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구준은 어쩔 수 없이 한쪽의 기둥을 부러뜨렸다. 연기 속에서 염구준은 단번에 달려나왔고 공격하려는 그 손가락이 천군만마와도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그는 바로 한일정을 향해 돌진했다.이미 의식을 잃은 한일정은 어찌 된 일인지 염구준이 오는 것을 알고 몸을 돌려막으려 팔을 뻗었다.염구준은 콧방귀를 뀌며 생각했다.‘고작 두 손으로 나의 공격을 막으려 해? 헛된 망상이야!’그의 손가락은 상대방의 팔을 뚫고 미간을 찔렀다."뚫어!"염구준의 손가락은 마치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드릴처럼 상대방의 머리뼈를 뚫었다. 순간 땅이 갈라지듯이 한일정의 몸이 폭발했다.펑!자홍색의 기체가 분사되었다. 그러나 이번 폭발로 인한 충격은 제3 전장과 제4 전장보다 약해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다행이야. 청용과 주작이 몸에 있는 살점을 많이 깎아내 체내의 압력이 낮아졌어. 아니면 나도 중상을 입었을 거야!"전장을 죽이고 다시 흑풍을 바라보자, 흑풍은 이미 행방을 알 수 없었다.갑자기 오두막집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순간 모든 기둥이 부러졌다!"조심해!"오두막집이 무너져 그들은 집 아래에 깔렸다.모든 사람이 폐허에서 나올 때 눈앞에 붉은빛이 나타났다. 마치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인 것 같았다."뭐야, 장난해?"벼랑 끝에 흑풍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흑풍은 공중에 떠 있있고, 붉은빛이 절벽 아래에서 전해져 흑풍의 몸으로 바로 들어갔다.그리고 매 순간마다 흑풍의 카리스마와 실력이 끊임없이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뭘 흡수하고 있지?"청용이 먼저 달려들었다. 무엇을 흡수하든 말려야 한다!말을 마치고 청용은 달려 나가 점프를 해 흑풍에게 주먹을 세게 날렸다.흑풍은 흡수를 하고 있어 청용의 공격을 막을 겨를이 없었다. 결국 몸 전체를 맞아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하하,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아주 산산조각 날 거야!"염구준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강자로서 그는 여전히 흑풍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실력은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이때 뒤
금빛을 뿜어내자, 흑풍은 전력을 다해 막아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일격을 막아내지 못했다.붉은빛은 천천히 금빛에 삼켜졌고, 사람마저도 삼켜졌다."격파!"흑풍은 한 손으로 하늘을 가르며 둘러싸인 금빛을 끊었고 순조롭게 착지했다.몇 차례의 교전 끝에 흑풍은 마침내 모든 실력을 드러냈다.염구준은 눈을 살짝 흘겼다.몇 미터 뒤로 물러난 후, 염구준은 소리를 질렀다. 오른손 손목을 돌리고 앞으로 내던졌다.그리고 목표는 바로 흑풍의 머리였다!진기의 움직임에 따라 방금 그 수는 폭발적인 기세를 뿜어냈고 흑풍을 도망갈 곳이 없게 했다.흑풍도 똑똑해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예 도망가지 않았다.검은 망토를 앞으로 뒤집더니 몸 전체를 덮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위압은 정말 대단했고 염구준도 숨겨진 모든 실력을 발휘했다.순간, 흑풍은 몸 전체가 뚫리는 것 같았다!염구준의 일격에 맞은 순간 그의 얼굴에는 의문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뭐? 설마 네 실력이 이미 반보 천인의 정점에 이르렀단 말이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흑풍은 몸 전체가 순식간에 저항력을 잃었고 강력한 힘에 의해 절벽에서 밀려나 바로 추락했다.염구준이 절벽 옆에 와서 검사할 때, 절벽 아래에는 많은 시체가 있었지만, 흑풍의 시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비록 이해되지 않았지만, 염구준은 바로 알아차렸다. 뒤에서 구토하고 있는 사람들 곁에서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상대의 미간에 떨어뜨렸다."뭐예요? 내가 왜 이러죠?""너희들은 흑풍의 환상에 걸려들었어!"바닥이 엉망진창인 것을 보고 흑풍의 행방을 묻자, 염구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순간 염구준은 무언가 생각난 듯 서둘러 사람들에게 무너진 오두막에서 무엇을 찾아보라고 명령했다.보름이 지난 후 엘 가문은 완전히 통일되었고 각 부문도 이미 과거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이와 동시에 염구준은 집에 돌아가 새로운 위기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손씨 그룹의 사업은 비록 갈수록 커지고 있
