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조종하려고 해? 꿈 깨!” 성준모는 고통으로 숨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이승하의 뜻대로 굴복하지 않았다.이승하도 억지로 성준모를 복종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저 조작기를 들고 고통을 제어하는 시스템의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순간 성준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심장을 찢는 듯한 소리로 칩이 설치된 방 안에 울려 퍼졌는데 꽤 섬뜩했다.성준모는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며 창백한 얼굴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고 거대한 산처럼 우뚝 서 있는 이승하를 노려보았다. “1-1에게 이미 연락했다. 곧 도착할 거야. 네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어!”이승하는 아무런 표정 없이 성준모 앞에 다가와 그의 늙고 초췌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내 말대로 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널 죽일 수도 있어.”성준모는 몇 번이나 실신할 정도의 고통 속에서 조작기를 보고 다시 작업대를 쳐다보았다. 화면에는 자신의 뇌 뒤쪽에 심어진 칩이 이승하의 칩과 이미 연결된 상태임이 나타나 있었다. 이제 성준모가 살아남으려면 이승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승하가 손에 든 조작기로 언제든지 그를 고통 속에 빠뜨려 살면서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1-1이 와서 이승하의 칩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통제권을 다시 회수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1-1이 김해에 있지 않아서 그가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성준모는 이승하의 명령을 따라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에 시달리다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성준모는 마침내 고개를 숙이고, 자존심을 접고 말했다. “전체 구역 통제 버튼을 열어줘. 내가 넷째에게 명령해서 연씨 부녀의 행방을 찾게 할게.”성준모의 굴복에 이승하는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작업대로 돌아가 전체 구역 통제 버튼을 찾아내 눌렀다. “말해.”성준모는 고통을 억누르며 이를
두 남자가 얼굴 전체를 가린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고 칩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이승하는 마치 왕처럼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살짝 돌린 얼굴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모든 걸 포기한 듯 차갑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수술용 칼이 꽂혀 있었고, 칼에 비친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며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1-1과 1-3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소파에 앉은 이승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의 굳센 의지와 거침없는 태도에 두 보스는 어느 정도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이때 1-1이 입을 열었다. “네가 S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더라면, 너 혼자 힘으로 상구까지 올라온 걸 분명 대단하게 여겼을 거야.” 1-1의 목소리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으나 그의 말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오랜 세월을 겪어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루드웰에서 무엇을 하려는 거야?” 1-1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의자를 하나 끌어와 이승하 앞에 앉았다. 그는 아무런 경계 없이 앉았고, 천천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이승하에게 내밀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이승하는 담배를 한 번 쳐다보고 나서 길고 우아한 손가락을 뻗어 담배를 받았다. 그는 불이 붙은 담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에 가져가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그녀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던 그 시절, 그는 담배로 생명을 이어갔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담배를 끊었지만 이제 그녀가 다시 사라진 지금, 그가 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는 느릿느릿 담배를 피우며 흩날리는 연기 속에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을 했다. 그 피로 얼룩진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웠다.1-1은 그를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자신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나 그는 담배를 피우
이승하의 눈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함은 1-1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연지유와 무슨 원한이 있지?” 1-1은 성준모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달려왔기에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 아내를 죽였지.” “그렇다면 꽤 심각한 문제로군.” 1-1은 이승하가 들고 있는 담배가 거의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그에게 던져주었다. “조건 하나 제안하지. S 창립자의 정체를 밝히면 내가 연씨 부녀를 찾아주지.” 이승하는 담배를 손에 쥐고 문질렀고 이 말에 그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S 창립자의 정체도 모른 채 왜 S를 대규모로 학살하는 거지?” “너랑 같아. 아내를 죽은 놈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1-1의 모호한 대답에 이승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모든 S의 구성원이 네 아내를 죽인 건 아닐 텐데?” 1-1이 학살한 것은 한두 명이 아니라 모두였다. 이는 분명히 앞뒤가 맞지 않았다. “누가 내 아내를 죽였는지 알 수 없으니 모두를 죽일 수밖에 없지.” 1-1은 담담하게 말한 뒤 밖에서 대기 중인 운영자들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 사람들의 가족도 S에게 학살당했어. 