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했어요.”반우희는 휴대폰을 다시 건넸고 부승원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물었다.“그럼 나를 뭐라고 저장했어?”반우희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안 알려줄 거예요.”반우희는 말하면서 다시 가까이 다가갔다.“저에게 키스해 주면 알려줄게요.”부승원은 침묵했다.“...”부승원은 정말 웃고 싶었다.반우희는 그를 유혹하려 했지만 사실 그게 그에게는 오히려 달콤한 유혹임을 알지 못한 채였다.부승원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긴 척했다.반우희는 부승원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지만 분명 자신을 키스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술에 취해 강제로 키스했던 일이 떠올랐고 술에 취하면 진짜 마음이 드러나는 법이다.반우희는 부승원의 입술을 두 번 스치듯 훑으며 서서히 가까이 다가갔고 조심스럽게 그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부승원의 몸이 잠시 경직됐다.‘반우희...’반우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며 그의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더 가까이 다가가 혀로 그의 입술 사이를 살짝 훑었다.그 후 반우희는 부승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감싸며 셔츠 끝자락을 잡았다.“내가 변호사님한테 저장한 이름은 아주 특별해요. 키스해 주면 알려줄게요.”부승원은 생각했다. ‘저장한 이름이 특별하지 않으면 내가 너한테 키스를 할 수 없는 거야?’부승원은 무심코 반우희의 허리를 감싸며 손을 그녀의 뒤로 보내어 그녀를 더욱 품 안으로 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며 차갑고도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조금 더 낮게.”부승원은 명령을 내리자 반우희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품에 엎드려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그 자세는 순종적인 매력을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부승원은 마치 그동안 억눌려온 본능이 이제 반우희에게서 풀려날 순간이 온 것처럼 느껴졌다.그의 얼굴은 차가웠지만 그녀의 턱을 잡은 손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반우희는 가볍게 신음하며 부승원의 허리에 있던 손을 더 꽉 쥐었고 부승원은 고개를 숙여 얇은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닿게
[이기적인 부승원 씨.]부승원은 반우희가 설정한 이름을 보고 순간 말을 잃었고 반우희는 눈썹을 까딱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어때요? 특별하죠?”부승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날 비꼬는거거야?”“누가 변호사님이 맨날 날 괴롭히래요.”“그건 네가 맨날 실수하니까 그런 거지.”부승원은 반우희를 내려다보며 차분히 답했다. 하지만 반우희는 이제 그가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근데 변호사님은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엄격하지 않잖아요. 왜 저한테만 이렇게 엄청 엄격한데요?”반우희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살짝 억울한 표정을 지었고 부승원은 반박하지 않았다.최근 들어 그는 자신이 반우희에게 약간 유치한 장난기를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창 시절 그는 친구들이 괜히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놀리는 행동을 하던 모습을 보며 비웃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자신이 그런 쓸데없는 장난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연애는 연애고 일은 일이지. 앞으로 네가 또 실수하면 난 계속 지적할 거야.”부승원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반우희는 ‘흥’하고 소리를 냈지만 진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계속 지적하세요.” ‘다음에 내가 당신한테 키스할 땐 물어버릴 거야.’부승원이 그녀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분명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점심시간은 짧았고 다행히 아무도 사무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반우희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부승원은 그녀가 일찍 일어났을 거라 짐작하며 잠시 쉬라고 달랬다.소파에 누운 반우희는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들기 전 부승원에게 말했다.“저녁에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영화?’부승원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학창 시절에도 그는 누구와 영화를 보러 간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영화 관람 경험은 오롯이 부승희와 함께한 것뿐이었고 그것도 부승희가 마땅히 같이 갈 사람이 없을 때 억지로 끌고 간 경우였다.“좋아.”부승원이 단번에 동의하자 반우
