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안시연 쪽의 식사 자리는 일찍 끝나지 않았다. 연명걸이 직접 참석해 테이블마다 술을 권했다.연명걸은 상상속의 부잣집 도련님과 달리 점잖았고, 누구 앞에서나 웃는 얼굴이었다.“돈을 잘 벌 것 같은 얼굴인데, 왜 회사가 적자일까요?”장가희의 말에 안시연은 피식 웃었다.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연명걸이 왔다 간 후 모두가 긴장을 풀고 열심히 먹었다.안시연은 중도에 화장실에 갔다.문을 나설 때, 익숙한 모습이 언뜻 보였는데 임유정이었다.두 사람은 천창을 사이에 두고 복도에 마주 섰다.임유정은 그녀를 보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안시연은 그녀와 마주치기 싫어서 돌아서서 다른 길로 갔다.그녀가 가버리자, 임유정은 돌아서서 룸으로 들어갔다.담배 연기가 자욱한 룸에서 남자 몇 명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고, 연명걸이 상석에 앉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여자가 냉랭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왜? 기분이 안 좋아?”“네.”꽤 예쁘게 생긴 그녀는 화를 내면 도도한 매력이 있었다.연명걸은 그녀의 집안과 예쁜 외모가 마음에 들어 그녀를 추어올리며 참을성 있게 이유를 물었다.옆에서 줄곧 임유정에게 호의를 보였던 이철수도 친절하게 물었다.임유정은 한숨을 쉬며 연명걸을 바라보았다.“정인에서 보낸 감사팀에 안시연이라는 사람이 있죠?”연명걸이 기억을 더듬는 것을 보고, 임유정이 은근히 비꼬며 말했다.“제일 예쁘고, 여우 같은 눈이 특히 매혹적인 여자요.”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연명걸뿐만 아니라 이철수도 즉시 기억해 냈다.“423호실, 흰 치마 입은 여자 말이야?”임유정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역시 그 여우 같은 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남자는 없다.여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연명걸이 무심하게 물었다.“둘 사이에 껄끄러운 일이 있었어?”“껄끄러운 일까지는 아니에요.”임유정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핵심을 콕 집어 말했다.“다만 그
고속도로 입구.연정훈이 뒷좌석에서 쉬고 있고 부승희가 단톡방에서 이승우와 채팅했다.그녀는 이승우를 나무랐다.[하마터면 너 때문에 일을 그르칠 뻔했어.][나쁜 계집애, 너는 양심도 없어? 너만 아니었으면, 오늘 그 자식을 끝까지 감시했을 거야. 답답해 죽게. 그것도 몰라?]부승희는 얼굴이 빨개졌다.“누가 그러래?”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연정훈이 조용히 눈을 떴다.진수빈이 때맞춰 입을 열었다.“대표님, 양주에 도착했어요.”“응.”연정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진수빈이 호텔 위치를 미리 알아봤기에 직접 그쪽으로 향했다.“안시연이 오빠를 보면 무척 좋아할 거야.”부승희의 말에 연정훈은 차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왠지 기대됐다.안시연의 얼굴에서 기쁜 표정을 보지 못한 지 오래됐다.이 시간에 그녀는 자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양주의 장마 날씨도 그리 불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호텔.안시연이 소파에 앉아 알파카 한 마리를 안고 있고, 그녀의 앞에 또 한 마리가 서 있었다.맞은편 침대에는 양혁수가 누워 있다.그녀는 몇 번째 한숨을 쉬는지 모르겠다.“알파카를 데리고 오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요?”“방이 이렇게 큰데, 우리를 숨겨줄 수 없어요?”안시연은 어이가 없었다.“다른 직원과 방을 같이 써요.”“제가 사비로 그분 방을 따로 잡아줄게요.”“차라리 제가 돈을 낼 테니 당신이 알파카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요.”양혁수는 미소를 지었다.“안 가요.”“...”그녀는 이제 겨우 마음 편히 살게 됐는데, 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이 싫다.“혁수 씨, 제발 좀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 저는 당신과 이러고 놀 수 없어요. 감당이 안 된다고요.”양혁수는 옆으로 누워 그녀를 바라보았다.“제가 지난번에 약속을 어겨서 화났어요?”안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진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양혁수가 피식 웃었다.“처음부터 저를 무시했어요?”“아니요, 제가 자신을 정확히 아는 거죠.”“당신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장가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연 안시연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경찰이었다.