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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작가: 알라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3-24 18:00:01
김시후는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묘지를 골랐다.

건너편에 있는 명승지는 그와 서유가 왔던 곳이다.

그때 서유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며 앞으로 자주 놀러 오자고 했었다.

나중에 김시후는 그녀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잊고 말았다.

김시후는 품에 안긴 유골함을 내려다보며 죄책감에 눈시울을 붉혔다.

“서유야, 미안해...”

유품을 들고 오던 정가혜는 마침 김시후의 사과를 들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유골함을 끌어안고 놓지 못하는 김시후를 바라보며 순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엇갈리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아쉬움이고 고통일까!

정가혜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애써 참고 트렁크를 그의 앞에 밀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사월아, 이제 묻을까?”

이혜선은 이미 사람을 통해 매장하기 좋은 날을 골랐다. 더 이상 미루면 시간이 지체될 것이고 서유도 가는 길이 편안하지 못할 테니 서둘러 묻는 것이 좋았다.

김시후는 정신을 차리고 정가혜가 들고 온 트렁크를 보았다.

“물건이 이것밖에 없어요?”

정가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다른 건 태우기 아까워서. 서유 물건을 남기고 싶어.”

김시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유골함을 쳐다보더니 여전히 아쉬운 듯 무덤에 넣었다.

곧 직원들은 관을 박아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세우더니 고인의 옷감을 태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시후가 대답하지 않자 경호원 몇 명이 다가가서 직원을 통해 묘지 담당자의 연락처를 받았다.

담당자에게 풀과 나무가 훼손되지 않게 태울 것을 약속하고 또 묘지에 자금을 후원하기로 하자 담당자는 흔쾌히 허락했다.

경호원들은 전화를 끊고 방화판을 바닥에 깔고 옷감을 태울 준비를 마치고는 김시후의 앞으로 걸어갔다.

“대표님, 이제 태우셔도 됩니다.”

김시후는 시종일관 묘비 위 서유의 영정사진을 주시하다가 경호원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가져와.”

경호원 중 한 명이 몸을 돌려 그늘에 놓인 대형 트렁크를 가져왔다.

