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잘 결정하셨다고 봅니다. 저희가 비록 재편성을 겪에 되었으나, 그건 언제까지나 엘 가문 내부 문제지 저들과 상관이 없습니다. 저들은 지금 저희를 자신들의 부속 가문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면 저희는 첫 단추부터 잘못 꾀게 됩니다. 그리고 저희가 비록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남은 인맥들이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숙이고 들어갈 이유 없다고 봅니다.”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앨리스를 바라봤다. 그는 속으로 앨리스의 결정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었다. 처음 앨리스를 가문의 수장으로 세울 땐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 보니 잘한 결정인 것 같았다.“오늘부터 나흐 가문에서부터 저희들을 흔들어 놓으려 어떤 수작을 쓸 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든 거기에 흔들려 넘어가는 자, 엘 가문에서 추방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아랫사람들을 잘 관리하세요. 배신자에겐 절대로 선처가 없을 것입니다.”족장의 명령이 내려지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공손이 대답했다. 그렇게 회의는 끝났고, 앨리스는 가장 나이 많은 족장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물러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 상황에 조금 더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무슨 말하려는 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나흐 가문을 적으로 돌린다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행동이지요. 아무리 뒤에 그 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저희 가문에서 해결을 봐야 할 일입니다.”노인이 지팡이에 힘을 주며 몸을 일으킨 채 말했다. 그는 비록 노쇠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직 생생했다.“만약 나흐 가문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 계약서를 공표해 모두에게 알리세요. 앞으로 진정한 가문의 주인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때로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노인의 진심으로 앨리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앨리스 또한 진지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한때 그녀가 족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반대한 사람이긴 하나, 그는 여전히 존경받는 가문의 어르신이었고 경험만큼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가문이 재편성되자마자 이런 큰 위기에 봉착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정말 뻔뻔하네요. 먼저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한 건 저들인데 모든 것을 저희한테 뒤집어 씌우다니! 지금 당장 저희도 나흐 가문의 실체를 폭로해야 합니다. 저들의 새치 혀에 사람들이 선동되게 둬서는 안 돼요!”몇몇 사람들이 나서 나흐 가문의 실체를 폭로하자고 앨리스를 설득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서둘러 조치를 취하고 싶지 않았다. 폭로한다고 해도 나흐 가문이 쉽사리 놓아주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이 문제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저들이 뭐라 하든 저희가 계약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계약서를 공개하는 건 당장은 좋은 방법 같아도, 다시 역으로 저희가 계약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면 좋을 게 없습니다. 그때 가면 정말 돌이킬 수 없어요. 이 카드는 제일 마지막으로 남겨둬야 합니다.”앨리스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가문의 주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의 상황에도 흔들림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앨리스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침착한 모습에 다시 자리에 앉아 해결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죠. 우선 언론사에 접촉해 뉴스 보도 중지를 요청하고, 저희가 가진 계약서가 진짜라는 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증거들을 찾아내 혼란을 줍시다. 그 뒤는 천천히 다시 고민해보고요.”앨리스의 말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한편, 뉴스를 접한 염구준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나흐 가문이 뭘 믿고 이렇게 설치는지 조사해. 감히 내 사람들을 건드리다니.”염구준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던지며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주님, 저는 이번 사태를 좋은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앨리스가 지금 자리에 오르를 수 있었던 건 결국 저희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번 기회에 그녀가 진짜 그 자리에 걸
