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부승원 씨.]부승원은 반우희가 설정한 이름을 보고 순간 말을 잃었고 반우희는 눈썹을 까딱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어때요? 특별하죠?”부승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날 비꼬는거거야?”“누가 변호사님이 맨날 날 괴롭히래요.”“그건 네가 맨날 실수하니까 그런 거지.”부승원은 반우희를 내려다보며 차분히 답했다. 하지만 반우희는 이제 그가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근데 변호사님은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엄격하지 않잖아요. 왜 저한테만 이렇게 엄청 엄격한데요?”반우희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살짝 억울한 표정을 지었고 부승원은 반박하지 않았다.최근 들어 그는 자신이 반우희에게 약간 유치한 장난기를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창 시절 그는 친구들이 괜히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놀리는 행동을 하던 모습을 보며 비웃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자신이 그런 쓸데없는 장난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연애는 연애고 일은 일이지. 앞으로 네가 또 실수하면 난 계속 지적할 거야.”부승원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반우희는 ‘흥’하고 소리를 냈지만 진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계속 지적하세요.” ‘다음에 내가 당신한테 키스할 땐 물어버릴 거야.’부승원이 그녀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분명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점심시간은 짧았고 다행히 아무도 사무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반우희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부승원은 그녀가 일찍 일어났을 거라 짐작하며 잠시 쉬라고 달랬다.소파에 누운 반우희는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들기 전 부승원에게 말했다.“저녁에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영화?’부승원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학창 시절에도 그는 누구와 영화를 보러 간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영화 관람 경험은 오롯이 부승희와 함께한 것뿐이었고 그것도 부승희가 마땅히 같이 갈 사람이 없을 때 억지로 끌고 간 경우였다.“좋아.”부승원이 단번에 동의하자 반우
영화관 밖에서 반우희는 QR코드로 팝콘과 콜라를 받았다. 아직 입장도 하기 전에 팝콘은 이미 반쯤 사라진 상태였다.사람들이 많아지자 부승원은 반우희를 자기 곁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팔로 보호하듯 감싸 안고 장난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더 기다리면 팝콘 다 먹어버리겠네.”그의 말에 반우희는 웃으며 팝콘 두 알을 집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괜찮아요. 또 사면 되죠. 저 곧 월급날이잖아요.”그녀는 마치 돈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앞쪽 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반우희는 폴짝폴짝 뛰며 신나게 외쳤다.“우리 차례다.”팝콘을 먹던 손을 멈추고 부승원의 팔짱을 풀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입장 후 조명이 점차 어두워지자 반우희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었다.“7열 13번 좌석...어디지?”그녀는 중얼거리며 자리를 찾다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저기다.”부승원은 반우희의 손에 이끌려 자리로 향했다. 두 사람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손을 잡고 서로 가까이 붙은 채 걸음을 옮겼다.7열에 다다랐을 때 부승원은 앞쪽을 바라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점점 가까워질수록 앞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부승원은 걸음을 멈췄고 뒤돌아본 사람은 다르면 아닌 연정훈이었다.시선이 마주치자 부승원은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했지만 연정훈은 여유로운 얼굴로 콜라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우연이네.”부승원은 침묵했다.“...”반우희는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했고 연정훈 옆에 있던 양시연이 고개를 내밀어 반우희에게 손을 흔들었다.“우희 씨, 안녕하세요.”반우희는 밝게 웃으며 대답하려다 자신들이 비밀 연애 중임을 떠올렸다. 손을 잡은 게 들킬까 싶어 손을 떼려는 순간 양시연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애써 손을 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반우희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해결책을 찾는 동안 부승원은 이미 마음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손을
