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10화

Author: 알라리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4-30 15:13:18
이승하는 서유를 안고 차로 향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서유야, 집에 가려면 한 시간은 걸려. 일단은 조금 쉬고 있어.”

서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창문에 기대있고 싶었지만 이승하의 기대에 찬 눈빛에 적극적으로 그의 다리에 앉았다.

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먼저 고백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이승하의 마음은 이미 확인했고 그녀도 이승하를 사랑하고 있으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성이나가 말한 것처럼 같은 남자에게 두 번이나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렵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결과가 다가오기 전 모든 걸 다 바쳐 용감히 사랑할 것이다.

서유는 머리를 이승하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고는 그의 조각 같은 옆모습을 바라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도착하면 불러요.”

이승하는 고개를 돌려 서유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더니 옆에 놓인 담요를 그녀에게 덮어줬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잠에 들 수 있게끔 이렇게 속삭였다.

“서유야, 고마워.”

착한 서유 덕분에 그는 다시 서유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승하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절대 이런 서유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유는 이승하의 속삭임에 대꾸하지 않고 그의 몸에 기댄 채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순간의 풍경을 감상했다.

별장으로 돌아온 서유는 비몽사몽한 채로 이승하에게 안겨 욕실로 향했다. 이승하도 처음엔 단순하게 그녀를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러다...

서유는 후들거리는 몸으로 욕실에서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피부 관리를 하려는데 옆에 두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핸드폰 잠금을 풀어 낯선 번호로 온 문자를 확인했다.

[서유 씨, 승하가 혹시 강세은 씨랑 그저 파트너라고 하지 않던가요?]

서유는 잠깐 멈칫하더니 아직 욕실에 있는 이승하를 힐끔 쳐다봤다. 그쪽에서 시선을 떼기도 전에 똑같은 번호로 문자가 또 한 통 날아왔다.

[절대 믿지 마요. 승하 강세은 씨랑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에요. 못 믿겠으면 사진 보내줄게요.]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411화

    욕실에서 나온 이승하는 머리가 젖은 채로 화장대에 앉아 피부관리를 하는 서유를 발견했다.이승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옆에 놓인 선풍기를 들어 그녀의 머리를 섬세하게 말려주기 시작했다.거울을 통해 자신을 살뜰하게 챙기는 이승하를 본 서유는 불안하던 마음이 점점 차분해졌다.이승하는 서유의 머리를 말려주고는 눈에 있는 이물을 제거하고 치료해 주는 약을 그녀에게 먹여주고는 그녀를 의자에서 번쩍 안아 올렸다.“서유야, 내일 핀란드에 오로라 보러 가자.”전에 서유와 만날 때 그녀가 오로라 사진을 찾아보는 걸 보고 아마 거기를 가보고 싶어 할 거라고 예상했다.하지만 그때 그들은 서로를 시험하기 바빴고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따듯함을 모두 갉아 먹었다. 그러니 그녀를 위해 해줘야 하는 일은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다.이승하는 여생으로 그녀의 아쉬움을 달래주고 그녀의 마음에 난 상처를 보듬어주어 좋은 기억만 남겨주리라 다짐했다.이승하의 품에 안긴 서유는 고개를 들어 선명한 그의 턱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승하는 서유를 침대에 내려주더니 그녀가 너무 힘들까 봐 더는 건드릴 엄두를 못 내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잠에 들었다.서유는 그런 이승하를 보며 은연중에 핀란드는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예상대로 이튿날 아침을 먹기도 전에 별장 앞에 NASA에서 보내온 차 수십 대가 서 있었다.이승하의 신분과 즐비하게 서 있는 보디가드에 NASA 사람들은 들어올 엄두를 못 냈고 그저 사람을 보내 이승하를 항공기지에 모셔 오라고 했다.이승하는 서유를 데리고 오로라를 보러 가기로 했기에 NASA로 가는 걸 거절했지망 국장이 직접 모시러 왔다 두 사람은 서재에서 한참 티격태격하더니 국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재에서 나왔다. 뒤따라 나오는 이승하의 얼굴도 그리 곱지는 않았다.안 좋게 끝난 둘의 대화에 서유가 이승하를 설득했다.“오로라는 언제든지 보러 가면 되죠. 항공 프로젝트를 멈출 수는 없잖아요. 먼저 기지로

