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상철수는 서유를 데리고 그가 머무는 집으로 갔다. 이곳은 예전에 서유가 김초희로 신분을 위장해 왔던 장소로, 정여희가 한때 살았던 집이었다. 상씨 집안은 캐나다에 집이 많았지만, 상철수는 이곳에서 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만찬 준비를 맡긴 뒤, 상철수는 서유를 정원을 가로질러 그녀가 설계했던 작은 정원으로 데려갔다. “여긴‘배나무 정원’이라고 해. 앞으로 네 집이야.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든 이곳에 머물러도 된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유는 대꾸하지 않고 상철수를 따라가며 가끔씩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정원 안으로 들어서자 상철수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물었다. “마음에 드니?” 서유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냥 잠깐 머무는 것뿐이라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건 없어요.” 그녀의 말뜻을 알아챈 듯, 상철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얼마나 머물든 네가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난 충분하다.” 말을 마친 상철수는 옆에 대기하던 집사를 향해 손짓했다. “둘째 아가씨가 돌아왔으니 저녁 식사를 준비해.” 그는 장녀의 자리를 비워두고 김초희에게 돌려주며, 그녀의 신분을 보완해 주고자 했다. 집사와 하인들이 자리를 떠나자 넓은 거실에는 상철수와 침묵 속의 서유만 남았다. 서유가 여전히 어색해하는 기색을 알아챈 상철수는 그녀가 불편해할까 봐 하인을 시켜 그녀를 방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그녀가 임신 중인 걸 알고, 주 침실은 남향의 1층에 준비되었다. 넓은 공간과 아늑한 인테리어, 유럽풍의 분홍색 계열로 꾸며진 방은 마치 딸을 위한 공간 같았다. 상철수는 한때 정여희가 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며, 김초희에게 이 작은 정원을 설계하게 한 것도 딸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직 김영주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몰랐던 때였지만, 정여희가 생전에 좋아하던 취향을 따라 지은 집이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서유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상철수의 깊은 사랑에 감동하면서
서유는 두 팔을 가슴에 모으고 무릎 위에 올린 채 창밖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로 그림자처럼 흔들리며 비치는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그녀는 상철수가 이미 떠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여전히 정원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 너머로 상철수가 자신을 통해 정여희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유는 그를 한동안 바라보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신발을 갈아 신고 정원으로 내려갔다. 상철수는 그녀가 나올 줄 몰랐는지, 살짝 놀라며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서유는 그의 앞까지 다가가 아무 말 없이 몇 발자국 더 걸었다. 마치 산책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인 듯 보였다. 상철수는 눈치가 빠르게도 그녀의 곁에 다가서며 이렇게 말했다.“네 외할머니는 겉으로는 강해 보였지만 속은 부드러웠지. 너랑 비슷해.” 서유는 그저 자신이 느끼는 쓸쓸함을 털어내고 싶어서 나온 건데, 괜히 상철수에게 덤벼보듯 말했다. “전 정여희가 아니에요.” 상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가 여희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혈연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넌 여희와 닮았어.” 서유는 옆에 나란히 걷는 상철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여희 씨를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지, 그리고 왜 그분을 강요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그녀가 뭔가 캐내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상철수는 숨기지 않고 말문을 열었다. “그때 난 열여섯이었어. 생일 파티를 열었는데 여희가 친구들과 함께 와서 피아노를 쳤지.”말하면서 상철수는 드물게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사실 네 외할머니 피아노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어. 내가 솔직하게 말하자 여희는 화를 냈지.”상철수는 서유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그 시절 난 이미 상씨 집안의 후계자로 정해져서 모두가 나를 칭찬하고 띄워줬는데, 오직 여희만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지.”처음에는 그저 그녀가 재밌다고 생각했을 뿐 사랑에 빠진 건 아니었지만, 수영장에 빠졌을 때 천사처럼 그를 구하러
서유가 이승하의 아내라는 사실은 상씨 집안 사람들이 당연히 알아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 앞에서 이승하나 뱃속의 아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서유는 그들이 자신의 남편이 누구인지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그녀만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줄 알았는데, 이제 상철수가 직접 묻자 그녀도 도망가지 않았다. 잠시 멈추어 선 후, 서유는 돌아서서 상철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중요해요.” 중요하다. 마치 하늘의 별처럼. 지금 이승하는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이 구름이 걷히면 다시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철수는 작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서유와 마주 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상철수는 한참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사해 보니 이승하는 너한테 그리 잘해주지 않았더군. 한때 다른 여자 때문에 너를 거의 죽일 뻔한 적도 있었고. 그런 남자가 정말 중요해?” “그건 과거에 있었던 오해예요. 지금 우리는 결혼했고, 아이도 생겼으니 이제는 과거를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게다가 그들 둘의 일은 외부에서 평가할 문제가 아니었다. 중간에 나타난 외할아버지라 해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서유는 배꽃나무 아래 서서 노란 가로등 불빛에 비친 상철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엔 흔들림 없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네가 이승하를 많이 사랑한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이승하도 너에게 그러한가?”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쉽게 그녀를 버릴 수 있는 남자가 정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서유는 잠시 고민한 후, 가로등 불빛을 타고 상철수의 세월에 지친 듯한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어르신께서는 자신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고 다른 사람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상철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갈길을 따라 몇 그루의 작은 나무를 지나 서유 앞에 섰다. “어떤 사람들은 내 사랑이 비뚤어졌
