”고은영은 입을 삐죽거렸다.‘거래 대상의 인성이 배준우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가?’고은영은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보기엔 인성이 아주 중요했기 때문이다.그녀가 삐죽거리는 모습에 배준우의 눈가에 은은한 웃음기가 돌았다.두 사람이 VIP룸에 도착했을 때 안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배 대표.”육명호가 웃으며 일어났다.육명호가 나름 잘생겼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그의 그 교활한 웃음에 고은영은 토가 나올 것 같았다.배준우는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육 대표.”“앉아요.”육명호는 배준우를 룸 안으로 끌어당겼다. 안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아마 육명호가 데려온 파트너인 것 같았다. 예쁘장한 여자였다.육명호의 옆에 나란히 있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미모였다.육명호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고 비서, 오랜만이에요.”고은영은 입꼬리가 떨렸다.‘그놈의 바람기......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하고 그만 웃을 수 없나?’사실 그의 웃는 얼굴은 꽤 매력적이었다.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다운됐다.배준우는 자리에 앉으며 고은영을 흘겨보았다. 고은영도 재빨리 그의 옆에 앉았다.그의 유혹하는 듯한 미소에 고은영은 감히 대꾸할 용기가 없었다.동영그룹 회사 내에 그런 규정이 있다. 어떤 부서 직원이든 몸을 팔아서 거래를 성사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이 규정은 마케팅 부서에 대한 경고이
전화를 끊은 진윤이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지금은 좀 속이 풀렸어?”“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렇게 한 거예요?”“응.”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약간 감동하긴 했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예전 같았으면 고은영의 곁에 무조건적인 자기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일이었다면 도움을 거절할 것이었지만 이번 일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지금 해외에서 난리가 났어. 이 시점에 나태현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도 좋지.”량천옥도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량천옥이 나태현과 싸우고 있는 건 고은지 때문이었다.그러니 지금 진윤이나 배준우가 나태현의 시선을 자꾸만 국내로 돌리게 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건 량천옥에게 좋은 일이다.“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진윤이 고은영에게 얘기해 주었다.고은영은 진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해외에 있고, 나태웅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이제는 나태범이 움직일 것이다. 나태범 세대가 싸운다면 젊은 세대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고은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씨 가문보다 더욱 위태로운 건 우리 언니니까요.”희주가 죽었다.그걸 떠올리면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은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나씨 가문 사람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갈라내고 싶었다.진윤은 고은영 눈에 비친 슬픔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희주가 정말 죽었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눈으로 본 것도 거짓일 수 있는데, 귀로 들은 것은 오죽하겠냐는 말이었다.진윤은 제삼자로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딱 짚어 말할 수 없었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그 소식이 가짜였으면 좋겠어요.”고은영은 고희주를 불쌍하게 여겼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희주가 조영수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아까 왜 돈이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진윤은 고은영의 손을 잡고 쇼핑을 계속했다.점심쯤이 되자 진윤은 지친 고은영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테이블 앞에 놓인 갖가지 음식을 보면서 고은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지 않아요?”“안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진윤이 대답했다.진윤은 진정훈이 왜 그때 그렇게 심하게 날뛰었는지 이해가 갔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먼저 조사한 사람이다.그래서 고은영의 아픔을 알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온 세상의 좋은 것들을 고은영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그러니 고은영의 몫이 진유경에게로 넘어간 걸 알고 미쳐버린 것이다.지금의 진윤도 마찬가지였다.“이거 먹어.”진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어서 고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고마워요, 오빠도 얼른 먹어요.”“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우리 아내가 또 요리를 잘하거든.”“그런데 지금 임신한 거 아니에요? 저까지 가면 민폐죠.”“그래도 요즘 매일 요리하고 있어.”“네?”고은영이 깜짝 놀랐다.“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은영은 임신했을 때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원하는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하긴.게다가 임산부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잘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윤설이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쁜 건 아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럼 최대한 덜 힘들게 옆에서 보살펴줘요.”진윤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그건 나태현이 건 전화였다.“나태현이야.”“계약 해지 때문에 전화한 거겠죠?”고은영이 물었다.아까 차에서 진윤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나씨 가문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배준우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니 나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진윤이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 지금
진호영이 사람들 앞에서 진유경, 김영희와 싸울 줄은 전혀 몰랐다.진유경과 김영희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고 있었다.그 시각.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하러 다니고 있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과 진윤이 장례식 준비도 돕지 않고 서로 재산을 빼앗느라 바쁘다고 했지만 사실 진윤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진성택이 진유경에게 남겨준 물건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진윤이 지금 고은영에게 쓰는 돈이 더욱 많을 것이다.“오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명품을 너무 많이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기다란 영수증 위의 숫자를 본 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배준우와 결혼한 후 돈이 모자랐던 적은 없지만 돈을 이렇게 많이 쓴 적도 거의 없었다.진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왔다. 네 명의 경호원 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부는 란완 리조트로 배송시켰다.“괜찮아. 많이 사. 우리 아내 것도 골라줘야지.”진윤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오빠는 정말 좋은 남자 같아요.”자세히 생각해보니 배준우는 직접 무언가를 사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란완 리조트로 가져오게 했던 것 같다.그리고 고은영은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니 직접 사는 편이 많았다.하지만 진윤은 쇼핑하면서도 자기 아내를 생각한다.진윤이 웃으면서 얘기했다.“배준우도 좋은 남자야.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거야.”“그 사람이 전에 얼마나 나빴는지 몰라서 그래요.”진윤이 배준우를 좋은 남자라고 얘기하자 고은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대답했다.배준우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좋은 남자라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그때의 배준우는 정말... 악랄한...고은영은 그때 유산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다 고은영은 또 나태웅을 떠올렸다.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태웅과 배준우가 같이 고은영을 위협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은 나태웅이 안지영을
