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승하의 모습에 소수빈은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이승하는 항상 감정 조절에 능한 사람이었지만 서유 때문에 이미 여러 번 통제력을 잃은 적이 있었다.“대표님...”소수빈은 이승하가 이미 서유와 헤어졌으니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이런 말을 내뱉자니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고 이승하에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유는 이승하의 첫 번째 여자였다. 침대에서 오랫동안 괴롭혔으니 아마 어느 정도 정이 들었을 테고, 쉽게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이승하는 말을 잇지 못하는 소수빈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썼다.그는 눈에 가득 찬 한기를 거두고 자료를 다시 소수빈에게 던졌다.“분쇄기로 갈아 버려.”차가운 목소리,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그의 모습은 마치 무정한 이승하로 돌아간 듯했다.소수빈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상 위의 자료를 들어 분쇄기에 넣었다.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고, 소수빈은 이승하의 동의를 받고서야 돌아서 문을 열었다.“대표님.”심사위원장 여진우가 들어왔다.“입찰 끝났습니다. 심사위원들 만장일치로 화진 그룹에게 투표했습니다.”여진우는 깍듯하게 인사한 후, 입찰 결과를 보고했다.“화진 그룹?”이승하는 차갑게 웃더니 안색이 좀 굳어졌다.여진우는 이승하가 화진 그룹에 대해 의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서둘러 말했다.“투표 결과는 아직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표님께 개발권을 어느 그룹에 넘길 것인지 물어보려고 찾아왔습니다.”“다른 그룹의 입찰서는요?”“여기 있습니다.”여진우는 손에 든 입찰서를 재빨리 이승하에게 넘겨주었다.이승하는 오후에 현장에 없었으니 다른 그룹의 입찰 정황을 몰랐다.그가 업무를 보고하러 왔으니, 당연히 오후에 진행된 다른 그룹의 입찰 서류를 챙겨왔다.이승하는 파일을 대충 뒤적거리더니 견적서와 다양한 매개 변수를 확인했다.불과 몇 분 만에 이 회사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너...”연지유는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당장 안으로 뛰쳐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막 실험실에서 나온 이연석이 그녀가 경비원과 다투는 것을 보고 서둘러 다가갔다.“무슨 일이죠?”이연석을 본 연지유는 얼굴빛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녀는 성질을 거두고 경비원을 가리키며 고자질했다.“연석 오빠, 내가 승하 보러 들어가겠다는데 이 경비가 날 막잖아요!”경비원은 그녀가 이연석을 아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녀가 방금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었다.‘이 여자, 진짜 대표님 약혼녀라고? 그럼 나 이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에게 밉보인 거야?’경비원이 이연석을 쳐다보니, 그는 자신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경비원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난 끝장이다. 고임금 일자리를 잃게 생겼어!’“천아, 아주 잘했어. 연말에 보너스 두둑이 챙겨줄게!”경비원은 어리둥절했다.갑자기 하늘에서 떡이 떨어질 줄이야!“연석 오빠, 대체 왜...”연지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연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끊었다.“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 건 우리 형의 지시를 따랐기 때문이야.”“우리 직원을 배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고함을 지르다니,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방금 연지유가 성질을 부리는 모습을 본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이연석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태생적으로 거만한 그녀는 말단 직원을 무시하면서, 항상 온화하고 너그러운 척했다.이연석은 진작 그녀에게 불만이 있었다. 이승하가 아니었다면 그는 연지유와 말도 섞지 않았을 것이다.“연석 오빠, 왜 굳이 나랑 맞서려고 그래요?”이연석이 자신을 도우러 올 줄 알았는데 결과는 팔이 밖으로 굽었다.원래 화가 잔뜩 났던 연지유는 이승하에게 경비원 앞에서 무례했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너랑 맞서려고 한 거 아니야. 그저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했을 뿐이야. 만약 이의가 있다면 승하 형 찾아가서 일러바쳐!”“이연석!”연지유는 고함을 지르며 손에 든 가방을 이연석을 향해 내리쳤다
입찰 결과에 대해 김시후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그는 계약서에 사인한 후, 바로 회의장을 떠나 휴게실로 돌아갔다.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직 깨어나지 않은 서유를 보고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김시후가 다가가 서유를 가볍게 밀었지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연속 몇 번이나 불렀지만 서유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전에는 자는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보니 뭔가 이상했다.이건 자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김시후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소준섭에게 전화를 걸었다.“준섭아,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원래 잠이 많아?”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던 소준섭은 어리둥절하더니 한참 후에야 그가 묻고 있는 것이 누군지 생각났다.“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잠이 많기는 하지...”“한 번 자면 잘 못 깨어나고 그래?”보통 심장병은 그렇지 않지만 심부전이라면 가능했다.소준섭은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심장병을 앓고 있는 서유가 김시후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아마 피곤해서 깊이 잠든 걸 거야. 큰 문제는 아니니까 이따 깨어나면 괜찮아질 거야.”소준섭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여전히 숨기는 것을 선택했다. 