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강씨 형제 앞에서 송이에게 손을 대다니.’‘우리를 물로 보는 거야?’제훈이 차가운 시선으로 서안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강연의 어깨 위로 올려둔 손을 당장 떼지 못해서 안달이었다.서안은 빠르게 눈치를 채고 강연의 손을 놓았다.그러나 강연이 다시 서안의 손을 잡았다.강연은 서안의 차가운 손끝을 잡으며 자신은 무사하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강연이 이렇게 많은 사람앞에서 응답할 줄은 몰랐던 서안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강연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무언의 말을 주고받았다.그러자 참지 못한 강씨 형제가 움직였다.“송이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가장 먼저 소리를 지른 건 세윤이었고 직접 앞으로 걸어가 둘을 갈라놓으며 말했다.“이 손 놔! 당장 놓으라고!”세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강연, 여기로 와!”세윤은 빠르게 강연을 세훈의 옆으로 데려다주었고, 서안과 강연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전서훈은 강씨 가문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환한 미소를 지은 서훈이 승리자다운 표정을 지었다.“큼큼.”주먹으로 입가를 가린 서훈이 말했다.“서안아, 여기로 오렴. 강씨 형제분들을 놀라게 하지 말고.”그 말에 강씨 형제의 표정은 더 굳어갔다.서안은 말없이 세윤의 등 뒤로 숨겨진 강연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서훈의 뒤로 걸어갔다.“어렵게 모인 자리인 만큼 오늘은 제가 감사의 의미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서훈은 식사 자리를 빌려 서안과 강연이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주려 했다. 서훈은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세훈에게 지어 보였다.강씨 형제 중에서 세훈의 발언권이 가장 높았으므로 세훈의 허락만 맡으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두 사람 모두 가문의 맏이로 태어나 두 녀석이 정말 결혼하게 된다면 앞으로 교류가 빈번해질 건 뻔했다.서훈은 먼 미래도 미리 생각해 두었으며, 심지어 서안과 강연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지어줄 이름도 생각했었다.그러나 강씨 형제의 표정은 하나같이
전서훈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근심 어린 눈빛으로 전서안을 바라보았다.강연은 세윤을 밀어내고 앞으로 달려갔다.눈에 띄게 이상한 서안의 증세를 확인한 강연은 너무 급한 나머지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말을 시도했다.“기다... 려...”그 목소리에 서안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눈동자에 가득 찼던 먹장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서안은 강연을 바라보며 불확실한 말투로 물었다.“강연아, 네 목소리가 왜?”강연은 빠르게 눈시울을 붉혔고 입을 앙다물고 다시 열지 않았다.서안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서안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말했다.“다시 한번만 말해줘. 네 목소리 듣고 싶어.”강연은 입을 열었으나 다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서훈도 그제야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강씨 형제들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그들의 슬픈 표정을 읽었다.서훈은 세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세훈의 표정도 조금 굳었지만, 여전히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강연이 큰 충격을 받아 실어증 증세가 나타났고 현재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그 말에 서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세윤이 불만이라는 듯 말을 보탰다.“의사가 다시 충격을 받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이틀 동안 겨우 안정이 되었는데 굳이 서안을 만나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니...”세윤은 뒷말을 잇지 않았으나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대충 예상했다.강연의 병은 서안을 만나고 더 심각해졌다.주먹에 불끈 힘을 준 서안의 손끝은 어느새 하얗게 질렸다.서훈의 얼굴도 확연하게 어두워졌으며 인상을 찌푸린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어쩐지 강씨 가문 사람들의 적의가 크더라니.’‘그래서 강연을 해외로 보내려고 했던 거구나.’‘모든 이유가 서안이라서.’그 순간 강씨 형제의 마음이 비로소 모두 이해가 되었다.처음 서안과 강연이 교제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훈도 반감이 들었다. 서안의 증세를 가중시키는 모든 건 치워버렸었던 서훈이었다.그러니 강씨 형제의 마음을
