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집에 돌아와 정가혜가 연이와 함께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이승하를 찾으러 갈 수는 있지만 여기엔 가장 마음에 걸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주방에 있는 이 둘이었다.정가혜는 이연석과 결혼해서 남편의 보호도 받고 아이도 있어서 크게 걱정할 건 없었지만, 연이는...이미 부모를 잃고 양부도 잃었으니 유일한 의지처는 그녀와 이승하뿐이었다.‘이제 승하 씨도 없고 얼마 안 있어 나도 사라질지 모르는데 연이는 어쩌지?’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서유는 위층으로 올라가 휴대폰을 꺼내 심혜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아이 양육권 소송이 끝난 뒤로 심혜진도 가끔 연이를 보러 왔었다. 아마도 서유의 너그러움과 아이를 교육하는 방식이 심혜진의 눈에 들었는지, 그녀는 더 이상 오만하지 않고 많이 부드러워졌다.모든 할머니들이 손녀를 보러 오듯이, 올 때마다 잔뜩 선물을 들고 와서 연이도, 서유도 달래려 했고 덕분에 서로 한 걸음 가까워졌다.하지만 김영주의 생애라는 벽이 있어 너무 가까워지진 않았다. 연이가 할머니와 친해지는 것도 서유는 막지 않았다. 어쨌든 친척이니까.심혜진에게 메시지를 보내 연이를 자주 봐달라고 했다. 연이를 맡기진 않았고 다만 자신이 출장을 가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아이가 외로울까 봐 많이 데리고 있어 달라고 했다.이어서 심이준과 조지에게도 전화해서 블루리도에 와서 평소처럼 지내달라고 했다. 그들은 S나 루드웰 같은 조직에 대해서는 모르고, 다만 서유가 외출할 때마다 연이를 맡기곤 했는데 그들도 기꺼이 맡아주곤 했다.정가혜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임신한 정가혜가 아이를 돌보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이 생각이 미치자 서유는 주서희가 떠올랐다.주서희가 아직 있었다면 틀림없이 연이를 그녀에게 맡겼을 것이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주서희가 얼마나 아이를 원하고 사랑했는데...서유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통창 앞으로 가서 밤하늘의 밝은 달을 한참 바라보다가 배를 만졌다.‘서희 씨, 나 임신했요
그가 서유의 차를 가로막아 세우더니 차 문을 열고 나와 그녀의 차창을 두드렸다. “문 열어요!”서유는 하는 수 없이 차창을 내리고 창밖의 육성재를 바라보았다. “육성재 씨, 무슨 일이세요?”육성재가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성아가 또 택이가 죽었다는 걸 믿지 못하고 찾아다니겠다고 난리예요. 완전히 포기하게 만들려면 내가 루드웰에 한번 가봐야겠어요. 마침 그쪽도 거기 가려는 것 같으니 같이 가죠.”서유는 몸이 굳어버렸다. 육성재가 자신이 루드웰에 가려던 것을 눈치챘다는 사실도, 게다가 같이 가겠다는 말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후 건장한 체격뿐인 육성재를 힐끗 보았다. “택이처럼 무술에 능한 사람들도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병약한 당신이라면...”육성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내가 병약하다고? 그럼 그쪽은 나보다 나을 게 뭐 있다고?”서로 비슷한 처지라 누구도 누굴 탓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목숨이 질겨 항상 상대를 이기곤 했으니 어쩌면 그가 가면 루드웰의 사람들이 다 꺾일지도 모를 일이었다.서유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성아 씨는 이미 약혼자를 잃었어요. 만약 사랑하는 오빠마저 잃으면 정말 미치고 말 거예요.”육성재는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되물었다. “지금은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육성아는 충격을 받아 정신에 이상이 왔는지 한순간은 택이가 죽었다 하고, 또 한순간은 살아있다고 했다. 그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와서 택이가 정말 죽었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서유는 눈을 내리깔며 망설였고 육성재는 그녀를 뚫어지게 보다가 잠시 침묵한 후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성아의 오빠로서 그 정도는 해줘야죠.”서유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택이는 제 남편을 따라 루드웰에 갔다가 뼈만 돌아왔어요. 당신이 저와 함께 간다면 뼈조차 돌아오지 못할 텐데, 그땐 제가 성아 씨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해요?”육성재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성아는 모를 거예요. 게다가 난
“동의할 수 없어요. 육성재 씨, 전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제 남편을 찾으러 가는 거예요.”육성재는 거만하게 그녀를 흘겨보았다. “내가 처남을 찾는 것처럼 당신은 남편을 찾는 거잖아요. 뭐가 문제예요?”서유는 할 말을 잃었고 이때 육성재가 다시 물었다. “난 루드웰 안의 상황을 알고 있는데, 그쪽은 알아요?”그녀는 강도윤이 자신이 루드웰에 가려는 걸 눈치챌까 봐 구체적인 상황을 묻지 않았었다. “주소만 알면 충분해요.”순간 육성재의 거만한 표정이 점차 차가워졌다. “어떻게 루드웰의 주소를 알아요?”서유는 잠시 망설이다가 육성재를 신뢰하기로 하고, 금잎사귀와 쪽지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루드웰 주소는 모르지만 오늘 어떤 여자아이가 이 두 가지를 줬어요.”육성재는 받아들고 쪽지를 보더니 금잎사귀를 자세히 살폈다. “이 금잎사귀는 루드웰의 초대장이에요. 뒷면의 A는 루드웰의 암호로 Ace라고 읽어요.”그는 금잎사귀에서 시선을 옮겨 서유를 보았다. “루드웰 배후 세력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으면 초대장을 보내요. 당신이 이걸 받았다는 건 그 사람들이 당신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에요.”서유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사람들이 절 노린다는 건, 혹시 승하 씨가 살아있어서 절 협박 수단으로 삼으려는 건가요?”육성재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엔 오히려 이승하를 협박 수단으로 써서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이승하는 이미 루드웰에 깊이 빠져있으니, 죽었든 살았든 직접 통제할 수 있잖아요.”서유는 이 말을 듣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존재가 이승하를 위협하지만 않으면 됐다. “그럼 왜 절 함정에 빠뜨리려는 걸까요?”육성재가 금 잎사귀를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분명 뭔가 가치가 있으니까 노리는 거겠죠.”서유가 의아해했다. “제게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죠?”육성재는 가느다란 흰 손가락으로 그녀의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부두로 가요. 가는 길에 말해줄게요.”서유는 육성재를 잠시 쳐다보다가 더 이상