정가혜는 트렁크 안에 온통 남자 옷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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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는 두 사람 앞에 다가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서유 어디 있죠?”정가혜가 이승하를 본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그가 직접 서유를 데리러 왔을 때였다.그때 이승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아 그의 옆 모습만 보았다.당시에는 재벌가의 뛰어난 유전자를 갖고 있고 잘 생겼다고만 생각했다.하지만 그와 마주 서 있는 지금, 정가혜는 좀 놀랐고 두려웠다.그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 때문이었다.고귀하고 거리감 느껴지는 분위기와 아우라는 타고난 것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김시후는 이제야 찾아온 이승하가 여전히 꼿꼿한 태도를 보이자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서유를 만나러 왔다?”그는 기다란 손가락을 들어 뒤에 있는 무덤을 가리켰다.“서유 저기 있어요.”이승하는 그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보다가 그 묘비의 영정사진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도도하고 음산한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말도 안 돼!”이승하는 고개를 돌려 소수빈에게 명령했다.“무덤 열어!”그는 서유가 안에 누워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반드시 그들의 거짓말을 폭로해야 했다!소수빈은 경호원 몇 명을 향해 손짓했고, 그들은 즉시 무덤을 향해 다가갔다.정가혜는 급히 달려가 경호원을 막았고, 김시후는 이승하의 멱살을 잡았다.“이승하! 서유 이미 죽었다고! 그런데 무덤을 열어? 대체 무슨 속셈이야?”몇 번이고 서유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이승하는 가슴이 칼에 꽂힌 것 같았고 한 번 들을 때마다 깊이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주먹을 꽉 쥐고 고통을 참으며 새빨간 눈으로 차갑게 김시후를 보며 말했다.“서유를 가지려고 일부러 숨긴 거지?”김시후는 코웃음을 치며 이승하를 정신 나간 사람 보듯 했다.“참 불쌍하네. 서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이승하는 더 이상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김시후를 손바닥으로 밀어젖혔다.무덤 앞에 성큼성큼 다가가 묘비 위의 영정사진을 무시하고 관을 들려고 힘껏 손을 들었다.정가혜는 그가 미친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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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후의 말에 주먹을 쥐고 있던 이승하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고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갔다.그렇게 꾹 눌러도 심장에서 밀려오는 아픔을 이기지 못했다.전례 없는 고통이 이승하의 사지에 빠르게 번졌다.마치 전류가 흐른 듯 온몸이 아파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렇게 아파도 이승하는 서유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마지막 모습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죽었다고? 절대 아니야. 분명 어디 숨어 있을 거야!’이승하는 시뻘건 눈으로 김시후를 지나 정가혜를 바라보았다.정가혜는 그의 선홍색 눈동자를 보자 저도 모르게 경악했다.이렇게 무정한 남자도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그녀가 눈을 떼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혜 씨 집으로 가죠!”이승하는 말을 마치고 그녀를 끌고 묘원 밖으로 갔다.“이승하!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김시후가 달려들어 막으려 했지만 소수빈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경호원들이 상황을 보고 즉시 나서서 소수빈을 제압하려 하자 소수빈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도 재빨리 주먹을 휘둘렀다.그렇게 양쪽의 경호원들이 서로 맞붙어 싸우게 되었지만 김시후의 쪽 사람이 적어 곧 제압당했다.“이승하! 감히 가혜 누나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아!”이승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정가혜를 데리고 경호원이 몰고 온 고급 차량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녀를 차에 태우고 직접 운전해서 아파트 쪽으로 달렸다.차 안에 앉아 있는 정가혜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이런 모습은 이미 서유의 죽음을 믿고 있지만 감히 마주할 수 없는 듯했다.지금 정가혜를 데리고 집으로 끌고 가는 것은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일 것이다.검증이 끝나면 그는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이승하는 차를 입구에 세웠고 정가혜에게 아파트로 들어가자고 눈짓했다.정가혜는 눈을 희번덕거렸지만 결국 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향했다.방안은 아주 작아서 한눈에 들어오는데 작은 침실 문만 굳게 닫혀 있었다.이승하는 빠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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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가혜의 단호한 말에 이승하는 갑자기 무언가를 잃은 듯 속이 텅 빈 것 같았다.그는 눈을 붉히며 정가혜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서유는 죽지 않았어요. 이렇게 빨리 화장했을 리가 없어요...”김시후가 얼마나 서유를 사랑하는데, 이렇게 빨리 화장할 수 있을까?정가혜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가 매우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믿지 않는다니.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서유는 연지유의 목소리를 듣고 죽으면 바로 화장해 달라고 했어요.”자신이 죽으면 바로 화장하라고 서유가 요구했다.그녀는 이승하가 떠나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아서, 연지유에게 상처를 입어서, 이승하에게 자신의 시신조차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그녀가 한을 품고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승하는 온몸의 피가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마치 혼이 나간 듯 버티지 못하고 벽을 따라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었고 마치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조이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호흡이 멈출 것 같았다.정가혜는 이승하가 땅에 주저앉아 넋을 잃은 모습이 우습게 여겨졌다.“서유를 연지유의 대역으로 여겼을 뿐이면서 왜 이제 와서 애틋한 척해요? 그러고도 당신 첫사랑을 볼 면목이 있어요?”이승하는 고개를 들어 물안개로 가득 찬 눈으로 정가혜를 보며 말했다.“난 한 번도 서유를 누군가의 대역으로 생각한 적 없어요...”정가혜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서유는 죽기 전까지 자기가 연지유 대역인 줄 알았어요.”이승하의 심장이 또 조여오더니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아픔이 조금씩 퍼져나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그는 천천히 눈을 내리뜨고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깊고 진한 어둠이 그를 감싸 침묵에 빠뜨렸다.한참 후 그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이미 떨리는 목소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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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정가혜가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하지만 정가혜는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액체를 보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잔인한 말로 계속 남자를 자극해 복수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이승하는 너무 쉽게 무너질 것 같았다.그녀는 서유가 남기고 간 물건이 생각나 서랍을 열어 몇 마디밖에 쓰지 않은 편지를 이승하에게 건넸다.“만약 서유가 이런 글을 쓰지 않았다면 절대 당신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어요.”정가혜는 편지를 그의 손에 쥐여주고는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이승하는 수중의 편지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는 벽에 기대어 십여 분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편지를 폈다.[이승하.그가 나를 사랑할 거라는 망상을 버리라고 했다. 그는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단 세 마디에 남자는 완전히 무너졌고 극심한 후회가 몰려왔다.편지를 쥔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글씨체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서유는 아주 간단하고 짧은 글로 그의 무정함을 호소했다.이승하는 서유를 껴안고 그런 일을 하다가 화가 나서 고약한 말을 했던 그 날 밤이 생각났다.송사월과 떠나는 것이 싫어 그녀를 잡고 싶은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갑자기 말을 바꿨다.만약 그녀가 일찍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다면, 이승하는 분명 그 보잘것없고 우스운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사실 오래전, 서유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승하는 마음이 흔들렸다.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밤이 아니라 바로 서울대학교 정문 앞이었다.그때 이승하는 피투성이가 되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연석을 기다리고 있었다.서유도 아마 학교에 사람을 찾으러 왔을 것이다. 다친 이승하를 보고 물 한 병을 건네주었고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그때 이승하는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그녀도 남자의 모습을 찬찬히 보지 않고 물 한 병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학교로 들어갔다.그녀가 떠난 후에야 이승하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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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손에 든 편지를 움켜쥐고 붉게 물든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생명의 빛을 잃고 그의 눈앞도 점점 어두워졌다.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순간,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그는 어둠 속에 우뚝 서서 빛을 찾아 사방을 헤맸다.하지만 빛은 이미 그에 의해 떠나버린 후였다.김시후는 이승하가 정가혜를 해칠까 봐 소수빈의 통제를 벗어나 급히 아파트로 돌아갔다.정가혜가 멀쩡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갔어요?”정가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실을 쳐다보았다.“안에 있어.”김시후는 걸음을 옮겨 바닥에 앉아 이미 영혼을 잃어버린 이승하를 보았다.역시 김시후의 예상대로 그의 마음속에는 서유가 있었다. 단지 그 속내를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그는 이승하가 손에 편지를 꼭 쥐고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다가가 낚아챘다.서유가 이승하에게 남긴 유서를 보자 애써 태연한 척하던 김시후가 무너져 내렸다.‘서유는 진짜 이승하를 사랑하고 있었어. 날 쫓아내기 위해 홧김에 한 말이 아니었어.'김시후는 진작 그녀를 향한 이승하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기적으로 계속 숨겼고, 그녀가 죽을 때까지 알려주지 않았다.순간 죄책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무거운 상실감이 밀려왔다.서유는... 이승하에게 유서를 남겼지만 김시후에게 남기지 않았다. 보아하니 정말 이승하를 사랑하게 된 모양이다.이미 무감각할 정도로 아팠던 이승하는 누군가가 유서를 빼앗은 것을 눈치채고 갑자기 혈안이 되었다.그는 재빨리 일어나 그 편지를 낚아채고 마치 보물을 감싸듯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이승하는 김시후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벽을 짚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날이 어두워진 지 오래고, 김시후는 비틀거리며 아파트를 나섰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수빈은 비틀거리며 나오는 이승하를 보자 급히 다가가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세요?”이승하는 그를 밀어내고 넋을 잃은 모습으로 계속 걸었다.소수빈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황급히 따라가려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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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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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6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제시카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러나 그가 걸음을 옮길 때까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이를 악물고 애써 참았다. 이하준, 이번 생에 절대 내 손안에 떨어지지 마.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니까. 그러나 아직까지 감정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이하준은 그녀의 복수심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잠시 후, 연이를 업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하준이는 연이가 뚱뚱하다고 투덜댔고 화가 난 연이는 그의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두 남매는 웨딩카에 올라타는 그 순간까지도 옥신각신 다투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던 이승하는 서유의 손을 잡고 웨딩카의 뒤를 따라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아빠가 없는 연이에게 오늘 이승하는 아빠 노릇을 해주기로 했다. 연이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가 그녀의 손을 신랑에게 맡겼다.입장하기 전, 문밖에 서 있던 연이가 곱게 화장한 얼굴을 치켜들고는 그를 쳐다보았다.“이모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모부한테 손도 못 대게 하시더니. 오늘은 어쩔 수 없죠?”검은 정장 차림의 그가 담담한 얼굴로 하이힐을 신고 있는 연이를 내려다보았다.“오늘만이야. 다음은 없어.”연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다.“어쩜 이리 하준이랑 똑같아요? 이렇게 좋은 날 꼭 그런 말을 해야겠어요?”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덕담 한마디 내뱉었다.“우주랑 평생 행복하길 바란다. 이번 생에 이리 네 손 잡고 입장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해...”연이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연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그녀의 손을 심우주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조카한테 경고했다.“내 딸한테 잘해. 안 그러면 내가 너 가만 안 둬.”그 말 한마디에 연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릿한 시선 속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승하의 얼굴이 들어왔다.이모부한테 그녀는 처음부터 딸이었다...감동을 받은 연이는 발길을 돌리려는 이승하를 덥석 끌어안고 낮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5화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힘겹게 말을 뱉었다.“연이야, 뒤돌아서 나 좀 봐봐.”화를 참으며 고개를 돌리니 얇은 셔츠 차림에 눈밭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잠깐 멈칫하던 그녀는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 “심우주, 나 이제 너한테 관심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귀찮게 찾아오지 마.”말을 마친 연이는 전화를 끊고 남자 친구의 손을 잡은 채 숙소로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이때, 남자 친구가 허를 찌르는 물음을 내던졌다.“그렇게 귀찮아할 거면서 왜 연락처를 아예 차단하지 않았어?”차단하면 다시는 연락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을 내리깔며 한동안 망설이던 연이는 남자 친구 앞에서 심우주의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연이를 찾을 수 없었던 심우주는 2년 동안 혼이 빠진 사람처럼 살았다. 문자를 받지도 못하는 그녀의 핸드폰으로 2년 동안 수없이 많은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졸업을 앞두고 연이의 남자 친구는 바람을 피우고 연이를 차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화가 나야 할 상황인데 연이는 오히려 침착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를 찾아가 따지지도 않았다. 그후, 심우주 학교의 퀸카가 그를 미친 듯이 따라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연이는 그제야 남자 친구의 바람에 자신이 왜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우주였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누구한테 먼저 고개를 숙일 사람이 아니었다. 졸업식 당일 밤, 우연히 심우주를 다시 만난 그녀는 지난 4년 동안 그가 수없이 몰래 찾아와서 자신을 보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마음이 변치 않은 그를 보며 그녀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날 좋아하지 않았던 애가 언제부터 날 좋아하게 된 걸까?그녀의 의혹에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진한 키스로 뒤늦게 알아버린 자신의 진심을 쏟아냈다. 그의 고백을 받아들일 때, 연이는 뼛속까지 보수적이었던 자신을 다행으로 여겼다. 첫 번째 남자 친구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지 않았기 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4화

