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이 없는 그녀를 쳐다보며 이승하는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을 뻗어 침대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병원 원장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그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이 여자 신체검사 한 번 해봐요. 약물 때문에 다른 곳에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지 한번 검사해 봐요.”원장은 그런 약 때문에 장기가 손상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서유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말리려고 했지만 그녀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원장은 이미 병실을 빠져나갔다. 병원의 대주주가 분부한 일이니 원장은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속하게 각 과에 연락해 전문의를 파견하여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였다. 서유는 몸 전체를 검사받았고 하다못해 약간의 빈혈 증세까지도 전부 다 이승하에게 보고되었다. 예전에 가짜 보고를 받았던 트라우마가 있기라도 하듯 그는 의사를 바꿔가면서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였고 의사들의 답이 일치하자 비로소 그들의 말을 믿었다. 마지막으로 검사를 맡은 안과의사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챘다. 그는 즉시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돌아보며 물었다.“이 대표님, 혹시 환자분께서 실명한 적이 있으신지요?”그 말에 몸이 굳어진 이승하는 고개를 숙이고 서유를 쳐다보았다.“실명한 적이 있었어?”서유는 그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그녀의 눈을 어루만졌다.“언제?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며 서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죽기 전에 한동안 실명했었어요.”죽기 전이라는 말이 칼처럼 그의 심장을 찔렀고 피를 철철 흘릴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전해졌다. 그녀는 여태껏 심부전증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실명의 고통도 겪고 있었다. 반면, 그는 그녀의 몸이 가장 무기력할 때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돌봐주기는커녕 무자비하게 그녀에게
“혼자 갈 수 있어요. 빨리 내려줘요.”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그의 품에 안겨 가는 건 정말 말이 안 되었다. 서유는 내려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승하는 그녀를 꼼짝도 못 하게 하였다. 그는 그녀를 안은 채 병원을 떠났고 곧장 그녀를 차에 태웠다. “워싱턴은 안전하지 않아.”이승하는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그녀에게 매준 후, 운전기사한테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워싱턴 지사에서 파견된 운전기사는 이승하의 스타일을 잘 몰라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서유를 여러 번 쳐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승하가 여자를 꼬시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이승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운전기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 오지 마.”운전기사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다시는 운전하러 오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회사에 오지 말라는 건지 운전기사는 그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빠르게 떠나는 차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생각하던 운전기사는 그제야 깨달았다.“뭐야? 나 해고당한 거야?”한편, 이승하는 차에 시동을 걸고 한 손으로 후진해 워싱턴 거리를 빠져나온 뒤 서유를 향해 물었다.“어디서 지내고 있어?”서유는 그가 자신을 데려다주기를 원치 않았지만 이승하는 제멋대로였다. 그는 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했고 그녀는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그녀는 안전벨트를 잡고 별로 내키지 않아 하며 그에게 호텔 주소를 알려줬다.이승하는 백미러를 통해 서유를 살폈고 수심이 가득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 그는 그녀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거두고는 핸들을 힘껏 잡고 빠르게 호텔로 향했다. 호텔 입구에 도착한 뒤, 서유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고마워요, 이승하 씨.”공손한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가 어젯밤에 두고 간 핸드백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서유는 핸드폰이 들어있는 핸드백을 받아쥐고는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문을 닫고 돌아서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
텅 빈 서랍을 보고 그녀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그림책은 언니가 남긴 유품이었고 그녀는 지금 그걸 잃어버리고 말했다. 서유는 몇 초 동안 넋을 놓은 채 서랍을 바라보다가 심이준의 앞으로 다가가서 냉정하게 분석했다. “일반 도둑들은 돈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러나 이 사람들은 디자인 원고까지 훔쳐 갔고 그건 아마도 처음부터 그걸 노렸다는 뜻일 거예요. 혹시 업계에서 김초희의 디자인을 탐내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지 한번 잘 생각해 봐요.”한편, 경찰에서 황금색 화필 그림을 보내고 있던 심이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동작을 멈추었다.그가 고개를 들고 서유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김초희 씨의 디자인을 탐내는 디자이너는 많아요. 하지만 워싱턴까지 쫓아와서 훔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뭔가 생각이 난 듯 그는 재빨리 경찰에게 몇 명의 디자이너 이름을 알려주며 조사해 보라고 했다.경찰들이 단서를 가지고 떠난 후 심이준은 서유 앞으로 걸어갔다. “이 호텔은 안전하지 않아요.”그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 현장 탐사는 이젠 끝났으니 여기서 뭘 더 하면 돼요?”여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면 일찍 귀국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장 탐사만 마치면 귀국할 수 있었는데 물건을 도난당했으니 물건은 찾고 봐야죠.”그 말에 동의하는 서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국한다고 하더라도 그전에 언니의 유품은 꼭 찾고 싶었다. “그럼 호텔을 바꾸죠.”심이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가진 돈 있어요?”그의 말에 뒤돌아서 다른 서랍을 열어보니 그 안에 있던 지갑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은행 앱을 확인했고 정가혜가 준 2억도 어젯밤에 강도들이 가로채 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온 심이준은 그녀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당신도 나랑 상황이 똑같네요.”서유는 잔액이 0원이 된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 돈은 정가혜가 힘들게 번 돈이었다.