환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의덕이었다.소준섭의 말을 들은 김시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최근 자신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랴, 또 입찰에 참여하랴 아마 피곤할 것이다.김시후는 전화를 끊고 소파에 누워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가기 전에 분명 그녀에게 외투를 벗어 준 것 같은데 왜 사라졌을까?김시후는 좌우를 둘러보고 나서야 그 양복 외투가 쓰레기통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금방 펴진 그의 미간이 다시 틀어졌다.‘내가 이렇게 싫을까? 내 외투를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로 싫은 걸까?’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상실감이 지금 이 순간 점점 커져 그를 매우 괴롭게 만들었다.“대표님.”문밖에서 소 이사가 들어왔다.“JS 그룹에서 빨리 떠나라고 재촉해서 지금 나가야 합니다.”연구개발을 하
“뭐라고요?”이연석은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야 그가 묻는 것이 김시후와 서유라는 것을 깨달았다.“설마요. 김씨 가문이 어떻게 서유 씨 같은 신분을 집안에 들이겠어요?”“그럴까?”이승하는 덤덤하게 되물었고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이자 연인이었다.기억 상실로 인해 서로 5년이라는 시간을 놓쳤지만, 지금 재회했으니 반드시 관계를 회복할 것이다.두 사람의 과거를 알기 전에는 김승하가 서유를 위해 집안과 맞서지 않으리라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기억을 되찾은 김시후가 그녀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아주 많이 사랑했으니까.“승하 형, 왜 그래요?”그의 상실감을 감지한 이연석이 걱정스레 물었다.‘승화 형 마음속에 서유 씨가 있는 걸까? 아니면 왜 이렇게 서유 씨 일에 관심이 많을까?’“별것 아니야.”그 롤스로이스가 단지를 빠져나가는 것을 본 이승하는 시선을 돌려 이연석을 보았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이승하가 다시 냉담한 모습을 되찾자 이연석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인공지능 7호가 이미 완성되었어요. 다음 달이면 출시할 수 있어요. 사람을 더 보내서 테스트해 볼래요?”“필요 없어.”이연석은 수년간 컴퓨터를 연구하여 인공지능 분야에서 수많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승하도 그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출시하고 나서 데이터나 즉각 보내.”이승하는 JS 그룹 전체를 통제하며 결코 과정은 중시하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 원했다.이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회사 일을 보고하고 나서야 이연석은 연지유의 이야기를 꺼냈다.“형, 방금 지유가 아래층에서 경비원과 말다툼 하는 거 봤어요?”이승하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이연석은 참지 못하고 투덜댔다.“경비원과 싸웠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형 약혼녀라고 주장했어요. 약혼도 안 했으면서 어디...”“내일 연씨 집안에 가서 혼담을 꺼낼 거야.”이연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승하의 말
롤스로이스 한대가 행운 빌라 입구에 멈춰 섰다. 뒷좌석에서 잠들었던 서유가 아직도 자고 있었다.운전기사가 김시후에게 물었다.“김 대표님, 아가씨를 깨울까요?”그는 고개를 돌려 달콤하게 자고 있는 서유를 보았다. 차마 그녀를 깨울 수 없었다.“차는 제게 맡기고 먼저 돌아가세요.”운전기사는 김지후에게 열쇠를 맡기고 차에서 내렸다.김지후는 서유가 몇 번지, 몇 호실에 살고 있는지 몰랐고 그녀가 언제 깨어날지는 더욱 몰랐다. 몇 분 동안 망설이다가 그는 시동을 걸고 서유를 자신의 개인 별장으로 데려갔다. 이 별장은 김지후의 소유였다. 그가 서울로 왔을 때 원래는 이곳에서 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연지유가 굳이 서유에게 호텔을 마련해 주겠다고 해서 별장에 온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김지후는 차를 세운 후 서유를 안고 별장으로 들어갔다.“도련님, 오셨습니까?”별장을 지키던 이혜선이 급히 마중 나왔다.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깨끗한 잠옷을 준비해주세요.”이혜선은 김지후의 품에 안긴 여자를 보았지만 더 묻지 못했다. 그녀는 “네”라고 대답하고 잠옷을 준비하러 갔다.서유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의 날카롭던 표정이 사그라들었다.손을 들어 서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던 김지후의 눈에는 그조차도 모르는 자상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침대 옆에 앉아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고 나서야 이혜선을 불러서 잠옷을 갈아입히라고 했다.김지후는 욕실에 가서 샤워를 한 뒤 서유가 곤히 잠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러 갔다. 몸을 뒤척였지만 깨지 않고 잘 자는 것을 보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주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김지후는 잠결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돼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서유가 무사한 것을 보고 그는 가볍게 문을 닫고 안방으로 돌아갔다.서유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하루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녀는 낯선 방을 보고 멍해졌다.'어제 소파에 쓰러져 펑펑 울다가 숨이 차서 그대로 졸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감사해요."김시후는 그녀가 자신을 남처럼 대하는 것이 좀 불편했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유가 고개를 들어 그에게 물었다."김 대표님, 입찰 결과는 어때요?"그녀는 어제 오후에 현장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 결과를 몰랐다."화진 그룹이 입찰에 성공했어요."서유는 이 결과를 듣고 조금 놀랐다.'이 대표님이 동아 그룹에게 개발권을 주지 않았다고? 연지유 씨가 첫사랑인 게 아니었어?'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고는 담담한 말투로 김시후에게 말했다."축하드립니다."그는 서유가 자기를 이렇게 공손하게 대하고 자신과의 선을 지키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윽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말하지 않았다.