“지금 상황은 저희 통제 밖으로 나갔습니다. 체면을 지키다가 진짜 큰 코 다칠 수도 있어요.”옆에서 집사가 뒤따르며 그녀를 끊임없이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대신했다.한편, 나정한은 아버지 서재로 들어와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신문을 책상 위로 던졌다. “아버지, 제가 엘 가문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 뒤에 염구준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왜 이러셨어요? 염구준이 알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저희 가문 멸문 당할지도 몰라요!”평소 온순하고 공손했던 나정한이었지만, 이번 사태만큼은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어리석은 아버지의 선택에 수치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는 도무지 왜 아버지가 염구준 같은 인물을 건드리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내게 화를 내다니, 지금 이게 무슨 태도냐? 내가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모르면 가만히 있거라.”나흐 가주가 여유롭게 책상 앞에서 차를 마시며 덤덤히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셨어요? 이러면 저희 가문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 당장 보도된 이 뉴스들부터 내리라고 해야 해요. 그것만이 지금 사태를 덜 악화시키는 방법이에요.”나정한이 핸드폰을 아버지에게 내밀며 보도국에 연락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부디 염구준이 이 뉴스를 못 봤길 기도해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아버지를 지켜드릴 수 없어요.”아버지의 무미건조한 반응에 나정한이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게 말했다. “네가 뭐라고? 나를 지키겠다고? 잊지 마라. 네가 가진 모든 것, 결국 내가 준 것이다. 요즘 잘한다고 칭찬했더니, 점점 기어오르는구나. 내가 너한테 회사를 맡긴 건 널 시험해 보기 위해서다. 내가 은퇴하지 않았는데, 감히 나한테 이 따위 소리를 지껄이다니!”나흐 가주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책상에 올려져 있는 서류 더미들을 아들을 향해 내던지며 소리쳤다.“내가 살아 있는 한, 넌 절대로 내 위일 수가 없다. 오
거기까지 생각하자 나흐 가주 눈빛에 참을 수 없는 광기가 번들거렸다. 그 모습에 집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결국 가주의 명령, 거부할 수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주사위는 던져졌다. 집사는 속으로 부디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길 기도했다. 다시 한번 뉴스 보도가 나갔고, 소식을 접한 염구준은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나흐 가문이 감히 나에게까지 손을 뻗치려 하다니, 정말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구나!”청룡 또한 그 뉴스를 보고 화가나 신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정말 뻔뻔하네요. 저번 일을 그냥 넘어갔더니, 이제 전주님까지 건드리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다니, 전주님 제가 가서 이들을 정리하겠습니다. 나흐 가문이 어떤 놈들인지 이미 조사 다 마쳤습니다.”청룡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동안 조사해 놓은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나흐 가문의 첫 시작은 지하 도박장이었습니다. 지금은 재벌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거기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어요. 또한 이들은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을 착취하며 자신의 배를 불렸습니다. 특히 지금 가주가 올라간 뒤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죠. 하지만 이들 중에 나정한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만 다릅니다. 외부에서 직접 자신의 힘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잘 나가고 있습니다.”염구준이 나정한의 프로필을 보며 뛰어난 능력에 감탄했다.“이건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나흐 가문이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확인해야겠어.”염구준이 자료들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재미있군.”최근 몇 년, 아무도 감히 그에게 도전하지 않았었는데, 나흐 가문이 처음이었다. 염구준은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을 느꼈다.“알겠습니다.”염구준이 직접 나서겠다는 말을 듣자 청룡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는 염구준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오후, 나흐 가문 문 앞에 고급 차량들이 줄지어 등장했다.이어서 염구준이 군복과 권총을 멘 채 기세