“하지만...”세윤이 무어라 반박하려다가 수아에 의해 말이 끊겼다.“그렇게 많은 이유를 댈 필요 없어. 난 내 동생의 의견만 존중할 거야.”세 형제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무기력함이 담겼다.제훈이 먼저 병실을 박차고 나갔고 세윤은 남은 사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나갔다.세훈은 강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말을 꺼내려 했으나 결국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벗어났다.수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감격해하는 강연과 눈이 마주쳤다.“그래, 얘기 잘하고.”수아는 한숨을 내쉬며 병실을 나섰다.서훈은 아무 말없이 병실을 나서며 문까지 닫았다.소란스럽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강연과 서안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강연이 서안을 눈에 꼭꼭 담는 모습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서안이 추락하던 악몽은 계속해서 강연을 괴롭혔고,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강연은 호흡이 딸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으며 말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실제로 눈앞에 서있는 서안을 보며 강연은 구름 위로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서안... 오빠.”어렵게 뱉은 소리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눈시울이 빨개진 소년은 바로 소녀를 품 안에 가뒀고, 마치 두 사람이 한 몸이라도 될 수 있는 것처럼 꽉 껴안았다.마음속 목소리가 강연을 놓치면 안 된다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그 목소리는 강연을 가두고 옥죄고 잡아먹으려고 했다.강연을 향한 소유욕에 서안 스스로도 공포를 느꼈다.그러나 품에 안긴 강연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서안의 허리에 손을 감고 깊은 마음을 전했다.하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고 서안의 셔츠 자락을 적셨다.힘겹게 울음을 참는 소리에 서안은 강연의 마음속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사람을 되찾은 안도감, 그리고 다시 잃을까 무서워하는 마음.서안은 머릿속이 텅텅 비어지고 강연을 향한 애절한 사랑만이 남겨졌다.서안은 강연의 턱을 잡고 입을 맞췄다. 자신의
강연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바보 같긴.”전서안은 다정한 얼굴로 강연을 바라보았다.“네가 날 찾으러 올 필요 없어. 내가 널 찾아갈게.”강연이 멍하니 서안을 바라보았다.“전정해의 일을 깨끗이 정리하고 나한테 남은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나면 널 만나러 갈게. 그리고 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에게 떳떳하게 인정받고 싶어. 네 가족이 안심하고 널 나한테 맡길 수 있도록 노력할게.”강연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입술을 살짝 깨물며 눈물을 참는 강연은 조용히 서안의 하소연 같기도 고백 같기도 한 이야기를 들었다.“그분들이 정말 안심하고 진심으로 우리를 축복하게 할 수 있도록 할게. 다시 너를 힘들게 하거나 고통받게 하지 않을게. 네 가족과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널 지킬 수 있도록 할게. 모든 걸 다 정리하고 나면 내 아내가 되어줄 수 있을까?”“그러니까 언니랑 프랑스에 가서 잘 지내야 해. 부담 갖지 말고 편히 쉬어. 치료도 받고 일상 속 작은 즐거움을 나한테도 공유해줘. 그러면 우린 함께 있는 거야.”평소의 서안은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늘 강연이 소란스레 떠들면 서안은 옆에서 미소만 지었다.그러나 강연이 실어증에 걸리고 서안은 갑자기 말이 많아졌고 하고 싶은 말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강연은 서안의 품에 안겨 얌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에 보는 이는 마음이 누그러졌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갔다.드디어 참지 못한 문밖의 강씨 형제가 힘껏 병실 문을 두드렸다.노크 소리에 불만과 분노가 담겨있었다.이에 강연과 서안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는 교활한 미소를 지었고 누군가는 상대를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강연은 바로 서안의 품에서 나와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였고, 서안은 성큼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문을 여니 네 쌍의 경계 가득한 시선이 쏟아졌다.“내 동생은?”“내 동생한테 무슨 소리를 한 거야? 괴롭히지는 않았지?”“감히 내 동생 손끝 하나 건드렸다가는 몸이 성하지
