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제훈의 목소리는 유독 차가웠다. 온몸을 휘감고 있는 싸늘한 기운에 다른 아이들은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아를 놀려줬던 아이들 모다가 별명 하나씩 갖게 되었다.도제훈은 외모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수아를 먼저 놀려줬다면 얘기는 달랐다. ‘감히 수아를 놀려? 어디 한번 놀림당하는 기분이 어떤지 느껴봐.’역시나 도제훈이 여자애들에게 별명을 붙여주자 반 남자애들은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다.“까마귀! 이빨 빠진 두더지! 돼지! 앞으로 이렇게 부를게!”남자애들의 짓궂은 장난에 여자애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우세정은 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왔고 선생님을 보자 여자애들은 바로 고자질했다.“선생님, 도제훈이 우리한테 별명을 지어주며 놀려요!”“저를 뚱뚱하다고 놀려댔어요, 엉엉엉…….”우세정은 아이들의 말에 깜짝 놀랐다.‘제훈은 아무리 봐도 교양 있고 점잖은 아이 같은데 그런 일을 할리가?’하지만 그때…….“선생님, 얘네가 먼저 별명을 부르면 친해 보인다면서 수아한테 벙어리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 받은 게 있으니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별명 하나씩 지어준 거예요.”도제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다른 친구들이 증언해 줄 수 있어요.”도제훈의 말에 옆에 있던 남자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얘네가 먼저 도수아를 벙어리라고 놀려서 도제훈이 얘네한테도 별명을 붙여준 거예요.”그제야 우세정은 모든 의문이 풀렸다.자기 반에 전학 오는 두 아이 중에 자폐 어린이도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자신만만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의 어머니를 설득한 것이 불과 어제 일이다. 그런데 결국 하루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우세정은 휴지를 뽑아 울고 있는 여자애들에게 건네주며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이제 별명이 얼마나 상처되는지 알겠지?”자기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선생님마저 엄격한 태도로 말하자 아이들은 흐느끼며 대답했다.“알…… 알겠어요.”“
“새로 전학 온 여자애 엄청 예쁘던데 자폐 아동이래요. 상황이 심각해 보이던데.”“우리 유치원에 이렇게 심각한 자폐 아동은 처음 받지 않아요? 이런 애들은 특수 학교로 보낼 것이지 왜 우리 유치원으로 왔는지.”“자폐 아동은 공격적인 경향도 있다던데 만약 다른 애들을 공격이라도 하면 어쩐대요?”듣다 못한 우세정은 교무실 문을 홱 열여 젖혔다.“수아가 자폐 아동인 건 맞지만 아직 공격성은 없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들도 어린애 뒤에서 이런 얘기 하지 마세요.”“공격성이 나타난 다음 막으려면 늦어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이유를 찾아 내보내는 게 낫지. 이런 자폐증 환자는 치료가 어렵다고요. 그런 애를 일반 유치원에 보내는 게 선생들 힘들어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돼요?”중년 선생의 의미심장한 말투에 우세정의 낯빛은 순간 어두워졌다.“힘들더라도 제가 힘드니까 선생님은 신경 꺼주셨으면 좋겠네요.”그리고 말을 마친 뒤 교무실 문을 다시 홱 열어젖히고 빠져나갔다.그녀가 떠나고 난 뒤, 문어 구 부근의 기둥 뒤에 숨어있던 작은 인영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도제훈의 표정은 유독 차가웠다.해외에 있든 국내에 있든 동생이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벌어졌었다. 때문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반드시 엄마가 알기 전에 처리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엄나가 마음 편히 일하지 못할 테니까.’도제훈은 바로 가방 안에 있는 노트북을 꺼냈다.보통 아이들에게 노트북은 그저 게임을 하는 게임기에 불과하다면 도제훈에게 있어 노트북은 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다.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린지 얼마 되지 않아 바탁화면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각종 영문 기호가 튀어나왔다.그리고 십분 뒤.도제훈은 노트북을 덮고 일어서더니 교무실의 문을 열어젖혔다.교무실에서 도수아에 대해 이것저것 떠들어대던 선생님들은 이제는 각종 지라시로 주제를 바꿔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문 앞에 웬 아이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얘야, 너 어