    이승하를 따라 차에 올라탄 하준이는 서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엄마, 엄마가 여긴 어떻게...”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된 모습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몰래 네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얼굴에 찍힌 신발 자국을 보니 서유는 더 마음이 아팠다. 손을 뻗어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려다가 아이가 어색해할까 봐 허공에서 손이 굳어버렸다. 조심스러워하는 엄마를 보고 하준이는 예전처럼 무뚝뚝하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수척해진 아이의 얼굴에 손끝이 닿는 순간, 그녀는 비에 흠뻑 젖은 아들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네가 외국에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았더라면 5년 전에 엄마는 절대 널 외국으로 보내지 않았을 거야.”아이가 그녀보다 더 큰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평소에는 제가 애들을 괴롭히는 편이에요.”아이가 당하는 꼴을 직접 눈으로 본 서유는 자신을 위로하는 아이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는 없어?”그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 나름 솜씨가 좋아요. 그러니까 아빠가 올 때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고요.”말을 마치고 그가 고개를 들어 앞줄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는 남자를 우러러보았다.“아빠, 방금 절 구해주던 아빠의 모습은 진짜 영웅 같았어요.”옅은 미소를 짓던 이승하는 소수빈이 건네준 수건을 받아 아이에게 건네줬다.“너도 이제 다 큰 어른인데. 언제까지 내가 와서 구해주기만을 기다릴 거야? 나중에 아빠가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수건을 받아 대충 머리를 닦던 아이는 모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풍당당한 사람인데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요?”아이의 말에 차가운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유도 소수빈도 아무 말이 없었고 차 안의 분위기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3화

