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빨리 회복하기 위해 서유는 조지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반년 후, 서유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간단한 동작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지의 말로는 재활 치료를 계속 견지한다면 반년 뒤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도 서서히 시력을 되찾게 되었다. 예전만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이라도 충분히 만족한다. 지난 반년 동안, 그녀는 카톡, 트위터, 메일 등 모든 방법을 통해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하였다. 지현우는 그녀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다만 그녀가 귀국하겠다고 하자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김초희의 심장을 가지고 그를 떠나지 말라고 경고했었다.눈치가 빠른 서유는 다시는 그 앞에서 귀국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떠나는 일에 대한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그 후 반년 동안, 지현우는 여전히 평소처럼 가끔 그녀가 잠든 틈을 타서 그녀의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그의 행동에 많이 놀랐지만 그런 일이 많아지니 이젠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그는 가끔 기분이 좋아지면 그녀를 휠체어에 앉히고 해변으로 산책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를 길가에 혼자 두고 자신은 바닷가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매번 이런 지현우를 볼 때마다 서유는 그가 언니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무엇 때문에 언니가 죽으면서까지 그를 피하려고 했던 건지 그녀는 알 수가 없다. 서유는 그와 친해지고 나서도 몇 번이나 물었지만 지현우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게다가 가끔 김초희라는 이름을 들으면 지현우는 약간 멘붕이 왔다. 김초희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지 아니면 그녀에게 미안해서 그런 건지 그는 그녀의 이름을 듣는 걸 두려워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색한 사이로 지내왔다. 그러다가 서유의 머리카락이 귀까지 길어졌을 때 그녀를 보는 지현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의 모습에서 김초희를 보는 듯한 기
서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당신이 나한테 이러는 걸 언니가 알았다면 언니는 분명 이 심장을 남기지 않을 거예요.”그녀의 말이 지현우의 가슴을 찔렀고 그의 그윽한 눈동자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휘청거리는 그의 뒷모습은 더없이 쓸쓸해 보였다.그러나 서유는 그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조지의 말로는 그녀는 회복이 빨리 되고 있고 한 달 정도 더 재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잠시도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중요한 건 그녀는 이미 국내에서 죽은 사람이었고 개인정보도 없어서 어떻게 귀국해야 할지 막막했다. 김초희의 여권으로 몰래 비행기표를 끊어 귀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김초희는 사망신고를 한 적이 없어서 그녀의 개인정보는 여전히 Y국에 있는 상태였다.게다가 그녀와 김초희는 생김새도 비슷하고 지금은 스타일링도 비슷해서 화장만 비슷하게 하면 입국장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통과되지 못한다면 구치소에 구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구치소에 있는 것이 지현우 곁에 남아서 김초희의 대역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었다. 다만, 김초희의 여권은 지현우의 방에 있었다. 이 해변의 큰 별장은 지현우가 김초희에게 사준 것으로 별장 안에는 두 사람이 함께 지냈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지현우가 김초희의 물건을 모두 자신의 방에 모아두었기 때문에 서유는 여권을 손에 넣으려면 그를 찾아가야 했다. 서유는 그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몰래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번에 지현우의 방으로 처음 들어갔다. 방 안에 온통 언니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언니가 죽은 후 지현우가 얼마나 미친 듯이 언니를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언니는 영원히 돌아올 수가 없고 지현우는 언니의 초상화만 보면서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서유는 생각을 접고
지현우는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거절해도 돼요. 하지만 귀국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서유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지현우는 여권으로 반지 함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5분만 더 시간 줄게요.”그 뜻인 즉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거절하면 앞으로 귀국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했다.서유는 큰 돌덩이로 가슴을 짓누르듯 숨통이 조여왔다. 너무 어려운 선택이었다.지현우는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의 표정 변화를 관찰했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고 매우 태연했다.주어진 시간이 지나고 서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이 말한 대로 할게요. 근데 그냥 법적으로, 명의만 부부인 거예요.”이를 들은 지현우가 콧방귀를 꼈다.“그게 아니면 뭔데요?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지현우는 다이아 반지를 반지 함에서 꺼내더니 그녀에게 손을 내밀라고 눈짓했다.서유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지현우는 투박하게 그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 넣었다.그러더니 이내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일 성당 가요.”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김초희의 여권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서유는 약지에 낀 반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뭔가 이번 생은 이렇게 지현우에게 단단히 묶일 것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아니다. 애초에 그가 자기 누나의 심장을 그녀에게 이식한 순간부터 묶였다고 봐야 했다.지현우가 무슨 수단으로 서유의 신분부터 얼굴까지 김초희로 바꿨는지 모른다.하지만 오늘부터 그녀는 더 이상 서유가 아니라 김초희다.한 달 뒤, 서유는 서울로 가는 국제항공에 탑승했다.일등석 창가 자리에 앉은 서유는 창밖을 내다보며 멍을 때렸다.선신물이 곧 닫히려는데 기다란 체구를 가진 누군가가 잽싸게 안으로 들어왔다.서유는 그를 보자마자 놀란 듯 동공이 살짝 커졌다.“혼자 돌아가라면서요?”지현우는 그녀의 옆
