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비열하다고 생각하면 나랑 헤어져도 돼. 난 아무 말 안 할 거야. 다만...”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한번 정가혜의 손을 꼭 잡아 자신의 손바닥 안에 넣고 단단히 쥐었다.“난 고등학교 때부터 널 짝사랑해 왔어. 너에 대한 내 마음은 진심이고, 한 번도 변한 적 없어. 이연석 씨 때문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렇게 변하지 않았을 거야...” 그는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또한 자신의 속셈을 밝히고 이연석에 대한 원망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이제 그는 물러서는 듯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제 내 손을 놓을지 말지, 모든 건 네 선택에 달려 있어.”정가혜는 심형진의 맑고 투명한 눈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난...”“네가 이연석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아. 내 손을 놓고 그 사람을 선택한다면 나도 할 말 없어.”이연석을 더 좋아한다...그래, 그녀는 이연석을 잊지 못하면서 심형진과 사귀고 있었다. 이건 심형진에게 공평하지 않았고, 그래서 좋은 선배가 그녀 때문에 이연석을 자극하려고 못된 말을 한 것도 이해할 만했다. 이 모든 게 사실 그녀의 잘못이었다...“선배, 내가 잘못했어요. 그 사람과 깨끗이 정리하지 않고 이러다 보니 선배까지 이런 못된 짓을 하게 만들었네요. 저는...”“이제 내 손을 놓으려고 하는 거지?”심형진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점점 더 쓰라려 보였다. 그는 이미 그녀에게 버림받을 준비를 한 듯했지만,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괜찮아. 넌 이연석 씨랑 행복하게 지내.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그는 말을 마치고 정가혜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살짝 갖다 댄 뒤 아픔을 참으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심형진은 정가혜가 끝내 자신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 것을 보고 눈 밑으로 실망감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잘 지내. 난... 먼저 가볼게.”그가 일어설 때 실수로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혔고, 한 손으로 허벅지를 문지르며 황급히 도망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정가혜는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심형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고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신사적이고 우아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정가혜는 심형진이 이렇게 초라해진 것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선배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몇 가지 계략을 썼다. 방금 전의 물러섬도 포함해서 말이다. 정가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게 이유를 털어놓았다. 이연석이 계속 그녀에게 매달리니까 그렇게 된 것이라고...심형진의 손등에서의 피가 정가혜의 손 위로 떨어졌다. 정가혜는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손을 들어 그의 지혈을 계속했다.“부모님과 만날 날짜 정해놨어요?”정가혜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자 심형진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정했어. 다음 달에 부모님이 귀국하실 거야.”말을 마친 뒤 심형진이 덧붙였다.“걱정 마. 내가 돌아간 다음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할게.”정가혜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이미 정해놨으면 바꾸지 마요.”심형진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나랑 헤어지지 않기로 한 거야?”정가혜도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래요.”그녀는 시작한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형진도 원칙적인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었다. 단지 이연석의 존재를 경계해서 좀 비겁한 짓을 한 것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심형진을 버리는 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심형진은 그녀가 헤어지지 않겠다고 하자 너무 기뻐서 손등의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가혜를 와락 끌어안았다.“오늘 이후로 너랑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어...”그는 턱을 정가혜의 어깨에 기대고 무척 소중히 여기는 듯 진심을 담아 말했다.“가혜야, 날 용서해 줘서 고마워...”정가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선배, 일단 구급차부터 타요.”심형진을 병원으로 데려가 의
