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서 걸어 내려온 이승하는 서유가 주방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가 냄비를 대신 들어주면서 말했다.“여보, 앞으로 이런 일은 고용인들을 시켜. 그러다가 손 데겠어.”부드러운 말투가 서유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미련이 고여 넘쳐흘렀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네...”이승하는 냄비를 내려놓고 강도윤과 강세은을 바라보았다. 약간 미간을 좁힌 그가 몸을 돌려 서유의 손을 잡고 얘기했다.“서유야, 나 이제 가야 해. 집에서 조심하고 잘 있어...”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결국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하지만 이승하에게 그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얼른 손을 들고 테이블 위를 가리키면서 이승하의 시선을 끌었다.“여보, 내가 저녁을 준비했는데, 먹고 가면 안 돼?”문 앞에 서 있던 강도윤은 그 말을 듣고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더니 얘기했다.“이 대표님, 반 시간 뒤에 배가 출발할 겁니다. 시간이 없습니다.”이승하는 강도윤을 무시하고 서유를 데리고 의자에 앉았다.그 모습을 본 강도윤은 강세은을 보더니 다시 서유를 쳐다보았다.이번만큼은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이승하에게 그녀가 만든 저녁을 주고 싶었다.하지만 서유는 결국 그렇게 할 수 없었다.이승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서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보, 사람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요.”숟가락을 들고 있던 이승하의 손이 그대로 굳었다. 이윽고 국물을 떠서 서유의 입가로 가져갔다.이승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 마시라고 눈치를 주었다. 서유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가요.”숟가락을 든 이승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승하는 서유를 쳐다보다가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떠나는 이승하는 아주 칼 같았다. 한 번도 서유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냉혈한처럼 말이다.그런 이승하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서유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이렇게 이별인 줄 알았는데, 문밖으로 나가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이윽고
이승하 뒤에 있던 강도윤은 몇 걸음 뗀 후 갑자기 멈춰서서 차에 있는 강세은을 바라보았다.“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시집이나 가.”강세은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떠나가는 강도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강도윤을 향한 짝사랑은 한 번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다.하지만 강도윤에게 있어서 감정은 사치다. 그는 아마 강세은의 사랑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다만 아까 그 말은 마치 강세은의 짝사랑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 같았다.차갑기만 했던 강세은의 눈에 눈물이 돌았다. 점점 눈물이 차올랐고 어느새 붉게 번졌다.‘오빠가 돌아오지 않으면 영원히 다른 남자한테 가지 않을 거야.’이승하가 떠난 후, 서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재 소파에 앉아서 몸을 웅크리고 창밖을 보면서 멍때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심이준이 몇 번이나 와서 설계도를 그리라고 재촉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멍한 모습을 보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연이를 데리고 와서 서유를 기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서유는 가끔가다 그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가장 힘든 것은 저녁이었다. 서유는 이승하를 안고 자는 것에 습관 되어있었는데 이승하가 없으니 불도 끄지 못했다. 새벽에 깨어나 갑자기 옆자리가 텅 비었다는 걸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임무를 수행하러 간 이승하는 핸드폰이 없었다. 서유와 연락할 수도 없고 영상통화를 할 수도 없었다. 서유는 그저 멍하니 집에 앉아서 설계도를 그리면서 이승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JS그룹 쪽에서 이연석은 이미 이승하의 지시대로 얘기해 두었다. 사람들은 이승하가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러 한 달 동안 북미로 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이연석이 이승하의 자리를 대체한다.그는 그룹 내부를 진정시켰지만 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이승하가 갔다는 것을 듣고 주식 배분의 일을 걸고 이연석을 귀찮게 했다.이연석은 매일 친척들한테 둘러싸였다. 출근하러 갈 때도, 회의하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형들이 얘기해줘서 겨우 참을 수 있
30일, 마지막 날 밤, 서유는 별장 밖에 서서 손목시계의 시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계의 바늘이 12시를 가리킬 때까지 블루리도의 도로에 이승하가 타고 떠났던 검은 차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가라앉았고 발걸음은 어둠의 끝으로 향했다. 그녀는 산 아래에서 차가 올라오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소지섭이 길을 막아섰다. “사모님, 위험합니다.”이승하는 소지섭에게 언제 어디서든 서유 곁을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이 기간 동안 별장 안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그 외에는 항상 서유와 바짝 붙어 다녔다.“정해진 시간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위험을 신경 쓰겠어?”서유는 소지섭의 손을 밀치고는 상관하지 않고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계속 달리면 이승하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산길과 도로가 만나는 끝까지 미친 듯이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승하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고 텅 빈 눈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도 못했으며 이승하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 항상 그녀의 뒤를 따르던 소지섭도 초조하게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불안해했다. 두 사람이 도로 끝에 서 있을 때 하늘에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고 비가 잦아지는 가을이 왔다. 비는 크지 않았지만 가늘게 내리는 비가 그녀의 길게 풀어헤친 머리 위로 차갑게 내리며 마치 한 겹의 차가운 안개를 덮는 듯했다. 소지섭은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와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서유를 보며 그녀에게 돌아가자고 권유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망설이다가 재빨리 외투를 벗어 서유에게 내밀었다. “사모님, 비가 많이 옵니다. 제 옷으로 비를 가리시죠.”서유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치 버려진 인형처럼 생기가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소지섭은 그녀의 반응이 없자 몇 초 망설인 후에 외투를 펼쳤다.
