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03화

Author: 알라리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3-29 19:12:30
주서희는 죽기 직전의 하연을 보고 나서 몇 달간 악몽만 꾸었었다.

왜 어머니라는 사람이 자기 배로 낳은 아들에게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하는지 주서희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승하가 신경 쓰는 것이면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망가뜨리는 게 그의 어머니라는 작자였다.

주서희가 이승하의 연인인척할 때도 어느 날엔가 하연이라는 사람처럼 죽게 될까 봐 늘 두려웠었다.

하지만 주서희는 위험한 걸 알면서도 자처하고 나섰다. 주서희는 소준섭이 보낸 사람에게 강간당했을 때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때 이승하가 어떤 원수는 천천히 갚는 거라고, 그러다 보면 성공하는 날이 올 거라고 주서희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승하의 도움을 받아 주서희는 해외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승하에 의해 살게 된 두 번째 인생이었으니 주서희가 이승하에게 충성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이승하를 만나며 서유를 이승하의 가족들로부터 보호해 왔건만 그게 서유에게 해가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주서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마음속에 가득한 죄책감을 떨쳐 내보려 애썼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보며 외쳤다.

"대표님! 얼른요!"

최악의 결과라 해도 그저 죽는 것일 텐데 그런 건 이제 두렵지 않았다.

이승하는 주서희를 한번 보더니 그 차가운 시선을 다시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옮겼다.

"저 사람은 제가 아끼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런걸론 저 협박 못 하십니다."

부인은 그 말을 듣더니 채찍을 돌리던 손을 멈추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이승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불에 탄 얼굴이 따라서 움직이는 게 어딘가 소름이 돋으면서 꼭 지옥의 마녀가 하고 있을 모습 같았다.

"그래. 그냥 그 아이 방패막이였으니까 당연히 너를 협박하진 못하겠지."

여자는 휠체어에 기대앉으며 이 상황이 퍽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너 참 대단하더라. 나 몰래 여자도 만나고 다니고."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04화

    이승하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려던 손에 힘을 풀었다.서유가 이승에서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 송사월과 정가혜 둘뿐인데 알량한 제 복수심 때문에 서유의 친구였던 사람들을 자신이 사는 지옥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눈에 가득 찼던 독기도 점차 사라져 다시 아무 감정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이승하는 감정을 추슬러가며 총을 내려놓았다.이렇게 될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부인은 더 가증스러운 웃음을 지어가며 말했다."이게 네가 나한테 안되는 이유야. 너한테는 약점이 있잖아. 난 없는데."총구 앞에서 구사일생한 남자가 그 말을 듣더니 낯빛이 창백해졌다.이승하가 물러났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는다 해도 누나라는 사람은 동생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었을 것 같다. 이승하가 더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 굴자 그 여유로운 모습에 또 화가 난 부인이 손에 든 채찍을 매만졌다."내 말 잘 들어. 죽을 생각 따윈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또 자살 시도하면 나는 너를 따르는 사람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어.""물론 안하연 그 아이처럼 죽이지는 않겠지만 감옥 들여보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야.""아니면..."부인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주서희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입꼬리를 올렸다."저 아이처럼 만들어 줄 수도 있고."잠시 사라졌던 증오가 이승하의 눈에 다시 가득 차오르며 부인을 향해 말했다."나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죽지는 못하게 하는 겁니까?"부인은 채찍을 돌리며 이승하의 질문이 꽤나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아직 재미를 다 보지 못했잖니. 그렇게 쉽게 죽게 놔둘 순 없지."예전 같았으면 저 말을 듣고 속상하기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유달리 평온했다.아버지와 형이 죽고 난 뒤 어머니의 악행은 더 심해졌다.지금 들고 있는 채찍을 버티다 못해 도망치면 그 끝은 늘 자살이었다.하지만 약을 삼키든 약물을 주사하든 그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머니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치의 동정도 얻지 못했다. 그때는 마냥 어렸기에 그런 방법이라면 어머

