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에게 엎드려 있는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아래로 내려다보니 숱이 많은 머리카락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고 꼼짝도 할 수 없어서 그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그는 한숨을 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나 좀 더 기다려주지 그랬어...”그의 목소리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잃은 듯한 슬픈 목소리였고 지난날의 추억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심장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심장은 지현우 애인의 심장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가 낮에 서유에게 깨어났으면 그녀를 대신해 잘 살라고 말한 건 그의 애인을 대신해 잘 살라는 말이었다. 그녀의 몸 위에 엎드려 있던 지현우는 그녀의 심장 박동이 잠들었을 때보다 빠르다는 것을 느끼고 그녀가 깨어난 걸 눈치챘다. 그가 고개를 살짝 들고 그녀와 가까이 눈을 마주친 그 순간 아득하고 그윽한 눈 밑에 갑자기 악한 기운이 떠올랐다.그는 그녀가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듯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락사 주사를 들고 서유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난 당신이 눈을 뜨는 게 싫어요. 그냥 당신을 죽여야겠어요.”그녀는 이 남자가 정신분열증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한 번 죽었다 살아난 그녀는 사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그녀와 잠깐 눈을 마주쳤다. 뭘 망설이고 있는 것인지 그가 갑자기 주사기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됐어요. 어찌 됐든 그녀의 심장은 아직 있으니까.”서유는 눈을 깜박거렸고 그녀와 자신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증자를 찾지 못했는데 왜 자신이 죽게 되니 갑자기 기증자가 나타난 건지 너무 궁금했다. 그녀의 의혹을 눈치챈 지현우가 주사기를 내려놓고는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기댄 채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다는 말은 그저 옛말인 줄 알았는데 그걸 정말 해내는 사람이 있더군요.”그의 말은 서유의 귀에 쏙쏙 들어와 그녀의 가슴을 후려쳤고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서유는 몸부림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지현우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고 마침내 몇 글자를 힘겹게 내뱉었다. “꿈에서 봤어요... 그 사람은... 죽지 않았어요.”그녀는 송사월이 자신의 묘비 앞에서 총으로 자살하는 꿈을 꾼 건 맞지만 꿈에서 누군가가 그를 구하는 모습도 봤었다. 송사월이 이렇게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가혜를 잘 돌봐주겠다고 그녀와 약속한 송사월이다. 근데 어떻게 이리 그녀를 따라갈 수가 있겠는가?지현우는 핸드폰을 거두고 동정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 소식은 2년 전, 당신이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때 TV에서 보도된 거예요. 그때 당신의 몸은 강한 반응을 보였지만 깨어나지는 못했죠. 아마도 당신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받아들이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운 꿈을 꾼 것 같아요.”서유는 그게 자신이 꾼 꿈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렇게 생동한 데 어떻게 꿈일 수가 있겠는가?마음속으로는 믿지 않았지만 눈에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와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계속 떨어져 내렸다.예전에 송사월은 만약 그녀가 죽는다면 그도 그녀의 무덤 앞에서 자살할 거라고 절대 혼자 이 세상에서 살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녀가 죽기 전에도 그는 그녀한테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었다. 그가 말한 약속이 이거란 말인가?‘송사월... 정말 죽은 거야? 그럼 가혜는 어떡해? 이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이잖아. 그리고 난 어떡하라고? 난 다시 살아났는데 넌 죽었어. 난 어떡해?’서유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고 꼼짝도 할 수가 없었던 그녀의 몸이 강한 충격에 반응이라도 한 듯 조금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지현우 쪽으로 뻗었다
그의 말에 말문이 막힌 서유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지현우는 한참 동안 소파에 앉아있다가 심심한지 자리를 떴다. 그날 밤, 서유의 꿈속에는 더 이상 송사월을 만나러 캠퍼스로 들어가는 장면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무덤 앞에서 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이 몇 번이나 나타났다. 꿈에서 송사월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주저 없이 총을 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를 구하러 오지 않았고 붉은 피가 묘비에 튀고 그녀의 영정사진을 붉게 물들였다. 눈을 뜨는 순간, 서유는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텅 빈 방 안에는 아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는 혼자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였다.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간병인은 매일과 같이 그녀의 몸을 닦아주러 들어왔다.얼마 후, 조지가 의약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서유 씨, 오늘부터 재활 치료를 할 거예요.”조지는 의약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안에서 멸균 장갑을 꺼내 끼고는 서유에게 마사지를 해주려고 돌아섰다. 그런데 이때 그가 서유의 눈이 붉게 부어오른 걸 발견하게 되었고 그는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졌다.“서유 씨, 이렇게 계속 울면 눈을 정말 고칠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그 말에 서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속눈썹을 깜빡거렸다.“어떻게... 알아요?”그녀의 물음에 조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난 의사예요. 당신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심장이식 수술을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의 검사 보고서를 다 읽어봤었어요.”서유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지가 어떻게 내 검사 보고서를 본 거지?’그녀의 의혹을 간파한 듯 조지는 차근차근 설명했다.“2년 전, JS 그룹 대표가 직접 나한테 전화를 했었어요. 이 세상에서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심장을 찾아달라고 했었죠. 그래서 난 당신의 검사 보고서와 채취한 혈액을 보내달라고 했었어요.”JS 그룹 대표라는 말에 서유는 눈꺼풀을
