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정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오른손을 움직였고, 그 순간 노인의 분신은 재가 되어 감쪽같이 사라졌다.문창정의 분신이 소멸한 후 정태웅, 천현수는 그제야 서둘러 민규현에게 다가가서 그의 사슬을 풀어주었다.탁탁!정태웅은 사슬을 풀어주는 순간 네 개의 검은색 혼정이 그의 가슴팍에 박힌 걸 발견했다.정태웅이 손을 뻗어 못을 뽑으려고 하는 순간,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정태웅, 그만둬!”“저하, 왜 그러십니까?”정태웅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그건 단혼정이야. 사람의 혼을 억누르고 원기를 금지하는 용도지. 지금 그걸 뽑는다면 민규현은 원기를 다 잃고 그 자리에서 죽을 거야.”윤구주가 요점을 말했다.‘뭐?’윤구주의 말을 들은 정태웅은 깜짝 놀랐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민규현의 몸에 박혀있는 네 개의 단혼정을 보았다.검은색의 못은 음산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엄지손가락 굵기의 단혼정이 민규현의 몸에 박혀 있었다.네 개의 단혼정을 본 정태웅은 눈이 빨개져서 말했다.“저하, 어떡합니까? 규현 형님이 이 단혼정에 시달리는 걸 그냥 지켜봐야 하는 겁니까?”“걱정하지 마. 일단은 민규현을 데리고 돌아가. 내가 치료해 줄 거야!”윤구주가 민규현을 치료해 줄 수 있다고 하자 정태웅과 천현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두 사람은 양쪽에서 잔뜩 시달려서 피투성이가 된 민규현을 부축했다.그들이 감옥에서 나오려고 할 때, 민규현은 갑자기 본능적으로 몸을 떨면서 윤구주의 옷자락을 잡았다.“저하...”그는 힘없이 윤구주를 불렀다.“부상이 심각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푹 쉬는 게 좋겠어.”윤구주가 그를 설득했다.그러나 민규현은 고개를 저었다.그는 이를 악물더니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말했다.“저하, 청룡 형님이... 살아있습니다. 살아있어요!”청룡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윤구주는 민규현의 뜻을 이해했다.그는 민규현의 피 묻은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널 치료하고 나면 너
“걔는 원래 사람을 식량으로 삼고 불을 재료로 삼아. 조금 전 대전으로 인해 여기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 그 기운을 맡고 모습을 드러낸 거야.”윤구주가 설명했다.정태웅이 ‘걔’가 대체 뭔지 물어보려고 할 때, 갑자기 아주 우렁찬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와 고막이 아플 정도였다.그리고 곧 사람들은 먼 곳의 숲속에 갑자기 불빛이 번쩍하더니 화염을 입에서 내뿜는, 작은 산처럼 우람한 몸집의 무시무시한 괴물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걸 눈이 휘둥그레져서 보았다.그것은 머리가 소 같고 눈은 방울 같았다.온몸은 검은색 비늘에 덮여 있었고 몸의 반은 도마뱀 같았다.그리고 거대한 몸은 마치 작은 산 같았다.그것은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때 입에서 불을 내뿜고 있었고, 온몸에서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파멸적인 기운을 내뿜었다.“세상에, 저건 무슨 괴물이죠?”붉은색 치마를 입은 재이는 엄청난 덩치의 괴물을 보게 되자 겁을 먹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옆에 있던 용민, 철영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을 살면서 처음 보았다. 그들 역시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반대로 꼬맹이 남궁서준은 검의가 점점 더 짙어졌다.윤구주가 입만 열면 곧바로 그것을 공격할 듯 말이다.“설마 저게 바로... 용하 산맥 전설 속의 신수 원귀?”천현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들어 눈앞의 불을 내뿜는 거대한 그것을 바라보았다.‘뭐지?’“설마 이것이 바로 화진의 용맥을 보호하는 신수야?”천현수의 말을 들은 정태웅은 소리를 질렀다.“그럴 거야. 고서에 적힌 내용에 근거하면 이 신수는 아주 신통하대. 하늘과 땅의 불을 삼킬 수 있다고 하지. 우리 화진의 용맥을 지키는 그 신수가 맞구나!”천현수는 계속해 말했다.“천현수 지휘사님, 사람들을 잡아먹는 신수라면 아주 강하지 않나요?”용민이 덜덜 떨면서 천현수에게 물었다.“내가 아는 거라곤 그동안 용하 산맥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거예요. 신급 절정 수준의 강자도 쉽게 들어가지 못해요. 들어가면 틀림없이 죽기 때문이죠. 살아서 나온 사람은 아무
