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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사실 오늘은 나와 신수아의 행복한 날이었어야 했다. 신수아는 나의 부모님을 만나 뵙기로 약속했었다.

사귄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는데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것을 계속 미루고 미뤘다.

신수아는 매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뤘다. 긴장해서 안 된다든지, 일이 바쁘다든지, 몸이 안 좋다든지, 오늘은 좋은 날이 아니라던지 하면서 말이다.

3개월 전에 우리는 결국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었다.

나의 부모님은 아껴두었던 옷까지 꺼내 입고 예약해둔 식당에 와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신수아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연거푸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한참 지나서야 신수아는 내게 문자를 보냈다.

[친구가 교통사고 났대.]

갑작스럽고 어처구니없는 핑계에 나는 신수아가 또 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신수아는 예전에 나에게 부모님이 이혼해서 결혼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 적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이 아파 얼른 품에 끌어안으며 신수아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하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또 여자친구가 나타나지 않은 잘못을 나에게로 돌렸다.

“죄송해요. 제가 시간을 잘못 알려줬나 봐요. 마침 다른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니까 다음에, 다음에 다시 데리고 올게요.”

그렇게 부모님은 더는 나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두 사람은 내가 결혼 압박을 받기 싫어 일부러 없는 여자친구를 있는 것처럼 지어냈다고 생각했다.

“대기업 회사 대표도 밥 먹을 시간 20분은 낼 수 있단다. 그런데 네 여자친구는 뭐라고 나타나지 않는 거지?”

나는 할 말이 없었다.

3개월의 노력 끝에 며칠 전 신수아는 다시 우리 부모님을 만나 뵙겠다고 승낙했다.

나는 미루면 미룰수록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번 주 주말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어제 신수아는 또 나에게 통보식 문자를 보냈다. 절친한 친구가 중요한 일로 도움을 바라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도와줘야 한다고 말이다.

상견례는 그렇게 또 취소되었다.

그때 나의 어머니는 야유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어차피 내일 아무 약속도 없으니까 나랑 같이 친척 집에 가서 밥이나 먹고 오자. 너보다 한 살 어린 사촌 동생이 곧 결혼한다지 뭐니. 너도 가서 진짜 예비 신부는 어떤 것인지 좀 봐.”

확실히 보게 되었다.

다만 나의 예비 신부가 되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옆에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신수아가 말한 도움이 필요한 친구는 전 남자친구였을 뿐 아니라 그 도움은 예비 신부인 척하며 전 남자친구 부모님을 속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 신혼집에서.

나의 부모님과 만남을 거부했던 신수아는 망설임도 없이 예비 신부 신분으로 다른 남자의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나는 오늘 알았다.

불효자식과 다름없는 나는 그저 멍청하게 다른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부모님이 다른 집 자식이 행복한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고 나에 대한 걱정만 더 늘리게 되었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혼자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 오늘 본 것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손을 뻗어 테이블에 있는 몇 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이 사진은 나와 신수아가 행복했던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사진 속 웃고 있는 신수아의 모습은 가식적이기 그지없었다.

현관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이미 새벽이 되었다.

나는 신수아가 돌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현관문을 연 사람은 구준우였고 손에는 내 신혼집 열쇠가 들려있었다.

놀랄 것도 없었다.

어차피 신수아는 내 신혼집마저 구준우에게 주지 않았던가.

이미 집까지 구준우에게 주었는데 열쇠가 손에 있다고 한들 어떠하겠는가.

구준우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형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분명 내 집이었지만 집 안에 있는 나를 본 구준우는 아주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불청객 취급하고 있었다.

말을 마친 구준우는 얼른 술에 잔뜩 취한 신수아를 공주님 안기로 안으면서 성큼성큼 들어왔다.

구준우는 뻔뻔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 나에게 말했다.

“좀 비켜줘요.”

나는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신수아를 보며 참았다.

구준우는 멋대로 나의 방으로 직진하더니 안에서 담요를 꺼내와 신수아에게 덮어준 뒤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 집이 구준우에게 아주 익숙한 듯했다. 이렇듯 익숙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한두 번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쩌면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신수아가 이곳으로 여러 차례 구준우를 불렀을 수도 있다.

구준우는 내 앞에서 신사적인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신수아에게 물을 먹여주었다.

마치 식당에서 신수아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던 사람과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신수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바로 구준우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마치 구준우만 보이는 것처럼 같은 공간에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고마워. 준우 씨.”

“아니야. 감사 인사는 내가 해야지. 괜찮은 거 봤으니까 난 이만 가볼게.”

고작 몇 걸음만 걸으면 되는 거리였지만 신수아는 굳이 배웅하겠다고 하면서 몸을 휘청이며 일어났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 끌어안으며 현관까지 갔다. 고작 현관문까지 배웅하는 것이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먼 길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의 행동을 전부 지켜보았다.

구준우는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다시 돌아왔다.

“아, 내 정신 좀 봐. 형한테 사과한다는 게 깜박하고 있었네.”

“형, 오늘 정말로 미안했어요. 형 신혼집이랑 여자친구를 빌리긴 했는데 혹시 화가 난 건 아니죠?”

구준우는 사과의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안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목소리에도 성의가 없었고 심지어 도발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신수아가 먼저 입을 열며 대신 대답했다.

“화 날 리가 없잖아. 준우 씨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에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그런 거잖아.”

구준우는 웃으며 말했다.

“수아 네가 너무 예뻐진 것 같더라. 그래서 난 네가 나랑 헤어지고 나서 아무도 안 만나는 줄 알았어.”

그가 한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논리도 없었지만 누군가는 껌뻑 넘어갔다.

신수아의 두 볼이 바로 불그스레 해졌다.

구준우는 뻔뻔하고도 대범한 눈빛으로 신수아의 몸을 위아래 훑어보며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바로 뒤에 서 있음에도 말이다.

두 사람은 나를 무시한 채 끊임없이 서로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나의 눈빛이 점점 싸늘하게 변했다.

구준우는 드디어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런 구준우를 불러세웠다.

“기다려. 갈 거면 네 예비 신부랑 함께 내 집에서 꺼져!”

신수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성현 씨, 그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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