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경비원들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실력은 아직 부족했지만, 충성심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에 질 것을 알면서도 맞서는 용기와 기백,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엘 가문 강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염구준 쪽에서는 딱히 아무런 반응도 해오지 않았다. 이들은 염구준 쪽 사람들이 겁을 먹은 것이라 확신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뭐라도 될 것 같아?”염구준의 신형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무색의 기운이 넘실넘실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공격해오는 사람들을 향해 쏟아졌다. 전신의 영역! 그 순간 이들은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 피를 토하며 허공을 나르더니 벽에 부딪혔다. 홀엔 온통 이들의 혈흔으로 비릿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엘 가문의 강자 모드를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 염구준의 눈엔 이들 정도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승리를 확신했던 엘 가문 강자들은 모두 침묵에 휩싸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경호원이 가지고 온 의자에 앉은 채 턱을 치켜들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모두 자신의 처지를 알았을 테니, 손씨 그룹이 입은 손해를 어떻게 배상할지 논의해볼까요?”그 말을 들은 엘 가문 가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잡혀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큰일이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력에 이들은 모두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하나 둘 배치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전액 배상해드리겠습니다.”먼저 굴복하고 입을 연 것은 아까 제일 먼저 염구준이 올 때 소리쳤던 남자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를 따라 수그리기 시작했다.“저희가 빼앗았던 거 다시 돌려줄게요.”하지만 염구준은 쉽사리 이 상황을 끝낼 마음이 없었다. 힘들게 전국에서 사람을 끌어 모은만큼 대가를 받고 싶었다. “염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이때, 눈치 빠르게
그들은 정말 두려웠다. 여기서 복종하지 않으면 정말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앨리스는 엘 가문의 진정한 족장이 되었다.“엘 가문을 통합시킨다면, 저희는 더 강해질 겁니다.”앨리스가 말을 마치고 옆에 있는 염구준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여기에 실질적 결정권자가 염구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 봤으면, 이만 내려오지 그래?”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이다. 들켜버렸다!홀 천장에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그의 몸은 마치 주변과 동화된 듯,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쉽사리 분별도 못했을 것이다.인술이었다!“날 발견하면 어쩔 건데, 잡지도 못할 거.”닌자는 자신만만했다. 그의 은신 기술은 조직내에서도 최고였기 때문이다. “웃기는군!”염구준이 손을 공중에 살짝 휘두르자 무형의 힘이 검은 그림자를 잡아당겼다.말도 안 돼!닌자는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잡혀 버렸다.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그는 흑풍 존주가 자신을 속였음을 깨달았다.“흑풍 조직의 사람이지? 뭐, 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염구준이 남자의 가슴에 그려진 표식을 보며 말했다. “잠깐, 할 말이 있어. 엘 가문에 관한 거야.”남자는 흑풍 조직에 가입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깊은 충성심이 없었다.“그럼 말해.”염구준이 차갑게 대답했다. 어쩌면 남자의 입에서 옥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테니까, 일단 이거 좀 풀어줘.”남자는 협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퍽! 하지만 염구준은 말없이 바닥에 눌려 있는 남자의 팔을 부러뜨렸다. 도마 위에 생선, 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마, 말할게.”그는 염구준이 이렇게 곧바로 폭력을 행사할 거라 예상치 못했다.“엘로자는 진작에 흑풍 존주의 손에 죽었어. 손씨 그룹을 공격하게 한 것도 모두 존주의 짓이야.”
