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아, 우리 어렸을 때 크면 함께 살기로 약속했잖아. 이제 서유가 돌아왔으니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자.”정가혜가 그 별장을 산 것은, 꿈속에서 서유가 늘 다른 세계에서 집을 짓고 그들을 기다리겠다고 말할 것뿐만 아니라, 어릴 적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많은 일을 겪고 생이별을 경험한 그들이니 응당 함께 살면서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하지만 김민정은 이를 듣더니 황급히 제지했다.“그건 안돼요. 사월 씨는 이곳을 떠나면 위험해요.”정가혜는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곧 알아차렸다.김시후가 죽었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김씨 가문 사람들이 아직 그가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보아하니 그들은 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자유롭게 함께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정가혜, 송사월, 서유 세 사람은 모두 성장으로 인해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정가혜는 이제서야 어떤 약속과 어떤 소원은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정가혜가 낙담하자 김민정은 자신이 송사월의 자유를 제한하는 줄로 오해할까 봐 황급히 설명했다.“가혜 언니, 사월 씨가 여기서 완전히 자유를 잃고 사는 건 아니에요. 영안구 일대는 모두 이씨 가문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서 사월 씨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이 일대에서 산책하고 쇼핑하고 영화도 볼 수 있어요. 다만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 이 대표님이 사월 씨의 신변을 보장할 수 없게 되니까요.”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서유가 그 말에 안색이 변했다.이승하가 송사월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 사람을 보내 보호해주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서유뿐만 아니라 송사월에게도 자유를 주는 것이다...하지만 영안구 일대가 이렇게 큰데, 대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재력을 동원해야 송사월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이런 일련의 일들이 하나씩 밝혀지자 서유는 몸을 짓누르고 있던 그 돌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정가혜도 김민정의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송사월은 입꼬리를 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생명을 빚진 은혜를 어찌 큰 선물로 다 갚을 수 있겠는가.그는 붉어진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이승하가 처음부터 끝까지 원했던 건 그저 서유 하나였음을 잘 알고 있다.하지만 송사월이 원하는 것도 서유였으니, 만약 그녀가 손을 놓는다면 송사월은 어떻게 해야 할까?서유는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고 송사월에게 말했다.“내가 평생 너 돌보겠다고 약속했잖아. 그건 절대 변하지 않으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정가혜는 약간 놀란 듯 서유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송사월에게 그런 약속을 한 줄은 몰랐다.송사월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아무 반응도 없는 다리를 필사적으로 눌렀다. 무너진 감정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을 마주할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 김민정에게 말했다.“나 피곤해요. 돌아가죠.”김민정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세 사람 사이가 이상해진 것 같았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알지 못했다.서유와 정가혜에게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송사월을 밀고 별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그 뒷모습을 보며 정가혜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신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서유가 더 난처해질까 봐 걱정되었다.정가혜가 서유를 쳐다보니 그녀는 얼굴이 창백했다. 그래서 얼른 그녀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서유야, 나랑 같이 절에 가자.”절은 매우 깨끗한 곳이었다. 서유도 그곳에 가면 스트레스와 고통을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서유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올 때는 정가혜가 정신이 없어 서유가 운전했지만 돌아갈 때는 서유가 혼미해져서 정가혜가 운전했다.차가 시내의 가장 번화한 지역에 들어섰을 때, 정가혜가 차를 세우고는 공물로 좋은 과일을 사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쇼핑몰로 들어갔다. 막 지하 1층 마트에 들어가려는데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선두에 선 남자는 늘씬한 몸매에 명품 양복을 입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조각 같은 얼굴은 정교하고
