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우는 그녀의 뺨을 만지던 손을 힘없이 내리더니 손끝을 스치다가 그녀의 긴 곱슬머리에 닿았다.김초희는 그렇게 긴 머리가 아니었다.지현우의 흐릿한 시선 속에 처음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목구비의 윤곽이 서서히 떠올랐다.서유였다. 김초희가 아니었다.그가 또 사람을 잘못 보았다.지현우의 빛을 발하던 눈 밑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시선을 옮긴 채 천천히 그 심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그를 안심시켰다.“서유...”그는 간신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옆에 앉은 서유는 그가 정신을 차리자 서둘러 눈물을 닦고 그에게 다가갔다.“형부.”비록 지현우가 전에 그녀를 괴롭혔지만 서유는 그를 형부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선량함에 지현우는 죄책감에 눈을 늘어뜨렸다.몇 초 동안 묵묵히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더니 서유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미안해...”죽음이 임박해서인지, 지현우 역시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를 깨닫고 뒤늦은 사과를 했다.서유는 지현우가 자신에게 사과하는 것을 알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지만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현우는 생기가 없는 눈동자로 서유를 바라볼 때, 담담한 기색 속에 약간의 구걸이 섞여 있었다.“우리 계약 기억하죠?”“기억해요.”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첫 번째, 언니 대신 프로젝트 완성.두 번째, 언니의 한 달 대역.세 번째, 지현우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세 번째...”지현우는 세 글자를 어렵게 말하고는 곧 힘이 빠졌다.그는 병상에 누워 선혈이 낭자한 침대 시트를 잡고 오랫동안 쉬다가 선혈이 묻은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나 대신... 연이를 돌봐줘요.”그가 말하지 않아도 서유는 연이를 돌볼 것이다.“형부, 걱정 마요. 내가 연이를 잘 돌볼게요.”지현우는 이승하가 서유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드시 연이를 찾아 데려올 것이다. 그래서 케이시가 연이를 데려갈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그녀가 대답하자, 지현우는 안심하고 입꼬리를 말았지만 눈은 간신히 입구 쪽으로 돌렸다.그곳에는 여전히 보호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곧게 서 있는 차갑고 고귀한 그림자가 있었다.그 말 하지 않은 답을 문밖의 그 남자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김초희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언제부터일까. 아마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제멋대로 그의 차 뒤를 쫓아갔을 때부터였을 것이다.그는 백미러를 통해 그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볼 때마다 옅은 미소를 지었다.어떤 사람들은 항상 사랑을 알지 못한다. 잃고 나서야 알게 되고 때는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 된다.죽음을 앞두고 나니 인생의 조각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빨리 스쳐 지나갔다.지현우는 그제서야 자신이 김초희를 뼈저리게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그는 눈을 감기 전에 떨리는 손을 내밀어 마지막으로 심장을 만지며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초희야, 사랑해. 나도 너 사랑해.하지만, 그는 힘이 없다.끝내 그는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김초희는 그를 배웅하러 오지 않았고 문밖은 텅 비어 있었다.병상의 남자는 그런 아쉬움으로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귓가에 들려오는 의료기기의 소리, 그리고 가슴을 찢는 조지의 울부짖음 소리.이 소리를 서유는 전혀 듣지 못했고 그저 옆에 앉아 조용히 지현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은 마치 인간 세상에 떨어진 천사와 같았다. 지금 그의 몸은 먼지로 돌아가고 영혼은 조용히 떨어져 나갔다.그는 자신이 속한 곳으로, 또는 언니가 있는 곳으로 가겠지. 어쨌든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않다.서유는 한참 동안 그를 쳐다보다가 하얀 손을 내밀어 지현우가 방금 허공에 뻗었다가 떨어진 손을 잡았다.순간 그녀는 지현우가 세상을 떠나기 전 무엇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고, 그 손을 가볍게 자신의 심장에 올려놓았다.그의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의 청각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심이준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 지현우의 몸은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그는 영안실에 서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흰 천으로 덮인 지현우를 보고 있었다.서유가 본 것과 달리 지금 이 순간의 지현우는 깨끗이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는 잠든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에 누워 있었다. 아무런 죽음의 기운도 없이 고요했다.심이준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지현우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스승님...”그는 중얼거렸다. 평소라면 지현우가 잘 때 누군가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일어나 상대방을 한 대 때렸을 것이다.그런 지현우였는데, 지금은 조용히 누워 그의 방해를 받고 있지 않았다.심이준은 코끝이 찡해지며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스승님, 왜 이러고 계세요? 제가 이길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하셨잖아요?”그가 출사하던 날, 지현우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이준아, 네가 나보다 더 많은 트로피를 받으면 내가 너를 위해 황금 오두막을 지어줄게.”지현우는 심이준이 황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가끔 작은 황금을 사서 그의 황금 창고에 넣었다.분명 심이준을 위해 산 것이지만 입으로는 앞으로 돈이 없으면 그 황금 창고를 턴다고 했다.그의 스승님은 좋은 사람도, 철저한 나쁜 사람도 아니지만 슬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는 표현을 잘 못 하는 것 같고 항상 반대로 말해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오직 심이준만이 그가 외롭다고 여겼다.가끔 그가 김초희의 사무실에서 혼자 멍하니 있는 것을 보면 불쌍하게 느껴졌다.그럴 때마다 심이준은 그를 웃기려고 노력했다.비록 허술한 농담이었지만 지현우는 항상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한마디 했다.“이준아, 가죽이 근질근질하지?”그러면 심이준은 뻔뻔스럽게 대답했다.“가죽은 괜찮은데 살이 가려워요. 스승님께서 좀 긁어주실래요?”심이준은 얼어붙은 지현우의 몸을 바라보며 울면서 말했다.“스승님, 나 가죽이 가려워요. 일어나서 좀 긁어주시면 안 돼요?”분명히 우스꽝스러운 말인데 조