손안에 놓인 간식을 보며 서유는 앞에서 운전 중인 큰외삼촌 상지태과 조수석에 앉은 작은외삼촌 상지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백미러로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드니?” 서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전에는 좋아하지 않던 간식이었지만, 임신을 하고 난 후부터는 이런 신맛 나는 음식이 자꾸 당겼다. “감사해요.” 감사를 전한 후, 그녀는 봉지를 열어 매실을 꺼내 입에 넣었다. 새콤한 맛이 차 안의 답답함을 금세 날려주었다. 상지훈은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간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만약 그의 여동생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지금 저런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네가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네 외할아버지가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널 데려왔을 거야.” 서유는 손에 든 봉지를 꼭 쥐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상지훈은 그녀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임을 아는 듯, 한마디만 건넨 후 앞을 바라보며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상철수는 두 아들을 한번 살피고는 서유가 들고 있는 간식을 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상철수는 옆 상자에서 과자 한 통을 꺼내 두 아들처럼 서유에게 건넸다. “길이 좀 멀어, 배고프면 이거라도 좀 먹어봐.” 서유는 그 과자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퍽퍽해서 먹기 힘들 것 같아요.” “퍽... 퍽퍽해서?” 상철수는 어색한 표정으로 과자를 거둬들인 뒤, 대신 물병을 건넸다. “그럼 물이라도 좀 마셔.” 서유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 목마르지 않아요.”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에 늘 엄격한 태도였던 상철수가 이렇게 난처해하는 모습은 드문 일이었다. “형, 그 말 뭐더라?” 형제는 눈빛만 교환해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호랑이 그리려다 개 됐다...” 뒤의 세 글자를 상지태가 작게 속삭였지만
바람이 살짝 얼굴을 스치는 걸 느끼던 서유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국내에도 경치 좋은 곳이 많아요. 바람도, 나무도, 길도 다 비슷하죠.” 상준석이 부드럽게 맞받았다. “사실 나도 캐나다에 상주하지 않아. 가끔씩 들르기만 할 뿐이야. 네가 있다면 자주 와서 보러 올 텐데.” 서유는 그 말에 덧붙였다. “보고 싶으면 그냥 A시로 돌아와요.” 상준석은 미소 지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좋아, 이건 네가 스스로 허락한 거야.” 순간 함정에 빠진 듯한 서유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연훈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우리 둘째 형은 평소에 바빠서 너한테 자주 방해될 일은 없을 거야. 걱정 마.” 느긋한 표정으로 말하는 상연훈의 모습에 서유는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상연훈 씨도 절대로 나 찾으러 오지 마요.” 상연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평온하게 말했다. “걱정 마. 볼 일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널 보러 갈 거니까.” “...”상씨 집안의 삼 형제는 서유를 데리고 상태준의 아내가 운영하는 회사로 향했다. 상연훈은 상태준의 아내가 평범한 사람으로, 대단한 집안 출신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서유는 직접 만나본 후 그가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상태준의 아내는 DK라는 명품 브랜드를 창립한 장본인이자 명망 높은 인사였다. 상연훈 같은 재벌가 출신들은 귀족 가문과 부호의 개념을 다르게 여기기에 서유를 이렇게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주하늘이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서유는 그저 전업주부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주하늘이 깔끔한 단발머리에 정장 차림, 하이힐을 신고 바쁜 걸음으로 사무실을 누비는 모습을 보고 서유는 한동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하늘은 업무를 마친 뒤 서유와 상씨 집안 삼 형제를 보고 미소 지으며 손을 들어 인사했고, 직원이 곧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전문 분야에 있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주하늘은 이들이 스타일링을 하러 왔다는 사실을 듣고는 서유의
상연훈은 잠시 서유를 바라보다가 화제를 돌렸다. “너 얘기나 해봐. 자꾸 나만 말하니까 지루하잖아.” 서유는 똑같이 받아쳤다. “나도 딱히 할 얘긴 없어서 지루해요.” 상연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뭐야, 나를 도둑 보듯 경계하는구나.” 서유도 미소 지었다. “그쪽 집에서도 날 도둑 보듯 경계하는 거랑 다를 바 없잖아요.” 서유는 상설수에게 어떻게 정여희의 마음를 가로챘는지 물어봐도 말하지 않았고, 상연훈에게 그 노인 밑에서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굳이 자신의 일을 말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서유는 가슴까지 내려오는 큰 웨이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옷 갈아입으러 피팅 룸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꼿꼿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연훈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어 얕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이승하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싶었지만,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임신한 몸으로 이승하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걸 보면, 이승하는 그녀에게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사람이 이제 할아버지 손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곳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서유는 분명 몹시 마음 아플 것이다. 그 생각에 상연훈은 약간 찡그렸다. 그가 깊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 상씨 집안에서 입양된 아이가 새로 나온 가방 몇 개를 들고 스타일링 룸 문을 열었다. 그녀는 상연훈을 보자 잠시 멈칫하더니, 금세 돌아서려 했지만 상연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그녀 옆을 지나가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왜 피하는 거야.” 그녀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말없이 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몰래 눈길을 들어 그의 뒷모습을 살짝 훔쳐보았다. 상연훈은 한때 그녀에게 고백을 했었다. 정말 좋아하니, 네가 원하면 집안에 얘기해 널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상연훈의 어머니는 입양된 자식도 상씨 집안의 자식이자 상연훈의 여동생이니, 도의상 맞지 않다고 말했다.