흑풍 존주의 분노가 담긴 외침에 울려퍼졌다. 이제 점령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망치듯 철수해야 한다니, 분통이 터졌다. 그런데 이때, 특수 강철로 만든 대문이 쾅하고 날아가며 염구준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타났다.“흑풍, 이제야 다시 만나네.”“이 무슨….”흑풍 존주는 얼어붙었다. 정성껏 구축한 방어선이 소리소문 없이 뚫려 버렸다. 아무리 반보천인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로 강할 수는 없었다. “흑풍 사사, 염구준을 막아라!”흑풍 존주가 명령을 내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찾지 마라. 남은 건 너희 둘 뿐이니까. 나머지는 내가 모두 처리했다.”염구준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공중에 축 늘어진 시체가 하나 떠오르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시체의 주인은 다름 아닌 흑풍 사사였다. 반응할 틈도 없이 이토록 많은 조직원들을 처리하다니, 그는 실력은 흑풍 존주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흑풍 존주는 위기감을 느꼈다. 염구준의 실력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이 상향된 것이 실감났다.“죽어라!”염구준이 바닥을 박차며 흑풍 존주를 향해 돌진했다. 피부를 찌를 듯한 살기가 피어올랐다.“잠깐, 내 목숨 살려준다면 가지고 있는 옥패 모두 넘겨 줄게.”흑풍 존주가 품에서 리모컨을 꺼내며 말했다.“널 죽여도 가질 수 있어.”염구준은 전혀 공격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흑풍 존주의 가슴을 향해 손바닥을 뻗으며 답했다.“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흑풍 존주가 큰 결심을 한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부하를 끌어당겨 마치 고기 방패처럼 사용했다. 그에겐 사람이란 모두 도구에 불과했다. 부하는 속으로 흑풍 존주를 향해 욕설을 날렸다. 십여년, 긴 세월을 모셔온 대가가 이거라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부하는 살기 위해 온 몸에 힘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그는 몸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다. 주인을 잘못 고
앨리스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녀는 이제 염구준의 말이라면 공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앨리스는 좀 전에 본부에 들어섰을 때, 통로 안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혼자서 이 철옹성을 함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니, 정말 인간 핵폭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리고 앨리스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들도 모두 같은 심정을 느꼈다. 그들은 앞으로 절대로 염구준과 척을 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염 선생님, 다 데리고 왔어요.”앨리스가 공손하게 말했다. “염 선생님이라면 이들을 쉽게 쓰러뜨릴 줄 알았습니다.”“염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족장의 복수도 해주고, 엘 가문도 되찾아 주다니.”“염 선생님, 정말 놀랍네요. 흑풍 조직조차 상대가 되지 않다니, 이 시대 최강자는 역시 다르네요.”아부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그만, 쓸데없는 아부는 여기까지.”염구준이 그들을 말을 자르며 차갑게 말했다. 의미 없는 아부를 반응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며 서로 눈치를 보며 한쪽으로 물러섰다. 염구준은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옆에 있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본론을 꺼냈다.“앨리스 씨, 할 말 있지 않아요?”“아, 잊을 뻔 했네요.”앨리스가 말하며 방계 족장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엘로자 족장님께서 돌아가신 건 저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머리가 없는 몸통이 될 수는 없는 법, 엘 가문엔 새로운 주인이 필요해요. 부담은 되지만, 제가 그 자리를 맡을까 합니다. 다들 의의 없으시죠?”그녀의 말엔 매우 강하고도 단호한 힘이 담겨 있었다. 이미 유람선에서 결정된 일이었지만, 엘 가문 보부에서 선포하는 건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이로서 엘 가문 족장 자리는 교체되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염구준의 차가운 시선을 알아차리곤
염구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앨리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앞으로 아낌없이 앨리스 씨를 지원할게요. 엘 가문은 많이 번창하게 될 겁니다. 대신 옥패를 찾아주세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거요.”앨리스가 내밀어진 옥패를 보며 망설임없이 대답했다.“반드시 찾을게요!”한편, 나흐 가문에선 한참 회의 중이었다.“가주님, 엘 가문이 재편성되었다는 소식 들으셨을 겁니다. 지금 많이 약해져 있을 테니, 저희가 나서 도우면서 빚을 지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먼저 상대의 성의를 봐야겠지만요.”남자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자신이 준비한 계획안을 가주 앞으로 내놓았다. “엘 가문에서 다시 여러 가문들과 협력하려 사람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쪽과도 접촉한 이력이 있어요. 이 기회에 자연스레 그들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남자가 내민 계획안엔 엘 가문에서부터 보내온 초대장도 함께 있었다. 새 가주 취임식에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마침 초대도 왔는데, 불참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새로 재편성되었으니, 전통성이 있는 저희 같은 가문이 참석해 위험을 보여주기 좋은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 그들도 저희 가문을 얕보지 않죠.”옆에 있던 사람들이 남자의 말에 하나 둘 거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가주는 쉽사리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가주가 무겁게 입을 뗐다.