    Last Updated : 2024-03-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05화

    그들이 나가고 이승하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한쪽에 서 있는 주태현을 불렀다."의사 불러서 서희 씨 좀 봐주라고 해.""네. 지금 바로 부를게요."주태현이 급히 방을 나서고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주서희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바라봤다.정확히는 피가 새어 나온 붕대를 바라봤다. 아까 총을 잡으며 힘을 준 탓에 상처가 벌어졌던 것 같다."대표님, 손 지혈부터 해드릴게요."주서희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승하는 단호히 거절했다."괜찮아."이승하는 다른 말 없이 소파에 앉은 채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그 얼굴은 마치 생기라곤 없는 사람 같았다. 더는 밝아질 일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주서희는 또 죄책감이 몰려들기 시작했다.주서희는 피가 맺힌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죄송해요, 대표님..."이승하가 직접 그런 목소리로 주서희에게 말하기 전까진 주서희도 이승하가 서유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었다."서희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알잖아. 내가 서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그 말을 이승하에게서 직접 듣고 나서야 주서희는 서유를 향한 이승하의 마음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그 마음을 오랫동안 홀로 숨겨왔다는 것도.주서희가 멋대로 착각한 탓에 이승하는 끝까지 서유의 몸 상태를 몰랐고 서유와 함께할 수 있었을 시간도 서로를 등진 채 흘려보내고 말았다.주서희가 일부러 사실을 알리지 않아 서유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하고 둘 사이는 그렇게 영원히 끝이 나고 말았다.주서희는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 자신을 집어삼킬 듯 커져가는 죄책감에 가슴이 아파왔다. "대표님 죄송해요... 서유 씨한테도 너무 미안해요... 저만 아니었어도 서유 씨가 박하선 씨랑 엮일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면 그렇게 일찍 가지도 않았을 텐데... 다 제 탓이에요. 죄송해요. 대표님..."눈물이 주서희의 얼굴에 난 상처 위로 흘러내렸다. "죄송해요..."이승하는 그런 주서희를 보고 

    Last Updated : 2024-03-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06화

    "네 보스. 자금 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이승하의 시리도록 차가운 시선이 불빛으로 환히 밝혀진 정원에 닿았다.그 환한 불빛들이 마치 박씨 집안 같아 이승하의 분노를 더 돋구고 있었다.'박화영, 내가 아버지랑 한 약속이 있으니 당신을 죽이진 않겠지만 당신이 내 사람들을 망가뜨렸던 것처럼 나도 당신 사람들한테 똑같이 해줄게."누가 이기나 해보자고.이승하는 피로 물든 붕대를 다시 감고는 검은색 가죽 장갑을 끼고 드레스 룸으로 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까지 손질했다.모든 준비를 마친 이승하가 가면을 들고 내려오자 그 모습을 본 주태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도련님 정말 사모님과 싸우실 생각이십니까?"박씨 집안 역시 재벌가였고 물론 JS 그룹보단 못하다지만 그래도 비슷한 수준의 기업이었다.더군다나 박씨 집안의 실세가 싸이코라고 소문난 박화영이니 이승하가 그에게 맞서다 또 어릴 때처럼 피바람이 불게 될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승하는 고개를 돌려 가면을 바라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박화영이랑 싸우는 건 내가 아니야."금색 가면 남의 신분으로 박화영을 무너뜨린다면 서유가 아끼던 송사월과 정가혜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것이다.그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나 미행하던 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박씨 집안에 보내."주태현은 이승하가 걱정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승하의 명령을 거역하진 못했다."네 알겠습니다."이승하가 말을 마치고 집을 나서자 이미 도착해있던 택이가 급히 검은색 벤츠를 이승하 앞에 세웠다.이승하가 찬 타가 출발하고 열 몇 대의 차가 그 뒤를 따랐다.한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흰색 승용차가 뒤를 밟으려 하자 주태현이 그 앞을 막아섰다.기사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검은 양복 차림의 경호원들이 차 문을 열고 기사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연장으로 기사의 다리를 내리쳤다.전에 이승하는 미행하던 사람들을 그저 따돌리기만 하고 손은 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더 참지 않겠다는 듯 보였다.