서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육성재는 잠시 기다린 후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외삼촌은 어릴 적부터 나를 잘 돌봐주셨고 절대 해치지 않을 거예요.”그런데 유라시아 연합 상회 부회장인 김종수가 여전히 루드웰에서 일을 도와주다니, 만약 육성재가 그 증거를 찾아내면 그들의 입장은 적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육성재는 김종수를 설득해 루드웰에서 떠나게 하는 방법과 루드웰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더 걱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서유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말하지 않았다.서유가 걱정하는 것은 여전히 이승하다. 하지만 육성재는 김종수에게서 그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도 굳이 묻지 않았다.두 사람은 잠시 침묵을 지켰고, 그러던 중 의상 디자이너가 드레스를 들고 들어왔다. 서유는 그에게 육성아를 잘 돌봐주라고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다. 디자이너는 곧 그녀에게 최신 유행 드레스를 입혔다.서유는 상씨 집안의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아 아름다운 눈빛과 복숭아처럼 빛나는 뺨, 연꽃처럼 맑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눈매에는 은은한 우아함이 드러났다. 전체적인 모습은 기품이 넘쳤는데 여유로운 표정으로 세련된 샴페인 색 드레스를 입으니 마치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처럼 경쾌하고 비범해 보였다.상씨 집안 세 형제가 그녀가 나오자 일제히 일어나 그녀 앞에 나섰다.“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꾸미니 더욱 아름다워.”“네가 크는 걸 못 본 게 아쉬워. 그렇다면 넌 도자기 인형처럼 우리에게 보호받으며 자랐을 거야.”첫 번째 말은 상태준의 놀라움이었고, 두 번째는 상준석의 탄식이었다. 오직 상연훈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네 남매가 입체 거울 앞에 서 있을 때, 주하늘이 다가왔다. “서유 씨, 만약 관심이 있다면 준석 씨랑 함께 DK의 모델을 해봐요.”서유는 이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에게 많은 존경심을 느꼈다.“제 꿈도 하늘 씨처럼 이런 회사를 만드는 거예요.”팔짱을 끼고
“서유야, 앞으로 너는 상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고, 연초는 상씨 집안의 막내 아가씨다.” 상철수의 말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상철수는 매우 기뻐하며 사람들을 불러 술을 권했다. 사람들은 모두 상철수 주위로 몰려와 잃어버린 아이를 찾은 것을 축하했다. 하지만 서유는 조용히 몇 걸음 물러서며 떠들썩한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외진 곳으로 걸어가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어렸을 때는 가족을 찾으면 정말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저 쓸쓸함만 느낄 뿐이었다. 만약 지금 이승하가 곁에 있다면, 그녀는 그의 팔짱을 끼고 기쁜 마음으로 가족과 인사를 나눴을 것이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일 텐데 어찌 외로운 마음이 들겠는가.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어?”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상연훈이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천천히 걸어와 그녀 앞에 섰다. 상연훈은 그녀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보고는 시선을 따라 별들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보더라도 밤하늘은 다 똑같지. 다만 어떤 사람은 그걸 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할 뿐.” 아무도 없는 곳에 갇힌 이승하는 이 밤하늘을 볼 수 없겠지. 그게 참 애달프고 쓸쓸한 일이다. 서유는 상연훈의 목소리임을 알아챘지만 눈길을 돌리지 않고 여전히 별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왜들 승하 씨가 내 곁에 없는 이유를 묻지 않는 걸까요?” 그녀는 내내 의아했다. 마치 상씨 집안 사람들은 그녀가 이미 이혼한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혼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데, 상씨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미리 알 수 있었던 걸까? 상연훈은 눈을 내리며 그녀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했다. “족보를 서재에 돌려놓으면 답을 알게 될 거야.”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족보를 그녀 앞에 건넸다. “내가 이걸 서재에 놓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