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후는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묘지를 골랐다.건너편에 있는 명승지는 그와 서유가 왔던 곳이다.그때 서유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며 앞으로 자주 놀러 오자고 했었다.나중에 김시후는 그녀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잊고 말았다.김시후는 품에 안긴 유골함을 내려다보며 죄책감에 눈시울을 붉혔다.“서유야, 미안해...”유품을 들고 오던 정가혜는 마침 김시후의 사과를 들었다.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유골함을 끌어안고 놓지 못하는 김시후를 바라보며 순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엇갈리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아쉬움이고 고통일까!정가혜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애써 참고 트렁크를 그의 앞에 밀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사월아, 이제 묻을까?”이혜선은 이미 사람을 통해 매장하기 좋은 날을 골랐다. 더 이상 미루면 시간이 지체될 것이고 서유도 가는 길이 편안하지 못할 테니 서둘러 묻는 것이 좋았다.김시후는 정신을 차리고 정가혜가 들고 온 트렁크를 보았다.“물건이 이것밖에 없어요?”정가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다른 건 태우기 아까워서. 서유 물건을 남기고 싶어.”김시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유골함을 쳐다보더니 여전히 아쉬운 듯 무덤에 넣었다.곧 직원들은 관을 박아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세우더니 고인의 옷감을 태우지 말라고 당부했다.김시후가 대답하지 않자 경호원 몇 명이 다가가서 직원을 통해 묘지 담당자의 연락처를 받았다.담당자에게 풀과 나무가 훼손되지 않게 태울 것을 약속하고 또 묘지에 자금을 후원하기로 하자 담당자는 흔쾌히 허락했다.경호원들은 전화를 끊고 방화판을 바닥에 깔고 옷감을 태울 준비를 마치고는 김시후의 앞으로 걸어갔다.“대표님, 이제 태우셔도 됩니다.”김시후는 시종일관 묘비 위 서유의 영정사진을 주시하다가 경호원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가져와.”경호원 중 한 명이 몸을 돌려 그늘에 놓인 대형 트렁크를 가져왔다.정가혜는 트렁크 안에 온통 남자 옷인 것
이승하는 두 사람 앞에 다가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서유 어디 있죠?”정가혜가 이승하를 본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그가 직접 서유를 데리러 왔을 때였다.그때 이승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아 그의 옆 모습만 보았다.당시에는 재벌가의 뛰어난 유전자를 갖고 있고 잘 생겼다고만 생각했다.하지만 그와 마주 서 있는 지금, 정가혜는 좀 놀랐고 두려웠다.그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 때문이었다.고귀하고 거리감 느껴지는 분위기와 아우라는 타고난 것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김시후는 이제야 찾아온 이승하가 여전히 꼿꼿한 태도를 보이자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서유를 만나러 왔다?”그는 기다란 손가락을 들어 뒤에 있는 무덤을 가리켰다.“서유 저기 있어요.”이승하는 그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보다가 그 묘비의 영정사진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도도하고 음산한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말도 안 돼!”이승하는 고개를 돌려 소수빈에게 명령했다.“무덤 열어!”그는 서유가 안에 누워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반드시 그들의 거짓말을 폭로해야 했다!소수빈은 경호원 몇 명을 향해 손짓했고, 그들은 즉시 무덤을 향해 다가갔다.정가혜는 급히 달려가 경호원을 막았고, 김시후는 이승하의 멱살을 잡았다.“이승하! 서유 이미 죽었다고! 그런데 무덤을 열어? 대체 무슨 속셈이야?”몇 번이고 서유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이승하는 가슴이 칼에 꽂힌 것 같았고 한 번 들을 때마다 깊이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주먹을 꽉 쥐고 고통을 참으며 새빨간 눈으로 차갑게 김시후를 보며 말했다.“서유를 가지려고 일부러 숨긴 거지?”김시후는 코웃음을 치며 이승하를 정신 나간 사람 보듯 했다.“참 불쌍하네. 서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이승하는 더 이상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김시후를 손바닥으로 밀어젖혔다.무덤 앞에 성큼성큼 다가가 묘비 위의 영정사진을 무시하고 관을 들려고 힘껏 손을 들었다.정가혜는 그가 미친 것을 보고
