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는 지현우가 의자에 묶인 채 두 다리에 총상을 입고 선혈이 낭자한 모습을 보고 너무 무서웠다.연이는 서둘러 경호원한테서 벗어나 짧은 다리로 케이시 곁으로 달려가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겨 흔들었다.“아빠, 내가 의사를 불렀으니 먼저 의사에게 삼촌 다리를 봐달라고 해요. 네?”‘삼촌 얼굴이 창백하고 온몸을 떨고 있어. 아빠한테 혼쭐이 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상처가 너무 아파서?’연이는 그런 모습의 지현우를 보며 마음이 아파졌다.연이 기억 속의 지현우는 줄곧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차갑고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무기력한 적은 없었다.연이는 아빠가 지현우를 용서하고 의사가 빨리 구해주기를 바랐다. 계속 미루면 지현우가 피를 너무 흘려 죽을지도 모른다.케이시는 고개를 떨구고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는 어린 소녀를 보더니 얼굴에 점차 온화한 웃음기가 떠올랐다.“연아, 아빠랑 게임 할까? 그럼 의사한테 삼촌 다리 봐달라고 할게. 어때?”“좋아요.”단순한 연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케이시는 연이를 번쩍 들어 보이며 손에 든 총을 건네주며 말했다.“아빠가 어떻게 총을 쏘라고 가르쳤는지 기억해?”연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기억해요!”케이시는 손을 뻗어 연이의 콧등을 만졌다.“역시 똑똑하군.”아빠의 칭찬을 들은 연이는 통통한 턱을 치켜들고 케이시에게 상을 요구했다.“아빠, 연이가 이렇게 똑똑한데 이상한 삼촌 용서해주면 안 돼요?”케이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하지만 연이가 먼저 아빠랑 게임을 해야 해.”연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어떤 게임이요?”케이시는 연이의 작은 손을 잡고 방아쇠에 올려놓고는 웃으며 말했다.“그동안 총을 쏘는 연습만 했지 실전은 못 했잖아. 오늘은 이상한 삼촌을 과녁으로 삶고 실전으로 한 번 쏴봐. 응?”연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아빠의 말을 알아듣고 약간 납득이 가지 않아 고개를 가로저었다.“싫어요. 연이는 삼촌 죽이기 싫어요.”케이시의 얼굴에 웃음기가 더 번졌다.“연아, 네가
아빠가 직접 삼촌에게 총을 쏘면 삼촌도 경호원 아저씨처럼 피를 튀긴 후 영원히 눈을 감고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연이가 직접 총을 쏘면 총알이 없을 수도 있으니 삼촌은 살 기회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연이는 지극히 표준적인 자세로 손에 든 총을 들고 과감하게 방아쇠를 당겼다.“안돼!”지하실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조지는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연아, 네 친아버지를 죽여서는 안 돼!”그러나 연이는 이미 방아쇠를 당겼다.다행히 총알은 비어있었다!총을 쥔 연이는 순간 한숨을 돌렸다.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조지 역시 팽팽했던 신경이 풀리기는 마찬가지였다.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만이 창백한 얼굴로 연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그의 딸은 뜻밖에도 케이시의 복수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우스웠다!지현우는 분명 연이에게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지만 그의 고집이 연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지금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마 하늘이 준 벌일까?하지만 이 모든 건 지현우가 받아야 할 벌이지 연이와는 무관했다.지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다리 상처의 아픔, 쇠사슬에 묶인 속박은 그를 폐인처럼 힘없이 의자에 쓰러지게 했다.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새빨간 눈으로 케이시의 위선적인 얼굴을 노려보았다.“케이시, 넌 오늘 날 반드시 죽여야 할 거야. 아니면 내가 너 죽기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만들 거니까.”연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케이시는 그 말을 듣고는 코웃음을 쳤지만 지현우를 무시하고 연이만 바라보고 있었다.“봤지? 내가 삼촌을 가만두지 않는 게 아니라 삼촌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있어.아빠가 삼촌을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 삼촌이 아빠를 죽일 거야.”“연아, 아빠 아주 난감한데 어떡하면 좋을까?”조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궁리하던 연이는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연이는 보라색 포도알 같은 큰 눈을 들고 지현우와 케이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한 손에는 총
