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서는 주서희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였고 비교적 뛰어난 외과 의사였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예쁜 사람이었고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근데 사촌 오빠는 밥 먹는 데 정신이 팔려 허윤서를 몇 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말 이렇게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남자는 또 처음 본다.그러나 허윤서는 그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괜찮아요, 나도 평소에 출근하면 많이 바쁘거든요.”주서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촌오빠에 의해 가라앉은 분위기를 무슨 말로 풀어야 할지 그녀는 도저히 모르겠다.허윤서는 그녀를 보고는 센스 있게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스테이크 하나를 집어 맛있게 먹었다. “아까는 서희 씨 사촌 오빠가 있어서 먹을 엄두도 못 냈었는데. 급히 자리를 떠서 다행이에요. 안 그러면 나 굶어 죽을 뻔했어요.”호탕하게 먹는 허윤서의 모습에 주서희도 덩달아 긴장이 풀렸다. 두 사람이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소준섭이 어떤 여자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주서희를 본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떼려고 했지만 때마침 주서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별 반응이 없었고 못 본 척 눈을 돌리고 허윤서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화도 내지 않고 묻지도 않는 주서희의 모습에 그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여자의 손을 잡고 일부러 두 사람의 옆 테이블에 착석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주서희를 쳐다보았다.“주서희, 오랜만이네.”주서희는 그가 평소처럼 자신을 모른 척할 줄 알았다. 근데 뜻밖에도 그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그녀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며 그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소 선생님, 서울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소준섭은 무심하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내 여자가 보고 싶어서. 하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그 여자 보러 왔어.”그가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 주서희는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
소준섭은 감출 수 없었던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고 차를 몰고 교외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차를 세우고 뒷좌석으로 돌아가 주서희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그녀의 입술에 미친 듯이 키스했다.며칠 동안 쏟아졌던 그리움이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주서희는 그의 품에 안겨 욕정에 사로잡힌 그를 쳐다보며 그를 떠보듯 조심스럽게 물었다.“나랑... 언제 결혼할 거예요?”그 순간 그가 그녀의 뺨을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소씨 가문에서는 내가 너와 결혼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며 애교를 부렸다.“그럼 당신은요?”흠칫하던 소준섭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난 결혼하고 싶지 않는데.”그 말을 듣고 실망한 주서희는 그의 목을 감싸고 있던 팔을 내려놓았다.“나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으니 결혼해야죠.”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말에 소준섭은 심장이 텅 빈 것 같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가 화를 내며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경고를 날렸다.“넌 결혼 못 해.”그녀는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나랑 결혼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내가 결혼하는 걸 안 된다고 하는 건데요? 설마 계속 이렇게 당신 곁에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니죠?”소준섭은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며 피식 웃었다.“지금 딱 좋잖아. 각자 원하는 대로 관계 유지하는 거. 왜 굳이 결혼해야 하는 건데?”그녀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난 결혼하고 싶어요.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요. 당신이 줄 수 없다면 우리 이제 그만해요.”안색이 어두워진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던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똑바로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소준섭 씨, 최근에 어떤 의사가 나한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고 있거든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을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당
부산, 가랑비가 내리고 있고 가면을 쓴 사람들이 고급 차를 겹겹이 에워쌌다.차 안의 남자는 대략 50세 정도의 나이로 보였고 그는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예쁜 여인을 품에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옷을 입지 않은 채로 뒷좌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쳐다보며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더욱 절망적인 건 그 남자 아내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친절한 초대로 현장에 와서 이 상황을 보게 되었다. “김태호, 뻔뻔스러운 인간.”그 여자는 으르렁거리며 죽기 살기로 두 사람한테 달려들었다. 택이는 옆에 있던 가면을 쓴 남자를 향해 턱을 치켜들었고 그 남자는 이내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끌고 갔다. 차 안에 있던 남자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택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때 택이가 문을 확 잡아당기고는 차에서 그를 끌어 내렸다. 그 남자는 바닥에 쓰러졌고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택이가 그의 등을 발로 밟았다.