여러 명 가운데 맨 앞에 선 경찰이 그녀에게 경찰증을 보여주었다.“경찰입니다. 일상적인 검사이니 협조해 주십시오.”안시연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이것은... 성매매를 잡는 것이다.그녀는 방 안의 상황을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 섰다.하지만 경찰은 이미 안으로 들어왔다.연정훈과 양혁수가 거만하게 서 있고, 소파에는 알파카 두 마리가 있었다.중요한 것은, 양혁수가 목욕 가운을 입고 있고 그와 연정훈은 모두 방을 예약한 사람이 아니다.안시연이 설명하려는데, 경찰이 또 서브룸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남자를 찾아냈다.이에 양혁수도 놀랐다. 그가 방에 들어왔을 때 서브룸에 사람이 있는 것을 전혀 몰랐다.“안시연 씨, 이 방은 당신과 장가희 씨가 예약한 거 맞죠?”경찰의 질문에 안시연은 혼란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럼, 이 세 남자는 어떻게 된 겁니까?”안시연은 말을 못 했다.그녀의 첫 반응은 연정훈의 신분이 특수해서 큰일 날 수 있으니 절대 이 일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게다가 양혁수의 옷차림을 보고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기도 힘들다.그녀는 엉겁결에 연정훈 앞에 서며 말했다.“이분은 방을 잘못 찾아 들어왔습니다. 모르는 사람입니다.”경찰은 어리둥절해했다.양혁수는 헛웃음을 지었다.‘좋아. 차별 대우를 하겠다, 이거지?’화가 잔뜩 났던 연정훈은 안시연의 말을 듣고 화가 거의 다 가라앉았다.‘그래도 누구와 가까운 사이이고 누구와 먼 사이인지는 아는군.’하지만 안시연은 곧바로 양혁수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은 제 남자친구인데, 저를 보러 왔고요.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양혁수는 눈이 번쩍 뜨였고, 연정훈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안시연이 왜 그러는지 안다. 평소라면 이성적으로 잘 대처했다고 그녀를 칭찬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전혀 기쁘지 않다.그는 낯선 사람이고 양혁수가 남자친구라고 말하다니.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경찰서에서 안시연의 왼쪽에는 연정훈이, 오른쪽에는 양혁수가 나란히 앉아 골치 아픈 조사서를 쓰고 있었다.양혁수는 거짓말을 술술 뱉었다.“저와 제 여자 친구가 대화 중이었는데 이 낯선 남성분이 문을 두드렸고 문을 열자마자 강제로 집 안으로 들어와 깜짝 놀랐다고요!”“...”경찰이 바보도 아니고 연정훈과 안시연은 내내 서로를 부축하며 걸어온 걸 지켜봤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말은 뻔한 거짓말이었다.“저기요. 경찰서에서 진실만을 말하세요!”양혁수는 진지한 얼굴로 방금 했던 말을 다시 뱉었다.“...”안시연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옆에 앉은 연정훈은 내내 침묵을 지켰다.경찰이 연정훈에게 질문하려고 하자 진수빈이 모두 막아섰다.“잠시만 기다려주세요.”‘기다려?’‘대체 뭘 기다리는 거지?’어리둥절해 보이는 경찰에 안시연이 손을 들고 먼저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저기 만취한 남성과는 어떤 사이입니까?”“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어떻게 안시연 씨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까?”“저는 잘 모릅니다.”“어떻게 저 사람을 발견했습니까?”“제가 발견한 게 아니라 경찰이 먼저 발견하지 않았나요?”“...”양혁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진지한 얼굴의 안시연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듣고 있던 연정훈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안시연이 연정훈을 향해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말 몰라요.”“질문에 하나도 답하지 못하면서 왜 손을 든 거야?”말문이 막혀버린 안시연은 몰래 입을 삐죽였다.이동하는 내내 자신의 옆을 지켜준 고마운 마음에 대신 조사를 받겠다고 한 건데 연정훈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줬다.안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조사가 잠시 중단되고 안색이 어두운 경찰을 보며 안시연은 상황 설명을 다시 이어가려고 했다.그때, 연정훈이 안시연의 손을 잡았다.“아무 말도 하지 마.”안시연이 당황해했다.“네.”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데 다른 한 손이 덥석 안시연을 잡았다.???고개를 돌리자 양혁수가
