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이준은 Y 국에 남아 지현우의 회사 일을 처리해야 했기에 함께 귀국은 하지 못하고 대신 두 사람 결혼식에는 꼭 참석하겠다는 말을 남겼다.조지는 가족도 일자리도 모두 Y 국에 있었기에 그 역시 서울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이제는 연이와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연이야, 앞으로 이모랑 이모부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 알았지?”연이는 두 손을 쫙 펴 조지의 허벅지를 꼭 끌어안았다.“네, 연이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조지는 연이와 인사를 나눈 뒤 서유와 이승하를 바라보았다.“연이 잘 부탁해요.”“나 연이 이모잖아요. 걱정하지 마요.”조지는 서유라면 마음 놓고 연이를 맡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서유와 결혼하는 이 남자의 집안이었다. 가뜩이나 신분 차이로 말이 많을 텐데 아이까지 데리고 이씨 가문으로 들어서게 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조지는 그 생각에 이승하와 눈을 마주쳤다. 마주한 이승하의 시선은 마치 자신의 걱정은 하등 쓸모없는 걱정이라고 말하는 듯이 올곧고 또 단호했다.지현우의 복수까지 해준 남자인데 대체 뭐가 걱정일까.조지는 안심한 듯 웃더니 이승하를 향해 눈인사하고 마지막으로 연이를 다시 한번 꼭 끌어안았다.“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할 거니까 꼭 받아야 해, 알겠지? 그리고 연이 생일 때마다 만나러 올 거야.”“네...”연이는 조지의 목을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뽀뽀해주었다.“할아버지, 연이 없다고 쓸쓸해 하지 말고 잘 지내요.”조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준 후 차에 앉았다. 그리고 차창을 내리고 그들에게 손 인사를 건넸다.연이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움직이는 차를 따라 한참을 뛰다가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서야 걸음을 멈췄다.아이는 이런 헤어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지현우처럼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서유는 연이 옆으로 다가와 아이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조지 할아버지 보고 싶으면 이모랑 이모부가 언제든지 Y 국으로
윤주원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뒤를 돌아보니 큰 기럭지의 남자가 문어 귀에서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댄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그 남자는 조각 같은 얼굴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윤주원은 자신을 경계하며 심지어 금방이라도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승하 때문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자신이 대체 뭘 했다고 이러는 거지?어리둥절해 하는 윤주원과 반대로 서유는 왜 그러는지 다 알고 있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가지고 내려올게요.”서유가 올라가자 1층 거실에는 정가혜, 주서희, 연이 그리고 윤주원만 남았다.윤주원을 제외한 세 명은 이승하가 한기를 내뿜는 사실에 이미 익숙해진 듯 아무렇지도 않아 했지만 윤주원은 지금 좌불안석이었다. 뭐라고 말하지도, 그렇다고 웃지도 못했다.그리고 더 무서웠던 건 이승하가 이따금 윤주원 쪽을 쓱 훑어본다는 것이었다.윤주원은 서유가 빨리 내려와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그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서유가 물품을 챙기고 드디어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승하의 팔짱을 끼고는 별장을 나섰다.윤준원은 두 사람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무서운 남자와 아무렇지도 않게 팔짱을 낀 서유가 대단하기도 하고 또 안쓰럽기도 했다.이승하의 등장에 너무 놀란 나머지 두 사람이 곧 부부가 된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린 모양이다.차량이 구청 앞에 도착해 시동이 꺼지자 이승하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그는 서유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손을 잡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혼인 신고 절차는 그다지 복잡할 건 없었고 서류를 작성하고 하고 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접수가 완료되었다.보통은 일주일 뒤에야 혼인 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이승하가 어딘가에 통화를 하니 금세 처리해주었다.몇 분 뒤, 그는 서유와 함께 혼인 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에야 만족한 듯