    Last Updated : 2024-04-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412화

    사진을 열어보니 이승하와 강세은이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있었다.커플 레스토랑은 맞았지만 둘 사이는 거리감이 확연하게 느껴졌다.그저 파트너로서 업무를 토론하는 것일 뿐 다른 건 말해줄 수 없었다.서유는 믿으려 하지 않았고 핸드폰을 옆에 던져둔 채 성이나의 악의적인 모욕과 유언비어를 무시했다.하지만 성이나는 쉬지 않고 문자했고 켜져 있는 핸드폰 화면으로 그녀가 보내온 사진들이 하나둘 보였다.서유는 성이나가 보내온 자극적인 사진들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서유 씨, 혹시 승하가 3일 동안 계속 NASA에서 항공 프로젝트 하느라 바빴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멍청하긴, 승하는 3일 동안 강세은 씨랑 같이 있었어요. 이 침대 셀카가 제일 확실한 증거겠네요.]서유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원래도 하얀 얼굴이 거의 투명하다시피 창백해졌다.서유는 핸드폰을 꽉 움켜쥔 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성이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통한 순간 서유는 화를 퍼붓기 시작했다.“성이나 씨, 합성한 사진을 나한테 보낸다고 내가 믿을 줄 알아요?”“승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아요.”“난 승하 씨가 나한테 미안할 짓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요.”“승하 씨를 정말 갖고 싶다면 그 사람 마음을 얻을 생각을 해요!”“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나를 괴롭히지 말고, 성이나 씨가 이럴수록 승하 씨는 더 역겨워할 거예요.”서유의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에 성이나는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해 입꼬리가 올라갔다.“서유 씨는 아직 남자를 잘 모르나 보네요.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여자라면 지극정성으로 아껴줄 수밖에 없어요.”“하지만 일단 손에 넣으면 그때부터 소중함이 점점 사라지는 거죠. 게다가 결혼하다는 소리도 꺼낸 적 없다면서요. 그건 당신과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다는 거예요.”“나이도 웬만큼 먹었는데 사회 경험도 충분할 거 아니에요. 아직도 돈 있는 자들이 사람을 어떻게 갖고 노는지 모르는 거예요?”서유는 너무 화가 난

    Last Updated : 2024-04-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413화

    별장서 나온 서유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신속하게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서유가 차에서 내렸을 때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고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도 레스토랑의 핑크빛 분위기는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서유는 도로변에 서서 맞은편 레스토랑을 멀찍이 내다봤다. 거기엔 외모와 몸매가 빼어난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남자는 까만 슈트 차림을 하고 소파에 기댄 채 고개를 살짝 젖히고 맞은편에 앉은 빨간 입술의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여자는 섹시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남자와 똑같은 자세로 소파에 기대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보며 뭐라 말하고 있었다.서유는 그들의 표정까지는 잘 보지 못했지만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보니 이승하가 저번에 서유를 데리고 간 그 프랑스 레스토랑이 생각났다.서유는 두 사람이 데이트 중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심장이 자꾸만 벌렁거렸다.무서움이 용기를 완전히 대체했고 그쪽으로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서유는 그 자리에 선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 내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인도를 건너 맞은편으로 건너가는데 이승하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서유를 발견한 이승하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꽂혔다. 서유는 얼른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잘생긴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었고 차가운 얼굴이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이승하의 예쁜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정함은 3년 전 그를 만나고 있을 때보다 다 차가웠다.뼛속까지 시린 그의 눈빛에 들고 있던 서유의 손이 그대로 허공에서 굳어버렸다.그를 다시 받아주면서 사실 걱정이 들기도 했다. 원하는 걸 손에 넣으면 순간 차가워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서유는 지금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승하에게 다 바쳤지만 걱정했던 일을 해가지는 못한 것 같았다.서유는 한참을 그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그녀는 주먹을 꼭 쥔 채 이승하를 찬찬히 뜯어봤다. 그가 그렇게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봤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혹시 그녀를 보지 못해서