영화관 밖에서 반우희는 QR코드로 팝콘과 콜라를 받았다. 아직 입장도 하기 전에 팝콘은 이미 반쯤 사라진 상태였다.사람들이 많아지자 부승원은 반우희를 자기 곁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팔로 보호하듯 감싸 안고 장난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더 기다리면 팝콘 다 먹어버리겠네.”그의 말에 반우희는 웃으며 팝콘 두 알을 집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괜찮아요. 또 사면 되죠. 저 곧 월급날이잖아요.”그녀는 마치 돈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앞쪽 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반우희는 폴짝폴짝 뛰며 신나게 외쳤다.“우리 차례다.”팝콘을 먹던 손을 멈추고 부승원의 팔짱을 풀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입장 후 조명이 점차 어두워지자 반우희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었다.“7열 13번 좌석...어디지?”그녀는 중얼거리며 자리를 찾다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저기다.”부승원은 반우희의 손에 이끌려 자리로 향했다. 두 사람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손을 잡고 서로 가까이 붙은 채 걸음을 옮겼다.7열에 다다랐을 때 부승원은 앞쪽을 바라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점점 가까워질수록 앞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부승원은 걸음을 멈췄고 뒤돌아본 사람은 다르면 아닌 연정훈이었다.시선이 마주치자 부승원은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했지만 연정훈은 여유로운 얼굴로 콜라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우연이네.”부승원은 침묵했다.“...”반우희는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했고 연정훈 옆에 있던 양시연이 고개를 내밀어 반우희에게 손을 흔들었다.“우희 씨, 안녕하세요.”반우희는 밝게 웃으며 대답하려다 자신들이 비밀 연애 중임을 떠올렸다. 손을 잡은 게 들킬까 싶어 손을 떼려는 순간 양시연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애써 손을 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반우희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해결책을 찾는 동안 부승원은 이미 마음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손을
“당신 빨리 봐요. 우희 씨가 부승원 씨에게 몰래 입을 맞추고 있어요.”옆에서 양시연이 연정훈에게 귓속말을 건네자 연정훈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유치하긴. 그저 입 맞췄을 뿐인데.”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내밀며 슬쩍 쳐다본 뒤 상황을 보고했다.“부승원 씨가 우희 씨에게 입을 맞추고 손도 잡으려는 것 같아요.”연정훈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그 순간 부승원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연정훈은 침묵했다.“...”양시연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부승원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정훈에게 말했다.“심심했어?”연정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콜라를 한 모금 마셨고 다행히 영화가 곧 시작되었다.그의 관심은 드디어 양시연에게로 돌아갔고 그는 양시연에게 살짝 기대어 앉으며 그녀가 영화 내용을 공유해주기를 기다렸다.부승원은 반우희를 힐끗 쳐다보았다. 부승원은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한 손은 그의 손목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팝콘을 계속 집어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양시연이 준 티켓은 최신 SF 영화로 화면은 화려했지만 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시끄러워 부승원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그는 반우희가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연정훈이 자꾸 부승원을 놀리자 반우희는 영화를 시작한 뒤로 그와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영화의 자극적인 장면이 지나갈 때마다 반우희는 감탄하며 부승원의 손목을 잡고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부승원은 그녀의 손에 시선을 두었고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펼쳐 천천히 깍지를 잡았다.반우희는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영화에 집중하던 시선을 떼고 꽉 잡힌 손을 본 뒤 다시 부승원을 쳐다보았고 부승원은 화면을 응시한 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반우희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마음속으로 설렘을 느꼈고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채 부승원에게 조금 더 가까이 기울여 팝콘을 먹었다.부승원은 반우희가 가까워지는 느낌을 감지하고 미소를 지었다.부승원은 더 이