“안그래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네요.”가주가 직접 차를 따라주며 염구준을 위아래로 살폈다. 군복차림에 강력한 분위기, 확실히 남달라 보였다. 비록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나, 그의 무공 실력은 확실히 뛰어나 보였다. “서로 떠보는 건 여기까지 하시죠. 최근 엘 가문과 계약 맺으려 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앨리스는 제 사람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조건을 제시했는지 알고 싶은데요?”염구준은 오늘 뉴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곧바로 계약 얘기부터 꺼냈다. “아, 별거 아니었습니다. 엘 가문이 재편성되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좀 지원해드리려고 했는데, 앨리스가 그걸 거절했네요. 하지만 지금 보니 다 이유가 있었네요. 당신의 지원을 받아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거군요? 그런데 지금 무슨 직책을 맞고 계신가요?”가주가 떠보듯 말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전혀 그의 꼼수에 넘어가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더 이상 쓸데없는 예의는 안 차리겠다. 계약은 이미 검토해봤다. 완전 불합리한 조건이던데, 누굴 바보로 아나?”염구준이 테이블 위로 계약서를 던지며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러자 가주도 미소를 지우고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예의 안 차리고 솔직하게 말하겠다. 우리 가문에 소속이 되라는 거, 나쁘지 않는 조건일 텐데? 지금 약해진 엘 가문의 실력으로는 다른 가문의 표적이 되기 쉬울 테니, 우리 밑으로 들어오면 보호받을 수 있을 거다.”나흐 가주가 그렇게 말했지만, 염구준은 그의 말이 괴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당신한테 감사해해야 한다는 거야? 그럼 이 뉴스는 어떻게 해명할 건데?”염구준이 뉴스를 언급하자, 가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 됐다. 설명 듣고 싶지도 않다. 당장 이 뉴스 철회시키고, 다른 보도도 멈춰라.”염구준이 명령하듯 말하자, 가주는 불쾌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랫동안 왕의 자리에서 군림해온 사람으로서, 이런 대접은 정말
“더 소중한 거? 설마… 내 아들? 내 아들은 건드리지 마!”그 말을 들은 나흐 가주는 참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 일어나 염구준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건드리겠다면,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염구준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날 먼저 자극한 건 너야. 그러니 대가를 치러야지. 북쪽 창고로 가봐. 거기에 네 아들이 있을 테니.”말을 마치고 염구준은 나흐 가주를 지나쳐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총을 다시 집어넣고 자리를 떠났다. 문 앞에 선 경호원들은 그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주님, 괜찮으세요?”집사가 가주를 부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 세월 가주를 보좌해 왔지만, 이런 참담한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는 나흐 가문이 큰 위기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빨리 북쪽 창고로 출발해!”가주가 집사 손을 잡으며 겁먹은 아이처럼 소리쳤다. 집사는 그를 부축하며 옆에 경호원에게 차를 대기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순식간에 나흐 가문은 혼란에 빠졌고, 가주는 집사의 손을 부여잡은 채 창백한 안색으로 몸을 떨었다. “가주님, 진정하세요. 아무리 염구준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함부로 하지는 못할 거예요.”집사는 가주를 달래려 노력했지만, 속엔 걱정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이 말 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상식이 통하는 놈이었으면, 처음부터 이런 일을 벌였을까!”가주가 집사를 노려보며 화를 냈다. 하지만 머리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해 갔다. “당장 정한한테 전화해서 있는 돈 다 뽑아오라고 해!”계산을 마친 그는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건 돈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주님, 그거 다 빼면 저희 가문은 끝장입니다. 지금 계좌에 있는 현금은 움직일 수는 없어요. 당장 중요한 계약도 앞두고 있는데, 그거 다 빼면 파산신청해야 할지도 모릅니다!”“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 아니야! 내 아들 목숨이 달렸다고!”가주가 집사를 노려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집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염구준, 어른들의 일에 아이를 끌어들이지는 말자고 네가 대장부라면 아이는 풀어 줘!" 자신의 아들이 거칠게 휘둘리는 것을 본 그는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여기가 염구준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말조심해!" 염구준이 말을 꺼내기 전에 청용이 나섰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온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나흐 가문의 가주, 나명관을 겁먹게 했다. 