    Last Updated : 2024-04-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414화

    유리창에 손이 닿기도 전에 성이나가 서유의 손목을 낚아챘다.“서유 씨, 승하의 태도를 보고도 희망을 버리지 못한 거예요?”우산을 쓴 성이나는 오만한 표정으로 피를 홀딱 맞은 서유를 내려다봤다.“정말 가엽네요. 애초에 내 당부를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럼 이 지경까지는 안 됐을 텐데.”서유는 성이나의 손을 뿌리친 채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더니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창문을 두드리려 했다.성이나가 한발 먼저 우산으로 서유의 손을 막더니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서유를 바라봤다.“서유 씨, 아까 문 앞에서 그렇게 애타게 들여보내 달라고 하는 걸 승하도 봤을 텐데 나오지 않았어요.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새로 사귄 여자 친구 앞에서 엑스를 도와주고 싶지 않다는 얘기죠. 이렇게 매정한 사람한테 그렇게 매달리고 싶어요?”서유는 주먹을 너무 꽉 움켜쥐는 바람에 손톱이 살을 뚫고 들어가 피가 새어 나왔다. 서유는 그제야 마음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성이나 싸울 기분도 힘도 없는 서유는 더는 무의미한 입씨름을 하기 싫었지만 성이나가 계속 그녀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서유 씨, 얼른 꿈에서 깨요.”“승하는 그냥 서유 씨가 예쁘고 몸매도 좋고 하니까 침대에서 갖고 놀기 좋다고 생각해 옆에 둔 것뿐이에요.”“봐요, 새로운 사냥감이 생기니까 바로 찬밥 신세인 거. 아직 헤어지자는 소리를 못 했을 뿐 사랑은 아니라는 거죠.”“이 세상의 많은 남자들이 여자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게 하려고 일부러 정서적으로 냉대하죠. 이건 서유 씨도 잘 알고 있잖아요.”“그러니 여기서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 좀 그만해요. 보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승하도 전혀 동정하지 않는데 왜 굳이…”참을 데까지 참은 서유는 성이나가 끝도 없이 가시 돋친 말을 늘어놓자 성이나의 귀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그 입 좀 다물어요!”서유는 아까 날린 그 싸대기에 남은 힘을 전부 쏟아부었다. 빠르고 정확하고 매섭게 내리친 덕분에 성이나의 볼은 금세 부어올랐다.성이나는 그 자리에 넋을

    Last Updated : 2024-04-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415화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온 힘을 다해, 용기를 끌어모아 외친 이름이었다.거칠게 쏟아지는 빗물이 진흙탕을 뒤집어쓴 서유의 가녀린 몸집에 떨어졌다.서유는 그렇게 길가에 고인 더러운 구정물에 엎드린 채 아무런 생기 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가로등 불빛을 통해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큰 빗방울을 보고 서유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하늘도 그녀의 멍청함을 비웃고 있다.도대체 누가 준 용기로 한번 상처를 받고도 여전히 그 이름 석 자를 내려놓지 못해 서로에게 다시 기회를 준 것일까...한번 죽었다 깨난 걸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걸까?도대체 이승하를 얼마나 사랑하면 매번 마음을 모질게 먹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또 한 번 걸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서유는 과거에 겪었던 아픔이 다시 떠올랐고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창백한 미소가 핏기 없는 얼굴에 번지자 죽기 ㅁ직전의 일그러진 얼굴보다 더 봐주기 힘들었다.서유는 까진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일어났다. 아직 포기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완전히 포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그녀는 비틀거리며 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수십 명의 보디가드에 가로막혀 호텔은 들어가지도 못했다.“이곳은 영국 왕실 인원만 드나들 수 있는 곳입니다. 외부인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니 얼른 물러나세요.”영국 왕실이라...이러한 배경은 서유가 평생 바라보지도 못할 그런 존재였다.그래도 그녀는 더없이 귀티 나는 그 남자가 자신과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서유는 갑자기 생각을 정리한 듯 환한 미소로 보디가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물러날게요...”그녀는 몸을 돌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에서 내려왔다. 가녀린 몸집이 비바람 속에서 유난히 얇고 외로워 보였다.하지만 서유는 결과를 원했기에 진짜 떠나지 않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서유는 그렇게 비를 맞으며 호텔 대문을 지켜봤다. 낯선 날에 홀로 조용히 자신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그 남자를 기다렸다.그녀는 속으로 여러 번 다짐했다. 만약 지금 그가 호텔에서 나온다면

