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아까 전 정가혜가 두 로봇을 보고 말문이 막힌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여보, 당신네 회사에서 만든 로봇들, 좀 더 예쁘게 만들 순 없었어요?” 서유가 말하는 순간, ‘77번’ 로봇이 이승하를 향해 허리를 굽히며 반복해서 말했다.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환영...” 이승하는 손을 들어 로봇을 껐고, 뒤에 말을 채 하지 못한 로봇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안에는 복잡한 전선들이 뒤엉켜 있었는데 이를 본 이승하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연석이가 너무 서둘러서 기본적인 구조도 제대로 못 했네. 이걸 회사 로고 달고 내놓다니.” 서유는 외형이 못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이승하는 내부 구조가 문제라고 느꼈다. 둘의 생각은 다르기에 서유는 더 말하지 않고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럼 여보, 나중에 당신이랑 똑같은 로봇을 하나 만들어줘요.” 이승하는 시선을 서유에게 돌리며 물었다. “왜?” 서유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볼을 콕 찌르며 웃었다. “왜긴, 나도 매일매일 허리 굽혀서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남편을 하나 갖고 싶으니까.” 이승하는 애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조차도 못 알아보게 만들 거야.” 서유는 그가 정말로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그때,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와 바다 위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이 곧 시작될 거라며 하객들에게 자리에 앉아 신랑 신부의 등장을 기다리라고 알렸다.서유는 이승하에게 정가혜를 찾으러 간다고 말하고는 대기실로 향했다. 정가혜는 화장대 앞에 앉아 계속해서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서유가 들어오자 정가혜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미 한 번 결혼했는데, 익숙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이렇게 긴장되는 거야? 혹시 내가 경험이 부족한 걸까?” 서유는 정가혜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가혜야, 네가 긴장하는 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네티즌들은 이연석이 ‘꽃미남 바람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만큼 여자를 쫓는 데 진심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여자를 쫓았다는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했고 그가 한 말이 과연 믿을 만한지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많은 이들을 깊이 감동시켰다. 그래서 모두가 이연석과 재혼 고아 출신인 정가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이연석과 정가혜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남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행복하고 기쁘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뉴스를 보고 있던 강은우는 스크린에 비친 화려한 정가혜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크게 뜬 눈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이목구비를 확인한 뒤에야 그는 확신했다. 그의 전처가 진짜로 재벌가에 시집을 간 것이었다. 그것도 거대한 재산을 자랑하는 이씨 집안에!이 사실에 강은우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혼 후, 그는 비참하게 살았고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날마다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그 와중에 강이설과 아이를 돌봐야 했는데 하루에 5분도 쉬지 못해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반면, 정가혜는 화려한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녀는 유흥업소를 개업하여 큰돈을 벌어들였고 이제는 재벌가 사모님이 되어 있었다. 강은우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분노에 찬 강은우는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에 들어가 정가혜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녀가 재벌가에 시집가려고 전남편을 버렸다고, 결혼 기간 동안 이연석과 몰래 사귀었다고 말하며 험담을 늘어놓았다. 의외로 그의 말을 믿는 네티즌들도 있었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댓글을 달았다. 강은우는 인터넷에서 위안을 얻으며 정가혜에 대한 가장 악랄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그때, 누군가 그의 말을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그였다고, 바람을 피우고 결혼으로 아내 재산을 빼앗았으며 심지어 여동생까지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이승하 앞에서도 이씨 집안과 김씨 집안 사람들은 비교적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문제는 송사월이었다. 그는 두 부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했다. 자신의 존재가 그들에게 불편을 줄 것만 같아 더욱 위축되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휠체어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정가혜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그 옆에 다가가 앉아 먼저 말을 걸었다. 정가혜가 곁에 있어주자 송사월의 고독함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서유의 손은 이승하의 긴 손에 잡혀 그의 허벅지 위에 얹혀 있었다. 그들 사이의 친밀한 행동은 이미 무수히 반복했기에 자연스러웠다. 송사월의 강렬한 시선을 감지한 서유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서유는 미소를 지으며 깨끗하고 담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미소를 본 송사월은 서유가 이미 모든 것을 털어내고 평온해졌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에게 어색해 하지 말고 편하게 대하라는 뜻을 전하고도 있었다.송사월도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고 두 사람은 조용히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가 있었는데 바로 서유를 몰래 훔쳐보고 있던 육성재였다. 그는 속으로 이 남자와 서유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의심했다. 어쩌면... 이승하가 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생각한 육성재는 피식 웃음을 참지 못해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고요했던 배 안에 갑작스러운 웃음소리가 퍼졌고 사람들은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육성재는 순간 웃음을 멈추고 표정을 굳힌 채 김선우를 향해 발을 뻗어 그의 다리를 세게 걷어찼다. “아니, 이승하를 이기는 걸 도와달라고 날 불렀잖아! 뭐 하고 있는 거야?” 느닷없이 걷어차인 김선우는 억울하다는 듯 육성재를 노려보며 웨이터에게 카드를 가져오라고 했다.카드를 건네받은 김선우는 마치 마술을 부리듯 손에 든 카드