연정훈의 말 한마디에 양혁수는 가운 차림으로 경찰서에 덩그러니 남겨졌다.양혁수를 남겨두고 떠나려니 안시연은 조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그래서 연정훈에게 말했다.“알파카를 데리고 날 찾아온 것뿐이에요.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요.”연정훈은 양혁수가 미웠으므로 알파카도 귀찮게 느껴졌다.“그 두 마리 알파카 모두 양혁수에게 넘기고 다시 신경 쓰지 마.”“그런데 양혁수가 경찰서에 있으면 나비와 영준이는 어떡해요?”나비.영준.연정훈은 그 이름에 인상을 절로 찌푸렸다,그래서 안시연의 손을 놓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안시연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빼 들고 운전기사가 두 사람을 원래 지내던 호텔로 데려다주길 기대했다.진수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시연 씨, 오해는 풀렸지만 직장 동료들은 아직 진상을 모르지 않나요?”안시연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방금 복도에서 둘러싼 사람들은 대부분 심사팀 직원들이었다.안시연이 떠나고 유언비어는 아마 회사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역시나 대화방은 메시지 상태가 99+가 되어 있었다.장가희가 미친 듯이 메시지를 보내왔다.“시연 씨 대체 무슨 상황이야? 우리 방에 남자 세 명이 나타났다면서? 게다가 경찰이랑 같이 나갔다는 건 또 무슨 일이야?”안시연은 무기력함을 느꼈다.변명조차 하고 싶지 않았으며 대체 어디부터 말을 꺼내면 좋을지도 몰랐다.그때 연정훈이 입을 열었다.“원래 묵던 호텔로 알파카 두 마리 보살피러 가려고?”안시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연정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안시연은 두 손으로 핸드폰을 꽉 쥔 채로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사람을 시켜 알파카를 보살펴 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어린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단 말이에요.”“이 새벽에 누가 갈 수 있겠어? 네 알파카는 소중하고 내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거야?”안시연은 재차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큰 방.연정훈은 안시연이 알파카가 지낼 공간만 잘 정리하면 바로 돌아올 줄 알았다.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안시연은 돌아오지 않았다.인상을 찌푸린 연정훈이 거실로 나갔으나 안시연은 보이지 않았다.“안시연?”이름도 불러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다만 방안에서 알파카의 발굽 소리가 탁탁탁 들려왔다.연정훈은 불길한 마음에 바로 문을 벌컥 열었다.문을 열자 바로 양나비와 시선이 딱 마주쳐버렸다.“...”양나비는 그 자리에서 두 바퀴 턴을 돌았다.탁탁탁.연정훈은 입을 삐죽 내밀고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은 채로 방안을 둘러봤다.“안시연?”재차 이름을 불렀으나 묵묵부답이었다.무언가 눈치챈 연정훈은 바로 작은 방문을 닫아버렸다.작은 방안에서는 여전히 탁탁탁 알파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양나비는 문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쳤다.“...”거실로 나온 그는 드레스 룸 맞은 편에서 또 다른 작은 방을 발견했다.문을 열자 방에는 전등이 켜지 있지 않아 컴컴했다. 그러나 바닥에 비친 노란색 불빛은 욕실 쪽에서 들어온 것이었다.안시연은 샤워 중이었다.연정훈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안시연이 작은 방 두 개가 있다는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그렇다면 안시연은 설마 지금도 냉전 상태라고 생각하는 걸까?오늘 밤도 예전처럼 같은 이불을 덮고 잘 수가 없는 걸까?이러한 생각에 연정훈은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다.결국 연정훈은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왔다.그녀가 싫다고 하면 연정훈은 강제로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다.욕실안의 안시연은 생리 날짜가 다가온 건지 아랫배가 자꾸 아파와 평소보다 좀 더 길게 욕조에 머물렀다.욕조의 물은 세 번이나 바꿨으며 밖으로 나왔을 때 손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어젯밤 일을 다시 곱씹으며 욕실 밖으로 나올 때도 안시연은 조금 멍한 상태였다.그런데 화장대에 앉은 그녀는 거울로 침대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버렸다.자세히 살펴보니... 연정훈이었다.