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심전도 모니터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수술대 위에 있던 사람은 이렇게 떠난 것이다.울다 못 한 정가혜가 결국 기절했고, 주서희는 황급히 그녀를 끌고 가 응급처치를 시도했다.김시후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자세를 유지한 채 꼼짝하지 않고 수술대 위 서유를 바라보았다.그렇게 말없이 몇 분 동안 쳐다보다가, 그는 나약해진 서유의 몸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그러자 옆방 응급 구조 실에 있던 주서희가 김시후를 가로막았다.“김 대표님, 서유 씨 마지막 유언은 곧장 화장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나도 알아...”그는 창백한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옷 좀 갈아입혀 주고 싶어서.”서유의 옷은 그의 손에 묻은 피로 더러워졌다. 평소에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서유였기에 틀림없이 이런 옷을 입고 화장하러 가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그의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은 주서희를 놀라게 했다. 김시후는 서유를 매우 사랑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이렇게 평온할 수 있는 걸까?주서희는 멀어지는 김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김 대표님은 적어도 서유 씨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려 하는데, 이 대표님은 그림자조차 안 보인다니...’그러다 마음속의 놀라움도 점차 옅어졌다.‘남자는 항상 이렇게 매정하기 때문에 어떠한 희망도 품어서는 안 돼...’김시후는 서유를 안고 병실로 돌아와 그녀의 몸을 깨끗이 닦고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혔다.그러고는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 다시 서유의 주민등록증을 집어 들고 경호원에게 사망 진단서를 떼도록 했다.진단서를 손에 넣은 순간 역시 김시후는 매우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안아 병원 옆에 있는 화장터로 향했다.곧이어 서유를 직접 화장터로 데려온 김시후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직원이 그를 막아 나섰다.“선생님, 이 안에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다음 소각 작업은 저희에게 맡겨주세요...”결국 소각문 밖에서 멈춰 선 김시후는 서유가 몇몇 직원의 인도하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어둠이 깔리자 철문이 열렸고 유골함을 든 직원이 걸어 나왔다.“서유 씨 화장 끝났습니다. 가족분들은 유골함 받아 가세요.”그러자 김시후의 경호원이 즉시 다가가 유골함과 주민등록증을 가져왔다.경호원은 유골함을 손에 받쳐 들고 허리를 숙여 반쯤 정신을 잃은 김시후에게 건넸다.“대표님, 이만 서유 씨를 집에 데려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집으로 가는 길을 몰라...”‘이승을 떠도는 외로운 망령이 될지도 모릅니다.’감히 이 말까지는 뱉지 못했지만, 김시후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이윽고 핏빛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유골함에 닿았다.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한 움큼의 재로 변했다고 생각되자, 그는 세상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껴졌다.이때 하늘에서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한 그날 밤처럼 콩알만 한 빗방울이 세차게 내리쳤다.쏟아지는 비가 김시후의 머리카락과 뺨을 흠뻑 적셨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벗어 유골함을 덮었다.애써 진정시킨 뒤 떨리는 손을 들어 유골함을 건네받으려 했지만, 몇 번이나 실패하고 말았다.“내가 할게.”소준섭이 유골함을 받으려 손을 뻗었지만, 결국 김시후에 의해 제지당하고 말았다.그는 떨리는 손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며 유골함을 받아내려 했다.그렇게 안정된 후, 김시후는 유골함을 한사코 품에 꼭 안아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서유야,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광풍이 불며 번개가 내리치자 그 빛 사이로 김시후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그는 유골함을 꼭 껴안고 소준섭의 부축 하에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한 걸음 한 걸음 화장터를 빠져나갔다.예전에 김시후는 어른이 되면 서유를 아내로 삼아 집에 데려오겠다 약속한 적이 있었다.불행하게도 그 약속을 지키기도 전에 그녀가 황급히 세상을 떠났지만 말이다.하지만 서유가 살아있든 죽었든, 김시후는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차가 구청에 들어섰을 때, 소준섭은 그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고 김시후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유골
김시후는 서유를 그 별장으로 데려갔다. 그녀가 왔던 곳이니 그녀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이혜선은 유골함을 안은 채 죽을상이 된 김시후를 보고 깜짝 놀랐다.하지만 소준섭과 경호원들이 똑같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유골함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분명 김시후의 가족일 것으로 생각했다.“도련님, 제가 빈소를 준비하겠습니다...”김시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혜선이 돌아섰을 때 그녀를 불렀다.“비석에 이름도 써주세요.”“네, 뭐라고 적을까요?”김시후는 유골함을 내려다보며 애틋하게 대답했다.“김시후의 아내, 서유요.”이혜선은 흠칫 놀랐다.‘서유라고? 내가 전에 봤던 그 아가씨? 아주 예쁘지만 몸이 좀 허약했던 분?’이혜선은 감히 묻지 못하고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바로 내려가서 준비했다.김시후는 유골함을 올려놓고 소준섭에게 말했다.“너 이제 가봐도 돼. 나 혼자 괜찮아.”소준섭은 거절하려 했지만 김시후가 말을 이었다.“나 서유랑 조용히 있고 싶어.”김시후는 당연히 서유에게 묘지를 마련해 줄 것이다. 서유와 단둘이 있다가 직접 그녀를 안장할 것이다.소준섭은 그런 김시후의 모습을 보고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 네 몸 잘 살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김시후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준섭은 그제야 안심하고 떠났다.떠나기 전 경호원에게 김시후를 잘 돌보라고 당부했다.소준섭이 떠나고, 김시후는 깨끗한 수건으로 유골함을 꼼꼼히 닦았다.정가혜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주서희로부터 김시후가 이미 서유를 화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또 펑펑 울었다.주서희는 그녀의 어깨를 껴안고 소리 없는 위로를 건넸다. 마음속으로는 서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서유 씨에게는 원래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었어. 내가 아니었다면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맞지도 않았겠지... 내가 무능해서 서유 씨를 죽인 거야...’정가혜는 주서희와 함께 김시후의 별장으로 갔다.빈소는 이미 마련