손가을은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렇게 큰일이니, 그녀는 피해 갈 수 없었다.사무실의 문이 열렸고 염구준이 마치 신처럼 문 앞에 나타났다. 손가을은 순간 마음이 놓였다."청해 상회의 회장은 용성우 아닌가요? 언제부터 흑풍이라는 사람이 생긴 거죠?"염구준은 두 사람의 의아한 눈빛 속에, 그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두 사람의 기운은 아주 이상했고 절대 일반적인 상회 직원이 아니다."구준 씨!"손가을은 놀란 아이처럼 염구준의 품에 안겼다."큰일이다 보니 상황을 봐서 이해해 주세요."직원은 몸을 곧게 세우고 고집 있게 말했다."조사라니요? 작은 상회에서 무슨 권리로 조사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죠?"염구준은 말을 마치고 매서운 눈빛을 뿜었다. 청해 상회뿐만 아니라 국주가 사람을 파겮도 손가을을 데려갈 수 없다."당신도 손씨 그룹 사람이에요?"손씨 그룹은 손가의 기업인데 왜 갑자기 살기등등한 사람이 나타난 건지 두 사람은 아리송했다."용성우 씨? 청해 상회 대체 무슨 상황이죠? 흑풍은 또 뭐죠?"염구준은 직접 용성우에게 연락했고, 상대는 우물쭈물했다."주군, 은둔 세가에서 청해를 인수하려 합니다. 용국의 경제적 지주인 것을 아시잖아요?"용성우가 난처하게 답했다. 그는 양쪽 모두 미움을 살 수 없었다."은둔 세가요?"염구준은 무언가 깨달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용국의 일곱 가문에 대해 다른 사람은 잘 모르지만, 그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국주는 몇 가문의 세력이 곳곳에 집중되어 있어 늘 제거하려 했다."내가 알아볼 테니 끼어들지 말아요!"염구준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바로 그들을 내쫓았다."흑풍 회장께서는...""꺼져요!"염구준은 더 이상 참지 않았고 강한 억압에 두 사람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구준 씨, 무슨 일이야?"손가을은 풀이 죽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걱정하지 마. 청해 부두에 가볼 테니 내 소식 기다려."염구준은 손가을의 이마에 진하게 키스를 한 뒤
대목이 설명했다."무슨 일이지?"염구준도 체내의 힘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오랜만에 이렇게 강한 힘을 느껴보았다.그가 직감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침 두 사람과 시선을 마주했다. 대목은 저도 몰래 살짝 후퇴했다."뭐가 무서워? 우리도 합일 전신의 실력이야. 흑풍 형님의 가장 자랑스러운 조수라고!"근육질 남자는 대목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 없어 조금 가소로웠다."철호야, 방심하지 마. 상대는 적어도 전신보다 강해."대목은 염구준의 눈빛을 살짝 피하며 엄숙하게 말했다."쳇! 다음엔 무슨 계획이야?"근육질 남자는 기다림에 흥미가 없다. 용국의 여름은 흑주보다 훨씬 더워 그는 일찍 임무를 완수하고 싶었다.염구준도 눈빛을 옮겼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손가을의 걱정을 해결하는 것이다.두 낯선 힘을 가진 사람을 조사하는 것은 이미 전용 핸드폰을 통해 주작과 현무에게 연락을 보냈다."선생님, 잠깐만요!"화물선 앞에서 용병 차림의 두 사람이 염구준을 막았다."비켜요, 내 화물선이에요!"염구준은 조금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두 용병을 밀어냈다. 용국에 나타나 그가 죽이지 않은 것도 이미 많이 봐준 것이다.염구준의 손이 두 용병에게 닿자 익숙한 힘이 그의 손끝을 따라 전해졌다."당신들 용국 황실의 호위대에요?"염구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두 용병을 보며 물었다. 그는 왜 황실 호위대 사람들이 청해에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황실 호위대요?"두 용병은 염구준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분명 황실 호위대를 안중에 두지 않는 듯했다."아니에요? 그럼 죽어도 되겠네."염구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목을 부러뜨렸다. 그가 청해에서 사람을 죽이는 데에 다른 사람의 승낙은 필요 없었다.쓸데없는 두 사람을 처리하고 염구준은 화물선에 뛰어올랐다. 그의 마음은 어딘가 불안했다.황실 호위대는 전문적인 수련을 거치고 있는데 왜 저 두 용병이 그런 수련을 거친 걸까? 이것은 분명 함정이다.이미 왔으니, 확인을 하려는 마음으로 염구준은 선실
