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재는 상연훈의 시선을 따라 병상에 누워 깊이 잠든 서유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인데요?” 상연훈은 육성재의 경계하는 눈빛을 피하지 않고 길고 늘씬한 다리를 뻗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유 씨가 전에 우리 할아버지의 프로젝트를 맡았었는데, 보내온 설계도에 약간 문제가 있더군요. 그래서 다시 디자인을 부탁하려고 왔습니다.” 설명을 마친 상연훈은 맑고 신비로운 눈빛으로 육성재의 얼굴에서 서유를 향한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방금 옆 병실에 친척을 보러 갔다가 여기에 서유 씨도 있는 걸 보고 잠시 들렀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누워 있습니까?” 서유가 건축 디자이너라는 것은 육성재도 알고 있었기에 상연훈의 말에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조심스러웠다. “임신 중이라 병원에 와서 태아를 보호하고 있는 중입니다.” 상연훈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무심코 링거를 한 병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그렇군요.” 육성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상연훈을 돌려보내려 했다. “지금 서유 씨는 프로젝트를 맡을 여력이 없으니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연훈은 서유를 지키면서 꼿꼿이 앉아 있는 육성재를 바라보며,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짧게 대답했다. “좋아요. 깨어나면 다시 찾아오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 마치 정말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것처럼 말이다.서유는 링거의 약물 덕분에 깊이 잠들어 있었고 방문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악몽에 빠져 있었고 땀이 비 오듯 흘러 이마와 등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꿈속에서 이승하가 그녀를 여러 번 밀쳐내는 장면이 반복되었고,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날 수 없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연지유, 연중서, 그리고 이승하가 그녀를 바다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구조를 요청했지만 이승하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서유는 그가 멀어지
서유는 고열에 시달리며 땀을 흘렸고, 해조류처럼 검고 긴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완전히 축축해 보였다. 꼭 방금 바다에서 건져 올린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 서유를 보며 정가혜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서유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치우고 수건으로 그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서유는 단 한 장의 편지만 남기고 밤사이 사라져 버렸다. 약속했던 것조차 지키지 않은 서유에 대해 정가혜는 화가 나고 걱정스러웠다. 임신한 상태에서의 걱정과 불안은 그녀의 배를 아프게 했고 지난 두 달은 병상에서 보내거나 눈물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었다. 정가혜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각오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믿을 수 없었다. 한 번 죽음의 문턱을 넘었던 서유가 그렇게 쉽게 또 불행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육성재가 돌아와 서유와 이승하가 아직 살아있으며, 다만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그제야 정가혜는 비로소 한숨 돌리며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육성재의 말에 약간의 의심이 섞여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서유의 생존을 간절히 바랐던 정가혜에게는 충분했다. 서유가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정가혜는 아주 조심스럽게 서유의 이마, 얼굴, 목, 손을 반복해서 닦았다. 그러다가 뜨거운 열기가 조금씩 내려가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서유는 여전히 악몽 속에 있었지만 이번에는 따스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서 바닷속에서 건져 올려 주었다. 그녀의 깊이 찡그려진 미간이 서서히 풀어졌고, 그 손길 아래서 조금 더 잠을 자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눈을 떴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것은 육성재가 아닌, 아름다운 정가혜의 얼굴이었다. “서유야, 깨어났어?” 정가혜는 서유가 눈을 뜨자마자 수건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서유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마른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가혜야, 미안해. 너를
서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가 루드웰에서 일어난 일을 정가혜에게 털어놓았다. 정가혜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가냘픈 서유의 얼굴을 애처롭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많이 힘들었구나.” 그녀는 그저 한마디만 했다. 서유를 달래지도 않았고 이승하를 변호하지도 않았지만, 그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서유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가혜의 따뜻한 위로에 그동안 마음속에 눌러 담았던 아픔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가혜야.” “응, 나 여기 있어.” 서유는 얼굴에 얹어진 정가혜의 손을 꼭 잡아 자기 가슴에 안았다. “나 정말 많이 힘들었어.” 정가혜는 서유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지만 만나자마자 이혼을 통보받은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정가혜은 마음 아픈 서유를 위로하듯 그녀의 야윈 손등을 다른 손으로 덮으며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말해도 돼. 네 마음속에 담아둔 억울함을 다 털어놔.” 서유는 눈을 천천히 내리깔았다. “억울할 게 뭐 있어. 다 익숙해졌는걸.” 서유는 이승하의 차가운 무관심과 자신을 밀어내는 그의 태도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저 그 후에 찾아오는 슬픔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익숙하다’는 말이 서유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정가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서유의 손등을 계속 두드리며 그 손길로 서유를 위로하고 있었다. 서유는 더 이상 정가혜까지 자신과 함께 아파하지 않도록 말하기를 멈추었다.“가혜야, 퇴원하면 더 이상 블루리도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때 연이를 내 별장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서유는 이제 두 사람의 신혼집조차 돌아가고 싶지 않은 듯했다. 정가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그녀가 대답을 마치자 정가혜는 또 한 번 서유의 이름을 불렀다.
