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희는 떠날 때 마음속에 분노를 가득 품고 떠났으며 정확히 말하자면 이승우와 사귀지 않았지만 그와 모호한 관계를 여러 번 이어왔다.부승희는 속으로 둘이 결국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여겼다.결국 이승우는 진정한 사랑이라 여긴 다른 여자를 만났고 그녀는 해외로 떠날 때 마음속으로 이승우에게 저주를 퍼부었다.돌아와서는 모연준과 함께하며 학업과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로 인해 이승우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승우에 대한 미움은 여전히 부승희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처음에는 모든 환상이 유지될 수 있었지만 이승우가 모연준을 대신해 싸워주던 그날 밤 사실 그가 부승희를 위해 싸운 것이었음에도 그녀는 마음 깊이 숨겨왔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그녀는 이승우가 대체 누구길래 얼굴도 두껍게 나서서 자신을 대신해 싸운다고 하는지 의문스러웠다.이승우가 부승희를 대신해 싸운 것은 결국 그녀에게 창피함을 안겨준 셈이었고 마치 자신이 이승우보다 못한 사람을 찾았다고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부승희는 이승우의 머리를 때린 후 단호하게 말을 끊어버렸다. 그저 이승우가 알아서 멀리 떨어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두 가문 간의 인연을 생각해 어느 정도 체면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그런데 하하.’그때 이승우는 웃으며 부승희의 허리를 감싸 안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부승희 나는 다른 것을 바라는 게 아니야. 내가 너를 도와서 상황을 풀어줄게. 돈을 벌어서라도 이렇게 쌀쌀맞게 굴지 말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잖아.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우정이라도 남아 있잖아. 네가 예전에 나와 사귀지 못해서 마음에 담고 있다면 마음이 너무 좁은 거 아니야?”“마음이 좁다고? 감히 이런 말투로 나를 말하다니. 내가 이승우에게 용기를 준 건가?’“어때?”이승우는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내가 너의 부하가 되어줄 기회를 줄래? 네가 어디를 지시하면 내가
부승희는 양시연에게서 옷을 빌려 입고 나오던 중 마침 부승원과 반우희를 마주쳤다.‘반우희 씨는 피부가 정말 하얗고 통통하네.’부승희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순간 참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부승원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반우희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반우희 씨, 가슴이 진짜 풍만하시네요.”반우희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한 듯 가슴을 감쌌다.‘이 여자 변태인가?’부승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들어 부승원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쳤다. 그러더니 반우희를 옆으로 끌어당겨 속삭이듯 물었다.“우리 오빠가 만져본 적 있어요?”반우희는 당황했다!반우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승희를 바라봤다.‘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거야?’부승원은 반우희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부승희가 불쾌한 말을 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객실 문을 열었다.“일단 들어가서 샤워하고 옷부터 갈아입어.”반우희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부승희의 손에서 재빨리 벗어나 방으로 들어갔고 방 밖에서는 남매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부승희는 두 손을 뒤로 모으며 부승원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부승원도 수영을 한 듯 드물게 정장을 벗고 수영복만 입은 모습이었다.반우희는 친오빠마저 그냥 두지 않으며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오빠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들어가. 절호의 기회잖아.”부승원은 침묵했다.“...”이승우는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아까 이승우랑 같이 있었냐?”‘쳇.’수비가 되지 않자 공격으로 돌리는 것은 정말 규칙을 지키지 않는 치사한 수법이었다.부승희는 콧방귀를 끼고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고 부승원은 그런 그녀를 보고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반우희가 샤워를 마친 후인지 그녀의 옷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 모습은 전혀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부승원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들었지만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잠시 후 반우희가 목욕