결국 진호영이 다가가서 말했다.“할머니, 지금 이 장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윤과 진정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도 명백했다.진성택이 두 사람을 너무 크게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진유경은 진호영이 진윤과 진정훈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호영 오빠, 진윤 오빠랑 정훈 오빠한테 연락해주면 안 돼요? 적어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은영이도요... 아버지는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잖아요.”“그만 떠들어.”진유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호영이 싸늘하게 얘기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고은영의 얘기를 꺼내다니.진호영은 진유경에게서 이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진유경은 진호영의 반응에 멍해졌다.하지만 사람들의 화제는 이미 고은영으로 넘어가 버렸다.다들 고은영을 불효녀라고,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자라고 욕했다.진호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진유경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때문에 은영이는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다고?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눈은 장식이야?”예뻐한 적이 있었나?한 번도 없었다.진성택이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고은영이 진씨 가문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라...”“아버지는 남은 주식을 모두 너한테 남겨줬어. 하지만 친딸인 은영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그런데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하셨다고?”진호영이 모든 것을 까밝히자 진유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호영 오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진유경은 더욱 크게 울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유경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호영은 진유경의 편이었는데 지금은 왜...‘이게 다 고은영 때문이야! 대체 무슨 수로 꼬드겼기에 오빠들이 다 고은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냐고!’“왜 이러냐고? 우리 어머니가 은영이에게 남겨준
이윽고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호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이 진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진호영과 고은영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진호영은 보통 직접 찾아와서 문제를 얘기하는 편이기에 전화를 잘 걸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진호영이 전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진윤에게 전화하자마자 또 고은영에게 전화하다니.고은영이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진윤이 고은영의 전화를 빼앗아갔다.“오빠...”진윤은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꺼버리면 어떡해요. 혹시 언니가 전화라도 하면...”“걱정하지 마. 네 언니는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버리는 건 좀...게다가 고은지가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고은영을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진윤은 자연스럽게 고은영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돌려주지 않았다.“오빠.”“오늘은 나한테 집중해.”그 말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마치 그동안 진윤에게 신경 써주지 않아 삐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영도 어쩔 수 없었다.고희주와 고은지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사실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고희주의 일 때문에 고은지는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었다.“그래요.”“...”“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너한테 뭘 좀 사주려고.”“...”사준다고?고은영은 진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진성택이 죽었다.장례식에 안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굳이 고은영을 데리고 나와 쇼핑을 하는 목적은 뭘까.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윤설의 전화가 걸려왔다.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그런 진윤을 보면서 고은영은 진윤이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진윤과 비교하면 나태현은 정신병이 틀림없었다....진성택은 오늘 화장하게 된다.김영희, 진유경과 진호영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진윤과 진정훈은 결국
숨을 깊게 내쉰 나태현이 얘기했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배준우가 나태현의 말을 끊었다.그때 나씨 가문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게다가 량천옥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나태현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고 나태현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돌아갔다.그 모든 모순의 시작은 량천옥이었다.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씨 가문은 여전히 량천옥과 원한이 있었다.다들 그저 그 원함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고은지가 나타났다.량천옥의 딸이면서 나태현의 딸 엄마인 고은지 때문에 나씨 가문과 량천옥의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요.”우정과 사랑 중에서 배준우는 당연히 사랑이었다.게다가 이번 일에는 나씨 가문에서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또 나태현이 회사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가 위험했다.나태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소리를 들은 배준우는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졌다....다른 한편.고은영과 진윤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진윤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씨 가문과 엮인 프로젝트를 모두 엎어버리라고 명령했다.옆에 있는 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했다. 진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고은영이 진윤의 손을 잡았다.“오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씨 가문이 밉긴 하지만 진윤의 일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진윤이 계약을 많이 해지할수록 진윤에게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진윤은 본인을 걱정해주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부드러운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윤이 얘기했다.“다 필요 없는 것들이야. 나태현은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릿속에는 병원에 있는 고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지는 나태현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눈치채고 얘기했다.“지금 나태현과 량천옥이 해외에서 서로 죽이고 난리가 났어. 만