서유는 소지섭과 소수빈의 얼굴에 남아 있는 멍 자국을 보았다. “두 사람도 걱정 많이 했지? 미안해.” “우리야 괜찮아요. 집사님께서 속을 많이 쓰셔서 주름이 더 늘었어요.” 소지섭은 서유를 위로하려는 말이었는데, 소수빈이 그걸 듣고 느닷없이 끼어들었다. “원래도 많았어.” 소수빈은 일부러 소지섭의 말을 끊어놓고, 소지섭은 그 말에 분노가 치밀어 주먹을 꽉 쥔 채로 소수빈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서유 앞에서 두 사람이 싸울 수는 없었기에 서로 고개만 돌리고 상대방을 보지 않으려 했다. 서유는 두 사람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몰랐지만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저으며 서유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했다. 서로 간단한 안부를 나눈 뒤 이연석이 본격적으로 물었다. “형수님, 우리 형 지금 어떻게 됐어요? 다치진 않았죠?” 이연석은 이전에 육성재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연석은 그에게 몇 번이나 화가 나서 때리고 싶었지만 서유와 함께 형을 찾으러 갔던 것을 생각하며 억지로 참았다. 서유는 모두가 이승하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아까 정가혜 앞에서 슬픔을 내비치는 것과 달리 이연석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다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루드웰에서 상위급이 되었더라고요.”그 말을 듣자 긴장했던 모두의 얼굴에 안도감이 흘렀다. “우리 형 참 대단하네.” 이연석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이승하의 성공이 그에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서유도 그 사실을 인정했지만 아무런 감정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소수빈은 그런 서유의 모습에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사모님, 저희에게 거짓말하시는 건 아니죠?” 서유는 순간적으로 실망에서 벗어나 대답했다.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뭐 있겠어. 승하 씨는 정말로 괜찮아.” 그는 다치지 않았고 온몸이 멀쩡해 보였다. 아주 건강하게. “육성재 씨가 그러는데,
상연훈이 나타나자 서유는 잠시 멍해졌다. 그가 어떻게 자신을 알게 됐는지, 또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의아했다. 혹시 예전에 김초희로 가장해 그들의 집에 프로젝트를 논의하러 갔던 것을 상연훈이 눈치챈 것일까? “방금 전에도 말했잖아요. 서유 씨는 지금 몸이 좋지 않아서 프로젝트를 맡을 여력이 없다고. 상연훈 씨, 대체 왜 또 온 겁니까?” 육성재는 상연훈의 등장에 불만스러운 듯, 그의 잘생긴 외모를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상연훈은 육성재의 거만함을 신경 쓰지 않고 서유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서유 씨, 시간 됩니까?” 서유는 생각을 정리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연훈의 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졌다. “서유 씨와 단둘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육성재가 뭐라 반발하려는 찰나 서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련님, 가혜를 휴게실로 데리고 가서 좀 쉬게 해줘요.” 이연석은 상연훈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전에 상연훈과 서유가 마주한 적도 없는데 상연훈이 왜 서유를 찾아왔을까? 그러나 의문은 남았어도 그는 얌전히 정가혜를 일으켜, 한 손으로 그녀의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받쳤다. 이연석은 돌아서기 전에 육성재를 힐끔 쳐다보았다. “너는 안 가?” 이 녀석도 좀 이상했다. 전에 서유가 의식을 잃고 있을 때 그는 병상 곁을 지키며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서유의 남편인 줄 알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이연석은 도둑을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육성재를 흘겨보며 불쾌함을 드러냈고, 육성재는 그 시선을 불편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떠난 뒤, 상연훈은 우아하게 걸음을 옮겨 서유 앞에 앉았다. 방금 전 정가혜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서유 씨, 몸도 좋지 않은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 미안합니다.” 상연훈은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다. 잘생긴 얼굴에는 늘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어, 사람들은 그를 교양 있는 가문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상연훈이 자리를 뜬 후, 육성재와 이연석은 다시 돌아와 서유에게 그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 물었다. “유전자 검사하러 왔어요.”그 말이 나오자 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상영훈이 어찌 서유를 찾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반면 정가혜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다가와 서유의 손을 잡았다. “너무 잘됐다. 너희 가족들이 드디어 널 찾았네.”고아인 그들에게 가족을 찾는 것만큼 감격스러운 일은 없다. 정가혜는 자신이 가족을 찾은 듯처럼 기쁜 마음에 눈물까지 흘렸다. “아직 정확히 결과 나온 거 아니야. 그러니까 흥분하지 마.”이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많고도 많고 모두가 혈연관계일 수는 없다. “알았어. 결과 나오면 그때 기뻐할게.”임신한 정가혜는 살이 좀 오른 건지 얼굴이 통통해져 말할 때 약간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서유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살을 꼬집었다.“도련님이 잘 챙겨줬나 보네. 살이 오르니까 보기 좋다.”그녀의 칭찬에 이연석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올렸다.