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는 뼈마디가 분명한 손끝으로 담배를 털었다.꺼진 불이 피부에 타올랐지만 그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귓가에는 진실을 알게 된 소수빈의 가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조사해보니 김초희 씨는 서유 씨가 아니에요. 영국계 한인으로 줄곧 영국에서 살았어요.”“영국 쪽에서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서유 씨가 아마 저분의 잃어버린 동생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그리고 김초희 씨와 지씨 가문의 넷째, 지현우 씨는 영국 교회에서 결혼을 올린 것이 확실하고...”이승하는 손을 들더니 손으로 자신의 얇은 입술을 매만졌다.저렇게 청순하면서도 이승하의 욕구를 자극하는 여자는 분명 서유이다.하지만 소수빈은 자료 뭉치를 들고 서유가 아니라고 말했다.이승하는 담배를 한 모금 가볍게 빨더니 눈 밑에는 믿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지현우는 차를 세운 후, 그 훤칠한 그림자를 보고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또 저 사람이야?”서유가 그의 시선을 따라 가로등 아래의 남자를 바라보더니 흠칫 놀랐다.지현우는 한 손으로 차창에 기대어 서유를 흘겨보면서 말했다.“본인이 친 사고는 본인이 해결하시죠.”서유는 시선을 돌려 지현우를 보며 말했다.“집에 경비원 있잖아요. 쫓아내라고 하세요.”서유는 더 이상 이승하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서로 낯선 사람으로 지내며 영원히 마주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지현우는 그 코닉세그 차량의 뒤를 향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저쪽 사람이 많아서 제가 이길 수 없어요.”서유는 그제야 스포츠카 뒤쪽에 고급차량이 한 줄 세워진 것을 보고 안색이 굳어졌다.“그럼 어떡해요?”지현우는 짜증이 밀려온 듯 차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돌아가 서유를 끌어내렸다.그녀를 끌고 곧장 별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별장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이승하는 이번에는 강하게 나오지 않고 지현우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초희 씨에게 몇 가지 질문만 하고 다시 돌려 드리죠.”지현우는 그가 서유가 아닌 초희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이미 그
이승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지만 서유는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서유는 멍하니 그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마치 트라우마가 생긴 듯 칠흑 같은 눈동자에 약간의 공포가 물들었다.이승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뭔가 깨달았는지 얼른 손을 거두고는 말했다.“겁먹지 마. 다시 너 때리는 일은 없어.”서유는 줄곧 침착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무너졌다.“나한테서 멀리 떨어져요.”이승하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서유야, 난 절대 그럴 수 없어.”서유는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했다.“제 이름은 서유가 아니라 김초희라고 분명 말씀드렸어요. 대체 몇 번을 말해야 믿으실 건가요?”이승하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꼬리가 조금씩 붉게 물들었다.“진짜... 서유가 아니야?”“아니에요!”서유는 손바닥만 한 얼굴을 치켜들며 한껏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이승하의 짙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고 여전히 믿지 않는 기색이 가득했다.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그녀를 벽으로 몰아넣은 후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서유는 그가 또 경우 없이 행동할까 봐 그를 밀치고 돌아서서 도망가려는데 이승하가 뒤에서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커다란 체구의 몸이 작고 여린 그녀를 꼭 감싸 안았고 딱딱한 가슴을 그녀의 등에 붙였다.서유는 화가 나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남자는 놓지 않았고 철옹성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서유는 갑자기 웃음이 났다.“이보세요, 유부녀에 집착하는 특별한 취미가 있나 보죠?”이승하는 그녀의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를 가둔 뒤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뒤편 단발머리를 헤쳤다.정확히 그 작은 흉터를 만졌을 때, 이승하의 얇은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역시 서유가 맞았다.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그러나 그 흉터는 이승하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고 덤덤하고 차가운 눈에 무궁무진한 죄책감이 물들게 했다.이승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 흉터를 만지며 사과했다.“미안해. 내가 네 목숨을 앗아갔어.”서유는 고개를 약간
이승하는 멍해지더니 서유의 저항하는 얼굴을 바라보았다.‘서유가 죽을 때까지 내가 자기를 누군가의 대역으로 삼았다고 가혜 씨가 말한 적이 있는데, 설마 줄곧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고 생각한 거야?’이승하는 서둘러 말했다.“서유야, 난 늘 너를 불렀어.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불렀던 적은 없어.”3년 만에 돌아온 뒤늦은 해명은 그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못하고 불신만 얻었다.서유의 담담한 눈빛에는 그 어떤 동요도 없었고 심지어 차갑기까지 했다.그녀의 냉랭한 모습에 이승하의 심장이 또다시 아파지기 시작했다.그녀를 안고 있는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힘껏 안지 않으면 서유가 금방이라도 사라지는 것처럼.이승하는 이미 한 번 사별을 겼었으니 다시는 생이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녀를 껴안았다.“서유야,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안 돼?”이승하는 심지어 그동안의 오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녀를 향한 끝없는 그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서유의 눈초리가 가볍게 떨렸지만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난 서유가 아니에요.”이승하의 몸이 뻣뻣해지더니 곧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는 입을 맞추었다.