“당신 빨리 봐요. 우희 씨가 부승원 씨에게 몰래 입을 맞추고 있어요.”옆에서 양시연이 연정훈에게 귓속말을 건네자 연정훈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유치하긴. 그저 입 맞췄을 뿐인데.”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내밀며 슬쩍 쳐다본 뒤 상황을 보고했다.“부승원 씨가 우희 씨에게 입을 맞추고 손도 잡으려는 것 같아요.”연정훈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그 순간 부승원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연정훈은 침묵했다.“...”양시연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부승원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정훈에게 말했다.“심심했어?”연정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콜라를 한 모금 마셨고 다행히 영화가 곧 시작되었다.그의 관심은 드디어 양시연에게로 돌아갔고 그는 양시연에게 살짝 기대어 앉으며 그녀가 영화 내용을 공유해주기를 기다렸다.부승원은 반우희를 힐끗 쳐다보았다. 부승원은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한 손은 그의 손목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팝콘을 계속 집어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양시연이 준 티켓은 최신 SF 영화로 화면은 화려했지만 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시끄러워 부승원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그는 반우희가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연정훈이 자꾸 부승원을 놀리자 반우희는 영화를 시작한 뒤로 그와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영화의 자극적인 장면이 지나갈 때마다 반우희는 감탄하며 부승원의 손목을 잡고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부승원은 그녀의 손에 시선을 두었고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펼쳐 천천히 깍지를 잡았다.반우희는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영화에 집중하던 시선을 떼고 꽉 잡힌 손을 본 뒤 다시 부승원을 쳐다보았고 부승원은 화면을 응시한 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반우희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마음속으로 설렘을 느꼈고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채 부승원에게 조금 더 가까이 기울여 팝콘을 먹었다.부승원은 반우희가 가까워지는 느낌을 감지하고 미소를 지었다.부승원은 더 이
“지금은 차가워 보이지 않는 거야?”양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은 한층 내려와서 평범한 사람처럼 보여서 그냥 그래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지금 너는 내 아내인데 내가 너한테 도도하게 대할 이유가 뭐 있어?”양시연은 눈을 굴리며 그의 앞에 가서 사무실 책상에 기대며 마치 진지하게 말하듯 말했다.“난 당신의 차가운 모습이 꽤 좋아요. 멋져 보이고 뭔가 걷잡을 수 없어 보여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연정훈은 양시연을 자기 무릎에 앉혔고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며 손바닥이 허리 옆에 닿도록 하고 익숙하게 장난을 치며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귓불에 닿았다.“지금 차갑지 않아서 안 좋아하는 거야?”양시연은 앙탈을 부리며 연정훈의 품에 숨었고 몇 번의 짧은 순간 만에 연정훈은 뜨겁게 달아올랐다.양시연이 임신한 이후로 연정훈은 본래 차분하게 지냈고 축적된 감정이 많았기에 그녀가 입으로 자꾸 그를 도발하는 바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그녀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걸 알게 되자 바로 뻔뻔하게 애교를 부렸다.“좋아요. 당신의 어떤 모습도 전 다 좋아요.”연정훈은 그녀가 이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회사 일은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두 다리를 그의 허리 옆에 벌려서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며 일어섰다.이 자세에서 양시연은 곧 이어질 상황을 떠올렸고 양시연은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했다.“안 돼요. 아직 의사가 말한 시간이 아니잖아요.”연정훈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양시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웃었고 그녀는 연정훈이 오래 참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시연은 두 손으로 연정훈의 얼굴을 감싸며 그의 얼굴에 입맞춤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연정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한 뒤 숨이 거칠어졌다.“이건 네가 먼저 말한 거야. 내가 강요한 게 아니야.”“그럼 할래요? 안 할래요? 조금만 기다리면 후회할지도 몰라요.”그녀는 도도하게 말했고 연정훈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침실로 가지