“엘 가문이 재편성되었다는 건 모두 들어서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 과정이 어땠는지는 못 들었나 보네?”그 질문에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주의 말 대로 이들은 엘 가문이 재편성되었다는 사실만 전달받았을 뿐,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알려주마. 엘 가문 뒤엔 염구준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 남자는 이미 천인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로서, 만약 우리도 이 자와 협력할 기회를 얻는다면 가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주가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면 이번에야 말로 이들이 큰 일을 치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며칠 뒤에 있을 연회는 어떻게 할까요?”집사는 오랜 세월 가주의 옆을 지켜온 사람으로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일단 그냥 지켜보자.”가주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서재 밖으로 향했다. 집사도 그의 뒤를 따라 나섰지만, 얼굴엔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가주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도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아참, 정한이 좀 불러오거라. 시킬 일이 좀 있어.”나정한은 나흐 가문의 장남으로서 모두가 능력을 인정한 다음 대 가주 후계자였다. “알겠습니다.”집사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 뒤 공손히 자리를 떠났다. 가주 다음으로 이 가문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가진 사람이 바로 나정한이었다.잠시 뒤, 장남 나정한이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들어와.”허락의 말이 들어오자 나정한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장성하게 큰 아들을 보며, 가주는 새삼 자신이 늙었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의 장남은 이제 정장을 입은 채 사업 전선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어쩌면 은퇴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나정한이 책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정중하게 물었다.“너에게 따로 시킬 일이 있다. 이 사람을 조사해. 일거수일투족, 인간관계, 가족, 약점까지 모두 알아내야 한다.”그가 내민 것은 염구준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간단한 서류였다. “이 사람은 이미 조사해 두었어요.”나정한이 서류를 보며 가볍게 웃은 뒤, 들고 있던 가방에서 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거기엔 염구준의 탄생부터 그 일대가 모두 적힌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오늘 돌아온 것도 이것 때문이었어요. 염구준이라는 남자, 상당히 흥미롭더군요.”나정한의 눈엔 존경과 동경의 빛이 담겨 있었다.“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어디 한 번 이 남자에 대해 직접 얘기해 보거라.”가주는 아들의 뛰어난 대처능력에 만족스러운 표정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회사를 완전히 아들에게 넘어가길 바랐다. 그 편이 아들이 회사에 자리잡는데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자식들 중에 그의 의지를 이어받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나정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를 굽혔다. 그는 이 결정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도, 슬퍼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모습에 가주는 더욱 흐뭇한 감정을 느꼈다. 그의 아들이 그만큼 됨됨이가 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한편, 앨리스는 며칠 뒤에 있을 연회를 준비하느라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행사는 수많은 거물 인사들이 참석하는 자리이자, 엘 가문이 재편성된 후로 처음으로 가주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공식석상이었다. “다들 신경 써서 준비해줘. 각 가문에서 몇 명이 참석하는지, 또 어떤 음식들을 먹을 수 없는지 제대로 체크해. 절대로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앨리스는 정말 최선을 다해 연회 준비를 하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드디어 연회 당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입장을 마쳤다. 오직 나흐 가문만이 늦게 도착해 이목을 끌었다.“이건 저희 가주님께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여기 협력 계약서도 같이 가지고 왔습니다.”나흐 가주 옆에 있던 사람이 손에 들린 거대한 산호를 내밀며 말했다. 산호를 선물로 건네는 것은 드문 것이 아니나, 그 크기와 뿜어져 나오는 기품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협력 계약서까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나흐 가주를 바라봤다. “정말 감사합니다. 계약서는 연회가 끝난 뒤에 직접 살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앨리스가 미소를 지은 채 공손히 대답했다. 비록 둘 다 가주였지만, 연장자였기 때문에 충분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요.”나흐 가문 가주가 앨리스를 관찰하듯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가주 자리를 지켜온 사람으로서 산전수전 모두 겪은 사람이었다. 절대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앨리스는 본능적으로 이번 협력