이씨 집안 형제들은 김선우의 제안을 듣고 나서 눈에 있던 분노가 경멸로 바뀌었다. “우리가 왜 너희 김씨 집안이랑 같이 해야 하지?” 이씨 집안은 김씨 집안과 원한이 있었다. 서유의 체면을 봐서 잠시나마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그들이 김씨 집안 팀에 들어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해요. 서유 누나는 우리 김씨 집안 사람이고 가혜 씨도 누나 친구니까 우리 김씨 집안 사람이에요. 그리고 김 대표님은 이씨 집안도, 김씨 집안도 아니니 저희 김씨 집안 쪽으로 보내고, 단이수 씨는...” “잠깐! 단이수는 내 친구야. 너한텐 데려갈 권리가 없어.” “그냥 친구면 혈연도 아닌데 왜 이씨 집안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거야?” “내 여동생의 첫사랑이니 당연히 이씨 집안 사람이지.” 이연석이 그렇게 말하자 단이수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이지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사월 옆에 앉아 있었지만 마치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전혀 반응이 없었다. ‘첫사랑’이라는 말에 별다른 감정이 없는 듯 담담해 보였다. 단이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의 눈빛은 살짝 붉어졌다. 이연석도 자신이 다급하게 내뱉은 말이 실수였다는 걸 깨닫고 얼른 말을 고쳤다. “어쨌든 단이수는 내 친구야. 절대 너희 김씨 집안 쪽에 붙어서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양쪽이 인원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정가혜가 나서서 남편을 대신해 말을 꺼냈다. “김 대표님, 서유는 이미 아, 아주버님과 결혼했어요.” 어색하게 말을 고친 후 정가혜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서유도 이젠 이씨 집안 사람이고 저도 연석 씨랑 결혼했으니 이씨 집안 사람이에요. 그리고 김 대표님은 제 동생이니 당연히 저와 함께 있어야죠.” “맞아! 제수씨 말이 맞아. 모두 우리 이씨 집안 사람이야!” 신부가 나서서 말을 하자 이씨 집안 사람들은 더욱 강경하게 김씨 집안과 함께하는 것을 거부했다. 김선우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김선우는 이 게임에 흥미를 잃은 듯한 이승하를 한 번 흘겨보더니 눈에 짓궂은 기색이 번졌다. “이렇게 해요. 우리 김씨 집안은 이번 판에선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날게요. 하지만 이번 라운드까지 온 사람들은 마지막 한 판까지는 해야 해요. 단, 승패 규칙은 새로 정하는 거예요. 어때요?” 이승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연석이 벌떡 일어나며 테이블을 쳤다. “나도 동의해! 그걸로 결정하자!” 일단 배와 두 로봇을 지켜내는 게 중요했으니까! 이승하는 별다른 반응 없이 손을 뻗어 서유의 허리를 감싸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고는 차가운 눈빛을 들어 육성재를 쳐다보았다. “계속 할 건가?” 육성재의 시선이 잠깐 서유의 허리에 얹어진 그 손을 스쳤다가 빠르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승부가 안 났는데 당연히 계속해야지!” 이승하의 손은 서유의 허리에서 천천히 올라가 그녀의 뒤통수에 닿았다. 살짝 눌러주자 서유는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럼 계속하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포옹하는 건 조금 민망할 수도 있었지만 서유는 얌전히 이승하의 품에 순순히 안겼다. 그녀가 이승하를 올려다보는 모습은 육성재의 눈에 이상하게 거슬렸다. 육성재는 주먹을 꽉 쥐고 시선을 돌려 더 이상 서유를 쳐다보지 않았다.이미 이승하가 여러 차례 경고하듯 그녀에 대한 소유권을 과시했으니 더 이상 쳐다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서유를 바라보는 것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그의 눈은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았다. ‘눈알을 뽑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김선우는 이승하와 육성재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오직 눈앞의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대표님, 마지막 라운드 난이도를 한 단계 더 올리죠. 어때요?” 아직 게임에 남아있던 정가혜는 짜증난 표정으로 김선우를 노려보았다. “또 무슨 못된 짓을 꾸미려는 거예요?” 김선우는 카드에서 두 장의 조커 카드를 뽑아 들었다. “대표님, 저와 먼저
“움직이지 마요!” 이승하가 대충 한 장을 뽑으려 하자 김선우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먼저 할게요!” 이미 카드 섞을 권리도, 속임수 쓸 권리도 잃어버렸는데 우선 뽑기까지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김선우는 이승하가 반응하기도 전에 테이블 앞으로 튀어나가서 긴장된 얼굴로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었다... 5분이 지나고도 김선우의 손가락은 카드 위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너 도대체 뽑을 거야 말 거야?” 폭발 직전의 육성재가 김선우의 다리를 또 한 번 걷어차며 소리쳤다. 김선우는 다리를 부여잡고선 질투 가득한 눈으로 이승하 형제를 바라보았다.‘저 봐, 형이 얼마나 동생을 잘 챙기나. 반면 내 형은...’‘에이, 잘못 태어난 내 잘못이지!’김선우는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아예 보지도 않고 품에 안은 채 이승하에게 카드를 뽑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지루해 보이는 이승하는 아무렇게나 손가락을 뻗어 한 장을 뽑았다. 마찬가지로 그는 카드를 보지도 않고 바로 뒤집어 테이블 위에 던졌다. 하지만 흥미가 없었던 건지, 빅 조커를 뽑지 못하고 작은 조커를 뽑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김선우는 작은 조커를 보자마자 기뻐서 땅을 박차고 일어섰다. “내가 빅 조커를 뽑았어!!!” 속임수 없이 대왕을 뽑았다니, 정말 끝내준다! 김선우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고 이연석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우리 형이 먼저 뽑게 해줬으니까 그런 거죠. 당신 같은 더러운 손으로 빅 조커를 뽑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대왕을 손에 쥐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김선우는 이연석의 비꼼을 개의치 않고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자, 내가 규칙을 정할게요. 마지막 판은 숫자 카드로 계속 가고 빅 조커와 작은 조커를 뽑은 두 사람이 승자예요. 나머지는 탈락.” 이연석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두 명이 이기는 건데요?”