“뒤에서 학생 험담이나 하는 것도 교육자의 도덕에 어긋난 거 같은데요.”침착하게 받아치는 도제훈을 보자 중년 선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교사 인생 십몇 년을 하면서 그녀한테 이렇게 구는 학생은 아마 도제훈이 처음일 거다. 게다가 그 상대가 고작 네다섯 살 되는 어린애라니.그런데 그때 같은 공간에 있던 다른 선생 하나가 도제훈을 알아봤다.“이 선생님, 이 애가 바로 그 9반 전학생이에요. 이름이 아마…… 도제훈이랬나. 맞아요, 도제훈!”다른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왜 갑자기 쳐들어왔나 했더니 동생을 자폐 아동이라고 말했던 걸 들은 거였어?’“도수아는 제 동생이에요.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도제훈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며 하나도 꿀리지 않는다는 듯 중년 선생을 쏘아보았다.“앞으로 다시 이런 말이 들리면 교육청에 신고할 거예요.”교육청과 신고라는 말은 선생에게 있어 확실히 무서운 협박이었다. 이에 놀란 선생들은 연신 뒷걸음을 치다가 번뜩 자기를 협박하는 사람이 고작 네다섯 살짜리 애라는 걸 인식했다. 자기가 어린애의 협박에 놀랐다는 게 자존심 상했는지 이 선생은 버럭 화를 냈다.“어린 것이 감히 교무실에서 와서 소란을 피워? 못 배워먹은 티를 내나? 당장 네 어머니더러 데리러 오라고 해!”“전화하기 전에 제 말 좀 들어보세요.”도제훈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분필 하나를 쥐고 사무실 뒤편에 있는 흑판에 숫자를 적어댔다.“선생님 교사 생활도 18년이 되어가는 거로 아는데 그 18년 동안 개인 자산이 몇 배로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확인해 봤더니 몇 년간 학부모들한테서 돈을 꽤 받았던데요. 백 단위부터 억 단위까지.”도제훈은 말하면서 입꼬리를 올렸다.“그걸 몇 년간 해왔으니 자그마치 10억 가까이 되던데요. 법률 조항에 따르면 이걸 횡령이라고 하던가? 단위도 크니 형사 처벌은 피하지 못하겠죠?”아이의 말에 이 선생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 그게 무슨 헛소리
도제훈이 반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우세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마침 너 찾으러 가려 했는데. 어디 있었던 거야?”“화장실 갔어요.”도제훈은 짤막하게 대답하며 교실로 들어오더니 도수아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하지만 그런 도제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자꾸 이상한 기시감이 드는지 우세정은 알 수 없었다.어린애한테서 느낄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매번 귀엽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고 앳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기가 착각했겠지 하며 생각을 부정하곤 했다.유세정은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시간이 끝난 뒤 이 선생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로 향했다.그렇게 도착한 교무실에는 방금 전 수아를 뭐라고 하던 여섯 명의 선생님이 모두 있었다. 그들은 우세정을 보자 하나 둘 둘러싸더니 나지막하게 부탁했다.“우 선생, 도제훈 학생의 동생 말인데, 물론 자폐 아동이지만 우리 유치원이 그 방면 경험도 있으니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요.”“도수아처럼 예쁜 애는 우리 유치원 자랑이니 잘 돌봐줘요. 절대 퇴소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우 선생, 만약 수아 케어가 힘들면 우리 반으로 옮겨오게 해도 돼요.”“…….”갑자기 돌변한 사람들의 태도에 우세정은 표정이 굳었다.“아까만 해도 저더러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수아 내보내라면서요?”“아까 그건 우리가 우 선생을 시험한 거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나.”이 선생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우 선생 앞으로 지금처럼 책임감과 사랑을 발휘하여 수아에게 도움을 줬으면 해요.”도제훈이 그녀들의 횡령 증거를 갖고 있는 이상 수아가 퇴소하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제훈이 그들의 횡령 사실을 공개할 테니. 그러면 직업도 돈도 체면도 모두 잃게 된다.그걸 막으려면 두 아이를 잘 보살펴 순조롭게 학교까지 보내는 수밖에.우세정은 다른 선생님들이 태도를 바꾼 이유에 대해 의문이었지만 자기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수아를 색안경 끼고 보지 않기에 당연히 다른