연정훈은 손에 책을 쥔 채로 덤덤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안시연이 갑자기 멈춰 섰고 연정훈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알파카의 발소리는 마치 거실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걱정된 안시연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연정훈을 밀어냈고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너무 급한 나머지 하마터면 연정훈의 손을 밟을 뻔했다.연정훈은 아랫니를 꽉 깨물며 겨우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혔다.안시연은 빠르게 두 알파카를 다시 작은 방에 가뒀다.안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침대 옆에 서서 말했다.“문을 잠그려면 키가 필요해요. 나비는 똑똑해서 스스로 문을 열 수 있는데 제가 키를 찾지 못해서...”연정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알파카에 대한 그 어떤 묘사도 듣고 싶지 않았다.안시연은 연정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불이 꺼진 캄캄한 방에서 안시연은 조금 더 대담하게 움직였다.연정훈은 숨을 참다가 그녀를 순식간에 자신의 아래로 깔아버렸다.안시연은 두 눈을 감았다.급하게 작은 방을 다녀왔던 터라 분위기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연정훈은 굳어버린 그녀의 몸이 느껴졌고 천천히 다시 애무를 시작했다.그렇게 안시연도 달뜬 숨을 내쉬고 연정훈이 거친 숨을 내쉬게 되었다. 연정훈은 안시연의 한쪽 손을 다시 도망가지 못하게 꽉 쥐었다.이제 다시 시작해보려는데...탁탁탁!발소리가 또 들려왔다!“...”안시연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나비가 또 방 밖으로 나온 걸까?안시연은 예전부터 연정훈만큼 집중하지 못했으며 연정훈의 리드에 겨우 따라가는 식이었다. 조금이라도 긴장하면 몸도 따라서 굳었다.연정훈은 안시연의 몸이 조금씩 굳어가는 걸 보며 짜증 섞인 얼굴로 목에 키스했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말했다.“힘 풀어.”안시연은 연정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최대한으로 힘을 풀었다.하지만 곧 생리라 그런지 아랫배도 계속 아파오고 오늘 밤은 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방밖에는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안시연은 또 방 밖으로 나가본다면 연정훈이 기분 나빠할 걸 알았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일을 마치고 나가보면 그만이었다.그래
새벽.안시연은 두 알파카를 재차 작은 방에 가두고 다른 도구로 문손잡이를 고정한 후 방으로 돌아갔다.안방에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연정훈은 가운을 입은 채로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가운이 흩어져 있는 걸 보아 분노를 참고 세수를 하느라 가운이 풀어 헤쳐진 거라 생각되었다.안시연은 문을 닫고 벽에 등을 기댔다.몰래 연정훈의 얼굴을 살펴보니 인상이 최대로 찌푸려져 있었다.안시연은 이를 악물고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대체 양나비는 어떻게 침착하고 정확하게 연정훈의 얼굴을 묘준할 수 있었던 걸까?그 생각에 안시연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연정훈이 차가운 얼굴을 돌렸다.안시연이 빠르게 웃음을 참았으나 한번 터진 웃음을 끊을 수는 없었고 억지로 입을 틀어막았다.연정훈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양혁수의 성을 이어받은 알파카였다. 그런데 그 알파카가 오늘 밤 잠자리를 방해하고 얼굴에 침까지 뱉어버렸다.게다가 안시연은 이 상황을 아주 재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연정훈은 말없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안시연은 위험을 감지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등 뒤가 바로 문이었음에도 안시연은 도망칠 수가 없었다.연정훈은 안시연의 앞으로 다가갔고 안시연은 기회를 보아 옆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긴 팔로 순식간에 그녀를 낚아챘다.안시연은 바로 그의 품에 안겨버렸고 두 다리는 그의 허리를 꼭 껴안았으며 등 뒤로는 문이 닿았다.안시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연정훈이 침을 꿀꺽 넘기며 물었다.“지금 이 상황이 웃겨?”“...”깜짝 놀라버려 다시 웃음이 터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나 연정훈의 물음은 다시 안시연의 웃음 버튼을 눌러버렸다.풉.???안시연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겨우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고 있었으나 덕분에 어깨가 자꾸 들썩였다.“죄, 죄송해요. 참지 못하고 그만!”“...”“나비가 기분이 좋지 않은가 봐요..