    Last Updated : 2024-04-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416화

    정말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있던 서유는 얼굴에 남은 눈물을 말끔히 닦아냈다.심이준에게 답장을 보내고 화면을 나오려는데 어제밤 워싱턴에서 걸려 온 전화가 몇 개 있었다. 다 모르는 번호였다.그 번호들을 한번 확인했을 뿐인데 핸드폰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전원이 꺼졌다. 잠금 버튼을 다시 누르니 화면에 배터리 부족이라고 떴다.서유는 걸려 온 몇 통의 스팸 전화를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러더니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별장으로 향했다.뒷정원으로 들어갔기에 아무도 깨지 않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이층 안방으로 향했다.이승하의 전화를 받은 도우미들이 얼른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서유 씨 아직 깨기 전이에요.”서유한테 전화가 걸리지 않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이승하가 물었다.서유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얼른 안방으로 문을 열고 살며시 들어갔다.침대에 누워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서유를 보고 나서야 이승하의 불안한 마음도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도우미가 빠르게 방에서 나가더니 다시 수화기를 들고 이승하에게 말했다.“대표님, 서유 씨 정말 주무시고 계십니다.”이승하는 그제야 시름 놓고 도우미에게 당부했다.“영양가 가득한 아침 좀 챙겨서 먹게 해요.”이승하는 이렇게 말하더니 마친 시간이 없는 듯 얼른 전화를 끊고 옆에 있는 강세은에게 핸드폰을 던졌다.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는 이승하에 파란색 가면을 쓴 남자를 힐끔 쳐다보더니 살짝 인내심이 떨어지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작전 시작 전 그렇게 급한 상황에서도 아끼던 와이프한테 전화하더니 작전이 끝나기도 전에 그걸 못 참고 다시 전화하는 거예요?”“전화하는 것도 모자라 내 폰을 빌려서 하다니, 핸드폰 하나 더 개통하면 어디 덧나요?”이승하는 강세은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자꾸만 마음이 당황스러운 게 어딘가 불안했고 이에 이승하는 점점 기분이 언짢아졌다.“아직도 얼마나 있어야 끝나는데?”얼굴을 하얀 거위 털 가면 아래에 숨긴 강세은은 고개를 돌리고 다시 코웃음을 쳤다.“그런

    Last Updated : 2024-04-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417화

    그들은 판자촌에서 떠나 호텔로 다시 돌아왔고 시시티브이가 없는 곳에 차를 세웠다.이승하와 강세은은 동시에 가면을 벗어 택이에게 던져주며 처리하라고 하더니 얼른 차에서 내려 호텔로 향했다.둘은 시시티브이에 손을 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특수 통로를 통해 얼른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는 순군 강세은이 이승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오빠 대신 나서줘서 고마워요. 방금 처리한 그 사람들 나 혼자서는 무리였을 거예요.”“그리고 특수한 내 신분이 혹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까 싶어 연인인 척 알리바이를 만들어준 것도 고마워요.”이승하는 더는 그녀와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하여 얼른 몸을 돌려 정문 방향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려 했다.“잠깐만요.”하이힐을 신은 강세은이 걸어나오더니 이승하에게 말했다.“요즘 국내외로 우리를 조사하는 사람이 많다고 오빠가 당부하랬어요. 절대 신분을 노출해서는 안 돼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 털어놓지 말아요.”이승하의 흠 잡을 데 없는 얼굴이 점점 차가워졌다.“육성재를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누가 너희를 조사하겠어?”강세은은 이승하의 뼈 때리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이번에 S 본부에 이렇게 큰일이 벌어진 건 확실히 오빠가 육성재를 잘못 건드려서였다.논리적으로 달린다는 걸 알고 있는 강세은은 군말 없이 이승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해요. 앞으로 조심할게요.”이승하는 차가운 시선을 거둔 채 신속하게 1층으로 내려가 로비를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주시하에 이승하는 빠른 속도로 호텔 앞에 세워둔 차로 향했다.서유는 도우미가 가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흠뻑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욕조에 물을 받아 샤워했다.몸을 깨끗하게 씻고 손바닥 상처를 처리한 서유는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래층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서재의 맨 뒤편의 책장에서 잃어버렸던 물건을 가져와 거실에 있는 유리 테이블에 전부 올려놓았다.준비를 마친 서유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이승하를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링컨이 별장 앞에 도착했다.

