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기억 속에서 서유는 이승하가 그녀를 밀어내고 돌아서서 연지유를 품에 안는 장면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멍해진 그녀는 곧바로 달려갔지만 이승하는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 “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왜 너는 아직도 매달리는 거지?” 서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이승하를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정말 이혼했어요?” 이승하는 대답하지 않고 품속의 연지유를 더욱 꽉 껴안으며 다정하게 대했다. 서유는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서 있다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그 순간 남자가 고개를 숙여 연지유와 입을 맞추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 서유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다. 수천 개의 화살에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견디며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흰색 천장을 보고서야 서유는 자신이 악몽을 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단지 꿈이었음을 안도하던 그녀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눈길을 옮기자 갑자기 한 장의 고독하고도 날카로운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깨어났어요?” 상대방의 눈빛이 그녀가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 반짝였다. 마치 별빛이 켜진 것처럼. 서유는 그를 바라보며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다 한참 만에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살며시 만졌다. 촉감은 진짜였다. 그는 살아 있었다. 서유의 맑은 눈동자에 얇은 물기가 서렸다. “육성재 씨,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육성재는 병원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큰 고비를 넘겼으니 행운이 따라올 거예요. 안아줄까요?” 육성재를 바라보며, 서유는 문득 그가 자신 대신 총을 맞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의 목숨을 건 헌신과 피로 얼룩진 모습은 그녀에게 깊은 감동과 죄책감을 안겨 주었다. 서유는 그를 잠시 응시하다가 천천히 두 팔을 벌렸다. 말로
육성재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아버지에게 섬에서 기다리라고 한 건 나였어요.”그들은 섬에서 끌려갔고 게임이 끝난 후 다시 섬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육성재는 만약 서유가 살아남는다면 그녀 역시 그곳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인 육우성에게 섬을 지켜보라고 명령했다. 다행히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육우성은 섬의 해변에서 서유를 발견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서유 씨를 발견했을 때 온몸이 젖어 있었다고 했어요. 아마도 바다에 빠졌던 것 같아요.” “누가 서유 씨를 바다에서 끌어올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서유 씨를 응급 처치해 줬다고 하더군요.”그래서 서유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지킬 수 있었다.이 말을 듣고 서유는 멍하니 있었다. 그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었고, 그녀를 제때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연중서 뿐이었다. 혹시 그가 죄책감을 느끼고 돌아와 자신을 구한 것일까? 서유는 이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그가 구했다 해도 서유의 마음속의 미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만약 연중서가 없었다면 그녀의 어머니와 두 자매는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연중서가 없었다면 그녀는 연지유에게 그렇게까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서유는 연지유가 이승하에게 이혼을 강요하며 자신을 밀어내던 모습을 떠올리자 다시금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의 주먹이 단단히 쥐어졌고 그 눈엔 분노가 가득했다. 이를 본 육성재는 그녀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요.” 서유는 천천히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금 차분하게 손을 옮겼다. 먼저 사랑한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행동에서도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육성재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하지만 그는 금세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침대 머리맡에 있는 물컵을 들어 물을 따랐다. 그리고 서유에게 건넸다.
창밖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있는 서유를 보며 육성재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너무나 오랫동안 말이 없어서 서유는 그가 더는 대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실패가 무엇인지 따질 필요는 없어요.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서유는 그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눈은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 고요한 쓸쓸함이 육성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서유가 이승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기에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는 말은 그녀가 상처받은 후 한순간의 감정적인 표현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육성재는 마음속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으니 굳이 더 말하지 않고 그냥 그녀와 함께 조용히 앉아 있었다.잠시 후, 서유는 무언가 생각난 듯 육성재를 돌아보았다. “그날 성재 씨가 입술 모양으로 나한테 무슨 말을 했었죠? 그때 피가 가려서 못 봤어요.” 서유는 손에 쥔 물컵을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육성재를 바라보았다. “그때 뭐라고 했던 거예요?” 육성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서유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그의 귀 끝이 서서히 붉어졌다. “별거 아니었어요.” 서유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어색해하는 육성재를 살펴보았다. “아, 그냥 말해줘요. 안 그러면 계속 생각나서 신경 쓰일 거 같아요.” 사실 이혼한 서유를 앞에 두고 육성재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승하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아무리 다른 이가 노력하고 서유를 좋아해도, 그녀는 그와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생사를 함께하는 사랑 앞에서 육성재가 가진 작은 감정은 아무것도 아닌 셈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녀가 자신을 볼 때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그때 상금 꼭 집에 가져다 달라고 한 거였어요.” 서유는 그가 무슨 감동적인 말을 하려는 줄 알았지만 결국 상금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게 조금 어이가 없