“엘 가문이 지금 새롭게 편성된 가운데, 입지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우리와의 계약은 필수 일 텐데요. 거절하지 않고 계약서를 가지고 온 것만으로 많은 배려를 해 드린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가주가 당신이 아니었다면 전 이 계약서 들고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건 제가 엘 가문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에요.”앨리스가 거절의 의사를 비치자, 나흐 가문이 불만을 표했다. 어느새 회의실엔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당신도 저희 나흐 가문이 이 지역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이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저희 가문과 등을 돌리겠다는 걸로 간주하겠습니다.”앨리스는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경멸과 분노가 치솟았다. 이런 부류는 그녀가 가장 환멸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나흐 가문은 말로 타이르는 것이 통하지 않자, 대놓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가주님께서 저를 배려해 이 계약서를 가져왔다는 것은 알지만, 이 문제는 제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문의 다른 어르신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또한, 매년 75억 상납하라는 조건에 외국 거래의 절반까지,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조건입니다. 너무 지나칩니다.”앨리스는 계속해서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나흐 가주는 딱딱하게 굳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오른 얼굴이 되었다.“주는 대로 그냥 받아들여. 자꾸 건방지게 굴지 말고. 네 뒤에 누가 있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어쨌든 거래는 우리와 하는 것이 아니냐?”나흐 가문 가주가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쳤다. 앨리스의 체면 따위 전혀 고려해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흐 가주님, 저는 당신의 체면을 충분히 지켜드린 것 같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보고도 아직 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이상 선을 넘지 마세요.”앨리스는 예의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무례함까지는 참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제일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개방의 대방주입니다. 전신 위 경지의 강자이고, 도가 매우 빠릅니다.”이면인은 대방주가 등장하자 황급히 염구준에게 알고 있는 전부의 정보를 제공해주었다.지금 그들은 같은 배에 탄 상황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았다.“네.”염구준은 대방주를 힐끗 쳐다보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전신 위의 실력 따위로는 그의 눈에 들지 못했다. 손 한 번 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내 동생을 다치게 한 게 바로 너냐?”대방주가 오만하게 물었다.염구준의 힘이 깊이 숨겨져 있던 터라 한참 동안 관찰했어도 그는 상대방이 강한지, 약한지 보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위협적인 기운도 감지되지 않았기에 그는 상대방이 단지 전신 정도에 불과하다고 단정 지었다.“그렇다면 어쩔래? 네 동생이 먼저 덤벼든 거야.”염구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네 스스로 두 팔을 자르면 목숨만은 살려주마.”대방주는 날 선 눈빛으로 말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지금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위를 입증하고,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네가 개방의 모든 산업을 넘기고 이 귀울진에서 사라진다면, 나도 너를 살려줄 수 있어.”염구준은 같은 말투로 대답했지만 농담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미 진씨 가문을 개방 대신 3대 세력 중 하나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만약 개방이 순순히 물러난다면 굳이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염구준의 말에 이면인은 안절부절 못했다.그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진씨 가문의 복수는 물거품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차마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하하하!”“죽어라!”대방주는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다가 표정을 굳히더니 도를 들고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전신 위의 기운을 전부 내뿜으면서 말이다.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할 뿐만 아니라 개방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화려하게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기에 이면인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그는 이렇게 큰 일을 하는데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네, 아니면 내일까지 기다리자는 건가요? 전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염구준은 이미 확실하게 말했다. 별 일도 아니고, 빨리 해결해야 진씨 가문의 가보에 대한 정보를 얻어 빨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이면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이 동급 무수자들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개방의 대방주는 전신 위 경지의 실력자입니다.”“갈 겁니까, 말 겁니까?”이미 문 앞까지 도착한 염구준은 짧게 물었다. “가겠습니다. 바로 사람들을 모으겠습니다.”이에 이면인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뿐더러, 진씨 가문은 이미 개방에게 심하게 몰려 있는 상태라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한 번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면인은 진씨 가문의 사람들을 이끌고 개방의 본거지인 ‘개소굴’ 로 향했다.이들의 움직임은 귀울진의 여러 세력들의 주목을 받았고, 길거리에 있던 이들도 수군거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저거 이면인 아니야? 평소에는 그렇게도 비굴하던 놈이 지금 뭐하는 거야?”“뭔지는 몰라도 지금 저 기세를 보아선 무슨 큰일을 꾸미려는 게 틀림없어.”진씨 가문은 자신들의 실력을 철저히 숨겨왔기에, 3대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한 힘을 전혀 알지 못했다.행진하는 진씨 가문의 사람들의 뒤에는 구경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개방한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형님, 제 팔을 끊어버린 놈을 반드시 처단해 주세요.”부상 치료를 받던 이방주가 힘겹게 말했다.과다출혈로 인해 그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는데,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말하는 목소리는 매우 허약했다.강력한 전신의 경지라 하더라도