이승하는 행여 서유가 결혼을 철회하겠다며 혼인 관계 증명서를 찢기라도 할까 봐 그녀가 보지 못하도록 등으로 가린 뒤에 금고 비밀번호까지 바꿔버렸다.“...”서유는 그 모습을 보더니 어이없음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이 남자는 개인 자신이고 이씨 가문의 재산이고 전부 아낌없이 주면서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증명서는 꽁꽁 숨겼다.“승하 씨, 나 이혼할 생각 없으니까 안심해요.”이승하는 그 말이 이중 보안이라도 되는 듯 더 안심했다. 그는 비밀번호를 바꾸고 난 뒤 경호원에게 금고를 차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고는 서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부인, 혼인 신고도 했으니 오늘 밤은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오늘 밤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니 무척이나 야릇하게 느껴졌다.서유는 그를 향해 못 말린다는 듯 웃기만 했다.‘상처도 아직 안 나은 사람이 무슨.’이승하는 그녀의 침묵을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는 입꼬리를 올리고 활짝 웃었다.“새집 인테리어 다 끝났대. 그쪽으로 갈까?”이승하가 활짝 웃을 때면 눈매가 예쁘게 휘어져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서유는 그 얼굴에 취해 언제 그에게 들어 올려졌는지도 모른 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이승하는 그녀를 품에 안고 밤하늘처럼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자,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서유는 그의 상처가 벌어질까 봐 내리려고 했지만 이승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그녀를 안고 차 안까지 데려다주었다.그들을 태운 차량이 움직이자 바로 뒤에 있던 여러 대의 검은색 고급 차들도 천천히 뒤이어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했다.구청에 볼일 보러 왔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그 장면을 구경했다.“방금 저 남자 웃는 거 봤어? 나 방금 기절할 뻔했잖아.”“저 여자 너무 부럽다. 앞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저런 남자가 눈앞에 떡하니 있는 거잖아.”“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저런 남자 꼬셔보든가.”“저런 남자 딱
그 소리에 이승하는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시선을 다시 거두고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다시 서유의 입술을 탐했다.서유는 아까 움직임이 멈췄을 때 이승하가 그만둘 줄 알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빠르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결국 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의 목을 잘근잘근 깨물고 키스할 때 그의 가슴팍을 힘껏 밀어냈다.“일단 문부터 열어요.”“싫어.”지금은 저 문밖에 대통령이 와 있다고 해도 그는 그녀를 가져야만 했다.이승하는 서유의 허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리더니 단숨에 그녀를 소파 위에 눕혔다. 그러고는 잔뜩 풀린 눈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허리춤에 가져갔다.“벨트 풀어줘.”서유는 소파에 누운 채로 고개를 저었다.“상처 벌어지면 어떡해요. 의사 선생님이 과격한 움직임은 안된다고 했어요.”하지만 이미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는 과격한 움직임이라는 말에 더 흥분해서는 서유 쪽으로 몸을 겹치며 말했다.“적당한 운동은 해도 된다고 했어. 그보다 벨트, 안 풀어줄 거야?”그는 흥분한 것치고는 발음이 무척이나 또렷했다. 서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의 눈을 애써 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안 풀어줄 거예요.”그녀가 이렇게나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데도 다 이유가 있다. 매번 이승하와 밤을 보낼 때면 그는 그녀가 이성을 잃을 때까지 몰아붙였고 그럴 때면 그녀는 항상 자기도 모르게 그의 등에 상처를 내고 만다.가뜩이나 상처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지금 만약 또 무의식중에 등을 긁어버리면... 생각만 해도 아플 게 분명했다.하지만 서유는 그를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대로 그를 거절해 실망한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법적으로 부부가 된 날이라 그가 얼마나 들떠있는지 보였으니까.결국 서유는 고민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이렇게 해요. 일단 승하 씨는 가서 문부터 열어요. 굳이 지금 찾아온 걸 보면 급한 일 같아 보이는데 일을 다 처리한 뒤에 우리 하던 거 마저 해요. 네?”소수빈과 경호원들이