육성재는 상연훈의 시선을 따라 병상에 누워 깊이 잠든 서유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인데요?” 상연훈은 육성재의 경계하는 눈빛을 피하지 않고 길고 늘씬한 다리를 뻗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유 씨가 전에 우리 할아버지의 프로젝트를 맡았었는데, 보내온 설계도에 약간 문제가 있더군요. 그래서 다시 디자인을 부탁하려고 왔습니다.” 설명을 마친 상연훈은 맑고 신비로운 눈빛으로 육성재의 얼굴에서 서유를 향한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방금 옆 병실에 친척을 보러 갔다가 여기에 서유 씨도 있는 걸 보고 잠시 들렀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누워 있습니까?” 서유가 건축 디자이너라는 것은 육성재도 알고 있었기에 상연훈의 말에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조심스러웠다. “임신 중이라 병원에 와서 태아를 보호하고 있는 중입니다.” 상연훈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무심코 링거를 한 병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그렇군요.” 육성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상연훈을 돌려보내려 했다. “지금 서유 씨는 프로젝트를 맡을 여력이 없으니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연훈은 서유를 지키면서 꼿꼿이 앉아 있는 육성재를 바라보며,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짧게 대답했다. “좋아요. 깨어나면 다시 찾아오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 마치 정말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것처럼 말이다.서유는 링거의 약물 덕분에 깊이 잠들어 있었고 방문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악몽에 빠져 있었고 땀이 비 오듯 흘러 이마와 등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꿈속에서 이승하가 그녀를 여러 번 밀쳐내는 장면이 반복되었고,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날 수 없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연지유, 연중서, 그리고 이승하가 그녀를 바다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구조를 요청했지만 이승하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서유는 그가 멀어지
서유는 고열에 시달리며 땀을 흘렸고, 해조류처럼 검고 긴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완전히 축축해 보였다. 꼭 방금 바다에서 건져 올린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 서유를 보며 정가혜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서유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치우고 수건으로 그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서유는 단 한 장의 편지만 남기고 밤사이 사라져 버렸다. 약속했던 것조차 지키지 않은 서유에 대해 정가혜는 화가 나고 걱정스러웠다. 임신한 상태에서의 걱정과 불안은 그녀의 배를 아프게 했고 지난 두 달은 병상에서 보내거나 눈물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었다. 정가혜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각오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믿을 수 없었다. 한 번 죽음의 문턱을 넘었던 서유가 그렇게 쉽게 또 불행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육성재가 돌아와 서유와 이승하가 아직 살아있으며, 다만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그제야 정가혜는 비로소 한숨 돌리며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육성재의 말에 약간의 의심이 섞여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서유의 생존을 간절히 바랐던 정가혜에게는 충분했다. 서유가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정가혜는 아주 조심스럽게 서유의 이마, 얼굴, 목, 손을 반복해서 닦았다. 그러다가 뜨거운 열기가 조금씩 내려가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서유는 여전히 악몽 속에 있었지만 이번에는 따스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서 바닷속에서 건져 올려 주었다. 그녀의 깊이 찡그려진 미간이 서서히 풀어졌고, 그 손길 아래서 조금 더 잠을 자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눈을 떴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것은 육성재가 아닌, 아름다운 정가혜의 얼굴이었다. “서유야, 깨어났어?” 정가혜는 서유가 눈을 뜨자마자 수건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서유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마른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가혜야, 미안해. 너를
서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가 루드웰에서 일어난 일을 정가혜에게 털어놓았다. 정가혜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가냘픈 서유의 얼굴을 애처롭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많이 힘들었구나.” 그녀는 그저 한마디만 했다. 서유를 달래지도 않았고 이승하를 변호하지도 않았지만, 그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서유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가혜의 따뜻한 위로에 그동안 마음속에 눌러 담았던 아픔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가혜야.” “응, 나 여기 있어.” 서유는 얼굴에 얹어진 정가혜의 손을 꼭 잡아 자기 가슴에 안았다. “나 정말 많이 힘들었어.” 정가혜는 서유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지만 만나자마자 이혼을 통보받은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정가혜은 마음 아픈 서유를 위로하듯 그녀의 야윈 손등을 다른 손으로 덮으며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말해도 돼. 네 마음속에 담아둔 억울함을 다 털어놔.” 서유는 눈을 천천히 내리깔았다. “억울할 게 뭐 있어. 다 익숙해졌는걸.” 서유는 이승하의 차가운 무관심과 자신을 밀어내는 그의 태도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저 그 후에 찾아오는 슬픔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익숙하다’는 말이 서유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정가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서유의 손등을 계속 두드리며 그 손길로 서유를 위로하고 있었다. 서유는 더 이상 정가혜까지 자신과 함께 아파하지 않도록 말하기를 멈추었다.“가혜야, 퇴원하면 더 이상 블루리도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때 연이를 내 별장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서유는 이제 두 사람의 신혼집조차 돌아가고 싶지 않은 듯했다. 정가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그녀가 대답을 마치자 정가혜는 또 한 번 서유의 이름을 불렀다.
