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넘게 전원을 켜지 않아 핸드폰은 배터리가 부족한 상태였고 그가 충전을 하려던 찰나에 택이가 돌아왔다.그는 핸드폰을 옆에 두고는 고개를 들어 물건을 잔뜩 들고 오는 택이를 쳐다보았다.“물건 찾아오라고 했었잖아.”택이는 큰 주머니 몇 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득의양양하게 입을 열었다.“갔었어요. 이건 찾아온 물건들이고요.”그는 얼른 칭찬해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물건을 확인한 이승하는 웃음기가 사라져 버렸다. “누가 이렇게 빨리 찾으라고 했어?”그의 말에 택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S' 조직은 늘 일 처리가 빠르고 정확했다. ‘보스께서는 그런 규칙을 알고 계시면서 왜 나한테 일을 빨리 처리했다고 하시는 거야?’이승하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 물건들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다시 돌려보내.”“보스, 왜 그러세요?”깜짝 놀란 택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승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택이를 얼어죽일 만큼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택이는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는 그가 지금이라도 당장 자신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릴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살짝 떨던 택이는 문뜩 생각이 떠올랐다.“보스, 앞으로 서유 씨에 관한 일은 제가 최대한 늦게 처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그가 손을 들어 이승하에게 인사했다.“저 먼저 갑니다. 행복하세요.”그는 발바닥에 기름이라도 묻힌 듯 빠른 속도로 서재를 빠져나갔다. 택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이승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싸늘한 그의 시선이 그 물건 더미로 향했다. 그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들을 모두 책장에 넣었다.책장의 문을 닫은 후 그는 몸을 돌려 부엌으로 갔다. 안에 있던 하인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나가요.”하인은 그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재빨리 주방을 빠져나갔다.이승하는 수납장 옆으로 가서 메뉴판을 꺼내어 한 페이지씩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서유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아까 자신이 마음이 약해져 타협한 걸 후회했다.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고 눈 밑에 웃음기가 가득했다.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또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장난 그만할게. 일어나서 뭐 좀 먹자.”그녀는 지금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의 키스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화가 치밀어올랐다.이승하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보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백합죽을 들고 침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그는 그릇의 죽을 한 번 또 한 번 저어서 식힌 다음 작은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 그녀의 입에 가져다 댔다.“먹어.”서유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몸을 옆으로 돌리고 창밖의 정원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그는 한없이 다정한 눈빛을 지었다.“서유야, 배고프지 않으면 우리 다른 일 좀 해볼까?”그 말에 서유는 몸을 돌리고는 눈을 부릅뜬 채 그를 노려보았다.그는 팔꿈치를 무릎 양쪽에 괴고는 몸을 낮춘 채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서유야, 나 몇 년 동안 참았어. 너무 괴로워.”그녀는 더 이상 그의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이불을 두른 채 몸을 일으키고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죽이나 줘요.”이승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내가 먹여줄게.”“나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다고요.”이승하는 아무 대꾸도 없이 담담한 눈빛으로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았다.깊은 숨을 들이마시던 서유가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리자 남자는 그제야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그는 한 숟갈, 한 숟갈씩 그녀에게 죽을 먹인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더 줄까?”고개를 흔들던 그녀는 죽 그릇을 내려놓고 냅킨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닦아주는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예전에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이런 적이 없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좀 많이 변한 것 같다.그녀의 얼굴에 있는 미세한 표정을 눈치챈