서유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내가 이렇게 살아남은 거구나. 고아가 아니라 나한테 언니가 있었어... 그 언니가 날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까지 나한테 줬다니.’다만 서유는 왜 언니가 자신을 안고 해외에서 도망치는 생활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리고 방금 조지의 말에 따르면 언니가 급히 생을 마감한 이유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지현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언니와 지현우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언니가 왜 목숨까지 끊으면서 그를 피하려고 했던 거지? 서유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물었지만 조지한테서 구체적인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언니 분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은 나도 잘 몰라요.”“그리고 언니 분이 지현우 씨를 피하려 했던 건 아마도 지현우 씨가 언니한테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구체적으로 어떤 나쁜 일인지에 대해 조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이전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서유 씨, 난 당신을 살린 후 이 대표님한테 알리려 했어요. 어찌 됐든 당신에게 심장을 찾아달라고 나한테 부탁한 사람이었으니까요.”“하지만 지현우 씨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살아있다는 걸 당신의 지인들한테 알리는 걸 원치 않아 했어요. 난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로 하였고요.”“이제는 당신이 깨어났으니 이 대표님한테 말할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해요.”또다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서유는 얼굴이 굳어졌다.냉정하고 무정한 남자니까 자신이 죽든 살든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신경이 쓰였다면 자신을 때리고 나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5년 동안 함께 하면서 자신의 전화번호조차 핸드폰에 저장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니 2년이나 지난 지금 그를 다시 방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결심이 선 서유는 담담하게 눈을 들고 조지를 쳐다보았다.“그 사람한테 알리지 말아요.”
“예전에 언니가 나한테 당신 이름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어요.”그 말에 서유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고 조지를 향해 쳐다보았다.“김초아라고 했어요. 어머니께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었죠.”서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김초아, 참으로 따뜻한 이름이다. 어머니가 이름을 지을 때 어쩌면 그녀가 따뜻하게 살아가길 바라서 지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껏 살면서 그녀에게 잘해 준 정가혜와 송사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서도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릴 적에 고아원의 담벼락에 엎드려 바깥 아이들이 부모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에 그녀의 웃음은 점차 사라져 버렸고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눈가에 차올라 슬픔과 외로움이 그녀의 온몸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조지는 신사답게 휴지 몇 장을 뽑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말아요. 눈은 아주 중요한 것이에요.”서유는 그의 말에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어머니...”조지의 푸른 눈동자에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했다.“안타깝지만 당신 어머니는 당신들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했어요.”사실 서유는 이런 결과일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김초희가 그녀를 안고 도망갈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어머니와 언니가 분명 무슨 일을 겪은 것이 분명하다.조지가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자 그녀는 또 물었다.“그럼 아버지는...”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미안해요.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게 전부예요.”서유는 더 이상 조지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고 그의 눈빛을 살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장병 전문의가 언니의 일을 이렇게 많이 도와준다고? 두 사람은 또 어떤 관계일까?조지는 액자를 협탁 위에 올려놓은 뒤 서유의 눈빛을 보고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눈치챘다.“나와 김초희 그리고 지현우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그