“지금은 차가워 보이지 않는 거야?”양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은 한층 내려와서 평범한 사람처럼 보여서 그냥 그래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지금 너는 내 아내인데 내가 너한테 도도하게 대할 이유가 뭐 있어?”양시연은 눈을 굴리며 그의 앞에 가서 사무실 책상에 기대며 마치 진지하게 말하듯 말했다.“난 당신의 차가운 모습이 꽤 좋아요. 멋져 보이고 뭔가 걷잡을 수 없어 보여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연정훈은 양시연을 자기 무릎에 앉혔고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며 손바닥이 허리 옆에 닿도록 하고 익숙하게 장난을 치며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귓불에 닿았다.“지금 차갑지 않아서 안 좋아하는 거야?”양시연은 앙탈을 부리며 연정훈의 품에 숨었고 몇 번의 짧은 순간 만에 연정훈은 뜨겁게 달아올랐다.양시연이 임신한 이후로 연정훈은 본래 차분하게 지냈고 축적된 감정이 많았기에 그녀가 입으로 자꾸 그를 도발하는 바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그녀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걸 알게 되자 바로 뻔뻔하게 애교를 부렸다.“좋아요. 당신의 어떤 모습도 전 다 좋아요.”연정훈은 그녀가 이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회사 일은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두 다리를 그의 허리 옆에 벌려서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며 일어섰다.이 자세에서 양시연은 곧 이어질 상황을 떠올렸고 양시연은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했다.“안 돼요. 아직 의사가 말한 시간이 아니잖아요.”연정훈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양시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웃었고 그녀는 연정훈이 오래 참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시연은 두 손으로 연정훈의 얼굴을 감싸며 그의 얼굴에 입맞춤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연정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한 뒤 숨이 거칠어졌다.“이건 네가 먼저 말한 거야. 내가 강요한 게 아니야.”“그럼 할래요? 안 할래요? 조금만 기다리면 후회할지도 몰라요.”그녀는 도도하게 말했고 연정훈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침실로 가지
양시연은 모연준의 사건이 부승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음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그 이야기를 꺼내며 부승희는 한탄하듯 말했다.“사실 저는 모연준 씨가 꽤 마음에 들었어요.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실수했죠.”모연준의 전 여자친구이자 첫사랑인 그녀는 모연준이 어려운 시기에 빠졌을 때 사라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 온갖 방법으로 그를 술에 취하게 만들고 하룻밤을 보낸 뒤 임신했다는 사실을 양시연은 이제야 알았다.“모연준 씨도 솔직한 편이에요. 그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조금 남아 있다고 했죠. 그렇지 않았다면 그 하룻밤을 그렇게 확실히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여자가 아이를 낳겠다고 하자 모연준 씨는 당황해서 아이를 지우라고 했는데 그 여자는 끝내 지우지 않고 시간이 지나 찾아와 문제를 만들었어요.”부승희는 손을 들며 단호하게 말했다.“어쨌든 난 참을 수 없어요. 모연준 씨가 무릎 꿇고 사과해도 그건 안 될 거예요.”하지만 모연준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그는 부승희를 찾아와 선택권을 줬고 부승희가 헤어지자고 하자 깔끔히 사라졌다.그날 부승희는 모연준에게 여러 차례 뺨을 때렸지만 그는 반격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부승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이야기를 마치며 부승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 여자도 결국 얻은 건 없을 거예요. 모연준 씨가 그 여자에게 감정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해 보였거든요.”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승희 씨가 그렇게 단호하게 헤어진 거군요?”부승희는 턱을 치켜들며 대답했다.“그 여자가 내 사람을 건드렸다면 절대로 쉽게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모연준 씨가 만약 그 여자에게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내가 그 둘을 죽도록 괴롭혔을 거예요. 그 여자를 그렇게 쉽게 내버려 두지 않았겠죠.”‘눈에는 눈 이에는 이.’부승희의 인생 원칙은 분명했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고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양시연은 부승희의 말에 손뼉을 쳤다.“그러면
반우희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마침내 수영장에 갈 기회를 얻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수영장 쪽으로 몰려갔다.연정훈과 양시연의 집에는 지하에 거대한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은 전체가 수영장으로 꾸며져 있었다.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수영장의 물 온도는 조절할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양시연은 이곳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겼다.수영장에 모인 사람 중 루나를 포함한 여자 임원들은 모두 미모와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었으며 수영에도 능숙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등장하자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사람들이 많아지자 누군가 수영 경기를 제안했다.