점심 무렵까지 놀다 보니 사람들도 지쳐 절반 정도의 손님들은 객실로 가서 휴식을 취했고 여전히 에너지를 발산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은 반우희 집안의 세 아이뿐이었다.양시연은 연정훈 옆에 기대앉아 몇몇 임원들과 함께 업계 대기업들의 권력 교체 뒤에 숨겨진 작전들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입이 심심해졌다. 그녀는 술 창고에 여 아주머니가 만든 과일 원액이 생각나 직접 가지러 가기로 했고 연정훈은 그녀가 걱정되어 동행하기로 했다.“겨우 몇 걸음밖에 안 되잖아요.”양시연이 말하자 연정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내가 집에 있을 땐 나랑 같이 가. 내가 집에 없을 땐 혼자 수영장이나 술 창고에 가지 마.”양시연은 현재 배가 커져 있어 혹시라도 넘어지면 큰일이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렇게까지 조심해야 할 필요 없어요...”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뒷문에 도착했고 연정훈이 문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양시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확인한 후 여 아주머니의 손자인 탁승호라는 걸 알고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승호 오빠.”탁승호는 양씨 가문 사람이라 연정훈도 그를 예우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배경은 깨끗했다.“방금 창고에 신선한 식자재를 채워 넣고 오는 길에 뒷마당에서 몇몇 아이들이 우체통을 열려고 애쓰는 걸 봤어요. 그래서 열쇠를 찾아주려고 했어요.”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 우체통은 녹슬었을 텐데 아직 열릴 수나 있을까요?”“괜찮아요. 안 열리면 자물쇠를 교체하고 조금만 다듬으면 보기에도 좋을 거예요.”“네. 수고하세요.”탁승호는 서른 정도로 보이는 투박한 남자로 성격도 순박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금세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연정훈과 양시연에게 길을 내어주고 두 사람이 지나가자 조용히 거실로 들어갔고 매우 얌전하게 있었다.양시연은 별다른 생각 없이 연정훈과 함께 술 창고로 내려갔다.그녀는 과일 원액을 금세
비 오는 날, 검은색 벤틀리 뒷좌석에서.차 안의 어두운 불빛 때문에 남자의 허리춤을 휘감고 있는 여자의 희고 부드러운 다리가 어렴풋이 보였다.간지럽고 야릇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안시연의 초점 잃은 눈동자는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허리를 튕기면서 눈앞의 사람이 빨리 끝내길 바랐다.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읍!”안시연이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탄 남자가 몸짓을 멈추었다.“처음이야?”안시연은 몸을 불태우던 열기가 조금 식은 것 같았다. 잇따라 허전한 기분이 들더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 다리를 더 단단히 감아 들었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연정훈의 몸놀림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그는 여자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긴장 풀어.”차 안의 온도가 급상승했다.정신은 흐릿했지만 이상하게 감각은 예민했다.안시연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더니 어금니를 깨물고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그녀는 이 상황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만 했다.두 달 전, 그녀는 주지혁의 팔짱을 끼고 성진대학교 동문 모임에 참석했었다. 연정훈은 성진대학교의 우수 졸업자 겸 학부 특임 교수로서 그 동문 모임에 참석했는데 두 사람에게 선남선녀라며 칭찬했던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주지혁은 바람을 피워 곧 명문 가문 아가씨와 결혼한다.그리고 그녀는 연정훈의 아래에 누워 그가 순결을 앗아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경인시에서의 연씨 가문은 권력이 대단했다.연정훈은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갑자기 교수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정인 그룹을 맡았다.그리고 지금의 그는 경인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사람들 앞에서는 번듯해 보이더니 이런 일을 할 때는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안시연을 사정없이 괴롭혔다.안시연은 하마터면 그의 차에서 숨이 멎을 뻔해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일이 끝난 후, 그녀는 옷을 꼭 껴안고는 힘이 풀린 채
안시연은 경찰서에 세 시간의 취조를 받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는데, 이때 주지혁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녀는 어금니를 깨물다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지혁 씨,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요. 굳이 내 인생을 망칠 생각인가요?”그 8억은 분명 그가 그녀에게 직접 전화해 빼내라고 한 것이다.주지혁은 그녀의 분노를 예상했는지 덤덤하게 말했다.“시연 씨,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면 안 되었어요.”“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안 꺼내면 당신이 어떻게 조이현 씨를 안을 수 있겠어요?”안시연이 비꼬며 말했다.주지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뻔뻔스럽게 말했다.“나 다음 달에 이현이와 약혼해요. 