짧은 한 줄의 글이 서유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눈물이 편지 위로 떨어졌다. “거기서 잘 지내고 있나요?”서유는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전해준 낯선 사람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그녀의 얼굴을 가득 채운 눈물을 보고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내고 있으니 안심하세요.”“언제 돌아오나요?”“그건 잘 모르겠습니다.”“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나요? 제가 보러 갈 수 있을까요? 저...”서유가 더 물어보려 했지만 그 사람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사모님, 저는 급한 일이 있어서 더는 말씀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그는 서유가 대답할 틈도 없이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서유는 편지를 꽉 쥐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빠르게 떠나는 차를 바라봤다...도로 맞은편, 나무 아래 숨어 있던 검은 차도 시동을 걸고 뒤따라 떠났다. 차 안에 있던 이연석은 창밖에서 점점 작아지는 서유를 한 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승하의 아내는 아마도 편지를 전해준 사람이 자신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미 이승하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기에 진정한 심부름꾼은 없었다. 이연석은 손에 쥐고 있는 또 다른 흰색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두 달 후, 이 편지가 그의 손에 영원히 남아있길 바랐다. 또한 그의 형이 깊은 수렁에서 빨리 돌아오길 간절히 원했다.서유는 이승하가 보내준 편지를 꼭 쥐고 그가 사람을 보내 편지를 전달했다는 사실로 자신을 위로했다.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있다면, 그가 무사하다면 두 달을 더 기다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신념으로 서유는 강인하게 집에 머물며 이승하를 기다렸다. 그 사이에 정가혜가 가끔 그녀를 찾아와 위로해 주었고 따뜻한 힘을 주었지만 남편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마음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서유는 식욕도 없었고 살도 많이 빠졌다. 주태현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주 그녀에
서유는 택이가 이승하와 함께 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두 명의 리더가 한 임무에 갔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는 아주 훌륭한 택이까지 있다는 점에서 이 임무의 위험성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육성아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서유는 잘 알고 있었고 그만큼 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을 홀로 감내해야 했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아마 최근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그래요.”육성아는 서유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고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최근에 잠을 잘 자지 못했어요.”육성아는 택이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택이가 갑자기 당신 남편을 따라 출장 간다고 했을 때는 아무 일도 아닌 줄 알았어요. 중요한 일을 하러 간다고 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 끝나지 않고 연락도 안 되고 있어요. 그 때문에 난 이 두 달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마음이 계속 불안해요.”서유도 다를 바 없었지만 육성아의 불만에 그녀는 그저 위로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한 달만 더 기다리면 그들이 돌아올 거예요.”“당신 남편이 그렇게 말했어요?”서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육성아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그녀는 앉아 있던 가죽 소파를 꽉 쥐며 말했다.“나는 그들이 기밀기지 같은 데 갔다고 생각했어요. 전화도 할 수 없고 외부와 연락도 안 되는 곳 말이에요. 당신 남편은 당신에게 연락을 했는데 택이는 나한테 연락도 안 해요. 택이가 바람이라도 피운 걸까요?”육성아는 아이가 두 달 된 상태였는데도 택이가 연락하지 않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었다.“택이가 바람이라도 핀다면 난 배 속의 아이를 지울 거예요. 그리고 다시는 택이를 만나지 않겠어요!”서유는 소파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당신... 임신했어요?”육성아는 감추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택이가 떠난 후 알게 됐어요.”즉, 택이는 육성아가 임신한 사실을 모른다는 말이었다.서유는 택이를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다.그녀는 이승하를 그리워하며 날마다
서유가 편지를 꼭 쥐고 창가에 앉아 이승하를 기다리고 있을 때 주태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사모님, 강도윤이 돌아왔습니다.”이 말을 듣자 서유는 잠시 멍해 있다가 금세 눈에서 희망의 빛이 비쳤다.그녀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주태현을 지나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거실로 뛰어갔다.소파에 꼿꼿이 앉아 있던 강도윤은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강도윤의 익숙한 얼굴을 본 순간 서유의 맑고 깨끗한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강도윤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승하도 무사히 돌아온 것 아닐까?서유는 걸음을 옮겨 강도윤 앞에 섰다.“이승하는 어디 있나요?”강도윤은 눈을 아래로 내리며 슬픔을 숨기기 위해 표정을 감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서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방금 타올랐던 희망의 불씨가 전부 꺼져버렸다.“언제 돌아오는 건가요?”강도윤은 무릎 위에 얹은 손가락을 꽉 쥐었다.“대표님이 당신에게 두 달만 더 기다려 달라고 편지를 썼잖아요. 지금 22일 남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요.”서유는 강도윤의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강도윤 씨, 당신은 돌아왔는데 왜 이승하는 아직 기다려야 하죠?”강도윤은 그 질문에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고통과 죄책감을 애써 억누르며 서유를 바라보았다.“대표님은 아직 임무를 마치지 못해서 나를 먼저 보냈어요. 내가 돌아와 당신에게 안심하라고 전하라고 했어요.”그가 서유가 걱정할까 봐 강도윤을 먼저 보내 안심시키려고 했던 걸까?그렇다면 그가 무사하다는 뜻이고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서유는 마음이 조금 풀리며 안도했다.“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다친 데는 없나요?”그녀는 이승하가 다치거나 사고를 당할까 봐 걱정했다.그가 안전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었다.강도윤은 정장을 쥐고 있던 손이 떨리는 것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어요.”다른 누가 말했다면 서유는 믿지 않았을 것이지만 강도윤이 함께 다녀왔으니
