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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작가: 알라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3-29 19:12:30
그 사람의 시선에 서유는 괜히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빠르게 눈을 내리깔고 이글거리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주시하다가 그녀의 눈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비로소 그녀가 정말로 깨어났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더니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곧 한 노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노인은 금발에 푸른 눈, 흰머리를 하고 있었고 하얀 양복 차림의 그는 정정해 보였고 기품이 흘러넘쳤다.

그 남자는 노인을 데리고 들어온 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침대 위에 있는 서유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조지, 이 여자가 어떻게 깨어날 수 있는 거죠?”

조지?

서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주서희는 이승하가 그녀를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장병 전문의를 찾았다고 했었다.

‘그 전문의의 이름이 조지였는데 설마 그 사람인가?’

조지는 그 남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장비를 켜고 그녀의 몸을 자세히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검사에 집중했다.

그의 표정도 그 남자와 마찬가지였고 서유가 어떻게 깨어났는지에 대해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마치 그들에게는 그녀가 깨어나서는 안 될 사람처럼 말이다.

조지는 지체없이 그녀의 상태를 살핀 후 고개를 들고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깊은 혼수상태에서는 환자가 깨어나기 어려워요. 근데 이 여인은 갑자기 깨어났고 확실히 매우 드문 일이긴 하죠.”

잘생긴 그 남자의 얼굴에 갑자기 짜증이 드러났다.

“깨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짜증이 섞인 그의 물음에 조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전에 진단했을 때는 확실히 깨어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남자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조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나도 잘…”

남자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더니 조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냥 죽여버리죠.”