윤구주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 신수 원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겁에 질린 모습이었다.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는 원귀를 보던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왜? 이제 내가 기억나? 기억났으면 얌전히 무릎이나 꿇어.”원귀는 윤구주의 말을 듣더니 누구보다도 순순히 윤구주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거대한 원귀의 머리가 푹 숙여졌다.원귀의 코와 입에서 뿜어져 나오던 화염은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원귀는 낮게 앓는 소리를 냈는데 마치 애원하듯 가련한 모습이었다.윤구주는 몸을 움직여 원귀의 머리 앞에 나타나더니 손을 뻗어 그것의 거대한 머리를 토닥이면서 말했다.“좋아. 이번에는 아주 얌전히 구네. 안 때릴게!”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당당한 용호 산맥의 신수가 윤구주의 앞에서는 한없이 고분고분했다.누가 봐도 놀랐을 것이다.“됐어. 난 볼일이 있으니 먼저 가봐야겠다.”윤구주는 손을 뻗어 원귀의 거대한 머리를 만지더니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윤구주가 떠나자 신수는 그제야 눈을 깜빡이면서 드디어 갔다는 표정을 지었다.윤구주는 신수 원귀에게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나머지 사람들은 놀라서 얼떨떨한 상태로 윤구주와 함께 자리를 떴다.그날 밤, 윤구주는 민규현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화진의 모든 문벌을 적으로 돌리겠다고 선전 포고했다.오늘 밤, 그는 봉왕팔기를 연달아 세 번 썼고 다섯 명의 신급 절정 강자를 죽였다.그는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화진은 무력으로 나라를 세웠다.태초부터 그랬다.무도가 번성한 화진에는 수많은 강자가 숨어 있었고 절정에 이른 자는 500살까지 살 수 있었다.그 500년 사이에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나타나겠는가?특히 문벌, 세가, 종문에서 천재가 많이 나왔다.예나 지금이나 천하의 강자는 모두 문벌, 세가, 종문에서 나왔다.오직 윤구주만이 예외였다.윤구주는 곤륜에서 왔었으니 말이다.그러나 윤구주는 그 모든 것이 당연히 두렵지 않았다.그
그러나 이제 막 함께 모여서 움직이려고 할 때 이 무시무시한 사사들의 포위 공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삼천 명의 사사는 과거 화진의 최고 문벌이었던 윤신우가 이끄는 자들이었다.황씨, 당씨 일가는 그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밤하늘 아래 윤신우는 고고하게 서 있었다.그의 뒤에는 열 명의 윤씨 일가 노인이 서 있었다.그 노인들이 내뿜는 기운을 보면 모두 신급 중상급인 듯했다.그 밖에도 윤씨 일가의 윤창현, 윤정석도 윤신우의 곁에 서 있었다.삼십 년 전, 과거 서울 최고의 미남이라고 불렸던 윤신우는 황씨 일가의 신급 강자인 노인의 질문을 무시하고 덤덤한 눈빛으로 용하 산맥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구주 쪽은 끝난 것 같아.”“그러네요, 형님! 하하하하! 빌어먹을 문씨 일가의 늙은이는 겨우 신급 절정 강자 다섯 명으로 우리 조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죠? 열 명, 스무 명 더 보내도 아무 소용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윤창현은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창현아, 넌 틀렸어.”윤신우가 갑자기 말했다.“틀렸다고요? 뭐가 틀린 거죠?”윤창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윤신우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문씨 일가의 그 늙은이가 얼마나 음험한데. 그 늙은이가 우리 아들의 실력을 모를 리가 없지. 그가 오늘 신급 절정의 강자 다섯 명을 보낸 건 분명 의도가 있어.”“의도요?”윤창현은 그 말을 듣자 더욱 어리둥절해졌다.“형님, 전 잘 모르겠어요. 문씨 일가의 그 늙은이가 무엇 때문에 신급 절정 다섯 명을 죽으라고 구주에게 보낸다는 거죠?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라면 말이에요.”“아니, 그 늙은이는 머리가 잘못된 게 아니야.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모든 문벌이 우리 아들을 적으로 돌리게끔 하기 위해서야. 문벌이 반란을 일으키면 세가, 종문 또한 똑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렇게 되면 화진 무도는 혼란에 빠지게 될 거야. 그러면 화진의 무대 대통합의 국면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고 더욱 중요하게는 우리 아들이 세상의 모든 무인을