이면인은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사람들에게 주변을 정리하게 하고 염구준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두 잔의 차를 내오며 거록 존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거록 존주의 본명은 진통신이라고 합니다. 저보다 몇 살 어리죠.”“진통신은 그 배에서 꽤나 뛰어난 몇 사람 중 하나로 손꼽혔습니다. 특히 망기술에 대한 이해와 수련은 그를 능가할 자가 없었죠.”“하지만, 그는 진씨 가문의 가보에 탐욕을 품고 비열한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결국엔 발각되어 가문에서 추방되었지만요.”“몇 년 후, 그는 다른 은세집안들과 힘을 합쳐 진씨 가문을 공격했고, 그로 인해 저희 가문은 큰 손실을 입고 사분오열되고 말았습니다.”...이면인은 거록 존주의 생애를 거의 다 이야기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염구준이 얻은 유용한 정보는 단 하나 뿐이었다. 거록 존주가 진씨 가문의 배신자이고, 가문의 가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그 외의 이야기는 대부분 쓸모없는 것이었다.“진씨 가문의 가보라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거록 존주가 그것을 손에 넣었나요?”염구준이 담담하게 물었다.당연히 그 가보가 탐나서 이렇게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것을 미끼로 사용해 거록 존주를 유인하려는 목적일 뿐이었다.“가지지 못했습니다.”이면인은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의 정보는 말하지 않았다.염구준은 말을 하다가 만 그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뭘 원하시는 겁니까? 돈을 더 주면 되나요?”염구준은 한 가문의 수령이 정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몰락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 가보라는 것이 현재 그들의 상황을 바꿀 수 없거나 애초에 그들의 손에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거래를 하나 합시다. 당신이 저희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해 주신다면, 가문의 가보가 있는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이때, 이면인이 제안을 했다.늘 괴롭힘을 당하는 그들에게 돈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가져도 어차피 빼앗길 것이 뻔했기에 그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말해보세요. 하지만 너
곧이어 그가 팔을 살짝 떨며 힘을 모으자 거대한 기운이 주먹 끝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으윽!”이에 이방주는 버티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몇 걸음 물러났다. 저릿한 팔을 보면서 그는 상대방이 전신의 경지에 불과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그가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건 염구준이 같은 경지의 적수를 만났을 때 한 번도 진적이 없다는 것이다.염구준이 반보천인의 힘을 사용하지 않은 건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서였다.“내가 대충 날린 한 방도 못 막는 걸 보면 넌 겨우 그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네.”염구준은 조소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가 만약 칠권합일까지 사용했다면, 이방주는 이미 중상을 입고 쓰러졌을 것이다.“오만하게 굴지마라.”염구준의 비웃음에 화가 치밀어 오른 이방주는 허리춤에서 연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사실 그는 방금 전의 전투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비장의 카드를 남겨두고 있었다.“검을 쓰려고?”이 모습을 지켜보던 염구준은 흥미롭다는 듯이 감탄하며 더욱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그의 앞에서 검을 휘든다는 건 마치 관우 앞에서 대도를 휘두르는 격이었다.쉭!그의 연검은 매우 유연했다. 이방주는 검을 몇 번 흔들고는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그러나 염구준의 눈에 비친 상대방의 검술은 초보자가 선보이는 것처럼 서투르기 짝이 없는, 아니 심지어는 검술에 대한 모욕이다 싶을 정도로 가관이었다.염구준은 곧바로 오른손으로 검결을 만들며 검의를 불러일으켜 검기를 먼들었다. 검 없이 기운만으로 만들어진 검기라 크게 힘을 내진 못했지만, 이방주를 상대하기에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푹!검기는 곧 이방주의 검과 팔을 관통했고, 구멍이 뚫린 팔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더 볼 것도 없이 이건 이방주의 패배였다.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각자의 진영으로 물러났다.승패가 이미 결정된 이상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할 필요가 없어서였다.“말도 안 돼! 어떻게 전신의 경지가 이렇게까지 강