    Last Updated : 2024-03-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07화

    이승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한테만 불공평한 세상에 다시 분노가 차올랐다.더는 시간을 끌 필요가 없어 보여 그는 금색 가면을 쓰고 차에서 내렸다.이승하가 내리자 열 몇 대의 차에 탔던 사람들도 일제히 내려 이승하를 따랐다.키스하는 도중에 가면 남들에게 둘러싸인 그 둘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특히나 박하선은 여유롭게 차에 기대 서 있는 금빛 청동색 가면을 쓴 남자를 보고 낯빛이 창백해졌다."금... 금색 가면..."이 나이 먹도록 박하선은 누군가를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금색 가면 남은 그 칭호만으로도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매번 박하선이 나쁜 짓을 하려 할 때마다 금색 가면 남은 그걸 귀신같이 알고 찾아왔다. 박하선도 물론 그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마치 일부러 신분을 숨기기라도 한 듯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었다.신분을 알 수 없으니 복수도 할 수 없었다. 금색 가면 남은 항상 어떻게 아는지 박하선이 경호원 없이 혼자 다닐 때만 나타나곤 했다.오늘은 데이트가 끝나고 호텔로 바로 갈 생각이어서 경호원도 먼저 보냈는데 하필 이럴 때 또 금색 가면 남을 만난 것이다."당, 당신들 뭐야! 왜 이러는 거야!"그때 박하선 옆에 같이 있던 남자가 나서며 소리쳤다. 물론 그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남자랍시고 나선 것이다.어떻게 찾은 돈줄인데 일단은 힘닿는 데까지 지켜야 했다. 그러다 상황이 꼬이면 그때 도망가도 늦지 않으니까.박하선은 남자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저 사람들 얼른 비키라고 해."남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저 혼자 상대하라는 박하선에 속으로 욕을 뱉었지만 돈 때문에 덜덜 떨며 말을 했다."당신들 이 여자 누군지 알아? 박씨 집안 손녀 박하선이라고! 이 여자 건드리고 당신들이 무사할 것 같아? 얼른 꺼져!"택이는 다리까지 떠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잘됐네. 우리가 찾던 사람도 박씨 집안 손녀 박하선이거든."옆에 있

    Last Updated : 2024-03-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08화

    아직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연하 애인에 화를 내고 있던 박하선이 전혀 다른 목소리로 내뱉은 이승하의 소름 돋는 말을 듣고는 몸에 잔뜩 주고 있던 힘이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박하선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금색 가면 남을 올려다보았다."난 당신 건드린 적 없잖아!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데!"전에는 사람을 시켜 겁주는 정도로 끝냈었는데 오늘은 몸에 손을 대는 것도 모자라 호스티스로 넘기라니.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대체 그 빽이 누구길래 서울에서 제일 큰 클럽을 제 맘대로 움직이냐는 것이다.그리고 자신이 이승하의 사촌 동생이며 박씨 집안 유일한 손녀인 것도 다 알면서 감히 손을 대는 사람이었다.머릿속은 수많은 의문들로 가득했지만 아마 그 답은 듣지 못할 것 같다.택이가 손을 젓자 맨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달려 나와 박하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태어나서 뺨이라곤 처음 맞아보는 박하선이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발악했다.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연이어 내리쳐지는 손에 박하선은 더 발악할 힘도 없었다. 이승하가 명령했던 백 대가 끝나니 박하선의 얼굴은 그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게 부어있었다.이제 곧 그녀를 나이트 레일로 데려가야 했기에 박하선을 때리던 남자는 나름 힘 조절을 하며 그녀를 죽지 않을 정도로만 때렸다.이승하는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도 못하는 박하선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임미연, 나이트 레일로 데려가."임미연은 이승하의 명령에 바로 박하선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채로 차에 태웠다.임미연이 떠나고 이승하는 다시 택이를 쳐다보았다.그 짧은 시선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캐치한 택이는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애들 데리고 가서 주차장 CCTV 처리해."명령을 받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몇 명 더 데리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일 처리를 마친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차에 타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연지유는 방금 박화영과 통화를 마치고서야 주서희는 이승하의 숨겨진 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Last Updated : 2024-03-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09화