서유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가 나서 온몸을 떨며 그를 밀어내려고 몸부림쳤지만 그에게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승하는 간단히 맛만 보고 싶었지만 입술이 그녀에게 닿는 순간 미쳐버렸다.그는 서유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지척에 있어도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없으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부여잡고 거침없이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그녀의 작은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키스한 후에야 아쉬운 듯 놓아 주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가두어 두고 가지 못하게 했다.서유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말했다.“이것 봐. 내가 키스할 때마다 넌 늘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데, 이래도 아니라고?”서유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승하의 심장이 저리고 눈이 물안개로 젖었다.그가 내린 결정 중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었고, 그래서 헤어진 후 수없이 후회했다.이승하는 아픔 마음을 꾹 참고 그녀에게 설명했다.“지유와 결혼하겠다고 형이랑 약속했었어.”서유의 눈동자는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래서 연지유가 귀국하자마자 저를 포기한 거네요?”이승하는 애써 변명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해 계약이 끝났을 때, 확실히 그녀를 포기할 생각이었다.형의 유언을 들어줘야 했고, 그때 서유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니 이승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떤 이유에서든 서유의 입장에서 이승하가 고민 없이 자신을 포기한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이승하는 이를 반박할 길이 없었다.그의 침묵에 서유는 덤덤한 미소를 지었다.“이승하 씨,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소유욕일 뿐이에요.”이승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사랑이랑 소유욕이 어떻게 다른지는 나도 구별할 수 있어. 그런 식으로 내 감정을 부정하지 마.”서유는 눈을 늘어뜨리고 자신을 감싸 안은 남자의 팔을 응시하며 잠시 정신을 놓을 뻔했다.한참 후에야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만약 나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않았겠죠. 헤어지고 나서도 몇 번이고 나를 모욕하지 않았을 테고.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은 나를 연지유의 대역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대역은 아니더라도 당신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겠죠.”그녀는 고개를 돌려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나는 단지 당신의 생리적 수요를 채워주는 사람이라고 주 선생님께도 말했잖아요? 당신이 나를 사랑할 거란 기대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와서 내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죠?”이승하는 설명하려 했지만 서유는 그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리고...”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시종일관 평온하던 눈에는 갑자기 한 가닥의 억울함이 물들었다.“당신 여동생과 약혼녀를 위해서 주저
서유는 그 편지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란 기색을 보였다.그녀는 대체 언제부터 이승하라는 사람한테 실망하고 있었던 걸까?그 남자가 자신을 끌어안고 친밀한 애정행각을 하면서, 입으로는 너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기대하지 말라고 했던 그때였을까?그 말에 그녀는 깨달았던 것 같다. 남자한테 본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단지 그냥 그의 분풀이 상대였음을.그런데 지금...서유는 고개를 들어 반쯤 눈이 돌아간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의 이승하는 늘 콧대 높은 자태로 옆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같은 그의 모습은 그녀도 처음 보는 거라 도통 무슨 감정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함께 있을 때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가 전에 쓴 몇 마디 말을 가지고 그녀한테 따지는 행동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의미라 하면, 아무래도 마침표인 것 같다.그녀가 그런 글을 남겼던 건, 스스로 다짐하고 내려놓기 위해서였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과의 안녕을 글로 썼고 펜을 내려놓았다. 그걸로 마음도 관계도 매듭을 지었고 정리했다. 이 헛된 꿈의 짝사랑은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완전히 끝났음을 알아차렸다.서유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그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서 들었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읽어보다가, 망설임 없이 편지를 찢어버렸다. 이승하가 손을 뻗었을 땐 이미 늦었다... 편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그는 붉어진 눈시울로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는 거야...”서유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덤덤한 미소를 지었다.“승하 씨, 편지 내가 별 의미 없이 쓴 것에요. 당신한테 뭘 남기고 싶어서 쓴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았으면 해요.”이승하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눈가는 빨개져서 찢어진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지난 3년을, 천일 밤낮을 자신이 어떻게 보냈는데...그를 지탱해 왔던 건 수면제와 이 편지에 적힌 몇 자 안 되는 글이 다였다. 지금까