하지만 난 이현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시연 씨, 3년만 기다려요. 3년 뒤면 내가 이혼하고 꼭 시연 씨와 결혼할게요.”안시연은 헛웃음이 나왔다.“그럼 3년 동안 나는 어떡하라고요.”“외국으로 유학 보내줄게요.”뻔뻔스럽네!명문 가문 출신인 조이현과 결혼은 해야겠고, 또 그 돈으로 안시연을 ‘내연녀’로 만들게 하다니, 어떻게 이런 염치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안시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지만 난 이미 다른 남자와 잤어요.”주지혁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농담은 하지 마요. 나 화나게 만들면 시연 씨에게 좋을 것 없어요.”안시연이 심호흡하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도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나 찾으러 와요. 내가 시연 씨 외국 보내줄게요.”“꿈 깨요!”주지혁이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시연 씨, 만약 내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시연 씨는 돈의 행방을 모두 찾아내는 것으로 결백을 증명해야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나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8억이면 시연 씨 감옥에서 10년 갇히고도 더 남아요. 시연 씨가 감옥에 들어가면 누가 외할머니를 돌보겠어요?”안시연에게 힘이 남아돌았다면 진작 그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내가 정말
안시연은 그제야 연정훈 눈빛의 의미를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그녀는 빠르게 거울 앞을 지나 옷을 벗고는 욕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다 씻고 나서야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욕실 안에는 남성 가운 하나밖에 없었다.안시연은 어젯밤 연정훈을 떠올렸는데 그가 여색을 밝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어쩌면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녀는 가운을 입고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연정훈을 불러보았다.“연 교수님?”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빠르게 나가 데스크에 전화해 옷을 부탁하려고 했다.침대에 앉아 이제 막 전화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정이슬이 그녀에게 보내준 스크린샷이었다.“시연아, 무슨 일이야? 전민준에게 부탁하러 간 거 아니었어? 왜 싸우게 된 거야? 그 새끼가 단톡방에서 너 꽃뱀이라며 욕하고 있어.”안시연이 단톡방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정말 정이슬의 말대로 전민준은 그녀에게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생동감 넘치는’ 거짓말에 사람들은 그에게 위로도 건넸다.[걸레 같은 년은 나도 싫어. 그 와중에 보답 없이 부탁하는 것 좀 봐. 퉤!]안시연은 이 보름 동안 불행의 시간을 보냈다.그녀에게 도움을 베푼 사람이 있기는커녕 지금 단톡방에서 또 이런 비난을 받고 있으니, 그녀는 분노가 끓어올랐고, 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 코끝이 찡했다.“옷은 이따가 누가 가져다줄 거야.”맑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안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그제야 연정훈이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다는 걸 발견했다.‘뭐야? 왜 소리를 안 내?’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안에 속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연정훈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느긋하게 말했다.“난 대답했는데 당신이 못 들은 거야.”그 말인즉 자기 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안시연은 어이가 없었다.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발목에서 고통이 몰려와 그녀는 작은 신음을 뱉고 다시 침대에 주저앉게 되었다.연정훈
안시연이 얼어붙었다.잠깐 생각하고서야 그의 뜻을 알아챘다.어제는 그녀의 첫날밤이었고 연정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그의 뜻은 전에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안시연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는데 그녀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그녀와 잠자리를 가져본 사람은 연정훈밖에 없었다.주지혁이 바람피우기 전 두 사람의 스킨십은 포옹과 키스에 그쳤고, 잠자리는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그녀는 경험도 없어 이런 얘기가 꺼내질 때마다 어색한 마음이 들곤 했다.연정훈이 또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녀는 겨우 대답했다.“습관 되지 않아서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사실이었다.연정훈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맑은 눈을 가진 그녀였기 때문이다.“넌 참 착한 여자야.”연정훈이 덤덤하게 뱉은 말에 안시연은 입술을 꽉 물었다.