우리가 힘을 합쳐 복수를 하는 게 뭐 잘못된 일인가?” 이승하는 그 말을 듣고 눈길을 떨구었다. 자신이 S를 맡기 전까지는 강중헌이 S를 운영했다. 그가 이끌던 사람들이 과거에 누구를 어떻게 학살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승하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에 대해서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S가 먼저 그들을 학살했기에 1-1, 성준모, 그리고 다른 운영자들이 S를 반격하고 복수하려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라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이 제거한 자들은 모두 상업 세계의 암적 존재들이었다. 그 사람들의 손에 묻은 피도 그들 못지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관계를 따지자면 끝이 없었다.“어때, 이 조건을 받아들이겠나?” 이승하는 굳센 성격을 지닌 남자였
그와 동시에 넷째 어르신은 연씨 부녀를 루드웰로 데려왔다. 1-2가 제한한 시간보다 하루 늦어졌는데 그 이유는 이들 부녀가 꽤 깊숙이 숨어 있어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넷째 어르신은 이들을 주제실로 끌고 들어왔지만 1-2는 보이지 않고 소파에 앉아 화면을 응시하며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1-1만 있었다.“형님, 둘째 어르신은 어디 있습니까?” 주제실의 운영자들은 일제히 1-1을 바라보았다. 1-1이 1-2를 주저 없이 죽였을 때, 그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각기 다른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평범한 흑의인들과는 달리, 번호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기에 지위가 훨씬 높았고 1-1과 협력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1-2의 지위는 그들보다 더 높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은 1-2를 죽였다. 운영자들은 언제라도 자신들이 1-2와 같은 상황에 처해 이익이 충돌할 때, 1-1 역시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모두가 루드웰을 떠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김종수가 돌아왔다.“이승하가 칩으로 둘째 어르신을 조종해 두 사람의 생명을 함께 묶고, 형님을 협박했어. 그걸 알게 된 셋째 어르신이 그 사람을 한 방에 끝냈고.” 이 말을 한 사람은 여섯째 어르신이었고, 김종수는 이 단순한 한마디로 그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김종수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1-2는 루드웰을 위해 수년간 헌신적으로 일해왔는데 결국 후배에게 총 한 방으로 끝장나고 말았다. 그것도 단지 1-1을 어쩔 수 없이 협박했다는 이유로 그런 최후를 맞이하다니. 그렇다면 이승하를 도와 상위 구역까지 쳐들어간 그는 과연 어떻게 될까?김종수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마치 산처럼 굳건히 자리한 1-1을 바라보았다. “형님, 성준모는 그래도 오랜 세월 형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성준모를 구하려고 하기는커녕 죽여버리다니, 정말 제가 형님을 잘못 봤습니다.” 김종수는 자신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이미 알
“보스, 이승하가 S의 우두머리입니다. 둘째 어르신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승하를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저를 수배했어요. 이건 그 사람이 루드웰을 배신했다는 뜻이죠. 보스, 그 배신자를 죽였습니까?” 1-1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였어.” 1-1이 둘째 어르신을 죽였다는 말을 듣자 연지유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역시 보스는 대단하세요.” 그녀는 한마디 칭찬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1-1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그의 어깨에 올렸다. “보스, 제가 Ace를 위해 이렇게 큰 공을 세웠으니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1-1은 눈을 내리깔아 어깨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손을 바라보았다. “어떤 보상을 원하지?” 1-1의 눈에 서린 살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연지유는 몸을 살짝 앞으로 숙여 그의 귀에 가까이 다가갔다. “1-2가 죽었으니, 제가 그의 자리를 대신해 Ace를 관리하는 게 어떨까요?” “좋지. 하지만...” 1-1이 승낙했지만 조건이 붙자 연지유는 조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1-1은 서두르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아들고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연지유,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운영자는 플레이어의 생사를 함부로 좌우해서는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이 말을 듣고 연지유는 1-1이 자신이 서유를 죽인 것을 문제 삼고 있음을 깨닫고 급히 변명했다. “보스, 제가 규칙을 어기고 서유를 죽이려 했던 건 다 이승하 때문이에요.” “이승하가 서유가 선택에 성공하도록 조작한 후 떠나보냈잖아요. 루드웰에서 죽었어야 할 사람인데 전 그저 그걸 막기 위해서였어요.” “그래?” 연지유의 변명에 1-1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기묘한 웃음은 연지유에게 무척이나 섬뜩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연지유는 자신이 S의 우두머리까지 밝혀냈으니 큰 공로가 있다 여겨, 1-1이 자신에게 큰 벌을 내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