양시연은 모연준의 사건이 부승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음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그 이야기를 꺼내며 부승희는 한탄하듯 말했다.“사실 저는 모연준 씨가 꽤 마음에 들었어요.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실수했죠.”모연준의 전 여자친구이자 첫사랑인 그녀는 모연준이 어려운 시기에 빠졌을 때 사라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 온갖 방법으로 그를 술에 취하게 만들고 하룻밤을 보낸 뒤 임신했다는 사실을 양시연은 이제야 알았다.“모연준 씨도 솔직한 편이에요. 그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조금 남아 있다고 했죠. 그렇지 않았다면 그 하룻밤을 그렇게 확실히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여자가 아이를 낳겠다고 하자 모연준 씨는 당황해서 아이를 지우라고 했는데 그 여자는 끝내 지우지 않고 시간이 지나 찾아와 문제를 만들었어요.”부승희는 손을 들며 단호하게 말했다.“어쨌든 난 참을 수 없어요. 모연준 씨가 무릎 꿇고 사과해도 그건 안 될 거예요.”하지만 모연준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그는 부승희를 찾아와 선택권을 줬고 부승희가 헤어지자고 하자 깔끔히 사라졌다.그날 부승희는 모연준에게 여러 차례 뺨을 때렸지만 그는 반격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부승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이야기를 마치며 부승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 여자도 결국 얻은 건 없을 거예요. 모연준 씨가 그 여자에게 감정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해 보였거든요.”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승희 씨가 그렇게 단호하게 헤어진 거군요?”부승희는 턱을 치켜들며 대답했다.“그 여자가 내 사람을 건드렸다면 절대로 쉽게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모연준 씨가 만약 그 여자에게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내가 그 둘을 죽도록 괴롭혔을 거예요. 그 여자를 그렇게 쉽게 내버려 두지 않았겠죠.”‘눈에는 눈 이에는 이.’부승희의 인생 원칙은 분명했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고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양시연은 부승희의 말에 손뼉을 쳤다.“그러면
반우희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마침내 수영장에 갈 기회를 얻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수영장 쪽으로 몰려갔다.연정훈과 양시연의 집에는 지하에 거대한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은 전체가 수영장으로 꾸며져 있었다.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수영장의 물 온도는 조절할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양시연은 이곳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겼다.수영장에 모인 사람 중 루나를 포함한 여자 임원들은 모두 미모와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었으며 수영에도 능숙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등장하자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사람들이 많아지자 누군가 수영 경기를 제안했다.처음엔 여자들만 물에 들어갔고 경기 방식은 단순했고 수영 방법에 상관없이 끝까지 도달하면 되는 것이었다.남자들은 구경하며 흥미롭게 지켜봤고 한우빈이 출발 신호를 맡았다.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고 주변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양시연은 수영장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비롯해 모든 이들의 시선은 반우희에게 쏠렸다.반우희는 개헤엄을 꽤 잘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화려한 비키니가 아닌 끈이 달린 나시와 반바지 스타일의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하얗고 통통한 몸매는 키 크고 늘씬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경기는 치열했고 두 번의 왕복 끝에 반우희는 루나와 동점을 기록했다.“반우희 씨, 정말 대단하네요.”양시연이 칭찬했다.반우희는 밝게 웃으며 수영장 라운지로 헤엄쳐 올라왔다.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의 시선은 부승원에게 향했다.양시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반우희는 은근히 부승원의 칭찬을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부승원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반우희를 잡아 올렸다.“올라와서 좀 쉬어.”반우희는 몸을 가볍게 뛰어 라운지에 올라와 부승원 옆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기대며 이야기를 나눴다.이승우와 몇몇 남자들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놀며 내기를 시작했고 상품을 걸며 분위기를 띄웠다.수영장 라운지에서는 연