나명관은 염구준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염구준, 전에는 내가 무례했어. 지금 당장 뉴스를 철회하라고 할 테니, 제발 아이는 놔줘." 불길이 일던 나명관의 눈이 순식간에 식었다. 염구준의 주변에 많은 병사들과 강력한 부하들을 본 그는 자신이 그에게 맞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늦었어! 난 이미 너에게 기회를 줬다." 염구준은 입술을 살짝 움직이며 차분하게 내뱉었다. 그는 손을 휘저으며 아이를 자신의 곁으로 데려왔다. "평생을 화려하게 살았던 나흐 가문이 세 살배기 아이 때문에 이렇게 비굴해질 줄은 몰랐군." 눈에 독기가 서린 염구준이었지만 아이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다. "화풀이는 나에게 하고 아이는 놔줘. 나흐 가문의 전 재산도 줄 수 있어!" 염구준의 손을 주시하고 있는 나명관은 염구준의 부하가 아이에게 손을 댈까 봐 두려웠다. "내가 돈이 부족해 보여? 나명관, 네가 하는 지하 도박장, 마약 판매, 무기 밀수들은 모두 금지되어야 하는 것들이야." "네 아들이 소중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가정도 생각했어야지." 염구준은 조사 결과를 내던지며 매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네 아들이 귀한 줄 알면 다른 가정은? 그런 것들로 이룬 부가 편했던 거야?" 증거들 앞에 나명관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 쿵쿵쿵.그는 이마에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박으며 멈추지 않았다. "가주님, 그만하세요." 집사는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나명관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화를 냈다. "건드리지 마! 내가 죄를 뉘우치는 거다. 이건 모두 내
비꼬아 말하면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염구준은 자신과 아내에게 아들이 있다면 이렇게 귀여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어. 너 같은 파렴치한 사람 곁에 두면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돼서 말이야.” 염구준은 개보다도 못한 이 남자를 경멸하며 한 번 쳐다본 뒤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쫓아가려던 나명관은 과다출혈과 격해진 감정때무에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염구준은 아이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그때 뒤따르던 청용이 물었다.“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청용이 손으로 목을 긋는 동작을 하자, 흠칫하던 염구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른이 저지른 일은 아이와는 상관없지. 이 아이는 내가 잘 키울 것이다. 다만 나흐 가문은 전력으로 짓밟는다.” 자신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며 염구준은 오랜만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청용은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전신이 감정에 휘둘릴까 걱정했다.하지만 다행히도 그가 과도하게 걱정했던 것 같다.“네가 너무 앞서갔어.” 그의 곁으로 다가간 주작이 냉랭한 표정으로 불만을 드러냈다.모두가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사람들이니, 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전신만의 생각이 따로 있으니 네 생각을 그분께 투영하지 마.” 말을 마친 주작은 냉정한 뒷모습을 남기고 떠났다. 청용은 멋쩍게 웃으며 개의치 않았다. 이 여자는 원래 전신 외에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저녁 무렵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염구준은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손가을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왔어?” 밝은 빛에 잠에서 깬 손가을이 눈을 비비며 염구준을 보았다. “응, 앞으로는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돼.” 염구준은 그녀의 얇은 옷차림에 마음이 아팠다. 그는 자신의 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이 아이는 누구야?” 사탕을 먹고 있는 아이가 손가을의 주의를 끌었다. 귀여운 표정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설마 밖에서 낳은 사생아는 아니지?” 손가을의
상황을 정리한 염구준은 계속 지켜봤다.개방의 이방주가 이면인을 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가주가 왔으니 우리 시비를 따져보자고. 오늘 아침에 그쪽 사람이 우리 애들을 때렸어. 그래서 치료비라도 챙기려고 왔는데 이게 과분한 처사 아니지?”수백 명이 되는 개방 무리가 돈을 갈취하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 누굴 때렸어?”이면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몰라. 때렸으니 치료비를 줘.”이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돈을 뜯어내겠다는 뜻이다.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퍽!이면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가방을 던져주면서 물러났다.“이 돈이면 충분해?”“부족해. 여기 땅을 줘.”이방주는 쳐다보지 않고 낡은 별장 구역을 가리켰다.