“남편으로서 임신한 와이프 챙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정가혜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한껏 야윈 서유의 모습을 보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급히 한마디 보탰다.“형수님, 이제부터 가혜 씨를 챙겨주듯 제가 형수님도 잘 돌봐줄게요.”임신한 후부터 지금까지 남편 없이 혼자 였던 서유는 얼굴도 몸도 많이 마른 상태였고 종잇장처럼 가벼워 보이는 것이 바람이 불면 흩어질 것만 같았다. 옆에서 보고 있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둘째 형은 언제 돌아올 건지...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옆에서 서유를 지켜주지 못한 마음에 많이 아쉬울 텐데 말이다.한편, 서유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아니에요. 가혜만 잘 돌봐주면 돼요. 난 혼자도 문제없어요.”혼자 할 수 있다는 건 이젠 익숙해졌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말에 정가혜는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
한편, 상철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보고서를 집어 상연훈에게 건네주었다.“이거 서유한테 보여주고 가서 집으로 데려오너라.”“돌아오면 서유의 성을 상씨로 바꿀 것이다.”“그리고 내 딸 김영주의 유골함도 김씨 가문에서 가져와야 해.”상철수가 계속해서 상연훈에게 당부했다.“초희 그 아이는 심씨 가문에 묻혔다고 하더라. 그 아이의 유골함도 가져오고 이름도 바꾸거라.”상씨 가문의 자식이니 마땅히 상씨 성을 가져야 하고 가문으로 돌아와 이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검사 결과서를 받아쥔 상연훈은 보고서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상철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할아버지, 저희가 이승하한테 한 일을 알게 되면 서유는 돌아오려 하지 않을 겁니다.”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던 상철수가 가죽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Ace의 일은 서유에게 알리지 말거라.”서유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그들이 이승하의 머리를 찢었다는 걸 서유가 알면 어찌 이 가문으로 돌아오려고 하겠는가?이제 막 잃어버린 핏줄을 되찾은 상철수로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상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승하는요?”이승하는 서유의 남편이기도 하고 S 조직의 리더이기도 하다. 가족이자 원수 사이인 그를 건드려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두어야 하는 건지?잠깐 망설이던 상철수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서유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이승하한테 알리지 말거라. 김종수 쪽에도 사람을 보내 지켜보고. 김종수가 화학 구역으로 가는 권한을 얻게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야.”그 말에 상연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승하한테 알려주지 않겠다는 건 그를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뜻인 건가?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철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의사한테 이승하를 치료하라고 해. 그러나 절대 이승하가 화학 구역을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서유의 남편이긴 하지만 S 조직의 리더이기도 하다.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건 오롯이
한편, 연중서와 연지유 두 사람을 잡아 온 김종수는 서유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이승하에게 전해주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화학 구역으로 가는 권한이 없었다. 화학 구역은 그의 관할 구역이 아니었고 그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 아니라 미리 사람을 안배한 적도 없어서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을 통해 김종수도 이승하가 S 조직의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현재, Ace의 다른 배후자들은 상철수가 이승하를 죽이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상철수는 이승하를 죽이지 않고 화학 구역에 가두어둘 뿐만 아니라 의사를 보내 이승하를 치료하게 하였다. 이승하의 목숨을 살려두고 그의 입에서 S 조직의 창시자를 알아내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그 이유를 다른 배후자들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이승하의 입에서 그걸 알아내려면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게 가장 옳은 방법이 아닐까? 뭐 하러 굳이 그를 치료하는 것인지? 이건 상철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S 조직의 멤버를 잡으면 직접 벌까지 주던 사람이 S 조직의 리더한테 이러는 것이 말이 되는가?이승하를 남겨둔 게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상연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고 상철수를 만나러 오라는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비밀스러운 조직이라 평소에는 사적으로 왕래한 적이 없었고 루드웰에서도 일만 처리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이지? 서울에서 보자니...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하던 일을 제쳐두고 서울로 갔다. 그는 상연훈이 말한 방법에 따라 은밀히 상씨 가문의 뒷마당을 지나쳐 상철수의 서재로 들어갔다.한편, 상철수는 한창 커피를 끓이고 있었고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한 뒤 커피 한잔을 따라주었다.“물어볼 것이 있어서 이리로 불렀다.”소파에 앉은 뒤 상철수가 건네주는 커피를 건네받았다.“형님, 궁금한 게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