처음엔 여자들만 물에 들어갔고 경기 방식은 단순했고 수영 방법에 상관없이 끝까지 도달하면 되는 것이었다.남자들은 구경하며 흥미롭게 지켜봤고 한우빈이 출발 신호를 맡았다.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고 주변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양시연은 수영장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비롯해 모든 이들의 시선은 반우희에게 쏠렸다.반우희는 개헤엄을 꽤 잘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화려한 비키니가 아닌 끈이 달린 나시와 반바지 스타일의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하얗고 통통한 몸매는 키 크고 늘씬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경기는 치열했고 두 번의 왕복 끝에 반우희는 루나와 동점을 기록했다.“반우희 씨, 정말 대단하네요.”양시연이 칭찬했다.반우희는 밝게 웃으며 수영장 라운지로 헤엄쳐 올라왔다.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의 시선은 부승원에게 향했다.양시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반우희는 은근히 부승원의 칭찬을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부승원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반우희를 잡아 올렸다.“올라와서 좀 쉬어.”반우희는 몸을 가볍게 뛰어 라운지에 올라와 부승원 옆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기대며 이야기를 나눴다.이승우와 몇몇 남자들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놀며 내기를 시작했고 상품을 걸며 분위기를 띄웠다.수영장 라운지에서는 연
비 오는 날, 검은색 벤틀리 뒷좌석에서.차 안의 어두운 불빛 때문에 남자의 허리춤을 휘감고 있는 여자의 희고 부드러운 다리가 어렴풋이 보였다.간지럽고 야릇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안시연의 초점 잃은 눈동자는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허리를 튕기면서 눈앞의 사람이 빨리 끝내길 바랐다.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읍!”안시연이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탄 남자가 몸짓을 멈추었다.“처음이야?”안시연은 몸을 불태우던 열기가 조금 식은 것 같았다. 잇따라 허전한 기분이 들더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 다리를 더 단단히 감아 들었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연정훈의 몸놀림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그는 여자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긴장 풀어.”차 안의 온도가 급상승했다.정신은 흐릿했지만 이상하게 감각은 예민했다.안시연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더니 어금니를 깨물고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그녀는 이 상황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만 했다.두 달 전, 그녀는 주지혁의 팔짱을 끼고 성진대학교 동문 모임에 참석했었다. 연정훈은 성진대학교의 우수 졸업자 겸 학부 특임 교수로서 그 동문 모임에 참석했는데 두 사람에게 선남선녀라며 칭찬했던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주지혁은 바람을 피워 곧 명문 가문 아가씨와 결혼한다.그리고 그녀는 연정훈의 아래에 누워 그가 순결을 앗아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경인시에서의 연씨 가문은 권력이 대단했다.연정훈은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갑자기 교수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정인 그룹을 맡았다.그리고 지금의 그는 경인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사람들 앞에서는 번듯해 보이더니 이런 일을 할 때는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안시연을 사정없이 괴롭혔다.안시연은 하마터면 그의 차에서 숨이 멎을 뻔해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일이 끝난 후, 그녀는 옷을 꼭 껴안고는 힘이 풀린 채
반우희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마침내 수영장에 갈 기회를 얻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수영장 쪽으로 몰려갔다.연정훈과 양시연의 집에는 지하에 거대한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은 전체가 수영장으로 꾸며져 있었다.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수영장의 물 온도는 조절할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양시연은 이곳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겼다.수영장에 모인 사람 중 루나를 포함한 여자 임원들은 모두 미모와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었으며 수영에도 능숙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등장하자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사람들이 많아지자 누군가 수영 경기를 제안했다.처음엔 여자들만 물에 들어갔고 경기 방식은 단순했고 수영 방법에 상관없이 끝까지 도달하면 되는 것이었다.남자들은 구경하며 흥미롭게 지켜봤고 한우빈이 출발 신호를 맡았다.