빛은 잃었지만 여전히 잘생긴 눈은 그녀를 보자마자 색감을 조금 되찾은 듯 보였다.수척하면서도 준수한 얼굴에 기쁨이 차올랐다. 눈동자는 그리움으로 가득했다.온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눈앞에 오로지 그녀만 남은 느낌이었다.그는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그녀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게 눈시울이 점차 붉어졌다.‘죽지 않은 거야?’‘살아 있었던 거야?’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서유를 향해 걸어갔다.서유는 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자 얼른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그녀를 향해 걸어오던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눈동자를 가득 채웠던 그리움이 사라지고 표정은 다시 차가워졌다. 눈빛도 어느새 한기가 맴돌고 있었다.그는 마치 낯선 사람을 보듯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유도 그런 그의 눈빛을 읽어냈고 불안했던 마음이 다시 차분해졌다.그는 역시 그녀의 죽음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살아 돌아온 그녀를 보고도 그저 잠깐 놀랐을 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그녀는 입을 앙다문 채 망설임없이 몸을 돌려 수하물 컨베이어로 향했다.서유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이승하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더니 손에 쥔 약을 내려다보았다.졸피뎀을 그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유증이 심해지니 벌건 대낮에도 환각이 보이는 것이다.하지만 이번 환각으로 본 서유는 다른 때와 조금 달랐다.허리춤까지 길렀던 머리를 단발로 잘랐고 옷도 옅은 컬러에서 환한 레드로 바뀌었다.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 힘들어하는데 먼저 정신을 차린 소수빈이 그에게 말했다.“대표님, 조금 전에 서유 씨 본 거 같은데요?”이 말에 이승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크고 웅장한 몸집이 그렇게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지현우가 수하물 컨베이어에서 짐을 내리는데 마침 서유가 그쪽으로 걸어갔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말했다.“거기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잖아요?”퉁명스러운 말투는 마치 말을 듣지 않은 서유를 나무라는 것 같
서유는 지현우에게 굽신거리는 기사를 보고 살짝 어리둥절했다.그렇게 아무것도 모른채 차에 오른 서유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지현우를 쳐다봤다.“현우 씨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Y국에서 1년을 같이 지냈지만 지현우가 일자리를 찾거나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귀국하자마자 대표님이라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지현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약간은 오만한 말투로 물었다.“건축 설계사에요.”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설명을 덧붙였다.“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건축 설계사 중에 대표님은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서유는 기사의 말을 이용해 되물었다.“그럼 1위는 누구예요?”기사가 갑자기 입을 꾹 닫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현우도 그저 고개를 돌려 창밖만 뚫어져라 쳐다봤다.마치 무슨 민감한 화제라도 꺼낸 듯 차 안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서유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설마 세계 1위라는 사람이 현우 씨 누나되는 분인가?’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한 별장 앞에 멈췄다. 기사는 차를 차고에 대고 캐리어를 꺼냈다.기사는 캐리어를 앞으로 끌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대표님, 초희 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지현우는 이 별장의 지리를 잘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기사가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그는 심드렁하게 뒤를 따랐다.서유도 천천히 별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장 환경을 보니 Y국에서 지내던 별장과 구두가 비슷했다.아마 지현우가 외국에 있을 때 미리 기사에게 연락해 김초희가 좋아하던 스타일로 매입한 별장인 것 같았다.하지만 서유는 구도니, 스타일이니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빨리 정가혜와 송사월을 만나고 싶었다.그녀는 지현우가 보는 앞에서 2층의 안방을 제외한 다른 방 하나를 선택하고는 다급하게 물었다.“이제 가봐도 되죠?”지현우는 앞으로 팔짱을 낀 채 문틀에 기대어 서서는 느긋하게 물었다.“운전할 줄은 알아요?”서유는 이를 악물더니 말했다.“알아요!”지현우는 몸을 돌려 서재로 향하더니 차키 하나를 가져와
