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6명은 눈 깜짝할 사이에 민규형에게 죽임당했다.13명의 고수가 그렇게 사라졌다.“형님!”민규현이 몰래 그들을 염탐하던 고수 13명을 죽인 뒤, 정태웅, 천현수, 재이 등 사람들이 달려왔다.가까이 간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피투성이가 된 시체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특히 민규현에게서 엄청난 절정의 기운이 느껴지자 정태웅은 가장 먼저 흥분해서 말했다.“축하합니다, 형님! 신급 절정이 되셨네요!”천현수는 부러운 눈빛으로 민규현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민규현은 전혀 우쭐해하지 않았다. 그는 존경하는 눈빛으로 윤구주가 있는 먼 곳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나 민규현의 모든 것은 저하께서 주신 거야. 오늘부터 우리 저하를 해치려고 하거나 저하를 방해하는 자들은 내가 모두 처단하겠어!”차갑게 말한 뒤 민규현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13구를 바라보았다.“현수야!”이름을 불린 천현수는 곧바로 앞으로 나왔다.“네!”“조사해 봐. 이 13명이 각각 어느 세력 출신인지. 감히 몰래 우리 저하를 염탐하려고 해? 전부 조사해 내서 멸문시켜야겠어!”천현수는 민규현의 성격을 알았다.그는 평생 윤구주만을 받들었다.그의 마음속에서 윤구주는 신이자 그의 모든 것이었다.그런데 감히 대놓고 윤구주의 뒤를 밟고 그를 훔쳐보니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암부 3대 지휘사인 천현수는 정보 수집에 능통했고 견식도 넓었다. 그는 곧바로 죽은 13명의 정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천현수는 이내 조사를 마친 뒤 보고를 올렸다.“형님, 그 13명 중 6명은 문벌 출신이고 4명은 국방부 출신이었습니다. 나머지 3명은 출신을 알 수가 없는데 아마도 서울 세가 출신인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민규현은 차갑게 말했다.“오늘부터 문벌과의 전쟁을 선포해. 이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우리 저하를 해치려고 해? 난 그들 모두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네!"...서울 황성 안 우상의 저택.아침 일찍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상의 저택 앞에 몰려들었다.“서울 공씨 문벌, 어르신을 뵙고
고대 슈퍼 문벌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육도진의 저택에 사람을 보내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굳게 닫힌 저택 대문 앞에서 4대 슈퍼 문벌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을 때 끼익 소리와 함께 오래된 붉은색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곧 뚱뚱한 집사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왔다.그 사람은 저택의 집사 안두성이었다.안두성은 안에서 나오더니 싱긋 미소 지으며 4대 슈퍼 문벌 사람들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여러분, 기다리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최근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조용한 환경에서 몸조리해야 합니다. 만약 볼일이 있다면 다른 날 다시 오시죠!”핑계처럼 들리는 말이었다.4대 슈퍼 문벌인 공시, 제씨, 옥씨, 신씨 사람들은 모두 현명했다.그들이 집사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어르신께서 정말로 저희를 만나지 않겠답니까?”공씨 일가의 한 신급 중급 노인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뚱뚱한 안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 말씀드렸지만 어르신께서는 몸이 좋지 않으셔서 몸조리하셔야 합니다.”“황당하군요! 한 나라의 우상이라는 자가 우리 문벌의 생사를 무시하겠다는 겁니까?”제씨 일가의 신급 강자가 앞으로 나서면서 호통을 쳤다.“옳은 말씀입니다. 100년 전, 곤륜에서는 국난이 닥치지 않으면 신급 절정 강자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만한 놈이 곤륜의 금지령을 어기고 왕권의 땅 서울에서 공공연히 신급 절정이 되었습니다. 서울의 정무를 관리하는 우상께서는 정말로 이 일을 눈감아 줄 것입니까?”옥씨 일가의 신급 고급 강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안두성 집사에게 말했다.그의 말대로 신급 절정은 세상에 나오면 안 되었다.화진의 무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신급 절정 강자 모두 백 년 전 곤륜에서 내린 금지령을 따라야 했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죽게 된다.화진의 우상인 육도진은 서울의 모든 정무를 관리했다.크고 작은 정무 모두 육도진의 관할 아래 있었다.그중에는 신급