귀국하고 새로 전화번호로 바꾼 뒤 그 번호를 알려준 사람이 몇 없었기에 도예나는 당연히 광고 전화일 거라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상대는 끈질기게 또다시 전화해왔다.그제야 도예나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예나니?”중후한 중년 남자의 음성에 도예나는 순간 얼굴이 구겨졌다.상대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도진호였다.그녀가 귀국한지 벌써 며칠째인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이제야 전화한 거다.‘참으로 자애로운 부친이 따로 없네.’도예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싸늘하게 말했다.“도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에 도진호는 목이 메어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제 목소리를 찾았다.“예나야,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거 안다. 그런데 너도 이 아비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거다…… 그때 네가 집에 불을 지르고 간 것도 모자라 귀국하기 바쁘게 도 씨 가문과 전쟁을 선포했는데 내가 화나지 않고 배겨?”“그러니 도 사장님 말씀은 딸이 회사보다 못하다는 뜻이네요. 그렇다면 저한테는 뭣하러 전화하셨나요?”도예나의 목소리는 유독 싸늘했다.“우리가 그래도 피를 나눈 사이인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대립할 수만은 없잖니?”도진호가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게 전화 건너편에서도 느껴졌다.“예나야. 넌 내 친 딸이자 첫째 딸인데 내가 어떻게 걱정이 안 되겠니? 너 도 씨지 서 씨가 아니야. 제 집을 놔두고 외가에 가 있는 게 말이 돼? 내가 사람을 보낼 테니 집으로 돌아와.”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도중 도예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갑자기 잘해주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다시 집으로 불러들여 도설혜에게 손쓸 기회를 주라고?’아쉽지만 도예나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었다.“됐어요. 저 그 집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도예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그 말에 도진호는 핸드폰을 내팽개치려는 욕구를 겨우겨우 눌러 참았다.‘고얀 것. 내가 먼저 머리를 숙였는데 거절해? 예전에는 귀엽고 말만 잘 듣던
전화가 끊긴지 한참이 지났지만 도예나는 여전히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따지고 보면 할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게 맞았다. 실종된 4년을, 자기의 공백을 할머니에게만큼은 설명해야 했다.하지만 할머니가 아직도 그녀를 예전처럼 대해줄지가 걱정됐다. 두렵기도 했다…….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그때.“엄마, 음식 다 타요.”도제훈이 코를 찡그리며 그녀를 일깨워줬다.그제야 도예나는 다급히 핸드폰을 내려놓고 요리에 다시 몰두했다.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엄마표 밥상이 완성됐다.그때 수아가 음식 냄새를 맡았는지 부르지도 않았는데 쪼르르 달려와 걸상에 앉았다. 그러고는 당장 음식을 내놓으라는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에 도제훈은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엄마, 수아 좀 봐요. 엄청 귀여워요.”도예나는 장국 세 그릇을 들고 오면서 눈웃음을 쳤다.“우리 수아 얼른 먹어. 많이 먹어야 예뻐져.”수아는 아무 대답 없이 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밥을 한 술 크게 퍼서 작은 입안에 구겨 넣었다.작은 몸 안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음식이 들어가는지 얼마 안 되는 사이에 계눈감추듯 사라졌다.그 시각 강 씨 저택.최고급 셰프가 선보인 최고급 요리. 없는 것 없이 영양을 따져가며 골고루 넣어 만든 식단. 긴 식탁을 거의 메울 정도로 쫙 깔려있는 것과는 달리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오직 둘뿐이었다. 다름 아닌 강현석과 강세윤.하지만 산해진미를 앞에 놓고도 두 부자의 표정은 마치 늦겨울에 접어든 것처럼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강세윤은 끝내 그런 분위기를 참지 못했는지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작은 입을 삐죽거렸다.“나 안 먹을래요.”그러고는 제멋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누가 너더러 가라고 했어?”역시나 강현석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집에서는 반찬투정하는 거 용납 못해. 당장 앉아. 다 먹고 일어나.”“아빠. 저 이제 밥 마음대로 먹을 자유도 없어요?”강세윤은 허리를