킬러는 여전히 싸늘하게 웃었다.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킬러는 자폭하여 피로 물든 안개가 되었다.염구준은 방어할 겨를도 없었다. 비린내 나는 핏물이 그의 온몸에 튀었고 강대한 충격파에 그는 여러 걸음 비틀거렸다."삭골저주!"얼굴의 가려운 느낌에 염구준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이 킬러는 산 사람이 아니라 저주 무당에 의해 통제된 시체다."날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염구준은 콧방귀를 뀌며 체내의 힘을 촉진해 고독을 천천히 체외로 빼내려 했다."그만해. 이 고독은 특별히 강화된 거야!"염구준이 반쯤 진기를 움직일 때 두 사람이 선실에 나타났다. 바로 대목과 철호였다."당신을 함정에 빠뜨릴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어도 당신 가족과 손씨 그룹을 해칠 사람은 널렸어!"철호가 건방진 말투로 말했다. 그는 자신이 상처를 받은 전신보다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조심해, 반보 천인이야..."대목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철호를 잡아당겼다. 그는 자신이 눈앞의 사람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저 사람이 무슨 실력이든 난 저 사람의 머리를 깨뜨릴 거야!"피를 좋아하는 철호는 대목을 뿌리치고 몸을 돌려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 싸움을 즐기는 것과 멍청한 것은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였다."꺼져!"염구준은 호통을 치며 힘을 모아 가장 강한 일격을 가했다. 줄곧 안하무인이었던 철호는 그의 호통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패기! 용의 패기!"대목 역시 속으로 겁을 먹고 중얼중얼 혼잣말했다.철호와 염구준의 두 주먹이 충돌했다. 그는 팔이 약간 저리게 느껴졌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격에 염구준의 전의가 불타올랐다.철호가 다시 손을 쓰기 전 염구준은 이미 연이어 두 주먹을 날렸고 철호는 당황하여 몇 걸음 물러서서 비틀거리고서야 멈추었다."너도 같이 덤벼!"염구준은 대목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강자의 대결은 기세에 달려 있었다.대목도 합일 전신 급의 고수였지만 염구준을 상대하니 저도 몰래 후퇴했고 염
"어서 전주의 뒤에서 눌러, 전주는 지금 생명을 태우고 있어!"주작은 염구준의 수라 형태를 본 적 있기에 말을 하며 이미 손을 쓰기 시작했다.현무도 바짝 따라붙어 온 힘을 다해 염구준의 등을 눌렀다.두 지존이 동시에 손을 써서 겨우 염구준 체내의 끓어오른 피를 진정시켰다.숨 돌릴 기회를 얻은 철호는 바로 뛰어올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구준 씨 왜 아직도 안 오지?"손씨 그룹 본사, 손가을은 사무실에서 초조하고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이미 해가 질 무렵이지만 세관 쪽에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염구준의 핸드폰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시계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하마터면 경찰에 신고해 사람을 찾을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염구준을 찾으려 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화물선의 싸움 사건은 일찍이 전신전에 의해 봉쇄되었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염구준의 존재는 마치 사라진 것과도 같았다."아직도 이 힘을 통제할 수 없는 건가?"전신전 안에서 염구준은 병상에서 일어나 관자놀이를 눌렀다."전주님, 알아냈습니다. 그들은 흑주에서 온 상인입니다."주작은 서류 한 묶음을 안고 병상 옆에 서서 보고했다. 그녀의 두 손은 붕대를 감고 있었다. 염구준의 진기로 인해 화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상인? 전신급 무술 자들이 이젠 상인도 하는 거야?"염구준이 차갑게 웃었다. 흑주는 가장 낙후한 대륙으로서 각종 악한 세력의 천국이다."전주님, 흑주 쪽은 정권이 복잡합니다..."주작도 이 보고가 다소 경솔하다고 생각했지만, 용국의 정보망은 그쪽까지 침투되지 않았다."8대 전신은 모두 청해로 갔어? 손씨 그룹 쪽은 어때?"염구준은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큰 계획을 하고 있기에 부하에게 가족을 보호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손씨 그룹 임원 중 세 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사모님과 가족들은 당분간 안전합니다."주작은 조금 겁에 질려 말했다. 이번 일은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한 것에 속했다."