줄곧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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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침대 옆의 소파에 앉더니 서유를 향해 입을 열었다.“이왕 깨어났으니 그녀를 대신해 잘 살아요.”그가 말하는 그녀에 대해 몰랐던 서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눈을 깜빡거렸고 그가 좀 더 자세하게 말해주기를 바랐다. 서유에게 더 이상 말해주고 싶지 않았던 그 남자는 갑자기 침대 옆에 놓여있던 면도칼을 집어 들고 그녀의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면도기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서유는 깜짝 놀랐다.‘이 남자가 지금 내 머리를 깎고 있는 거야? 왜?’충격받은 그녀의 모습을 눈치챈 듯 남자는 머리를 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간병인의 말로는 당신 머리가 너무 길어서 머리 감기기가 번거롭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깎아주면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아서요.”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보니 많이 짧아 보였고 아마도 이렇게 깎은 것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인 듯했다.‘그러니까 내가 깨어나지 않는 동안 계속 민머리였던 거야?’자신이 대머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는 멘붕이 왔다.그녀는 눈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미친 듯이 밀고 있는 남자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살기가 가득한 그녀의 눈빛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머리를 깎는 데만 집중했다.머리를 다 깎은 뒤 그는 그녀에게 거울까지 가져다주었다.“이 헤어스타일 괜찮지 않아요?”거울 속 민머리가 될 정도로 짧게 머리가 깎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 서유는 눈이 뒤집혔고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남자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었고 마치 무슨 재미난 장난감이라도 찾은 듯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거울을 내려놓고 소파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서유 씨, 참 재미있는 사람이네요.”그의 말에 서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이 남자가 날 이렇게 부르는 건 분명 날 알고 있다는 뜻인데? 근데 난 왜 이 남자에 대해 기억이 없는 거지? 이 사람 도대체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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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에게 엎드려 있는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아래로 내려다보니 숱이 많은 머리카락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고 꼼짝도 할 수 없어서 그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그는 한숨을 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나 좀 더 기다려주지 그랬어...”그의 목소리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잃은 듯한 슬픈 목소리였고 지난날의 추억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심장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심장은 지현우 애인의 심장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가 낮에 서유에게 깨어났으면 그녀를 대신해 잘 살라고 말한 건 그의 애인을 대신해 잘 살라는 말이었다. 그녀의 몸 위에 엎드려 있던 지현우는 그녀의 심장 박동이 잠들었을 때보다 빠르다는 것을 느끼고 그녀가 깨어난 걸 눈치챘다. 그가 고개를 살짝 들고 그녀와 가까이 눈을 마주친 그 순간 아득하고 그윽한 눈 밑에 갑자기 악한 기운이 떠올랐다.그는 그녀가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듯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락사 주사를 들고 서유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난 당신이 눈을 뜨는 게 싫어요. 그냥 당신을 죽여야겠어요.”그녀는 이 남자가 정신분열증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한 번 죽었다 살아난 그녀는 사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그녀와 잠깐 눈을 마주쳤다. 뭘 망설이고 있는 것인지 그가 갑자기 주사기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됐어요. 어찌 됐든 그녀의 심장은 아직 있으니까.”서유는 눈을 깜박거렸고 그녀와 자신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증자를 찾지 못했는데 왜 자신이 죽게 되니 갑자기 기증자가 나타난 건지 너무 궁금했다. 그녀의 의혹을 눈치챈 지현우가 주사기를 내려놓고는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기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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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다는 말은 그저 옛말인 줄 알았는데 그걸 정말 해내는 사람이 있더군요.”그의 말은 서유의 귀에 쏙쏙 들어와 그녀의 가슴을 후려쳤고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서유는 몸부림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지현우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고 마침내 몇 글자를 힘겹게 내뱉었다. “꿈에서 봤어요... 그 사람은... 죽지 않았어요.”그녀는 송사월이 자신의 묘비 앞에서 총으로 자살하는 꿈을 꾼 건 맞지만 꿈에서 누군가가 그를 구하는 모습도 봤었다. 송사월이 이렇게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가혜를 잘 돌봐주겠다고 그녀와 약속한 송사월이다. 근데 어떻게 이리 그녀를 따라갈 수가 있겠는가?지현우는 핸드폰을 거두고 동정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 소식은 2년 전, 당신이 혼수상태에 빠져있을 때 TV에서 보도된 거예요. 그때 당신의 몸은 강한 반응을 보였지만 깨어나지는 못했죠. 아마도 당신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받아들이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운 꿈을 꾼 것 같아요.”서유는 그게 자신이 꾼 꿈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렇게 생동한 데 어떻게 꿈일 수가 있겠는가?마음속으로는 믿지 않았지만 눈에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와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계속 떨어져 내렸다.예전에 송사월은 만약 그녀가 죽는다면 그도 그녀의 무덤 앞에서 자살할 거라고 절대 혼자 이 세상에서 살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녀가 죽기 전에도 그는 그녀한테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었다. 그가 말한 약속이 이거란 말인가?‘송사월... 정말 죽은 거야? 그럼 가혜는 어떡해? 이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이잖아. 그리고 난 어떡하라고? 난 다시 살아났는데 넌 죽었어. 난 어떡해?’서유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고 꼼짝도 할 수가 없었던 그녀의 몸이 강한 충격에 반응이라도 한 듯 조금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지현우 쪽으로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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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말에 말문이 막힌 서유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지현우는 한참 동안 소파에 앉아있다가 심심한지 자리를 떴다. 그날 밤, 서유의 꿈속에는 더 이상 송사월을 만나러 캠퍼스로 들어가는 장면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무덤 앞에서 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이 몇 번이나 나타났다. 꿈에서 송사월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주저 없이 총을 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를 구하러 오지 않았고 붉은 피가 묘비에 튀고 그녀의 영정사진을 붉게 물들였다. 눈을 뜨는 순간, 서유는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텅 빈 방 안에는 아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는 혼자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였다.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간병인은 매일과 같이 그녀의 몸을 닦아주러 들어왔다.얼마 후, 조지가 의약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서유 씨, 오늘부터 재활 치료를 할 거예요.”조지는 의약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안에서 멸균 장갑을 꺼내 끼고는 서유에게 마사지를 해주려고 돌아섰다. 그런데 이때 그가 서유의 눈이 붉게 부어오른 걸 발견하게 되었고 그는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졌다.“서유 씨, 이렇게 계속 울면 눈을 정말 고칠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그 말에 서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속눈썹을 깜빡거렸다.“어떻게... 알아요?”그녀의 물음에 조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난 의사예요. 당신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심장이식 수술을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의 검사 보고서를 다 읽어봤었어요.”서유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지가 어떻게 내 검사 보고서를 본 거지?’그녀의 의혹을 간파한 듯 조지는 차근차근 설명했다.“2년 전, JS 그룹 대표가 직접 나한테 전화를 했었어요. 이 세상에서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심장을 찾아달라고 했었죠. 그래서 난 당신의 검사 보고서와 채취한 혈액을 보내달라고 했었어요.”JS 그룹 대표라는 말에 서유는 눈꺼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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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내가 이렇게 살아남은 거구나. 고아가 아니라 나한테 언니가 있었어... 그 언니가 날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까지 나한테 줬다니.’다만 서유는 왜 언니가 자신을 안고 해외에서 도망치는 생활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리고 방금 조지의 말에 따르면 언니가 급히 생을 마감한 이유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지현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언니와 지현우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언니가 왜 목숨까지 끊으면서 그를 피하려고 했던 거지? 서유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물었지만 조지한테서 구체적인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언니 분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은 나도 잘 몰라요.”“그리고 언니 분이 지현우 씨를 피하려 했던 건 아마도 지현우 씨가 언니한테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구체적으로 어떤 나쁜 일인지에 대해 조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이전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서유 씨, 난 당신을 살린 후 이 대표님한테 알리려 했어요. 어찌 됐든 당신에게 심장을 찾아달라고 나한테 부탁한 사람이었으니까요.”“하지만 지현우 씨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살아있다는 걸 당신의 지인들한테 알리는 걸 원치 않아 했어요. 난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로 하였고요.”“이제는 당신이 깨어났으니 이 대표님한테 말할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해요.”또다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서유는 얼굴이 굳어졌다.냉정하고 무정한 남자니까 자신이 죽든 살든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신경이 쓰였다면 자신을 때리고 나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5년 동안 함께 하면서 자신의 전화번호조차 핸드폰에 저장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니 2년이나 지난 지금 그를 다시 방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결심이 선 서유는 담담하게 눈을 들고 조지를 쳐다보았다.“그 사람한테 알리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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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언니가 나한테 당신 이름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어요.”그 말에 서유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고 조지를 향해 쳐다보았다.“김초아라고 했어요. 어머니께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었죠.”서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김초아, 참으로 따뜻한 이름이다. 어머니가 이름을 지을 때 어쩌면 그녀가 따뜻하게 살아가길 바라서 지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껏 살면서 그녀에게 잘해 준 정가혜와 송사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서도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릴 적에 고아원의 담벼락에 엎드려 바깥 아이들이 부모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에 그녀의 웃음은 점차 사라져 버렸고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눈가에 차올라 슬픔과 외로움이 그녀의 온몸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조지는 신사답게 휴지 몇 장을 뽑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말아요. 눈은 아주 중요한 것이에요.”서유는 그의 말에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어머니...”조지의 푸른 눈동자에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했다.“안타깝지만 당신 어머니는 당신들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했어요.”사실 서유는 이런 결과일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김초희가 그녀를 안고 도망갈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어머니와 언니가 분명 무슨 일을 겪은 것이 분명하다.조지가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자 그녀는 또 물었다.“그럼 아버지는...”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미안해요.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게 전부예요.”서유는 더 이상 조지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고 그의 눈빛을 살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장병 전문의가 언니의 일을 이렇게 많이 도와준다고? 두 사람은 또 어떤 관계일까?조지는 액자를 협탁 위에 올려놓은 뒤 서유의 눈빛을 보고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눈치챘다.“나와 김초희 그리고 지현우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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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준의 성인식 당일, 눈이 펑펑 내렸다. 예전에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녀가 깨어나던 날처럼 눈이 펑펑 내렸었다.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며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깜빡하고 멍하니 창가에 서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드레스룸에서 나온 이승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창가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옆으로 다가갔다. 뼛속 깊이 새겨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햇살 아래, 아름다운 그녀가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그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낙인처럼 그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이번 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고 잊을까 봐 두려운 것이 바로 그녀의 뒷모습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의 인생은 고작 50년도 채 되지 않았고 하늘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서유를 떠나는 게 가슴이 찢어질 뿐이다. 이 몸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고 그녀에 대한 깊은 사랑과 미련은 그가 떠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씁쓸한 미소를 짓던 그가 다시 힘겹게 몸을 이끌고 드레스룸으로 향하더니 퍼 코트를 챙겨와 서유의 몸을 감싸주었다. 자신을 감싸안은 손길에 흠칫하던 그녀는 이내 눈을 내리깔고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그 위에 덮었다. “손이 많이 차가워요.”“날씨가 추워지니까 그런 거야.”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까만 눈동자 속에 여전히 잘생긴 그의 얼굴이 비춰지자 그녀는 순간 울컥했다.“당신한테 아직 하지 못한 얘기가 너무 많은데. 조금만... 더 조금만 늦게 떠나면 안 돼요?”그 말에 흠칫하던 그가 천천히 그녀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는 그녀의 콧등을 살짝 어루만졌다. “바보. 내가 가긴 어딜 가겠어? 당신 옆에 꼭 붙어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그의 손을 잡은 채 발끝을 세우고 고개를 들어 남자의 차가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승하 씨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8화