    Last Updated : 2024-04-30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418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상처 입은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보다가 이승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괜찮다, 어젯밤에 그가 무엇을 했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워싱턴 거리의 벤치에 앉아 하룻밤을 꼬박 앉아 있는 동안 그녀는 정신이 들었다. 그녀와 이승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 남자는 그녀가 쉽게 쳐다볼 수 없는 위치의 사람이었다.이 남자처럼 먹이 사슬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그녀는 알 수가 없다. 충분히 알지도 못하는 이 사람에 대해 믿음을 가졌다가 결국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에 이러한 신분 차이가 있어도 예전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용감하게 이 사람을 사랑한다면 아름다운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두 사람이 데이트할 때,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그녀가 메뉴판에 적힌 프랑스어를 읽을 수 없을 때.국회의사당에 참관하러 갔는데 그 안의 사람들이 이승하를 보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건넬 때.그녀를 데리고 만나러 간 친구들이 모두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전 세계의 귀족들이었을 때. 다른 여자랑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가 물어보려는 찰나 경비원이 문밖에서 그녀의 길을 막을 때. 비를 맞으며 호텔까지 쫓아왔지만 이곳은 영국 왕실 귀족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어가지도 못할 때.그녀는 비로소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가 서로에 대한 믿음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신분과 배경 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와 함께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그가 있는 정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벽을 넘어야 하는지 그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하필이면 그녀가 뛰어넘으려고 애쓰고 있을 때,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마음이 무너지게 된 그녀는 완전히

    Last Updated : 2024-04-30

Latest chapter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2화

    서유의 사망 소식을 들은 육성재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결국 그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고, 모든 이들이 묘지를 떠난 후에도 그녀의 묘비 앞에 남아 머물렀다.“서유 씨...”그는 묘비를 붙잡고 천천히 몸을 낮추어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젊지 않은 눈으로 그녀의 영정 속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내가 올 줄 몰랐죠?”육성재는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시작했다.“내가 한 사람을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나도 참 정이 깊은 놈이었네요.”영정 사진을 보며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너무 깊이 사랑해서 세상 어떤 여자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됐어요. 그러니 서유 씨, 나도 이승하 못지않게 당신을 사랑했던 거예요, 안 그래요?”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묘지의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새와 짐승들이 떠나고 나니 주변은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마치 지난 수년간 그의 마음속에 묻어둔 사랑처럼,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힌 채였다.그토록 짙은 사랑은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난 지금에서야 그는 그녀의 묘 앞에 와서 고백했다.그 역시, 깊이 사랑했노라고.모든 사람에게는 후회가 있다. 육성재의 유감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자신을 이렇게 바보처럼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서유는 이미 떠났는데, 육성재 난 왜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거냐? ’육성재는 그녀의 묘비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그러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천천히 일어나 발걸음을 돌렸다.그의 삶은 사랑이 아니라 일에 무게를 둔 인생이었다. 그는 생을 바쳐 육씨 집안을 세계 최고의 가문으로 일궈냈다.그는 상업계의 전설 같은 인물로 남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았던 육성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수도에 있는 송사월은 그녀의 죽음 소식을 제일 마지막으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1화

