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윤이 떠나며 남긴 비웃음이 내내 서유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유는 강도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사실 그녀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하나 택이가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는 생각은 애써 외면한 채 강도윤이 전해 준 무사하다는 소식을 붙잡고 모든 불안을 억누르며 집에서 꼬박 22일을 얌전히 기다렸다. 시계 바늘이 다시 한번 00:00을 가리켰다. 블루리도 입구에 여전히 이승하의 차는 보이지 않았고 그의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순간 서유가 쌓아 올린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녀는 처음으로 수억 원짜리 시계를 내던져 부쉈고 또 처음으로 식탁을 엎어버렸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서유는 저택을 뛰쳐나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도로 끝까지 달려갔다. 만약 소지섭이 막지 않았더라면 이미 차에 치였을 것이다. 이성을 잃은 서유를 붙잡고 소지섭은 간절히 그녀를 설득했다. “사모님,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대표님은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반드시요!” 서유는 그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넌 그 말을 믿어?” 소지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도 믿었다. 하지만 강도윤이 나타난 순간 그는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루드웰 같은 곳에 들어간 S의 사람들은 다시는 나올 수 없다. 강도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목숨을 대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누구의 목숨인지 소지섭은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는 그를 지켜주며 자라온 대표님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어릴 적부터 의지하며 살아온 택이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목숨이 바뀌었든 소지섭에게는 반쯤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런 결말을 예감하고 있었음에도 서유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곁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바뀐 목숨이 정말로 대표님의 것이라면 소지섭은 평생
송사월은 할 말을 전했고 마음이 아프지만 꾹 참고 지팡이에 의지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서유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오빠한테 전화해.” 그는 항상 절제했고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 그녀의 가족이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서유는 여전히 예전과 같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응.” 송사월은 마지막으로 서유를 깊이 바라본 후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 차 문이 닫히는 순간 송사월은 창문 너머로 길가에 서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 서유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조각으로 찢긴 ‘유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송사월의 차가 도로 끝에서 사라진 뒤 서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지섭, 도윤 씨에게 전화해서 만나자고 해.” 소지섭은 서유가 모든 것을 알게 되면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지만 그녀의 눈빛이 단호한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도윤은 소지섭의 전화를 받는 순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진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유골함을 안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강도윤이 도착했을 때 서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이승하가 잠든 틈에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강도윤은 잠시 서유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녀 앞에 다가와 말없이 유골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서유는 그 유골함을 보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거 누구 거예요?” 서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마른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눈물은 소리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서유를 보며 강도윤은 당황했고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서유는 점점 초조해져 그의 옷깃을 붙잡고 소리쳤다. “도윤 씨, 대답해줘요.” 서유는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분노에서 애원으로 변하며 단 하나의 답을 원했다. 강도윤은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탁자 위에 놓인 유골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택이
서유는 순간 몸이 굳었다. 그녀는 육성재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제 내 여동생의 약혼자도 세상을 떠났는데 대체 언제까지 나를 속일 셈이에요?” 서유는 고개를 들어 육성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육성재는 ‘미안하다는 말로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해요?’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서유의 붉게 부은 눈을 보고는 그 말을 삼켰다. 그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돌아가서 사실을 확인해요. 내가 다시 답을 받으러 갈 테니까.” 그는 이승하가 사라진 지 세 달이 되었고, 이제 강도윤이 택이의 유골함을 안고 돌아왔지만 이승하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미 큰일이 벌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 그는 짐작할 수 없었다. 강도윤만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유는 육성재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소지섭의 보호를 받으며 서둘러 블루리도로 돌아갔다. 다행히 강도윤은 떠나지 않고 여전히 유골함을 만지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택이를 잃은 슬픔을 억누르고 있던 서유는 거의 쓰러질 듯한 몸을 버티며 강도윤 앞에 섰다.