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육성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 가는데?”이승하가 운전기사를 향해 턱을 치켜들자 운전기사는 이내 차 문을 잠갔고 곧이어 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주혁은 쫓고 싶어도 따라갈 수가 없게 되자 차 번호판을 외워 육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연락해서 얼른 육성재를 찾으라고 당부했다. 그러고는 때를 노리고 납치범으로 위장한 뒤 마대 두 개를 들고 사람들을 함께 카페로 돌진했다.서유를 잡아가서 도련님과 맞바꿔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서유와 김선우를 쉽게 납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승하가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 이곳에 둘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소지섭은 S 조직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팀원이었고 택이조차도 그한테는 상대가 안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주혁이 데리고 온 절반의 경호원들이 소지섭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경호원들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소지섭과 겨루어 보려던 남주혁은 겁이 덜컥 났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속전속결해야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미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에 경찰들이 오면 그들은 잡혀갈지도 모른다.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주혁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뻔뻔스럽게 다른 경호원들을 불러 함께 소지섭을 상대했다.“억지로 싸우지 말고 그냥 바닥에 눌러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전략을 바꾼 후 경호원들은 소지섭에게 매를 맞으면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중 한 경호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에게 돌진하더니 마치 문어처럼 그의 등에 뛰어올라 그의 목덜미를 한사코 껴안고는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절대 손을 놓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고 다른 경호원들도 하나같이 소지섭의 몸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소지섭은 바닥에 깔리고 말았다. 아무리 힘이 세도 십여 명의 사람들이 누르고 있으니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방금 그에게 맞고 쓰러진 사람들도 다리를 쩔뚝거리며 다가와 그 위로 몸을 쌓았고 소지섭
이번 일을 김선우와 육성재가 함께 꾸민 줄 알았다. 하지만 방금 실실거리며 동영상을 촬영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납치범에게 잡힐 뻔한 그 모습을 보니 김선우와 육성재는 한 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안심하고 김선우에게 물었다.“어떻게 나가는지 알아요?”그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거렸다.“따라와요.”뒤를 돌아 배전함 쪽으로 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테이블을 지나가던 길에 그가 양식용 칼을 집어 들고는 다른 사람의 와인을 한 잔 집어 들었다. 느긋하게 배전함 자리로 가서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술잔을 내동댕이쳤다.술잔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페 전체의 불빛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손목을 잡아당겼고 머리 위에서 맑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 날 따라와요.”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익숙하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캄캄한 복도를 지나 이리저리 굽이 돌아 뒤에 있는 주방 쪽을 통과해 카페를 빠져나왔다.도로 위에는 오토바이가 한 대 세워져 있었고 오토바이를 탄 그가 헬멧을 벗겨 그녀에게 건네주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올라와요.”오토바이를 보자마자 지난번 김선우와 이승하의 대결이 생각나서 그녀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나 혼자 돌아갈게요.”장난하나. 지난번에 그의 뒤에 앉았다가 혼이 쏙 빠졌었다. 두번 다시는 타고 싶지 않았다. 그 말에 헬멧을 쓰고 있던 그가 흠칫했다.“급한 일이 있어서 정가혜 씨한테 가야 한다면서요. 집으로 돌아가려고요?”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심혜진이 강제로 연이를 데리고 갈까 봐 걱정돼서요. 아무래도 가보는 게 좋겠어요.”그가 반신반의한 얼굴을 한 채 뒷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오토바이 타고 가면 되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카페 쪽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경찰들이 오면 누나네 경호원들도 경찰서로 가서 진술해야 할 거예
눈을 내리깔고 목에 닿은 날카로운 칼을 보던 그가 피식 웃었다.“알고 싶어?”이승하가 자신을 어찌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하듯 그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안 알려줄 거야.”손에 칼을 쥔 남자는 자신을 향해 눈썹을 치켜세우는 그의 모습에 아무런 감정도 없던 눈 밑이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마음대로 해.”손에 든 칼은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가슴 쪽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 후 칼끝이 정확하게 심장 위치를 겨누었다.“하지만 당신 심장은 무사하지 못할 거야.”육성재는 잘 알고 있었다. 이승하가 그에게 손을 댄다면 어떤 피바람이 불어올 것인지. 그래서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당신의 후대들이 김씨 가문의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봐.”그가 누구인가? 육씨 가문의 권력자이다. 이승하가 그를 죽인다면 육씨 가문도 김씨 가문처럼 이씨 가문과 원수가 될 것이다.아무리 이승하가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후대들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으니까.그는 이승하가 후대들을 배려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승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칼자루를 움켜쥐고 단칼에 찔러버렸다.