    비가 쏟아진 그날 밤, 이하준은 우산을 쓰고 학교를 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마침 쇠몽둥이를 든 외국인 무리와 마주쳤고 그들은 하나 같이 근육질 몸매에 흉악한 얼굴이었다. 가끔 멍청이 같은 사람들이 그를 귀찮게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이승하의 말을 명심하고 애써 참았지만 상대의 모함을 받게 되었다. 한 번은 누군가 그가 개발한 약을 교수의 물컵에 넣었다. 다른 친구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이하준은 그들을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하루 만에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응징했고 학교 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교수가 그를 믿고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그를 무너뜨리지 못한 악당들은 교수의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질투하고 증오했다. 지금 눈앞의 놈들은 분명 그들이 그를 혼내주려고 부른 사람들일 것이다.학교에 다니면서도 소지섭에게 격투 기술을 배우는 걸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두렵지가 않았다. 우산을 살짝 받쳐 드는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눈이 드러났고 그 눈 밑에 살의가 가득했다.근육질 남자들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고 이하준은 손에 든 우산을 접어 날카로운 한끝으로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을 세게 찔렀다. 싸움 실력이 뛰어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더라도 점점 더 많이 달려오는 근육질의 남자들을 혼자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교수님과 약속했었지만 수세에 몰리자 그는 어쩔수 없이 허리춤에 있던 금빛 칼을 빼 들고 근육질 남자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어린 나이에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몇몇 근육질의 남자는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쇠몽둥이를 들어 온 힘을 다해 이하준의 머리를 내리쳤다.이하준의 목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바보로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려면 머리를 쳐야 한다. 바보가 안 된다면 적어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근육질의 남자들은 이하준을 제압하기 위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2화