그들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안두성은 한숨을 내쉰 뒤 저택으로 돌아왔다.저택 안.육도진은 유유자적하게 정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안두성이 돌아오자 육도진은 그제야 눈을 가늘게 뜨면서 차를 마시며 말했다.“다 갔느냐?”“어르신, 제가 다 쫓아냈습니다.”안두성이 말했다.“참나, 염병할 것들. 날 귀찮게 하러 오네. 자기들이 잘못했으면서 아주 뻔뻔하게 굴어.”육도진은 욕하면서 말했다.“어르신, 오늘 보니 문벌 쪽에서 굉장히 조급한 듯합니다. 떠나기 전에는 그런 말도 남겼습니다. 신급 절정의 조상들을 부를 거라고요. 막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 늙은 괴물들이 세상에 나온다면 서울은 큰 혼란에 빠질 겁니다.”안두성이 입을 열었다.“하, 누굴 겁주려고 그러는 건지. 신급 절정이면 뭐? 이틀 전 용하 산맥에서 죽은 신급 절정 강자들로는 부족한가 보지? 그 늙은이들에게 나와보라고 해. 안 죽고 사는지 보고 싶네!”육도진은 조롱 가득한 어조로 웃으며 말했다.용하 산맥 전투에서 문창정은 문벌 출신의 신급 절정 강자 5명을 보냈는데 전부 윤구주에게 죽임당했다.그런데 문벌에서 또 신급 절정 강자들을 보낼 거라고 했다.“어르신,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인가요?”안두성이 계속해 물었다.육도진은 손을 저었다.“상관하지 마. 그리고 내가 상관하고 싶다고 해서 상관할 수 있는 일도 아니야. 한 명은 삼십 년 전 서울 최고 절정이라 불렸던 윤신우고 다른 한 명은 우리 화진의 구주 군신 구주왕이잖아. 그렇게 대단한 부자를 내가 어떻게 관리하겠어?”“알겠습니다!”안두성은 말을 마친 뒤 물러났다.육도진은 윤구주 부자를 떠올리자 답답한 마음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내팽개쳤다.골치가 아팠다.이때 하인 한 명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어르신, 어르신. 큰일입니다. 꼬마 도련님께서 또 소동을 일으켰습니다!”그 말을 들은 육도진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그 자식 또 무슨 짓을 한 거야?”“꼬마 도련님은 무각의 몇몇 선생님을 때려
육도진은 무각탑에 도착한 뒤 안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자 곧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얘기해. 그놈 어디 있어?”육도진이 화가 난 목소리로 호위에게 물었다.얼굴에 퍼렇게 멍이 든 호위는 서둘러 무각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어르신, 꼬마 도련님은 바로 안에 계십니다!”“난 이 자식 때문에 화병으로 죽을 거야!”육도진은 욕지거리를 하면서 서둘러 탑 안으로 들어갔다.무각탑에 들어가자마자 꽃병 하나가 육도진의 얼굴로 날아왔다.다행히 육도진은 실력이 너무 약하지 않았다. 꽃병이 얼굴을 향해 날아들자 그는 손을 움직여 꽃병을 허공에서 깨뜨렸다.고개를 들어 보니 맨발에 머리가 크고 지저분한 아이 한 명이 무각탑 안에서 거만하게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 있었다.그가 바로 육도진의 친손자 서울의 꼬마 패왕이라고 불리는 육시우였다.육시우의 곁에는 얼굴에 멍이 든 신급 강자 노인 몇 명이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억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육도진이 안으로 들어오자 신급 강자인 무각 선생님들은 곧바로 육도진을 불렀다.“어르신!”그들 모두 살려달라는 표정이었다.“어, 할아버지. 여긴 어쩐 일이세요?”큰 머리를 가진 육시우는 육도진을 보고 애늙은이처럼 그를 불렀다.“이 자식, 또 사고를 쳤어? 이 무각을 아주 뒤집어 놔야 속이 후련해?”육도진은 다짜고짜 욕했다.아이는 화를 내지 않고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가 찾아준 선생님들이 다 쓸모없어서 그렇죠!”“너, 너, 네 이놈! 내가 가르쳤었지. 선생님을 존중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야. 그런데 무각 선생님들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육도진이 화를 내며 말했다.“흥, 전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잖아요. 제 아빠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할아버지만 동의하면 저는 누가 되든 상관없어요!”육시우가 말했다.그 말을 들은 육도진은 화가 나서 속이 터졌다.“아이고, 우리 육씨 일가에 어쩌다가 너 같은 말썽꾸러기가 태어났는지 모르겠어!”