방금까지 단톡방에서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받은 불공평한 대우까지 떠오르니 그의 말에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분명 그녀는 잘못한 게 없는데 보는 사람마다 그녀를 비난하곤 했다.연정훈이 무심하게 말을 뱉고는 약을 다 바른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안시연이 서둘러 몸을 뒤로 뺐는데 허벅지 사이로 약간의 고통이 전해졌다.어젯밤의 부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연정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리를 모을 때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포착했다.“다리에도 상처가 있어?”그 얘기를 듣자, 안시연은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요.”그녀의 눈가, 그리고 코끝이 빨개졌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마치 비바람 속에 피어난 장미꽃 한 송이 같았다.연정훈이 한 발짝 다가서자, 안시연은 몸을 더 뒤로 뺐다.“안시연.”연정훈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뒤에 있는 침대 시트를 꽉 잡았다.연정
안시연은 테이블 위에 누워있었는데 마침 주인을 기다리는 정교한 선물 같았다.연정훈이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고는 달콤한 입술을 맛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 여자가 입고 있던 가운의 끈을 풀었다.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가는 허리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누비고 있었다.사실 아까 병풍을 사이 두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부터 그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때 안시연은 전민준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연정훈은 목덜미를 물어뜯자, 안시연은 온몸에 전율이 퍼지는 것 같았다.점점 거칠어지는 남자의 숨소리와 손길, 그리고 자연스럽게 버클을 푸는 남자를 보며 안시연은 얼굴이 빨개져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어두운 불빛 아래 뭔가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그녀는 젖은 눈을 크게 뜨고는 빛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것의 형체를 똑똑히 보려고 했다.연정훈 손에 낀 반지였다.그것도 약지에 끼어 있었다.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던 안시연의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다.대충 세어보니 연정훈도 거의 서른 되는 나이였다.명문 가문의 후계자라면 이 나이에 진작 결혼했을 텐데 말이다.“집중해.”남자는 여자의 귓불을 깨물며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다리를 꽉 잡아 벌리려고 하자 안시연이 갑자기 몸을 뒤로 빼며 남자를 밀어냈다.“안 돼요!”연정훈의 새까만 눈동자는 욕망으로 타올랐다.그는 안시연이 그에게 도움을 부탁할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이 조건을 내세울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그는 여자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상처 난 부위를 피해 잡았다.그리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는 힘으로 제압했다.안시연이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의 입술을 피했다.연정훈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숨을 헐떡이고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왜 그래?”“결혼하셨잖아요!”안시연이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주지혁이 바람피워서 마음고생한 그녀는 누구보다도 ‘내연녀’라는 존재를 싫어했다. 그래서 절대 다른 사람의 결혼에 끼어들 생
점심 무렵까지 놀다 보니 사람들도 지쳐 절반 정도의 손님들은 객실로 가서 휴식을 취했고 여전히 에너지를 발산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은 반우희 집안의 세 아이뿐이었다.양시연은 연정훈 옆에 기대앉아 몇몇 임원들과 함께 업계 대기업들의 권력 교체 뒤에 숨겨진 작전들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입이 심심해졌다. 그녀는 술 창고에 여 아주머니가 만든 과일 원액이 생각나 직접 가지러 가기로 했고 연정훈은 그녀가 걱정되어 동행하기로 했다.“겨우 몇 걸음밖에 안 되잖아요.”양시연이 말하자 연정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내가 집에 있을 땐 나랑 같이 가. 내가 집에 없을 땐 혼자 수영장이나 술 창고에 가지 마.”양시연은 현재 배가 커져 있어 혹시라도 넘어지면 큰일이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렇게까지 조심해야 할 필요 없어요...”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뒷문에 도착했고 연정훈이 문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양시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확인한 후 여 아주머니의 손자인 탁승호라는 걸 알고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승호 오빠.”탁승호는 양씨 가문 사람이라 연정훈도 그를 예우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배경은 깨끗했다.“방금 창고에 신선한 식자재를 채워 넣고 오는 길에 뒷마당에서 몇몇 아이들이 우체통을 열려고 애쓰는 걸 봤어요. 그래서 열쇠를 찾아주려고 했어요.”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 우체통은 녹슬었을 텐데 아직 열릴 수나 있을까요?”“괜찮아요. 안 열리면 자물쇠를 교체하고 조금만 다듬으면 보기에도 좋을 거예요.”“네. 수고하세요.”탁승호는 서른 정도로 보이는 투박한 남자로 성격도 순박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금세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연정훈과 양시연에게 길을 내어주고 두 사람이 지나가자 조용히 거실로 들어갔고 매우 얌전하게 있었다.양시연은 별다른 생각 없이 연정훈과 함께 술 창고로 내려갔다.그녀는 과일 원액을 금세