허우적거리며 이승하의 품에서 벗어난 그녀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그를 바라보았다.“어디로 날 데려가는 거예요?”잔뜩 경계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윽했던 그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내 별장으로 가.”그 말에 서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병원에서 내가 한 말 못 알아들었어요?”더 이상 얽히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자고 분명히 말했는데 자신의 별장으로 가자니?이승하는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알아들었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이 어디로 갈 수 있는데?”그의 말 한마디에 서유는 말문이 막혔고 난처하기만 했다.“동료와 함께 방법을 찾아봐야죠.”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자기 코도 석 자인 사람한테 무슨 방법이 있겠어?”서유는 그 앞에서 체면을 되찾고 싶었지만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나...”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서유, 호텔은 안전하지 않아. 내 말 들어. 내 별장으로 가.”해외는 환경이 혼잡하여 그가 그녀의 신변 안전을 항상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자신이 보이는 곳에 있어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서유는 주먹을 불끈 쥔 채 고개를 들고 이승하를 쳐다보았다.“내 안전을 위해서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내가 당신의 별장에 묵게 된다면 성이나 씨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그 말에 이승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 여자랑 무슨 상관이야?”서유는 손바닥을 문지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제 그 여자가 당신을 안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는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 그가 앞으로 다가가 가녀린 그녀를 품에 가두고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잘 들어. 날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야.”가슴이 떨린 서유는 믿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승하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어제는 내가
그녀를 유혹하듯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서유는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그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그 여자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병원에서 그녀는 그를 거절한 이유가 그를 사랑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그동안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함께였던 적이 없었다. 늘 서로를 탐색하고 의심만 했을 뿐이었다. 비록 여러 가지 오해로 인해 생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상처와 절망은 그녀가 실제로 겪었던 것들이다. 그렇게 서로를 괴롭히고 얽히고설킨 과거는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고 다시는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질투하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녀는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정말 성이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했다. 그는 그녀와의 거리를 살짝 벌리고 실망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당신은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나 보군.”서유는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용기 내어 말했다.“예전에는 신경이 쓰였어요.”예전이라는 두 글자를 들은 이승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시간의 벽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후회한다고 해도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실망감이 가득 찬 그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고 잘생긴 그의 얼굴도 점점 창백해졌다. 그는 엘리베이터의 문에 대고 있던 손을 거두고는 옆으로 몸을 돌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떨어지는 숫자를 응시했다. 서유는 도도하고 쓸쓸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난 당신이랑 성이나 씨가 그렇고 그런 사이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당신이 나한테 별장에 묵으라고 했을 때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예요. 당신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이승하는 못 들은 것처럼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도 없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그가 돌아서서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끌고 호텔 밖으로 나갔다.그는 그녀를 강제로 차에 밀어 넣었고 그녀의 의
