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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예비 신부는 친척들과 인사를 나눈 뒤 예약해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려 했다.

나는 원래 대충 핑계를 대고 먼저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런데 윤세아가 몰래 나를 잡고 구석으로 끌어당겼다.

온화한 미소는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원수 보듯 보고 있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난 그냥 친구 부탁으로 예비 신부인 척하는 거야. 부모님을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고 효도하고 싶다기에 내가 부탁을 들어준 거라고. 난 지금 좋은 일을 하는 거니까 끼어들어서 일 망치는 순간 우린 헤어지는 거야.”

분명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그녀였다.

그런데 윤세아는 손쉽게 이별로 나에게 협박하고 있었다. 마치 나와 윤세아의 감정은 호떡 뒤집기 하는 것처럼 쉽게 뒤집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다소 믿기지 않았다.

“이 집은 우리 신혼집이야. 넌 내 여자친구라고.”

윤세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했잖아. 난 지금 친구를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 부모님께 결혼 재촉을 엄청 받아서 숨 막힐 지경이라잖아. 그리고 나도 괜찮다는 데 넌 왜 그래? 그렇게 싫으면 나중에 신혼집 매물로 내놓고 다시 새로 계약하면 되잖아. 어차피 지금 인테리어도 마음에 안 들었어.”

그녀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 그녀에게 집을 공개할 때 여기저기 자랑했었다.

윤세아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집인 것일까. 아니면 나와의 관계인 것일까.

씁쓸한 감정이 쓰디쓴 커피를 마신 것처럼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요즘 자꾸만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이런 나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문자를 확인하며 은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확 고개를 들며 짜증스럽게 한마디 한 후 가버렸다.

“난 먼저 갈게. 차라리 오지 마. 아니면 와도 가만히 있어 줘.”

나는 멍하니 서서 자조적으로 웃었다.

내가 거길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그곳에 가면 아주 행복한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 아닌가.

내가 호텔로 왔을 때 그들은 이미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윤세아는 연장자이신 아주머니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전에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 있었다. 친척들을 상대하는 것이 제일 싫다고. 그런데 오늘 보니 어른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주 능숙해 보였다.

그러니 그 말은 오로지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구준우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이미 술을 몇 잔 마신 것인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고 옆에 앉은 사람에게 허세를 부렸다.

나는 의자를 뒤로 빼며 옆에 앉았다.

“쟤는 대학교 시절부터 나 좋다고 졸졸 따라다녔었어. 내가 아무리 싫다고 꺼지라고 해도 계속 들러붙었지. 나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받아준 거야. 그런데 굳이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지 뭐야. 여자는 정말이지 귀찮은 존재라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분위기를 띄우며 말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으니까 받아 준 거겠지. 꺼지라고 해도 계속 들러붙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오래 널 따라다녔다면서 결국은 결혼까지 골인한 걸 보면 뭔가 있어.”

구준우는 기분 좋은지 헤실 웃으며 남자를 향해 눈썹을 튕겼다.

“역시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당연히 밤일을 잘하니까 그런 거지. 서비스가 아주 죽여. 매번 질리지 않는다니까. 걔가 할 줄 아는 건 이것뿐이거든.”

구준우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척 들었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남자들은 바로 윤세아를 위아래 훑어보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윤세아는 좋아 보이는 우리 쪽 테이블 분위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도 했다.

테이블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윤세아는 알 리가 없었다.

윤세아는 내가 너무도 소중해 손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여자였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음담패설을 들으며 충동을 참기 위해 있는 힘껏 꼬집고 있던 내 허벅지에서 손을 뗐다.

윤세아와 사귀기로 한 그날부터 윤세아는 나의 스킨십을 전부 거절했다.

그녀는 매번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결혼하고 나면 스킨십을 허락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손조차 대지 못했던 사람을 남들은 이미 수십 번 마음껏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술잔을 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윤세아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빛으로 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나는 윤세아의 눈빛을 피하며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니 저도 한 말씀 하겠습니다.”

“비록 오늘 전 준우와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저랑 준우는 비슷한 부분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랑 준우는 취향부터 같은 것 같네요.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 웨딩용품을 샀는데 준우도 아주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 지금 준우한테 주려고 해요. 결혼해서 얼른 금두꺼비 같은 자식 낳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잘 살길 바란다. 준우야!”

그러자 사람들이 전부 박수를 쳤다.

나는 한 마디 더 보탰다.

“참, 걱정하지 마. 절대 중고는 아니고 전부 새것이니까.”

윤세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분노는 사라지고 어느새 자리 잡은 두려움에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나에게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친척들이 윤세아를 향해 술잔을 들이밀며 움직이려던 윤세아를 다시 붙잡았다. 윤세아는 하는 수 없이 웃는 얼굴로 술잔을 받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혼자 먼저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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