가능한 빨리 회복하기 위해 서유는 조지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반년 후, 서유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간단한 동작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지의 말로는 재활 치료를 계속 견지한다면 반년 뒤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도 서서히 시력을 되찾게 되었다. 예전만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이라도 충분히 만족한다. 지난 반년 동안, 그녀는 카톡, 트위터, 메일 등 모든 방법을 통해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하였다. 지현우는 그녀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다만 그녀가 귀국하겠다고 하자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김초희의 심장을 가지고 그를 떠나지 말라고 경고했었다.눈치가 빠른 서유는 다시는 그 앞에서 귀국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떠나는 일에 대한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그 후 반년 동안, 지현우는 여전히 평소처럼 가끔 그녀가 잠든 틈을 타서 그녀의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그의 행동에 많이 놀랐지만 그런 일이 많아지니 이젠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그는 가끔 기분이 좋아지면 그녀를 휠체어에 앉히고 해변으로 산책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를 길가에 혼자 두고 자신은 바닷가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매번 이런 지현우를 볼 때마다 서유는 그가 언니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무엇 때문에 언니가 죽으면서까지 그를 피하려고 했던 건지 그녀는 알 수가 없다. 서유는 그와 친해지고 나서도 몇 번이나 물었지만 지현우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게다가 가끔 김초희라는 이름을 들으면 지현우는 약간 멘붕이 왔다. 김초희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지 아니면 그녀에게 미안해서 그런 건지 그는 그녀의 이름을 듣는 걸 두려워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색한 사이로 지내왔다. 그러다가 서유의 머리카락이 귀까지 길어졌을 때 그녀를 보는 지현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의 모습에서 김초희를 보는 듯한 기
서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당신이 나한테 이러는 걸 언니가 알았다면 언니는 분명 이 심장을 남기지 않을 거예요.”그녀의 말이 지현우의 가슴을 찔렀고 그의 그윽한 눈동자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휘청거리는 그의 뒷모습은 더없이 쓸쓸해 보였다.그러나 서유는 그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조지의 말로는 그녀는 회복이 빨리 되고 있고 한 달 정도 더 재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잠시도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중요한 건 그녀는 이미 국내에서 죽은 사람이었고 개인정보도 없어서 어떻게 귀국해야 할지 막막했다. 김초희의 여권으로 몰래 비행기표를 끊어 귀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김초희는 사망신고를 한 적이 없어서 그녀의 개인정보는 여전히 Y국에 있는 상태였다.게다가 그녀와 김초희는 생김새도 비슷하고 지금은 스타일링도 비슷해서 화장만 비슷하게 하면 입국장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통과되지 못한다면 구치소에 구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구치소에 있는 것이 지현우 곁에 남아서 김초희의 대역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었다. 다만, 김초희의 여권은 지현우의 방에 있었다. 이 해변의 큰 별장은 지현우가 김초희에게 사준 것으로 별장 안에는 두 사람이 함께 지냈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지현우가 김초희의 물건을 모두 자신의 방에 모아두었기 때문에 서유는 여권을 손에 넣으려면 그를 찾아가야 했다. 서유는 그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몰래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번에 지현우의 방으로 처음 들어갔다. 방 안에 온통 언니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언니가 죽은 후 지현우가 얼마나 미친 듯이 언니를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언니는 영원히 돌아올 수가 없고 지현우는 언니의 초상화만 보면서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서유는 생각을 접고
지현우는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거절해도 돼요. 하지만 귀국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서유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지현우는 여권으로 반지 함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5분만 더 시간 줄게요.”그 뜻인 즉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거절하면 앞으로 귀국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했다.서유는 큰 돌덩이로 가슴을 짓누르듯 숨통이 조여왔다. 너무 어려운 선택이었다.지현우는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의 표정 변화를 관찰했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고 매우 태연했다.주어진 시간이 지나고 서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이 말한 대로 할게요. 근데 그냥 법적으로, 명의만 부부인 거예요.”이를 들은 지현우가 콧방귀를 꼈다.“그게 아니면 뭔데요?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지현우는 다이아 반지를 반지 함에서 꺼내더니 그녀에게 손을 내밀라고 눈짓했다.서유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지현우는 투박하게 그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 넣었다.그러더니 이내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일 성당 가요.”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김초희의 여권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서유는 약지에 낀 반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뭔가 이번 생은 이렇게 지현우에게 단단히 묶일 것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아니다. 애초에 그가 자기 누나의 심장을 그녀에게 이식한 순간부터 묶였다고 봐야 했다.지현우가 무슨 수단으로 서유의 신분부터 얼굴까지 김초희로 바꿨는지 모른다.하지만 오늘부터 그녀는 더 이상 서유가 아니라 김초희다.한 달 뒤, 서유는 서울로 가는 국제항공에 탑승했다.일등석 창가 자리에 앉은 서유는 창밖을 내다보며 멍을 때렸다.선신물이 곧 닫히려는데 기다란 체구를 가진 누군가가 잽싸게 안으로 들어왔다.서유는 그를 보자마자 놀란 듯 동공이 살짝 커졌다.“혼자 돌아가라면서요?”지현우는 그녀의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