윤신우가 살기등등하게 자신들을 바라보자 서울의 신예 문벌 황씨, 당씨 일가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윤신우, 뭐 하려는 거야?”황씨 일가의 신급 강자인 노인이 두려워하면서 물었다.어쩔 수 없었다.그는 윤신우가 내뿜는 짙은 살기를 느꼈다.그 살기는 언제든 그들을 찢어발길 듯했다.장발의 윤신우는 어둠 속에 우뚝 서 있었다. 비록 이제 중년이긴 했지만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강한 기운과 30년 전 서울 최고 미남이라고 불렸던 얼굴 때문에 그는 여전히 멋있어 보였다.“우리 윤씨 일가는 지난 18년 동안 정치 싸움에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어. 그래서 다들 우리 윤씨 일가가 몰락했다고 생각하며 한때 우리 윤씨 일가가 일궈냈던 화려한 성과들을 잊었지. 그런데 이젠 당신들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까지 나 윤신우의 아들을 건드리려고 해.”우레와도 같은 목소리가 황씨, 당씨 일가 고수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과거 천하를 호령하며 문벌 중 최고라 일컬어졌던 윤씨 일가는 당시 수많은 문벌 중 단연코 최고였다.18년 전, 윤씨 일가의 영광은 이미 종문과 엇비슷했다.그러나 18년 전 이후로 윤씨 일가는 더는 정치 싸움에 관여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맹호가 마침내 깨어나려고 했다.“뭐라고? 당신 아들이라고?”황씨, 당씨 문벌의 고수들은 윤신우의 말을 듣자 의아해했다.“윤신우, 제대로 말해. 우리 황씨, 당씨 일가가 언제 당신 아들을 건드렸어?”한 당씨 일가의 신급 강자인 노인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멍청하긴! 이제 곧 죽을 텐데 아직도 모르네.”윤창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말에 황씨 일가의 섹시한 옷을 입은 황연주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윤창현을 바라보았다.“설마 그 천하무적의 구주왕이 윤씨 일가의 자손인 거야? 윤구주가 윤신우의 아들인 거야...?”“그래도 당신은 그나마 머리가 좋군. 맞췄어.”윤창현은 크게 웃었다.그 말에 황씨, 당씨 일가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화진 최고의 왕 구주 군신이 윤씨 일가
윤씨 일가 삼웅이라는 엄청난 강자들도 있었다.“가주님, 같은 문벌로서 저희 두 가문을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저희를 용서해 주신다면 황씨, 당씨 일가는 앞으로 가주님 말씀을 따르고 구주왕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윤신우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용서해달라고? 우리 아들은 6년 전 곤륜에서 왕이 되어 천하를 통일하면서 이미 한 번 문벌을 용서해 주었어. 그러니 이번에는 죽어야지!”윤신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움직였다.어둠 속.옆에 있던 열 명의 윤씨 일가 강자들이 일제히 튀어 나갔다.그 강자들은 신급 중상급 강자였고 그중 두 명은 거의 신급 절정에 달한 수준이었다.그들은 윤씨 일가의 일부분일 뿐이었다.당시 윤씨 일가는 천하를 놀라게 했으니 그 저력이 얼마나 대단했을까?특히 윤신우는 소문에 따르면 18년 전 이미 신급 절정에 달했다고 한다.그러나 그는 지난 18년간 나선 적이 없었다.드디어 대전이 시작되었다.윤신우가 손을 움직이자 곁에 있던 강자들이 일제히 튀어 나갔다.그리고 황씨, 당씨 두 가문의 고수 수십 명은 윤씨 일가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자 죽음을 무릅쓰고 저항해야 했다.“죽여버리겠어!”황연주는 더는 피할 수가 없자 목숨 걸고 싸우려고 했다.그렇게 대전이 시작되었다.그러나 서울의 신 3대 문벌 황씨, 당씨 일가는 윤씨 일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특히 윤씨 일가에는 두 명의 신급 절정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있었다.잠깐 사이 황씨, 당씨 일가에는 겨우 몇 명만 남았다.당씨 일가의 신급 고급 수준의 조상도 윤씨 일가의 흰 망토를 입은 신급 절정에 달한 노인에게 팔 한쪽이 잘렸다.“우리 당씨 일가가 이렇게 망하는 건가!”당씨 일가 조상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는 두 눈이 벌게져서 남은 세 명의 당씨 일가 부하들을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고 마지막 남은 내공을 이용해 윤씨 일가의 흰 망토를 입은, 신급 절정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에게 달려들었다.“죽고 싶은가 보군!”흰 망토를 입은 노인은 오른손을 휙 움직였
