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감정 결과가 나온 후, 이승하는 서유를 데리고 지가의 본가로 돌아갔다.이태석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것을 보자 얼굴색이 어두워졌고,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세게 내려놓았다.“아직도 얼굴을 들고 다니는구나.”이태석의 말은 서유를 향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태석을 흘깃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승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곧바로 노인 앞으로 가 보고서를 던졌다.“직접 보세요.”이승하가 이태석을 대하는 태도는 늘 냉담했고, 이태석 본인도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서유를 경멸하던 시선을 거두고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결과를 보자 이태석의 어두운 표정이 잠시 누그러졌지만, 곧 의심스러운 기색으로 바뀌었다.“혹시 가짜 보고서 아니냐?”이태석은 보고서를 몇 번 넘겨보더니 다시 탁자에 던지고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살펴보았다. “병원이 네 거니까 의사에게 아무 가짜 보고서나 만들라고 하면 어렵지 않을 텐데.”서유는 이 말을 듣고 아까 이승하가 보고서를 봤을 때의 반응을 떠올렸다. 그는 정말 흥분하지 않았었다. 이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옆에 있는 남자는 전혀 죄책감 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무표정하게 이태석의 말을 반박했다. “믿든 말든 당신 마음이지만, 난 그저 내 아내와 내가 혈연관계가 없다는 걸 알리러 온 거예요. 앞으로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말을 마치자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이태석의 차가운 냉소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네 어머니는 김율이고, 김석진의 딸이야. 서유 어머니는 김영주고, 역시 김석진이 낳은 딸이고. 지금 와서 보고서 하나 들고 혈연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내가 믿을 것 같아?”서유는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이태석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전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제 어머니가 김씨 집안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요. 제 어머니가 김씨 집안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저
매우 근사하다고?이승하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먹빛으로 변했다. “내 신분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그는 육성재의 사촌 오빠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역겨웠으니까!서유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거부감 가득한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일부러 그를 놀리며 말했다. “알겠어요, 사촌 오빠. 비밀 꼭 지킬게요.”운전 중이던 이승하는 잠시 반응하지 못하고 한 번 방향을 틀었다가 이내 서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불렀어?”서유는 한 손으로 차창 가장자리를 짚으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촌 오빠라고요, 왜요?”이승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왜 나를 사촌 오빠라고 부르는 거야?”서유는 웃으며 대답했다. “검사하기 전에 당신이 저를 사촌 동생이라고 생각했잖아요. 그러니 사촌 오빠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죠...”이승하: ...서유는 약 올리듯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사촌 오빠, 당신 도덕관념에 좀 문제가 있네요. 내가 가르쳐줄까요?”귀여운 모습의 여인을 보며 이승하의 눈빛에도 미소가 어렸다. “수업? 좋아, 어떻게 가르치고 싶은데?”서유가 휴대폰을 꺼내 도덕경을 검색해 그에게 들려주려 했지만, 그가 차를 교외의 작은 숲으로 몰고 가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고개를 돌려 똑같이 웃음기 섞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용한 곳을 찾아서 네 수업을 들으러 가는 거지.”오랫동안 그에게 농락당해온 서유는 그의 속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지 말아요. 수업 안 할게요...”이승하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눈에서 미소가 흘러나왔다. “네가 하기 싫어도 난 하고 싶어. 사촌 동생, 얌전히 수업해주는 게 좋을 거야...”서유: ...일찍 알았더라면 그를 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 되받아치고 말았다.그녀가 이승하에게 의자로 밀려들어갈 때,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촌 동생, 왜 사촌 오빠라고 안 부르는 거야?”서유는 이를
연남동 카페, 육성재의 차가 그늘진 곳에 숨어 있었다.한편, 카페에 미리 도착한 김선우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유를 기다리고 있었다.8시쯤 되어서야 서유는 차에서 내렸고 노란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육성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상했다. 서유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한눈에 알아봤다. 안면인식장애가 없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는 경호원을 바라보았지만 경호원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당신 누구야?”3년 동안 그의 곁을 지켜왔던 경호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저 남주혁입니다.”육성재는 그를 노려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긴 게 왜 그래? 좀 특별하게 생길 것이지. 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잖아.”그는 말문이 막혔다. 육성재는 고개를 들고 대형 고급 차를 바라보았다. 서유의 뒤를 이어 우뚝 솟은 그림자가 차에서 내려왔다. 뼈에 깊숙이 박힌 그 얼굴을 본 순간 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저 인간이 있으면 어떻게 납치해?”이때, 옆에 있던 남주혁이 그를 다독였다.“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승하도 같이 납치하면 됩니다.”육성재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호되게 때렸다. “네가 저 인간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납치를 한다고? 생각이 있긴 한 거야?”그가 이마를 가린 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도련님, 이렇게 합시다. 이따가 도련님께서 이승하를 따돌리세요. 그 틈을 타서 저희가 서유를 데려가겠습니다.”불같이 화를 내던 육성재는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혔다.“명심해. 가면 꼭 쓰고 들어가. 납치범으로 위장하여 김선우까지 같이 데려와.”이승하가 서유를 데리고 카페로 들어가려는 찰나 옆에 있던 소지섭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맞은편에 있는 차가 좀 이상합니다.”그 말에 그녀가 뒤를 돌아보려고 하자 이승하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아마도 육성재일 거야...”그녀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설마 나와 김선우