부승희는 2층으로 올라가 아무 방이나 골라 샤워를 마친 뒤 나오자마자 거실에서 드라이어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가 여자들이 내는 소리일 것으로 생각한 부승희는 맨발로 나가보았지만 짜증이 밀려왔다.‘하 이런.’이승우는 부승희의 모습을 등지고 서서 큰 전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며 이마에 떨어진 잔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멋을 부리고 있었다.의 머리에는 지난번 부승희가 때려서 생긴 작은 상처가 아물었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일부러 하트 모양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꿔 그 부분을 가렸고 멀리서 보면 그 흔적은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부승희는 팔짱을 끼고 문틀에 기대며 한마디 했다.“옆방 드라이어 고장 난 거야?”이승우는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6~7개 방을 다 눌러보다가 이 방까지 온 거야.”이승우는 드라이어를 끄고 머리를 정리하며 부승희를 바라봤다.“기분 나쁘면 나한테 두 대 정도 때릴래?”부승희는 웃으며 말했다.“진짜 너 괘씸해.”이승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은 듯 드라이어를 부승희에게 건넸고 부승희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았다.그녀는 소파로 가서 앉아 하얀 피부의 긴 다리를 꼬고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며 눈을 감고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이승우는 그 옆 소파에 기대어 대놓고 부승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머리가 거의 말라갈 무렵 부승희가 눈을 떴고 이승우는 딸기를 씻어서 건넸다.부승희는 잠시 쓱 훑어본 뒤 망설임 없이 머리를 숙여 그것을 물어갔다.이승우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너에게 꽃을 보냈는데 봤어?”부승희는 그를 보지 않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으면서 대답했다.“언제 보낸 거? 어떤 꽃?”“그저께 오후. 줄리엣 장미.”“어느 꽃집에서 샀어? 무슨 포장이 그렇게 엉망이야.”부승희는 투덜거렸다.“...내가 포장했어.”부승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직접 포장한 거야?”“응. 직접 포장했어.”“그러면 너 진짜 운 좋네. 그 꽃은 내가 직접 쓰레기통에 던졌던 유일한 꽃이야. 너무 못생겼어.”이승우는 그녀가
이승우는 다리를 뻗어 부승희를 부드럽게 끌어올려 무릎 위에 앉혔고 그 일련의 동작은 마치 미리 설정된 것처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루어졌다.심지어 부승희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리려는 동작까지 예상한 듯 그는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아 등 뒤로 제압했다.‘이런.’부승희는 속으로 짧게 욕을 내뱉었지만 체면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며 이승우를 응시했다.“이거 무슨 뜻이지?”“실수였어.”이승우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여 부승희의 다리를 살폈다.“어디 다친 데는 없어?”부승희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이승우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허리가 아프네. 좀 주물러 줄래?”그 말을 하며 그녀는 이승우의 무릎 위에서 일부러 몸을 살짝 비틀었고 이승우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내가 정말로 주물러줘도 화 안 낼 거야?”“화날 리가 있겠어? 네가 좋은 마음으로 하는 걸 아는데.”이승우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억누르려 애썼다.‘이승우가 좋은 마음으로?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부승희는 허리가 아프다고만 했을 뿐 정확히 어디가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승우도 따지지 않고 그녀의 손을 풀어주며 따뜻한 손바닥으로 천천히 허리를 주물렀다.그는 부승희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잡담을 나누는 이 순간을 만끽했다.만약 부승희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승우의 목덜미를 살짝 꼬집지 않았다면 그 순간은 더 완벽했을 것이다.부승희의 손톱은 정교하게 네일 아트를 한 상태였고 살짝만 꼬집었을 뿐인데도 이승우는 목덜미에 뻐근한 고통을 느꼈다.참다못해 깊은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피해내던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만족스러운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기분 좋지?”이승우는 어금니를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좋아.”‘정말 한심하군.’부승희는 이승우를 흘겨보았다. 그의 손이 허리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뜨거운 온기가 점점 더 신경 쓰였다.참다못한 부승희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손을 들자마자 또다시 이
“뭐가요?”“내가 떠나면 네가 다시 재혼할까 봐 두려워.”“...”양지원은 어이없어 잠시 눈을 감았다.그녀는 죽음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했는데 양석진은 그때 하필 그런 농담을 던졌다.“이 부분은 위로할 수 없네요. 아직 나는 젊고 만약 당신이 운이 따라주지 않아 중간에 떠난다면 그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재혼할 거예요.”양지원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재혼만 할 거 아니라 시연의 성까지 바꿀 거예요.”양석진은 웃으며 말했다.“시연이 내 성을 따랐다고? 우리 모두 너의 성을 따랐던 거 아니었어?”양지원 잠시 멈칫했다.“그럼 당신 성도 바꿀 거예요. 더 이상 나와 같은 성을 쓰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 말이 나오자 양석진은 마음속으로 조금 긴장했지만 그는 평생의 고생이 결국 양지원의 성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했다.