서유가 아직 누구의 목소리인지 생각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강이설이 3살 좌우의 어린아이를 안고 서유 앞에 나타났다.서유는 잠깐 멈칫했지만 강이설이 잠시 정가혜와 강은우의 집에 얹혀사는 줄로만 생각하고 더 캐묻지 않았다.“저는 당신 올케 되는 사람의 친구입니다. 가혜 지금 집에 있나요?”강이설은 처음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이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다가 서유가 입을 열어서야 누군지 생각났다.“당신, 당신...”강이설은 얼굴이 핼쑥해지더니 아이를 안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귀신이야!”서유는 이내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고 앞으로 나서며 자신은 귀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강이설은 그녀의 행동에 놀라 얼른 안으로 달려갔다.“여보, 그 빌어먹을 년의 친구가 귀신이 되어 우리를 찾아왔어요!”서유는 이를 듣더니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지금 누구를 여보라고 부르는 거지? 빌어먹을 년은 또 누구고?’서유가 미간을 찌푸리고 의아해하는데 강은우가 주방에서 걸어 나오더니 위아래를 레드로 맞춰 입은 서유를 보고 놀라서 혼비백산했다.“당신...”강은우는 뭔가 크게 켕기는 게 있는 듯 강이설보다 더 크게 놀라며 말도 제대로 못 했다.서유는 강은우와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는지라 바로 강은우 앞으로 다가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가혜 지금 어디 있어요?”강은우는 바짝 다가온 서유의 몸에서 풍기는 옅은 향기를 맡고 나서야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귀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서유는 3년 전에 이미 죽었는데 왜 갑자기 멀쩡하게 여기에 나타난 건지 의문이었다.강은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는 서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다 보니 서유가 한 말을 아예 듣지 못했다.서유는 짜증을 내며 다시 물었다.“가혜, 어디 있냐고요?”강은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아마도... 클럽에 나갔을 거예요...”정가혜가 클럽을 나간다 해도 거의 밤에 나갔지 낮에
그렇게 저녁 9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는데 데스크 직원이 오늘은 정가혜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일단 오늘은 돌아가고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서유는 어쩔 수 없이 조급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클럽을 나섰다.주차장으로 걸어가 차를 픽업하려는데 크고 건장한 체구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고개를 든 서유는 빨갛게 충혈된 예쁜 눈과 시선이 맞닿았다. 순간 심장이 덜컹했고 자기도 모르게 도망가려 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더니 허리를 휘감으며 두 사람의 거리를 확 좁혔다.다른 손은 그녀의 등에서 머리로 더듬더듬 올라갔고 그렇게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온 힘을 다해 서유를 으스러질 듯이 꼭 끌어안은 남자는 조각 같은 턱을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갖다 댔다.그녀의 체온과 익숙한 향기를 느끼고 나서야 이승하는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자각했다.텅 빈 가슴을 안고 3년을 살아왔는데 그녀를 꼭 껴안은 순간 잠깐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그렇게 오래 그리워한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니, 이승하는 서유를 되돌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는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를 몸속에 스며들게 해 그녀의 존재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서유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이승하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찬 바람이 쌩쌩 불더니 지금 이렇게 갑자기 끌어안는 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리고 그는 단 한 번도 공공장소에서 그녀를 이렇게 안은 적이 없었다. 서유는 3년 동안 이승하의 머리가 이상해진 거라고 생각했다.서유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버둥거리며 이승하를 밀어냈지만 이승하는 한 손으로 서유의 팔목을 꾹 누르더니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를 차 문에 밀착시켰다.“당신...”서유가 욕설을 퍼붓기도 전에 그는 허리를 굽히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빨간 입술에 키스했다.입
“서유는 누구예요? 저는 김 씨에요. 서 씨가 아니라. 설마 죄를 짓고 사람을 잘못 알아봐서 그랬다는 둥 그런 핑계 대려는 거 아니죠?”서유는 이승하의 손을 뿌리치고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손에는 핸드폰을 꼭 쥔 채 앞으로 팔짱을 끼고는 턱을 살짝 들고 이승하를 노려보고 있었다.표정이 오만했고 말투도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온순하고 얌전했던 서유와는 완전 딴판이었다.하지만 뼈에 새길만큼 익숙한 얼굴은 여전했다. 그저 화장을 조금 짙게 했을 뿐이었다.이승하의 잘생긴 얼굴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분명 그가 찾던 서유가 맞았다.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뒤로 목을 빼더니 그의 터치를 피했다.“저기요. 자꾸 이렇게 무례하게 굴면 사람 부를 거예요.”이승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혹시 아직도 내 탓 하는 거야?”이승하의 말투에서 난감함과 셀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씁쓸함이 느껴졌다.서유는 눈까풀이 파르르 떨렸지만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이승하를 바라보는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네요.”서유는 격렬한 키스로 약간 부어오른 입술을 만지작거리더니 역겹다는 표정으로 이승하를 노려봤다.“됐어요. 그냥 미친개한테 물린 거라고 생각하죠 뭐.”그녀는 이렇게 말하더니 얼른 몸을 돌려 자신의 차로 향했다.차 문을 열자마자 뒤에서 크고 예쁜 손이 나타나 차 문을 세게 다시 닫았다.서유에게 반항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고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미친 사람 아니야! 얼른 내려줘요! 사람 살려!”서유는 화가 치밀어 올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힘껏 발버둥 쳤지만 이승하의 힘은 놀라울 정도로 컸다.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휘감으니 서유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서유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먹히지 않자 그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 그녀를 안고 타고 온 스포츠카로 향했다.그는 한 손으로 조수석의 문을 열더니 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