김시후의 말에 주먹을 쥐고 있던 이승하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고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갔다.그렇게 꾹 눌러도 심장에서 밀려오는 아픔을 이기지 못했다.전례 없는 고통이 이승하의 사지에 빠르게 번졌다.마치 전류가 흐른 듯 온몸이 아파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렇게 아파도 이승하는 서유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마지막 모습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죽었다고? 절대 아니야. 분명 어디 숨어 있을 거야!’이승하는 시뻘건 눈으로 김시후를 지나 정가혜를 바라보았다.정가혜는 그의 선홍색 눈동자를 보자 저도 모르게 경악했다.이렇게 무정한 남자도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그녀가 눈을 떼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혜 씨 집으로 가죠!”이승하는 말을 마치고 그녀를 끌고 묘원 밖으로 갔다.“이승하!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김시후가 달려들어 막으려 했지만 소수빈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경호원들이 상황을 보고 즉시 나서서 소수빈을 제압하려 하자 소수빈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도 재빨리 주먹을 휘둘렀다.그렇게 양쪽의 경호원들이 서로 맞붙어 싸우게 되었지만 김시후의 쪽 사람이 적어 곧 제압당했다.“이승하! 감히 가혜 누나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아!”이승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정가혜를 데리고 경호원이 몰고 온 고급 차량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녀를 차에 태우고 직접 운전해서 아파트 쪽으로 달렸다.차 안에 앉아 있는 정가혜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이런 모습은 이미 서유의 죽음을 믿고 있지만 감히 마주할 수 없는 듯했다.지금 정가혜를 데리고 집으로 끌고 가는 것은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일 것이다.검증이 끝나면 그는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이승하는 차를 입구에 세웠고 정가혜에게 아파트로 들어가자고 눈짓했다.정가혜는 눈을 희번덕거렸지만 결국 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향했다.방안은 아주 작아서 한눈에 들어오는데 작은 침실 문만 굳게 닫혀 있었다.이승하는 빠른 걸
정가혜의 단호한 말에 이승하는 갑자기 무언가를 잃은 듯 속이 텅 빈 것 같았다.그는 눈을 붉히며 정가혜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서유는 죽지 않았어요. 이렇게 빨리 화장했을 리가 없어요...”김시후가 얼마나 서유를 사랑하는데, 이렇게 빨리 화장할 수 있을까?정가혜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가 매우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믿지 않는다니.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서유는 연지유의 목소리를 듣고 죽으면 바로 화장해 달라고 했어요.”자신이 죽으면 바로 화장하라고 서유가 요구했다.그녀는 이승하가 떠나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아서, 연지유에게 상처를 입어서, 이승하에게 자신의 시신조차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그녀가 한을 품고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승하는 온몸의 피가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마치 혼이 나간 듯 버티지 못하고 벽을 따라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었고 마치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조이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호흡이 멈출 것 같았다.정가혜는 이승하가 땅에 주저앉아 넋을 잃은 모습이 우습게 여겨졌다.“서유를 연지유의 대역으로 여겼을 뿐이면서 왜 이제 와서 애틋한 척해요? 그러고도 당신 첫사랑을 볼 면목이 있어요?”이승하는 고개를 들어 물안개로 가득 찬 눈으로 정가혜를 보며 말했다.“난 한 번도 서유를 누군가의 대역으로 생각한 적 없어요...”정가혜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서유는 죽기 전까지 자기가 연지유 대역인 줄 알았어요.”이승하의 심장이 또 조여오더니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아픔이 조금씩 퍼져나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그는 천천히 눈을 내리뜨고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깊고 진한 어둠이 그를 감싸 침묵에 빠뜨렸다.한참 후 그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이미 떨리는 목소리였
