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정원에서는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고 사회자의 인사말이 들려왔다.하객은 많지 않았지만, 결혼식 진행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신랑인 송사월은 흰색 예복을 입은 채 레드카펫 반대편에 있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서유를 신부로 맞이하는 건 어릴 적 그의 꿈이자 서유와 한 약속이기도 하다.만약 기억을 잃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진작에 부부가 되었을 것이다...갖은 풍파를 겪은 끝에 드디어 그녀를 얻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게 아직 꿈인 것만 같았다.송사월은 멀리 있는 서유의 얼굴이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기 어려웠고 지금은 모든 것이 환상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그러다 사회자의 입에서 신부를 데리러 가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김태진은 뒤에서 휠체어를 끌어 주면서 그를 서유의 앞에까지 데려다주었다.송사월은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예쁜 신부 메이크업을 한 서유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이 어려있었고 그를 온전히 눈에 담고 있었다.송사월은 똑같이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녀에게 손을 건넸다. 서유는 천천히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사회자의 입장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레드카펫을 걸어갔다. 이 길은 마치 어릴 적 송사월의 집념을 채워주는 듯했다.그렇게 어느새 주례사 앞까지 도달한 두 사람은 이제 서로를 향한 혼인서약 낭독만 남겨놓고 있었다.그때 정원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요.”소수빈은 원래 결혼식이 끝난 뒤 서류를 전해주려고 했지만, 화를 못 이기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하객석에 앉아있던 주서희는 갑자기 나타난 소수빈 때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황급히 그에게로 달려가 물었다.“오빠,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결혼식에 이런 식의 행동은 큰 민폐가 아닐 수 없다.“두 사람한테 결혼선물 주러 온 것뿐이야.”김태진은 서류봉투를 들고 서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승하는 얼굴을 굳힌 채 송사월과는 할 얘기가 없다는 사람처럼 입을 꾹 닫고 있었다.송사월은 그런 그의 태도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옅게 웃어 보였다.“확실히 어릴 때는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능력이 되는 어른이 돼서 서유와 결혼해 평생 고생할 일 없게 해주겠다고 결심했죠...”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잠깐 뜸을 들이더니 과거를 회상하듯 눈가가 조금 어두워졌다.“그거 아세요? 서유는 저한테 몇 번이나 물었어요. 대체 언제 자신을 신부로 맞이할 거냐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고 그 기다림이 지금에 와서야 끝이 났죠. 이제야 알았어요. 어떤 일은 마냥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이승하의 차가운 눈빛이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결국에는 소원대로 결혼하게 됐네요.”송사월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렇죠. 이렇게 결혼식을 올리게 됐죠...”이승하의 얼굴이 천천히 가라앉았다.“축하해요.”이 말을 남기고 다시 자리를 뜨려는데 또다시 송사월이 말을 걸어왔다.“이 계약서 안 받을 겁니다. 도로 가져가세요.”이승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리더니 더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사월을 바라보았다.“당신한테 준거 아닙니다.”“저도 압니다.”송사월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자신을 구해주고 지켜주고 또 지금 화진 그룹까지 돌려주려는 이 모든 행동이 다 서유를 위한 거라는 걸 송사월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승하가 아직 서유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까지...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송사월은 이승하를 향해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이토록 사랑하면서 그때는 대체 왜 서유를 버린 겁니까?”“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일 텐데요.”그 말에 송사월은 다시 계약서를 건넸다.“마음만 받을게요. 더 이상 이 대표님께 신세 지고 싶지 않아서요.”이에 이승하가 코웃음을 쳤다.“당신이 김씨 가문으로 돌아가야 서유를 지킬 힘이라도 생기는 겁니다. 지금의 당신은 내게 신세를 논할 자격이 못
“원래 그날 프러포즈하려고 했었는데 사소한 다툼이 생겨버렸어요... 제 탓이었죠.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던 서유가 남자직원이랑 웃으며 얘기하는 걸 보고 질투가 나서 상처가 되는 말을 해버렸거든요. 그 때문에 서유가 화가 나서 빗속으로 달려나갔어요.”송사월은 계속 말을 이었다.“그날 밤은 폭풍우가 내렸고 제가 다급하게 따라가서 업으려고 하니까 화를 내며 못 업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뒤를 따라갔어요. 다툼이 생겼을 때 서유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요. 그날도 내가 입을 꾹 닫고 있어서 화가 났을 거예요. 그러다 브레이크가 들지 않는 차와 마주하게 됐죠...”송사월의 쓸쓸했던 얼굴이 어느새 초연하게 변해버렸다.“이 말을 전하는 이유는 고작 질투 따위로 서유한테 상처 주지 말고 다툼이 생겼을 때는 침묵보다 대화로 풀었으면 해서예요. 두 사람이 무슨 이유로 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제 상황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서요...”예전의 그는 이승하와 마찬가지로 고집이 세고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항상 진정 아끼는 걸 잃고 나서야 사랑이 뭔지를 깨닫게 된다...송사월이 긴 얘기를 마칠 때까지 이승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동공이 조금 흔들릴 뿐이었다.만약 그때 당시 송사월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서유라는 여자를 곁에 두지도 못했겠지...송사월은 수중의 반지를 미련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마침내 그걸 이승하에게 건네주었다.“이 결혼식은 당신에게 줄게요.”이승하는 사랑 때문에 포기를 선택했고 그 덕에 송사월도 그제야 진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승하는 송사월이 이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는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그의 손에 들린 반지를 보는 순간 다시 감정을 꾹 짓누르고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서유는 물건이 아닙니다. 당신과 내가 함부로 주느니 마느니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서유는 당신과 다시 시작하는