“정말 냉정하네.”양지원은 코끝이 찡한 느낌을 참으며 숨을 고르고 말했다.“알았으면 잘 살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외로운 노인이 될 거고 아무도 당신을 위해 복수를 해줄 사람이 없을 거예요.”“알았어. 꼭 살아 있을게.”그는 말하며 몸을 일으켰고 양지원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그가 눈치채지 않게 하려고 했다.그 순간 눈물이 통제 없이 떨어졌고 양지원이 그것을 숨길 틈도 없이 양석진은 이미 손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지원아 울지 마. 내가 잘 살아 있을게. 아무 일 없을 거야.”그 말을 듣자 양지원은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고 양석진을 꽉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양석진의 심장 소리만이 그녀에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저택 위에서는 양시연과 연정훈의 통화가 계속 이어졌다. 그녀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연정훈은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했지만 양시연은 계속 말했다:“기다려볼게요. 아마 밤중에 결과가 나올지도 몰라요.”연정훈은 차라리 말했다:“해가 밝으면 내가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오
별장 뒤 마당에는 유럽풍의 빈티지 소형 램프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저녁 바람이 불 때마다 불꽃이 아련히 흔들렸다.마당에는 넓게 핀 장미들은 벌레 소리와 어우러져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하얀 작은 저택 안에서는 창문이 열려 있었고 양지원은 망고 밥을 정성스럽게 플레이팅하고 있었다.양석진은 앞 저택에서 내려와 계단을 따라 작은 저택의 문 앞에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선 그는 물 한 잔을 따라 대리석 조리대에 기대어 여유롭게 양지원을 바라보며 조용히 분위기를 즐겼다.“쓰읍.”양지원은 과일을 자르다 말고 갑자기 손을 움츠렸다.“손 베였어?”양석진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아니에요.”양지원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두 손을 양석진에게 보여주었고 확실히 멀쩡했다.양석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다시 일을 시작하도록 놔두었다.“안 되겠으면 목표를 바꿔도 돼. 라면을 끓이거나 주스를 만들어도 난 만족할 거야.”양석진이 장난스레 비꼬자 양지원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곧 성공해요. 이 찹쌀밥은 정말 잘 쪄졌거든요.”양석진은 평소처럼 칭찬으로 분위기를 맞췄다.“딱 봐도 알겠네. 윤기가 잘잘 흐르고 밥알이 조화롭게 흩어져 있어.”양지원은 그의 과한 표현에 잠시 침묵했다.“...”“오빠.”“응.”“망고 두 배로 더 줄게요.”양석진은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좋아.”둘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양지원은 고개를 숙여 플레이팅에 집중했지만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양석진을 힐끗 바라보았다.눈이 마주친 찰나 그녀는 이내 시선을 돌리고 다시 망고 장식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양석진은 이를 눈치채고 물잔을 내려놓은 뒤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칼을 건네받고 양지원의 손을 물 아래로 가져가 씻어주며 부드럽게 손을 살폈다.그의 시선은 오롯이 그녀의 손에 머물렀지만 양지원은 그런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물이 멈추자 그는 티슈를 꺼내 그녀의 손을 닦아주었다.손을 막 떼어
양씨 가문은 한강시에서 수년간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이전에도 여러 곳에 집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양석진과 양지원이 예전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양지원의 취향에 맞는 여러 별장을 체험하고 있었다.양창수는 길에서 농담을 던지며 말했다.“양석진 씨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도 부잣집 양지원 씨를 만나서 나까지 잘 먹고 잘살게 됐어요.”그 말을 듣고 양시연은 자신이 너무 걱정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마 양석진은 그냥 작은 병일 거라고 느꼈다.해변가 별장에 도착하자 차는 지하 주차장까지 들어갔고 차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양시연은 서둘러 부모님을 만나러 올라갔고 위층에 도착했을 때 바로 수영장으로 안내되었다.넓은 옥상 공간에서 유리문을 열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양지원은 편안하게 물속에서 수영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우아하고 여유로웠다.그 옆에서 양석진은 양지원의 수영 시간을 재고 있었고 이 광경을 보고 양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늦은 시간에 여기는 왜 왔어?”양지원은 물에서 나와서 양시연에게 말했다.양시연은 허리를 붙잡고 조금은 불쌍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아빠가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어요.”“아무 일도 없어.”양지원은 라운지로 나와서 집사에게 건네받은 수건을 덮으며 말했다.“연정훈은 죽고 싶은 건가? 너에게 이런 쓸데없는 소식을 전하고 널 혼자서 여기까지 오게 하고 말이야.”양시연은 연정훈 이야기를 꺼냈다.“정훈 씨가 오려고 했는데 제가 말렸어요.”“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왔어야지.”연정훈이 울고불고하는 모습을 양시연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양지원은 양시연의 배를 보고 걱정이 되어 혹시라도 그녀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양시연이 수영장을 돌아서 양석진에게 가는 걸 막았다.양석진은 수영장을 한 바퀴 돌아서 양시연과 양지원 두 사람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임신했는데도 이렇게 조심성이 없네. 아무리 걱정해도 전화 한 통은 했어야지.양시연이 앉고 나서야 양석