    그가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입을 열었다.“난 죽는 게 두려운 사람이 아니었어. 그런데 당신을 만난 후부터 죽는 게 그렇게 겁이 나더라.”죽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전 서계를 돌아다니며 의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는 끝내 얻지 못하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했다. 겁이 난 서유는 그를 꼭 껴안았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당신한테는 내가 있고 우리 하준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죽으면 안 돼요. 당신이 죽으면 우리는 어떡하라고요?”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미 5년을 버텨온 그는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고 하느님이 조금씩 조금씩 그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이 전해지는 횟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통증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칩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 다만 떠나기 전에 모든 일을 다 마치고 가야 하는데...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품 안에 있는 여인이 가장 걱정되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깊이 파고들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만큼 뜨겁고 짜릿한 느낌, 슬픈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은 뜨겁게 몸을 섞으며 하나가 되었다. 그녀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쯤, 두 사람의 아찔한 행위가 끝이 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소중한 물건을 끌어안듯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유람선 안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을 빌려 그가 세월의 흔적도 없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다음 생에도 당신이 내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당신의 다음 생은 송사월한테 주기로 약속했었나?”아직 잠들지 않은 서유가 그의 가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번 생에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가면 나 절대 당신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다음 생에 당신 안 만날 거라고요.”그가 슬픈 표정을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1화