그 장면을 본 서유는 눈꺼풀을 약간 늘어뜨렸다.갑자기 옛날에도 이승하가 연지유의 손을 잡고 떠났던 일이 떠올랐다.당시의 서유는 뭐라 할 자격이 없었고, 지금의 서유는 더더욱 관여할 수 없었다.그들은 이미 끝난 사이이고 이승하가 누구와 함께 있든 서유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정가혜는 두 사람이 고급 차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시선을 돌려 서유를 바라보았다.긴장했던 서유가 이미 평온해진 것을 보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그냥 팔짱 낀 것뿐이야. 별것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리고 방금 승하 씨는 널 보지 못했어. 만약 봤더라면 당연히 다른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겠지.”정가혜는 비록 자신의 동생인 송사월의 편이었지만 만약 서유가 여전히 이승하를 사랑한다면 슬퍼할까 봐 걱정되었다.서유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정가혜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가혜야. 나 괜찮으니까 걱정 마.”정가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유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럼 우리 이제 과일 사러 갈까?”서유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돌아서서 지하 1층 쪽으로 걸어갔다.엘리베이터를 탈 때 서유는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이승하가 매너 있게 차 문을 열어주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럭셔리 리무진에 올라탄 이승하는 조용히 양복 재킷을 벗었다.여자는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참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결벽증이 아주 날로 심해지네?”맨 뒷줄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이연석은 이 여자의 목소리에 안색이 돌변했다.꼬았던 다리를 풀고 단정히 앉은 뒤 앞줄에 파티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향해 공손히 말했다.“누나.”이승연은 고개를 돌려 두려움에 빠진 이연석을 보더니 웃음이 터졌다.“연석아, 천하에 두려울 것 하나 없는 네가 왜 나만 보면 고양이 만난 쥐가 되는 거야?”이연석은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손사래를 쳤다.“내가 언제... 아니에요.”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이승연은 방금 한 네일아트를 만지며 이연석에게 말했다.“네 동생 혼사는 걱정 마. 어려운 건 너니까. 네 평판이 좋지 않아서 많은 재벌가에서 딸을 시집보내고 싶어 하지 않거든.”이연석은 속으로는 ‘나도 싫거든’이라며 중얼거렸지만 겉으로는 개의치 않은 듯 말했다.“급하지 않으니까 천천히 해요.”이승연은 그가 아직 충분히 놀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신경 쓰기 귀찮아 다시 이승하에게 시선을 돌렸다.“넌 어때?”시종일관 차창 밖을 바라보던 이승하는 이승연의 물음에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나 신경 쓰지 말아요.”이승연의 아름다운 얼굴에 유감스러운 표정이 그려졌다.“승하야, 그 여자 때문에 평생 혼자 살 거야?”그녀는 이승하의 일을 귀국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어렸을 때부터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말라고 교육받은 이승하가 여자 때문에 자살까지 할 줄은 몰랐다.이승연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지만 이승하가 그 여자를 때렸고 그 바람에 상대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비록 목숨은 구했지만,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어떻게 다시 이승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이것만 봐도 두 사람은 이미 인연을 다 했는데, 지금 와서 서유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타인의 설득에 쉽게 마음이 움직일 이승하가 아니었다.이씨 가문의 권력자로서 가정을 꾸리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이승하는 ‘그 여자’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사지로 번지는 고통에 손바닥까지 아파졌다.그는 눈을 늘어뜨리고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땅바닥에 쓰러져 절망하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서유에게 깊은 상처를 줬으니 평생 속죄해도 모자라는데 어떻게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 있을까?