이승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로등 아래 가냘픈 그림자를 보았다. 삼 년이나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사람이었다.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라도, 단지 한 마디뿐일지라도 불러주기만 한다면 모든 걸 버리고 당장 달려가 품에 안고 싶은 사람이었다.하지만 이승하가 겨우 한 발짝만 내디뎠을 뿐인데 서유는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다가오지 마세요.”서유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담담하고 평온했을 뿐.“제가 할 말은 이게 전부예요. 그리고 이후에 절 찾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이승하는 서유가 자신을 불러세운 이유가 붙잡는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이승하더러 더 이상 자신에게 들러붙지 말아달라 부탁하고 있었다.이승하의 수려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온몸이 저릿저릿해 오는 고통은 그로 하여금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유는 그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위에 말만 남긴 뒤 몸을 돌려 별장으로 걸어들어갔다.너무나도 단호해 보이는 뒷모습이 멀어져가는 걸 보면서 이승하의 몸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멀리 서 있던 소수빈이 거의 쓰러지려 하는 이승하를 재빨리 다가와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이승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슴을 에는 듯한 고통은 이윽고 지독한 두통으로 이어졌다. 이승하는 차 문 앞에 비스듬히 기대서는 고개를 틀어 소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약 가져와...”소수빈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그 약 더 드시면 안 됩니다. 몸에 무리가 갈 겁니다.”이승하는 충혈돼 벌게진 눈으로 소수빈을 노려보며 말했다.“약까지 못 먹게 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그 누가 알고 있을까, 어떡해야 하는 건지.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그 여자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잊을 수 있는지...“대표님...”소수빈은 일순간 어떻게 이승하를 위로하면 좋을지 몰랐다. 3 년 동안, 이승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소수빈이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소수빈은 이승하가 약으로 하루하루를
여기까지 생각한 이승하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소수빈에게 말했다.“지현우와 김초희에 대해서 알아봐.”“네, 알겠습니다.”소수빈이 몸을 돌려 차를 타려는 그때, 이승하가 소수빈을 불러세웠다.“그리고...”“대표님, 말씀하십시오.”이승하는 입을 뻐끔거리더니 말을 뱉었다.“지현우가 서유를 구했는지 알아봐. 화장터에서부터 싹 다.”조지가 말하기를 몸이 있고 뇌가 죽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심장을 바꿔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서유의 몸에 아무런 결함도 없는 걸 보면 아마 그녀가 화장될 때 누군가에 의해 은밀히 옮겨진 게 틀림없었다. 몸을 옮긴 사람은 심지어 그녀에게 새로운 심장을 주었고 그녀를 살렸다. 이승하는 지현우의 짓이라 생각했지만 도대체 무슨 목적에서 비롯된 행동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이승하는 손안의 담배를 갖고 이리저리 굴리며 재차 소수빈한테 당부했다.“절대 영국에서 전해오는 어떠한 소식도 믿지 말고 직접 알아봐.”...서유는 별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정원 소파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지현우를 발견했다.“얘기 끝났어요?”서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이리 와요.”지현우는 그녀를 향해 이리 와 앉으라는 듯 턱짓했다.“피곤해요, 좀 자야겠어요.”서유는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둬달라는 뜻을 내비쳤다.“그래요, 그럼.”지현우의 대답을 듣고 난 서유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아직 두 발짝도 채 가지 않았을 때 지현우의 담담한 목소리가 뒤에서 전해져왔다.“이후부터 출입 금지예요.”그가 이리 나올 거라 예상했던 서유였다. 그 지현우가 조용히 넘어갈 리 없지, 서유는 이를 갈며 다시 돌아와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앉는 행동에 분이 담겼지만 지현우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테이블 위의 와인을 잔에 부어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마실 수 없어요...”그렇게 큰 수술을 하고 술담배를 입에 대서는 좋을
이승하가 서유에게 한 짓은 그가 언니한테 저지른 짓의 십분의 일밖에 안 된다고? 그게 언니가 그를 피해 급급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였을까? 지현우...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서유는 거실 속으로 멀어져가는 고독한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손을 들어 자기 심장을 어루만졌다. 언니가 살아온 삶은 어쩌면 내가 살아온 삶보다 더 처량하고 고통스러웠을지도. 서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떴고 더 이상 답을 얻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서유는 한참 동안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다가 몸을 일으켜 침실로 향했다. 창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건물 아래에 아직도 세워져 있는 코닉세그를 발견했다. 서유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갈기갈기 찢겨버린 마음을 뒤로 한 채 서유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후 세워져 있던 그 차를 시선에서 완벽히 차단해 버렸다.이승하를 본 탓이었을까, 그날 밤 서유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에게 수도 없이 실망하고 절망을 느끼고 상처받던 나날들...셀 수 없이 많은 아픈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녀의 꿈을 파고들었다. 서유가 몽롱한 정신으로 깨어났을 때 이미 날이 밝은 후였다.깨어난 뒤 습관적으로 커튼을 열어젖혔을 때, 코닉세그는 자리에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서유는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 세수를 마치고 내려왔더니 이미 하녀들이 서양식 아침을 차려놓고 있었다.지현우는 식탁 앞에 앉아있었고 빠르지 않은 손길로 여유롭게 빵 위에 치즈를 바르고 있었다. 서유가 앉는 걸 보고는 지현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번 훑었다.“어제 그 남자 말이에요. 약을 많이 먹었나 봐요. 기절해서 두세 시쯤인가 구급차에 실려갔어요...”빵을 가져가던 서유의 손이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빵조각을 한입 베어 물고 지현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현우도 더 이상 서유를 보지 않고 방금 치즈를 다 바른 빵을 그녀에게 건넸다.“서유 씨 언니가 치즈를 참 좋아했는데.”서유는 치즈를 듬뿍 바른 빵을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