이승하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정가혜가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다.하지만 정가혜는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액체를 보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잔인한 말로 계속 남자를 자극해 복수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이승하는 너무 쉽게 무너질 것 같았다.그녀는 서유가 남기고 간 물건이 생각나 서랍을 열어 몇 마디밖에 쓰지 않은 편지를 이승하에게 건넸다.“만약 서유가 이런 글을 쓰지 않았다면 절대 당신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어요.”정가혜는 편지를 그의 손에 쥐여주고는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이승하는 수중의 편지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는 벽에 기대어 십여 분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편지를 폈다.[이승하.그가 나를 사랑할 거라는 망상을 버리라고 했다. 그는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단 세 마디에 남자는 완전히 무너졌고 극심한 후회가 몰려왔다.편지를 쥔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글씨체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서유는 아주 간단하고 짧은 글로 그의 무정함을 호소했다.이승하는 서유를 껴안고 그런 일을 하다가 화가 나서 고약한 말을 했던 그 날 밤이 생각났다.송사월과 떠나는 것이 싫어 그녀를 잡고 싶은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갑자기 말을 바꿨다.만약 그녀가 일찍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다면, 이승하는 분명 그 보잘것없고 우스운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사실 오래전, 서유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승하는 마음이 흔들렸다.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밤이 아니라 바로 서울대학교 정문 앞이었다.그때 이승하는 피투성이가 되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연석을 기다리고 있었다.서유도 아마 학교에 사람을 찾으러 왔을 것이다. 다친 이승하를 보고 물 한 병을 건네주었고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그때 이승하는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그녀도 남자의 모습을 찬찬히 보지 않고 물 한 병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학교로 들어갔다.그녀가 떠난 후에야 이승하는 고개
그는 손에 든 편지를 움켜쥐고 붉게 물든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생명의 빛을 잃고 그의 눈앞도 점점 어두워졌다.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순간,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그는 어둠 속에 우뚝 서서 빛을 찾아 사방을 헤맸다.하지만 빛은 이미 그에 의해 떠나버린 후였다.김시후는 이승하가 정가혜를 해칠까 봐 소수빈의 통제를 벗어나 급히 아파트로 돌아갔다.정가혜가 멀쩡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갔어요?”정가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실을 쳐다보았다.“안에 있어.”김시후는 걸음을 옮겨 바닥에 앉아 이미 영혼을 잃어버린 이승하를 보았다.역시 김시후의 예상대로 그의 마음속에는 서유가 있었다. 단지 그 속내를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그는 이승하가 손에 편지를 꼭 쥐고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다가가 낚아챘다.서유가 이승하에게 남긴 유서를 보자 애써 태연한 척하던 김시후가 무너져 내렸다.‘서유는 진짜 이승하를 사랑하고 있었어. 날 쫓아내기 위해 홧김에 한 말이 아니었어.'김시후는 진작 그녀를 향한 이승하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기적으로 계속 숨겼고, 그녀가 죽을 때까지 알려주지 않았다.순간 죄책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무거운 상실감이 밀려왔다.서유는... 이승하에게 유서를 남겼지만 김시후에게 남기지 않았다. 보아하니 정말 이승하를 사랑하게 된 모양이다.이미 무감각할 정도로 아팠던 이승하는 누군가가 유서를 빼앗은 것을 눈치채고 갑자기 혈안이 되었다.그는 재빨리 일어나 그 편지를 낚아채고 마치 보물을 감싸듯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이승하는 김시후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벽을 짚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날이 어두워진 지 오래고, 김시후는 비틀거리며 아파트를 나섰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수빈은 비틀거리며 나오는 이승하를 보자 급히 다가가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세요?”이승하는 그를 밀어내고 넋을 잃은 모습으로 계속 걸었다.소수빈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황급히 따라가려 했