양시연은 빠르게 손을 빼냈다.그리고 한 발 멀어지려는데 연정훈이 또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연정훈 씨!”양시연이 손을 앞으로 뻗어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다.“여긴 제 구역이니까 조심해요.”연정훈은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양시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손님맞이로 정신없이 돌아다녔더니 인내심이 떨어진 양시연이 바로 연정훈을 톡 쏘려 했다.그러나 연정훈의 시선은 양시연의 손가락으로 향했다.“손톱은 어쩌다가 부러졌어?”양시연이 멈칫하다가 손을 돌려 확인했다. 그러자 작은 고통이 전해졌고 손톱이 부러진 게 보였다.“실수로 부딪혔나 봐요.”그리고 다시 손을 빼냈다.끊어진 손톱이 연정훈의 손바닥을 스치자 옅은 고통이 느껴졌다.양시연은 손목을 살짝 돌리고 연정훈을 힐끗 쳐다봤다.연정훈이 행여나 변백호에 대해 물을까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 했다.그러나 연정훈은 빠르게 앞길을 막았고 양시연은 경계를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그리고 연정훈은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남자 친구?”“무슨... 문제라도?”“문제는 아니지만 한 번에 여자 친구가 한 명인 경우는 많아도 둘은 좀 색달라서 말이야.”“...”양시연은 모르는 척 넘어가려 했다.그러나 연정훈이 한 걸음 더 다가왔고 양시연은 바로 숨을 멈추고 뒷걸음질했다.연정훈이 양시연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마음이 많이 넓은 편인가 봐? 그런 제자가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걸 보면.”‘날 바보로 아나?’‘그 사람이 무슨 남자 친구? 짜고 쳐서 날 속이려는 거지.’연정훈은 그날 밤 술에 취한 양시연에게 된통 맞은 게 잊혀 지지 않았다.양시연은 꿋꿋이 모르는 척 연기했고 자신이 인정하지 않으면 이기는 판이라 생각했다.“무슨 제자요? 연 대표님 말 가려서 하세요. 그 친구 이제 성인이 되었고 멀쩡한 가문 자식이에요.”연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비꼬았다.“그래. 어느 가문의 딸이겠지.”“네. 그렇고 말고요.”양시연이 고집을 피우는데 연정훈이 갑자기 양시연의 허리를 잡았다
“언제나 환영이에요. 누나랑 시간 의논하고 저한테 알려주세요. 두 분이 오지 않으면 생일 파티는 시작하지 않을 거예요.”“...”반우희가 승주를 슬쩍 밀어내며 말했다.“그만해. 그게 무슨 생일 파티냐? 뭐 라면으로 파티하게?”“누나 왜 그래요.”승주는 섭섭하다는 듯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충분히 준비했다고요.”“너 사이다 겨우 한 병 살 돈밖에 없잖아!”“아니거든요! 두 병 샀거든요!”그러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연정훈은 몰래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양시연을 지켜봤다.그리고 지금 보니 승주라는 아이가 왠지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승주가 가장 관심이 생긴 사람은 바로 노지혜였다. 노지혜는 아이의 눈에 인형처럼 예뻐 보였다.그래서 초대장을 노지혜에게 주려고 하는데 반우희가 막아섰다.“저 사람은 안 돼!”‘부적절한 관계가 있는 사람은 우리 집 출입 금지라고!’승주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반우희를 나무랐다.“초대장은 내가 주지만 참가하고 안 하고는 받은 사람이 결정하는 거잖아요.”그리고 꿋꿋이 초대장을 변백호와 노지혜에게 건넸다.“누나, 매형 꼭 와요.”“...”모든 사람에게 초대장을 돌리고 승주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동준과 희주가 동시에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그럼 있다가 뵙겠습니다.”이승우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저 녀석 이제 큰 인물 되겠어.”볼일을 마치고 승주는 동생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그리고 문 앞까지 걸어가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마른기침했다.“저기, 형 누나들 생일 파티에 선물은 준비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굳이 준비하고 싶다면 너무 값비싼 선물은 사절합니다. 저는 마음만 받으면 돼요.”이어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나섰다.반우희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창피는 반우희의 몫이었다.그러나 양시연은 이 상황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어린 녀석이 뭘 하나 했더니 생일 선물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었다.방금 건넨 초대장을 펼치니 꼬물꼬물 작은 글씨가