상황을 정리한 염구준은 계속 지켜봤다.개방의 이방주가 이면인을 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가주가 왔으니 우리 시비를 따져보자고. 오늘 아침에 그쪽 사람이 우리 애들을 때렸어. 그래서 치료비라도 챙기려고 왔는데 이게 과분한 처사 아니지?”수백 명이 되는 개방 무리가 돈을 갈취하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 누굴 때렸어?”이면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몰라. 때렸으니 치료비를 줘.”이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돈을 뜯어내겠다는 뜻이다.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퍽!이면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가방을 던져주면서 물러났다.“이 돈이면 충분해?”“부족해. 여기 땅을 줘.”이방주는 쳐다보지 않고 낡은 별장 구역을 가리켰다.가방에 고작 몇 백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땅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그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집이란 말이다.”이면인은 궁지에 몰리자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뒤에 있던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차서 씩씩거렸다.용하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왔는데 땅을 내준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렇다면 상의할 필요도 없겠네.”이방주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서 진씨 가문을 공격했다.이 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죽기 살기로 싸우자!”이면인도 악을 쓰면서 기운을 발사했다.전신 경지였다.“진씨 가문이 정말 몰락했네.”멀리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혀를 찼다.은세가문에서 아무리 약해도 반보천인 가주가 있어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문이란 그랬다.일어서면 몰락하는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겪었다.천 년을 이어온 가문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하기 때문이다.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벌써 한쪽 실력이 기울어졌다.진씨 가문은 개방의 상대가 아니었다.가장 실력이 있는 이면인이 같은 경지인 개방의 이방주에게 눌려서 얻어맞고 있었다.망기술은 독특한 술법이지만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이면인이 곧 죽을 것 같았다.하지만 염구준은 아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닙니다. 용하 화폐로 200만 원입니다.”귀울진은 용하와 접해 있기에 용하 화폐를 사용했다.“용하에서 건너온 진씨 가문을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염구준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지금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었다.“은세가문인가?”이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그 표정을 보니 진씨 가문의 소재를 아는 것 같았다.염구준이 그것을 눈치챘다.“알고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니면 우려하는 거라도 있습니까?”“진씨 가문에서 돈을 주면서 그들의 정보를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이면인이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염구준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얼마나 원합니까?”염구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1000만 원이요.”이면인은 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 많지 않아요. 갖고 온 돈은 전부 여기 있어요.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죠.”염구준은 가방을 앞으로 던져버렸다.그 말에 이면인은 가방을 들어 대충 훑어보았다.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두 블록 가면 진씨네 국수집이 있는데 거기가 주둔지예요.”“거짓말은 아니겠죠?”염구준이 한마디 더 했다.“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신용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났어요.”이면인은 가방을 챙기고 싱글벙글 웃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이 돈이면 3년을 문을 닫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알았어요. 돈은 받으세요.”염구준은 돌아서 잡화점에서 나갔다.10분 뒤, 이면인은 도둑처럼 가방을 들고 잡화점을 나오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빠르게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이 사람 역시 문제가 있었다.염구준은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쉽게 돈을 떼먹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은 없다.옆에 진씨네 국수집은 이미 오기 전에 들러서 알고 있었다.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 진씨 가문이 누군지조차 몰랐다.“마을 호텔에서 기다리세요. 처리하고 찾으러 갈게요.”염구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현지 정부에서 아예 관리하지 않아 자치 행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난하기 좋았다.점점 많은 범죄자들이 몰려들어 귀울진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을 규모는 중등 도시 못지 않았다.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아 치안이 엉망이었다.“젊은이, 이곳에 별의별 놈들이 살아서 아주 위험한 곳이야. 백가, 개방, 목숨파를 조심해.”“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진씨 가문도 은세가문인데 어떻게 이곳으로 쫓겨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 가지 가능성은 진씨 가문에서 몰래 잠복해 있다면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그는 과일 가게를 지나갈 때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사장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과일을 안 사면 아무것도 묻지 마.”사장님은 염구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했다.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사장님은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손님, 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소식통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진씨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염구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몰라요. 