화실에서 붓을 잡고 구도를 잡고 있던 서유는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붓과 자를 내려놓고 전화를 들었다.“무슨 생각이 정리됐다는 거야?”“나는 전에 연석 씨한테 화가 나서 선배랑 사귀기로 한 거야. 내가 사심을 품고 있었지만 그는 진심이었어. 이 기간 동안 선배가 날 아주 잘 대해줬어. 이연석이 나타날 때 좀 과한 행동을 하는 것 빼고는 다 좋았어...”서유는 이해했다. 정가혜는 심형진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도 그를 용서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도련님은 어떡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꽤 힘들어하고 있을 텐데.”서유의 말 속에는 정가혜에게 이연석의 감정도 고려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정가혜는 억울함에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온몸을 떨던 이연석의 모습이 떠올라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필사적으로 그 감정을 억눌렀다.“서유아, 내가 전에 선배랑 결혼하기로 약속했을 때 선배가 이미 부모님과 날짜를 정해놨어.”“내가 먼저 선배를 유혹한 거야. 이런 일이 있다고 해서 밀어낼 순 없잖아.”“책임을 져야 해. 선배랑 선배 부모님을 갖고 놀 순 없어. 그러면 양심에 걸릴 거야.”정가혜는 문제의 핵심을 깨달았지만, 지금 그녀가 고려하는 건 이미 개인의 감정이 아니었다.서유도 정가혜 대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잠시 침묵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정가혜에게 조언을 건넸다.“너랑 형진 씨도 그리 오래 사귄 건 아니잖아. 좀 더 만나보고 결혼을 고려하는 게 어때?”심형진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저... 정가혜가 심형진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였다.물론 정가혜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낫다고 했다.그렇게 하면 설령 결국 상처를 받거나 배신당하더라도 깔끔하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사랑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으니까.정가혜의 이런 결혼관도 틀린 건 아니었다.다만 친구로서 서유는 정가혜가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녀 자신처럼, 초반에는
정가혜는 신호등을 기다리다 길가의 상점을 보고 이연석이 귤맛 젤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던 걸 떠올렸다.그때 정가혜는 그의 품에 안겨 왜 이런 여자애들이나 좋아할 법한 걸 좋아하냐고 물었었다.그는 정가혜가 그를 치어 골절상을 입힌 그날 밤, 이 젤리 덕분에 고통을 견뎌냈다고 했다. 먹을 때마다 그녀가 생각난다고.정가혜는 상점을 응시하다 잠시 망설이다 차를 세우고 들어가 한참을 찾아 귤맛 젤리를 겨우 찾아냈다.그녀는 젤리를 아주 많이 사서 들고 병원에 가서 익숙한 길을 따라 이연석의 병실로 들어갔다...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이연석의 친구들이었고, 떠들썩하게 이연석을 웃게 하려 애쓰고 있었다.하지만 병상의 사람은 계속 별 반응이 없다가 인파 사이로 그녀를 보고서야 표정이 살짝 변했다.단이수가 그녀가 온 걸 보고 재빨리 핑계를 대고 친구들을 데리고 나갔다.그들이 나가자 병실엔 정가혜와 이연석만 남았다.이연석은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곧바로 눈을 감았다.정가혜는 그를 한 번 쳐다본 뒤 다가가 아까 단이수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이연석 씨, 당신이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안심해요. 이번 일 이후로 다시 오지 않을 거예요.”이불 속의 손이 살짝 꽉 쥐어졌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풀어졌다.“무슨 일로 왔어요?”그가 차분히 입을 열자 정가혜의 눈에 미안한 기색이 스쳤다.“선배가 당신을 모함한 일, 알게 됐어요. 미안해요, 당신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해서.”정가혜의 이 뒤늦은 사과에 이연석의 코끝이 시큰거렸다.속으로는 억울해 죽겠는데 괜찮은 척 꾹 참고 있었다.이 이틀을 그렇게 버텨왔는데, 누가 알겠는가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하지만 정가혜의 한마디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해서'에 그의 마음속 괴로움이 많이 사라졌다.“이제 심형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요?”그가 정가혜를 노려보았다. 마음속 억울함이 전부 원망 어린 눈빛에 담겼다.정가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더 말하지 않은 채 손에 든 젤리를 이