연이는 몸을 움찔하더니 천천히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아빠, 연이 죽일 거예요?”“아니, 아빠는 단지 너랑 게임을 하고 싶을 뿐이야.”케이시는 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자, 아빠랑 계속 총 쏘기 게임 하자.”연이는 머리를 흔들고 작은 손을 뻗어 지현우의 목덜미를 낚아챘다.그의 몸에 달라붙어 아무리 해도 총을 쏘려고 하지 않았다.이 모습을 본 케이시는 웃음기가 점점 옅어졌다.“연아, 아빠 말 듣지 않을 거야? 말 듣지 않는 나쁜 아이는 벌을 받아야 해.”연이는 말을 안 들으면 아빠한테 까만 방에 갇힌다는 생각에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품 안의 작은 몸이 끊임없이 떨리는 것을 느낀 지현우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그런 아픔은 시림과 고통, 후회와 아쉬움, 알 수 없는 복잡한 생각들이 뒤섞여 그를 숨 막히게 했다.그는 연이를 꽉 안은 후 풀어주고 힘줄이 드러나는 손을 뻗어 연이 머리에 겨눈 총을 덥석 잡았다.지현우는 그 총을 빼앗아 케이시를 한 방 더 쏘고 싶었다!그러나 케이시는 그보다 한발 앞서 허리춤에서 다른 총을 꺼내 지현우의 머리에 겨누었다.아무런 우세도 점하지 못하고 의자에 꽁꽁 묶여 있던 지현우는 완전히 속수무책으로 다시 케이시를 향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뭐든 나한테 해. 애 이용하지 마.”연이는 아직 그가 친아버지인 것을 모르고 있다. 만약 오늘 케이시가 연이를 협박해 그를 죽이라고 강요한다면, 나중에 사실을 안 연이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지현우는 연이가 앞으로 남은 생을 후회 속에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연이가 항상 순진하고, 즐겁고, 건강하기를 바랐다.케이시는 분명 지현우를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그는 허리를 굽혀 지현우의 매처럼 붉은 눈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아니면 이렇게 해. 연이가 표적이 되고 네가 총을 쏘는 거야.”지현우는 진짜 미친 사람은 바로 케이시라고 생각했다.그가 거듭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케이시는 여전히 그의 딸을
친부녀 사이는 항상 신기하게도 서로 눈만 마주쳐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지현우는 손가락을 들어 부드럽게 연이의 통통한 볼을 감싸 안으며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연아, 네 아빠가 한 말은 모두 거짓이야. 아빠는 너랑 게임을 하고 있는 거야.”그는 오늘 자신이 살아서 이 별장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만약 오늘이 그의 기일이라면 연이가 자신이 친아버지라는 것을 영원히 모르기를 바랐다.그는 아버지의 책임을 다한 적도 없고, 연이를 돌본 적도 없으니 연이의 입에서 아빠 소리를 들을 자격이 없었다.지현우의 손가락은 연이의 눈에서부터 어깨를 쓰다듬더니 아쉽게 놓아줘야만 했다.삼촌이 자신을 놓아주려고 하자 당황한 연이는 얼른 그를 껴안고 울부짖었다.“삼촌, 빨리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해요. 아니면 절대 삼촌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지금 이 순간까지, 연이는 여전히 케이시가 자기를 봐서라도 지현우를 풀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연이는 누가 자기 친아빠인지 알고 싶지 않았고, 단지 마음속에는 아빠와 지현우가 똑같게 중요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연이는 지현우에게 사과하라고 달래고는 다시 울면서 케이시에게 사정했다.“아빠, 연이가 삼촌을 좋아하는 걸 봐서라도 그냥 풀어주면 안 돼요?”연이는 아빠가 삼촌이랑 화목하게 지내길 바랐다. 두 사람과 함께 자라면 행복할 것 같았다.하지만 케이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옆에 서서 연이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연이는 케이시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자신에게 온유하고 부드러웠다.연이에게 실망한 것 같았다. 아주 실망해서 더 이상 연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연이는 순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아빠가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지현우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연이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지현우의 다리에서 내려와 다시 케이시 곁으로 갔다.“아빠, 연이가 표적이 될게요. 총을 삼촌한테 주세요.”연이는 말을 마치고 머리를 숙이고