양시연은 양석진이 한강시에 머무는 이유가 병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너무 걱정하지 마. 상황을 확인하러 가자.”연정훈은 곧 양시연의 사무실에 도착해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보통 아버님께서 고의로 정보를 차단하려면 내게까지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야. 이건 아버님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일 수 있어.”연정훈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양시연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그때 진수빈이 들어와 짐을 모두 챙겼다고 말하자 양시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나 혼자 갈게요.”연정훈은 즉시 반대했다.“난 너랑 함께 갈 거야.”“괜찮아요.”양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우리는 아직 상황을 모르잖아요. 당신과 내가 갔다가 왔다 갔다 하면 며칠이나 걸릴지 몰라요. 당신은 일을 열심히 해요.”“너의 일에 비하면 업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연정훈은 말했다.양시연은 마음속으로 감동했지만 이성은 여전히 우위를 차지했고 그녀는 패드를 정리하며 말했다.“인생은 길어요. 언제든지 일이 생길 수 있는데 당신이 항상 나 때문에 일을 내려놓을 수는 없잖아요? 나는 혼자 가도 괜찮아요. 게다가 나와 함께 있는 사람도 많고 당신이 일을 놓고 나랑 가는 게 오히려 부담될 거예요.”연정훈은 잠시 침묵했다.양시연은 옆에서 연정훈을 안으며 말했다.“됐어요. 정훈 씨는 여기서 잘 있어요. 난 아빠를 보러 갈게요. 어쩌면 별일 없을 수도 있겠죠.”그녀는 이 말을 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긴장을 풀려 했다.연정훈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양시연을 안은 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양시연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그가 경인에 남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나 안 갈게. 대신 약속해 어떻게 되든 꼭 자신을 잘 지키겠다고.”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두 사람은 정인에서 저녁을 먹고 연정훈은 임성원에게 양시연을 한강시로 안전하게 보내라고 지시했다. 연정훈은
양시연이 임신한 후 양지원은 경인에 없을 때도 자주 전화를 걸었으나 이번에는 시간이 좀 지나갔다.양시연이 먼저 전화를 걸자 양지원은 말했다.“한강시가 더워져서 요즘 기운이 없네.”“언제 돌아올 거예요? 아빠랑 둘 다 한강시에 오래 있었잖아요.”“곧 돌아갈 거야. 경인에 며칠 지내고 시원한 곳을 찾아야겠어.”양지원이 말했다.모녀는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양시연은 전화를 끊었고 그때 양시연은 양석진이 한강시에 이렇게 오랫동안 있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니면 양석진이 경인에 있을 때처럼 자주 오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그녀는 이 의문을 품고 점심때 연정훈에게 물어봤는데 그가 말했다.“부모님 사이가 좋은 거지. 비록 계속 오가더라도 아버님께서 즐기고 계신 거야.”“당신은 잘 아네요.”“같은 남자니까 당연히 알지.”양시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고 연정훈은 계속해서 밥을 먹으라며 그녀를 달랬다. 그러면서 수수께끼의 답을 다시 꺼내었고 양시연은 코웃음을 치며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조금만 힌트를 줄게요.”연정훈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말해 봐.”양시연은 하나씩 나열했다.“태양계 주요 행성들의 비교 분석, 행성이 되지 못한 태양계 천체들, 태양계 외 행성 탐사 진행 상황.”연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뒤로 기댔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최근 천문학에 관심이 생겼어?”양시연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나는 항상 관심 있었어요.”‘바보.’연정훈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그럼 최근에 중요한 연구 발견이 있었어? 갑자기 내가 바보라고 말하는 거 보니 내가 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양시연은 어이없었다.“...”“됐어요. 말하면 말할수록 당신이 더 바보 같아요.”연정훈은 무안해하며 한숨을 쉬었는데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연정훈은 양시연에게 잠시 전화를 내려놓고 말했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고 예상대로 주지혁이 들어왔다.“연 대표님, 이 두 가지 신청서에 서명해 주세요.”