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불과 몇 초 만에 육성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당신...”이승하는 칼을 뽑아 들고 칼로 그의 입술을 막았다.“그동안 당신이 왜 나한테 안 되는 줄 알아?”그가 손을 뻗어 가슴에서 콸콸 쏟아지는 피를 가린 채 아픔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내가 독하지 못해서.”이승하는 물티슈를 한 장 뽑아 침착하게 피로 물든 칼을 닦으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독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보다는 독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어렸을 때부터 강중헌은 그에게 미래의 권력자로서 S 조직의 리더로서 누구보다도 잔인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 사람은 분명 그 자신일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이승하는 그 말을 새겨들었고 원수를 대할 때
입안에 가득 찬 피비린내를 참으며 그가 이를 악물고 이승하를 반박했다.“서유의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를 핍박하여 약혼을 한 것이었어.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했던 사람은 줄곧 우리 어머니였고 한 번도 작은이모와 결혼할 생각이 없으셨어.” 육성재의 부모는 도덕적인 혼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모든 일을 김영주에게 뒤집어씌웠다. 정말 좋은 수단이다. 어쩐지 아들이 이렇게 순진무구하더라니...이승하는 그런 육성재와 실랑이를 벌이기 귀찮았다.“김씨 가문의 비밀은 당신이 직접 알아봐.”그의 부모님이 그를 속이고 있다는 뜻인가?그럴 리가 없는데. 그의 부모님은 그를 지극히 잘 대해주셨고 절대 그를 속일 리가 없었다. 근데 이승하는 어머니가 여동생의 약혼자를 빼앗아 갔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육성재가 의심에 빠졌을 때 이승하는 그의 가슴을 흘끗 쳐다보았다. “20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그 사이에 당신 어머니가 서유를 찾는 이유를 나에게 말해 준다면. 어쩌면 내가 당신을 구해줄지도...”심장을 찌르지는 않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다. 이승하와의 싸움에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봤었는지 얼마나 다쳤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분명 곰곰히 생각해 볼 것이다. 정신을 차린 그는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이승하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고 타협하는 것을 선택했다.“이렇게 해. 서유를 데리고 나랑 함께 Y국으로 가. 그곳에 가면 어머니가 왜 그녀를 찾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을 거야. 어머니는 여동생의 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셔.”Y국은 육씨 가문의 구역이었다. 그때 가서 서유와 이승하를 제압하면 오늘 칼에 찔린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외출하기 전에 조울증 약을 먹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곤경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그의 속셈을 이승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가 그걸 믿을 것 같나?”피가 점점 빨리 흐르고 있는 가슴을 쳐다보며 그는 짜증을 내면서도
이승하는 차창을 닫으며 차갑게 말했다.“내일 오전 8시에 공항에서 봐.”육성재는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보호하려는 사람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보호하려는 사람이 그의 어머니였으니까 그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유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계략을 역이용할 생각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호랑이를 잡을 수 있겠는가? 5개월 후, 이승하는 루드웰로 가야 했다. 죽을지 살지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 전에 서유에게 불리한 사람은 모두 가능한 빨리 제거할 생각이다. 서유가 이씨 가문의 보호를 받게 해야만 걱정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육성재의 어머니가 서유에게 가장 불리한 사람이었고 그다음은 서유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가려는 심혜진이었다.육성재의 어머니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목표는 심혜진이다. 서유를 위해 이 사람들을 깨끗하게 처리할 것이다. 한편, 육성재는 자신의 제안을 이승하가 들어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동의하다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설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한 번 손해를 보고 나니 그도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았다. 이승하의 속셈을 알아차렸지만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지금 이승하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일단 돌아가서 어머니한테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 생각에 육성재는 그에게 제안을 했다.“그럼 내 전용기를 타고 가도록 해.”이미 차에서 내린 남자는 몸을 돌려 높은 곳에서 그를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육성재, 잊은 것 같은데 결정권은 당신한테 없어.”말이 끝나자마자 차 문이 닫혔고 이내 밖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더러워졌어. 버려.”뭐? 더러워졌어? 버리라고?육성재가 타고 있던 차를 그들은 그 자리에 버리고 사라졌다. 그제야 육성재는 이승하가 말하는 것이 차였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런 젠장. 말을 똑바로 할 것이지. 한참을 생각했잖아. 한편, 김선우는 오토바이를 몰고 미친 듯이 블루리도로