서유는 그의 품에 기대 이승하의 꿀 떨어지는 눈빛을 보고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부드럽고 나른한 모습을 보니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이승하 눈가의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그는 서유를 안고 드레스 룸으로 향하더니 그녀를 소파에 내려주고는 벽에 달린 숨겨진 버튼을 눌렀다.고급 옷장들이 버튼을 누른 순간 일제히 열렸고 스타일이 비슷한 오트 쿠튀르 드레스들이 서유 앞에 펼쳐졌다서유는 그 옷을 보더니 약간 의아했다. 전에 그녀가 즐겨 입던 스타일을 이승하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네가 이 집으로 들어온 뒤로 도우미한테 미리 준비하라고 했어.”이승하가 간단하게 설명하더니 그중에서 허리 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A라인 드레스를 골라 그녀에게 건네주며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눈짓했다.드레스를 받아 든 서유는 잠깐 망설이며 이승하를 바라봤다. 이너 웨어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웠다.안에는 누드로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승하가 옷장에서 이너 웨어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몸매가 예전 그대로인 것 같은데 아마 맞을 거야.”서유는 약간은 풍만한 핑크색 속옷과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이승하를 번갈아 쳐다봤다.그러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속옷을 받아서 들고 얼른 탈의실로 들어갔다.몸에 걸친 가운을 벗어 던지고 드레스로 갈아입은 서유는 거울을 확인했다. 드레스는 매우 점잖았지만 그래도 서유의 잘빠진 몸매는 감추지 못했다.긴소매는 팔을 다 가렸고 긴치마는 발목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목을 제외한 기타 부위는 딱히 드러난 데 없이 단정했다.서유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갈아입고 나왔다. 이승하는 서유의 새하얀 손을 잡더니 그녀를 데리고 링컨에 올랐다.뒷좌석에 앉은 서유는 창밖으로 스치는 건물의 영롱한 불빛을 바라봤고 이승하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그런 서유를 바라봤다.둘 사이의 거리는 예전처럼 그렇게 마냥 넓어 보이지 않았고 매우 가깝게 앉아 있었다.이승하는 뒤로 서유의 허리를 감싼 채 품속에 꼭 끌어안
이승하는 서유의 손을 잡고 호텔의 최상층으로 향했다.프렌치 레스토랑이었는데 여기서 워싱턴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이승하가 한 층을 통으로 빌렸는지 턱시도를 입고 리본 넥타이를 맨 웨이터들이 오직 그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했다.슈트 차림에 생기발랄한 프랑스 매니저가 그들은 테라스로 안내하더니 허리를 숙여 매우 고급스러운 메뉴를 건네주었다.이승하가 메뉴를 받더니 서유 앞에 놓아주었다.“서유야, 뭐 먹고 싶어?”메뉴를 열어본 서유는 빼곡하게 적힌 불어를 보더니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불어를 읽을 줄 모르는 서유는 궁색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머리를 귓가로 쓸어 넘겼다.맞은편에 앉은 이승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얼른 손을 뻗어 메뉴를 받아 갔다.그는 서유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직접 주문하라고 한 거지 이런 상황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이승하는 그런 자신을 탓하며 서유를 힐끔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일부러 영어로 허리를 숙인 프랑스 매니저에게 에피타이저와 메인 디시를 주문하더니 다시 서유를 바라봤다.“서유야, 디저트로 마카롱 아니면 에그 타르트?”이승하는 선택지를 주는 것으로 서유의 난처함을 덜어주려 했고 이게 조금 먹혔다.서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에그타르트요...”그녀는 말캉하면서도 단 음식을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가 에그타르트였다.이승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메뉴를 닫고 매니저에게 물러가라고 눈짓했다.프랑스 특유의 테이블에 촛대가 몇 개 놓여져 있었고 반짝이는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춰주었다.어두운 불빛 속에 하얀 셔츠를 입고 옷깃을 살짝 풀어 헤친 이승하는 더없이 귀티 나고 신비로워 보였다.그는 한 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가죽 소파에 기댄 채 별처럼 깊고 반짝이는 눈으로 맞은편에 앉은 서유를 바라봤다.서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 환경이 그녀를 눌러 긴장하게 하는 것 같았다.이승하는 그런 서유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갑자기 손가락을