가슴에서 통증이 전해지고 몸이 돌덩이에 눌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 그가 턱을 치켜들고는 눈을 크게 뜬 채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쳐다보았다.“당신들 도대체 누구야?”택이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그의 얼굴을 툭툭 쳤다.“당신 와이프가 보낸 사람들.”말을 마친 그가 입고 있던 양복 점퍼를 벗어 차 안에 있던 여자의 몸을 덮어주고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보스, 이미 다 가렸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김태호를 에워싸고 있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재빨리 길을 비켰다. ‘날 발로 밟은 사람이 이들의 보스인 줄 알았는데 정작 보스는 따로 있었군.’금동 색 가면을 쓴 남자가 금빛 칼을 들고 다가왔다. 190㎝에 육박하는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남자는 엄청난 위압감을 주고 있었고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옷차림을 보면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젊은 친구로 보였다.‘이리 젊은 걸 보면 기껏해야 길거리의 날라리 놈이겠지.’순식간에 자신감이 생긴 김태호는 그를 향해
그의 눈빛을 보던 김태호는 더는 그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등골이 오싹해졌다.“너 도대체 누구야?”“1분 더 줄게.”이승하는 담담하게 그를 쳐다보고는 인내심이 바닥난 듯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는 손에 든 칼로 그 계약서를 가리키며 1분 안에 사인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기분에 따라 김태호의 처리할 것 생각이었다. 칼끝이 얇은 종이를 스쳐 지나가자 하얀빛이 났고 그 빛이 눈에 번쩍거리자 김태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승하와 계약서를 번갈아 보면서 한껏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화진그룹은 김씨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온 기업이야. 내가 이 계약을 체결하면 난 화진그룹의 죄인이 될 거다.”인내심을 잃은 지 오래된 이승하는 더 이상 그의 헛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칼을 들어 단번에 그의 어깨를 찔렀다.칼을 찔러 넣은 후 재빨리 빼냈고 그 과정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승하의 독한 기운을 보면 그가 살인을 일삼는 냉혈한 인간 같아 보였다. 김태호는 너무 아픈 나머지 비명을 터뜨렸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이 넓은 야외에서 매우 괴이하게 들렸다. 차에 있던 여자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바로 칼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놀라서 황급히 차 문을 밀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들을 에워싼 가면을 쓴 남자들이 차 문을 막아섰다. 그녀는 외투를 두른 채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공포에 질린 얼굴로 차창 밖에 있는 금동 색 가면을 쓴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충고하는데 빨리 사인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가 당신 손을 잘라 손도장을 찍기를 기다리지 말고.”말을 마친 택이는 그의 등의 발을 밟고 다시 한번 힘껏 짓눌다. 엄청난 고통에 김태호는 소리를 질렀다. 나이가 든 그는 이런 고통을 견디지 못하였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펜을 들어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그는 서명을 마친 후에야 계약서에 적힌 인수인이 뜻밖에도 김시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편, 서유는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바로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온 정가혜는 멍하니 있는 그녀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서유야, 사월이 사람을 시켜 물건을 보내웠어. 아래층으로 내려가 봐.”“알았어.”서유는 순순히 대답하고는 자리에 일어나 정가혜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별장 밖에는 차가 몇 대 서 있었고 김태진이 웨딩드레스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서유 씨, 대표님께서 웨딩 숍의 웨딩드레스가 마음에 들지 않다며 서유 씨를 위해 특별히 웨딩드레스를 새로 제작하셨습니다. 그 외에 신발과 옷 그리고 액세서리 예물 등을 준비해 보내셨어요.”말을 하면서 그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곧 누군가가 차에서 물건을 꺼내 모두 별장 안으로 옮겼다.김태진은 웨딩드레스를 서유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서유 씨, 결혼식 날 대표님께서는 외출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제가 대신 서유 씨를 데리러 올 것입니다. 시간은 오전 10시로 정했고 그 전에 메이크업 팀이 서유 씨한테 메이크업을 해줄 거예요. 서유 씨는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고 편히 쉬어요. 결혼식에 관한 다른 일들도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서유가 고맙다고 하자 그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대표님한테 고맙다고 하세요. 이건 모두 대표님께서 분부하신 겁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요.”송사월은 항상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세심하게 고려했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걱정시키는 일이 없었다. 잠시 후, 당부를 마친 김태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들 일행이 떠나고 얼마 안 돼, 고급 차 한 대가 별장 앞에서 멈추었다. 이내 정장 차림의 주태현이 차에서 내려와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서유를 불렀다.“서유 씨.”주태현의 소리에 서유는 발걸음을 멈추었고 왠지 모르게 뒤돌아보기가 싫었다.그는 하인들을 시켜 다이아몬드가 가득 박힌 웨딩드레스를 들고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서유 씨, 이건
