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비록 다들 한 건물에서 업무를 보았지만 한 달에 한 번도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그렇게 가끔 얼굴을 보아도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인데, 오늘 나태웅의 사무실로 가는 횟수는 안지영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이러다가 은영이 그 바보보다 내가 먼저 들키는 거 아니야?’안지영은 조심스럽게 나태웅을 바라보며 물었다.“나 실장님. 또 어쩐 일로?”‘한꺼번에 말하지 진짜!’지금 안지영은 심리적인 고문을 당하고 있다. 그녀는 고은영이 왜 배준우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이해가 됐다.왜냐하면...... 성격이 너무 옹졸하다.종일 돌발상황이다.하지만 안지영은 갑자기 고은영이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은영은 배준우 옆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한 비서였다.전에 비서들은 한 달을 초과하지 못했는데 고은영은 해를 넘겼다. 이것은 그녀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그런데 아무리 바보가 아니더라도 놀라서 정신병 걸리겠지?’나태웅은 안지영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임신했어?”안지영은 순간 머리가 뻣뻣해졌다.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태웅을 바라봤다.‘미친 거 아니야? 왜 저런 질문을.’“아닌데요.”안지영은 고개를 저었다.나태웅이 다시 물었다.“정말 아니라는 거지?”“왜요? 설마 그 이유로 저 해고하려고요?”안지영은 버럭 화를 냈다.‘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이 남자들은 할 일도 없나? 왜 여자들에게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대표님도 그렇고, 왜 아직도 남성의 일에 집착해? 이러다가 은영이와 나 두 사람 모두 정신병이 걸릴 거야!’나태웅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말했다.“그건 아니고, 임신 확인차 불렀어.”“아니에요!”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근데 고은영 씨는 안지영 씨가 임신했다고 하던데.”‘뭐지? 무슨 상황이지? 설마 대표님한테 또 고문이라도 당한 거야?’안지영은 고은영이 안쓰러웠지만 왜 그녀가 자기를 임신했다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럼 했어요!”안지영이 갑자기 말을 바꾸자 나태웅은 쌀쌀한 눈
안지영은 어떻게 사무실에서 나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3일이라는 두 글자가 메아리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3일 뒤, 그녀는 고은영을 팔아야 했다.아니면 남성에서의 그날 밤, 배준우의 방에 있었던 사람이 자신이라고 인정해야 했다.후자는 절대 성립해서는 안 되었다, 안지영이 인정해 버린다면 배준우는 배씨 가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그녀와 가족들은 길거리로 쫓겨나 거지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어떡하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항상 똑똑하고 침착하던 안지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결국 안지영은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이 얼마 가지도 않고 끊겨버렸다.휴대폰을 잡은 안지영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순간, 고은영이 배준우에게 심문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그녀였다.안지영은 절망스러웠다, 지금 그녀와 고은영은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머지않아 안지영은 다시 다른 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아버지, 저 오늘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싶어요."안지영은 상대방이 입을 떼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동영에서 버는 돈으로 밥도 못 해 먹고 사는 거야?"안지영의 아버지 안진섭이 하찮다는 듯 말했다."아버지랑 같이 밥 먹고 싶어서 그러죠, 저를 그렇게 쓸데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 주시죠."안지영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밥 한 끼 먹자는 거 가지고 그런 소리를 하다니.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이 동영그룹의 판매왕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걸까?’"너 원래 쓸데없어!"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늘 자신에게 편견이 있는 안진섭이 안지영은 늘 불만이었다."그래서 저녁 먹으러 가요, 말아요.""와야지, 말까지 꺼내놓고 안 오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아버지와 함께 사직하는 일에 관해 얘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계속 동영그룹에 있다가는 심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또 무슨 사고 친 거야?"안지영이 전화를 끊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배준우가 량천옥을 피해 해외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면 두 사람의 결혼도 끝을 봐야 했다.그때가 되면 배준우는 자신의 첫사랑인 이미월을 찾아갈 것이고 고은영은 여전히 고은영으로 남게 될 것이다."저 내일 출장 가야 하니까 짐 정리 해주세요."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배준우가 아주머니께 말했다."네, 도련님."아주머니께서 공손하게 배준우에게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너도 준비해."배준우가 다시 고은영을 보며 말했다.고은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저도 가요?""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어?"전에는 고은영을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배준우가 출장 갈 때마다 고은영은 그를 따라갔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그가 자신을 데리고 가는 것이라고 고은영은 생각했다."지금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고은영이 배준우의 시선을 받으며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갔다.