Ace의 내부 상황은 육성재가 말한 것처럼 매우 은밀하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Ace에서 발급한 초대장과 Ace가 지정한 장소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Ace가 초대했다고 해서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 부자들과 도박꾼들은 호기심에 그 초대에 응하곤 한다. 육성재의 말에 의하면 어느 정도의 부를 갖게 되면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정신적 자극에만 오로지 재미를 느끼고 어느 정도 가난이 닥쳐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S 조직의 멤버가 Ace에 잠입할 수 있었던 건 Ace에서 S 조직의 멤버는 대부분 명문가의 자제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오래전부터 S 조직의 멤버들에게 무작위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또한 S 조직의 멤버들을 찾기 위해 그들은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라면 원하는 곳을 마음껏 지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강중헌은 초대장을 받은 멤버들을 차례로 Ace에 잠입시켰다. 이승하와 강도윤 그리고 택이와 같은 사람들은 특히 Ace의 표적이었고 당연히 그들에게는 진작부터 초대장을 보냈었다.다만 학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개의치 않았다. 그 당시 강중헌을 포함한 S 조직 사람들은 Ace의 설립 취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부자들과 도박꾼들을 위한 오락실이 있는데 이름은 루드웰, 코드명은 Ace인 것밖에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Ace에서 대규모의 학살을 벌인 후에야 S 조직은 Ace가 실제로 자신들을 노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부자들과 도박꾼 그리고 스파이가 초대를 수락하면 Ace는 지정된 장소에서 한참을 몰래 관찰하다가 초대된 사람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들을 몰래 기절시켰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보통 텅 빈 방에 있게 되는데 그곳은 전자장치로 제어되는 곳이었고 그곳에 나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생사가 오가는 게임을 할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강도윤의 말로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검은색 옷을 입을 사람이 나타나 죽음의 문으로 끌고 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서유는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돌았고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봉태규가 이승하의 신분을 폭로한 적은 없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를 세운 뒤 육성재를 쳐다보았다.“방금 루드웰에서 승하 씨를 빌미로 날 유인하고 있다고 했었죠?”육성재가 고개를 끄덕였다.“왜요?”서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전에 승하 씨한테서 들었어요. 봉태규와 연지유의 손에 S 조직의 멤버 리스트가 있다는 걸. 연지유는 나한테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에요. 날 끌어들이려고 한 사람이 연지유가 아닐까요?”육성재도 이승하와 연지유와의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아닐까가 아니라 확실한 겁니다. 연지유가 서유 씨를 유인하고 있어요. 그래도 갈 거예요?”서유는 자신의 안위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이승하뿐이었다.“승하 씨가 죽지 않았다면 연지유가 날 이용해 승하 씨를 협박하고 있을지도 몰라요?”육성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죽지 않았는데 아직 돌아오지 못한 걸 보면 이미 그곳에 납치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Ace의 수단이라면 서유 씨가 가든 가지 않든 당신을 빌미로 이승하를 협박할 수 있을 거예요. 연지유가 당신을 끌어들이는 건 당신한테 복수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이승하가 죽든 살아있든 연지유는 당신이 이승하를 위해 그곳에 갈 거라는 걸 확신하고 황금잎을 보낸 겁니다.”서유는 연지유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봉태규가 어떻게 루드웰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연지유가 어떻게 루드웰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봉태규가 연지유를 데리고 간 것이라면 두 사람은 어떻게 인연이 된 걸까?이승하가 이런 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던 터라 서유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그녀의 생각대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육성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서유 씨
그녀의 단호한 눈빛에 그는 마음이 흔들렸다. 이승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승하는 그녀한테 아침이 다가오는 햇빛과 같은 존재였다. 다음날의 아침이 약속대로 밝아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영원히 어제의 황혼에 갇혀버리게 될 것이다. 생사를 함께 하는 것은 두 사람한테 결코 말뿐이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 육성재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승하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서 그는 철저히 패배자였고 시작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들어온 이 여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아니면 좋아한다는 말을 어찌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성재 씨, Ace가 규칙을 중시한다고는 하지만 죽음의 문을 잘못 선택하면 죽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성재 씨는 가지 말아요. 성아 씨가 확인하고 싶은 건 내가 대신 확인해 줄게요.”