    연지유는 그래도 박하선보다는 생각이 빨랐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이라면 이승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박화영이 서유가 죽고 난 뒤 이승하가 서유 무덤까지 찾아가 손목을 그으며 자살하려 했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연지유도 마침 박하선과 같이 서유가 죽기 전 화장실에서 손을 댄 적이 있었다. 그때 이승하도 함께였었다.그때 박하선이 서유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려고 하니 이승하가 나서서 말리기도 했었다. 박하선이 물러나지 않고 박화영에게 말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이승하가 서유의 뺨을 때리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박하선의 화가 누그러진 것이었는데 누가 그게 박씨 집안 사람들로부터 서유를 지키기 위한 연기일 줄 알았겠는가. 그런 천한 년이랑 5년을 붙어먹으면서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참 이승하다웠다.지금은 서유가 죽었다고 거리낄 게 없는지 대놓고 저를 괴롭히고 있었다.연지유의 머리가 다른 사람에 의해 다시 들리자 연지유는 얼굴에 잔뜩 묻은 배설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욕부터 해댔다."이승하, 네가 나랑 결혼한다고 네 형이랑 약속했잖아. 지금 나한테 이러는 거 네 형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연지유가 말을 마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이승하는 또 누구야?"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연지유는 더러운 것까지 참아내며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았다.이승하는 보이지 않고 온통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혹시나 이승하가 보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연지유가 다시 외쳤다."웃기지 마! 너희 이승하가 보내서 온 거잖아!"아까 말을 하던 남자가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가씨, 아가씨 밑에 이사 하나가 우리 돈을 안 주고 도망갔어. 사람을 찾을 수가 없으니 그 윗대가리라도 잡아야지."연지유는 잠시 멈칫하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저번 달에 우리 회사에 와서 행패 부린 게 너야?"남자는 눈썹을 까딱이며 말했다."내가 아니면 누구겠어? 뭐 다른 사람들 돈도 가로챘나 봐?"연지유는 그제야 그들의 말을 믿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지 다시 한

    Last Updated : 2024-03-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10화

    주서희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원으로 옮겨진 후였다.주서희는 힘겹게 입을 열어 말했다."물..."큰 손이 주서희의 뒤통수를 받치더니 물을 그녀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주서희는 그 물을 받아 마시고 갈증이 어느 정도 가시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물을 건네준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였다.그 검은 눈동자와 눈을 맞추는 순간 주서희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공포가 어려있었다."내가 그렇게 무서워?"소준섭은 컵을 내려놓고 침대 머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주서희를 바라보았다.두려움을 담았던 주서희의 두 눈이 다시 냉정함을 되찾고는 소준섭을 향해 쏘아붙였다."여긴 왜 왔어요?"소준섭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우리 서희 보러왔지."그의 말투는 퍽이나 다정했지만 눈빛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우리 서희 소 씨 집안 나가서 얼마나 잘 사나 보려고 왔지..."소준섭은 손을 들어 다 터진 주서희의 살결을 매만지며 말했다."이것 봐. 얼마나 잘 지냈으면 멍까지 들었네"주서희는 이미 그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습관이 되어 있어서인지 별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손길이 몸에 닿을 때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다.주서희는 고개를 돌리며 그 손길을 피하고는 말했다."다 봤으면 가요 이제. 나 쉴 거에요."이 말에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손길을 피한 데서 화가 난 건지 소준섭의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소준섭은 주서희의 턱을 잡아당겨 저를 보게 만들고 말했다."우리 서희가 이젠 내가 무섭지 않나 봐. 그런 말투로 나한테 말을 다 하고..."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턱을 쥐어 잡힌 탓에 주서희가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말했다."아파요..."그러자 소준섭의 손아귀에 힘이 조금은 풀렸다. 전에는 주서희가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그만두는 법을 모르던 사람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의아했다.주서희는 고개를 들어 소준섭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눈에 담으니 평온한 주서희의 시선과는 달리 소준섭은 얼마 못 가서 눈을 피했다.주