육시우가 구주왕을 때려죽이겠다고 하자 육도진은 기겁했다.“말도 안 돼. 넌 절대 그분의 상대가 되지 못해.”육도진은 그렇게 말한 뒤 무도탑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육시우가 육도진을 잡았다.“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사람 이름이 뭔지만 알려주세요. 얼른 얘기해주세요!”육시우가 자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계속 캐묻자 육도진은 어쩔 수 없이 얘기해 주었다.“윤구주라고 한단다. 능력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 봐.”말을 마친 뒤 육도진은 무각탑을 떠났다.기민한 눈빛을 가진 육시우는 윤구주의 이름을 듣더니 작은 주먹을 쥐었다.“윤구주? 기다려. 내 주먹으로 때려죽여 줄 테니까.”육도진은 그 뒤로 하루 종일 서재 안에서 문벌 쪽의 소식을 알아보고 있었다.구주왕은 이미 서울로 돌아왔고 문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비록 대부분의 문벌은 윤구주가 살아있다는 걸 아직 몰랐지만 만약 이 일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서울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그렇기에 서울 내정을 관리하는 우상 육도진은 반드시 이를 막아야 했다.그래서 그는 지금 당장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생각이었다.“안두성!”육도진은 자료를 쓱 본 뒤 이름을 하나 불렀다.저택의 집사인 안두성은 빠르게 달려왔다.“어르신, 무슨 분부 있으십니까?”“내가 물으마. 공씨, 제씨, 옥씨, 신씨 4대 문벌 쪽은 어때?”안두성이 보고했다.“아직은 네 문벌 모두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아본 데 의하면 네 가문 모두 그들의 신급 절정 조상들과 연락한 것 같습니다.”그 말에 육도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서울의 4대 고대 문벌로서 네 가문은 과거 윤씨 일가와 실력이 엇비슷했다.만약 그들이 정말로 신급 절정 실력의 조상들과 연락했다면 서울에서 한 차례 대전이 일어날 것이다.“그 네 집안 모두 배짱이 아주 두둑하네.”육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흥,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신급 절정 실력의 조상들을 부른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을 거야. 자기 주제 파악을
안두성은 비록 육도진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우상 저택의 집사로서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질문은 하면 안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안두성, 나 대신 구주왕을 찾아봬.”육도진이 갑자기 말했다.안두성은 육도진이 구주왕을 만나러 가라고 하자 너무 흥분해서 펄쩍 뛰었다.“어르신, 제게 화진 제일의 왕을 찾아가라고 하신 겁니까?”육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구주왕을 찾아가서 공씨, 제씨, 옥씨, 신씨 4대 고대 문벌의 신급 절정 실력을 갖춘 조상들이 찾아갈 거라는 소식을 전해.”육도진은 천천히 말했다.그 말을 들은 안두성은 그제야 육도진의 뜻을 이해했다.육도진은 윤구주에게 미리 언질을 주려는 것이었다.“네, 네!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안두성은 기뻐하면서 말했다.이제 곧 전설 속 화진 제일의 왕을 만날 수 있으니 도저히 들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육도진이 집사에게 윤구주를 찾아가라고 할 때, 문밖에서 누군가 몰래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육시우였다.육도진이 안두성에게 윤구주를 찾아가라고 하는 걸 듣게 된 육시우는 곧바로 눈을 빛냈다.“구주왕? 설마 할아버지께서 집사 할아버지에게 나보다 더 강하다던 그 사람을 만나러 가라고 한 건가?”그런 생각이 들자 육시우는 매우 기뻤다.그는 서둘러 어둠속에 몸을 감추고 안두성이 나오길 기다렸다.육시우는 안두성을 따라가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윤구주를 때려죽일 생각이었다.그렇게 하면 육시우가 가장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허름한 마당.윤구주는 형제들을 데리고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방 안.“저하, 저희 언제 청룡 형님을 구하러 갑니까?”질문을 한 사람은 민규현이었다.민규현은 내공을 회복하고 윤구주의 도움으로 신급 절정이 된 이후로 줄곧 청룡이 마음에 걸렸다.청룡은 사이가 가장 좋은 형제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청룡은 윤구주 휘하의 유능한 장군 네 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까지 청