그녀의 말은 걱정이 아니라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대기시켜 놓은 건 루드웰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예요.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리고 당신 인생만 재수 없었던 건 아니에요. 내 인생도 당신 인생 못지않았습니다. 내 인생도 당신의 인생처럼 좋아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물러서지 않는 그 모습에 서유는 황금잎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성재 씨까지 잘못될까 봐 그래요. 그리고 성재 씨한테는 황금잎도 없잖아요. 루드웰에서 당신을 들여보낼 리가 없을 것 같아서...”Ace 의 초대장 받고 Ace의 관찰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사실 육성재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집안의 자제가 왜 Ace의 초대장을 받지 못한 건지. Ace에서도 날 무시하는 건가?그 생각을 하니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나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그녀가 계속 말리려고 하자 육성재는 화를 냈다. 시도 때도 없이 욱하고 미쳐 날뛰
“너, Ace에서 보낸 거지?”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어린 여자아이는 그가 버럭하는 소리에 이내 눈물을 왈칵 쏟았다. “흐윽... 할아버지. 여기 변태 아저씨 있어요. 저 좀 구해주세요.”부두 기슭에서 이제 막 물건을 내리고 땅바닥에 앉아 동료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던 노인은 손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손녀가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왔다.“당장 내려놔. 그렇지 않으면 망치로 내리칠 거야.”상대방이 짐을 내리는 도구를 들고 여러 명의 노인들을 데리고 달려오는 것을 보고 서유는 급히 손을 뻗어 육성재의 손에서 아이를 낚아채 바닥에 내려주었다. 그러고는 현금을 꺼내 노인들에게 쥐여주며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들을 다독인 후, 그녀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육성재를 노려보았다.“애한테 누가 쪽지를 준 건지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추궁부터 하면 어떡해요? 제정신이에요?”자신이 실수했다는 생각에 그는 조금 찔리긴 했지만 여전히 당당한 모습이었다.“애한테 쪽지를 준 사람은 분명 Ace의 사람일 거예요. 그걸 굳이 물어봐야 알아요? 그리고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쪽지만 주고 그냥 가겠죠. 내가 물어볼 때까지 서 있다가 다시 돌아가겠어요?”서유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암암리에 대기 중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Ace 의 사람이 어린 소녀에게 쪽지를 찔러주는 것을 보았냐고 물었다. 그쪽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하자 그는 짜증이 가득 찬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서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캐리어를 들고 1번 선박으로 걸어갔다. 수갑이 채워진 탓에 그녀가 움직이자 그도 따라가야만 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1번 선박에 올라탔고 배 안에는 승객이 별로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Ace가 아마도 이곳에서 손을 쓰려는 모양이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1번 선박이 출발하였고 배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육성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다만 자신이 배
막대 모양의 전등이 켜지는 순간 텅 빈 방 전체가 환해졌고 맑고 투명한 얼굴도 환하게 밝혀주었다. 불빛의 소리에 정신이 든 서유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사방이 하얗고 하얀색 천장, 하얀색 바닥 말고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한 줄 한 줄의 흰 빛이 천장 틈으로 내려와 눈이 부셨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빛을 막았다. 바로 그때, 수갑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옆에 육성재가 누워있었다. 여전히 굳게 감긴 그의 눈을 보고 그녀는 기억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육성재가 루드웰을 욕하자마자 두 사람은 정신을 잃게 되었다. 이리 텅 빈 방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걸 말해주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육성재의 사람들은 예정대로 루드웰을 제거하지 못하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개의치 않았고 손을 뻗어 육성재를 깨웠다. 그가 루드웰의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던 건지 그는 그녀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약을 복용했고 아무리 건드려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서유는 그를 내버려둔 채 눈을 들어 방안을 훑어보았다. 온통 하얀 색인 방 안에는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고 침대마저 하얀 것이 깔끔하기 그지없었다.강도윤이 말한 전자장비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아마도 은밀한 곳에 숨겨놓은 것 같다. 방금 불이 켜졌을 때 들려오던 기계음처럼.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나 벽에 기대어앉아 Ace가 규칙을 발표하기를 조용히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어리둥절해진 그녀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강도윤이 묘사한 대로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심지어 문도 없었다. 그러나 Ace가 그녀의 캐리어를 함께 이곳으로 들고 올 줄은 몰랐다. 구석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만졌는다. 그 마취약이 아이에게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배에 이상한 감각이 없고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것을 보니 Ace의 사람들이 그녀를 봐준 것 같다.무슨 이유일까? 연지유가 그녀를 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