"승하 씨, 우리 계약 아직 6개월 남았는데 좀만 더 기다려주면 안 돼요?""그래.""그럼 나 사진 한 장만 찍어줘요. 나랑 떨어져 있어도 나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게.""알겠어.""그럼..."이승하는 손가락을 들어 서유의 말캉한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게. 그게 뭐든지."서유는 입꼬리를 올려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승하를 향해 웃었다."그럼... 우리 다음 생엔 보지 말아요. 이제 다신 보지 말아요."이승하는 가슴에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통증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안돼!"뜬 눈에 들어오는 건 하얀 천장뿐이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서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이승하는 천천히 눈을 돌려 자신의 손목에 칭칭 감긴 붕대를 보고는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역시 예전처럼 이승하를 가만히 죽게 내버려 둘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승하가 의외라 여겼던 것은 그렇게 잡고 싶었던 서유가 꿈에 나타나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한 것이다.이미 이승하한테 실망할 대로 실망해 버렸기에 다음 생에도 엮이고 싶지 않은 걸까...숨이 턱턱 막혀오는 답답함과 심장을 도려낼 듯이 아파오는 느낌이 이승하를 옥죄여 왔다.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통증에 이승하는 애써 무시해 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통증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가슴으로부터 온몸을 향해 퍼져나갔다.그제야 이승하는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그렇게 제 의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누군가를 잃는 것, 보고 싶은 사람을 영영 볼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에서 비롯된 슬픔은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이승하는 입꼬리를 올리며 슬픈 웃음을 짓고는 제 감정과 싸우기를 그만두었다. 그냥 그 감정에 자신이 잡아먹히도록 내버려 두었다. 얼마나 지났을까.실핏줄이 터진 두 눈에 생기라는 것이 돌았다. 이승하는 다른 사람에 의해 바뀐 자신의 옷차림에 미간을 찌푸리며 아직 아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마치 무언
"도련님, 사모님께서 올라오십니다. 사진 얼른 넣으세요."주태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이승하를 다그쳤지만 이승하는 전혀 급해 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진을 더 빤히 쳐다봤다. 서유가 이미 죽은 마당에 이젠 더 두려울 것도 없었다.이승하가 죽는 걸 이토록 막으니 살아 줄 수밖에. 살아서 그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사람이 아닌 악마를 살린 대가가 무엇인지.휠체어가 굴러가면서 내는 소리가 복도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졌다.소리가 날 때마다 주태현은 심장이 쪼그라들며 숨도 크게 뱉지 못했다.어두침침하던 방에 그들이 들어오려 하자 순간 불이 켜지며 대낮처럼 환해졌다.휠체어에 앉은 부인 뒤로는 체격이 우람진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그 뒤에는 특수부대 출신의 경호원들이 줄지어 따랐다.그들이 들어오고 나서도 이승하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충혈된 눈으로 사진 속의 서유만 바라보았다.이승하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부인의 낯빛이 어두워져 갔다."쟤가 들고 있는 거 가져와."부인의 명령이 들리자 이승하는 사진의 금고 맨 위 칸에 넣고는 그 아래층의 총을 꺼내 들었다.그러고는 명령을 받은 남자가 그의 뒤에까지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총알을 장전하며 뒤를 돌아 남자의 이마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그의 행동에 적잖이 놀란 남자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승하야 내가 그래도 네 삼촌인데 총은 좀 아니지.""삼촌?"이승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어떤 삼촌이 5살 된 조카를 물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눌러서 죽게 만들겠어요?"남자는 이승하가 그 옛날 일을 기억할 줄 몰랐다는 듯이 당황하며 변명을 해댔다."나는 너 수영 가르쳐주려고 그랬던 거지."이승하의 올라간 한쪽 입꼬리가 남자를 향한 비웃음을 드러내는 듯했다. 이승하는 그의 말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고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총알이 금방이라도 튀여나갈 듯한 상황에서 휠체어에 앉아있던 부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녀는 사람을 시켜 온몸이 피범벅이 된 여자를 끌고 와 이승하의 앞에 던졌다.제 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