부승희는 양시연에게서 옷을 빌려 입고 나오던 중 마침 부승원과 반우희를 마주쳤다.‘반우희 씨는 피부가 정말 하얗고 통통하네.’부승희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순간 참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부승원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반우희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반우희 씨, 가슴이 진짜 풍만하시네요.”반우희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한 듯 가슴을 감쌌다.‘이 여자 변태인가?’부승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들어 부승원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쳤다. 그러더니 반우희를 옆으로 끌어당겨 속삭이듯 물었다.“우리 오빠가 만져본 적 있어요?”반우희는 당황했다!반우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승희를 바라봤다.‘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거야?’부승원은 반우희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부승희가 불쾌한 말을 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객실 문을 열었다.“일단 들어가서 샤워하고 옷부터 갈아입어.”반우희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부승희의 손에서 재빨리 벗어나 방으로 들어갔고 방 밖에서는 남매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부승희는 두 손을 뒤로 모으며 부승원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부승원도 수영을 한 듯 드물게 정장을 벗고 수영복만 입은 모습이었다.반우희는 친오빠마저 그냥 두지 않으며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오빠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들어가. 절호의 기회잖아.”부승원은 침묵했다.“...”이승우는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아까 이승우랑 같이 있었냐?”‘쳇.’수비가 되지 않자 공격으로 돌리는 것은 정말 규칙을 지키지 않는 치사한 수법이었다.부승희는 콧방귀를 끼고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고 부승원은 그런 그녀를 보고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반우희가 샤워를 마친 후인지 그녀의 옷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 모습은 전혀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부승원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들었지만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잠시 후 반우희가 목욕
부승희는 떠날 때 마음속에 분노를 가득 품고 떠났으며 정확히 말하자면 이승우와 사귀지 않았지만 그와 모호한 관계를 여러 번 이어왔다.부승희는 속으로 둘이 결국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여겼다.결국 이승우는 진정한 사랑이라 여긴 다른 여자를 만났고 그녀는 해외로 떠날 때 마음속으로 이승우에게 저주를 퍼부었다.돌아와서는 모연준과 함께하며 학업과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로 인해 이승우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승우에 대한 미움은 여전히 부승희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처음에는 모든 환상이 유지될 수 있었지만 이승우가 모연준을 대신해 싸워주던 그날 밤 사실 그가 부승희를 위해 싸운 것이었음에도 그녀는 마음 깊이 숨겨왔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그녀는 이승우가 대체 누구길래 얼굴도 두껍게 나서서 자신을 대신해 싸운다고 하는지 의문스러웠다.이승우가 부승희를 대신해 싸운 것은 결국 그녀에게 창피함을 안겨준 셈이었고 마치 자신이 이승우보다 못한 사람을 찾았다고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부승희는 이승우의 머리를 때린 후 단호하게 말을 끊어버렸다. 그저 이승우가 알아서 멀리 떨어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두 가문 간의 인연을 생각해 어느 정도 체면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그런데 하하.’그때 이승우는 웃으며 부승희의 허리를 감싸 안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부승희 나는 다른 것을 바라는 게 아니야. 내가 너를 도와서 상황을 풀어줄게. 돈을 벌어서라도 이렇게 쌀쌀맞게 굴지 말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잖아.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우정이라도 남아 있잖아. 네가 예전에 나와 사귀지 못해서 마음에 담고 있다면 마음이 너무 좁은 거 아니야?”“마음이 좁다고? 감히 이런 말투로 나를 말하다니. 내가 이승우에게 용기를 준 건가?’“어때?”이승우는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내가 너의 부하가 되어줄 기회를 줄래? 네가 어디를 지시하면 내가