첼로 연주하에 로맨틱한 식사가 끝났다.서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불어오는 찬 바람에 그녀의 단발이 시야를 가렸다.이승하는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 주더니 외투를 그녀의 몸에 걸쳐주었다.그러고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향했다.“서유야, 여기 오페라가 있는데 너...”이승하가 이렇게 말하며 옆에 선 서유를 내려다봤다. 그녀가 먼 곳에 있는 국회 청사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 걸 보고 말을 멈췄다.그는 뒤를 따르는 보디가드에게 눈치를 주었고 그의 뜻을 알아차린 보디가드가 신속하게 백악관 방향으로 향했다.“서유야, 우리 국회 청사 가자.”서유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오페라 준비했으면 오페라 보러 가요.”국회 청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설계를 본떠서 만든 거라는 심이준의 말이 떠올라 눈길이 더 갔을 뿐이었다.이것으로 이승하가 국회 청사로 데려가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너무 그녀를 챙겨준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승하는 입을 꾹 다문 채 서유의 손을 잡고 국회 청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서유는 그저 밖에서 구경만 할 줄 알았는데 이승하는 바로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국회 청사는 대외로 개방되어 있지만 사전에 예약해야 했고 저녁에는 개방하지 않았다.이승하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을 뿐인데 경비가 굽신거리며 안으로 들여보냈다.서유는 이에 크게 놀랐지만 더 놀랄 일은 뒤에 있었다.그들이 안쪽으로 들어가자 슈트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그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미스터 이.”전에 국내에 있을 때는 다들 이승하를 대표님이라고 불렀는데 외국에 오니 다들 그를 미스터 이라고 불렀다.처음엔 ‘미스터’가 그저 존칭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뭔가 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서유는 그 영문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옆에 있는 이 남자가 JS그룹의 대표님 말고도 다른 신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유는 그런 이승하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억지로 시선을 거두고는
이승하는 서유를 업고 차로 돌아와 그 길로 케네디 예술센터로 향했다.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서유를 바라봤다.“서유야, 너는 오페라 좋아해? 오케스트라 좋아해?” 전에 데이트 항목만 열심히 짜느라고 서유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한 이승하였다.서유는 사실 오페라에 대해서는 흥미가 크지는 않았기에 머뭇거렸다.하지만 이 짧은 망설임에도 이승하는 서유의 마음을 읽어내고 뒤에 선 보디가드를 향해 눈짓했다.보디가드는 얼른 예술센터로 들어갔다. 이승하와 서유가 안으로 들어가자 전문 요원이 그들을 이끌고 3층에 있는 VIP룸으로 향했다.예술센터의 무대는 수많은 파이프 오르간이 놓여 있었는데 예쁘면서도 웅장했다.서유는 VIP룸에 앉아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듣고 있으니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연주회 내내 그녀만 바라보던 이승하도 그 웃음을 보고는 마음이 뿌듯했다.“서유야, 드디어 웃네.”귀국하고 나서 그녀의 웃음은 애써 진정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고 이렇게 진심으로 기뻐서 웃는 웃음은 오랜만이었다.이를 들은 서유는 고개를 돌리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승하에게 말했다.“이런 오케스트라도 준비해 줘서 고마워요. 너무 좋아요.”이승하는 서유의 허리를 감싸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기게 하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너만 좋으면 됐어.”서유는 이승하의 포옹을 더는 거절하지 않고 그의 튼실한 가슴에 기대 재미난 연주를 감상했다.연주회가 끝나고 이승하는 살짝 졸음이 쏟아진 서유를 안고 예술센터에서 나와 차로 향했다.차에 오른 서유는 흐리멍덩해서 안전벨트를 당기며 머리를 차에 기댄 채 한잠 자려고 했다.그때 이승하가 갑자기 서유를 홱 끌어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다리위에 앉혔다.“내 몸 위에 기대서 자.”예전에도 그는 자주 졸려 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단잠을 이룰 수 있게 다독여주곤 했다.그도 그녀가 잠든 후 그녀를 부드럽게 대한 적이 많지만 그녀가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이승하는 서