손가을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했지만, 여전히 무기력했다. 며칠 동안 각계의 압력은 이미 그녀를 마비시켰다."염... 그게..."이설은 염구준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며 말했다."구준 씨!"손가을은 바로 알아차리고 태블릿을 빼앗았다. 그녀의 두손은 끊임없이 떨려왔다.툭 하는 소리와 함께 태블릿은 바닥에 떨어졌고 손가을의 마지막 이성도 끊어져 단번에 쓰러지고 말았다."사장님!""어서! 구급차 불러요!"이설도 넋을 잃은 채 손가을을 안고 큰 소리로 외쳤다.검은 그림자가 스쳐와 손가을을 안고 사무실에서 사라졌다. 이설은 깜짝 놀라 제자리에 굳어 있었다.사무실의 시간은 마치 정지된 것 같았다. 태블릿의 뉴스 화면만 여전히 자동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손씨 그룹 배후의 사장님이 기괴하게 사망했다’. 라는 뉴스가 청해의 각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염구준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용국 황실 회의실에서 황실 멤버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사실입니까?""용국은 또 무슨 꿍꿍이지?"세계 각국도 난리가 났다. 그들은 머릿속이 착잡했다. 기뻐할 때 살신이 갑자기 나타날까 봐 무서웠다."신비로운 사람이라니? 나에게는 그저 쓸데없는 개미와도 같아."청해 호텔에서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젊은 남자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그가 바로 흑풍이다. 은둔 세가에서 쫓겨난 위험한 인물이다.용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소유의 회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장이 빠른 손씨 그룹이 그의 목표가 되었다."청해, 신기한 곳이야!"흑풍이 차갑게 웃으며 손바닥을 폈다. 그의 손바닥에는 파손된 팔황옥패가 있었다."전주님, 사모님께서..."전신전, 주작은 염구준에게 8대 전신이 보낸 소식을 보고했다.염구준은 손을 흔들어 주작의 말을 멈추었다. 그는 아내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동서남북 4대 전신을 소환하여 설웅국을 막고, 너와 다른 세 명의 지존은 시시각각 해영국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어!"염구준은 직접 배치 명령을
"혹시 옥패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있는 건가?"염구준은 다소 의아했지만 그래도 이해는 했다. 용국은 유일하게 문명이 끊이지 않은 천년의 나라로서 모든 비밀은 독점 비밀이 아니다."그럼, 흑주에도 전신전이 있을까?"염구준은 이렇게 생각하자 못내 두려웠다. 만약 이 세력이 해영국과 설웅국, 심지어 상해국과 결탁하면 용국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삑-잠수함의 목적지 알람이 염구준의 생각을 멈추었다. 시간을 보자 마침 밤이 되었을 때였다.잠수함의 계획 노선은 청해 해변의 절벽으로, 아무도 염구준이 온 것을 알 수 없었다."전주님!"염구준은 숨을 죽이고 절벽으로 뛰어올랐다. 4대 전왕 중의 동방 전왕이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한동안 업무를 인계하고 흩어졌다. 동방 전왕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염구준은 병원으로 달려갔다."엄마, 희주 두고 가지 마. 아빠는 죽지 않을 거야!"청해 병원, 희주는 병상 옆에서 울고 있었다. 손가을은 딸을 보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가을아, 구준이 괜찮을 것이다. 희주도 그렇고, 우리도 네가 필요해!"손태진 부부도 침대 옆에서 눈물을 훔쳤다. 손가을은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했지만, 마음속의 힘이 사라진 것 같았다.염구준은 병원에서 의료복을 입고 아내의 병실로 들어갔다.초췌한 아내를 보니 저도 몰래 가슴이 아팠다. 그는 천천히 병상 옆으로 걸어갔다."난 영원히 네 옆에 있어, 쉿, 비밀이야!"염구준이 손가을의 손목을 잡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진기가 손목을 따라 손가을의 몸으로 들어갔다."그럴 줄 알았어..."손가을의 낮고 흥분된 목소리가 염구준에 의해 끊어졌다. 염구준은 ‘쉿’ 하고 동작을 했다.손가을은 바로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냥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힘내야 해. 희주와 아버님, 어머님은 네가 필요해. 나는 꼭 배후를 찾아낼 거야."염구준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것은 아내와 그의 특별한 텔레파시다."이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이 시작되었다.종목들은 정말 신나고 하나같이 감탄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었다.암퇘지가 철사슬 위로 걸어가고, 곰이 외발자전거를 타는 장면을 본 아이들이 깔깔 웃으면서 연신 박수를 쳤다.방금 일로 염구준은 자꾸 주변을 살펴보며 경계했다.여러 종목이 끝난 후, 광대 진행자가 나와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존경하는 여러분, 이어서 저희 피날레 종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활인을 할 텐데 어느 분이 게스트로 올라오시겠습니까?”