강도윤이 떠나며 남긴 비웃음이 내내 서유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유는 강도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사실 그녀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하나 택이가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는 생각은 애써 외면한 채 강도윤이 전해 준 무사하다는 소식을 붙잡고 모든 불안을 억누르며 집에서 꼬박 22일을 얌전히 기다렸다. 시계 바늘이 다시 한번 00:00을 가리켰다. 블루리도 입구에 여전히 이승하의 차는 보이지 않았고 그의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순간 서유가 쌓아 올린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녀는 처음으로 수억 원짜리 시계를 내던져 부쉈고 또 처음으로 식탁을 엎어버렸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서유는 저택을 뛰쳐나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도로 끝까지 달려갔다. 만약 소지섭이 막지 않았더라면 이미 차에 치였을 것이다. 이성을 잃은 서유를 붙잡고 소지섭은 간절히 그녀를 설득했다. “사모님,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대표님은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반드시요!” 서유는 그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넌 그 말을 믿어?” 소지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도 믿었다. 하지만 강도윤이 나타난 순간 그는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루드웰 같은 곳에 들어간 S의 사람들은 다시는 나올 수 없다. 강도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목숨을 대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누구의 목숨인지 소지섭은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는 그를 지켜주며 자라온 대표님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어릴 적부터 의지하며 살아온 택이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목숨이 바뀌었든 소지섭에게는 반쯤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런 결말을 예감하고 있었음에도 서유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곁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바뀐 목숨이 정말로 대표님의 것이라면 소지섭은 평생
송사월은 할 말을 전했고 마음이 아프지만 꾹 참고 지팡이에 의지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서유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오빠한테 전화해.” 그는 항상 절제했고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 그녀의 가족이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서유는 여전히 예전과 같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응.” 송사월은 마지막으로 서유를 깊이 바라본 후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 차 문이 닫히는 순간 송사월은 창문 너머로 길가에 서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 서유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조각으로 찢긴 ‘유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송사월의 차가 도로 끝에서 사라진 뒤 서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지섭, 도윤 씨에게 전화해서 만나자고 해.” 소지섭은 서유가 모든 것을 알게 되면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지만 그녀의 눈빛이 단호한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도윤은 소지섭의 전화를 받는 순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진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유골함을 안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강도윤이 도착했을 때 서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이승하가 잠든 틈에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강도윤은 잠시 서유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녀 앞에 다가와 말없이 유골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서유는 그 유골함을 보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거 누구 거예요?” 서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마른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눈물은 소리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서유를 보며 강도윤은 당황했고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서유는 점점 초조해져 그의 옷깃을 붙잡고 소리쳤다. “도윤 씨, 대답해줘요.” 서유는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분노에서 애원으로 변하며 단 하나의 답을 원했다. 강도윤은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탁자 위에 놓인 유골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