가방에 고작 몇 백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땅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그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집이란 말이다.”이면인은 궁지에 몰리자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뒤에 있던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차서 씩씩거렸다.용하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왔는데 땅을 내준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렇다면 상의할 필요도 없겠네.”이방주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서 진씨 가문을 공격했다.이 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죽기 살기로 싸우자!”이면인도 악을 쓰면서 기운을 발사했다.전신 경지였다.“진씨 가문이 정말 몰락했네.”멀리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혀를 찼다.은세가문에서 아무리 약해도 반보천인 가주가 있어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문이란 그랬다.일어서면 몰락하는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겪었다.천 년을 이어온 가문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하기 때문이다.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벌써 한쪽 실력이 기울어졌다.진씨 가문은 개방의 상대가 아니었다.가장 실력이 있는 이면인이 같은 경지인 개방의 이방주에게 눌려서 얻어맞고 있었다.망기술은 독특한 술법이지만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이면인이 곧 죽을 것 같았다.하지만 염구준은 아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닙니다. 용하 화폐로 200만 원입니다.”귀울진은 용하와 접해 있기에 용하 화폐를 사용했다.“용하에서 건너온 진씨 가문을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염구준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지금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었다.“은세가문인가?”이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그 표정을 보니 진씨 가문의 소재를 아는 것 같았다.염구준이 그것을 눈치챘다.“알고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니면 우려하는 거라도 있습니까?”“진씨 가문에서 돈을 주면서 그들의 정보를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이면인이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염구준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얼마나 원합니까?”염구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1000만 원이요.”이면인은 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 많지 않아요. 갖고 온 돈은 전부 여기 있어요.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죠.”염구준은 가방을 앞으로 던져버렸다.그 말에 이면인은 가방을 들어 대충 훑어보았다.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두 블록 가면 진씨네 국수집이 있는데 거기가 주둔지예요.”“거짓말은 아니겠죠?”염구준이 한마디 더 했다.“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신용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났어요.”이면인은 가방을 챙기고 싱글벙글 웃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이 돈이면 3년을 문을 닫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알았어요. 돈은 받으세요.”염구준은 돌아서 잡화점에서 나갔다.10분 뒤, 이면인은 도둑처럼 가방을 들고 잡화점을 나오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빠르게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이 사람 역시 문제가 있었다.염구준은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쉽게 돈을 떼먹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은 없다.옆에 진씨네 국수집은 이미 오기 전에 들러서 알고 있었다.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 진씨 가문이 누군지조차 몰랐다.“마을 호텔에서 기다리세요. 처리하고 찾으러 갈게요.”염구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현지 정부에서 아예 관리하지 않아 자치 행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난하기 좋았다.점점 많은 범죄자들이 몰려들어 귀울진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을 규모는 중등 도시 못지 않았다.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아 치안이 엉망이었다.“젊은이, 이곳에 별의별 놈들이 살아서 아주 위험한 곳이야. 백가, 개방, 목숨파를 조심해.”