그 말에 현장이 조용해지고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어떤 아이들은 자기가 나가겠다고 했지만 부모가 한사코 입을 막으면서 말렸다.“나가면 안 돼. 이 서커스단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야.”“나도 들었어요. 인근 도시에서 발생했는데 게스트가 계약서까지 작성했대요.”“무서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서커스 공연은 재미있지만 이 종목은 다들 뒤로 물러나며 지켜보기만 했다.“아빠, 내가 나가도 돼요?”그때 염희주가 말했다.“가지 마. 나중에 내가 믿을 만한 마술사를 불러서 체험하게 해 줄게.”옆에서 하는 말을 들었으니 딸을 위험하게 내보낼 수 없었다.“알았어요.”염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무룩해 있었다.곧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공연장의 불빛이 어두워지며 한 줄기 전등만 광대를 비추었다.“여러분, 제가 행운 게스트를 뽑으면 전등이 그분을 비출 겁니다. 물론 나올지 말지는 그분이 결정하면 되겠습니다.”서커스의 수법은 한번 또 한 번 곤란한 상황으로 밀어붙였다.정말 게스트로 당첨된다면 체면 때문이라도 무대에 올라갈 것이다.“감격스러운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광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전등이 현장을 누비며 빠르게 움직였다.“멈추세요!”한참 뒤, 광대의 말에 전등이 멈추었다.게스트로 염구준이 당첨되었다.이번에야말로 현장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역시 나름 계획이 있었다.염구준은 방금 몰래 감시하던 사람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했다.“축하드립니다. 무대에 올라와서 협조해 주
당황한 조련사가 긴 막대기를 들고 사자의 머리를 누르며 뒤로 물리쳤다.탁!사자가 손바닥으로 막대기를 쳐서 부러트리고 아이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우와아아앙!”깜짝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아이가 높은 소리로 울수록 사자는 더 흥분되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냈다.“저기 누가 들어가고 있어요.”그때 한 그림자가 갑자기 철창 앞에 나타났다.바로 염구준이었다.“으아아아악!”염구준이 두 손으로 철창을 잡고 힘을 주자 단단한 쇠가 구부러지며 양쪽으로 휘었다.그리고 구멍을 통해 철창 안에 들어가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았다.“울지 마. 이제 괜찮아.”“으르렁!”사자는 먹잇감이 빼앗기자 입을 크게 벌리고 으르렁거리며 덮쳤다.“죽어!”염구준이 강력한 기운을 발사하자 사자는 뒤로 튕겨 구석에 나가떨어졌다.그가 살의를 뿜어냈다.동물은 워낙 살의에 예민했다.사자는 벌러덩 드러누워서 작은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그 동작은 서커스단에서 배운 것이다.염구준은 아이를 안고 철창에서 나와 아이 엄마에게 넘기며 신신당부했다.“앞으로 아이 손을 꼭 잡고 다니세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아이 엄마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염구준 가족은 경악해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계속 동물을 구경했다.“아빠는 슈퍼맨이에요?”방금 장면을 떠올리던 염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사자가 아버지 앞에서 고양이처럼 말을 잘 들어서 깜짝 놀랐다.“하하하. 방금 아빠가 마술을 부려서 그래.”염구준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어떤 일은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이에게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마술? 이따가 마술쇼도 있는데 가르쳐줄 수 있어요?”염희주는 두 눈을 깜빡이며 염구준을 봐라봤다.그 말에 염구준은 난감했다.마술을 할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됐어. 마술은 나중에 배워. 이제 곧 마술쇼 시작이야. 들어가서 앉아야지.”손가을이 나서서 남편을 도와줬다.“시작했어요? 그럼 빨리 들어가요!”염희주는 빨리 들어
용필과 하윤나는 초고속으로 이튿날에 바로 미니 결혼식을 올렸다.정식 결혼식은 나중에 다시 성대하게 올리려고 했다.쌍방 부모님들이 모두 도착했다.하동철과 김연주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염구준이 두 사람에게 손씨 그룹에서 일하면 월급을 200만씩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하동철은 경비원으로 취직하여 경호 대장인 용필과 함께 일하고 김연주는 청소부에 취직했다.용필을 봐서 두 노인과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고 이렇게 안배한 것이다.어차피 앞으로 한 식구로서 자주 만날 텐데,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물러날 때는 이득을 주는 방식으로 두 사람을 탄복하게 만든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하동철이 출근하면 회사에서 용필을 대장이라 부르고 퇴근하면 용필이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한다는 것이다.