    그가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연석도 알고 있었다. 그가 오기 전, 이연석은 로봇 앞에 서서 끊임없이 로봇 기능을 체크하고 있었다. 유리창 안, 이연석이 코드를 빠르게 두드리자 그 옆에 있던 로봇이 실제 사람처럼 말을 하였고 그 모습에 이승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연석아...”그의 목소리에 이연석은 행동을 멈추고 옆으로 몸을 돌려 둘째 형을 쳐다보았다.최근 몇 년 동안,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이승하는 고통을 무릅쓰고 밤낮으로 바삐 돌아쳤다. 둘째 형이 안쓰러웠던 이연석은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둘째 형보다 능력은 훨씬 떨어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결국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게 되었다. “형, 언제쯤 형수한테 보여줄 거예요?”그가 자신을 부축하려는 이연석의 손을 밀치고는 허리를 곧게 펴고 로봇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손을 뻗어 머리 뒤의 스위치를 누르자 로봇이 그와 똑같은 말투로 입을 열었고 그 모습에 그가 또다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게 있으면 내가 떠난 후에도 서유가 외롭지는 않겠지...”이승하가 연구 개발한 칩은 미리 앞으로의 10년, 20년 동안의 말을 모두 녹음해 둔 칩이었다. 서유가 그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싶다면 계속 살아가야 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한 건 바보 같은 여자가 자신을 따라 죽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녀가 계속 살기를 바랐고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죽기 전에 로봇이 완벽하게 제작된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그녀와 함께할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서유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안색이 점차 굳어졌다. “내가 떠나면 그때 이 로봇을 서유한테 보여줘. 그리고 하준이를 도와 회사를 꼭 지키거라.”둘째 형의 마지막 당부에 이연석은 눈시울이 붉어졌다.“형, 정말 방법이 없는 거예요?”그동안 유명한 의사를 수없이 많이 찾아다녔고 머리를 바꾸는 수술까지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7화

