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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이승하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정가혜가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정가혜는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액체를 보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잔인한 말로 계속 남자를 자극해 복수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이승하는 너무 쉽게 무너질 것 같았다.

그녀는 서유가 남기고 간 물건이 생각나 서랍을 열어 몇 마디밖에 쓰지 않은 편지를 이승하에게 건넸다.

“만약 서유가 이런 글을 쓰지 않았다면 절대 당신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어요.”

정가혜는 편지를 그의 손에 쥐여주고는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이승하는 수중의 편지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십여 분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편지를 폈다.

[이승하.

그가 나를 사랑할 거라는 망상을 버리라고 했다.

그는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단 세 마디에 남자는 완전히 무너졌고 극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편지를 쥔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글씨체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서유는 아주 간단하고 짧은 글로 그의 무정함을 호소했다.

이승하는 서유를 껴안고 그런 일을 하다가 화가 나서 고약한 말을 했던 그 날 밤이 생각났다.

송사월과 떠나는 것이 싫어 그녀를 잡고 싶은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갑자기 말을 바꿨다.

만약 그녀가 일찍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다면, 이승하는 분명 그 보잘것없고 우스운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실 오래전, 서유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승하는 마음이 흔들렸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밤이 아니라 바로 서울대학교 정문 앞이었다.

그때 이승하는 피투성이가 되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연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유도 아마 학교에 사람을 찾으러 왔을 것이다. 다친 이승하를 보고 물 한 병을 건네주었고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그때 이승하는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그녀도 남자의 모습을 찬찬히 보지 않고 물 한 병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학교로 들어갔다.

그녀가 떠난 후에야 이승하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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