미니 결혼식은 무사하게 진행되어 두 사람은 드디어 부부가 되었다.이 모든 것은 다 염구준이 추진한 덕분이라 두 사람은 엄청 고마웠다.행복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덧 서커스단이 공연하는 날이 다가왔다.염희주가 계속 재촉하는 바람에 세 사람은 아침 댓바람부터 공연장에 도착했다.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아직 공연장 문이 열리지 않았다.밖에 철창을 몇 개를 놓고 안에 맹수들을 가둔 것이 보였다.독수리, 호랑이, 원숭이 등등 동물들을 관람용으로 놓은 것이었다.이곳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었다.다들 신기해서 감탄을 금지 못했다.“아빠는 사자를 본 적이 있어요?”염희주가 궁금해하며 물었다.“봤기도 했고 먹어도 봤어. 근데 맛이 없었어.”염구준은 딸을 속일 필요가 없어 솔직하게 대답했다.전에 흑주 벌판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팀과 연락을 잃어서 먹을 것이 없었다.그래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잡는 족족 배를 채웠다.“아빠는 왜 맨날 거짓말만 해요? 내가 나쁜 것만 배우면 어떡해요?”염희주는 아예 믿지 않았다.사자는 사나운 짐승이고 초원의 패권자이자 흑주의 우두머리인데 그것을 잡아 먹었다니믿어지지 않았
“시작.”오백하는 ‘시’자를 말할 때부터 얼마되지도 않는 힘을 손에 넣었다.억지가 따로 없었다.그러나 용필의 손은 꿈쩍하지도 않았다.힘으로 똘똘 물친 용필과 힘을 겨룬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힘을 준다. 합!”용필이 한마디 하더니 오른팔에 힘을 주어 가볍게 상대방의 손목을 꺾었다.그런데 테이블까지 부숴버렸다.겨우 이 정도에 진 것이다.“악!”왼쪽 팔이 탈구된 오백하는 귀가 찢어지는 비명소리를 질렀다.어려서부터 다친 적이 없이 곱게 자랐으니 이런 고통을 감당할 리가 없었다.“안 된다고 했는데 뭐 하러 용필 오빠한테 개기냐?”하윤나가 말하면서 용필의 팔을 끌어당겼다.참지 못하고 상대방을 해칠까 봐 그런 것이다.솔직히 그녀는 용필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윤나야, 나 정말 힘을 쓰지 않았어.”용필이 억울한 표정으로 설명했다.“나도 알아.”하윤나가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팔씨름에서 졌으니 오백하는 패배하고 유일한 선택은 용필밖에 없었다.“꺼져. 설마 남아서 밥 먹고 가게?”염구준은 아직도 아파서 바닥에서 뒹구는 오백하에게 싸늘하게 내뱉았다.“이놈들 잡아 쳐!”열받은 오백하는 경호원들에게 고함을 질렀다.반드시 복수를 할 것이다.쿵!경호원들이 다가가려고 할 때 염구준이 기운을 펼치며 그들을 문밖으로 몰아냈다.봐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퍽!그리고 오백하를 발로 뻥 차서 밖으로 쫓아냈다.룸 안이 드디어 조용해졌다.글로벌 호텔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오더니 오백하 일행을 들어 호텔 밖으로 내쫓았다.이 과정은 고작 몇 분만에 진행되었다.“사돈 어르신, 두 사람 이제 결혼해도 됩니까?”두 노인은 염구준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그럼요. 저희도 찬성해요.”하동철과 김연주는 깜짝 놀라며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원래 사위 후보가 2명이었는데 한 명이 도망쳤으니 이제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그럼 두 사람 먼저 시청에 가서 혼인신고하고 나중에 결혼
“진정하세요. 많지도 않습니다.”염구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게 많지 않다니 두 사람은 경악했다.최근 청해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땅값이 점점 올라 제일 저렴한 별장도 20억 이상이었다.“염 선생님, 그쪽과 상관없는 일 아닌가요?”오백하가 못마땅 해하며 물었다.손씨 그룹이 끼어들면 그는 뒷배인 회사를 내세워도 대항할 수 없었다.“용필 형, 나를 뭐라고 부르죠?”염구준이 옆을 보며 물었다.“내 매제지.”용필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들었어요? 나랑 상관 있죠?”염구준이 되물었다.상대방이 기어코 끼어들겠다고 하니 오백하는 심란하여 계속 머릿속을 굴렸다.‘어떡하지, 어떡하지?...’돈은 어느 정도는 있었다.하지만 적어도 52억은 있어야 상대방과 싸울 수 있었다.평소 그는 돈으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즐겼는데 오늘은 다른 사람에게 돈으로 억압당할 줄은 몰랐다.인과로 보복을 당하니 매우 불쾌했다.“저기요. 왜 예물값을 올리지 않나요?”염구준은 그가 대답하지 않자 주의를 주었다.‘올리긴 뭘 올려?’오백하는 속으로 욕하면서도 겉으로 애써 웃었다.돈으로 통하지 않으니 다른 방면으로 능력을 보여서 자신의 우세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저 멍청한 놈은 윤나를 지킬 자격이 없어요. 두 분 신중하게 생각해 보세요.”오백하가 갑자기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그게…”하동철은 두 남자를 번갈아 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무조건 가격을 올리라는 속셈이었다.“주먹다짐을 비교하고 싶으면 그냥 말하면 되죠.”염구준이 분명하게 말했다.종사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 녀석이 감히 용필 앞에서 나대다니 속으로 우스웠다.능력이 안 되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 되었다.“안 돼.”갑자기 하윤나가 용필을 부둥켜안으면서 싸우지 못하게 붙잡았다.하지만 오백하의 눈에는 그녀가 용필을 걱정하는 것으로 보였다.그 순간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펄쩍 뛰었다.“남자라면 나랑 겨루자. 지면 알아서