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고 주변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양시연은 수영장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비롯해 모든 이들의 시선은 반우희에게 쏠렸다.반우희는 개헤엄을 꽤 잘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화려한 비키니가 아닌 끈이 달린 나시와 반바지 스타일의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하얗고 통통한 몸매는 키 크고 늘씬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경기는 치열했고 두 번의 왕복 끝에 반우희는 루나와 동점을 기록했다.“반우희 씨, 정말 대단하네요.”양시연이 칭찬했다.반우희는 밝게 웃으며 수영장 라운지로 헤엄쳐 올라왔다.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의 시선은 부승원에게 향했다.양시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반우희는 은근히 부승원의 칭찬을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부승원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반우희를 잡아 올렸다.“올라와서 좀 쉬어.”반우희는 몸을 가볍게 뛰어 라운지에 올라와 부승원 옆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기대며 이야기를 나눴다.이승우와 몇몇 남자들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놀며 내기를 시작했고 상품을 걸며 분위기를 띄웠다.수영장 라운지에서는 연
양시연은 모연준의 사건이 부승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음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그 이야기를 꺼내며 부승희는 한탄하듯 말했다.“사실 저는 모연준 씨가 꽤 마음에 들었어요.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실수했죠.”모연준의 전 여자친구이자 첫사랑인 그녀는 모연준이 어려운 시기에 빠졌을 때 사라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 온갖 방법으로 그를 술에 취하게 만들고 하룻밤을 보낸 뒤 임신했다는 사실을 양시연은 이제야 알았다.“모연준 씨도 솔직한 편이에요. 그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조금 남아 있다고 했죠. 그렇지 않았다면 그 하룻밤을 그렇게 확실히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여자가 아이를 낳겠다고 하자 모연준 씨는 당황해서 아이를 지우라고 했는데 그 여자는 끝내 지우지 않고 시간이 지나 찾아와 문제를 만들었어요.”부승희는 손을 들며 단호하게 말했다.“어쨌든 난 참을 수 없어요. 모연준 씨가 무릎 꿇고 사과해도 그건 안 될 거예요.”하지만 모연준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그는 부승희를 찾아와 선택권을 줬고 부승희가 헤어지자고 하자 깔끔히 사라졌다.그날 부승희는 모연준에게 여러 차례 뺨을 때렸지만 그는 반격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부승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이야기를 마치며 부승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 여자도 결국 얻은 건 없을 거예요. 모연준 씨가 그 여자에게 감정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해 보였거든요.”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승희 씨가 그렇게 단호하게 헤어진 거군요?”부승희는 턱을 치켜들며 대답했다.“그 여자가 내 사람을 건드렸다면 절대로 쉽게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모연준 씨가 만약 그 여자에게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내가 그 둘을 죽도록 괴롭혔을 거예요. 그 여자를 그렇게 쉽게 내버려 두지 않았겠죠.”‘눈에는 눈 이에는 이.’부승희의 인생 원칙은 분명했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고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양시연은 부승희의 말에 손뼉을 쳤다.“그러면
“지금은 차가워 보이지 않는 거야?”양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은 한층 내려와서 평범한 사람처럼 보여서 그냥 그래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지금 너는 내 아내인데 내가 너한테 도도하게 대할 이유가 뭐 있어?”양시연은 눈을 굴리며 그의 앞에 가서 사무실 책상에 기대며 마치 진지하게 말하듯 말했다.“난 당신의 차가운 모습이 꽤 좋아요. 멋져 보이고 뭔가 걷잡을 수 없어 보여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연정훈은 양시연을 자기 무릎에 앉혔고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며 손바닥이 허리 옆에 닿도록 하고 익숙하게 장난을 치며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귓불에 닿았다.“지금 차갑지 않아서 안 좋아하는 거야?”양시연은 앙탈을 부리며 연정훈의 품에 숨었고 몇 번의 짧은 순간 만에 연정훈은 뜨겁게 달아올랐다.양시연이 임신한 이후로 연정훈은 본래 차분하게 지냈고 축적된 감정이 많았기에 그녀가 입으로 자꾸 그를 도발하는 바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그녀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걸 알게 되자 바로 뻔뻔하게 애교를 부렸다.“좋아요. 당신의 어떤 모습도 전 다 좋아요.”연정훈은 그녀가 이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회사 일은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두 다리를 그의 허리 옆에 벌려서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며 일어섰다.