그날 밤 일로 서울 전체가 떠들썩했다.윤구주가 밤에 의수 감옥에 침입하여 다섯 명의 고대 문벌 신급 절정 강자를 죽이고 민규현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용하 산맥의 진국 신수 원귀를 깨웠기 때문이다.게다가 서울에 수백 년간 존재해 왔던 황씨, 당씨 문벌이 멸문했다.서울 무도계가 발칵 뒤집힐 만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이렇게 큰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니 서울 전체가 들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윤구주는 그러한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비록 이번에 서울에 와서 구주왕이 돌아왔다는 걸 세상에 알리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증명해야 했다.그것은 윤구주가 살아있는 한 아무도 그의 형제들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윤구주의 형제들을 건드린 사람은 모두 죽을 거라는 것이었다.이튿날, 날이 밝았다.허름한 집 안.윤구주는 어젯밤에 돌아온 뒤로 줄곧 민규현을 치료했고 지금까지 아무도 민규현이 대체 어떻게 됐는지 몰랐다.문 앞.정태웅, 천현수, 남궁서준, 재이 등 사람들은 밤새 서 있었다.다들 윤구주가 민규현을 치료하는 걸 기다렸다.그러나 이미 이튿날 오전이 되었는데도 윤구주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정태웅은 점점 더 걱정되었다.그는 문 앞에서 계속 서성이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현수야, 형님 위독하신 건 아니겠지?”“위독하긴! 불길한 말 할 거면 입 다물어!”천현수는 다짜고짜 욕했다.“왜? 난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형님은 그 못된 놈들 때문에 저 꼴이 됐잖아. 심지어 몸에 네 개의 철심이 박혔지. 그런데 내가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정태웅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정태웅이 평소에는 얄밉고 짓궂게 굴어도 그가 의리를 가장 중요시한다는 건 다들 아는 일이었다.특히 그는 민규현을 친형처럼 여겼다.셋째인 천현수는 당연히 정태웅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해했다.그러나 그는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걱정은 무슨. 저하께서 계시잖아! 저승사자가 와도 저하께서 규현 형님을 구할 거야!”정태웅은 그 말을 듣자 더는 말하
암부의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민규현은 가장 용감하고 전투에 능했다.만약 민규현이 단전의 기해가 봉인되어 더는 내공을 쓸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울 것이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그윽한 눈빛으로 말했다.“단전 기해의 봉인을 뚫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저하, 그게 뭡니까?”정태웅이 서둘러 물었다.다른 이들도 하나같이 긴장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신급 절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윤구주의 목소리는 우레와도 같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귓가에 박혔다.‘절정이 된다고?’화진의 무도는 무인에서부터 무사, 대무사, 대가, 그리고 가장 마지막인 천인 신급 강자로 나뉘었고 그것은 단전 기해의 변화로 인한 것이었다.현재 민규현의 단전 기해는 문창정의 단혼정으로 봉인되었고 그걸 푸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민규현의 실력이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절정이 되는 것이었다.오로지 신급 절정이 되어야만 단전 기해의 봉인을 풀 수 있었다.민규현을 신급 절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정태웅과 천현수 등 사람들은 순간 흥분했다.“저하! 형님께서 실력이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신급 절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내가 있으면 가능해!”윤구주는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화진 제일의 왕이자 봉왕팔기를 가진 윤구주라면 민규현이 절정이 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었다.세상 사람들은 신급 절정은 금기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더욱이 한 지역의 조상이라고 불린다는 것도 알았다.현재 윤구주는 민규현을 도와서 그가 신급 절정이 될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윤구주는 민규현을 신급 절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방 안.상처투성이인 민규현은 여전히 병상 위에 누워있었다.견갑골, 가슴에 박힌 네 개의 검은색 단혼정은 이미 그의 체내에 들어갔다.윤구주의 소생술로 몸은 괜찮아졌지만 단전 기해가 봉인된 탓에 민규현은 여전히 아주 허약해 보였다.윤구주는 안으로 들어온 뒤 자신의 형제 민규현을 보았다.민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