반우희는 노지혜와 대화가 통하지 않자 아예 무력으로 처리하려 했다.그러자 노지혜는 아야, 하고 작게 신음을 뱉었으며 잡힌 곳이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변백호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무의식적으로 반우희에게 이렇게 말했다.“잡아당기지 마요.”이에 반우희가 깜짝 놀랐다.잠시 숨을 고른 반우희가 다시 용기를 내어 말을 이어가려는데 부승원이 반우희를 불렀다.“아직도 오지랖 넓은 걸 고치지 못한 거야?”반우희가 반박하려고 하자 부승원이 계속 말을 이었다.“길거리에서 싸우는 두 강아지를 말리다가 하마터면 물릴 뻔했던 건 잊었어?”반우희가 고개를 갸웃했다.‘강아지 싸움?’‘내가 언제?’부승원이 무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양이랑 강아지 싸움에는 끼어드는 게 아니야.”반우희는 그제야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그리고 노지혜를 잔뜩 노려보았다.‘이 강아지!’그러나 노지혜는 반우희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멍멍!’반우희는 어이가 없었다.변백호는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고 부승원에게 한번 당했으니 당연히 되갚아주려 했다.부승원은 평소 말수가 적었지만 입만 열면 공격력이 상승했다.누군가 말리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말다툼할 것이다.양시연은 속으로 변백호를 욕하며 다시 표정을 고쳤다. 그리고 좋아하는 과일을 챙겨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노지혜가 양시연의 자리를 꿰찼지만 양시연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대신 그 맞은편 자리에 앉으려 했는데 그러려면 연정훈의 앞으로 지나가거나 테이블을 빙 둘러 걸어야 했다.양시연은 빙 둘러 돌아가는 걸 택했다.연정훈은 미리 다리를 안으로 접어 양시연이 편하게 지나가도록 했다.양시연이 힐끗 쳐다보자 연정훈은 턱을 살짝 돌려 이곳으로 지나가라는 시늉을 했다.‘흥. 내가 왜.’넓은 홀은 꽤 북적거렸다.이승우는 혼자 이 재밌는 구경을 보다가 왠지 쓸쓸해졌다. 그래서 변백호와 부승원 사이에 끼어들어 몇 마디를 하다가 또다시 연정훈과 양시연 사이에 머리를 빼꼼 내밀고 분위기를 살폈다.양
연정훈의 앞에서 양시연은 어떻게든 연기를 이어가야 했다.그래서 변백호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지금 뭘 하자는 거야!”변백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 잔금 받기는 틀렸네.’변백호를 믿고 따르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양시연이 덥석 변백호의 팔에 팔짱을 꼈다.그러자 느슨해졌던 연정훈의 입꼬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어쭈?’양시연은 그 여자를 향해 말했다.“릴리 씨가 어떻게 여기에?”여자는 여전히 울먹거리며 말했다.“언니, 선생님이 한국 이름 지어줬어요.”“아... 그래요? 이름이 뭔데요?”“노지혜요. 지혜롭다는 그 지혜요.”애교가 철철 흘렀다.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양시연을 향했다.양시연은 미소를 지은 채로 변백호를 꼬집었다.‘지혜롭다? 아주 애정이 넘치네.’고통을 참지 못한 변백호가 빠르게 팔을 빼냈다.“시연 씨가 데리고 오라고 했잖아요. 잊었어요?”양시연은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 없이 미소를 지었다.“아, 깜빡했네요.”양시연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노지혜에게 말했다.“자, 여기로 와서 앉아요. 디저트 먹을래요?”“언니, 감사합니다...”“...”‘말꼬리 늘리지 말라고!’양시연은 잠시 자리를 떠나 디저트 챙기러 갔다.그러자 노지혜는 바로 쪼르르 변백호 앞으로 다가가 양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지었으며 큰 눈으로 뚫어져라 변백호를 바라보았다.“...”변백호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입만 벙긋거렸다.그때 소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변백호의 팔짱을 꼈다.“...”디저트를 챙겨 돌아오던 양시연도 입을 딱 벌렸다.‘젠장!’양시연은 한숨을 내쉬고 디저트를 근처 테이블에 올려두었다.‘먹긴 뭘 먹어!’분위기는 아주 기묘해졌다.양시연은 더 이상 연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변백호처럼 의리 없는 녀석을 믿은 자신을 탓해야 했다.노지혜는 아무 말도 없이 변백호 옆에 찰싹 붙었고 죽어도 떠나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다른 사람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해도 반우희는 아니
연정훈이 말했다.“왜 나한테 그래? 저 사람한테 물어봐.”이승우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다시 양시연에게 물었다.“안 그래요?”‘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양시연은 이승우를 노려보았다.변백호는 자연스럽게 연정훈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모르고. 제가 시연이를 대신해서 연 대표님께 사과드릴게요.”연정훈은 아주 쌀쌀맞게 말했다.“그쪽이 대신 사과를 한다고요?”“네.”이승우가 말했다.“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정훈이는 아내를 잃어버렸는데 그건 어떻게 갚으려고요?”변백호가 대답했다.“아내를 갚아줄 수는 없어도 아이는 노력할 수 있죠. 저랑 시연이가 3년 안으로 아이 둘을 낳으면 연 대표님을 친 아빠처럼 모시라고 할게요. 그러면 어떨까요?”이승우가 웃음을 터뜨렸다.‘오. 꽤 치는데?’이승우가 다시 반격하려는데 연정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요.”변백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난 어떻게든 내 사람 다시 데리고 올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는 못 살아서.”“와우.”이승우는 몰래 부승원을 향해 눈을 깜빡거렸다.‘우리 연 대표님 절대 지지 않아.’그러나 부승원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연정훈은 말만 할 뿐이지. 어떻게 다시 양시연을 찾아오겠어?’양시연은 얼굴이 화끈거렸고 몰래 연정훈을 살폈다.