육성재는 마음속이 이미 복잡해져 여러 상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과연 서유에게 입맞출 수 있을까? 유부녀인 걸 떠나서 육성재는 게임을 빌려 좋아하는 여자를 가볍게 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건 상호 자발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서유를 좋아한 순간부터, ‘상호’라는 단어는 그저 사치에 불과했고 이 생에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뿐이었다. 육성재는 가슴 속 깊이 묻어둔 감정을 억누르고 발을 들어 김선우를 힘껏 걷어찼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아무 여자나 키스할 것 같아?” 말을 마친 그는 빠르게 서유를 힐끗 쳐다본 후 감정을 겨우 진정시킨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 했다. “결혼 축하 선물은 이미 보냈으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김선우는 이승하를 제대로 골탕 먹이지 못해 아쉬웠지만 육성재가 무섭게 쏘아보는 눈빛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따라나섰다. “거기 서!” 등 뒤에서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선우는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설마... 이승하가 그를 그냥 보내주지 않을 생각인 걸까? “김 대표, 이리 와.” 김선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가 살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살벌한 눈빛을 본 김선우는 차마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이 대표님, 저...” “다시 한 판 더 하자. 승부 규칙은 끝나고 알려주지.” 김선우는 그가 당장 자신을 해치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승하가 다시 한 판 더 하자고 제안했다. 이승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김선우는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든 괴롭히려 한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그는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육성재를 바라봤지만 육성재는 아예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배를 나가버렸다. 육성재가 나가고 이승하는 그를 붙잡지도 않았다. 이는 이승하가 겨냥한 사람이 김선우, 오직 그뿐임을 의미했다. 이제 끝났
옆에서 구경하던 이연석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누가 그쪽 형이에요? 함부로 부르지 마요!”‘진짜 형 맞는데.’ 서유는 속으로 살짝 웃으며 조용히 일어나 김선우 앞에 섰다. “김 대표님, 당신이 게임을 빌미로 이런 짓을 두 번이나 벌였어요. 나를 곤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나를 매우 존중하지 않았어요. 앞으로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이는 남동생이 절대 누나에게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김선우는 전혀 ‘존중’과 ‘불경’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승하를 골탕 먹이려 했을 뿐 이게 서유를 난처하게 만들 줄은 몰랐고, 이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다만, 이제는 너무 늦은 셈이었다. “누나, 나도 누가 빅 조커와 작은 조커를 뽑을지 몰랐어요. 만약 제가 뽑았다면 저도 역시 이 대표한테 뽀뽀하라고 했을 거예요. 그저 이 대표를 골탕 먹이려고 한 것뿐이에요.” 하지만 서유가 뽑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 순간 그는 게임에 너무 몰입해 지난번 진 내기를 떠올리며 너무 우쭐해졌던 것이다. 결국 그는 남녀 구별이나 결혼 관계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김선우는 약간 못된 구석이 있긴 했지만 서유를 존중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그런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의미였으니. 김선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때리세요, 때릴 만큼 때리시고 나면 저 좀 집에 보내줘요...” 이승하는 그의 부은 얼굴을 보고 다시 한 번 세게 뺨을 후려친 후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다음번에도 이러면 네 다리를 부러뜨릴 거다.” 김선우는 이미 철저하게 당하고 나서 이승하를 올려다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말투가 육성재가 자신을 혼낼 때와 닮아 있었다. 게다가 이승하의 눈이 왠지 작은 고모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은 이미 흐릿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눈빛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김선우가 이승하를 유심히