심이준은 무릎을 꿇고 지현우를 향해 세 번 절했다.그는 지현우와 약속했다. 획득한 트로피가 스승님을 능가하면 지현우는 그에게 황금오두막을 지어주겠다고.하지만 이번 생은 불가능해졌다.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또 지현우의 제자로 살 수 있기를 바랐다.그때가 되면 심이준이 황금오두막을 지어 스승님께 드릴 것이다.이번 생에 받은 은혜를 보답할 겨를도 없이 가버렸으니...심이준이 무릎을 꿇고 오열하자 조지가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임종 전에 소유했던 회사를 이준 씨에게 맡기고 갔어요.”“이준 씨가 회사를 이끌고 전 세계를 제패하기를 바랐어요.”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는 늘 심이준을 강하게 만들었다.그의 스승님은 생전에 그를 후원하고 가르쳤고, 죽을 때까지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천성이 쾌활하던 심이준은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서유는 여전히 병실에 앉아 이승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이승하는 택이를 보내 케이시의 전용기를 막으라고 지시했지만 아직 결과를 얻지 못했다.서유는 조지를 통해 케이시가 연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총 쏘는 것만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케이시의 목적은 간단했다. 바로 연이가 직접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이게 하기 위해서였다.지현우가 유언을 남기지 않더라도 서유는 연이가 이렇게 미친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걸 놔두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반드시 연이를 데려와야 했고, 연이에게 걱정 없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주어야 했다.이것이 그녀가 언니와 형부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택이의 전화가 걸려왔다.서유는 재빨리 몸을 곧게 펴고 긴장한 표정으로 이승하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남자는 그녀 앞에서 숨김없이 핸즈프리를 켰고, 이내 택이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보스, 죄송합니다. 착오가 생겨 목표물을 요격하지 못했습니다.”이 말을 들은 이승하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까짓 것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해? 너희들 대체 뭐 하는 거야?”전에 이승하가
서유는 강세은을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매번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에게서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고귀함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녀 앞에서 주눅이 드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는데 옆에 있던 남자가 서유의 손을 잡고는 깍지를 끼었다.이승하는 서유의 손을 꼭 잡고 늘씬한 다리에 그녀의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강세은을 바라보았다.“케이시의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봐. 아니면 본사로 돌아가서 벌을 받던지.”인사치레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일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강세은은 그가 서유의 오해를 살까 봐 이러는 것이라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승하를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왔다.더는 긴 말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가방에서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 있는 가면을 꺼내 이승하에게 건네주었다. 그건 양아버지의 가면이었다. 이승하한테 지씨 가문과 왕실 사이의 원한에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한편, 지현우가 케이시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지씨 가문에서 알게 되었고 현재 Y국의 행세는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부 왕실의 일원들은 이승하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 일에 끼어든다면 S 조직까지 연루됐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가면을 건네받은 이승하는 손가락으로 몇 번 문지르더니 옆으로 내동댕이쳤다.“지씨 가문과 왕실 사이의 일은 상관할 생각 없어. 그러나 내 아내의 조카딸은 반드시 내가 직접 찾아올 거야.”강세은은 양아버지의 충고조차 듣지 않는 그를 향해 눈을 흘기더니 이내 서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표님, 아버지께서는 대표님과 서유 씨의 결혼을 못마땅해하셨지만 대표님의 선택을 존중하셨어요. 그러니 대표님께서도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S 조직은 그녀의 양아버지가 만든 조직이었다. 비록 현재는 이