‘그건 댁 마음이고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변백호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소문으로만 듣던 연 대표님답네요.”“하지만...”변백호는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람은 하나뿐인데 먼저 옆을 채간 사람이 임자 아니겠어요?”연정훈이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그건 저도 동의를 합니다.”그러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그때!문이 활짝 열리더니 반우희가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시연 언니, 왜 아직도 안 내려와요?”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이승우는 반우희를 발견하고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우희
“결혼식?”연정훈은 그 단어를 곱씹더니 의미심장한 얼굴로 양시연을 바라보았다.“만난 지 1년 됐는데 벌써 결혼하려고요?”양시연이 아니라고 대답하려는데 변백호가 먼저 한발 빨랐다.“1년이요?”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척하면서 양시연에게 물었다.“우리가 만난 지 1년 되었던가요?”“6개월이요!”“그러니까요.”변백호는 미소를 지은 채로 연정훈과의 대화를 이어갔다.“연 대표님은 나이가 저희보다 많아 보이는데 이미 결혼하신 건가요?”“...”양시연은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상황을 몰래 지켜보던 양지원은 기분이 퍽 좋아져 디저트를 입에 넣었다. 연정훈의 상대로 변백호는 아주 제격이었다.연정훈은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미혼입니다.”“조급하지는 않으세요?”연정훈은 양시연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양시연은 얼굴이 화끈거려 감히 그쪽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변백호는 양시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저는 마음이 너무 급해지더라고요. 하루빨리 우리 시연이랑 결혼하고 싶어서 못 참겠어요.”양지원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나 김세연은 죽상이 되었다.두 사람 사이 튀는 불꽃에 사람들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주시했다.이승우는 구경하러 들렀다가 마침 들리는 대화에 쯧쯧 혀를 찼다.‘우리 정훈이 불쌍하게 됐네.’그러다가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난 건지 이승우는 웨이터를 불러 몰래 말을 전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는 양지원에게 걸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아래 연회장 세팅이 완료되었습니다. 이 회장님을 비롯한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양지원은 그제야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발견하고 사람들과 아래층으로 향했다.그러다가 양지원은 연정훈을 따로 부르며 말했다.“정훈아, 어린 녀석들이 연애하게 내버려둬. 마침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겼다는데 넌 나랑 손 회장님 만나러 가자.”마치 연정훈이 양시연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처럼 들렸다.김세연이 참다못해 한마디 거들었다.“오늘
어머니?양시연은 속으로 변백호의 연기에 박수를 쳤다.변백호는 자신보다도 더 쉽게 엄마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양시연은 몰래 연정훈의 얼굴을 살폈다.‘누가 더 뻔뻔한지 보자는 거지?’‘흐흐.’‘자, 여기 너보다 더 뻔뻔한 사람 등장이야.’연정훈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다.하지만 김세연은 제 아들을 잘 알았다. 연정훈은 ‘강강약약’인 사람으로 사건이 복잡해질수록 더 이성적으로 변했다.변백호는 아예 그들의 앞으로 걸어왔다.양지원은 양시연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시연이는 잠시 저기로 가서 앉아. 우리 백호 여기 앉혀야지.”누군가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역시 사위 아끼는 건 장모라고 벌써 딸은 찬밥 신세네요.”양지원이 더 활짝 미소를 지었다.변백호는 정장 차림이 아닌 편한 캐주얼 복장이었다. 검은색 선글라스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으며 밝고 서글서글한 모습을 보였다.변백호의 등장에 사람들은 수군거렸다.김세연도 몰래 손에 땀을 쥐며 연정훈에게 눈짓했다.‘아들, 큰일이야. 네 경쟁 상대가 많이 잘생긴걸?’“...”외모로 보았을 때 연정훈은 변백호에 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있으면 연정훈은 더 진중하고 짙은 남자의 매력이 흘렀다. 마치 방금 원목 상자처럼 우아한 기풍을 풍겼다.그러나 사모님들은 연정훈을 자주 봐왔고, 하필 변백호는 뉴페이스이자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이다 보니 관심이 그쪽으로 더 쏠렸다.변백호는 가볍게 양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어머니가 저 앉으라는 데 빨리 일어나요.”양시연이 힐끗 노려보았다.젊은 커플의 풋풋한 사랑놀이에 사람들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그러자 연정훈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졌다.김세연은 찻잔을 또 비웠다.그렇게 변백호가 자리를 차지했다.양시연이 다른 자리를 찾아가려는데 변백호가 양시연의 손을 휙 잡아 허리를 감싸더니 의자 손잡이에 앉혔다.“어디 가려고요? 여기 앉으면 되잖아요.”“...”커플 연기이고 뭐고 떠나서 양시연은 얼굴이 붉어졌다.‘지금 뭐 하