모두 얻을 수 없으면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이승하는 사랑이 곧 소유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김시후가 그에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이연석의 형제 관계는 복잡하지만 또 너무 복잡한 건 아니었다.이씨 가문의 아버지 대에는 다섯 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이 다섯 명의 형제가 모두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다.큰형 이시원과 둘째 형 이승하는 큰아버지 댁의 자식이고, 큰누나 이승연은 둘째아버지댁의 딸이었다.이승하와 이승연은 같은 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형제자매들도 모두 그들을 큰형, 큰 누나라고 불렀다.셋째 형과 넷째 형은 셋째 아버지 댁 아들이고, 다섯째 형과 여섯째 형은 넷째 아버지댁 아들이며, 이연석과 이지민은 막내 아버지의 자식이었다.손자 세대는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어서 서열 8위인 이지민은 가문의 보물 같은 존재였다.모두가 그녀의 혼사를 주시하고 있었고, 혹여나 좋은 시댁에 시집가지 못할까 봐 3, 4년부터 결혼 상대를 고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김씨 가문을 예의주시했지만 김시후가 거절해서 그만두었고, 이제 이지민이 학업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당연히 다시 선택해야 했다.럭셔리 리무진이 시동을 걸자 뒤따르던 10여 대의 리무진이 빠르게 따라붙었다.차는 이내 이지민이 있는 아파트에 멈춰 섰고, 이승연은 차에서 내려 우아한 발걸음으로 마중 나갔다.이연석은 큰누나가 가는 것을 보고 급히 이승하에게 물었다.“형, 아까 왜 갑자기 차에서 내려 쇼핑몰에 뛰어 들어갔어요?”그의 행동에 놀란 경호원들은 모두 차에서 내려 재빨리 뒤쫓아 들어갔다.이연석은 그렇게 많은 경호원들이 있는 것을 보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지만 이승하가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이승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덤덤한 눈동자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피어올랐다.방금 서유와 닮은 뒷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몇 번 더 쳐다보았다.공교롭게도 연지유가 그 뒷모습을 따라 쇼핑몰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고 재빨리 달려갔지만 서유가 아니었다.그 순간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던 이승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난날의 트라우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3년 동안 그는
두 사람은 웃으며 차에 탄 뒤, 차를 몰고 정가혜가 자주 다니는 절로 향했다.산기슭에 도착하자마자 깊고 아득한 종소리와 염불 소리가 들렸다.이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고 평온하게 해 주었고 몸을 짓누르는 돌멩이마저도 가벼워지게 했다.서유는 과일을 들고 정가혜의 뒤를 따라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더할 나위 없이 경건하게 절 안으로 들어갔다.금빛 불상들을 보았을 때,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마음속 가득 서러움을 안은 서유는 잠시나마 이곳에서 안정을 되찾는 기분이었다.그들이 들어간 후 한 스님이 그들을 인도하여 향불과 점괘를 흔들었고 정가혜는 절실하게 소원을 빌었다.스님이 서유의 점괘를 보더니 친절하게 말했다.“너무 많은 빚을 졌군요. 이 빚을 다 갚지 않으면 이번 생은 평안할 수 없습니다.”서유는 마음을 간파당한 듯 멍하니 있었고 얼굴빛이 조금씩 창백해졌다.스님은 빨간 소원 띠 세 개를 가져와 위에 소원을 적어 나무에 걸어놓으라고 했다.서유는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스님이 건네준 펜을 받아 소원 세 가지를 적었다.첫째, 가혜가 평안하기를.둘째, 사월이가 건강하기를.셋째...여기까지 쓴 서유는 손가락을 멈추더니 그와 관련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스님은 서유의 망설임을 눈치채고 인자하게 말했다.“생각나는 분을 쓰셔도 됩니다. 고민하지 마세요.”그 말을 들은 서유는 다시 펜을 들었다.셋째, 이승하가 행복하기를.서유는 이승하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또한 하루빨리 여생의 동반자를 찾기를 바란다.소원을 적은 서유는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절을 나섰다.그리고 그리 크지 않은 나무를 찾아 소원 세 개를 모두 매달았다.빨간 소원 띠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며 서유는 깨끗이 내려놓았다.이승하의 부득이한 사정과, 그녀를 위해 한 일을 알고 나서 서유는 확실히 심경에 영향을 받았다.하지만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볼 때, 그 복잡한 마음도 서서히 사라졌다.앞으로 그는 새로운 삶을 살 것이고, 서유도 자신만의