이승우는 다리를 뻗어 부승희를 부드럽게 끌어올려 무릎 위에 앉혔고 그 일련의 동작은 마치 미리 설정된 것처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루어졌다.심지어 부승희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리려는 동작까지 예상한 듯 그는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아 등 뒤로 제압했다.‘이런.’부승희는 속으로 짧게 욕을 내뱉었지만 체면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며 이승우를 응시했다.“이거 무슨 뜻이지?”“실수였어.”이승우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여 부승희의 다리를 살폈다.“어디 다친 데는 없어?”부승희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이승우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허리가 아프네. 좀 주물러 줄래?”그 말을 하며 그녀는 이승우의 무릎 위에서 일부러 몸을 살짝 비틀었고 이승우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내가 정말로 주물러줘도 화 안 낼 거야?”“화날 리가 있겠어? 네가 좋은 마음으로 하는 걸 아는데.”이승우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억누르려 애썼다.‘이승우가 좋은 마음으로?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부승희는 허리가 아프다고만 했을 뿐 정확히 어디가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승우도 따지지 않고 그녀의 손을 풀어주며 따뜻한 손바닥으로 천천히 허리를 주물렀다.그는 부승희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잡담을 나누는 이 순간을 만끽했다.만약 부승희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승우의 목덜미를 살짝 꼬집지 않았다면 그 순간은 더 완벽했을 것이다.부승희의 손톱은 정교하게 네일 아트를 한 상태였고 살짝만 꼬집었을 뿐인데도 이승우는 목덜미에 뻐근한 고통을 느꼈다.참다못해 깊은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피해내던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만족스러운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기분 좋지?”이승우는 어금니를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좋아.”‘정말 한심하군.’부승희는 이승우를 흘겨보았다. 그의 손이 허리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뜨거운 온기가 점점 더 신경 쓰였다.참다못한 부승희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손을 들자마자 또다시 이
부승희는 2층으로 올라가 아무 방이나 골라 샤워를 마친 뒤 나오자마자 거실에서 드라이어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가 여자들이 내는 소리일 것으로 생각한 부승희는 맨발로 나가보았지만 짜증이 밀려왔다.‘하 이런.’이승우는 부승희의 모습을 등지고 서서 큰 전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며 이마에 떨어진 잔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멋을 부리고 있었다.의 머리에는 지난번 부승희가 때려서 생긴 작은 상처가 아물었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일부러 하트 모양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꿔 그 부분을 가렸고 멀리서 보면 그 흔적은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부승희는 팔짱을 끼고 문틀에 기대며 한마디 했다.“옆방 드라이어 고장 난 거야?”이승우는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6~7개 방을 다 눌러보다가 이 방까지 온 거야.”이승우는 드라이어를 끄고 머리를 정리하며 부승희를 바라봤다.“기분 나쁘면 나한테 두 대 정도 때릴래?”부승희는 웃으며 말했다.“진짜 너 괘씸해.”이승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은 듯 드라이어를 부승희에게 건넸고 부승희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았다.그녀는 소파로 가서 앉아 하얀 피부의 긴 다리를 꼬고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며 눈을 감고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이승우는 그 옆 소파에 기대어 대놓고 부승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머리가 거의 말라갈 무렵 부승희가 눈을 떴고 이승우는 딸기를 씻어서 건넸다.부승희는 잠시 쓱 훑어본 뒤 망설임 없이 머리를 숙여 그것을 물어갔다.이승우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너에게 꽃을 보냈는데 봤어?”부승희는 그를 보지 않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으면서 대답했다.“언제 보낸 거? 어떤 꽃?”“그저께 오후. 줄리엣 장미.”“어느 꽃집에서 샀어? 무슨 포장이 그렇게 엉망이야.”부승희는 투덜거렸다.“...내가 포장했어.”부승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직접 포장한 거야?”“응. 직접 포장했어.”“그러면 너 진짜 운 좋네. 그 꽃은 내가 직접 쓰레기통에 던졌던 유일한 꽃이야. 너무 못생겼어.”이승우는 그녀가