“네.”양 집사는 바로 대답했다.강현석이 평소에 차갑고 엄격하지만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두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누군가 아버지의 사랑은 산과 같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바다에 비유하고 싶었다. 바다처럼 깊고 알 수 없으며 모든 걸 다 포용할 수 있기에.그 시각 2층 테라스에 앉아 있는 강세윤의 눈에는 이미 뿌연 눈물이 맺혀있었다.하지만 그건 배가 너무 고파 가방에 있던 과자를 먹다 목에 걸리는 바람에 생겨난 거였다.“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미워…….”강세윤은 눈물을 훔치며 꽥 소리쳤다.‘아빠 나빠. 맨날 나한테만 못되게 굴고 이제는 집에 가둬놓기까지 하고. 집에서 재미없는 공부나 하게 하고. 나가고 싶은데, 예나 이모도 보고 수아 얼굴도 만지고 싶은데…….’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상황이 답답하고 괴롭기만 했다.그러던 그때 스마트워치가 갑자기 울렸다.힐끗 확인해 보니 전화 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형이었다. 강세윤은 놀라 다급하게 눈물을 닦고 아무 일 없는 듯 수신 버튼을 눌렀다.“강세윤. 너 하다 하다 이제는 혼자 숨어 울기까지 하냐?”강세윤은 형의 말에 흠칫 놀랐다.“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너 잊었어? 우리 쌍둥이야.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네가 울 때마다 알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슬퍼하는 거 같길래 전화했어. 말해 봐. 왜 우는데?”강세훈의 덤덤한 물음에 강세윤은 순간 난처했다.“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어. 그래서 아파서 울었어.”“그래? 그러면 집사 할아버지 불러줄까?”“아니야!”강세윤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형, 그렇게 총명하지 않으면 어디 덧나?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 그냥 기분 나빠서 울었어. 나 이제 혼자 숨어서 울 자유도 없어?”“내가 언제 울지 말랬냐? 그저 누구 때문에 우는지 궁금하단 뜻이지. 네가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마. 나 끊는다.”“아, 잠깐만.”관심을 보이던 강세훈이 갑자기 관심 없다는 듯 덤덤하게 말하자 강세윤은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
강세윤은 버럭 화를 냈다.“형. 내가 기분 좋게 말하고 있는데 꼭 그렇게 찬물을 끼얹어야겠어? 이제 형이랑도 말 섞지 않을 거야. 흥!”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도 뚝 끊어버렸다. 순간 맛있기만 하던 과자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하지만 그 시각, 강세훈은 심각한 얼굴로 옆에 있는 비서를 바라봤다.“저 내일 성남으로 돌아가야겠어요. 가장 빠른 티켓으로 끊어줘요.”“큰 도련님. 내일 계열사로 가봐야 해요. 모레는 해외 투자 미팅도 있고요. 강 대표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거라서…….”“그러면 3일 뒤로 예약해 줘요.”강세훈은 뚱한 얼굴로 비서의 말을 잘랐다.도예나라는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어머니의 가문을 공격했는데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게다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강세윤한테 접근했는지 모르겠지만 바보 같은 동생이 그 여자한테 홀랑 넘어가는 걸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친 할머니의 칠순 잔치는 날. 도예나는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곧바로 도 씨 저택으로 향했다.얼마 전 있었던 일들 때문에 도씨 가문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기에 집안 어르신 칠순인데도 성대하게 치를 수 없었다.때문에 오늘 칠순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도씨 가문의 가장 친한 친척들뿐이었다.그리고 도예나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녀에게로 집중됐다.“정말 나나구나. 나나가 정말 살아돌아왔네.”“나나야, 4년 전보다 더 예뻐졌네. 이리 가까이 와봐. 우리 나나 얼굴 좀 보자.”예나의 둘째 숙모와 셋째 숙모가 가장 먼저 도예나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궁금한 게 어찌나 많았는지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부었다.차가운 아버지보다 두 숙모의 물음이 도예나의 마음을 따스히 녹여주었다. 도예나는 두 사람을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둘째 숙모, 셋째 숙모도 더 젊어졌는데요?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요. 어쩜 나이를 거꾸로 먹어요?”누가 봐도 사랑받는 사람처럼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