    어두컴컴한 방안, 이하준은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어떻게 그 엄청난 고통을 무릅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지금껏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철이 없었던 그는 아빠를 무시한 적도 많았다. 어린 시절 자신이 한 못된 짓을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던 소년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았고 마치 버림받은 아이처럼 온몸이 떨릴 정도로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예전에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죽음이 닥쳐오니 자신이 얼마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밤새 의학 서적을 뒤적거리며 칩을 꺼내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룻밤 사이에 그는 머리 수술에 관한 모든 서책을 다 뒤져보았다. 윤주원과 조지 그리고 알고 있는 유명한 의사들에게 다 전화를 해보았지만 결론은 모두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칩을 꺼내는 동시에 그 안의 바이러스가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말에 이하준은 밤새 넋을 잃은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안, 앞길을 밝혀 주는 등불조차 없이 깜깜하기만 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이하준은 다음날 한결같이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에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두 분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던 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 건가요? 그래서 더 서로를 소중히 여긴 거 아닌가요?”서유도 이하준처럼 마음이 아팠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니 예전보다는 침착할 수 있었다.“시간이 많든 적든 부부는 서로를 아껴야 더 오래갈 수 있는 거야.”식탁에 앉은 이하준은 굳어진 입꼬리를 살짝 올릴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고개를 돌려 겉으로는 죽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맞은편의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빠, 저 의학 공부하고 싶습니다.”의학을 배우고 싶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분명 칩을 꺼낼 때 필요한 강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6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제시카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러나 그가 걸음을 옮길 때까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이를 악물고 애써 참았다. 이하준, 이번 생에 절대 내 손안에 떨어지지 마.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니까. 그러나 아직까지 감정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이하준은 그녀의 복수심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잠시 후, 연이를 업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하준이는 연이가 뚱뚱하다고 투덜댔고 화가 난 연이는 그의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두 남매는 웨딩카에 올라타는 그 순간까지도 옥신각신 다투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던 이승하는 서유의 손을 잡고 웨딩카의 뒤를 따라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아빠가 없는 연이에게 오늘 이승하는 아빠 노릇을 해주기로 했다. 연이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가 그녀의 손을 신랑에게 맡겼다.입장하기 전, 문밖에 서 있던 연이가 곱게 화장한 얼굴을 치켜들고는 그를 쳐다보았다.“이모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모부한테 손도 못 대게 하시더니. 오늘은 어쩔 수 없죠?”검은 정장 차림의 그가 담담한 얼굴로 하이힐을 신고 있는 연이를 내려다보았다.“오늘만이야. 다음은 없어.”연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다.“어쩜 이리 하준이랑 똑같아요? 이렇게 좋은 날 꼭 그런 말을 해야겠어요?”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덕담 한마디 내뱉었다.“우주랑 평생 행복하길 바란다. 이번 생에 이리 네 손 잡고 입장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해...”연이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연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그녀의 손을 심우주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조카한테 경고했다.“내 딸한테 잘해. 안 그러면 내가 너 가만 안 둬.”그 말 한마디에 연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릿한 시선 속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승하의 얼굴이 들어왔다.이모부한테 그녀는 처음부터 딸이었다...감동을 받은 연이는 발길을 돌리려는 이승하를 덥석 끌어안고 낮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5화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힘겹게 말을 뱉었다.“연이야, 뒤돌아서 나 좀 봐봐.”화를 참으며 고개를 돌리니 얇은 셔츠 차림에 눈밭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잠깐 멈칫하던 그녀는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 “심우주, 나 이제 너한테 관심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귀찮게 찾아오지 마.”말을 마친 연이는 전화를 끊고 남자 친구의 손을 잡은 채 숙소로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이때, 남자 친구가 허를 찌르는 물음을 내던졌다.“그렇게 귀찮아할 거면서 왜 연락처를 아예 차단하지 않았어?”차단하면 다시는 연락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을 내리깔며 한동안 망설이던 연이는 남자 친구 앞에서 심우주의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연이를 찾을 수 없었던 심우주는 2년 동안 혼이 빠진 사람처럼 살았다. 문자를 받지도 못하는 그녀의 핸드폰으로 2년 동안 수없이 많은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졸업을 앞두고 연이의 남자 친구는 바람을 피우고 연이를 차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화가 나야 할 상황인데 연이는 오히려 침착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를 찾아가 따지지도 않았다. 그후, 심우주 학교의 퀸카가 그를 미친 듯이 따라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연이는 그제야 남자 친구의 바람에 자신이 왜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우주였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누구한테 먼저 고개를 숙일 사람이 아니었다. 졸업식 당일 밤, 우연히 심우주를 다시 만난 그녀는 지난 4년 동안 그가 수없이 몰래 찾아와서 자신을 보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마음이 변치 않은 그를 보며 그녀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날 좋아하지 않았던 애가 언제부터 날 좋아하게 된 걸까?그녀의 의혹에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진한 키스로 뒤늦게 알아버린 자신의 진심을 쏟아냈다. 그의 고백을 받아들일 때, 연이는 뼛속까지 보수적이었던 자신을 다행으로 여겼다. 첫 번째 남자 친구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지 않았기 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4화