화가 난 나태범을 보면서 집사는 안절부절못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생각하던 집사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쪽도 걱정해야 합니다.”“진씨 가문? 거기는 왜.”나태현과 량천옥이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태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게다가 배씨 가문에서 계약까지 해지했지...이러다가는 그룹이 파산될지도 몰랐다.“배준우 씨 아내가 진윤 씨와 진정훈 씨의 친여동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 다 그 고은지 씨의 동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나태범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택이 친딸보다 양딸을 더욱 아낀다는 것까지 말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할 때 강성의 사람들은 배준우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신분으로는 배준우의 옆에 설 수 없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은영이 진짜 진씨 가문의 친딸이었다.나태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튿날 아침.고은영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진윤이 도착했다.그리고 조카를 위한 선물도 가득 가져왔다.고용인들이 진윤이 가져온 물건을 보관해주었다.약간 붉어진 고은영의 눈가를 보면서, 진윤이 배준우한테 물었다.“어젯밤 계속 운 거예요?”배준우도 머리가 약간 아팠다.“제대로 자지 못했어요.”진윤이 다가가서 고은영을 마주 보더니 고은영이 입고 있는 귀여운 잠옷으로 눈을 돌렸다.배준우는 정말 딸을 키우는 것처럼 고은영을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원래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작아보였다.“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정말 나가야 해요?”고은영이 올망졸망한 눈으로 진윤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은 병원에 가서 고은지를 보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듯이 얘기했다.“병원 쪽에는 내가 사람들을 깔아놨어. 무슨 일 없을 거야. 가자.”진윤의 말을 들은
하지만 진윤이 내일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의 목적을 떠올리면 고은영은 어쩔 수 없었다.“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윤이 당당하게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배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이미 다 들었지?”“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성택은 사망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장례식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윤은 장례식에 가지 말고 나가서 쇼핑하자고 했다.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넌 어떻게 하고 싶어?”“안 가도 돼요?”고은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웃으면서 쇼핑해야 한다니. 고은영에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배준우도 짐작하고 있었다.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준우가 얘기했다.“아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쇼핑이 최종 목적이 아닐 거야.”“위로하는 거예요?”진윤은 배준우더러 고은영을 잘 위로해주라고 했다.“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네 큰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단순하게 쇼핑하는 게 목적일 리 없어.”배준우가 확신하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준우는 허락하는 고은영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 다 지나갈 거야.”“나씨 가문 쪽은...”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고희주의 일로 마음 아팠지만 배준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은영에게 짧게 키스한 배준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두 개가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해지했어.”“주주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고은영이 걱정하면서 물었다.“그 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다들 발을 빼는 분위기야. 아마도 량천옥 씨가 한 일 같은데.”그래서 배준우도 큰 문제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지나간 일에 대해 배준우는 뭐라고 할 수 없
진정훈이 전화를 건 것은 진정훈에게도 계획이 있어서였다.“진유경을 조심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유경에게 남긴 주식이 있는데 꼭 되찾아올 겁니다.”진유경이라...진정훈은 진유경이 왜 계속 고은영을 끌어내리려는지 깨달았다.그건 바로 진유경이 아직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줘야 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말을 알아듣고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장례식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괜찮다고 전해줘요.”“네.”진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의 뜻을 존중해주었다.하지만 장례식에 고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장례식은 언제입니까.”“이틀 뒤입니다.”“알겠습니다.”이틀 뒤라니. 생각보다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에 배준우는 약간 의아했다.진정훈은 그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래서 그동안 배준우가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도록 전화를 건 것이다....진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배준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진정훈이 아닌 진윤이 걸어온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영원히 고은영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고은영을 꼭 안고 있었다.“여보세요.”배준우는 진윤을 존경하는 편이었다.진윤은 정말 가문의 도움 없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은영이는요? 연락이 안 돼서.”“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왜 기분이 안 좋은 거죠?”“고은지 씨한테 일이 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고은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윤은 머리가 아팠다.지금 고은영에게는 모든 일이 설상가상이었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내가 데리러 간다고 전해줘요.”“내일이요?”“네.”진윤이 대답했다.배준우는 진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진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씨 가문이 얼마나 엉망인지 광고할 셈이었다.진윤이 진성택의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고 친여동생인 고은영을 데리고 밖에서 돌아다닌다면...“어디로 갈 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