    Last Updated : 2024-03-29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11화

    소준섭은 병실 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급하게 뛰어오는 소수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소준섭은 잠시 잊고 있던 증오의 감정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아까 주서희를 보며 간질거렸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소준섭은 소수빈을 노려보며 그의 어깨를 밀쳐냈다. 소수빈이 한쪽으로 넘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소준섭은 기분 더럽다는 듯이 자리를 떴다.그 뒷모습을 보는 소수빈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잠잠하더니 또 주서희 옆에 모습을 드러낸 소준섭이 탐탁지 않았다.소준섭이 싫어하는 사람은 소수빈 자신이었지만 늘 주서희를 찾아가 괴롭히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가 무엇을 생각하든 소수빈이 주서희 옆을 지키고 있는 한 다시는 괴롭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소수빈은 소준섭을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주서희의 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서희의 상처들을 눈에 담는 순간 아까의 분노 대신 걱정과 안쓰러움이 밀려왔다."서희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나 괜찮아요."주서희는 괜찮다고 하며 멍이 들어있는 소수빈의 얼굴부터 걱정했다."오빠 얼굴은 왜 이래요?"소수빈은 멋쩍게 얼굴을 만졌다.사실 이승하가 서유를 보러 가던 날, 소수빈은 이승하가 따라오지 말라 했음에도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몰래 그를 따라나섰다.무덤 쪽으로 가는 이승하를 보고 소수빈은 서유를 보러 가는 줄 알고 따라 들어가진 않았는데 갑자기 박화영이 보낸 사람들에게 업혀 나오는 이승하를 보게 된 것이다.손목에 피가 흐르는 채로 쓰러져있는 이승하를 보고 박화영이 보낸 사람들한테 당한 걸로 착각하고는 바로 달려들어 이승하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본전도 못 찾고 박화영 지시로 감금까지 당한 상태였다.소수빈은 이 사실을 굳이 말하기 싫어 대충 둘러댔다."말하자면 좀 길어. 나중에 얘기해줄게."주서희도 더 묻지 않고 말했다."오빠 내가 지금까지 모은 돈 그래도 꽤 되잖아요. 그거 가혜 씨 줘요."주서희가 서유를 구할 때 서유가 깨어나기만 한다면 서유

    Last Updated : 2024-03-29

Latest chapter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2화

    서유의 사망 소식을 들은 육성재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결국 그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고, 모든 이들이 묘지를 떠난 후에도 그녀의 묘비 앞에 남아 머물렀다.“서유 씨...”그는 묘비를 붙잡고 천천히 몸을 낮추어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젊지 않은 눈으로 그녀의 영정 속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내가 올 줄 몰랐죠?”육성재는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시작했다.“내가 한 사람을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나도 참 정이 깊은 놈이었네요.”영정 사진을 보며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너무 깊이 사랑해서 세상 어떤 여자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됐어요. 그러니 서유 씨, 나도 이승하 못지않게 당신을 사랑했던 거예요, 안 그래요?”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묘지의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새와 짐승들이 떠나고 나니 주변은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마치 지난 수년간 그의 마음속에 묻어둔 사랑처럼,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힌 채였다.그토록 짙은 사랑은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난 지금에서야 그는 그녀의 묘 앞에 와서 고백했다.그 역시, 깊이 사랑했노라고.모든 사람에게는 후회가 있다. 육성재의 유감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자신을 이렇게 바보처럼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서유는 이미 떠났는데, 육성재 난 왜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거냐? ’육성재는 그녀의 묘비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그러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천천히 일어나 발걸음을 돌렸다.그의 삶은 사랑이 아니라 일에 무게를 둔 인생이었다. 그는 생을 바쳐 육씨 집안을 세계 최고의 가문으로 일궈냈다.그는 상업계의 전설 같은 인물로 남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았던 육성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수도에 있는 송사월은 그녀의 죽음 소식을 제일 마지막으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1화