이 자세에서 양시연은 곧 이어질 상황을 떠올렸고 양시연은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했다.“안 돼요. 아직 의사가 말한 시간이 아니잖아요.”연정훈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양시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웃었고 그녀는 연정훈이 오래 참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시연은 두 손으로 연정훈의 얼굴을 감싸며 그의 얼굴에 입맞춤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연정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한 뒤 숨이 거칠어졌다.“이건 네가 먼저 말한 거야. 내가 강요한 게 아니야.”“그럼 할래요? 안 할래요? 조금만 기다리면 후회할지도 몰라요.”그녀는 도도하게 말했고 연정훈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침실로 가지
“당신 빨리 봐요. 우희 씨가 부승원 씨에게 몰래 입을 맞추고 있어요.”옆에서 양시연이 연정훈에게 귓속말을 건네자 연정훈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유치하긴. 그저 입 맞췄을 뿐인데.”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내밀며 슬쩍 쳐다본 뒤 상황을 보고했다.“부승원 씨가 우희 씨에게 입을 맞추고 손도 잡으려는 것 같아요.”연정훈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그 순간 부승원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연정훈은 침묵했다.“...”양시연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부승원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정훈에게 말했다.“심심했어?”연정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콜라를 한 모금 마셨고 다행히 영화가 곧 시작되었다.그의 관심은 드디어 양시연에게로 돌아갔고 그는 양시연에게 살짝 기대어 앉으며 그녀가 영화 내용을 공유해주기를 기다렸다.부승원은 반우희를 힐끗 쳐다보았다. 부승원은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한 손은 그의 손목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팝콘을 계속 집어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양시연이 준 티켓은 최신 SF 영화로 화면은 화려했지만 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시끄러워 부승원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그는 반우희가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연정훈이 자꾸 부승원을 놀리자 반우희는 영화를 시작한 뒤로 그와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영화의 자극적인 장면이 지나갈 때마다 반우희는 감탄하며 부승원의 손목을 잡고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부승원은 그녀의 손에 시선을 두었고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펼쳐 천천히 깍지를 잡았다.반우희는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영화에 집중하던 시선을 떼고 꽉 잡힌 손을 본 뒤 다시 부승원을 쳐다보았고 부승원은 화면을 응시한 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반우희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마음속으로 설렘을 느꼈고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채 부승원에게 조금 더 가까이 기울여 팝콘을 먹었다.부승원은 반우희가 가까워지는 느낌을 감지하고 미소를 지었다.부승원은 더 이
영화관 밖에서 반우희는 QR코드로 팝콘과 콜라를 받았다. 아직 입장도 하기 전에 팝콘은 이미 반쯤 사라진 상태였다.사람들이 많아지자 부승원은 반우희를 자기 곁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팔로 보호하듯 감싸 안고 장난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더 기다리면 팝콘 다 먹어버리겠네.”그의 말에 반우희는 웃으며 팝콘 두 알을 집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괜찮아요. 또 사면 되죠. 저 곧 월급날이잖아요.”그녀는 마치 돈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앞쪽 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반우희는 폴짝폴짝 뛰며 신나게 외쳤다.“우리 차례다.”팝콘을 먹던 손을 멈추고 부승원의 팔짱을 풀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입장 후 조명이 점차 어두워지자 반우희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었다.“7열 13번 좌석...어디지?”그녀는 중얼거리며 자리를 찾다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저기다.”부승원은 반우희의 손에 이끌려 자리로 향했다. 두 사람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손을 잡고 서로 가까이 붙은 채 걸음을 옮겼다.7열에 다다랐을 때 부승원은 앞쪽을 바라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점점 가까워질수록 앞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부승원은 걸음을 멈췄고 뒤돌아본 사람은 다르면 아닌 연정훈이었다.시선이 마주치자 부승원은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했지만 연정훈은 여유로운 얼굴로 콜라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우연이네.”부승원은 침묵했다.“...”반우희는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했고 연정훈 옆에 있던 양시연이 고개를 내밀어 반우희에게 손을 흔들었다.“우희 씨, 안녕하세요.”반우희는 밝게 웃으며 대답하려다 자신들이 비밀 연애 중임을 떠올렸다. 손을 잡은 게 들킬까 싶어 손을 떼려는 순간 양시연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애써 손을 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반우희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해결책을 찾는 동안 부승원은 이미 마음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손을