김시후는 마음속의 이질감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배고프지 않으세요?"서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옷이 바뀐 것을 발견하고 의심스럽고 충격적인 눈빛으로 김시후를 쳐다보았다."도우미 아주머니가 바꿔 입힌 겁니다."서유의 이상한 시선을 느낀 그는 얼른 입을 열어 설명했다.도우미가 바꿔 입혔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유는 다소 어색한 듯 김시후를 바라보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그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오해할 수도 있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이 말을 들은 그녀는 어떻게 말을 이어나갈지 몰랐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리 때문에 갈 수 없었다. 서유에게 데려다 달라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김시후가 이혜선을 불렀다."아주머니."40~50대쯤 되는 중년 부인이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통통한 몸매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나지 않는 상냥한 분이셨다.이혜선은 식탁 위에 접시를 올려놓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도련님의 입맛에 맞게 아침을 준비했는데 먼저 배를 채워 두세요. 점심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드
차가운 표정을 하고있는 서유를 바라보던 김시후는 문득 그녀가 고슴도치 같다고 생각했다.조금만 다가가도 온몸으로 찔러서 다시는 한 발짝도 못 다가가게 하는 고슴도치 말이다.“비위를 맞출 필요 없어요. 몸만 괜찮으면 됩니다.”서유는 이미 김시후와 크게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그녀가 멍하니 김시후를 쳐다보자 그는 오히려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담담하고 깨끗한 웃음이었다.방금은 정말 그녀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서 몇 마디 물어본 것 같았다.김시후는 몸을 돌려 테이블 위의 접시를 서유에게 건네면서 말했다.“먼저 뭐 좀 드세요.”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서유 씨?”김시후가 그녀를 부르자 서유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은 눈물을 머금고 있었는데 비치는 표정은 오히려 매우 담담했다. 그런 눈빛을 본 김시후는 갑자기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그녀에게 미안한 일을 한 사람처럼 극도로 긴장했다.김시후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서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몸만 괜찮으면 된다면서 왜 5년 전에 저를 그렇게 대했어요?”그녀는 과거의 얘기를 다시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방금 김시후가 한 말이 그녀의 마음을 울려버렸다. 서유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그때는 내 목숨을 원했으면서 지금은 왜 몸만 괜찮으면 된다고 하는 거지? 이렇게 모순된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김시후는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5년 전, 그는 기억을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과 일이 매우 낯설었다. 마침 그때, 서유가 매일 찾아와 해명해댔기에 김시후는 매우 짜증이 났다. 게다가 그녀에 관해서 찾아낸 정보들을 본 그는 서유에게 꿍꿍이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경비원에게 명령하여 당시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그녀를 내쫓았다.이것은 김시후가 서유에게 한 가장 잔인한 짓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아직도
아침을 먹은 후, 서유는 조금 힘겹게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녀는 어제 입찰에 참여했기 때문에 정장 윗옷과 헐렁한 바지를 입었다. 정장이 마침 그녀의 부은 다리를 가려주었다.그녀가 옷을 다 갈아입자 김시후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서유는 내려가는 것을 부축해달라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김시후는 그 생각을 간파하기라도 한 듯 다가와서 이불을 들추고 그녀를 가로 안았다.서유는 어리둥절했지만 김시후는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혼자서 걸을 수 있다면 저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겠죠.”이 한마디가 서유의 정곡을 찔러 마음이 불편해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품에 안긴 여인은 너무나도 가벼워서 얼굴에 아픈 기색이 역력하여 매우 허약해 보였다.바람이 한 줄기 불기만 하면 그녀의 가냘픈 몸을 쓰러뜨릴 것만 같았다.이런 서유를 보고 김시후는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서유야.”별장을 나온 후, 그는 그녀를 가볍게 불렀다.서유는 그를 올려다보면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기다렸다.김시후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숙였다.“미안해, 널 잊어버렸어. 날 너무 원망하지 마.”이 말을 할 때 그의 눈동자는 흠 잡을 데 없이 깨끗하고 맑았다.서유는 의심스러워서 김시후가 연기하고 있는지 보려고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모든 표정과 행동이 진심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진짜 기억상실증이야?”“기억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생각을 하기만 하면 머리가 아파.”특히 서유를 생각하면 머리가 더 아파졌는데 그가 그녀와 관련된 일을 기억시키는 것을 뇌가 막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를 볼 때마다 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괴로워지는지 몰랐다. 막 기억을 잃었을 때는 이런 감정이 없었는데 말이다.하지만 이번 만남에서 이런 애매모호한 정서는 더욱 짙어졌다.서유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가짜 같지 않았다.그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하지 못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