김종수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내기도 전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연지유가 연중서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아빠, 보스가 말한 게 정말이에요?” 이제 와서 연중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서유는 내 첫 번째 아내가 낳은 아이야.” 연중서에게 전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연지유는 충격을 받았다. 설마 서유라는 천박한 여자가 자신과 같은 아버지를 둔 이복자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어릴 때 분명히 봤던 장면이 있었다. 연중서가 서유의 어머니와 그녀의 두 딸을 배에서 밀어버린 걸 직접 눈으로 목격했었다. 그러니 그들은 이미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아빠, 설마 그때 그 사람들을 완전히 죽이지 않았던 거예요?” 연지유가 충격에 빠진 반면, 연중서는 상대적으로 냉정을 유지했다. “지유야, 일단 나가 있어. 내가 천천히 설명해 줄게.” 1-1은 서유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이 자리에서 계속 얘기를 나누다가는 과거의 일들이 더 많이 밝혀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얘기를 이어가선 안 됐다. 하지만 연지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연중서를 밀어냈다. “비켜요!” 그녀는 연중서를 밀치고 테이블 다리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연지유는 실망한 눈빛으로 연중서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곧장 총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침내 김종수 앞에 다가가 그의 허리에서 총을 빼내어 연중서의 가슴을 겨누었다. “아빠가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셨잖아요. 결국 그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유를 회사에 들여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어요!” “난 그런 적 없...” “없다고요?!” 연중서가 변명하려 하자 연지유가 싸늘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없었다면 서유가 지금까지 살아있지 않았을 테고, 우리 회사에 들어와 일할 수도 없었겠죠. 아빠가 서유를 여러 차례 돌봐준 것도 설명이 안 되잖아요.” “아빠는 틀림없이 우리 앞에
“그럼 김영주가 죽은 후 그 딸들도 흩어졌다는 건가?” 1-1의 목소리가 김종수의 떠오른 기억을 현재로 끌어당겼다. “맞습니다.” 1-1은 잠시 멈추더니 다시 물었다. “흩어진 후엔 어떻게 됐지?” “큰딸은 빈민가로 갔고, 작은딸은 인신매매범에게 여러 번 팔려 다니다가 결국 국내로 돌아와 고아가 됐습니다.” 1-1은 아직 김영주의 정확한 신분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그 후엔...” 김종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큰딸 김초희는 함께 지내던 남자에게 학대받다가 일찍 죽었고, 작은딸은 조금 더 나은 편이겠죠. 이승하와 결혼했습니다.” 김종수는 김초희와 서유의 구체적인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하고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김영주의 큰딸이... 이미 죽었단 말인가?” 1-1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스쳤지만 김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1-1의 표정이 멍해 보이자, 김종수는 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왜 김영주 모녀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신 건가요?” 1-1은 정신을 차리며 김종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너는 먼저 나가 있어.” 김종수는 1-1을 몇 번이나 쳐다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방을 떠났다. 그가 떠나자마자 잠시 전 외부로 나갔던 흑의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무인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알겠다.” 사람이 없다는 건 누군가가 구해 갔다는 뜻이었다. 구해졌다면 아직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 생각에 1-1은 휴대폰을 들어 1-3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계속 받지 않았다. 1-1은 무언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는 재빨리 가면을 챙겨 생화학 구역으로 향했다. 그가 막 도착했을 때, 생화학 구역에서는 이미 흑의인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이승하가 단 한 자루의 메스로 흑의인들을 모두 제압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1-3은 이승하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서 서유는 이승하가 그녀를 밀어내고 돌아서서 연지유를 품에 안는 장면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멍해진 그녀는 곧바로 달려갔지만 이승하는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 “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왜 너는 아직도 매달리는 거지?” 서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이승하를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정말 이혼했어요?” 이승하는 대답하지 않고 품속의 연지유를 더욱 꽉 껴안으며 다정하게 대했다. 서유는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서 있다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그 순간 남자가 고개를 숙여 연지유와 입을 맞추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 서유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다. 수천 개의 화살에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견디며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흰색 천장을 보고서야 서유는 자신이 악몽을 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단지 꿈이었음을 안도하던 그녀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눈길을 옮기자 갑자기 한 장의 고독하고도 날카로운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깨어났어요?” 상대방의 눈빛이 그녀가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 반짝였다. 마치 별빛이 켜진 것처럼. 서유는 그를 바라보며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다 한참 만에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살며시 만졌다. 촉감은 진짜였다. 그는 살아 있었다. 서유의 맑은 눈동자에 얇은 물기가 서렸다. “육성재 씨,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육성재는 병원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큰 고비를 넘겼으니 행운이 따라올 거예요. 안아줄까요?” 육성재를 바라보며, 서유는 문득 그가 자신 대신 총을 맞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의 목숨을 건 헌신과 피로 얼룩진 모습은 그녀에게 깊은 감동과 죄책감을 안겨 주었다. 서유는 그를 잠시 응시하다가 천천히 두 팔을 벌렸다.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