하지만 방으로 돌아간 그녀는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하던 배준우를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다.전에 안지영과 계획을 세울 때, 고은영은 배준우가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하면 그가 출장을 간 사이, 병원으로 가 아이를 지우기로 했었다.‘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그녀는 배준우의 스케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내일의 출장 말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배준우는 출장 갈 일이 없었다.그렇게 되면 아이는 벌써 4, 5개월에 접어들었다.‘그때 이 아이를 지울 수나 있을까?’고은영은 그 생각을 하니 울고 싶었다.방금, 안지영과 통화까지 한 고은영은 걱정되는 마음에 방문을 걸어 잠갔다.그리고 고은영이 다시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그녀의 휴대폰이 먼저 울렸다.서정우가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은 고민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지만 곧바로 고은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응, 언니.""오후에 병원에 올래?"고은지가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이따 갈게."지금 고은영은 고은지의 곁을 지키고 있
고은영은 결연한 고은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정말 칼로…"고은영은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녀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그동안 자신들을 돌봐준 고은지에게 조보은은 어떻게 매정하게 그런 짓을 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하지만 자신을 할머니에게 집어던지고 그동안 고은지를 대한 태도를 생각해 보면 조보은이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응, 맞아."고은지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니 조보은이 더욱 미워졌다."너 이제 병원 안 와도 돼.""왜?"고은지가 생각해 보더니 다시 말했다."서정우가 강성으로 온다고 했어."서정우는 조보은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에 두 자매에게 손을 내밀 줄 밖에 몰랐다, 특히 돈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서정우는 두 자매에게서 어마어마한 수자의 돈을 얻어갔다.고은지는 이번을 계기로 그동안의 모든 일들을 제대로 해결할 심산이었다. 사람은 선이라는 게 있어야 했다. 아니면 결국 상처받는 건 자신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따라서 다치게 되었다."언니 혼자 괜찮겠어?"어쨌든 고은지는 지금 입원해 있었기에 고은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상처 안 깊어서 걱정할 필요 없어."고은지는 고은영을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이번 일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조보은은 앞으로 두 자매를 괴롭힐 것이 분명했다.고은지는 그동안 자신이 고생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조보은이 고은영까지 해치게 할 수 없었다."그래, 그럼."고은영은 여전히 걱정되었지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은지가 이렇게 단호한 건 처음이었기에 고은영은 고은지가 말했던 것처럼 그녀 스스로 마주하게 할 생각이었다.고은지는 이번을 계기로 씩씩하게 스스로 일어나야 했다.그동안 연약하게 굴었으니 이제 일어설 때도 되었다."서정우 제일 먼저 병원으로 나를 찾아올 거야, 내가 상대해 주지 않으면 너를 찾아갈 거고."고은지가 고은영에게 귀띔해 줬다."나 내일 대표님이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왜 이런 역겨운 말만 하는 것인지 고은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너같이 가족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 제일 역겨워."서정우도 말이 통하지 않는 고은영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그래도 가족 돈만 가져가려고 하고 가족들 피 빨아먹으려고 하는 너희보다 낫지 않아?"고은영이 서정우를 비웃었다.예전의 그녀는 서정우 같은 사람을 거들떠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지금 그녀는 인정사정없이 서정우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고은영의 말을 들은 서정우는 멍했다.그의 기억 속에서 고은영은 늘 담이 작았는데 오늘은 낯설었다."역시 큰 도시로 간 사람은 다르구나, 이제 이런 말도 감히 하고.""왜, 너 따위가 평생 나를 짓누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서정우는 고은영의 말을 들으니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너 이미 강성으로 오고 있는 거지?""응, 그러니까 내일 아침 9시에 기차역으로 나 데리러 와."서정우 이 멍청한 것이 아직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고은영은 할 말이 없어졌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역겨운 점 한가지가 바로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마치 기생충 마냥 숙주를 벗어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너를 데리러 가라고? 꿈도 꾸지 마.""나 강성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런 나를 그냥 두겠다고?""너 따위한테 내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고은영의 말을 들은 서정우가 화가 나 욕을 지껄였다."그리고 나 내일 출장이라서 너 나 못 봐.""뭐? 출장? 안돼, 너 못 가.""내가 왜?""네가 큰누나 설득해야지, 지금 출장 가면 나 혼자 어쩌라는 거야?"서정우는 조보은이 왜 들어갔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전에 했던 전화나 오늘 했던 전화에서 고은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고은영은 고은지가 그동안 서정우를 위해 돈을 쓴 것이 참 아깝다고 생각했다."네 일을 왜 나한테 물어?"고은영이 멍청한 질문을 던지는 서정우에게 차갑게 말했다."그럼 돈이라도 좀 줘."역시 그의