얼마나 울었을까, 정가혜는 목이 쉬고 힘이 다 빠져서야 겨우 몸을 가누고 소파에서 일어났다.서유가 황천길에서 입을 옷이 없게 해서는 안 되니 그녀의 유품을 정리해야 했다.정가혜는 반드시 정신을 차리고 예쁜 옷 몇 벌을 골라야 했다.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서유의 방으로 걸어갔다.방 안에 서유의 물건은 그대로지만 서유가 없는 것을 보고 또다시 눈물이 앞을 가렸다.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한참을 울다가 눈물을 닦고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옷장에서 옷을 꺼내고 신발장에서 신발 몇 켤레를 꺼내고 이불도 정리했다.나머지 물건은 건드리지 않았다. 다 태워버리기 아까워 기념으로 남겨둘 생각이었다.유품을 싸고 침실을 나서려고 돌아섰을 때, 정가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책상을 돌아보았다.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책상으로 이끌고 또 서랍을 열게 했다.안에는 공책 한 권과 ‘유서’라고 적힌 봉투가 하나 있었다.유서라는 두 글자를 보자 정가혜는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서유는 이미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어.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거야.’만약 정가혜가 일찍 발견했다면 서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지금처럼 아쉬움이 한가득 남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 유서를 꺼냈다. 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편지를 천천히 펼쳤다.[사랑하는 가혜에게: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쯤이면, 난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야. 하지만 가혜야, 나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마.인생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같아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어. 그냥 받아들이자고.난 이미 운명을 받아들였어. 그러니까 너도 너무 슬퍼하지 마. 나 때문에 눈 퉁퉁 부을 때까지 울지 말고. 그럼 내가 너무 걱정되잖아.가혜야, 내 옆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 어릴 때부터 누가 나를 괴롭히면 네가 제일 먼저 나서서 나를 지켜줬잖아.열두 살 때, 학교 앞에서 불량 학생들을 만났던 기억이 나. 그때도 네가 필사적으로 싸워서 나를 구해줬어.그때 네가 아르바이트해서 새로
정가혜는 이 편지를 보고 이미 미친 듯이 울고 있었다.봉투에 끼워진 은행 카드는 마치 고철 조각처럼 그녀의 심장을 꽉 누르고 있어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바보 같으니라고. 죽기 전까지 나 돈 없을까 봐 걱정한 거야? 하지만...’“서유야, 난 네 돈 같은 거 필요 없어. 난 널 원한다고...”정가혜는 봉투를 움켜쥔 채 깊은 그리움에 빠져 서글피 울었다.결국 울다 지친 정가혜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서유가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서유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정가혜는 꿈속에서까지 서유를 보게 된 것이다.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 마치 나락으로 떨어진 듯 무력감을 느꼈고 가슴에 단단한 것이 막힌 듯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그녀는 퉁퉁 부어오른 두 눈을 뜬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듯 고요해진 느낌이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구찌 종이봉투에서 흘러나오는 서유의 휴대폰 벨 소리였다.정가혜는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힘겹게 몸을 이끌고 전화를 들었다.액정 화면에 이승하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보고 그녀는 순간 손동작을 멈추었다.서유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했지만 이승하는 연지유에게 전화를 받게 했다.그런 야박한 남자는 서유의 죽음을 알 자격이 없으니 정가혜는 받지 않았다. 상대방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끝까지 받지 않았다.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서유의 옷을 챙겨주려는데 ‘김씨’라는 사람이 수많은 메시지를 보내온 것을 확인했다.그동안 꾸준히 보내온 메시지였다. 전부 서유를 보고 싶다는 등 변태적인 메시지였고, 서유가 의식을 잃어 병원에 실려 간 날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보내왔다.정가혜는 그 미안하다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 김씨라는 사람이 그동안 서유에게 과도하게 집착한 것 같았다. 서유가 죽은 후에도 이런 변태의 메시지를 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휴대
연지유의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전에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에 의해 경직되었다.그녀는 웃음기를 거두고 이승하에게 다가가서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보았다.“승하야, 내가 여기 있는 게 기분 나빠?”이승하의 조각 같은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음산한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네가 왜 여기 있어?”이곳은 이승하의 휴스턴 개인 저택으로 위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연지유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은 그녀가 이승하를 미행했다는 것을 증명한다.연지유는 남자의 눈빛에 놀라 뒤로 물러난 후, 몸에 있는 목욕 수건을 감싸고 내키지 않는 듯 위로 당겼다.“승하야, 이모가 네 행적을 훤히 알고 계셔. 이젠 나도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우리 사이에 진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나 여기로 보내신 거야...”연지유는 용기를 내어 하얀 손을 뻗어 남자의 뺨을 어루만지려 했다. 하지만 그의 피부에 닿기도 전에 남자가 옆으로 비켜섰다.이승하는 여전히 그녀를 피하고 있었다.연지유는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더니 절망적인 미소를 지었다.