윤구주가 모든 첩보원에게 유명전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 용민이 빠르게 문밖에서 뛰어왔다.“주인님! 밖에 우상의 저택 집사라는 분이 와서 주인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우상 저택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달라졌다.“우상 저택의 사람이 이렇게 빨리 저하께서 서울로 돌아온 걸 알았다고?”민규현이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윤구주가 서울로 돌아온 뒤 지금까지 문씨 일가를 제외하면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다.그런데 갑자기 우상 저택의 사람이 찾아오다니.민규현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윤구주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좌상이 아닌 우상이라고?”화진에는 좌상과 우상이 존재했다.좌상은 군대를 장악하고 우상은 내무를 장악했다.과거 화진의 왕이었던 윤구주는 당연히 좌상과 우상을 알고 있었다.“주인님, 그 사람은 자기가 우상 저택에서 왔다고 했습니다.”우상 저택이라는 말에 윤구주는 머릿속에 육도진의 모습을 떠올렸다.그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들어오라고 해.”“네!”잠시 뒤, 예상대로 우상 저택의 집사 안두성이 빠르게 달려왔다.멀리서 윤구주를 본 우상 저택의 집사는 흥분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저하, 저 안두성 우상 어르신의 명령을 받고 구주왕님을 뵈러 왔습니다!”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감격한 듯 말했다.“일어나 봐.”윤구주가 말했다.“감사합니다, 저하!”안두성은 매우 흥분했다.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했다.눈앞의 윤구주는 화진의 모든 백성이 숭배하던 인물이었고 안두성이 가장 존경하는 신이기도 했다.화진의 군신인 그를 드디어 직접 보게 되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안두성은 숨을 헐떡였고, 두 다리는 덜덜 떨렸다.윤구주는 안두성을 보고 물었다.“육도진 우상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아는 건가?”“네, 네! 어르신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안두성은 서둘러 대답했다.“알고 있다면 왜 직접 오지 않은 것이지?”윤구주가 물었다.“저하, 어르신께서는..
“됐어. 이제 가봐.”윤구주는 할 말을 다 한 뒤 축객령을 내렸다.안두성은 눈치가 빨랐기에 윤구주가 축객령을 내리자 곧바로 인사를 하고 떠났다.그가 떠난 뒤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꼬맹아, 숨어있는 그놈을 잡아 와.”“네!”남궁서준은 대답한 뒤 어두운 왼쪽 구석을 향해 오른손을 움직이며 말했다.“나와.”쿵!손그림자가 어둠을 향했다.어둠 속, 큰 머리에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는 남궁서준의 손그림자가 날아오는 걸 보더니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뻗어 남궁서준의 손그림자를 맞받아쳤다.그러나 건장하고 다부진 아이는 남궁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쿵 소리와 함께 아이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아픈지 앓는 소리를 냈다.하지만 아이는 전혀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오히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자세히 보니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육도진의 손자 꼬마 패왕 육시우였다.겨우 열 살짜리 아이가 갑자기 나타나자 민규현뿐만 아니라 정태웅 등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응? 이 녀석은 누구지? 감히 여기까지 와서 우리 대화를 엿듣다니.”정태웅은 답답해하면서 말했다.옆에 있던 재이, 용민 등 사람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앞에 있는 육시우를 바라보았다.정작 육시우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육시우는 두 눈을 부릅뜨고 호시탐탐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두려운 게 전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이 자식, 어디서 튀어나왔지? 감히 여기까지 찾아와서 우리 대화를 엿듣다니. 꼬맹아. 너희 집 어른들은 널 상관하지 않는 거냐?”이때 민규현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물었다.육시우는 두 손을 허리 위에 올리고 거만하게 말했다.“똑똑히 들어요. 제 이름은 육시우예요! 알겠어요?”“...”사람들은 어린아이가 건방지게 굴자 어이가 없었다.재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시우야, 누가 널 우리에게 보낸 거니?”정태웅이 물었다.“제가 오고 싶어서 온 건데요. 왜요?”육시우가 대답했다.“참나, 어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