“정말 못 맞추겠어.”연정훈은 3초 동안 불을 켜고 고민하다 결국 또다시 항복하자 양시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한껏 비웃었다.“뭐든 시간제한은 있어야지. 퀴즈를 내면 답도 공개해야 하는 법 아니야?”연정훈이 항의하듯 말하자 양시연은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네.’이 문제의 복잡함으로 봐서 양시연이 먼저 말해주지 않는 이상 그는 아마 평생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혹여 가능성이 있다면 언젠가 그가 소현주를 떠올리며 과거를 다시 되짚어보고 그녀와의 기억 속 단서를 양시연의 성격과 겹쳐 보며 답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연정훈이 소현주를 떠올릴지는 알 수 없었고 설령 떠올린다 해도 결혼 이후 양시연은 연정훈과 문학적인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과거의 유치한 발언들을 다시 끄집어내기는 더욱 어려워 보였다.결론적으로 연정훈은 혼자서 이 문제를 풀 수 없었다. 결국 양시연이 입을 열었다.“딱히 시간제한은 없어요. 대신 날 기쁘게 해봐요. 내가 기분 좋아지면 힌트를 줄게요.”“진짜지?”“네.”‘좋아.’연정훈은 딸깍하고 불을 껐다. 양시연은 그가 곧 달콤한 말을 할 줄 알고 기대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 이어졌다.어두운 공간에서 연정훈은 그녀 쪽으로 다가오더니 부드럽게 그녀 위로 몸을 기울였다. 익숙한 가까움이 느껴지자 그녀는 깜짝 놀라 그의 가슴을 밀쳐냈다.“뭐 하는 거예요...”연정훈은 그녀의 손을 머리맡에 눌러두며 배는 조심히 피했고 그의 입술이 천천히 양시연의 입술을 지나 귀끝에 닿았을 때 그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네가 말했잖아. 널 기쁘게 해달라고.”양시연은 침묵했다.“...”‘아. 변태.’양시연은 참지 못하고 연정훈의 어깨를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손이 그녀의 잠옷을 살며시 올리며 피부를 스칠 때 저도 모르게 얕은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결국 연정훈의 방식은 여전히 정확하고 효과적이었다.조용히 밤이 깊어졌고 두
연정훈은 어리둥절하며 양시연에게 말했다.“난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도 내게 바보라고 한 적이 없었어.”양시연은 가볍게 대답했다.“그럼 오늘부터 생긴 거네요.”연정훈은 어이없어했다.“...”연정훈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한 후 양시연에게 다가가서 진지하게 말했다.“힌트 좀 줄래?”양시연은 콧방귀를 뀌며 등을 돌려 옆으로 누웠다.“스스로 생각해요.”연정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생각할 방향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없어요.”양시연의 막무가내 태도에 연정훈은 잠시 멈칫한 후 웃음을 참지 못했다.연정훈은 팔꿈치를 지탱하며 옆으로 누워 그녀를 바라보고는 허리를 감쌌다.“내가 계속 못 맞추면 계속 만지지 못하는 거야?”“당신이 알아서 해요.”양시연은 교만하게 말한 후 연정훈은 그녀의 귀에 입을 맞췄다.그녀는 작은 신음을 내며 눈을 뜨고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어디 다시 해봐요.’연정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알았어. 안 할게.’연정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것이 항복을 의미했다.양시연은 흡족하게 입을 굳히며 돌아서서 그를 보지 않았지만 연정훈은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며 입술을 대고 말했다.양시연은 그만하라는 듯이 손으로 귀를 가렸지만 연정훈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임산부는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고. 내가 계속 못 맞추면 아마 네가 더 기분이 안 좋을 거잖아.”양시연은 눈을 뜨며 물었다.“내가 뭐가 기분이 안 좋을 게 있어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정훈은 그녀의 손목을 쥐고 있던 손으로 엄지손가락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그의 굳은 손가락이 그녀의 섬세한 피부와 마찰하면서 기분 좋은 간질거림을 느끼게 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무언의 암시를 즉시 느끼고 입술을 살짝 깨물며 손목을 뻗어 그를 밀쳐냈다.연정훈은 상황을 보고 더욱 버릇없이 굴며 가슴을 그녀의 등 뒤에 대고 고개를 숙여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콤한 말로 달래며 말했다.“내가 바보여서 못 맞춘 건 내 잘못이야. 제발 너 자신