[이기적인 부승원 씨.]부승원은 반우희가 설정한 이름을 보고 순간 말을 잃었고 반우희는 눈썹을 까딱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어때요? 특별하죠?”부승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날 비꼬는거거야?”“누가 변호사님이 맨날 날 괴롭히래요.”“그건 네가 맨날 실수하니까 그런 거지.”부승원은 반우희를 내려다보며 차분히 답했다. 하지만 반우희는 이제 그가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근데 변호사님은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엄격하지 않잖아요. 왜 저한테만 이렇게 엄청 엄격한데요?”반우희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살짝 억울한 표정을 지었고 부승원은 반박하지 않았다.최근 들어 그는 자신이 반우희에게 약간 유치한 장난기를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창 시절 그는 친구들이 괜히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놀리는 행동을 하던 모습을 보며 비웃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자신이 그런 쓸데없는 장난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연애는 연애고 일은 일이지. 앞으로 네가 또 실수하면 난 계속 지적할 거야.”부승원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반우희는 ‘흥’하고 소리를 냈지만 진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계속 지적하세요.” ‘다음에 내가 당신한테 키스할 땐 물어버릴 거야.’부승원이 그녀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분명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점심시간은 짧았고 다행히 아무도 사무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반우희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부승원은 그녀가 일찍 일어났을 거라 짐작하며 잠시 쉬라고 달랬다.소파에 누운 반우희는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들기 전 부승원에게 말했다.“저녁에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영화?’부승원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학창 시절에도 그는 누구와 영화를 보러 간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영화 관람 경험은 오롯이 부승희와 함께한 것뿐이었고 그것도 부승희가 마땅히 같이 갈 사람이 없을 때 억지로 끌고 간 경우였다.“좋아.”부승원이 단번에 동의하자 반우
“수정했어요.”반우희는 휴대폰을 다시 건넸고 부승원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물었다.“그럼 나를 뭐라고 저장했어?”반우희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안 알려줄 거예요.”반우희는 말하면서 다시 가까이 다가갔다.“저에게 키스해 주면 알려줄게요.”부승원은 침묵했다.“...”부승원은 정말 웃고 싶었다.반우희는 그를 유혹하려 했지만 사실 그게 그에게는 오히려 달콤한 유혹임을 알지 못한 채였다.부승원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긴 척했다.반우희는 부승원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지만 분명 자신을 키스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술에 취해 강제로 키스했던 일이 떠올랐고 술에 취하면 진짜 마음이 드러나는 법이다.반우희는 부승원의 입술을 두 번 스치듯 훑으며 서서히 가까이 다가갔고 조심스럽게 그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부승원의 몸이 잠시 경직됐다.‘반우희...’반우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며 그의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더 가까이 다가가 혀로 그의 입술 사이를 살짝 훑었다.그 후 반우희는 부승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감싸며 셔츠 끝자락을 잡았다.“내가 변호사님한테 저장한 이름은 아주 특별해요. 키스해 주면 알려줄게요.”부승원은 생각했다. ‘저장한 이름이 특별하지 않으면 내가 너한테 키스를 할 수 없는 거야?’부승원은 무심코 반우희의 허리를 감싸며 손을 그녀의 뒤로 보내어 그녀를 더욱 품 안으로 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며 차갑고도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조금 더 낮게.”부승원은 명령을 내리자 반우희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품에 엎드려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그 자세는 순종적인 매력을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부승원은 마치 그동안 억눌려온 본능이 이제 반우희에게서 풀려날 순간이 온 것처럼 느껴졌다.그의 얼굴은 차가웠지만 그녀의 턱을 잡은 손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반우희는 가볍게 신음하며 부승원의 허리에 있던 손을 더 꽉 쥐었고 부승원은 고개를 숙여 얇은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닿게