강연이 걱정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서훈 자신도 전정해와의 대치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그렇게 큰일을 벌여 놓고 행적을 순식간에 감췄으니 얼마나 많은 걸 준비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그들은 또 한 번의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서안 역시 전정해를 통해 자신의 마음속 그늘을 깨끗이 제거해야 했다.서훈은 강연의 부탁을 받아들였다.그리고 침착하고 차분한 얼굴로 강연을 바라보았다. 선량하고 강인한 아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왜 제 동생 서안이 강연에 죽고 못 사는지 이제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이 아이는 정말 대견해.’서훈의 응답을 받고 강연은 입가에 큰 미소를 지었다.이제 강연은 다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곧장 병실 밖으로 걸어갔다.강연은 이번의 헤어짐은 더 좋은 만남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는 늘 한 사람이 기다리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강연은 형제자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리무진에 올랐다.차는 병원에서 벗어나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그러나 중도에 기사가 속도를 낮추더니 이렇게 말했다.“도련님, 누군가 우리 차를 뒤쫓고 있습니다.”세훈이 백미러를 통해 차량을 확인하고 얼굴을 구겼다.‘감히 누가 이렇게 무모하게 대낮에 강씨 가문 차량을 쫓아?’이틀 전 서안의 급습 사건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고 오늘까지도 경찰 통제가 엄격했다. 급습한 가해자를 찾느라 거의 도시 전체가 봉쇄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타이밍에 감히 차량을 뒤쫓는 행위를 하다니, 목숨이 여러 개 거나 생각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세훈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뒤에 따르는 경호팀한테 차량을 막으라고 하세요. 꼭 산채로 데리고 오라고 하세요.”차 안의 강씨 형제들은 무덤덤해 보였다. 그들은 급습이라는 것에 이제 익숙해져 버렸다. 기껏해야 조금 놀랐을 뿐 두려움에 떨지는 않았다.강연은 여전히 고민에 잠겨 있다가 무심결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문의 경호팀
두 차량이 나란히 달리고 흰색 차량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졌다.송예은이 운전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강연아! 가지 마!”강연도 창문을 내리고 들려오는 예은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놀라움과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강연이 손을 저어 차량을 멈추라고 지시했다.“네가 먼저 멈춰! 내가 이 폐차로 뒤를 따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난 정말 대단한 여기사야!” 예은이 운전하며 꿍얼꿍얼 말을 이었다.“강연아! 강연아!”조수석으로 다른 얼굴이 보였다. 나이란이었다.“강연아 제발 차 좀 멈춰줘. 예은이 운전을 너무 무섭게 해. 저세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니까!”나이란이 재촉하지 않아도 리무진은 감속하며 마땅히 주차할 곳을 찾았다.이어 하얀색 차량도 멈췄다.송예은이 안전벨트를 풀고 빠르게 차량에서 뛰쳐나왔다. 세게 문을 닫고 허리에 양손을 척 올린 모습이 제법 씩씩해 보였다.조수석의 나이란도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강연은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마음에 송예은과 나이란을 꼭 껴안았다. 말하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므로 핸드폰을 꺼내 타자를 했다.[너희들은 어떻게 온 거야? 위험하게 우리 차를 쫓다니 목숨이 여러 개야?]“말도 마.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어.”나이란은 방금 경호팀 차량에 포위되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예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그러면 어떡하라고? 내가 쫓아오지 않으면 네가 떠나버릴 텐데. 소문에 따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던데 사실이야?”[누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래?]강연은 웃음이 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다시 이렇게 위험한 행동하지 마!]“전서안! 아니 정확하게는 전서안의 형인 전서훈 대표가!”나이란이 한껏 도취한 얼굴로 말했다.“세상에 전서안이 전설 속의 최고 명문 가문인 전씨 가문이었다니! 게다가 전서안 형도 엄청나게 잘생긴 거 있지? 정말 반해버렸어!”나이란이 정신을 놓고 말을 늘어놓자 예은이 다급하게 말렸다.“할 말만 해!”