    생이 마감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은 그 5년 동안 이승하가 숨겼던 사랑이었다.몇 번이나 뒤척이며 잠에서 깼을 때, 자신의 몸이 단단하고 강인한 두 팔에 꽉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강하게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또한 주말에 식사할 때, 식탁 건너편에 앉은 이승하가 가끔 그녀를 몰래 훔쳐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오랜 짝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마친 후 그녀를 안아 자신의 가슴에 엎드리게 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래듯 잠들게 했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이승하의 사랑은 작은 순간순간에 담겨 있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타인에겐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승하 본인만은 아주 알고 있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힘들게 숨겨왔는지...서유의 눈은 이미 뜰 수 없었고, 몸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볼 힘조차 없었다.그녀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더듬어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것을 받은 사람은 정가혜였다.세월이 흐르면서 정가혜도 나이가 들었다. 젊었을 때의 맑은 목소리는 사라지고 약간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서유야, 조금만 기다려. 우리 며느리가 출산하면 바로 널 보러 갈게...”삶의 마지막 순간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왜인지 이미 메마르고 고갈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내 오열로 변해 멈출 수 없었다.“가혜야, 난 승하 씨가 너무 보고 싶어. 그 이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 부탁할게. 하준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줘. 엄마가 하준이 결혼식을 볼 수 없게 됐다고...”전화기 너머의 정가혜는 이 말을 듣고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서유가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어머니로서 아들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이승하를 따라갔을 것이다.얼마 전부터 서유의 몸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0화

    서유의 손가락이 이하준의 머리 뒤로 부드럽게 닿았다. 마치 이미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듯 그녀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언제쯤 결혼할 거니?”이하준의 몸이 경직되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유를 천천히 놓아주며 말했다. “어머니... 아직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어요.”아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유는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봐봐. 네 엄마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단다. 제발 네 아빠를 만나러 가게 해줘. “어릴 적엔 부모님이 그를 속박했지만, 커서는 그가 부모님을 속박했다. 오직 그 속박만이 그를 고아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만 더 이기적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그는 서유의 팔을 붙잡으며 간절히 말했다.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날 거예요. 그러면 결혼하겠습니다, 네?”결국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서유는 평소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교회에 가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네가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길 빌어주마...”서유의 소원을 결코 들어주지 말아달라고 하늘의 신들에게 기도하며, 이하준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코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그는 이승하가 남겨둔 로봇을 다시 가져와 서유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모두 로봇 프로그램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유언의 일부를 들려줄 것이며, 만약 그녀가 아버지가 말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살아야 한다고 전했다.처음에 서유는 이승하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봇이 말을 시작하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서재에 앉아 하루하루 이승하가 녹음했던 로맨틱한 말을 돌려서 들었다.마치 예전에 그가 그녀를 찾지 못했을 때 다른 이의 번호로 하루에 십여 통의 문자를 보내 그녀의 부재를 애도했던 것처럼.이제는 그가 먼저 떠났지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9화

    아들을 위해, 결국 서유는 이승하를 따라 죽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룻밤 사이 머리가 백발이 되어, 마치 열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모습이 되었다. 예전에는 세월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얼굴이 순식간에 주름투성이가 되었고,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그녀의 눈동자도 생기를 잃고 텅 빈 채로 아무 빛깔도 담고 있지 않았다.엄마가 되었으니 이제는 예전처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이승하의 무덤 앞에서 약속했다.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아들이 결혼하면 그때 찾아가겠다고. 만약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다음 생의 약속도 취소할 거라고. 그리고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이승하의 장례식에 서유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내어 비틀거리며 그의 무덤 앞에 섰을 때, 무덤가에서 그녀가 중얼거리던 말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그녀를 부축하며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이하준만이 그 말을 기억했다.눈 덮인 땅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던 그날 밤, 서유는 병원으로 옮겨져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이승하의 시신은 얼음관에 안치된 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일주일을 버텼다. 그녀가 깨어난 후, 그녀는 하얗게 센 머리와 멍한 눈빛으로 그를 단 한 번 보고는 곧바로 돌아섰다.그들이 이승하를 어떻게 묻었는지, 묘지는 어떻게 정했는지, 영정 사진으로 어떤 사진을 선택했는지 서유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차가운 베개를 매만지며 그가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데만 몰두했다.‘만약 당신이 여기 있었다면, 내 하얀 머리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겠죠.’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그랬을 거예요.”이승하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서유가 그 때문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는 한참 동안 기뻐하며, 그녀 마음에 자신이 있다는 확신을 얻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녀가 그로 인해 속을 끓이고 밤낮으로 잠 못 이루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8화