“이승하, 대체 나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이승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나가.”평소 같았으면 연지유는 감히 이승하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얌전히 떠났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목욕 수건을 두르고 여자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그런데 이승하는 마음이 움직이기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고 그녀에게 나가라고 하다니. 이걸 연지유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연지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했다.“나랑 결혼하겠다고 형이랑 약속한 거 잊었어?”그 말을 들은 이승하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형이 아니었다면 난 절대 너랑 결혼하지 않아. 알아들었으면 빨리 나가.”연지유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예전에 이 말로 위협하면 이승하는 늘 타협했다.타협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지만 지금은 그녀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쫓아내려 한다.연지유는 재
소수빈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이승하의 눈치를 살폈다.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조각 같은 얼굴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내 말을 못 들으셨나? 아니면 서유 씨의 생사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건가? 왜 아무런 반응도 없지?’소수빈은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대표님, 저는 이만 가볼 테니 쉬세요.”그가 돌아서서 가려고 했지만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누가 사망했다고?”소수빈은 눈살을 찌푸렸다.‘방금 내가 아주 분명하게 말했는데 대표님 진짜 못 들으셨나?’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다시 몸을 돌려 온몸에서 한기를 뿜어내는 남자를 쳐다보았다.“서유, 서유 씨가요.”이승하가 잘 듣지 못할까 봐 소수빈은 일부러 서유의 이름을 강조했다.남자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졌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멀쩡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죽어?”소수빈은 제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듣지 못한 게 아니라 서유 씨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으시는구나!’그는 주서희에게 들은 말을 이승하에게 전했다.“대표님, 서유 씨는 심부전이었어요.”이승하는 차갑게 말했다.“서유는 그저 심장병을 앓고 있었을 뿐인데 웬 심부전이야?”소수빈이 말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승하는 쾅하고 문을 닫아버렸다.방금 문이 닫히는 순간, 그는 휴대폰을 든 이승하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본 것 같았다...이승하는 이미 통제를 벗어난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눈 감고도 외울 수 있는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그는 서유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자신에게 뺨을 맞고 화가 나서 일부러 그를 속인다고 생각했다.이승하는 반드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연속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방은 받지 않았다. 이승하의 인내심이 바닥 날 무렵 통화가 연결되었다.순간, 그의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그녀가 자신의 전화를 받았다는 건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정가혜는 그의 말에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서유가 이런 장난을 할 사람으로 보여요?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당신이랑 당신 약혼녀, 그리고 사촌 여동생이 어떻게 서유를 때렸는지 벌써 잊었어요? 심부전 말기인 환자의 뒤통수에 못이 박혔는데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정가혜는 소리를 치며 불평했지만 결국에는 울음을 터뜨렸다. 서유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맞은 걸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당신, 어떻게 그렇게 독할 수 있어요? 서유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 앞으로 유서까지 썼다고요...”전화기 너머의 원망스러운 울부짖음에 이승하의 심장이 저도 모르게 조여왔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싶었지만 평소처럼 쉽게 통제할 수 없었다.억제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이 더 불안해졌고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공포를 내버려 두었다.그는 휴대폰을 움켜쥐고 차갑게 물었다.“뒤통수에 못이 박혔다는 건 무슨 말이죠?”정가혜는 남자가 일부러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를 악물고 말했다.“주 선생님이 도착했을 때, 서유 뒤통수에는 이미 못이 박혀 있었어요. 못에 박혀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과다 출혈로 인해 심부전이 악화되지도 않았겠죠. 전부 당신네 가족이 저지른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시치미를 떼요? 정말 서유가 불쌍하네요!”정가혜는 단숨에 울분을 토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린 후 이승하를 블랙 리스트에 넣었다.이승하는 이미 어두워진 액정을 보며 몇 분 동안 침묵을 지켰다.통창 앞에 우뚝 서 있던 몸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그는 한 손으로 유리를 받쳐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서유가 그날 바닥에 누워 있던 장면뿐이었다.그날 바닥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 그에게 실망해서가 아니라 못에 박혀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니.서유가 혼자 절망적으로 화장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이승하는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조여왔다.빠르게 밀려오는 죄책감은 마치 짓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