“아씨, 저 새끼가 내 물건을 훔쳤어. 다음에 눈에 띄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목소리에서 상대방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도련님, 어서 오세요.”하윤나의 부모님은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염구준은 그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방금 용필이 들어올 때 쳐다보지도 않더니 지금은 개처럼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당당한 사람이 되는 게 좋지 않은가?“네.”오백하는 한 글자로 답하고 당연하듯이 주석에 앉아 거만하게 행동했다.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용필과 하윤나를 노려보았다.염구준 부부도 봤지만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도련님, 무슨 일로 늦게 오셨어요?”하동철이 차를 따르면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말도 마세요. 오는 길에 미친놈을 만났는데 내가 윤나한테 주려고 준비한 선물을 도둑맞았어요. 차로 뒤쫓아도 잡지 못했어요.”오백하는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무슨 인간이 그렇게 빨리 달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초상비.’염구준과 용필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챘다.‘의리 있는 사람이네. 앞으로 잘 지내야겠어.’용필 입장에서 초상비가 오백하를 죽이지 않고 그냥 방해한 것만으로도 형제로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다.“분명 비싼 물건이겠죠.”하동철의 관심은 언제나 돈이었다.“그렇게 비싸지도 않아요. 2억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에요.”오백하가 허풍을 떨기 시작했다.어쨌든 물건을 찾아오지 못했으니 가격을 20억, 200억을 불러도 누구도 따지지 않을 것이다.“아쉽게 됐네요. 제가 경찰에 신고할까요?”하동철이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냈다.“됐어요. 이따가 가서 다시 살게요.”오백하는 손을 들어 하동철을 제지시켰다.그는 허풍이 들통나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솔직히 하윤나와 연인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귀한 물건을 선물할 리가 없었다.“됐어요. 허풍은 그만 떨고 본론으로 갑시다.”염구준은 귀가 썩을 것 같아서 대화를 끊어버렸다.오늘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될 텐데 체면을 줄 필요도 없었다.
하윤나는 먼저 시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나중에 부모님들에게 말하려고 했다.그런데 부모님들이 눈치를 챘는지 자꾸 방해를 하는 것이다.보다 못한 김연주가 나서서 말렸다.“됐어. 그만 싸워. 이따가 두 사람 다 오니까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결정해.”듣기에 공평한 것 같지만 실은 오백하를 두둔하고 있었다.용필의 상황으로는 경쟁할 가치도 없고 그냥 망신만 주려고 생각한 것이다.똑똑!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염구준 일행이 들어왔다.방금 세 식구가 한 말을 밖에서 다 들은 것이다.용필의 안색이 퍼렇게 질려서 보기 흉했다.“들어오세요.”하동철이 이내 표정을 바꾸고 반갑게 맞이했다.지금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만약 오백하라면 추태를 보여주지 않았나 은근 걱정이 되었다.끼익!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용필이 들어오면서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아버님, 어머님. 제가 왔습니다.”그를 본 하동철의 웃던 얼굴이 바로 굳어져버졌다.“앉아.”모든 말이 얼굴에 써져 있었다.“오빠, 이쪽으로 와서 앉아.”하윤나는 앞으로 다가가 용필의 팔을 잡아당겨 자기 옆에 앉혔다.두 사람은 깨알이 쏟아질 정도로 다정했다.그 장면을 본 하동철은 혈압이 슬슬 올라왔다.“형님, 안목이 있네요.”염구준이 장난을 치며 손가을과 함께 룸으로 들어왔다.병원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다.그런데 오늘 가까이서 봤더니 하윤나의 외모는 경국지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뻤다.“어머, 손 대표님, 염 선생님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어서 앉으세요.”하동철은 얼른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대했다.얼굴 표정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적응되지 않았다.“편하게 말씀하세요.”염구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아내와 함께 용필의 옆자리에 앉았다.세력과 재부에 눈이 멀어 아부하는 소인배를 용필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하하하.”하동철은 뻘쭘해서 헛웃음을 지었다.돈만 준다면 그를 어떻게 대해도 기꺼이 참을 수 있었다.세 사람이