서유는 줄곧 아름다움을 고집하던 여자였다. 추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건 싫다고 죽기 전에 부기 빼주는 약을 받을 정도였으니까.그런 그녀의 등이 지금 까맣게 타버렸고 전처럼 매끄럽지도 부드럽지도 않게 되어버렸다.이승하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철렁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손에 든 우산을 옆으로 던져버리고 그녀의 앞에 꿇은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서유의 등은 드레스와 함께 까맣게 타버렸고 뼈는 살을 뚫고 나와 있었다.이승하는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하지만 그 순간 서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땀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파요... 만지지 마세요... 아파...”이승하는 다급하게 손을 거두어들이며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아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주먹만 꽉 쥐고 있었다.그때 저 멀리에서 주서희가 뛰어왔고 이승하는 그녀를 향해 외쳤다.“주서희, 빨리 어떻게 좀 해 봐!”그의 목소리는 다 갈라져 있었고 떨리는 목소리는 지금 이승하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알려주었다.서유가 지금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아픈 만큼 이승하 역시 아픈 것만은 확실했다.“왜, 왜 바보같이 거기서 나를 감싸는 거야...”서유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송사월을 한 번 보고 또 이승하를 한번 바라보고는 옅게 웃었다.“승하 씨한테는... 빚진 게 너무 많아서...”그녀는 이번 생에 두 남자에게 빚을 졌다.송사월은 그녀의 반평생 인생을 보살펴 주었고 그녀를 위해 자살하려 했으며 양쪽 다리까지 잃었다.그리고 이승하는 그녀를 8년 동안 사랑해주었고 그녀를 위해서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갚지 못할 일들을 많이 해주었다.하여 남은 생은 송사월을 위해 살며 이승하의 돈을 갚기 위해 노력하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뭘 어떻게 해봐도, 어떤 선택을 해도 그들에게는 상처밖에 주지 못했다.사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원인은 그녀인데... 차리리 3년 전에 죽었어야 했는데
그 칼이 목으로 향하려 하는 순간 이승하는 가볍게 옆으로 피한 다음 남자의 손목을 반대로 꺾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칼을 뺏어 들고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에 찔렀다.있는 힘껏 찔러 넣은 터라 이승하의 흰 셔츠가 빨갛게 물들어버렸다.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칼을 뽑은 다음 또 한 번 힘껏 찔렀다...“대표님!”주서희보다 한발 먼저 도착한 소수빈은 그의 살의를 감지하고 다급하게 제지에 나섰다.“살인은 안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한테 맡겨주세요!”하지만 바로 그때 환경미화원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이승하, 어디 계속 찔러 봐! 네가 사람 하나 죽인 뒤에도 계속 꼭대기에 앉아있을지 궁금하네!”이에 이승하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소수빈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칼날을 환경미화원의 목 쪽을 향해 힘껏 찔렀다.다행히 소수빈이 한 발 더 빨랐지만, 그 칼날은 소수빈의 손등을 아프게 파고들었다.소수빈은 고통을 뒤로하고 이승하를 향해 말했다.“대표님 도발에 넘어가지 마세요. 지금은 서유 씨를 구하는 게 먼저입니다.”그때 마침 주서희가 헐레벌떡 뛰어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까맣게 변해버린 서유의 등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주변에 뭐라도 있을까 싶어 둘러봤지만, 이곳에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도구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고 야속한 비만이 계속 내릴 뿐이었다.한편 휠체어에 앉은 채 굳어버렸던 송사월은 그제야 이성을 차린 듯 떨리는 목소리로 주서희에게 말했다.“서유를 보육원으로 데려 가.”주서희는 그 말에 초조한 눈빛으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대표님, 어서 서유 씨를 보육원으로 데려가 주세요!”이승하는 그제야 손에 든 칼을 버리고 조심스럽게 서유를 안아 올린 다음 보육원 방향으로 뛰었다.주서희도 같이 뛰려고 몸을 일으켰다가 이곳으로 달려오는 정가혜를 보고 말했다.“가혜 씨,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정가혜는 발걸음 멈추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병원에 연락한 다음 다시 보육원으로 향했다.상황이 급박하게
보육원 내부.이승하는 주서희의 도움 아래 서유를 조심스럽게 카펫 위에 올려놓았다.주서희는 보육원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 다음 서유의 등에 묻은 황산을 수건으로 닦아낸 후 깨끗한 물로 씻어 주었다.그 과정에서 서유는 의식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리고 이승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며 심장이 난도질당하는 기분을 느꼈다.죄책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어 아무런 혈색도 없는 얼굴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그의 손끝에 스치는 서유의 피부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이승하는 이 순간 3년 전 그녀를 잃어버렸던 공포가 또다시 자신을 감싸오는 것을 느꼈다.덜덜 떨리는 손이 서유의 코 아래로 향하고 그는 그녀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온몸이 굳어버렸다.“서유가... 숨을 안 쉬어...”