마음이 심란한 남자는 머리를 약간 기울이다가 싸늘한 눈빛과 마주쳤고 그 눈 밑에서는 피에 굶주린 섬뜩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그 모습을 보 김선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이상하다. 예전에는 이리 무서운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섬뜩한 거야?사촌 형이 화를 낼 때 저도 모르게 겁을 잔뜩 먹던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김선우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돌렸다.“저기... 서유 누나. 왜 보자고 한 거예요? 혹시 나랑 같이 Y국으로 돌아가서 큰고모를 만나려는 거예요?”서유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오늘 이리 보자고 한 건 선우 씨의 머리카락이 필요해서예요.”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결혼생활이 불행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머리카락을 빌려달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 이승하를 조롱하는 말이라는 걸 서유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김선우 이 인간, 간도 크지. 감히 승하 씨 앞에서 이리 깐족대다니. 또 얻어맞으려고 이러나? “유전자 검사를 하려고 해요.”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누나는 우리 작은고모랑 똑같이 생겼어요. 분명 우리 김씨 가문의 사람일 거예요. 검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이 세상에는 닮은 사람들이 많아요. 많이 닮았다고 해서 내가 선우 씨 작은고모의 딸이라고는 할 수 없죠.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믿을 수가 없어서요.”김선우는 고래를 끄덕였다. “그래요. 내 머리카락으로 해요. 검사 끝나면 나랑 같이 Y국으로 가서 큰고모 만날 거죠?”서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김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마지막으로 만나러 가는 게 도리겠죠. 하지만 아니라면 가지 않을 거예요.” Y국으로 가겠다고 한 그녀의 말에 그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쳤다.“걱정하지 말아요. 누나는 분명 우리 김씨 가문의 사람일 거예요...”이내 그가 옆에 있는 잘생긴 이승하를
이승하는 쌍꺼풀을 살짝 치켜든 채 다급한 모습의 육성재를 힐끔 쳐다보았다.“당신이 나오라면 하면 나가야 하는 건가? 당신이 뭔데?” 잘난 척 사람을 깔보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육성재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애써 참았다.“당신과 관련된 일이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찾아올 일도 없었겠지.”그 말에 이승하는 피식 웃었다.“육성재, 내 기억이 맞는다면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죽일 만큼 원수 사이 아니었나? 나한테 정말 급한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게 당신이 바라는 거 아니야? 이리 날 찾아올 리도 없지.”맞는 말이었다.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 세상에서 첫 번째로 좋아할 사람은 육성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티를 내면 안 되었다. “마음대로 해. 이따가 심혜진이 서유를 데리고 가도 내 탓은 하지 마. 난 이미 당신한테 알려줬으니까.”최근 심혜진은 꽤 유명한 국제 변호사를 구해서 국내로 돌아왔고 며칠 뒤에 서유와 소송을 할 예정이었다. 심혜진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심혜진이 아이를 빼앗으려 한다는 핑계를 대며 이승하를 따돌리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승하는 별 반응이 없었고 그저 깊은 눈동자만 치켜든 채 무뚝뚝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 지 벌써 알아차렸다는 듯한 눈빛에 그는 찝찝하기만 했다. 이승하가 큰 반응이 없는 것은 정상이었다. 그러나 연이의 이모인 서유는 뭔가 반응이 있어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성재 씨, 심혜진이 내 조카딸을 데려가려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다급한 척하며 그에게 물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의자 위에 손을 짚고는 옆에 서 있는 육성재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승하와 키와 비슷한 육성재가 시선을 돌리는데 호수처럼 맑은 그녀의 눈망울과 마주쳤다. 그 순간 가슴이 살짝 떨린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눈을 피했다. “방금 만났는데 아이를 뺏으러 간다고 사람들을 엄청 많이 데리고 가더라고요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육성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 가는데?”이승하가 운전기사를 향해 턱을 치켜들자 운전기사는 이내 차 문을 잠갔고 곧이어 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주혁은 쫓고 싶어도 따라갈 수가 없게 되자 차 번호판을 외워 육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연락해서 얼른 육성재를 찾으라고 당부했다. 그러고는 때를 노리고 납치범으로 위장한 뒤 마대 두 개를 들고 사람들을 함께 카페로 돌진했다.서유를 잡아가서 도련님과 맞바꿔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서유와 김선우를 쉽게 납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승하가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 이곳에 둘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소지섭은 S 조직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팀원이었고 택이조차도 그한테는 상대가 안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주혁이 데리고 온 절반의 경호원들이 소지섭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경호원들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소지섭과 겨루어 보려던 남주혁은 겁이 덜컥 났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속전속결해야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미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에 경찰들이 오면 그들은 잡혀갈지도 모른다.