“서유 씨, 도련님께서 꼭 이 웨딩드레스를 전해주라고 당부하셨어요. 난 이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 합니다.”그가 손짓하자 하인들은 웨딩드레스를 소파에 올려놓았다.“서유 씨가 결혼식 날 이 드레스를 입었으면 합니다.”가슴이 답답해진 서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집사님, 가져가세요. 남편이 이미 저한테 새 웨딩드레스를 가져다주었어요. 다른 사람의 웨딩드레스를 전 받고 싶지도 않고 결혼식에서 그 사람이 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지도 않아요.”매몰차게 내뱉은 그녀의 말에 흠칫하던 주태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서유 씨, 도련님께서는 지난 3년 동안 꿈속에서 당신을 만나기 위해 매일 수면제를 복용하셨어요. 도련님한테 이러는 거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서유는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왜 이제 와서 그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지?내내 말이 없던 정가혜도 그 말에 조금 놀랐다.그러나 서유를 강요하는 듯한 주태현의 모습에 그녀는 놀란 마음을 다시 가라앉혔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서유의 앞을 막아섰다. “주 집사님, 만약 당신네 도련님이 3년 전에 서유한테 이 웨딩드레스를 선물했다면 두 사람은 지금쯤 아마 아이까지 낳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는 귀국 후 웨딩드레스를 선물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약서를 보냈고 무자비하게 서유를 버렸어요. 이제 와서 이 웨딩드레스를 선물하는 건 너무 늦었다는 생각 안 들어요?”“그리고 그 사람이 서유를 위해 매일 수면제를 먹었다고 말씀하시는데 미안하지만 우리 서유는 3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던 사람이에요. 당신네 도련님이 한 모든 일을 서유는 직접 볼 수가 없었어요. 서유가 본 건 지난날 그의 무자비함과 잔혹함이에요. 그 사람이 서유를 위해 희생했다는 이유로 지금 서유를 이리 몰아붙이는 거예요?”“또한 서유가 결혼할 사람은 당신네 도련님이 아니에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려요?”거침없이 쏘아붙이던 정가혜는 웨딩드레스를 집어 들어 하인의 손에 쥐여주고는 차가운 말투
어느덧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송사월이 보낸 메이크업 팀은 9시가 되어서야 별장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신부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늦게 온 것 같았다. 정가혜는 그들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왔다. 신부를 만나는 순간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한 시간이면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부의 얼굴을 보니 메이크업을 대충 해도 될것 같았다. 이내 그들은 서유를 둘러싸고 그녀에게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해주었고 30분도 안 돼서 헤어메이크업이 완성되었다. 한편, 스타일리스트는 소파 위에 놓인 웨딩드레스를 보고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이아몬드가 박힌 웨딩드레스를 만져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프랑스 유명 디자이너의 마지막 작품이에요. 이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 후 그분은 더 이상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 웨딩드레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소장품이 되었어요.”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서유를 쳐다보았다.“서유 씨, 이 웨딩드레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남편분이 당신을 위해 낙찰받은거예요? 이게 다 얼마야? 엄청 비싸게 주고 구입했을 것 같아요.”메이크업을 마친 서유의 얼굴빛이 조금 더 하얘졌다. 그녀는 자신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 관한 일은 언제 어디서나 늘 조금씩 그녀의 귀에 들어왔고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옆에 있던 정가혜는 서유를 보고 의상 스타일리스트에게 말했다.“백 선생님, 시간이 다 됐으니 얼른 웨딩드레스로 갈아 입혀주세요.”그제야 백아연은 자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연신 사과를 하며 소파에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지러 갔다.바로 이때, 뒤에서 신부의 부드럽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거 아니에요.”백아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유를 쳐다보았다.“그럼...”서유는 옷장에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는 침대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그가 선물한 웨딩드레스는 입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였다.그녀는 남편이 그녀를 위해 맞춤 제작한 드레스를 선택했고 하늘거리는 쉬폰 드레스가 그녀의 몸에서 더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였다.그는 부케를 꽉 쥐고 아픈 가슴을 억누르며 그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발소리가 들리자 김태진이 온 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눈시울이 붉어진 그와 눈이 마주쳤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그녀는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주태현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했건만 결국 그는 이 자리에 나타났다.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송사월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 남자는 또 어찌할지?하지만 이승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부케를 건네주었다.“서유야, 미안해. 내가 김태진의 부케를 빼앗았어. 날 탓하지 말아줘.”차갑고 정중한 그의 말투를 보면 그저 부케를 선물하러 온 것 같아 보였고 별 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를 내쫓으려 했던 그녀는 그의 창백한 얼굴과 새빨간 두 눈을 보고 모진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러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히 잔인한 일이었다.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부케를 받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방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이승하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짙은 속눈썹을 내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 풀어주며 그녀에게 부케를 건네주었다.“시간 다 됐어. 내가 널 시집보내줄게.”말을 마친 그가 바닥에 있는 웨딩 슈즈를 집어 들어 그녀에게 신겨주려 했다.서유는 빠르게 발을 거두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승하 씨, 이러지 말아요.”그는 입술을 깨물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창백한 얼굴로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더 슬퍼 보였다.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가 그녀의 발을 잡고 웨딩 슈즈를 강제로 신기고는 그 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