이연석의 점점 붉어지는 눈을 바라보며 정가혜는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을 꽉 쥐었다.“선배는 원칙적인 잘못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헤어질 이유가 없죠. 하지만 당신의 결백도 밝혀야 해서 사과하러 온 거예요.”이연석은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꼈다. 사탕 하나로 그의 마음이 풀렸다. 채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를 용서했는데, 정가혜가 그에게 가져다준 건 이런 거였다니?!“원칙적인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헤어지지 않는다고? 설마 심형진이 당신 전남편처럼 바람을 피워야 헤어질 거예요?”“그렇다면 정가혜 씨, 당신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예요. 결국 버림받게 될 텐데, 그건 당신이 자초한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이연석의 말은 매우 듣기 거북했다.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정가혜의 마음을 때리자 그녀의 눈빛에서 색채가 빠져나갔다.“설령 결국 버림받게 된다 해도 그건 내 일이에요. 당신과는 상관없어요...”이연석은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나랑 상관없다고? 좋아요, 그럼 심형진한테나 가봐요. 여기 앉아서 뭐 하는 거예요?!”온몸에 가시가 돋친 이연석을 바라보며 정가혜는 다시 한번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여기 앉아 있는 건 당신에게 우리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하려고예요. 선배가 신경 쓰면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르니까요. 당신을 위해서 오늘 만난 후엔 서로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게 좋겠어요...”“흥, 나를 위해서라고...”정가혜에게 극도로 실망한 이연석은 냉소를 멈출 수 없었다.“난 어제 이미 당신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완전히 끊고 싶다는 뜻을 충분히 분명히 했는데, 굳이 여기 와서 또 말할 필요 없어요!”말을 마치고 이연석은 다시 강제로 손을 들어 젤리 봉지들을 집어 정가혜에게 던졌다.“사탕 가져가요. 돌아가서 당신 선배한테나 먹여요. 난 필요 없으니까!”온몸에 사탕을 맞은 정가혜는 이연석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예전에 사귈 때처럼, 그가 짜증을 내면 그녀는 조용히 몸을 숙여 그가 바닥에 던진 사탕을
그녀는 손을 들어 이연석의 등을 살짝 토닥였다. 마치 예전에 그가 위로를 구할 때 그녀가 참을성 있게 달래주던 것처럼 말이다. “연석 씨, 잘 지내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껴안아도 이연석은 그녀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두려워하며 팔에 힘을 주어 정가혜를 꽉 껴안았다. “당신이 오늘도 돌아오지 않으면 난 당신을 미워할 거야...” 그는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를 미워한다 해도 어디까지 미워할 수 있겠는가?정가혜는 그의 등을 따라 쓰다듬더니 뒤통수의 짙은 머리카락을 만졌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요...” 그녀를 꽉 붙잡으면 그녀가 떠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국 그녀는 떠나려 하고 있다.이연석은 천천히 정가혜를 놓았다. 그의 눈에는 사랑했지만 얻지 못한 후의 피곤함이 서려 있었다. “확실히 결심한 거예요?” 몸을 일으킨 정가혜는 병상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원래 단호한 편이었다. 무언가를 결심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이연석은 그런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결연한 정가혜를 바라보며 이연석의 지친 눈에 점점 붉은 기가 돌았다... “그럼 가요.” 그는 병상에 쓰러지듯 누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창백하지만 여전히 수려한 옆모습을 응시하며, 정가혜는 마음속으로 5년간의 흐릿하고 험난했던 감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연석 씨, 안녕.”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 후, 이연석은 붉게 물든 눈동자를 돌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갑자기 주먹을 꽉 쥐었다.“오늘 이 문을 나가면 우리는 영원히 가능성이 없어질 거예요!” 이것은 그가 주는 마지막 기회이자 최후통첩이었다. 이걸 놓치면 끝이다.정가혜의 발걸음은 한참 동안 멈췄다가 결국 발을 떼어 병실을 빠르게 뛰쳐나갔다. “정가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연석은 몸을 일으켜 그녀를 쫓으려 했지만, 척추 때문에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정가혜...” 그는