    이승하를 따라 차에 올라탄 하준이는 서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엄마, 엄마가 여긴 어떻게...”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된 모습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몰래 네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얼굴에 찍힌 신발 자국을 보니 서유는 더 마음이 아팠다. 손을 뻗어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려다가 아이가 어색해할까 봐 허공에서 손이 굳어버렸다. 조심스러워하는 엄마를 보고 하준이는 예전처럼 무뚝뚝하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수척해진 아이의 얼굴에 손끝이 닿는 순간, 그녀는 비에 흠뻑 젖은 아들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네가 외국에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았더라면 5년 전에 엄마는 절대 널 외국으로 보내지 않았을 거야.”아이가 그녀보다 더 큰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평소에는 제가 애들을 괴롭히는 편이에요.”아이가 당하는 꼴을 직접 눈으로 본 서유는 자신을 위로하는 아이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는 없어?”그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 나름 솜씨가 좋아요. 그러니까 아빠가 올 때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고요.”말을 마치고 그가 고개를 들어 앞줄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는 남자를 우러러보았다.“아빠, 방금 절 구해주던 아빠의 모습은 진짜 영웅 같았어요.”옅은 미소를 짓던 이승하는 소수빈이 건네준 수건을 받아 아이에게 건네줬다.“너도 이제 다 큰 어른인데. 언제까지 내가 와서 구해주기만을 기다릴 거야? 나중에 아빠가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수건을 받아 대충 머리를 닦던 아이는 모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풍당당한 사람인데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요?”아이의 말에 차가운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유도 소수빈도 아무 말이 없었고 차 안의 분위기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3화