그 모습에 이제 막 화를 가라앉힌 이승하는 순식간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서유의 팔을 한 손으로 잡고 그녀를 차 안으로 다시 끌어당겼고 빨간 눈으로 그녀를 빤히 노려보았다.“서유, 위싱턴은 안전하지 않다고 했잖아. 내 말 무시하는 거야?”“난...”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그가 그녀의 말을 낚아챘다.“내 별장에 가고 싶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 위싱턴에서 당신이 나 말고 또 누굴 알고 있는데? 갈 데 있어?”분노에 찬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실망감이 엿들어있었다.“왜 이런 상황에서도 내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하는 건데? 그렇게 내가 싫은 거야?”그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 사랑을 못 본 척하고 함부로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서유는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가는 줄 알았어요?”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하지 않는 그를 보며 그녀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차근차근 설명했다.“차 안이 너무 답답해서 그냥 바람 좀 쐬고 싶었어요. 워싱턴이 안전하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함부로 다니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별장에 가고 싶지 않다는 건 더 이상 당신한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서지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에요.”그녀의 말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는 그녀의 팔을 놓아주고는 똑바로 앉아 다시 고개를 돌려 손에 든 담배를 껐다.차 안의 휴지통에 담배를 넣은 뒤 그가 짙은 눈빛으로 서유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영원히 나한테 빚진 게 없어.”듣기 좋은 그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잃어버린 물건은 사람을 보내 찾아볼게. 그동안은 내 별장에서 지내.”그런 그의 모습에 서유는 더 이상 그를
그의 말에 또 황당한 장면들이 떠오른 그녀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그러나 이승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뻗어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서유, 우리 둘이 선을 넘은 그 순간부터 당신은 이미 송사월한테 미안한 짓을 한 거야. 근데 이제 와서 왜 이리 망설이는 건데?”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 그녀를 앉힌 뒤 그가 입을 열었다.“많이 피곤해 보여. 씻고 푹 쉬어.”남자는 하인이 건네준 목욕 수건을 받아 욕실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욕실을 나섰다. 그녀는 닫힌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승하의 말이 맞았다. 어젯밤에 할 거 다 하고 이제 와서 그와 얽히고 싶지 않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었다. 그 생각에 그녀는 마음이 무거워졌고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입고 있던 드레스를 벗고 욕조에 누워 머리 위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한편, 욕실을 나선 이승하는 빠른 걸음으로 서재로 들어갔고 그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택이는 급히 소파에서 일어났다.“보스, 다녀오셨습니까?”이승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책상 앞에 앉은 뒤, 차가운 눈빛으로 택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워싱턴 쪽의 일은 잘 처리되고 있는 거야?”“처리해야 할 사람은 이미 다 처리했으니 더 이상 계열사에 위협이 되는 자는 없을 겁니다.”“한 가지 더.”“분부하십시오.”이승하는 호텔 방 카드 두 장을 택이 앞에 놓아두었다. “워싱턴에 있는 몇몇 상습범들이 어젯밤에 이 스위트룸에서 물건을 훔쳤는데 네가 가서 찾아와.” “네.”택이가 방키를 집어 들고 돌아서려는데 이승하의 싸늘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뒷마당으로 나가. 서유가 널 발견하지 못하게.”그 말에 택이는 뒤돌아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한편, 샤워를 마친 서유는 목욕 수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다.그녀는 나무 바닥을 밟고 문 앞에 서서
간절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뒤에서 자신을 꼭 껴안고 있는 이승하를 쳐다보았다. 수척해진 얼굴에 안색까지 창백해진 그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이승하는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차가운 사람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는 그녀를 잡기 위해 자존심 다 버리고 그녀한테 애원하고 있다. 마치 밤하늘에 걸려 있던 별이 갑자기 내려앉은 것 같았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별이라 할지라도 손에 닿을 수 없긴 마찬가지, 어떻게 그녀를 위해 자신을 바꿀 수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그녀의 손길에 이승하는 몸이 굳어졌다. 그는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눈빛에서 그녀가 뭔가 결단을 내렸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서유, 제발 나한테 이리 매정하게 굴지 마.”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더 힘차게 껴안았다. 엄청난 그의 힘에 서유는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고 뭔가 말을 하려던 그녀는 결국 그만두었다. 그녀는 손을 거두고 고개를 숙인 채 상처투성이인 그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며칠이라면 정확히 며칠을 말하는 거예요?”그녀의 말에 이승하는 흠칫했고 어둡고 빛이 없던 그의 눈빛에 다시 희망이 차올랐다. 그녀는 결국 마음이 약해졌고 그녀는 여전히 착하고 온순했던 그녀였다. 그는 더 세게 그녀의 그 두 손을 끌어안았고 마치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것처럼 그녀를 꼭 잡고 있던 손을 더 이상 놓지 않았다. “당신이 당신의 물건들을 되찾을 때까지.”영원이기를 바랐지만 그녀한테 송사월이 있는 한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할 수 없었다. 그녀가 결혼한 것을 알면서도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황당하고 불합리하고 미친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며칠 동안만이라도 그녀와 함께 있고 싶고 그녀의 숨겨둔 애인이고 싶었다. 서유는 손바닥을 움켜쥐고 한참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좋아요, 약속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