그녀가 깨어났을 때 이승하는 이미 Y국으로 떠난 상태였다. 그에게 거의 화를 내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Y국으로 같이 가자고 했던 사람이 그녀가 잠든 사이에 홀로 떠났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직 비행기 안이라고 짐작했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정가혜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서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는 그녀를 부축했다.“왜 바닥에 앉아 있어?”심장이 떨려 그녀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였고 벽 구석에 몸을 기대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감을 찾았다.“이 사람 언제 간 거니?”정가혜는 그녀를 부축해 소파에 앉힌 뒤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아침에 떠났어. 지금쯤 아마도 비행기 안이겠지. 걱정하지 마. 도착하면 너한테 연락할 거라고 했어.”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미간을 눌렀다.“케이시가 현우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 전에도 이렇게 마음이 불안했었어. 나 지금 너무 불안해.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단 말이야.”그 생각에 그녀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Y국으로 가는 비행표를 예약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정가혜가 그녀를 막아섰다.“이승하 씨가 너한테 집에서 푹 쉬라고 했어. 반드시 언니의 아이를 데리고 올 거라고도 했고.””정가혜는 그녀의 핸드폰을 낚아채며 말을 이어갔다.“지금 너한테는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 지현우 씨 부모님이 오셔서 지현우 씨의 시신을 가져가겠다고 해. 조지는 너희 언니와 함께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대로 시신을 가져가는 걸 막고 있어. 지금 병원에서 양쪽이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 모양인데 서희 씨가 너한테 결정을 내리라고 하더라.”부모가 아들의 시신을 찾아가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현우가 언니와 함께 있고 싶다는 유언을 서유에게 남긴 이상 이 일은 서유가 결정해야
그녀는 서유를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서유 씨, 당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아들을 잃은지 얼마 안 된 심혜진의 첫마디가 자신의 어머니와 관련된 일이라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던 심혜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면 그만, 김씨 가문의 비밀은 김초희가 죽은 후 영원히 땅속에 파묻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눈앞의 고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답을 들은 심혜진은 영안실로 들어갔고 옆에 있던 중년 남자가 서유를 향해 입을 열었다.“현우의 시신은 우리가 가지고 갈 겁니다.”서유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언니와 함께 묻히겠다는 형부의 유언이 있었어요. 데려가실 수 없습니다.”그녀의 단호한 말투에 지강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현우는 내 아들입니다. 현우를 데려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게다가 현우와 김초희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형부라니요?”서유는 담담하게 한마디 내뱉었다.“결혼했었어요.”언니의 신분으로 지현우와 결혼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혼인 서류까지 만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 관계가 유효하다. 지강현도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나중에 이혼하지 않았냐는 말 한마디를 내뱉고 말길을 돌맀다. “지씨 가문의 자손은 우리 가문의 공동묘지에 묻혀야 합니다. 이 일은 상의할 여지가 없어요. 우리가 서유 씨를 이리 찾아온 건 통보하기 위함이지 상의하러 온 거 아니란 말이에요.”사실 서유는 지현우의 시신을 강제로 남겨둘 자격이 없었다.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있던 그녀가 뭔가를 제안했다.“저도 마침 Y국에 가려던 참이에요. 언니의 무덤을 Y국으로 옮길 테니 언니와 형부를 함께 지씨 가문의 공동묘지에 묻는 건 어떠할까요?”언니는 어려서부터 Y국에서 자랐고 국적도 Y국이었다. 그 나라에 언니의 모든 추억이 담겨 있었다. 언니와 형부가 함께 묻
점잖은 지강현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내 아들의 시신을 어디에 묻을지 의논하고 있을 뿐인데 미움을 산다니?”어쩐지 서유 이 아가씨가 단호하게 말을 하더라니. 이제 보니 이씨 가문이라는 세력을 믿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이런 배짱은 결국 남자가 준 것이겠지.지강현은 내심 서유를 얕잡아봤다. 김초희처럼 신분도 배경도 없이 현우에게 빌붙어 평생을 괴롭히고 죽어서까지도 사람들을 못살게 굴면서 현우의 목숨까지 빼앗아 간 그런 여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런 속셈을 눈치챈 서유였지만 그녀는 온통 다른 데 신경을 쓰고 있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잘 생각해 보시고 4시간 후에 답을 주세요.”4시간 후면 이승하의 비행기가 Y국에 도착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녀는 Y국으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지현우는 지강현의 아들이다. 그가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는 건 사실 서유의 동의가 없어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유언 때문에 서유를 이리로 불러 통보하려 했었다. 마지막 유언을 서유에게 한 것이니 그녀가 동의하면 좋겠지만 동의하지 않더라도 강제로 데려갈 생각이었다.근데 서유가 곧 이승하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니. 일이 좀 까다롭게 되었다.지강현은 심혜진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그녀한테 결정하라고 하였다.“김초희를 공동묘지에 묻고 우리 집안의 며느리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JS 그룹의 안주인과 맞서 현우를 강제로 데리고 가든지. 당신이 결정해.”서유가 이승하의 약혼녀라는 말에 심혜진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저 여자가 이승하의 약혼녀라는 말이에요?”지강현은 짜증 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냥 별 볼 일 없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이승하의 약혼녀일 줄이야.”심혜진은 눈물을 닦으며 손을 약간 떨었다.“저 여자와 김초희가 누구의 딸인지 알아요?”그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저들이 누구의 딸이든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그와는 확실히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그녀와는 관계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