‘불가능해.’양시연은 연정훈과 수없이 얽혀 있었던 소현주를 더 이상 그의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막을 생각이었고 소현주의 절박한 부탁도 양시연은 그냥 무시했다.양시연은 할 말을 이미 다 했고 소현주가 살고 싶다면 알아서 처신하는 게 소현주에게도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병원을 나오자마자 양시연은 임성원에게 모든 절차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라고 지시했다.차에 올라타자 양시연은 뒷좌석에 몸을 기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그녀는 불룩해진 배를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속삭였다.‘아기야. 이제 집에 가자. 바보 같은 아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차가 출발해서 집에 도착했을 때 연정훈은 이미 집에 있었다.그는 방금 접대를 마치고 돌아온 듯 약간 술에 취한 상태로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양시연을 기다렸다.양시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연정훈의 뒤로 다가가 귀를 살짝 꼬집었다.연정훈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고 성숙하고 근엄한 표정 사이로 미묘한 놀라움이 흘러나왔다.그가 오후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양시연은 차갑게 굴었는데 돌아왔을 때 그녀의 태도가 달라져 있어 그는 의아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순수하고 어리숙한 눈빛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연정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두 걸음 빠르게 다가가 허리를 감싸안았다.“어디 갔다 왔어?”양시연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임성원 씨가 말 안 했어요?”연정훈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물어봤는데 아주 단호하게 알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양시연은 피식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말도 안 돼요. 당신 부하가 감히 당신한테 그렇게 말해요?”“예전엔 내 부하였지. 지금은 당신 사람이 되었으니 나한테도 눈치 주는 게 당연한 거지.”연정훈은 능청스럽게 말을 돌리며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했고 양시연은 콧소리를 내며 식탁에 앉아 오렌지 하나를 들어 그의 손에 쥐여줬다.“빨리 까줘요. 우리 아가가 먹고 싶대요
소현주는 이메일을 열자마자 두 장의 사진을 확인했고 양시연은 연이어 몇 장의 사진을 더 보냈다.사진을 찍는 양시연의 동작이 반복될 때마다 소현주의 온몸은 마치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말도 안 돼.”소현주는 고개를 저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양시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이 이메일 양시연 씨가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고 다른 사람한테서 얻은 거죠?”소현주는 자신과 대화를 나눈 사람 그리고 연정훈의 질문에 답한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절대 양시연일 리 없었다고 생각했다.양시연은 소현주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던 듯 잔잔히 웃으며 손으로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소현주 씨뿐만 아니라 나도 믿기 어려운 일이에요.”“가식 떨지 마요.”소현주는 그녀의 말을 끊고 억눌린 감정을 더는 참지 못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양시연 씨일 리가 없어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요.”그녀의 단호한 부정 속에는 절망과 무너진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양시연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연정훈 씨는 아직 몰라요.”소현주의 눈빛이 흔들렸고 양시연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곧 알게 될 거예요.”양시연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연정훈 씨와 진심으로 소통했던 사람은 나였고 결국 정훈 씨가 사랑하고 곁에 남길 선택한 사람도 나예요. 소현주 씨의 의심은 틀리지 않았어요. 사실 나에겐 이메일을 살 능력도 있지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말하면 연정훈 씨는 무조건 믿을 테니까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훈 씨는 나라는 걸 알았을 때 기꺼이 믿으려고 할 거예요. 정훈 씨가 얼마나 놀라고 기뻐할지 전 이미 상상이 가거든요.”“닥쳐!”소현주는 비명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녀의 혼란을 그대로 드러냈고 행동은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다.방 안을 서성이며 옷과 머리를 마구잡이로 잡아 뜯던 소현주는 기진맥진한 끝에 침대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소란이 커지자 간호사가 문을 두드렸다.양시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