    그 당시 풋풋한 어린 소녀였던 연이는 심우주가 자신과 같은 학교에 간다는 말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교과서는 정말 내가 가져오지 않았어. 아마도 애들이 가져간 것 같은데 내일 학교에 가면 돌려주라고 할게.”연이도 하준이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는 짱이었다. 친구를 괴롭히는 일은 없었지만 너무 인기가 많아서 여자아이들이 그녀를 짱으로 받들고 남자아이들도 하루 종일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꼬리를 흔들었다.반면, 심우주는 착실히 공부만 했고 가끔 연이의 괴롭힘에 그는 반격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였기 때문에 심우주는 그런 그녀가 얄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제멋대로 하는 걸 사랑스럽게 지켜보았았다. 다들 오냐오냐하니까 연이는 학교에서도 늘 제멋대로였다. 그러나 그 당시 자신의 마음을 잘 몰랐던 심우주는 연이의 그런 모습에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잠시 후, 어른들에게 차례로 작별 인사를 마친 이하준이 차에 올라탔다. 늘 차갑기만 하던 아이가 한동안 머뭇거리더니 차에서 내려와 서유를 덥석 끌어안았다.“엄마, 몸 잘 챙겨요.”갑작스러운 아이의 행동에 서유는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하준아, 엄마 아빠는 집에서 우리 하준이 기다리고 있을게.”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손을 풀고 옆에 있던 이승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아빠, 제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아빠도 절 이길 수 없을 거예요.”입꼬리를 살짝 올리던 그가 손을 뻗어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다.“자부심이 강한 사람은 남의 칼에 찔리기 쉬운 법이야. 자세를 낮추는 법을 배우거라.”아빠의 충고를 아이는 가슴 깊이 새겼다.“네, 그렇게 할게요.”이내 그가 허리춤에서 ‘S'라고 새겨진 금빛 칼을 꺼내 아이한테 건네주었다. “돌잡이 때 네가 잡은 칼이야. 이제는 네가 갖고 있어.”전에 소지섭한테서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0화

    서유는 어쩔 수 없이 의사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문밖을 지키고 있던 소지섭은 의사가 떠나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다.“방금 연이랑 하준이가 와서 묻더라고요. 대표님한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서유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이승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감기라고 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고개를 끄덕이던 소지섭은 자리를 떴고 그녀 혼자 덩그러니 문밖에 서 있었다. 그가 얼마나 더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을지...어느 순간 갑자기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가 옆에 있어도 그녀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하준이 유학길에 오른 그날, 이씨 가문과 상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배웅하러 왔다. 마치 하준이의 돌잡이 때처럼 정원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른들의 모습이 이미 많이 변했고 아이들도 훌쩍 자란 상태였다. 서유와 이승하의 우월한 유전자만 이어받은 이하준은 10살밖에 안 된 나이지만 정교한 이목구비에 곧은 몸매를 가지고 있어 보기만 해도 귀티가 철철 흘러넘쳤다. 게다가 180 가까이 되는 아이큐를 가지고 있어 누가 봐도 엄친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특히 이연석은 흰색 스웨터 차림에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에 가방을 든 채로 계단을 내려오는 이하준의 모습을 보고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그는 옆에서 초등학생 교복을 입은 채 케이크를 뺏어 먹고 있는 오뚝이와 깡순이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똑같은 10살인데 이게 뭐냐? 누구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명문 학교에 입학하고 누구는 아직도 초등학교나 다니고 있으니.”그 말에 정가혜가 그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거죠. 내가 몇 번을 말해요. 자꾸만 애들 다그치지 말라고 했죠.”이를 갈던 그가 두 아이 앞으로 다가가 케이크를 낚아채 입에 쑤셔 넣었다.“너희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로 일찍 진학 못 하면 아빠 진짜 가만 안 둬.”두 아이는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29화