그 생각을 한 육성재는 김선우를 향해 경고를 날렸다.“그 나쁜 여자의 딸을 네 누나라고 생각하지 마. 결국 실망하게 될 사람은 너니까.”그 말을 마치고 육성재는 전화를 끊었다.김선우는 핸드폰을 접고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마터면 김씨 가문의 가훈을 잊을 뻔했다. 김영주의 딸은 가족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유가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육성아보다는 훨씬 상냥한 사람이었고 늘 이런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거두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마침 이승하의 차가 그의 오토바이를 스쳐 지나갔고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이 마주쳤다. 이 늦은 시간에 김선우가 그곳에 나타났다는 건 그가 서유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는 뜻이었다. 꼬마 녀석이 서유의 일에 대해서는 꽤 신경을 쓰고 있나 보군.백미러를 통해 산길을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쳐다보며 이승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뺨 네 대를 때린 게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가장 먼저 서유를 찾아갔다. 무사히 돌아와 그림책을 들고 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유도 무사히 돌아온 그를 보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문밖을 내다보던 연이는 문 앞에 기대어 있는 이승하를 보자마자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시늉을 했다.“이모, 이모부. 얼른 주무세요. 나 졸려요. 먼저 잘게요.”말을 마치고는 통통한 손으로 이불을 집어 올려 머리에 뒤집어썼다.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연이, 잘 자.”“이모, 이모부도 안녕히 주무세요.”이불 속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그녀는 웃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방 안의 불을 끄고서야 그녀는 이승하에게로 다가갔다. 그 앞에 서자마자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서재로 향했다. 이승하는 내일의 계획에 대해 그
전화를 받자마자 택이는 이승하에게 입을 열 기회조차 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한마디 외쳤다.“아버지, 저예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이승하는 말문이 막혔다. 택이가 육씨 가문으로 간 후 머리가 나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구차한 핑계를 대는 걸 보면 육성재와 똑같아 보였다. 그는 택이의 옆에 사람이 있다는 걸 짐작하고 노인의 목소리를 냈다.“괜찮아졌지만 계속 진료 받아야 한대.”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육성아는 총을 쥐고 있던 손을 살짝 풀면서 택이에게 말을 계속하라고 했다. 그녀가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자 택이는 담담하게 이승하를 향해 물었다.“언제 또 병원에 가요? 예약은 하셨어요?”이승하는 유리 탁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두들기면서 차갑게 입을 열었다.“내일 네 어머니가 날 데리고 Y국으로 가겠다고 했어. 너도 시간 되면 결혼할 사람 데리고 런던으로 와.”이승하의 목소리와 함께 전화기 맞은편에서 규칙적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S 조직의 비밀 코드였다. 택이는 그걸 바로 알아차렸다. 이승하는 그에게 육성아를 납치해 런던으로 오라고 했다. 보스의 의도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는 보스의 말에 따를 것이다.“네, 몇 시에 가면 되나요?”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이승하가 대답했다.“내일 밤 8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봐.”택이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내일 만나는 사람 데리고 갈게요.”이승하가 전화를 끊은 후에야 택이는 핸드폰을 접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들었지. 아버지가 Y국으로 오신대.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어. 봐, 거짓말 아니지?”통화 내용을 똑똑히 들은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결혼할 사람이라는 게 나였어?”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저 두 사람은 가볍게 만나는 사이인 줄 알았다. 택이가 자신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깨끗하고 하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택이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한편, 전화를 끊은 이승하는 가로등이 켜진 창밖을 멀리 내다보았다. 내일 Y국에 가면 육성재는 반드시 물샐틈없는 그물을 쳐서 그를 잡을 것이다. 무사히 돌아오려면 그가 가장 아끼는 여동생이 큰 돌파구가 될 것이다. 이승하는 시선을 거두고 주서희에게 전화를 걸어 최대한 빨리 서유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라고 당부했다. 정가혜의 클럽으로 가서 좀 쉬려고 했던 주서희는 그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남았다. 잠시 후, 경호원에게서 샘플 두 개를 받자마자 검사실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윤주원은 뒤를 따라갔다. 장갑을 끼다가 고개를 드니 문밖에 서서 망설이고 있는 윤주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그녀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윤주원을 거절하고 나서 그녀는 줄곧 그를 피해 왔고 더 이상 그한테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았다. 지금 보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고 안색도 예전 같지 않고 눈도 움푹 파인 것이니 며칠 동안 잘 쉬지 못한 것 같았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줬으니까.더 이상 윤주원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유전자 검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윤주원은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문밖에 서서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언제든 그는 늘 그녀를 존중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소준섭이 있었고 소준섭을 쓰러드려야만 그가 다시 주서희의 옆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에 접근하는 건 그저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럼 그와 소준섭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한편, 밤을 새워 유전자 검사를 마친 주서희는 검사 결과를 이승하에게 전해준 뒤 병원을 나섰고 이미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윤주원이 간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커튼을 치려는 그때 별장 맞은편에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동안 만난 사이였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이였으니 그 사람이 어떤 차를 운전하는지 차에 어떤 번호판을 달았는지 그녀는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