이승하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서희의 손이 멈칫하더니 서둘러 서유의 맥박을 잡아보았다.“미약하지만 아직 숨은 붙어 있어요. 하지만 전에 큰 수술을 받은 적도 있는데 이런 일까지 당해버려서 몸이 얼마나 버텨줄지는...”주서희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승하의 이성을 잃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야.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일어나서는 안 돼. 내가 그렇게 안 놔둬!”그는 주서희 손에 든 물을 가져와 서유의 몸을 다급하게 씻겨내기 시작했다.정가혜는 그 모습을 보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친구를 살려달라고 하늘에 빌었다.어느새 문밖에 도착한 송사월은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휠체어에 앉아있는 탓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지독한 무력감에 그는 애먼 자신의 다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지금은 마치 심장 부근이 좀먹는 것처럼 아팠다.주서희는 이승하의 손에 황산이 묻을 것을 염려해 그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이승하는 그녀의 말림 따위는 듣지 않은 채 계속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그때 보육원 밖에서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주
정가혜와 소수빈이 도착했을 때 이승하는 마치 폐인처럼 앉아있었다.소수빈은 그의 손끝이 까맣게 변한 것을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대표님, 일단 손부터 치료하시죠!”그러고는 의사를 데려와 그의 손을 치료해주었다.이승하는 자신의 손이 붕대로 감길 때까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수술실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정가혜도 꾹 닫혀있는 수술실 문을 보며 두 손을 꽉 쥐고 하늘에 빌고 있었다.영겁 같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다.수술복 차림의 주서희가 땀 범벅이 된 채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정가혜가 그녀를 향해 다가가려는 그때 검은 실루엣이 빠르게 그녀의 곁을 지나쳐갔다.“어떻게 됐어?”이승하의 몸은 아직도 흠뻑 젖어있었고 빗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그는 주서희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다행히 잘 버텨줬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상처가 크다 보니 언제 의식을 차릴지는...”이승하가 수술실로 들어가려 하자 주서희가 그를 말렸다.“서유 씨는 이미 중환자실로 옮겨졌어요.”“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이승하의 말에 주서희는 그와 정가혜를 데리고 ICU로 향했다.“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이곳에서 얼굴만 볼 수 있어요.”이승하는 유리창을 통해 혈색이 돌지 않는 얼굴로 병상에 엎드린 여인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주서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언제쯤 저기서 나올 수 있지?”주서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상황을 봐야 알겠지만 최소 2주는 걸릴 거예요. 생명에 위협이 없다고 판단이 되어야 나올 수 있어요.”이승하의 몸이 눈에 띄게 굳어버렸고 그의 시선은 다시 병상 위의 여인에게로 향했다.가슴속에는 죄책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매번 그가 고집을 피운 일은 꼭 그녀를 다치게만 한다.만약 그녀를 결혼식장까지 데려다주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결혼식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황산을 대신 맞아주는 일도 없었을 것을...일전에 그녀를 한 번 다치게 한
의사들의 집중 치료 덕에 서유는 2주가 지난 시점에서 드디어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살갗이 찢겨나가는 고통에 그녀는 또다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주서희와 의사들은 다급하게 움직이며 모든 힘을 쏟아 또다시 황천길로 향하려는 그녀를 억지로 끌고 왔다.팔에 영양 수액을 꽂은 채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승하는 다시 한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리고 그 황산이 서유의 몸이 아닌 자신의 몸에 뿌려졌어야 했다며 자신을 자책했다.그는 유리창 너머에서 정신을 차렸다가는 또 기절하기를 반복하는 서유를 보며 심장이 아프게 옥죄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주서희는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그녀는 중환자실을 나와 복도에 서 있는 이승하와 정가혜에게 안심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비는 다 넘겼어요.”정가혜는 그 말에 더는 참지 못하고 다리가 풀려 버렸다. 그리고 2주간 꾹 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해 바닥에 앉아 엉엉 울어버렸다.주서희는 그런 그녀를 안아주며 동시에 시선을 들어 이승하 쪽을 바라보았다.이승하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정가혜와 마찬가지로 안도하고 있을 것이다...서유는 중환자실에 꼬박 이틀은 더 있고 난 뒤에야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정가혜가 물건을 사 들고 병실로 들어와 보니 어느새 이승하가 수건으로 서유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있었다.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병실을 나가 송사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전화해봐도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서유가 중환자실에서 그 고통을 이겨내고 있을 때 송사월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정가혜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돌려 두 눈에 온통 서유만 담고 있는 이승하를 바라보다가 문득 송사월이 왜 이곳으로 오지 않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이승하는 아끼는 것을 다루듯 서유의 얼굴과 손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수건을 내려놓고 면봉을 꺼내 물을 묻힌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