강세은은 자신의 말에 고개도 돌리지 않는 고집불통의 남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그냥 내일 다시 오는 거로 해.”건장한 남정네 한 명이 신혼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집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꼴이 꼭 누가 보면 이승하를 짝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아 보였다.그리고 보면 볼수록 점점 더 그럴듯해 강세은은 저도 모르게 멜로 드라마 한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어릴 때부터 줄곧 이승하와 같이 트레이닝을 받던 강도윤이 어느 순간 이승하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생겨버렸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줄곧 마음속 깊은 곳이 이 사랑을 숨겨야만 했다.하지만 이승하가 다른 여자와 혼인 신고하는 모습을 보고 이성을 잃어버린 강도윤이 이승하를 뒤쫓아 그들의 신혼집까지 찾아왔다.강도윤은 굳게 닫힌 신혼집 문 앞에 우뚝 서서 몇 시간을 기다리며 아내와 뜨거운 밤을 보내는 이승하가 문밖으로 나와 한 번이라도 자신을 봐주길 기다리고 있다...강세은은 강도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망상하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때 강도윤이 몸을 홱 돌리고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우산.”강세은은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자신의 망상과 딱 들어맞는 날씨에 속으로 감탄하고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뒷좌석에 있던 우산을 앞 좌석에 앉은 비서에게 건네주었다.“가져다줘. 저 멍청이가 쫄딱 젖기 전에.”가뜩이나 머리가 안 좋은데 비까지 맞으면 점점 더 머리가 안 좋아질 게 분명했다.강도윤은 비서에게서 건네받은 우산을 쓰더니 또다시 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미친 듯이 울려댔다.한편, 이제 막 서유와 몸을 한번 겹치고 다시 한번 그녀를 탐하려던 남자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인상을 잔뜩 구기고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이승하는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깊은숨을 한번 내뱉고는 서유의 턱을 들어 이미 퉁퉁 불어버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잠깐만 기다려. 밖에 있는 놈 처리하고
이승하는 끓어오르는 짜증을 참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고 강도윤은 잔뜩 언짢은 얼굴로 그를 따라 터덜터덜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서유는 이대로라면 이승하에게 또 밤새 시달릴 게 뻔해 아까 그가 침실에서 나간 뒤 곧바로 옷을 입고 내려왔다.그녀의 윗옷에 달린 단추는 이승하에 의해 진작에 떨어져 나가버려 쇄골 쪽에 남겨진 키스 마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이제 막 안으로 들어온 강도윤은 계단에서 내려오는 서유의 목과 쇄골 쪽에 남겨진 키스 마크를 보고는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설마 둘이 방금...?강도윤은 그제야 강세은이 그에게 내일 다시 오자고 한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어릴 때부터 트레이닝만 받고 자라 여자와는 스킨십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해봤던 터라 이런 면에서 무딜 수밖에 없었다.강도윤이 벙찐 얼굴로 계속 서유를 바라보고 있자 머리 바로 옆에서 총이 겨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고개를 돌려 기가 막힌 얼굴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고작 그의 여자 좀 봤다고 총까지 겨눈다고?이승하는 손에 든 총을 그의 머리통 가까이에 바짝 가져다 댔다.“보지 말아야 할 건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서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제대로 가려.”서유는 그 말에 고개를 숙여 고작 쇄골 부분이 조금 드러나 있을 뿐인 자신의 모습을 한번 보고는 가릴 생각을 안 하다가 진지한 얼굴로 얘기하는 그를 보고는 체념한 듯 옷을 바짝 여몄다.그때, 외골수 기질이 다분한 강도윤이 이승하의 경고를 듣고는 오히려 서유를 더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서유 씨 맞죠?”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잠깐 이쪽으로 와보시겠어요? 내 머리에 있는 총이 진짜 격발될지 궁금하거든요.”“...”서유는 이 순간 계단을 내려온 걸 후회했다.강도윤은 이승하를 도발하듯 손으로 그의 총을 밀어내고는 서유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서유는 한눈에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의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나면 마치 뭔가서 홀린 듯 그녀만