서유는 소지섭과 소수빈의 얼굴에 남아 있는 멍 자국을 보았다. “두 사람도 걱정 많이 했지? 미안해.” “우리야 괜찮아요. 집사님께서 속을 많이 쓰셔서 주름이 더 늘었어요.” 소지섭은 서유를 위로하려는 말이었는데, 소수빈이 그걸 듣고 느닷없이 끼어들었다. “원래도 많았어.” 소수빈은 일부러 소지섭의 말을 끊어놓고, 소지섭은 그 말에 분노가 치밀어 주먹을 꽉 쥔 채로 소수빈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서유 앞에서 두 사람이 싸울 수는 없었기에 서로 고개만 돌리고 상대방을 보지 않으려 했다. 서유는 두 사람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몰랐지만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저으며 서유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했다. 서로 간단한 안부를 나눈 뒤 이연석이 본격적으로 물었다. “형수님, 우리 형 지금 어떻게 됐어요? 다치진 않았죠?” 이연석은 이전에 육성재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연석은 그에게 몇 번이나 화가 나서 때리고 싶었지만 서유와 함께 형을 찾으러 갔던 것을 생각하며 억지로 참았다. 서유는 모두가 이승하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아까 정가혜 앞에서 슬픔을 내비치는 것과 달리 이연석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다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루드웰에서 상위급이 되었더라고요.”그 말을 듣자 긴장했던 모두의 얼굴에 안도감이 흘렀다. “우리 형 참 대단하네.” 이연석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이승하의 성공이 그에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서유도 그 사실을 인정했지만 아무런 감정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소수빈은 그런 서유의 모습에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사모님, 저희에게 거짓말하시는 건 아니죠?” 서유는 순간적으로 실망에서 벗어나 대답했다.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뭐 있겠어. 승하 씨는 정말로 괜찮아.” 그는 다치지 않았고 온몸이 멀쩡해 보였다. 아주 건강하게. “육성재 씨가 그러는데,
상연훈이 나타나자 서유는 잠시 멍해졌다. 그가 어떻게 자신을 알게 됐는지, 또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의아했다. 혹시 예전에 김초희로 가장해 그들의 집에 프로젝트를 논의하러 갔던 것을 상연훈이 눈치챈 것일까? “방금 전에도 말했잖아요. 서유 씨는 지금 몸이 좋지 않아서 프로젝트를 맡을 여력이 없다고. 상연훈 씨, 대체 왜 또 온 겁니까?” 육성재는 상연훈의 등장에 불만스러운 듯, 그의 잘생긴 외모를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상연훈은 육성재의 거만함을 신경 쓰지 않고 서유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서유 씨, 시간 됩니까?” 서유는 생각을 정리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연훈의 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졌다. “서유 씨와 단둘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육성재가 뭐라 반발하려는 찰나 서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련님, 가혜를 휴게실로 데리고 가서 좀 쉬게 해줘요.” 이연석은 상연훈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전에 상연훈과 서유가 마주한 적도 없는데 상연훈이 왜 서유를 찾아왔을까? 그러나 의문은 남았어도 그는 얌전히 정가혜를 일으켜, 한 손으로 그녀의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받쳤다. 이연석은 돌아서기 전에 육성재를 힐끔 쳐다보았다. “너는 안 가?” 이 녀석도 좀 이상했다. 전에 서유가 의식을 잃고 있을 때 그는 병상 곁을 지키며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서유의 남편인 줄 알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이연석은 도둑을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육성재를 흘겨보며 불쾌함을 드러냈고, 육성재는 그 시선을 불편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떠난 뒤, 상연훈은 우아하게 걸음을 옮겨 서유 앞에 앉았다. 방금 전 정가혜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서유 씨, 몸도 좋지 않은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 미안합니다.” 상연훈은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다. 잘생긴 얼굴에는 늘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어, 사람들은 그를 교양 있는 가문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