“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진씨 가문도 은세가문인데 어떻게 이곳으로 쫓겨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 가지 가능성은 진씨 가문에서 몰래 잠복해 있다면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그는 과일 가게를 지나갈 때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사장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과일을 안 사면 아무것도 묻지 마.”사장님은 염구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했다.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사장님은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손님, 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소식통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진씨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염구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몰라요. 하지만 저기 구두가게 사장이 진씨입니다.”과일 가게 사장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알겠습니다.”염구준은 머리가 아팠다.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만 밝히고 허풍만 떨어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전에도 몇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 돈만 받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그에 비하면 안내자 노인은 성실한 편이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고대영이 조사한 정보가 이것밖에 안 되니까.진씨 가문이 귀울진에만 있다는 것만 알아내서 나머지는 염구준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그때 노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젊은이, 내가 귀울진의 정보왕을 알고 있는데 원하는 가격이 너무 사악하고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야.”만약 염구준이 빨리 처리한다면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고 빨리 돌아갈 수 있다.귀울진
노인은 당황해하며 현금 몇 장을 더 놓았다.“전부 여기 두었어. 그러니까 보내줘.”오늘 변고가 생겨 톡톡히 손해를 보아 속으로 산적들에게 욕을 퍼부었다.하지만 산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레에 누운 염구준을 가리켰다.“저놈을 남기고 영감은 가면 돼. 소는 우리 형제들이 먹게 넘겨.”“안 돼. 우리도 소 덕에 먹고 사는데 넘기면 굶어 죽어.”노인은 애지중지하는 소를 끌고 되돌아가려고 했다.이 산적들은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피 말려 죽이려는 셈이다.예전에 길을 막던 산적들은 이 정도로 선을 넘지 않았다.그냥 돈만 조금 주면 알아서들 떠났다.만약 안내자를 전부 소멸하면 누구도 이 길을 지날 수 없고 그들은 산에서 굶어 죽어야 했다.“거기서. 죽고 싶어?”그들은 무기를 쳐들고 노인에게 돌진했다.우두머리는 손에 총까지 들고 있었다.‘젠장.’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오늘 여기서 도망치지 못하고 죽게 생겼다.“여기 개판이네. 벌건 대낮에 길을 막고 강탈하냐?”그때 염구준이 수레에서 내리며 바닥에 있는 자갈들을 발로 차서 뿌렸다.파팟!자갈은 빠른 속도로 튕겨 달려오는 무리들에게 하나씩 명중했다.그리고 핏방울을 튕기며 전부 바닥에 쓰러트렸다.순식간에 발생하여 상대방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멸한 것이다.그래도 산적들은 죽어 마땅했다.“어르신, 뭐 하세요? 갑시다.”염구준은 얼떨떨해 서 있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가는 길에 도운 것뿐이니 별일도 아니었다.“어, 그래.”그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일어난 일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바로 그때 노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조심해.”우두머리 산적이 죽지 않고 총을 들고 염구준을 향해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이다.“개자식, 죽어라!”펑펑펑!산적은 방아쇠를 힘껏 당겨 총을 몇 발이나 쏘았다.노인은 너무 놀라 두 눈을 찔끔 감고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그런데 모든 탄알을 사용했지만 염구준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서커스단 일 때문이야?”손가을이 눈살을 찌푸렸다.청해에서 최고 여성 사업가 신분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커스단의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맞아. 서커스단과 연관이 있어.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거야.”염구준이 인정했다.“그럼 빨리 다녀와. 난 희주를 지키면서 집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서운했지만 억지로 웃었다.남편이 하려는 일에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로서 가정과 손씨 그룹을 지켜서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지지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가을아, 넌 정말 최고야.”염구준은 다가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손가을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염구준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다들 보고 있어. 