바닥에 넘어진 서유는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서유는 바로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진 이승하를 바라봤다.낮은 신음과 함께 이승하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넘쳐흘렀다.“미스터 이!”차에서 내린 보디가드들이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들은 신속하게 그쪽으로 뛰어가더니 그를 부축해 병원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이승하는 이를 힘껏 뿌리치더니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서유에게로 향했다.그는 한쪽 무릎을 꿇더니 서유를 바닥에서 일으키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했다.“서유야, 너 괜찮아?”그의 눈동자에는 긴장과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에 서유는 가슴이 떨렸다.서유는 자기가 차에 치였음에도 그녀를 먼저 걱정하는 이승하를 멍하니 바라봤다.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그녀는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이승하는 서유가 아무 말이 없자 아까 자기가 너무 세게 밀친 바람에 서유가 다친 줄 알고 얼른 그녀를 안은 채 성큼성큼 차로 향했다.이승하의 품속에 안긴 서유는 그의 입가에 맺힌 핏자국과 점점 하얘지는 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승하 씨, 아까 피 토했잖아요. 장기를 다친 것 같으니 힘 빼지 말고 얼른 나 내려줘요.”이승하는 서유가 이렇게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그녀를 차에 태우더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치고 간 슈퍼카에 앉은 약을 빤 미국 남자를 차갑게 쏘아봤다.“저 사람한테도 차에 치인 느낌이 어떤 건지 느끼게 해줘요.”이 말은 뒤로 이승하는 차에 올라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기사에게 명령했다.“병원으로 가요.”병원을 향해 내달리는 차 안에서 이승하는 뭔가 생각난 듯 손으로 서유의 뒤통수를 살살 만졌다.못 같은 단단한 물건은 없자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말했다.“다행이야, 괜찮아서.”서유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더니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나는 괜찮은데 당신은 어디 불편한 데 없어요?”장기를 다쳤다면 외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다행히 출혈량이 많지는 않고 심각한 수준은 아닙니다. 먼저 약물 치료하고 경과를 지켜보다가 더 심각해지면 아무래도 수술해야 할 것 같습니다.”원장은 손에 든 결과를 내려놓더니 침대에 반쯤 기대 누운 이승하를 바라봤다. 입에서 더는 피가 흘러나오지 않자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입원 기간에 주의해야 할 사항은요?”“음식과 휴식에 주의해야 합니다. 격렬한 운동은 절대 안 돼요.”서유는 이를 머릿속에 기억하고는 이승하의 팔을 처치해 주는 의사에게 물었다.“팔은 어떤가요?”“그냥 스쳐서 피가 났을 뿐 뼈는 다치지 않았으니 큰 문제 없을 거예요.”서유는 다시 한시름 놓고는 까맣고 밝은 눈동자로 계속 그녀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승하를 바라봤다.그렇게 조용히 서로를 마주 보다가 이승하가 서유의 손바닥을 살짝 꼬집었다.“서유야, 걱정하지 마. 나도 너를 밀쳐내고 바로 피했어.”결국 치이긴 했지만 그래도 치명적인 부상은 피했으니 다행이었다.서유는 이승하의 부리부리한 눈매를 바라보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승하는 약을 먹고 살짝 피곤한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서유는 이승하가 잠들자 몸을 일으켜 입원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러 가고 싶었지만 그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서유는 그의 손을 밀쳐내려 했지만 순간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는 서유가 떠날까 봐 두려운 것처럼 약 효과를 이기지 못해 깊은 잠에 빠졌음에도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서유는 그런 이승하의 모습에 굳게 닫혔던 마음이 천천히 열리는 것만 같았다.서유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정교하다 못해 하느님이 만든 조각상처럼 잘생긴 그 얼굴을 매만졌다.“승하 씨…”서유가 그를 부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결국 서유는 이 이름을 내려놓지 못했다.서유는 침대맡에 앉아 그를 지켜보며 과거를 회상했다.하나하나 세세히 되짚어보니 그의 인내와 사랑이 느껴졌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뜨고 나서야 이승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그는 침대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