부승원는 멍해졌다.반우희는 부승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그의 입술에 묻은 단맛을 가볍게 훔쳐 갔다.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용기를 내어 그에게 키스하려고 했다.그러나 그녀의 움직임은 점점 더 대담해졌고 몸은 멈추지 않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얇은 셔츠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온기와 선명한 실루엣이 부승원의 감각을 자극했고 불필요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애써 억눌렀다.그녀가 더 가까이 다가오려던 순간 부승원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위험한 행동을 조용히 차단했다.반우희는 당황한 기색 없이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살짝 적셨고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부승원은 얇게 다문 입술과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교육적인 어조로 말했다.“뭘 하려는 거야?”그러나 반우희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코끝을 비비며 천진난만하게 속삭였다.“당신한테 키스하려고요.”“...”“변호사님한테 키스하고 싶어요.”돌직구 같은 고백을 내뱉은 그녀는 자신도 즐거운 듯 해맑게 웃으며 덧붙였다.“사람들이 연애하면 다 키스도 하잖아요. 게다가 변호사님 전에 저한테 키스하셨잖아요. 그땐 보상까지 요구했는데 이번엔 그냥 하면 돼요. 제가 허락했으니까요.”부승원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순간 침묵했다.“...”‘부승희 바보인가? 세상에. 이런 식으로 들이대는 사람이 어디 있어?’그는 숨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느꼈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려 애써 냉정을 유지했고 반우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회사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말을 들었다.부승원은 말을 끝낸 후 반우희가 겁을 먹었을까 조금 후회가 들었다.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반우희는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고 부승원의 코끝에는 그녀의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고 품 속의 촉감도 더욱 뚜렷해졌다.게다가 반우희는 자세를 바꾸더니 그의 다리 위에 양다리를 벌리고 앉아
부승원은 반우희가 갑자기 나타나자 속으로는 기뻤다.눈이 마주쳤을 때 부승원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잠시 멈칫했지만 그녀는 어느새 그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밖에 아무도 없어요. 저 몰래 온 거에요.”반우희는 고개를 들어 부승원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엿보였고 부승원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점심은 먹었어?”그 말을 듣자 반우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답했다.“아직 안 먹었어요.”그러더니 뒤에 숨겨 둔 디저트를 꺼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변호사님과 같이 먹고 싶어서 가져왔어요.”부승원은 그녀의 말에 마음이 깃털로 간질이는 듯 따뜻했지만 목젖을 가볍게 움직이며 평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난 낮에 바쁘니까 너 스스로 잘 챙겨 먹어야지. 굳이 나 기다릴 필요 없어.”반우희는 그의 태도에 살짝 불만스러웠다. 특유의 솔직한 성격답게 디저트를 든 채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먹으려고 온 게 아니라 변호사님을 보러 온 거에요. 아침에 말도 못 해서 조금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변호사님은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요?”반우희는 커다란 눈으로 부승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진심을 전했다.부승원도 그녀가 보고 싶었고 어젯밤 내내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전까지 반우희를 그렇게 깊이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아침 내내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고 조금씩 자제력을 회복하는 듯했지만 반우희가 직접 찾아와 보고 싶다고 말하자 모든 노력이 무너져 내렸다.부승원은 겉으로는 무심한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보고 싶었어.”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조는 다소 평온해서 진정성이 덜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다른 여자라면 금세 서운해할 만한 순간이었지만 반우희는 달랐다. 부승원이 ‘보고 싶었다’고 말한 그 자체로도 그녀는 충분히 행복했다.반우희는 부승원의 손을 잡아 소파 쪽으로 끌고 가 앉히더니 그의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