집에 가서 안아줘.”손가을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가 보는데?”염구준이 뒤돌아보았더니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아서 직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다들 깨알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흠흠.”염구준이 헛기침을 하자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길을 돌려버렸다.문을 닫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았다.염구준은 아내를 풀어주고 또 구경하러 몰려들까 봐 사무실 문을 닫으러 갔다.손가을은 이어서 업무를 보고 염구준은 옆에서 가끔 서류를 건네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부부는 학교에 들러 딸을 데리고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이튿날 아침, 염구준은 미리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귀울진으로 향했다.빨리 처리하고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용하와 접한 국경 도로에 소 수레 한 대가 여유 있게 가고 있다.수레에 앉은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그는 안내원을 찾아 원시적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길에서 노인이 이곳의 풍습을 소개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을 들어본
망기술의 역할을 알고 있는 염구준은 문제점을 말했다.“진씨 가문은 어디 있어? 거록이 혹시 거기에 있나?”고대영은 숨기지 않고 염구준의 질문에 바로 답했다.“진씨 가문은 해외로 쫓겨나서 국경에 있는 귀울진에 있어. 거록이 거기 있는지는 나도 몰라.”염구준은 용하의 은세가문이 왜 해외로 쫓겨났는지 알 수 없었다.이런 상황은 정말 흔치 않았다.“수고했어. 약속대로 내가 수고비는 보내줄게.”염구준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그가 원하는 정보는 이것밖에 없었다.“돈은 됐어. 우리 고씨 가문의 외가 가주 자리가…”고대영은 돈을 받는 대신 다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염구준이 끊어버렸다.“됐어. 이따가 계좌로 이체할게. 시간 되면 청해에 놀러와.”염구준은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끊어버렸다.계속 통화를 했다면 고대영이 또 이 말을 꺼낼 게 뻔했다.“모두 같은 핏줄이니 네가 고씨 외가의 가주가 되어라.”비록 염구준의 생모 고유란이 고씨 외가의 가주였지만 지금 그와 관련이 없으니 이어받을 의무도 없었다.지금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염구준은 집으로 나가 주차장으로 갔다.손가을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귀울진에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주자창에 갔을 때 살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와.”아직 싸우기 전에 살기부터 흘리다니 정말 모자란 놈들이었다.스스슥!갑자기 나무 위, 관목 안, 하수도 뚜껑 아래서 그림자들이 뛰쳐나왔다.모두 복면을 써서 진짜 얼굴은 볼 수 없었다.“하, 실력이 제일 강한 놈이 정진왕자라니, 죽으러 왔어?”염구준이 그들을 훑어보았다.“거록 존주께서 말씀을 전달하라 하셨다. 청해에만 있어라.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죽는다!”일행은 먼저 협박 어린 말을 전달했다.“청해에서 나가겠다면 어떡할 건데?”염구준이 껄껄 웃으면서 되물었다.“그럼 죽인다!”한 사람이 싸늘하게 말하더니 일행이 동시에 염구준을 공격했다.아마도 그의 실력을 모르는 것 같았다.촤아악!염구준이 몸을 번쩍
“필요 없어. 겁 먹고 외국에 도망친 너랑 달라. 정말 창피해. 우리 떠돌이 7인조의 명성에 먹칠했어. 염구준 따위가 감히 내 대업에 끼어들었으니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역시 자극을 받은 거록 존주는 흑풍을 경멸하면서 말했다.지금 흑풍은 그가 말한 것처럼 염구준이 무서워서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지난번 윤씨 가문에서 염구준과 맞붙었을 때 한 손을 잃어버려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았다.“넷째 형, 잘 생각해 봐.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흑풍은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 여전히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지 마. 그보다 네가 준 사술법으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냐?”지금 거록의 관심사는 염구준보다 사술법이었다.천인 경지는 꿈에서도 도달하고 싶은 것이라 매우 유혹적이었다.“물론이지. 심혈주를 만들어서 삼키면 바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흑풍은 더는 설득하지 않고 확실하게 대답했다.거록이 단호하게 나오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그렇다면 됐다. 내가 천인 경지를 돌파하면 너 대신 염구준 그놈을 죽여줄게.”거록은 자신있게 말했다.그 단계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최고 고수로 거듭나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고마워, 형.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염구준의 손에 있는 옥패 4개도 챙겨줘.”흑풍은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그의 목표는 지금도 옥패였으니 천인 경지에 도달하는 사술법에 관심이 없었다.어쩌면 다른 방법을 알기에 사술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걱정 마. 난 옥패에 관심이 없어. 만약 손에 넣으면 너한테 줄게.”거록도 승낙했다.옥패 8개에 심도 깊은 무학이 있어서 보물이라는 것은 다들 알지만 더 깊은 의미는 알지 못했다.“그럼 이만 끊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흑풍은 말을 끝내고 통화를 끊어버렸다.지금 그가 있는 곳은 어두운 지하였다.그곳에 허약한 몸의 사내가 견갑골을 입고 있었다.“젠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사술법을 알려주면 날 풀어준다고 했잖아.”사내는