    서유는 떨리는 속눈썹을 들어, 삶의 의미를 잃은 듯한 눈으로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아니, 난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야. 나와 그 사람, 그냥 여기 있을 거야. 내가 얼어 죽을 때까지, 누구도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어.”그녀가 여기서 얼어 죽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주변 사람들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먹먹해졌다. 모두가 그녀를 말리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서유는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단호하고도 완강하게, 이승하를 품에 안고 눈 덮인 땅 위에 앉아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이하준이 서유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손바닥을 힘껏 눌러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어머니,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아요. 그래서 지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드신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전 이미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까지 잃을 순 없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 주세요...”아들이 귀 옆에서 애절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서유는 천천히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빚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의 입술 끝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꽃이 피어난 듯한 미소였다.“난 이미 네 아버지가 떠날 준비를 오래전에 마쳤단다. 이제 그이가 정말 떠났으니, 당연히 나도 함께 가야지. 너도 알잖니. 그이가 살면 나도 살고, 그이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 아무도 이걸 막을 순 없어.”예전에 이하준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만큼이나 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성인식을 맞이한 바로 오늘, 부모님 두 분을 동시에 잃을 수 없었다.눈 덮인 땅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는 천천히 어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서유를 힘껏 끌어안았다.“어머니, 아버지는 제가 결혼하는 것과 자식을 낳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아버지는 그걸 보지 못하고 떠나셨지만, 어머니가 대신 그 순간을 기다려 주시면 안 되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7화

    눈물이 눈가에서 갑작스럽게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가슴을 찢는 통곡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 없이 흘러내릴 뿐, 그녀는 벌어진 입술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이생에서 이승하에게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바보, 당신이 아무리 피를 흘린다 해도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내가 무섭겠어요?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왜 굳이 혼자 이런 곳에 온 거예요?”마지막 이별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나 그녀의 이승하는 이런 안타까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모든 걸 숨겼다.만약... 그녀가 그 가짜 이승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평생 그의 몸조차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눈과 함께 얼어붙어 영원히 설산 아래에 묻혔을 것이다.이승하는 이미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질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게 하려고, 그녀를 속이기 위해 가짜 로봇을 만든 것이다.‘하지만 승하 씨...’‘당신이 아무리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든다 해도, 그건 당신이 아니에요. 당신이 평생 날 속일 수 있다면 난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 그 거짓말은 단 한 순간도 버티지 못했잖아요.’‘당신은 내가 당신을 찾으러 올 것을 허락하지 않았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가짜 로봇을 만들어 내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피를 흘리는 고통을 혼자 감당하며 이런 깊은 산속에서 눈과 마른나무를 친구 삼아 떠나지도 않았겠죠.’그녀의 이승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동시에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그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지만, 그의 사랑 덕분에 서유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죽는다면 그것은 한평생의 약속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이제 먼저 떠난 이승하가 황천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서유는 알 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6화