고은영은 화를 잔뜩 내고 있을 서정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하지만 고은지도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돈을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 화가 조금 풀렸다.매번 고은지가 그들에게 타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은영은 답답했었다.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끝을 보게 되었다.고은영은 다시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더 머리가 아픈 건 자기 일이었다."너한테 또 무슨 일이 생긴 거라고 말하지 마."안지영의 목소리는 풀이 잔뜩 죽어있었다."왜 그래?""너 배 대표님이랑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나 실장이 나한테 임신했느냐고 물어보는 건데.""그래서 너 뭐라고 했는데?""아니요, 네 맞아요!"안지영이 말했다, 그녀는 오늘의 일만 생각하면 심장이 아팠다."그러니까 임신했다는 거야, 말았다는 거야?""나 실장이 지금 그날 밤 여자가 너 아니면 나라고 의심하고 있어."‘이렇게 심각한 정도까지 발전했다니?’고은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창백했다."너는 뭐라고 했는데?""나 실장이 나한테 3일 주겠다고 했어."그러니까 안지영은 잠시 안전하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고은영은 3일이라는 말을 들으니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옥죄는 것 같았다.그리고 고은영이 말을 하기 전, 안지영이 다시 덧붙였다."나 실장이 지금 너 아니면 나라고 아주 확신을 하고 있어.""그럼 이제 어떡해?"나태웅이 확신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고은영은 좋은 세월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안지영은 무슨 일이나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은영아, 너 도대체 어떻게 오늘까지 버틴 거냐?"‘어떻게 오늘까지 버텼느냐니? 안지영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바로 그녀는 지금 충분히 힘들고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는 뜻이었다."그냥, 무서워하면서 버텼지."고은영은 그동안의 심정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매번 외줄 타기를 하듯 조마조마한 마음으
전에는 확실히 이렇게 얘기했었다.아니면 두 사람은 내일 배준우가 출장 가는 일을 두고 계획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방금 그렇게 말했어, 자기랑 같이 출장 가자고.""그럼 어떡해?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처리하기 힘들어질 텐데. 아이 3개월 되면 낙태도 못 해."그런 법률이 있다는 것도 고은영은 아예 모르고 있었다.배준우가 다음 출장을 떠날 때면 아이는 벌써 4개월이었다.고은영은 그 생각을 하니 더욱 답답해졌다.지금 그녀에게는 고민할 시간도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나 어떡해야 하는 거지?""출장 안 갈 생각을 해야지.""무슨 방법이 있을까?"안지영이 오늘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고은영은 일이 이렇게 심각해졌는지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아픈 척하자.""그런 안 돼."고은영은 아픈 척은 더 이상 하기 싫었다. 전에 임신했을 때, 백 어르신 때문에 마음 졸였던 것만 생각하면 고은영은 힘들어졌다."배 대표님 개인 의사가 있어서 내가 아프다고 하면 분명 그분한테 부탁하실 거야."그러니까 아픈 척을 하는 건 아예 통하지 않았다."그럼 너희 언니는?"고은지 핑계를 대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안지영은 곧 고개를 저었다.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출장을 가기로 마음을 먹은 상황에서 고은지의 얘기를 한다면 그는 직접 사람을 안배해 고은지가 있는 병원으로 보낼 것이 분명했다.결국 좋은 방법은 없었다."혼자 알아서 해."한참이 지나 안지영이 한마디 뱉었다.그녀도 더 이상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기 힘들었다.배준우가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분명 이렇게 쉽게 마음이 변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고은영은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마치 배준우가 모든 것을 알고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안지영은 그런 생각을 하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3일 뒤,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지도 몰랐다.안지영은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고은영은 3개월 후면 아이를 지울 수 없다는 안지영의 말을 듣고 나니
"사모님, 조심하세요. 갓 냄비에서 가져온 거예요."아주머니께서 얼른 차가운 물을 건네주며 말했다.고은영은 눈물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았다.배준우는 그런 고은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배준우가 아주머니에게서 물을 받아 그녀에게 건넸다.눈물을 글썽이는 고은영을 보는 배준우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예전의 그는 여자가 우는 것을 보면 짜증이 났다. 하지만 고은영이 울먹이는 모습을 봐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고은영은 차가운 물을 들이켜고 나서야 조금 편안해졌다."사모님, 얼음 좀 물고 계세요."아주머니께서 이번에는 얼음을 가져와 말했다."아 해."배준우가 얼음 통에서 얼음 하나를 꺼내 고은영의 입가로 가져가자 고은영이 얌전하게 입을 벌렸다.얼음이 입으로 들어간 순간, 따가웠던 느낌이 조금 사그라졌다."아파요."고은영이 불쌍하게 배준우를 보며 말했다."이제 아픈 줄 알겠어? 앞으로 밥 먹을 때 정신 좀 집중해서 먹어."배준우가 조금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불쌍한 얼굴을 한 고은영을 향한 질책도 조금 담겨있었다.고은영은 아픈데다가 엄숙한 배준우의 말을 들으니 더욱 눈물이 났다.결국 고은영이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배준우는 그 모습을 보더니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울지 마!"고은영의 그 목소리에 얼른 눈물을 거두었다."예전에는 일하는데 덤벙거리는 줄만 알았더니 이제 보니 밥도 제대로 못 먹네. 고은영, 너 정말 여태껏 살아온 것도 대단하다."배준우는 이렇게 덤벙거리는 고은영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억울해졌다.그녀는 덤벙거리는 것이 아니라 배준우가 무서운 것이었다.하지만 배준우의 앞에서 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이제 좀 괜찮아?"배준우가 고은영을 보며 물었다."네, 조금 괜찮아졌어요."고은영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웠다."좀 아파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짓 안 하지."고은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