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주혁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뻔뻔스럽게 다른 경호원들을 불러 함께 소지섭을 상대했다.“억지로 싸우지 말고 그냥 바닥에 눌러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전략을 바꾼 후 경호원들은 소지섭에게 매를 맞으면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중 한 경호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에게 돌진하더니 마치 문어처럼 그의 등에 뛰어올라 그의 목덜미를 한사코 껴안고는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절대 손을 놓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고 다른 경호원들도 하나같이 소지섭의 몸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소지섭은 바닥에 깔리고 말았다. 아무리 힘이 세도 십여 명의 사람들이 누르고 있으니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방금 그에게 맞고 쓰러진 사람들도 다리를 쩔뚝거리며 다가와 그 위로 몸을 쌓았고 소지섭
이번 일을 김선우와 육성재가 함께 꾸민 줄 알았다. 하지만 방금 실실거리며 동영상을 촬영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납치범에게 잡힐 뻔한 그 모습을 보니 김선우와 육성재는 한 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안심하고 김선우에게 물었다.“어떻게 나가는지 알아요?”그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거렸다.“따라와요.”뒤를 돌아 배전함 쪽으로 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테이블을 지나가던 길에 그가 양식용 칼을 집어 들고는 다른 사람의 와인을 한 잔 집어 들었다. 느긋하게 배전함 자리로 가서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술잔을 내동댕이쳤다.술잔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페 전체의 불빛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손목을 잡아당겼고 머리 위에서 맑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 날 따라와요.”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익숙하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캄캄한 복도를 지나 이리저리 굽이 돌아 뒤에 있는 주방 쪽을 통과해 카페를 빠져나왔다.도로 위에는 오토바이가 한 대 세워져 있었고 오토바이를 탄 그가 헬멧을 벗겨 그녀에게 건네주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올라와요.”오토바이를 보자마자 지난번 김선우와 이승하의 대결이 생각나서 그녀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나 혼자 돌아갈게요.”장난하나. 지난번에 그의 뒤에 앉았다가 혼이 쏙 빠졌었다. 두번 다시는 타고 싶지 않았다. 그 말에 헬멧을 쓰고 있던 그가 흠칫했다.“급한 일이 있어서 정가혜 씨한테 가야 한다면서요. 집으로 돌아가려고요?”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심혜진이 강제로 연이를 데리고 갈까 봐 걱정돼서요. 아무래도 가보는 게 좋겠어요.”그가 반신반의한 얼굴을 한 채 뒷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오토바이 타고 가면 되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카페 쪽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경찰들이 오면 누나네 경호원들도 경찰서로 가서 진술해야 할 거예
눈을 내리깔고 목에 닿은 날카로운 칼을 보던 그가 피식 웃었다.“알고 싶어?”이승하가 자신을 어찌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하듯 그는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안 알려줄 거야.”손에 칼을 쥔 남자는 자신을 향해 눈썹을 치켜세우는 그의 모습에 아무런 감정도 없던 눈 밑이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마음대로 해.”손에 든 칼은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가슴 쪽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 후 칼끝이 정확하게 심장 위치를 겨누었다.“하지만 당신 심장은 무사하지 못할 거야.”육성재는 잘 알고 있었다. 이승하가 그에게 손을 댄다면 어떤 피바람이 불어올 것인지. 그래서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당신의 후대들이 김씨 가문의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봐.”그가 누구인가? 육씨 가문의 권력자이다. 이승하가 그를 죽인다면 육씨 가문도 김씨 가문처럼 이씨 가문과 원수가 될 것이다.아무리 이승하가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후대들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으니까.그는 이승하가 후대들을 배려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승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칼자루를 움켜쥐고 단칼에 찔러버렸다.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불과 몇 초 만에 육성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당신...”이승하는 칼을 뽑아 들고 칼로 그의 입술을 막았다.“그동안 당신이 왜 나한테 안 되는 줄 알아?”그가 손을 뻗어 가슴에서 콸콸 쏟아지는 피를 가린 채 아픔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내가 독하지 못해서.”이승하는 물티슈를 한 장 뽑아 침착하게 피로 물든 칼을 닦으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독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보다는 독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어렸을 때부터 강중헌은 그에게 미래의 권력자로서 S 조직의 리더로서 누구보다도 잔인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 사람은 분명 그 자신일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이승하는 그 말을 새겨들었고 원수를 대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