이에 좀 익숙하지 않은 이승하는 아내의 당부를 떠올리고 얇은 입술을 살짝 열어 담담히 입을 열었다.“연석아, 그냥 잠시 만나게 놔두면 어때? 뭐가 달라지겠어?”“...”눈앞의 사람이 자기 둘째 형이 아니었다면 이연석은 벌써 욕설을 퍼부었을 거야.“형, 위로를 못 하겠으면 그냥 조용히 나랑 좀 앉아 있어 줘.”이승하는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하더니 좋은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 듯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이승하는 또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한동안 만나다 보면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헤어질 거야.”“...”“그때 가서 네가 정가혜 씨를 다시 찾아가는 게 지금 붙잡고 있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거야.”“...”“형, 제발 그만해...”이승하가 한 말은 확실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사실이었다.그는 사정을 알고 나서 언젠가는 심형진이 정가혜가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거라고 생각했다.결국 사람의 품성은 뼛속까지 박혀 있어서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법이니까. 이연석이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이승하는 병상 옆 탁자에 놓인 젤리를 보고 하나를 꺼내 이연석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어떤 것들은 네가 잡으려 할수록 더 잡기 힘들어져. 차라리 놓아주면 저절로 돌아올 거야.”이연석은 눈을 내리깔고 그 주황색 젤리를 바라보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형, 내가 그 사람이랑 헤어진 후 계속 화해하길 바랐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이연석은 손안의 젤리를 꽉 쥐며 점점 차분해지는 표정을 지었다.“정가혜는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 거야.”이승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턱을 괴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이연석은 젤리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이승하에게 물었다.“형,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이승하는 눈을 살짝 깜빡이며 세상을 꿰뚫어 보는 듯한 맑은 눈빛으로 대답했다.“잘못했지.”이연석
여러 겹의 붕대로 손등을 감은 심형진이 원장실 문을 열자 검은 정장 차림의 이승하가 보였다.그 남자는 책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키가 크고 곧은 체격에 두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살짝 기울어진 옆모습은 마치 조각상처럼 완벽한 비율이었다.흠 없이 아름다운 용모, 깊고 입체적인 이목구비, 그림 같은 얼굴... 이 모든 게 한 얼굴에 존재하는 걸 보면 신의 총애를 받은 사람 같았다.게다가 이런 사람이 몸가짐 하나하나에서 고귀하고 우아한 기품을 풍기니, 그 기품은 이연석과 마찬가지로 타고난 것 같았다.심형진은 이승하를 보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이연석 앞에서 열등감을 느꼈다면, 이승하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을.“왜 당신을 불렀는지 알아요?”차가운 목소리, 냉담한 기운, 압도적인 압박감이 심형진을 숨 막히게 했다.그는 고개를 들어 이승하와 눈을 마주쳤는데, 별처럼 광활한 그 눈에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알고 있습니다.”심형진은 그 남자의 차가운 시선 아래에서 압박감을 견디며 주먹을 꽉 쥐고 걸음을 옮겨 이승하 앞으로 갔다.“대표님이 저를 부르신 건 이연석 씨를 위해 복수하려는 건가요?”이승하의 길고 짙은 속눈썹 아래의 시선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듯한 기세가 있었다.“복수라고 하기엔 그렇고, 그저 심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어서요. 연석이를 모함한 이 일을 어떻게 정산할 건가요?”이승하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날카로운 눈빛은 강렬한 공격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렇게 통찰력 있는 눈과 오래 마주칠 수 없어서 심형진은 몇 초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했다.“이 정도 작은 일에도 대표님이 직접 나서셔야 하나요?”심형진은 속으로는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그는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정가혜의 남자 친구라서 이연석에게 어떻게 해도 이승하가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그가 서유의 체면을 봐서 정가혜에게도 약간의 체면을 주고, 그래서 자신에게 관대할 거라고 생각해 감히 말로 도발했다.이승하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