“지금 윤나 부모님들도 이 금액을 요구하고 있어. 근데 나 돈이 없잖아. 어르신이 오후에 글로리 호텔에서 만나면 답변을 준댔어. 말로는 오백하도 온대.”용필은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감히 어머니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건장한 몸으로 반보천인 고수와 싸울 수 있지만 돈 앞에서 한결 작아졌다.하지만 돈은 확실히 만능인 물건이었다.“간단해. 내가 가서 오백하 놈을 죽여버릴게. 그럼 누구도 방해하지 않아.”초상비가 화끈한 제안을 했다.그는 강호에서 여러 해를 굴러먹어서인지 겁이 없고 수법이 거칠었다.“안 돼. 윤나가 폭력으로 해결하지 말랬어.”용필은 고개를 저으며 입구를 막았다.혹시나 방심한 사이에 초상비가 뛰쳐나갈까 봐 미리 방지한 것이다.보안실 경호원들 중에서 실력이 가장 약한 초상비도 정신지상 실력이니, 평범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염구준이 잠시 중얼거리더니 계속 물었다.“그 외에 다른 조건이 있어요?”용필은 생각하면서 말했다.“그리고 연봉이 높은 직장을 찾으래.”지금 그는 매달 월급 300만으로 청해시에서 수입이 중상 레벨이지만 부잣집 자식들과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일도 아니죠.”염구준이 일어나더니 용필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경고를 줄 필요가 있었다.아니면 앞으로 용필만 힘들게 될 것이다.“무슨 뜻이야?”돈이 없는 용필은 어리둥절했다. “돈이 필요하면 내가 낼게요. 호텔에 나와 가을도 함께 갈게요.”염구준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정말이야?”갑작스러운 행복에 용필은 어쩔 줄 몰랐다.“정말이죠. 거짓이겠어요?”그가 엄숙하게 대답했다.글로리 호텔 입구에 핑크색 포르쉐가 멈추더니 염구준 일행이 내렸다.“손 대표님, 저한테 맡기세요. 안전하게 주차하겠습니다.”입구에 있던 종업원은 거물이 오자 바로 달려왔다.“수고하세요.”손가을은 한마디하면서 팁으로 현금까지 쥐어 주었다.그리고 세 사람은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용필은
“맞아!”“얼마 전에 용필 오빠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었잖아?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오빠를 간호해 준 간호사 윤나 씨랑 정이 들어서 지금 결혼 얘기까지 오간 상태야.”“그런데 문제는 저 오백하라는 사람이 해외에서 돌아온 후 중학교 동창회에서 윤나 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려서 미친 듯이 쫓아다니고 있다는 거야.”손가을은 상황의 전말을 설명했다. 친척의 일이기도 해서 그녀는 유독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그럼 형님과 윤나 씨의 사이는 어떤데?”염구준은 듣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남녀 간의 감정은 억지로 이어질 수 없는 법이었다. 만약 하윤나가 과거의 인연에 흔들려 마음이 변했다면, 그건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아주 좋아. 근데 문제는 오백하가 윤나 씨 부모님께 돈을 줘서 두 분이 둘의 관계를 반대하고 있어.”손가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수작을 부렸네.’염구준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말했다.“시간 나면 형님과 얘기 좀 해봐야겠어.”용필은 그의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 해준 사람이라 그도 이번엔 상대방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오백하가 돈을 얼마를 줬대도 상관 없었다. 돈은 어차피 그가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그 후, 가족들은 맛있는 식사를 마친 뒤 아쿠아리움에 들렀고, 저녁에는 어린이 영화를 관람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한편, 손태석과 진숙영이 여행을 떠난 탓에 집안은 조금 썰렁했다.‘역시 사람이 많아야 시끌벅적하구나.’다음 날, 염구준은 딸을 학교에 데려다 준 뒤 손씨 그룹 본사로 향했다.건물 입구에서 경비복을 입은 채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용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전투 인형으로 만들어졌다가 염구준에게 구출된 이후로, 그가 이렇게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남자는 쉽게 울지 않는 법이었다. 진짜로 슬플 때는 빼고 말이다.용필이 뇌 손상을 입긴 했지만 단지 정상인보다 지력이 낮을 뿐이지, 바보는 아니었다. “왜 그래요? 돈이라도 잃어버렸어요?”염구준은 농담하며 말을 걸었다.“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