    생이 마감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은 그 5년 동안 이승하가 숨겼던 사랑이었다.몇 번이나 뒤척이며 잠에서 깼을 때, 자신의 몸이 단단하고 강인한 두 팔에 꽉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강하게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또한 주말에 식사할 때, 식탁 건너편에 앉은 이승하가 가끔 그녀를 몰래 훔쳐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오랜 짝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마친 후 그녀를 안아 자신의 가슴에 엎드리게 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래듯 잠들게 했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이승하의 사랑은 작은 순간순간에 담겨 있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타인에겐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승하 본인만은 아주 알고 있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힘들게 숨겨왔는지...서유의 눈은 이미 뜰 수 없었고, 몸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볼 힘조차 없었다.그녀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더듬어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것을 받은 사람은 정가혜였다.세월이 흐르면서 정가혜도 나이가 들었다. 젊었을 때의 맑은 목소리는 사라지고 약간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서유야, 조금만 기다려. 우리 며느리가 출산하면 바로 널 보러 갈게...”삶의 마지막 순간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왜인지 이미 메마르고 고갈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내 오열로 변해 멈출 수 없었다.“가혜야, 난 승하 씨가 너무 보고 싶어. 그 이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 부탁할게. 하준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줘. 엄마가 하준이 결혼식을 볼 수 없게 됐다고...”전화기 너머의 정가혜는 이 말을 듣고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서유가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어머니로서 아들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이승하를 따라갔을 것이다.얼마 전부터 서유의 몸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0화

    서유의 손가락이 이하준의 머리 뒤로 부드럽게 닿았다. 마치 이미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듯 그녀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언제쯤 결혼할 거니?”이하준의 몸이 경직되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유를 천천히 놓아주며 말했다. “어머니... 아직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어요.”아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유는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봐봐. 네 엄마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단다. 제발 네 아빠를 만나러 가게 해줘. “어릴 적엔 부모님이 그를 속박했지만, 커서는 그가 부모님을 속박했다. 오직 그 속박만이 그를 고아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만 더 이기적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그는 서유의 팔을 붙잡으며 간절히 말했다.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날 거예요. 그러면 결혼하겠습니다, 네?”결국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서유는 평소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교회에 가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네가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길 빌어주마...”서유의 소원을 결코 들어주지 말아달라고 하늘의 신들에게 기도하며, 이하준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코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그는 이승하가 남겨둔 로봇을 다시 가져와 서유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모두 로봇 프로그램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유언의 일부를 들려줄 것이며, 만약 그녀가 아버지가 말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살아야 한다고 전했다.처음에 서유는 이승하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봇이 말을 시작하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서재에 앉아 하루하루 이승하가 녹음했던 로맨틱한 말을 돌려서 들었다.마치 예전에 그가 그녀를 찾지 못했을 때 다른 이의 번호로 하루에 십여 통의 문자를 보내 그녀의 부재를 애도했던 것처럼.이제는 그가 먼저 떠났지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9화

    아들을 위해, 결국 서유는 이승하를 따라 죽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룻밤 사이 머리가 백발이 되어, 마치 열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모습이 되었다. 예전에는 세월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얼굴이 순식간에 주름투성이가 되었고,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그녀의 눈동자도 생기를 잃고 텅 빈 채로 아무 빛깔도 담고 있지 않았다.엄마가 되었으니 이제는 예전처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이승하의 무덤 앞에서 약속했다.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아들이 결혼하면 그때 찾아가겠다고. 만약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다음 생의 약속도 취소할 거라고. 그리고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이승하의 장례식에 서유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내어 비틀거리며 그의 무덤 앞에 섰을 때, 무덤가에서 그녀가 중얼거리던 말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그녀를 부축하며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이하준만이 그 말을 기억했다.눈 덮인 땅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던 그날 밤, 서유는 병원으로 옮겨져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이승하의 시신은 얼음관에 안치된 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일주일을 버텼다. 그녀가 깨어난 후, 그녀는 하얗게 센 머리와 멍한 눈빛으로 그를 단 한 번 보고는 곧바로 돌아섰다.그들이 이승하를 어떻게 묻었는지, 묘지는 어떻게 정했는지, 영정 사진으로 어떤 사진을 선택했는지 서유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차가운 베개를 매만지며 그가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데만 몰두했다.‘만약 당신이 여기 있었다면, 내 하얀 머리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겠죠.’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그랬을 거예요.”이승하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서유가 그 때문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는 한참 동안 기뻐하며, 그녀 마음에 자신이 있다는 확신을 얻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녀가 그로 인해 속을 끓이고 밤낮으로 잠 못 이루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8화