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유골함이 택이의 것이라고 해서 이승하가 무사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송사월에게 유서를 남기지 않았을 테니, 서유는 이미 마음속 깊이 이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육성아처럼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강도윤은 유골함에서 손을 떼고 서유를 바라보았다. “‘루드웰’이라는 곳이 있어요. S 조직과 비슷하지만 만들어진 목적은 S조직을 겨냥하기 위해서예요. 그들의 배후가 제 양부와 원한이 있는지, 아니면 대표님과 얽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S 조직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어요.” 서유는 ‘다시 나올 수 없다’는 말에 가슴이 점점 더 옥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갔던 곳이 바로 그 루드웰인가요?” 강도윤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의 눈
강도윤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서유의 눈에 담긴 빛이 점점 사라졌다.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완전한 절망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이승하의 두개골이 열리는 장면으로 가득 찼다. 저 사람들이 그에게 마취라도 해줬을까? 만약 마취를 했다면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했을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생생하게 머리가 갈라지고, 뇌 속의 것들이 하나하나 도려내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을까...그가 그런 고통을 겪으며 죽었다는 생각만으로도 서유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도 도저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죽음 같은 질식감에 마치 공기가 입과 코로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승하가 조금의 상처라도 입는 걸 원치 않았는데, 그는 그렇게 처참하게 짓밟혀 죽었다. 서유는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서유는 심장을 움켜쥐며 몸을 서서히 굽혔지만 그 절망적인 고통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커다란 눈물방울이 그녀의 눈에서 떨어져 하나하나 바닥에 내리꽂혔다. 강도윤은 바닥에 떨어진 눈물을 보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다가 간신히 얼굴을 들어 보았다. 눈앞에는 생지옥에 떨어진 듯한 서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죄책감과 자책감이 그를 짓누르며 그녀의 얼굴을 더 이상 직시할 수 없었다. “제 동생이 대표님께 저를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대표님이 저를 지키려 한 겁니다...” 이승하는 자신의 목숨으로 강도윤의 목숨을 맞바꾼 것이었다.이승하가 자신을 생의 문 안으로 밀어 넣던 순간이 떠오르자 강도윤은 다시 고개를 무릎 사이로 묻었다. “정말 죄송합니다...”서유의 귀에는 점차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부어오른 눈을 천천히 들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강도윤을 바라보았다. “그이가 당신을 선택했단 말인가요? 그래서... 나를 버렸어요?” 마지막 여섯 글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간신히 뱉어낸 것이었다. 그는 분명히 그녀에게 돌아오겠다고
서유는 강도윤의 말을 듣고 난 후 손발이 얼어붙은 듯했고 몸속을 흐르던 모든 피마저 차가워진 것 같았다. 겨우 타오르던 희망의 불빛이 한순간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결국 모든 게 거짓이었군요...” 안부를 전해준 사람, 한 달을 기다리라는 약속, 두 달을 기다리라는 맹세, 세 번째 달에 등장한 송사월까지,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이승하는 정말 대단했다. 그녀의 마음 약함을, 그녀의 순종적임을, 그리고 그녀가 절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가지고 논 것처럼. 서유는 비참한 웃음을 터뜨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웃음은 차갑고도 한없이 억눌린 것이었고, 그 광경은 강도윤의 가슴에 더 큰 죄책감을 안겼다. “사모님, 이 모든 건 제 잘못입니다. 저는 정말 두 분께 큰 죄를 지었어요.” 서유는 오랜 시간 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온몸이 차가워 떨릴 때까지도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서서히 몸의 감각을 되찾은 그녀는 두 팔로 스스로를 꼭 끌어안고, 마비된 듯한 눈을 천천히 움직여 여전히 무릎을 꿇고 참회하고 있는 강도윤을 바라보았다. “주소를 주세요. 제가 찾으러 갈 거예요.” 살아 있든 죽어 있든, 그녀는 그를 꼭 만나야 했다. 설령 그가 재로 변해버렸더라도, 그 재가 있는 곳에 그녀는 서 있을 것이다. 이 순간, 강도윤은 왜 이승하가 서유에게 진실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는지, 왜 반드시 그녀에게 숨기라고 했는지를 깨달았다. 서유는 정말로 이승하를 위해 죽음을 각오할 사람이었다. 강도윤은 감정에 서툴렀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유의 마음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그곳은 서유가 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그는 절대로 이승하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그 끔찍한 장소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저도 몰라요.” 강도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주소를 몰랐다. 그들 모두는 정신을 잃은 채 그곳으로 끌려갔고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차갑고 무자비한 전
“배후의 주모자를 찾아내야만 그 루드웰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어두운 세계를 무너뜨려야만 S 조직의 구성원들이 영원히 안전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S조직의 모든 구성원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이었고 이승하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결코 무관할 수 없었다. “그럼 주모자를 찾았나요?” 강도윤은 고개를 저으며 끝없는 자책이 담긴 눈빛을 보였다. 그가 그때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아직도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저는 그곳에 남아 계속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어요. 배후의 주모자를 만날 때까지 말이죠. 하지만 대표님께서는 저한테 나가서 떠나라고 했어요.” 이승하가 그를 돌려보낸 이유는 분명했다. 서유에게 그의 소식을 전해 그녀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강도윤은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대신, 서유에게 소식을 전하는 길을 선택했다. 