    비가 쏟아진 그날 밤, 이하준은 우산을 쓰고 학교를 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마침 쇠몽둥이를 든 외국인 무리와 마주쳤고 그들은 하나 같이 근육질 몸매에 흉악한 얼굴이었다. 가끔 멍청이 같은 사람들이 그를 귀찮게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이승하의 말을 명심하고 애써 참았지만 상대의 모함을 받게 되었다. 한 번은 누군가 그가 개발한 약을 교수의 물컵에 넣었다. 다른 친구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이하준은 그들을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하루 만에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응징했고 학교 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교수가 그를 믿고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그를 무너뜨리지 못한 악당들은 교수의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질투하고 증오했다. 지금 눈앞의 놈들은 분명 그들이 그를 혼내주려고 부른 사람들일 것이다.학교에 다니면서도 소지섭에게 격투 기술을 배우는 걸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두렵지가 않았다. 우산을 살짝 받쳐 드는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눈이 드러났고 그 눈 밑에 살의가 가득했다.근육질 남자들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고 이하준은 손에 든 우산을 접어 날카로운 한끝으로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을 세게 찔렀다. 싸움 실력이 뛰어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더라도 점점 더 많이 달려오는 근육질의 남자들을 혼자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교수님과 약속했었지만 수세에 몰리자 그는 어쩔수 없이 허리춤에 있던 금빛 칼을 빼 들고 근육질 남자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어린 나이에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몇몇 근육질의 남자는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쇠몽둥이를 들어 온 힘을 다해 이하준의 머리를 내리쳤다.이하준의 목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바보로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려면 머리를 쳐야 한다. 바보가 안 된다면 적어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근육질의 남자들은 이하준을 제압하기 위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2화

    그가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입을 열었다.“난 죽는 게 두려운 사람이 아니었어. 그런데 당신을 만난 후부터 죽는 게 그렇게 겁이 나더라.”죽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전 서계를 돌아다니며 의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는 끝내 얻지 못하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했다. 겁이 난 서유는 그를 꼭 껴안았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당신한테는 내가 있고 우리 하준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죽으면 안 돼요. 당신이 죽으면 우리는 어떡하라고요?”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미 5년을 버텨온 그는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고 하느님이 조금씩 조금씩 그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이 전해지는 횟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통증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칩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 다만 떠나기 전에 모든 일을 다 마치고 가야 하는데...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품 안에 있는 여인이 가장 걱정되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깊이 파고들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만큼 뜨겁고 짜릿한 느낌, 슬픈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은 뜨겁게 몸을 섞으며 하나가 되었다. 그녀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쯤, 두 사람의 아찔한 행위가 끝이 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소중한 물건을 끌어안듯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유람선 안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을 빌려 그가 세월의 흔적도 없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다음 생에도 당신이 내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당신의 다음 생은 송사월한테 주기로 약속했었나?”아직 잠들지 않은 서유가 그의 가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번 생에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가면 나 절대 당신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다음 생에 당신 안 만날 거라고요.”그가 슬픈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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