반우희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마침내 수영장에 갈 기회를 얻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수영장 쪽으로 몰려갔다.연정훈과 양시연의 집에는 지하에 거대한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은 전체가 수영장으로 꾸며져 있었다.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수영장의 물 온도는 조절할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양시연은 이곳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겼다.수영장에 모인 사람 중 루나를 포함한 여자 임원들은 모두 미모와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었으며 수영에도 능숙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등장하자 수영장 가장자리에서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사람들이 많아지자 누군가 수영 경기를 제안했다.처음엔 여자들만 물에 들어갔고 경기 방식은 단순했고 수영 방법에 상관없이 끝까지 도달하면 되는 것이었다.남자들은 구경하며 흥미롭게 지켜봤고 한우빈이 출발 신호를 맡았다.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고 주변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양시연은 수영장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비롯해 모든 이들의 시선은 반우희에게 쏠렸다.반우희는 개헤엄을 꽤 잘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화려한 비키니가 아닌 끈이 달린 나시와 반바지 스타일의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하얗고 통통한 몸매는 키 크고 늘씬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경기는 치열했고 두 번의 왕복 끝에 반우희는 루나와 동점을 기록했다.“반우희 씨, 정말 대단하네요.”양시연이 칭찬했다.반우희는 밝게 웃으며 수영장 라운지로 헤엄쳐 올라왔다.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의 시선은 부승원에게 향했다.양시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반우희는 은근히 부승원의 칭찬을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부승원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반우희를 잡아 올렸다.“올라와서 좀 쉬어.”반우희는 몸을 가볍게 뛰어 라운지에 올라와 부승원 옆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기대며 이야기를 나눴다.이승우와 몇몇 남자들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놀며 내기를 시작했고 상품을 걸며 분위기를 띄웠다.수영장 라운지에서는 연
양시연은 모연준의 사건이 부승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음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그 이야기를 꺼내며 부승희는 한탄하듯 말했다.“사실 저는 모연준 씨가 꽤 마음에 들었어요.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실수했죠.”모연준의 전 여자친구이자 첫사랑인 그녀는 모연준이 어려운 시기에 빠졌을 때 사라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 온갖 방법으로 그를 술에 취하게 만들고 하룻밤을 보낸 뒤 임신했다는 사실을 양시연은 이제야 알았다.“모연준 씨도 솔직한 편이에요. 그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조금 남아 있다고 했죠. 그렇지 않았다면 그 하룻밤을 그렇게 확실히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여자가 아이를 낳겠다고 하자 모연준 씨는 당황해서 아이를 지우라고 했는데 그 여자는 끝내 지우지 않고 시간이 지나 찾아와 문제를 만들었어요.”부승희는 손을 들며 단호하게 말했다.“어쨌든 난 참을 수 없어요. 모연준 씨가 무릎 꿇고 사과해도 그건 안 될 거예요.”하지만 모연준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그는 부승희를 찾아와 선택권을 줬고 부승희가 헤어지자고 하자 깔끔히 사라졌다.그날 부승희는 모연준에게 여러 차례 뺨을 때렸지만 그는 반격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부승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이야기를 마치며 부승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 여자도 결국 얻은 건 없을 거예요. 모연준 씨가 그 여자에게 감정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해 보였거든요.”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승희 씨가 그렇게 단호하게 헤어진 거군요?”부승희는 턱을 치켜들며 대답했다.“그 여자가 내 사람을 건드렸다면 절대로 쉽게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모연준 씨가 만약 그 여자에게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내가 그 둘을 죽도록 괴롭혔을 거예요. 그 여자를 그렇게 쉽게 내버려 두지 않았겠죠.”‘눈에는 눈 이에는 이.’부승희의 인생 원칙은 분명했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고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양시연은 부승희의 말에 손뼉을 쳤다.“그러면