이를 깨달은 지현우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들어 총을 부드럽게 문지르면서 스크린아래에서 그가 쏘기를 기다리고 있는 연이를 바라보았다.그 보들보들하고 작은 얼굴, 눈매, 윤곽은 그와 매우 닮았지만 눈은 초희처럼 맑고 깨끗해 티끌 하나 묻지 않았다.이렇게 깨끗한 눈은 피비린내 나는 장면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지현우는 연이를 바라보며 미간을 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연아, 삼촌이랑 약속 하나만 해 줘.”“좋아요.”연이는 묻지도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지현우는 연이의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고 아주 아쉬웠지만 꾹 참고 입을 열었다.“먼저 돌아서 있어.”연이는 고분고분 돌아섰다.포동포동한 그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현우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연아, 이따가 총소리가 나도 돌아보지 마. 삼촌이 네 이름을 부를 때까지. 알겠어?”“네!”연이가 큰소리로 응답하자 극장 전체가 그 젖먹이 목소리로 메아리쳤다.지현우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눈동자를 늘어뜨리는 순간 눈물이 흘러나와 손등에 떨어졌다.그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가볍게 닦은 후, 갑자기 그 총을 들고 벽에 네 발을 연발했다.이 총은 케이시가 총알 세 개를 꺼냈으니 안에 세 개가 남았다. 연이가 한 번 쏜 것이 비었고 지금 연발한 4발 중 2발은 비었고 2발은 총알이 나왔다.이제 총알은 딱 하나 남았다.지현우는 그 총알을 자신에게 남겼다.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손을 거두어 심장 쪽으로 겨누고 힘껏 쏘았다.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살 자격이 없었지만 김초희를 만나러 갈 용기가 없었다.이제 이 총은 오히려 그를 해방시켰다. 다만... 그가 가장 아쉬운 건 그의 딸이었다.그는 붉게 상기된 눈을 들어 뒤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연이는 그의 말을 매우 잘 들었다. 단지 8개월을 함께 지냈을 뿐이지만 연이는 그를 좋아했다.이 순간, 지현우는 문득 연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싶어졌다...귀여운 딸이 자신을 쫓아다니며 아빠라고 부르면 어떤 기분인지
그렇게 많은 피를 보고 연이는 금방 깨달았다.방금 삼촌은 그녀에게 총을 쏘지 않고 자신에게 총을 쏜 것이다.삼촌은 연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표적이 된 것이다.연이는 삼촌을 보러 가야 했다...강한 집념에도 연이는 경호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무력한 연이는 순간 큰 소리로 울었다.“삼촌, 얼른 일어나서 연이 안아주면 안 돼요?”지현우는 의자에 앉아 여전히 덤덤한 자세를 유지했다.그는 연이를 바라보며 떨리는 입술로 힘겹게 연이를 달랬다.“연아... 울지 마.”그가 이 말을 꺼냈을 때 몸속의 선혈이 쏟아져 나왔다.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솟구치는 피를 보고 놀란 연이는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아빠, 삼촌 좀 살려주세요. 빨리 살려주세요.”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군화를 신은 발로 지현우에게 다가가 코웃음을 쳤다.“지현우, 너한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네.”케이시는 지현우의 입술에서 흘러내린 피를 손가락으로 몇 번 문지른 후 허리를 굽혀 그를 보았다.“너랑 초희가 정식으로 사귀던 날 내가 한 말 기억해?”케이시는 언젠가 지현우가 자살하게 만들고 지씨 가문의 모든 것을 빼앗을 거라고 했다.지금, 지현우가 죽었으니 그다음 목표는 지씨 가문이었다.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케이시는 손을 들어 지현우의 핏기 없는 얼굴을 두드렸다.“지현우, 네 딸은 내가 잘 키울게.”케이시는 얄밉게 웃더니 몸을 곧게 펴고 계단을 내려갔다.경호원은 케이시가 떠나자 즉시 연이를 안고 극장을 떠났다.경호원에게 안겨 간 연이는 작은 몸을 뒤틀며 목을 길게 빼고 울며 돌아보며 외쳤다.“삼촌!”의식을 잃어가는 지현우는 연이의 목소리를 듣고 억지로 버티며 나지막이 말했다.“연아...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총 놀이는 그만하고.”비록 낮은 목소리였지만 연이는 그 소리를 듣고 대답했다.“알겠어요. 다시는 총 놀이 안 하고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러니까 삼촌도 꼭 잘 살겠다고 약속해요. 네?