염구준은 초상비 일행에게 철창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물론 치료비는 모두 그가 부담할 것이다.광대와 서커스단 관련자들은 경찰에 보내서 법으로 다스리도록 안배했다.서커스단의 동물들은 청해 동물원에 보내져서 적절하게 배치했다.그 바람에 동물원에서 땡잡았다.더는 허스키를 늑대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호랑이로 분장할 필요도 없었다.모든 후사를 처리한 후, 염구준은 공연장에서 나와 모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그날 저녁, 염구준에게 전화가 왔었다.“염구준 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서커스단은 원래 합법이었는데 단장이 살해된 후 나쁜 놈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파렴치한 짓을 했더군요.”“이들 우두머리는 코브라라 부르고 거대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유사한 패거리가 더 있는 걸로 추측합니다. 구제척인 것은 아직 자백받지 못했어요.”경찰 측에서 조사한 것을 모두 염구준에게 알려줬다.“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염구준이 대답했다.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경찰에게 맡기면 되니 그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이어서 초상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구출한 사람들이 모두 고비를 넘겼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치료비는 염구준이 모두 낼 테니 이 일에 대한 모든 권한을 초상비에게 맡겨서 처리하게끔 안배했다.심혈을 뽑으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다.아무리 치료를 해도 수명이 최소한 10년은 줄어들 것이다.떠돌이 7인조에서 하는 짓들은 어느 하나 정당한 것이 없었다.이런 독종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염구준은 거록 존주의 소식을 얻지 못했지만 다른 방면으로 단서를 찾았다.망기술이라는 독특한 방법은 용하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는 은세가족의 윤대약, 고대영에게 연락해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동시에 직접 얼음 인간 즉 봉유곡의 초상화를 그려 전신전에서 행방을 찾으라 지시했다.모든 일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거록 존주가 사람의 심혈을 뽑았던
서커스단 공연은 염구준이 사라진 후로 잠시 중단되었다.손가을은 손씨 그룹에서 절반 넘는 경호원들을 불러 수색하기 시작했다.거기에 호찬, 초상비 등 고수들도 있고 신위무관의 원종과 정경림도 있었다.이 기세로 보아 은세가문과 전쟁을 치러도 충분할 것 같았다.용필은 신혼여행을 떠나서 연락하지 않았다.“당장 사람을 풀어줘!”손가을이 언성을 높이며 모처럼 화를 냈다.평소 그녀는 성격이 털털해서 어떤 일에 부딪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하지만 남편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아무리 남편의 실력이 대단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여사님, 저희 계약서까지 작성했어요.”광대가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촤아악!“부끄럽지 않아서 이런 불법 계약서를 꺼내?”손가을은 빼앗아와서 바로 찢어버리고 바닥에 내팽개쳤다.오늘 염구준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근데 마술사가 사라져서 저희도 찾을 수 없어요.”광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땅을 파서라도 찾아내세요!”손가을이 뒤에 있는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아빠 예전처럼 사라지는 거예요?”깜짝 놀란 염희주가 울면서 물었다.지난 일은 어린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팠다.이번 일로 인해 아마 평생 서커스단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아니야. 아빠는 우리랑 숨박꼭질하는 거야.”손가을은 애써 웃으면서 딸을 진정시켰다.지시를 받은 손씨 그룹 경호원은 이미 굴착기까지 불러서 땅을 팔 기세였다.서커스 경호원들은 아무리 말려도 역부족이었다.관중들은 그 장면을 보고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뿔뿔이 사라졌다.“가자. 대표님 화 나셨어. 보통 일이 아니야.”“손 대표님 사람이 얼마나 좋은데, 부디 남편을 찾길 바라.”“이제 보니 서커스가 문제 있네. 방금 무대에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떠들썩하던 관중석은 텅텅 비어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펑!경호원이 굴착기를 작동해 땅을 파려고 할 때 굉장한 소리가 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