“지금은 차가워 보이지 않는 거야?”양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은 한층 내려와서 평범한 사람처럼 보여서 그냥 그래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지금 너는 내 아내인데 내가 너한테 도도하게 대할 이유가 뭐 있어?”양시연은 눈을 굴리며 그의 앞에 가서 사무실 책상에 기대며 마치 진지하게 말하듯 말했다.“난 당신의 차가운 모습이 꽤 좋아요. 멋져 보이고 뭔가 걷잡을 수 없어 보여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연정훈은 양시연을 자기 무릎에 앉혔고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며 손바닥이 허리 옆에 닿도록 하고 익숙하게 장난을 치며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귓불에 닿았다.“지금 차갑지 않아서 안 좋아하는 거야?”양시연은 앙탈을 부리며 연정훈의 품에 숨었고 몇 번의 짧은 순간 만에 연정훈은 뜨겁게 달아올랐다.양시연이 임신한 이후로 연정훈은 본래 차분하게 지냈고 축적된 감정이 많았기에 그녀가 입으로 자꾸 그를 도발하는 바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그녀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걸 알게 되자 바로 뻔뻔하게 애교를 부렸다.“좋아요. 당신의 어떤 모습도 전 다 좋아요.”연정훈은 그녀가 이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회사 일은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두 다리를 그의 허리 옆에 벌려서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며 일어섰다.이 자세에서 양시연은 곧 이어질 상황을 떠올렸고 양시연은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했다.“안 돼요. 아직 의사가 말한 시간이 아니잖아요.”연정훈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양시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웃었고 그녀는 연정훈이 오래 참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시연은 두 손으로 연정훈의 얼굴을 감싸며 그의 얼굴에 입맞춤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연정훈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한 뒤 숨이 거칠어졌다.“이건 네가 먼저 말한 거야. 내가 강요한 게 아니야.”“그럼 할래요? 안 할래요? 조금만 기다리면 후회할지도 몰라요.”그녀는 도도하게 말했고 연정훈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침실로 가지
“당신 빨리 봐요. 우희 씨가 부승원 씨에게 몰래 입을 맞추고 있어요.”옆에서 양시연이 연정훈에게 귓속말을 건네자 연정훈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유치하긴. 그저 입 맞췄을 뿐인데.”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내밀며 슬쩍 쳐다본 뒤 상황을 보고했다.“부승원 씨가 우희 씨에게 입을 맞추고 손도 잡으려는 것 같아요.”연정훈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그 순간 부승원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연정훈은 침묵했다.“...”양시연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부승원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정훈에게 말했다.“심심했어?”연정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콜라를 한 모금 마셨고 다행히 영화가 곧 시작되었다.그의 관심은 드디어 양시연에게로 돌아갔고 그는 양시연에게 살짝 기대어 앉으며 그녀가 영화 내용을 공유해주기를 기다렸다.부승원은 반우희를 힐끗 쳐다보았다. 부승원은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한 손은 그의 손목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팝콘을 계속 집어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양시연이 준 티켓은 최신 SF 영화로 화면은 화려했지만 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시끄러워 부승원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그는 반우희가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연정훈이 자꾸 부승원을 놀리자 반우희는 영화를 시작한 뒤로 그와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영화의 자극적인 장면이 지나갈 때마다 반우희는 감탄하며 부승원의 손목을 잡고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부승원은 그녀의 손에 시선을 두었고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펼쳐 천천히 깍지를 잡았다.반우희는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영화에 집중하던 시선을 떼고 꽉 잡힌 손을 본 뒤 다시 부승원을 쳐다보았고 부승원은 화면을 응시한 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반우희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마음속으로 설렘을 느꼈고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채 부승원에게 조금 더 가까이 기울여 팝콘을 먹었다.부승원은 반우희가 가까워지는 느낌을 감지하고 미소를 지었다.부승원은 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