    마치 무언가 예감이라도 한 듯, 이하준이 떨리는 손으로 이승하의 손을 움켜쥐던 순간, 서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네발로 기어 이하준에게 달려갔다.그녀는 여전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그 단호한 시선은 이승하의 얼어붙고 하얗게 질린 손에 닿자마자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깐 채,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이승하를 덮은 눈을 미친 듯이 파헤쳤다.깊은 산속의 눈은 산 아래보다 훨씬 더 두꺼웠다. 끝없이 쌓인 층층의 눈 속에서 서유는 온 힘을 다해 이승하를 파내던 순간, 그의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흐르는 피가 일곱 군데에서 새어 나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더 이상 어떠한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하준은 아버지의 침묵하는 모습을 목격하자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마음속 어딘가가 찢어지듯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듯, 그의 세계는 단숨에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하준아.”서유의 고요한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도와줘.”이하준은 어머니의 충혈된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탁에 정신을 차렸다. 서유의 눈빛에는 슬픔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이승하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단호함만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얼어붙은 이승하의 손과 얼굴을 붙들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를 녹이려는 듯 필사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이하준도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의 발을 감싸 쥐었다. 그는 얼어붙은 신발을 벗기고 자신의 배 위로 올린 뒤, 손바닥으로 아버지의 다리를 위아래로 문지르기 시작했다.서유는 이승하의 얼굴에 덮인 얼음을 녹이며, 그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지친 손으로 그의 얼굴을 계속 문지르며 이렇게 말했다.“여보, 당신이 나더러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나 정말 잘 기다렸는데, 왜 약속을 안 지키고 돌아오지 않은 거예요?”“지금이라도 눈을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5화

    눈밭을 헤매며 이승하를 찾고 있던 서유는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마치 영혼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오직 그녀 자신뿐, 영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 서서 한참을 있다가 손을 들어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세 번 뛰고 난 뒤, 가슴 깊은 곳에서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아픔이었다. 몸을 굽히며 고통을 참고자 했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직감적으로 그녀는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계속 그를 찾으려던 그 순간, 눈 위로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한 사람이 붉은 리치 한 송이를 손에 들고 걸어왔다.“여보,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야?”눈앞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승하를 보자,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서유는 한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역시 그가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서유는 들고 있던 우산을 내던지고 마치 숲속의 토끼처럼 기쁨에 차 달려가 이승하의 품에 안겼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익숙한 향기에, 서유는 깊게 숨을 내쉬며 안심했다.“당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정말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요!”이승하는 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언제나 그랬듯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이었다.“내가 말했잖아.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라고. 나한테 쉽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그의 품 안에 꼭 안긴 서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더욱 꽉 껴안았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손에 닿자, 서유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이승하를 밀쳐내며 소리쳤다.“당신... 당신은 내 승하 씨가 아니야!”이승하는 요즘 들어 많이 수척해졌고, 허리를 감쌀 때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승하는 예전처럼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당신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4화

    시린 눈보라 속에 홀로 서 있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남은 힘으로 긴 손가락을 들어 흔드는 그를 보며, 이연석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며 재빨리 눈 덮인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형! 내가 먼저 의사를 부르고, 로봇을 산으로 올려보낼게. 그러고 나서 바로 돌아올 테니까 그 자리에서 꼭 기다려. 금방 올게!”밤길은 험난했지만, 사방으로 쏟아지는 눈은 길을 환히 비춰주어 이연석은 마치 대낮처럼 보이는 길 위를 달렸다. 하지만 급한 걸음은 때때로 방향을 잃고, 몇 차례나 눈밭에 무릎을 꿇으며 휘청거렸다.멀어져가는 이연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하는 느려지는 심장 박동을 가슴으로 느끼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생명의 문이 서서히 닫혀가는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였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서유가 그의 흔적을 찾으며 이름을 부르자, 이승하는 무성한 나무 사이에서 고개를 돌려 눈 덮인 길 위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단 한 번의 시선, 그로 인해 시간이 멈추고 만 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이제는 햇빛도 사라지고 눈보라만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승하 씨!”서유는 잠시 기다리다 이상함을 느끼고 별장 맞은편에 있는 집의 문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이승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아 헤맸다.이승하는 대답하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 그러나 온몸의 피가 쏟아지는 그는 예전처럼 힘찬 목소리로 외칠 수 없었다.그는 겨우 뜨고 있는 흐려진 눈으로 고개를 돌려 한 걸음씩 깊은 산 속으로 걸어갔다.그곳은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하얀 눈이 밤하늘을 밝혔어도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가 누울 만한 최적의 장소였다.이승하는 생각했다. 얼음과 눈이 몸을 얼려버리면 야수가 지나가더라도 그의 썩은 살을 물어뜯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설산 아래에 묻히면 그의 외모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