    서유는 떨리는 속눈썹을 들어, 삶의 의미를 잃은 듯한 눈으로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아니, 난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야. 나와 그 사람, 그냥 여기 있을 거야. 내가 얼어 죽을 때까지, 누구도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어.”그녀가 여기서 얼어 죽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주변 사람들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먹먹해졌다. 모두가 그녀를 말리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서유는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단호하고도 완강하게, 이승하를 품에 안고 눈 덮인 땅 위에 앉아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이하준이 서유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손바닥을 힘껏 눌러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어머니,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아요. 그래서 지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드신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전 이미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까지 잃을 순 없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 주세요...”아들이 귀 옆에서 애절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서유는 천천히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빚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의 입술 끝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꽃이 피어난 듯한 미소였다.“난 이미 네 아버지가 떠날 준비를 오래전에 마쳤단다. 이제 그이가 정말 떠났으니, 당연히 나도 함께 가야지. 너도 알잖니. 그이가 살면 나도 살고, 그이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 아무도 이걸 막을 순 없어.”예전에 이하준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만큼이나 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성인식을 맞이한 바로 오늘, 부모님 두 분을 동시에 잃을 수 없었다.눈 덮인 땅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는 천천히 어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서유를 힘껏 끌어안았다.“어머니, 아버지는 제가 결혼하는 것과 자식을 낳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아버지는 그걸 보지 못하고 떠나셨지만, 어머니가 대신 그 순간을 기다려 주시면 안 되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7화

    눈물이 눈가에서 갑작스럽게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가슴을 찢는 통곡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 없이 흘러내릴 뿐, 그녀는 벌어진 입술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이생에서 이승하에게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바보, 당신이 아무리 피를 흘린다 해도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내가 무섭겠어요?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왜 굳이 혼자 이런 곳에 온 거예요?”마지막 이별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나 그녀의 이승하는 이런 안타까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모든 걸 숨겼다.만약... 그녀가 그 가짜 이승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평생 그의 몸조차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눈과 함께 얼어붙어 영원히 설산 아래에 묻혔을 것이다.이승하는 이미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질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게 하려고, 그녀를 속이기 위해 가짜 로봇을 만든 것이다.‘하지만 승하 씨...’‘당신이 아무리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든다 해도, 그건 당신이 아니에요. 당신이 평생 날 속일 수 있다면 난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 그 거짓말은 단 한 순간도 버티지 못했잖아요.’‘당신은 내가 당신을 찾으러 올 것을 허락하지 않았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가짜 로봇을 만들어 내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피를 흘리는 고통을 혼자 감당하며 이런 깊은 산속에서 눈과 마른나무를 친구 삼아 떠나지도 않았겠죠.’그녀의 이승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동시에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그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지만, 그의 사랑 덕분에 서유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죽는다면 그것은 한평생의 약속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이제 먼저 떠난 이승하가 황천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서유는 알 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6화