정가혜 별장, 서재.서유는 자를 들고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가 충분히 몰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은 계속 비뚤어지고 있었다.심장이 너무 불편하고 뭔가 잃을 것 같은 영문도 모르는 기분이 그녀를 끌어당겼다.서유는 너무 불안해서 아예 필을 내려 놓고 의자에 기대어 미간을 비볐다.책상 옆에 놓인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서유는 이승하의 전화인 것을 보고 손을 뻗어 수화 버튼을 누르고는 핸즈프리를 켰다.“승하 씨, 어떻게 됐어요? 지현우는 봤어요?”전화기 너머로 몇 초 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비로소 서늘한 남자의 목소리가 천천히 서유의 귀에 들려왔다.“서유야, 지현우 마지막 모습 보러 와.”서유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답답하고 조금 아프기도 했다.이 감정은 그녀의 것이 아닌데 그녀는 컨트롤할 수 없이 휘어 잡히고 있었다.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허둥지둥 일어나다가 실수로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서유가 아파서 쉰 소리를 내자 휴대폰 너머의 남자는 짙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분명히 그녀가 매우 급하다는 것을 짐작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서희네 병원으로 옮겨졌고 내가 너한테 사람을 보냈어.”서유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꼿꼿한 몸매의 이승하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병실 입구에 똑바로 서 있었다.“좀 어때요?”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이승하 앞으로 달려갔는데, 너무 급해서 이마에 땀이 촘촘히 맺혔다.이승하는 양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땀을 닦아주면서 대답했다.“피는 멈췄지만 총알이 심장 부위에 박혀서 구할 수 없어.”오는 길에 서유는 이미 전화로 지현우의 상황을 물었고 또 케이시가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서유는 분명 케이시에게 지현우가 묘원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케이시가 이렇게 빨리 지현우를 찾을 줄이야.‘케이시 이 사기꾼. 8개월 시간이 되어서 지현우를 찾아 연이를 돌려받으러 왔다더니. 이건 분명 지현우 죽이러 온 거잖아!’서유가 케이시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지현우의 위
지현우는 그녀의 뺨을 만지던 손을 힘없이 내리더니 손끝을 스치다가 그녀의 긴 곱슬머리에 닿았다.김초희는 그렇게 긴 머리가 아니었다.지현우의 흐릿한 시선 속에 처음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목구비의 윤곽이 서서히 떠올랐다.서유였다. 김초희가 아니었다.그가 또 사람을 잘못 보았다.지현우의 빛을 발하던 눈 밑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시선을 옮긴 채 천천히 그 심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그를 안심시켰다.“서유...”그는 간신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옆에 앉은 서유는 그가 정신을 차리자 서둘러 눈물을 닦고 그에게 다가갔다.“형부.”비록 지현우가 전에 그녀를 괴롭혔지만 서유는 그를 형부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선량함에 지현우는 죄책감에 눈을 늘어뜨렸다.몇 초 동안 묵묵히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더니 서유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미안해...”죽음이 임박해서인지, 지현우 역시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를 깨닫고 뒤늦은 사과를 했다.서유는 지현우가 자신에게 사과하는 것을 알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지만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현우는 생기가 없는 눈동자로 서유를 바라볼 때, 담담한 기색 속에 약간의 구걸이 섞여 있었다.“우리 계약 기억하죠?”“기억해요.”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첫 번째, 언니 대신 프로젝트 완성.두 번째, 언니의 한 달 대역.세 번째, 지현우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세 번째...”지현우는 세 글자를 어렵게 말하고는 곧 힘이 빠졌다.그는 병상에 누워 선혈이 낭자한 침대 시트를 잡고 오랫동안 쉬다가 선혈이 묻은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나 대신... 연이를 돌봐줘요.”그가 말하지 않아도 서유는 연이를 돌볼 것이다.“형부, 걱정 마요. 내가 연이를 잘 돌볼게요.”지현우는 이승하가 서유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드시 연이를 찾아 데려올 것이다. 그래서 케이시가 연이를 데려갈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