하지만 저기 구두가게 사장이 진씨입니다.”과일 가게 사장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알겠습니다.”염구준은 머리가 아팠다.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만 밝히고 허풍만 떨어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전에도 몇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 돈만 받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그에 비하면 안내자 노인은 성실한 편이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고대영이 조사한 정보가 이것밖에 안 되니까.진씨 가문이 귀울진에만 있다는 것만 알아내서 나머지는 염구준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그때 노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젊은이, 내가 귀울진의 정보왕을 알고 있는데 원하는 가격이 너무 사악하고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야.”만약 염구준이 빨리 처리한다면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고 빨리 돌아갈 수 있다.귀울진
노인은 당황해하며 현금 몇 장을 더 놓았다.“전부 여기 두었어. 그러니까 보내줘.”오늘 변고가 생겨 톡톡히 손해를 보아 속으로 산적들에게 욕을 퍼부었다.하지만 산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레에 누운 염구준을 가리켰다.“저놈을 남기고 영감은 가면 돼. 소는 우리 형제들이 먹게 넘겨.”“안 돼. 우리도 소 덕에 먹고 사는데 넘기면 굶어 죽어.”노인은 애지중지하는 소를 끌고 되돌아가려고 했다.이 산적들은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피 말려 죽이려는 셈이다.예전에 길을 막던 산적들은 이 정도로 선을 넘지 않았다.그냥 돈만 조금 주면 알아서들 떠났다.만약 안내자를 전부 소멸하면 누구도 이 길을 지날 수 없고 그들은 산에서 굶어 죽어야 했다.“거기서. 죽고 싶어?”그들은 무기를 쳐들고 노인에게 돌진했다.우두머리는 손에 총까지 들고 있었다.‘젠장.’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오늘 여기서 도망치지 못하고 죽게 생겼다.“여기 개판이네. 벌건 대낮에 길을 막고 강탈하냐?”그때 염구준이 수레에서 내리며 바닥에 있는 자갈들을 발로 차서 뿌렸다.파팟!자갈은 빠른 속도로 튕겨 달려오는 무리들에게 하나씩 명중했다.그리고 핏방울을 튕기며 전부 바닥에 쓰러트렸다.순식간에 발생하여 상대방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멸한 것이다.그래도 산적들은 죽어 마땅했다.“어르신, 뭐 하세요? 갑시다.”염구준은 얼떨떨해 서 있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가는 길에 도운 것뿐이니 별일도 아니었다.“어, 그래.”그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일어난 일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바로 그때 노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조심해.”우두머리 산적이 죽지 않고 총을 들고 염구준을 향해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이다.“개자식, 죽어라!”펑펑펑!산적은 방아쇠를 힘껏 당겨 총을 몇 발이나 쏘았다.노인은 너무 놀라 두 눈을 찔끔 감고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그런데 모든 탄알을 사용했지만 염구준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서커스단 일 때문이야?”손가을이 눈살을 찌푸렸다.청해에서 최고 여성 사업가 신분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커스단의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맞아. 서커스단과 연관이 있어.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거야.”염구준이 인정했다.“그럼 빨리 다녀와. 난 희주를 지키면서 집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서운했지만 억지로 웃었다.남편이 하려는 일에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로서 가정과 손씨 그룹을 지켜서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지지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가을아, 넌 정말 최고야.”염구준은 다가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손가을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염구준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다들 보고 있어. 집에 가서 안아줘.”손가을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가 보는데?”염구준이 뒤돌아보았더니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아서 직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다들 깨알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흠흠.”염구준이 헛기침을 하자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길을 돌려버렸다.문을 닫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았다.염구준은 아내를 풀어주고 또 구경하러 몰려들까 봐 사무실 문을 닫으러 갔다.손가을은 이어서 업무를 보고 염구준은 옆에서 가끔 서류를 건네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부부는 학교에 들러 딸을 데리고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이튿날 아침, 염구준은 미리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귀울진으로 향했다.빨리 처리하고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용하와 접한 국경 도로에 소 수레 한 대가 여유 있게 가고 있다.수레에 앉은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그는 안내원을 찾아 원시적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길에서 노인이 이곳의 풍습을 소개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을 들어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