양지원의 행동은 연정훈의 선물을 무시하는 의미였다.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의아해했다.‘두 가문 사이가 좋다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딸이 생기더니 두 가문 사이에 금이 간 거야?’김세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정말 자리를 박차고 떠나고 싶었다.살면서 이렇게 창피한 적은 없었다.그러나 연정훈은 여전히 덤덤하게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다시 침착하게 제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오늘 지원 이모는 넘치는 선물을 받으셨을 텐데 제 선물은 시간이 되실 때 확인해 보셔도 괜찮아요.”“역시 우리 정훈이가 날 이렇게 생각해 준다니까.”양지원은 양시연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정훈이 네가 있으면 앞으로 시연이 부부가 경인에서 지내는 게 안심이 될 것 같아.”“...”연정훈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당연하죠.”그리고 고개를 돌려 양시연에게 물었다.“사귄 지는 얼마됐어요?”마치 친척이 아래 사람에게 물어보는 말투였다.양시연은 억지로 미소를 짜내며 말했다.“6개월 좀 넘었어요.”“오늘 이 자리에 오면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그 친구 곧 도착한대.”양지원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아까 연락이 왔는데 연회장 앞까지 왔다고 하더라고.”양시연은 고개를 돌려 양지원을 빤히 바라봤다.‘엄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그러나 양지원은 양시연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엄마만 믿어.’“...”분위기는 살짝 어색하게 흘렀고 참석한 사람들은 꾸역꾸역 대화 주제를 돌려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방금까지 양지원은 연회장으로 가야 한다며 연정훈의 선물을 확인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또 미래 사위를 기다린다며 자리에 편히 앉아 있었다.그때 양시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확인해 보니 연정훈이 보내온 메시지였다.[남자 친구가 좀 늦는 모양인데 재촉하지 그래요?]양시연은 그 내용을 읽고 헛웃음을 터뜨렸다.[그쪽이 무슨 상관이시죠?][나한테 세컨드가 되어달라면서요. 세컨드가 되기 전에 상대가 누군지는 알아야죠.]양시연은 제 눈을 의
“엄마, ‘오빠’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양시연이 몰래 양지원에게 귀띔했다.그러자 양시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온 김에 모자를 한번 제대로 혼내주자고.”“...”김세연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만약 양시연이 연정훈을 오빠라고 부른다면 연정훈이 얼마나 미쳐 날뛸지가 눈에 선했다.‘그건 안되지!’잠시 고민하던 김세연은 체면이고 뭐고 상관없이 양지원을 향해 솔직하게 말했다.“오빠 동생 사이하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마. 그러다가 내가 콱 물고 늘어져 사돈 하자고 매달리는 수가 있어. 네 딸을 내 며느리로 삼을 거라고!”“...”양지원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김세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아들을 생각해서 기죽지 않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유지했다.다른 사모님들도 김세연의 의도를 눈치채고 말을 거들었다.“그래요. 두 가문이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시연이랑 정훈이랑 맺어주면 되겠어요.”양시연은 덤덤한 얼굴이었다.그러자 양지원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아쉽게도 그러기엔 인연이 아닌 것 같네요.”김세연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날 겁주지 마!’‘내 아들이 당장 여기로 오고 있는데 무슨 꿍꿍이야!’“연 대표님, 이쪽입니다.”그때 문밖에서 웨이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어 양지원이 타이밍 좋게 입을 열었다.“우리 시연이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거든요. 곧 날 잡을 것 같아요.”김세연은 김이 빠져 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양지원의 말을 들은 제 아들이 굳은 얼굴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김세연은 다 필요 없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다른 사모님들이 연정훈을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무슨 일로 우리 대표님이 다 걸음하셨을까?”연정훈은 옷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클래식한 턱시도였지만 연정훈에게 알맞게 제작되어 우아하고 타고난 귀족 분위기를 풍겼다.연정훈이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지원 이모 생일인데 제가 와야죠.”그리고 슬쩍 양시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