서유는 언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진을 통해서만 보았는데도 아주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런 사람이 사심 없이 자신의 심장을 내주었고 서유는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게 되었다.하지만 김초희는 자신의 이름도 갖지 못한 채 이런 식으로 여기 묻히게 되었다...서유는 언니를 그렇게 사랑하는 지현우가 왜 그렇게 시신을 빨리 화장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나중에 언니가 지현우를 배신했다는 말을 듣고, 지현우가 언니를 사랑하는 동시에 또 미워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지현우는 그 원한으로 언니의 시선을 무자비하게 버리게 되었고, 이 차가운 땅속에 언니를 3년 동안이나 묻혀두고 있었다.‘지현우 같은 사람이랑 평생 얽히느라 언니도 힘들었겠네. 그런데 언니가 그 사람을 10년이나 쫓아다녔다니. 진짜 지현우를 사랑했을까?’이렇게 생각한 서유는 약지에 낀 반지를 내려다보고는 빼서 묘지 앞에 놓았다.“만약 언니가 그 사람을 사랑했다면 내가 이미 언니 이름으로 영국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쳤어.”“만약 이미 마음이 떠났다고 해도 내가 이미 언니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이 결혼을 끝냈어.”10년을 쫓아다녔다는 것으로 보아, 언니는 아마도 지현우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끝내면서 그에게서 도망치려 했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른다.김초희는 이미 사라졌으니 서유는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언니가 다음 생에는 자신을 사랑해주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바랄 뿐이었다.서유는 묘비 앞에서 조용히 언니의 곁을 지켰다.옆에 있던 정가혜는 서유가 언니에게 하는 말을 조용히 듣던 중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송사월도 가족을 찾았고 서유도 가족을 찾았는데 정가혜만 찾지 못했다.그녀는 어느 집안의 자식일까? 그녀의 가족은 또 어디에 있을까?정가혜는 고개를 들어 애써 눈물을 삼켰다. 원장님은 그녀가 부모에게 버림받아서 가족이 그녀를 찾아올 리 없다고 말했다.석양이 지고 묘원 마감 시간이 되자 서유는 천천히 일어나 언니와 작별을 고하
서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뭔데요?”지현우의 냉랭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그림 그릴 줄 알아요?”서유는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네.”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디자인을 배웠다.“계약 첫 번째 조항은 초희가 완성하지 못한 프로젝트를 대신해주는 거예요.”서유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김초희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건축 설계사이고, 서유는 그저 디자인 학과를 졸업했을 뿐인데 어떻게 언니를 대신해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을까?지현우는 그녀가 완성하든 못하든 계속 차갑게 말했다.“초희가 전에 설계했던 건축 도면을 초안이랑 완제품 모두 서유 씨에게 보냈어요. 그 중에 빈 그림책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초희가 맡은 프로젝트예요. 순서대로 완성하면 돼요.”서유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하지만 저는 건축 디자인이 아니라 브랜드 디자인을 공부해서 건축 도면은 그릴 줄 몰라요.”지현우는 몇 초 동안 침묵했다. 그의 어이없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서울에 초희 건축회사가 있어요. 심이준이라는 사람이 수석 디자이너인데 내가 직접 서유 씨를 가르치라고 할게요. 절대 언니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배워요.”서유의 작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하지만...”지현우는 약간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됐고 내 말대로 해요.”서유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현우는 이번만큼은 그녀를 속이지 않았다. 확실히 언니와 관련된 일을 시켰으니 말이다.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근데 왜 저보고 언니 프로젝트를 맡으라는 거죠?”지현우는 몇 초간 침묵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저도 방금 알았거든요. 초희가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는 거...”서유는 그의 말을 듣고 따라서 침묵했다. 알고 보니 언니는 아쉬움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지현우는 점차 마음을 가다듬고 무심코 말했다.“서유 씨가 초희 이름으로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면 초희 대신 꿈을 이루는 거나 마찬가지예요.”서유는 언니를 위한 것임을 알고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