비겁한 선택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이승하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대표님께서는 제게 사모님께 계속 숨기라고 했지만 전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서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릎 위에 놓인 손가락은 서서히 주먹으로 쥐어졌다. 가슴속에 가득한 슬픔이 언제부터인가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분노는 서서히 가슴에서 얼굴로 퍼져 나가 그녀의 연약한 얼굴에 차가운 기운을 덮어씌웠다. 강도윤이 아직 떠나기 전, 의식을 되찾은 육성아가 블루리도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녀는 문을 박차고 들어와 서유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그 힘은 엄청났고 서유는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당신 남편이 택이를 죽였어!” 서유는 뜨거운 뺨을 감싸고, 눈이 붉어진 채로 육성아를 올려다보았다. 육성아가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 정도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서유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강도윤이 육성아를 마주할 용기가 없듯이, 서유도 그녀와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비록 택이가 그녀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승하 때문에 죽
그들이 떠난 후, 서유는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은 생기를 잃었고 마음속에는 더는 살아갈 의미가 없었다.“도윤 씨, 나 혼자 있고 싶어요.”적막한 거실에 서늘하고 쓸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독과 절망이 가득 담긴 음성에 강도윤은 말없이 서유의 미세하게 부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을 떼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들고 점점 멀어져 갔다. 결국 넓은 집안에 서유 혼자만 남았다.서유는 마치 바람처럼 존재감 없이 가볍게 그 자리에 있었는데 심지어 숨소리조차 희미했다. 한참을 소파에 기대어 있던 그녀는 무거운 눈을 들어 창밖의 석양을 바라보았다. 빛은 여전히 존재했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승하만은 사라져 버렸다.서유의 감정을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승하를 잃은 슬픔을 조용히, 고통스럽게 느끼며.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문이 다시 열렸고 석양이 집 안으로 쏟아졌다. 이연석이 정가혜를 손에 잡고 문가에 서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무릎을 꿇고 웅크린 서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마침내 정가혜가 이연석의 손을 놓고 석양 속을 걸어 서유에게 다가갔다. 따스한 품에 안기자 영혼이 빠져나간 듯했던 서유가 그제야 미세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정가혜의 걱정 어린 얼굴과 붉게 울린 눈을 마주했다.“서유야, 나 금방 알았어. 난 정말로 아주버님이 출장 갔다고만 생각했어. 나... 미안해...”정가혜가 진작 알았더라면 서유 곁에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연석이 조금 전에야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서유가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할까 봐 그동안 숨겨왔던 것이다. 정가혜는 그 길로 오면서 내내 이연석을 탓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비밀로 하며, 아내들에게조차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 그 결과 지금처럼 그녀들은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다.서유의 마음은
소지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승하가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연이에게 말했다. 연이는 매우 의젓하게 대답했다.“당연하죠. 이모부가 내가 클 때까지 봐주고 나중에 결혼식에도 보내주기로 약속했으니까요.”아이의 믿음은 단순해서 달래기 쉬웠다. 하지만 소지섭은 자신을 그렇게 속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석양 너머의 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표님께서도 저 태양처럼 다시 떠오르기를,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아이와 함께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던 소지섭은 문밖에서 차가 오는 소리에 눈길을 돌렸다. 주태현은 경적 소리에 깜짝 놀라며 멍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는 나이가 든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차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자마자, 주태현은 떨리는 손으로 통행 버튼을 눌렀다.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서유는 하인들에게 휴가를 줬지만 주태현은 이승하와 오래 함께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에, 그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비록 소지섭처럼 주태현 역시 이승하가 사망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승하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쳐 서유를 돌보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절대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 결심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그리하여 마음속 깊은 슬픔이 나이 든 그의 몸까지 해쳤음에도 그는 여전히 블루리도 섬에서 묵묵히 남아 마지막 남은 여주인을 지키고 있었다.허락을 받은 차는 빠르게 정원을 가로질러 성문 앞까지 달려와 갑자기 멈춰 섰다. 조수석 문이 열리자 검은 옷을 입은 소수빈이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소지섭 앞에 다가왔다.“소지섭!” 소수빈은 창백한 얼굴로 소지섭의 옷깃을 잡아챘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던 소지섭을 세워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왜 대표님께서 루드웰에 갔다는 사실을 나한테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소수빈은 그동안 부산에서 소씨 집안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고, 대표님이 암시장에 간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저 대표님이 북미로 출장을 간다는 얘기만 듣고 진짜 출장을 갔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