    마치 무언가 예감이라도 한 듯, 이하준이 떨리는 손으로 이승하의 손을 움켜쥐던 순간, 서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네발로 기어 이하준에게 달려갔다.그녀는 여전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그 단호한 시선은 이승하의 얼어붙고 하얗게 질린 손에 닿자마자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깐 채,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이승하를 덮은 눈을 미친 듯이 파헤쳤다.깊은 산속의 눈은 산 아래보다 훨씬 더 두꺼웠다. 끝없이 쌓인 층층의 눈 속에서 서유는 온 힘을 다해 이승하를 파내던 순간, 그의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흐르는 피가 일곱 군데에서 새어 나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더 이상 어떠한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하준은 아버지의 침묵하는 모습을 목격하자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마음속 어딘가가 찢어지듯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듯, 그의 세계는 단숨에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하준아.”서유의 고요한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도와줘.”이하준은 어머니의 충혈된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탁에 정신을 차렸다. 서유의 눈빛에는 슬픔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이승하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단호함만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얼어붙은 이승하의 손과 얼굴을 붙들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를 녹이려는 듯 필사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이하준도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의 발을 감싸 쥐었다. 그는 얼어붙은 신발을 벗기고 자신의 배 위로 올린 뒤, 손바닥으로 아버지의 다리를 위아래로 문지르기 시작했다.서유는 이승하의 얼굴에 덮인 얼음을 녹이며, 그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지친 손으로 그의 얼굴을 계속 문지르며 이렇게 말했다.“여보, 당신이 나더러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나 정말 잘 기다렸는데, 왜 약속을 안 지키고 돌아오지 않은 거예요?”“지금이라도 눈을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5화

    눈밭을 헤매며 이승하를 찾고 있던 서유는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마치 영혼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오직 그녀 자신뿐, 영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 서서 한참을 있다가 손을 들어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세 번 뛰고 난 뒤, 가슴 깊은 곳에서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아픔이었다. 몸을 굽히며 고통을 참고자 했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직감적으로 그녀는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계속 그를 찾으려던 그 순간, 눈 위로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한 사람이 붉은 리치 한 송이를 손에 들고 걸어왔다.“여보,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야?”눈앞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승하를 보자,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서유는 한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역시 그가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서유는 들고 있던 우산을 내던지고 마치 숲속의 토끼처럼 기쁨에 차 달려가 이승하의 품에 안겼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익숙한 향기에, 서유는 깊게 숨을 내쉬며 안심했다.“당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정말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요!”이승하는 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언제나 그랬듯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이었다.“내가 말했잖아.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라고. 나한테 쉽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그의 품 안에 꼭 안긴 서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더욱 꽉 껴안았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손에 닿자, 서유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이승하를 밀쳐내며 소리쳤다.“당신... 당신은 내 승하 씨가 아니야!”이승하는 요즘 들어 많이 수척해졌고, 허리를 감쌀 때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승하는 예전처럼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당신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4화

    시린 눈보라 속에 홀로 서 있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남은 힘으로 긴 손가락을 들어 흔드는 그를 보며, 이연석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며 재빨리 눈 덮인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형! 내가 먼저 의사를 부르고, 로봇을 산으로 올려보낼게. 그러고 나서 바로 돌아올 테니까 그 자리에서 꼭 기다려. 금방 올게!”밤길은 험난했지만, 사방으로 쏟아지는 눈은 길을 환히 비춰주어 이연석은 마치 대낮처럼 보이는 길 위를 달렸다. 하지만 급한 걸음은 때때로 방향을 잃고, 몇 차례나 눈밭에 무릎을 꿇으며 휘청거렸다.멀어져가는 이연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하는 느려지는 심장 박동을 가슴으로 느끼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생명의 문이 서서히 닫혀가는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였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서유가 그의 흔적을 찾으며 이름을 부르자, 이승하는 무성한 나무 사이에서 고개를 돌려 눈 덮인 길 위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단 한 번의 시선, 그로 인해 시간이 멈추고 만 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이제는 햇빛도 사라지고 눈보라만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승하 씨!”서유는 잠시 기다리다 이상함을 느끼고 별장 맞은편에 있는 집의 문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이승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아 헤맸다.이승하는 대답하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 그러나 온몸의 피가 쏟아지는 그는 예전처럼 힘찬 목소리로 외칠 수 없었다.그는 겨우 뜨고 있는 흐려진 눈으로 고개를 돌려 한 걸음씩 깊은 산 속으로 걸어갔다.그곳은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하얀 눈이 밤하늘을 밝혔어도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가 누울 만한 최적의 장소였다.이승하는 생각했다. 얼음과 눈이 몸을 얼려버리면 야수가 지나가더라도 그의 썩은 살을 물어뜯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설산 아래에 묻히면 그의 외모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