강연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뒤로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하세요.”강연과 송예은, 나이란이 고개를 돌리자, 차에서 내린 세훈이 큰 보폭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런 상황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세윤도 함께였다.세훈의 남다른 카리스마에 압도된 나이란은 바로 얌전해졌으며 강연의 어깨에 올려둔 손도 조용히 내렸다. 송예은 역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방금과는 완전히 다른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강 대표님, 안녕하세요!”두 사람이 동시에 인사를 건넸다.세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고 옆의 세윤은 입을 삐죽였다.“나는 병풍인가?”송예은이 조금 당황하나 싶었으나 바로 미소를 장착하고 말했다.“강씨 가문 둘째 도련님 안녕하세요.”나이란은 혀를 내두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강 대표님이 더 잘생겼으니까 그렇지!”“허 나 참!”세윤이 양손을 허리로 올리고 말했다.“너는 왜 매번 나한테 시비야? 나 좋아해?”그 말에 나이란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었다.“둘째 도련님은 참 뻔뻔하시네요.”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세훈은 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세윤아, 나이란 씨는 여성이니 매너를 갖춰야지.”세훈의 말에 세윤 얼굴이 확 굳었고 눈꼬리도 축 처졌다.그에 반면 나이란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감사합니다. 오빠! 아니 강 대표님!”“괜찮습니다. 강연이처럼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세요.”강연은 파이팅 넘치는 나이란에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강연이와 함께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요? 비자나 여권 수속 문제는 저희 쪽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프랑스에서 우리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카리스마 넘치는 강 대표의 예의 바른 부탁에 나이란은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너무 감동이라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야!’이어 가슴 언저리를 두드리며 나이란이 호언장담했다.“오빠 걱정하지 마시고 강연이를 저한테 맡겨주세요!”“그리고 우리 세윤이도...”“걱정
강연은 턱을 매만지며 어떻게 안택을 도울지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행복해 보이는 한 가족을 보며 송예은은 말없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나는 이런 온정을 평생 느낄 수 없을 거야.’입꼬리는 웃고 있었으나 눈동자는 더없이 슬퍼 보였다. 늘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던 예은이었지만 지금처럼 혼잡한 배경에서는 조금 외로워 보였다.예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정을 미소 뒤로 숨겼다. 그리고 말없이 나이란과 세윤이 티격태격하고, 세훈이 강연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걸 지켜보았다.그러나 예은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제훈과 수아는 아직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예은의 감정 변화를 쭉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다.강씨 가문 전체 인원을 만난다면 부담스럽거나 불편할 수도 있으니 두 사람은 차에 남았었다. 하지만 강연의 친구인 만큼 세훈이 직접 인사를 건네며 예의를 차렸다.세윤이야 예은과 나이란과 모두 익숙한 사이였으니 자연스레 차에서 내렸다.수아는 차가운 인상에 처음 보면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으므로 얌전히 차에 있었다. 제훈 역시 마찬가지로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였고, 가족이거나 회사 일이 아니라면 감정변화가 없기로 유명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제훈은 차에서 내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예은의 당당하고 매력적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세상의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소란 속에서 자신을 숨기고, 나서지 않고 조용히 이 세상의 어지러운 번잡함에서 한 발 떨어진 모습...그리고 얼굴에서 살짝 읽히는 부러움과 초연함이 그녀의 강인한 성격을 보여주기도 했다.‘이 여자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아.’예은은 마치 두꺼운 책과 같아 보였으며, 보기에는 도도하고 차가워 보일지 몰라도 아직도 그 어느 한 페이지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그리고 누가 이 페이지를 넘겨줄지 궁금해졌다.강렬한 제훈의 시선을 느낀 건지 예은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차 안을 바라보았다.제훈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올곧게 에은과 눈을 마주했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