강세은은 그 모습을 보더니 자신은 평생 서유처럼 고분고분해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여전히 서유에게서 시선을 못 떼는 강도윤을 보더니 이를 꽉 깨물고 물었다.“저런 여자가 좋아?”강도윤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세은에게 좋아한다는 감정의 정의가 뭔지 물으려다가 째림을 받았다. 그리고 이승하에게 당한 것처럼 그녀에게도 목덜미를 세게 가격당했다.“...”강도윤은 목덜미를 부여잡고 신음을 내더니 이승하를 따라 말없이 서재로 들어갔다.서재 문이 닫힌 순간 서유는 강세은과 눈이 마주쳐버렸다.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흘렀고 분위기는 어색하게 흘러갔다.“서유 씨, 혹시 커피 있어요?”그때 강세은이 적막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잠시만요.”서유는 몸을 돌려 부엌으로 가 커피를 찾았다. 아직 이곳이 익숙지 않았던 터라 한참을 찾아도 커피를 찾을 수가 없었다.결국 그녀는 이승하에게 혹사당한 허리를 부여잡고 뒤에 서 있는 강세은을 향해 말했다.“혹시 커피 말고 따뜻한 물은 괜찮아요?”강세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상관없어요.”어차피 정말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단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얘기한 것이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서유는 따뜻한 물 두 컵을 들고 거실 소파 쪽으로 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강세은과 함께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이승하는 그녀더러 올라가 쉬라고 했지만 ‘손님’이 있는 이상 편히 올라가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강세은은 예의상 물컵을 받아들고 입에 살짝 대더니 금방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서유를 바라보았다.“실례가 안 된다면 대표님을 어떻게 사로잡은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그녀는 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그건 왜 궁금한 거죠?”강세은은 서재 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나도 그렇게 꼬셔보려고요.”강세은이 가리키는 상대는 이승하가 아니었지만 대화 흐름상 서유는 그 상대가 이승하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서유는 손에 든 물컵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이승하와는 오늘 막 혼인 신고하고
서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이미 법적으로 유부녀가 됐는데 처녀파티는 무슨.’강세은은 그녀의 단호한 거절에도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그럼 가는 거로 알고 내일 다시 데리러 올게요.”서유는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고 얘기했다.“저는 안 간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내일 데리러 와도 저는 안 갈 거예요.”강세은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은 뒤 몸을 일으켰다.문 쪽으로 도도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런웨이를 걸어가는 모델처럼 시선을 뗄 수 없었다.서유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안도했다.강세은이 이승하를 좋아하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었다.서유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서재 쪽을 바라보았다.둘이서 얘기는 하는 건지 대화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이승하는 방음이 잘 되는 서재 안에서 소파에 다리를 꼬고 등을 기댄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로 눈앞에 있는 강도윤을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뜻이지?”강도윤은 자세를 꼿꼿이 하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이승하를 보고 있었다.“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일만 무사히 완수하시면 아버지께서 S 조직 탈퇴를 허가하시겠답니다.”이승하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 채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은 사람한테 그런 소리를 한다는 건 그냥 죽으라는 건가?”강도윤은 고개를 저었다.“조직 내에서 루드웰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사람은 대표님밖에 없습니다. 지금 상처를 입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실력으로는 누구도 대표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죠. 아버지는 대표님이 다시 한번 조직을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이승하는 강도윤의 진지한 말에도 여전히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분명히 몇 년 전에 얘기한 것 같은데? 해외 쪽 일은 관여하지 않겠다고.”“하지만 조직의 리더시잖아요.”강도윤의 반문에 이승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는 몇 초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루드웰에서 어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