    “승하 씨...”깜짝 놀란 그녀는 미친 듯이 핸드폰을 찾았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일어서지도 못하였다. 어떻게 의사를 찾아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애틋한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긴장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바닥을 짚고 있던 손에도 덩달아 힘이 풀렸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고 입술이 파르르 떨려 말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당신... 왜... 그래요?”지난 10년 동안, 이승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온 그녀는 거의 울어본 적이 없다. 잠깐 정신을 잃은 모습에도 이렇게 펑펑 우는 것을 보니 그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애써 두통을 참으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던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녀를 품에 안고 소파에 쓰러지더니 세월조차 비껴간 잘생긴 얼굴을 살짝 치켜들었다.“깊게 잠이 든 것뿐이야. 왜 이렇게 겁을 먹어?”말을 하면서 손을 뻗어 눈물로 뒤덮인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부러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당신 요즘 살이 좀 오른 것 같은데.”화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녀는 눈물이 글썽한 두 눈을 들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도 그렇죠. 어떻게 사람이 깨우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요?”맑고 깨끗한 그녀의 눈을 그는 차마 마주칠 수가 없었다.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떼어 그녀의 등을 눌러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얹었다. “바보,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야. 피곤할 때는 꿈을 꾸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거든.”그 말을 그녀는 당연히 믿지 못하였다.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어서 그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왜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는지 그녀는 짐작할 수 있었다.단단한 가슴 위에 얹혀있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미안해요. 당신 머릿속에 있는 칩을 꺼낼 의사를 찾아야 하는데...”겁이 났다. 이승하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자신을 목숨보다 더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28화

    지난주, 토론 대회에 나간다고 말하는 연이를 향해 이하준은 엄청 비꼬았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연이는 씩씩거리며 이하준과 내기를 했고 뜻밖에도 그녀가 이기게 될 줄은 몰랐다.눈꺼풀을 내리깔던 하준이가 손을 힐끗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평소에 그렇게 재잘재잘하더니 실력 한번 제대로 발휘했네. 축하해.”진심으로 축하하는 것 같지 않고 그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아무튼 이번에는 네가 졌어. 그러니까 잊지 말고 돈 입금해.”이하준은 천천히 냅킨을 깔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밥 먹고 나서 줄게. 근데 누나...”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기세등등하게 연이를 쳐다보았다.“누나 올해 열일곱이지? 아직까지 고등학교에 다니고. 수시 자격도 따내지 못했으니 수능 봐서 어떤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다.”그 말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너...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잘난 척하지 마. 내년에 나도 그 학교에 합격할지 모르니까.”이하준은 칼과 포크를 집어 들고 스테이크를 썰어서 입에 넣었다.“그럼 내 후배가 되는 건가?”화가 난 연이가 반격할 겨를도 없이 그가 또 빈정거렸다.“내년에 학교에서 만나. 만나면 나한테 선배라고 부르는 거 잊지 말고.”“아악. 열받아 죽겠네.”연이가 가슴을 내리치더니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서유의 팔짱을 끼고 어깨에 기댄 채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이모, 하준이 쟤 정말 얄미워죽겠어요. 빨리 학교에 보내버려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요.”서유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막상 가고 나면 또 보고 싶을걸?”“아니요. 그럴 일은 절대 없어요.”입을 삐죽거리면서 시선은 이하준의 얼굴로 향해 있었다. 솔직히 이 녀석과 10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정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얄미운 동생인 건 사실이다.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웃음을 짓던 서유가 포크로 과일을 집어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연이는 과일을 받아먹으면서 이하준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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